우리 집이 없다 /

 

고향 친구가 모친상을 당했다. 그동안 멀리 떨어져 산다는 핑계로 고향의 경조사에 일일이 참석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직접 가서 조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집을 나서기 전,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 근자에게 함께 가자고 연락했다. 근자는 조의금만 전하기로 했다면서 참석하지 않을 뜻을 비쳤다. 고향에 대한 애착이 많고 동창생들의 경조사에 빠지지 않는 근자가 왜 그럴까. 의아했다. 하지만 조문하고 우리 엄마 집에서 같이 하룻밤 묵자는 말에 그러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이번에 가면 고향 마을을 안뜸까지 샅샅이 훑어보자고 한 마디 덧붙였다.

고향땅에 있는 장례식장을 찾았다. 영정 속에서도 너그러운 인상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망자亡者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상주에게 조문했다. 89세의 망자가 돌아가시기 전 크게 고생하지 않았고, 자손들에게 할 이야기도 하고 가셨다는 말에 ‘망자가 복 받으신 분’이라며 모친상 당한 친구를 위로했다.

동창생들이 모여 있는 탁자로 다가갔다. 오랜만에 모인 동창생들은 망자가 내 준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시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유쾌했다. 우리는 조문하러 왔다는 사실도 잊은 채 웃고 떠들었다. 술잔도 몇 순배 돌았다.

“우린 우리 집이 없다!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에 열을 올리던 근자가 갑자기 볼멘소리를 했다. 뜬금없는 그 말에 나는 무슨 그런 말을 있느냐며 웃었다. 근자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그분들이 사시던 고향집은 마을 입구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근자는 집안의 외아들인 오빠가 한 달 전에 돌아가셨고, 고향집은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둘러앉은 동창생들은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근자는, 우리 집이 남의 집으로 되었다는 말을 피붙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그것도 며칠 전에야 전해 들었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밤이 이슥해서 장례식장을 나왔다. 조문을 함께 했던 동창생의 차를 타고 고향 마을에 이르렀을 때, 근자가 여기서 내려달라고 말했다. 근자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을 입구 첫 번째 집인 자신의 고향집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기웃거리지도 않고, 새롭게 둘러쳐진 철망을 따라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가 역시 철망으로 만든 대문 앞에서 한동안 서성거렸다. 그 모습을 이만큼 떨어져서 바라보며 먹먹했다.

우리는 한밤중에 나타난 딸과 딸의 친구를 보며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엄마와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친정집을 나섰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마을 안쪽 길로 향했다. 가족이 종종 함께 둘러보긴 했지만 친구와 나란히 걸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마을 안쪽은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삼사십 년 전 모습이 아니었다. 그 시절, ‘큰길’로 부르던 대로大路는 골목길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조붓하다. 길 양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돌담을 사이에 두고 소곤거리던 기억속의 집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멋스런 집들이 우뚝 우뚝 서 있었다. 삼거리 미애네 집 옆 느티나무만이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마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새로 지은 번듯한 집 일색이다. 그에 반해 가뭄에 콩 나듯 두어 채 남아 있는 옛집은 장난감처럼 작고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에는 대궐 같던 집이 저렇게 초라할 수 있는지. 그나마 내가 어릴 적 아늑하게 느꼈던 우리 옛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풀밭으로 변했다. 안마당은 화단을 만들 수 없을 만큼 비좁아도 집채는 제법 컸다고 기억하는데, 집터를 보니 ‘나 혼자 누우면 딱 맞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았다.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까지 핑 돌았다.

삼거리를 지나 고샅길로 들어서니 발을 내딛기 어려울 정도로 풀이 무성했다. 풀숲을 헤치며 순예네 집, 병수네 집, 애란네 집, 범순네 집, 현순네 집을 더듬었다. 그 반대쪽에 있던 훈자네 집, 종수네 집도 훑었다. 그 집들도 어김없이 큰 건물이나 텃밭으로 변했다.

 

근자는 집에 대한 기억이 남달랐다. 풀밭으로 변한 집터만으로도 집의 형태와 집주인을 빠짐없이 기억해냈다. 겉모습이 이미 낯설게 변해서 집은커녕 그곳에 살던 사람의 이름조차 가물가물했는데, 선훈네 집, 경선네 집, 성기네 집, 금숙이네 집, 종국이네 집, 옥순네 집을 읊었다. 나는 근자의 말을 듣고 나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근자네가 여러 번 이사를 했다는 사실도 그렇게 기억해냈다.

막연하게 마을 입구에 있는 집이 근자네의 유일한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달랐다. 위뜸에만 해도 두 집을 거쳤다. 근자는 성기네 집 옆에서도 살았고, 금숙이네 집 위쪽에서도 살았다. 아래뜸으로 내려온 것은 십여 채의 개량주택이 들어서던 1980년이었다. 최근 남의 손에 넘어갔다던 마을 입구 첫 번째 집은 근자네 소유의 밭에 새로 지은 집으로 근자가 결혼한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근자는 고향집에 대해 애틋했다. 그래서일까. 전에 없이 말이 많았다. 집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만으로도 한참이나 걸렸다. 눈빛은 허망하게 허공을 응시한 채 고향집 추억을 곱씹었다.

우리 집이 없다며 침통한 표정이던 근자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근자가 힘주어 말했던 ‘우리 집’이 부모님께서 살아계셨어도 남의 손으로 넘어갔을까. 부모님이 안 계신 것도 서러운데 정들었던 집까지 남의 것이 되었을 때, 그 마음이 어떨까. 내가 걸어 온 지난날을 모두 알고 있고, 그것을 추억하게 해 주며, 부모님처럼 언제라도 두 팔 벌려 반겨줄 ‘집’이 고향땅에 없다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 일일까.

‘오빠가 고향집을 팔려고 내놓았다는 말을 들었더라면 빚내서라도 그 집을 샀을 것’이라고 한탄하던 근자. 허공에 대고 소리치던 근자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부모님이 장만해서 돌아가실 때까지 사시던 집은 오빠의 집도 아니고, 오빠의 아들인 장손의 집도 아니야. 그것은 그 누구의 집도 아닌 우리 집이야. 우리집! 우린 이제 그 ‘우리 집’이 없어진 것이라고!

 

 

 

정경해 약력)

국제PEN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경북문인협회, 숲문학회 회원

수필집 <같은 빛깔로 물들어 간다는 것은>, <까치발 딛고>, <내 마음의 덧신>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