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또 다른 나> 배준표 , 작은 씨앗  2010.3.24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삶을 사는 ‘나’인가. 남이 보는 ‘나’.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나’로 살아가지 않을런지.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떠나는 심리 치유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네 번의 이혼, 동거를 반복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며 격게 되었던 유년기의 심적 고통, 극심한 정신적 질환을 겪으며 잃어버린 십대 시절, 정신질환 치료기간, 정신질환을 자가 치료 후 꿈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떠난 배경, 그리고 심각한 식이장애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해 있었던 아내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진실한 사랑을 찾아 가는…’이라고 작가의 말에서 하고 있다.

작가는 어릴 때의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학교의 퇴학과 자퇴, 가출, 자살 기도, 정신 치료 등을 겪으며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무엇이 ‘나’를 이렇게 살도록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그래서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글로 적는다. 결국 ‘나’는

‘… 세상의 아름다운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만을 보는데 주력을 한다는 것, 감정을 스스로 억압하며 내 마음의 요구보다는 남들의 비위를 맞추며 산다는 것, 남들 앞에서 보여질 내 모습에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것…’

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하여 작가는 자신의 문제를 이기기 위해 거꾸로 살기로 한다.

‘… 이제는 전과는 반대로 세상의 아름다운 면만을 보려고 노력하고, 내 감정을 스스로 존중하며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남들의 눈치보다는 내 마음의 요구를 더욱 들어주고, 남들 앞에서 보여질 나를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나를 스스로 어떻게 보느냐에 생각을 집중하고…’

작가는 이렇게 하여 서서히 자신의 정신질환을 극복한다.

작가가 자신의 병을 극복한 것은 결국 ‘나’를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남이 나를 보는 ‘나’가 아닌 원래의 ‘나’를 보고 존중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이 보는 ‘나’는 어떤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남들과 비교해 자기를 비하하고 자학하는, 그래서 탐욕심에 가득찬, 그런 ‘나’가 아니겠는가. 그럼 원래의 ‘나’는 무엇인가. 때어날 때의 때가 묻지 않은 그 순진무구의 인간, 자신의 존재감을 존중하는,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 자체가 극락이요 천국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인간은 살아가면서 남과 비교하고 사회의 물질적 욕망에 빠져 원래의 ‘나’를 잃어버리고 남이 보이는 ‘나’, 오직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다른 사람의 관점에 좌우되는, 그런 ‘나’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원래의 ‘나’를 회복해야한다. 그래야 자신을 존중하고 남을 존중한다. 흉악범들을 봐도 불우한 환경 때문에 성격이 비뚤어지고 사회에 적개심을 품어 끔직한 일을 저지른다. 모두가 잘못된 환경(가정환경, 사회환경)으로 인해 원래의 ‘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에세이라서 인간의 심리를 심층적으로 파헤치기 못 한 점은 아쉽다. 프로이드의 이드 자아, 초자아 론이나, 융의 그림자 이론을 바탕으로 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런 이론 없이 오직 원래의 ‘나’를 찾은 작가는 위대하고 그만큼 이 책은 유익하다.

 

고창근   sgamm@hanmail.net  소설집 <소도(蘇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