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 모텔

 

초록이 무섭다

초록에서 초록으로 깊어가는 초록의 유목

초록에서 초록으로 이어지는 물의 유목

 

나무 둥치에 청진기를 갖다대면 종일 물소리

누가 샤워를 하고 있나 보다

줄지은 플라타너스 나즈막한 모텔 속으로

누군가가 걸어 들어가고 걸어 나왔다

조금 전 젊은 연인이 그 나무 아래서 사라졌다

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듬지까지 올라가면

수갈래 복도가 나오고 빼곡이 들어차 있는 물의 방들

낡아서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접수부도 없고

자동차 가리개도 없는 무전숙박

햇살과 바람이 일렁이는 곳은 다 방이 되는

아주 오래된 모텔

 

 

우듬지 오른쪽 객실 쪽에서

스타킹 한 짝이 보도에 떨어졌다

또르르 말린 갈색 이파리 한 장

바람이 격렬해질 때 초록도 초록을 벗어 던진다

 

 

 항해

 

아이의 방은 그리 크진 않지만

바다도 있고 별도 있습니다

푸른 줄무늬 벽지 위에 배들이 늘어서 있고

천정엔 야광 별들 별만큼 박혀 있습니다

불을 끈 하늘엔 형광빛 별들 밤새 반짝이고

아이는 별꿈을 꿉니다

 

아이가 학교 간 사이

바다는 썰물로 얕아졌다가

아이가 돌아올 때쯤

찰랑찰랑 수위를 높입니다

 

아이는 바지를 걷고 물 속에 하루를 씻고는

의자에 가만히 몸을 기댑니다. 책상 위에 어지러이 놓인

책들,

대양 속으로

떠나는 배 한 척

긴 고동 울리며 서 있습니다

 

아이의 방은 지금 만조입니다

 

김미지/1960년 대구 출생

1996<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문』

miji340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