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이민숙

 

생의 오류는 얼마나 무거운가

생의 무거움은 오류의 덩어리 때문이다

퇴고하면서 쳐내는 곁가지가 눈물이라면

우리는 매일 하나의 시를 붙들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퇴고하면서 바꾸는 시의 행갈이가 사랑이라면

우리는 이 시간 저 시간 사랑을 바꾸며 헛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퇴고를 하면서 생각한다

오늘도 해야 할 말보다

백배나 많은 헛말을 하고 살았구나

오늘도 먹어야 할 콩 한 톨보다

끝없이 과잉으로 넘쳐나 뱃살을 불리는,

지구 건너편 아이들의 기아를 부추기는 기름진 상을 차리고야 말았구나

퇴고를 하는 새벽, 들려오는 불호령에 치가 떨린다

한 마디만 남겨라!

아니 다 버려라!

저 검게 변해버린 창을 향하여

버티고 선 나의 둔탁한 언어

이 어기찬 미련, 생의 찌꺼기에 언제까지

기대어 살아가려고 하느냐!

 

 

 

 

눈 위의 눈

 

왜 우리는 발자국이 없는 그 눈길을 찾아가려 했을까

걸어가면 순하게 생기는 것, 그 발자국,

걸어가면 질퍽하게 이어지는 것, 그 발자국,

걸어가면 옹통지게 헝클어지는 것, 그 발자국,

 

눈 위에 눈이 온다

발자국 위에 눈이 쌓인다

바람으로 눈이 흩날리고 발자국이 지워진다

금방 사라지는 것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발자국을 찍는다

사라짐과 부딪힘은 하나다

헛됨과 그리움도 하나다

발자국 위에 눈이 쌓여 발자국을 지웠다고 말하지 말자

발자국을 끌어안고 몸을 눕혀버린 눈의 심장 가까이엔

우리가 모르는 무수히 많은 발자국들이 숨어살아 있으리라

 

산골짜기 바람 따라 눈이 흩날린다

흩날리는 눈을 따라간다 나도 흩날린다

허공의 심장이 흩날린다

세상에서 아프게 헤어졌던 입술들이 뾰족하게 댓이파리에 맺힌다

눈꽃으로 피어나는 이별들

 

이별과 만남이 하나다

눈 위에 눈이 있고 눈 깊은 곳에 또, 눈이 있다

 

 

 

이민숙: 전남 순천출생. 1998년 <사람의 깊이>에 ‘가족’외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나비 그리는 여자]. 여수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 ‘샘뿔인문학연구소’에서 책읽기 및 문학창작 활동에 힘을 모으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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