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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초리가 준비된
방문 앞에서 떨어 본 적이 있는가?
설사
기쁨의 말을 입안 가득 담고 있다 해도
문고리를 잡고 선 아이는
선뜻 문을 열지 못한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편지를 쓰고
댓글을 달고
이력서를 쓰고
신춘문예 소설을 쓰고
칼럼을 쓰고
고소장을 쓰고
연애편지를 쓰지만
보내지 못하고 돌아서는 씁쓸함에 
가슴 태우는 영혼을 본 적이 있는가?
컴퓨터 앞에 앉아 본 사람은 안다.
엔터 한 번 두드리는 일이
한 줄 아래로 가볍게 내려서는 일만이 아니라는 걸.
일상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고
세상이 바뀔 수도 있음을 깨닫는 순간,
쓴 것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망설임 위에 앉아 떨 수도 있다는 걸.

 

 

 

 

 

  수선화

  

 

  몇 뼘 땅속에서도 
  울지 않고 살았어요.
  봄을 기다렸어요. 
  늘 살며시
  몰래 왔다 가는 것 같아도 
  애써 참아낸 고통이 때론 땅속보다 깊었어요.
  노란 순정으로 설레던 새벽 
  핏빛 진달래를 안고
  두려웠던 가슴
  낙뢰처럼 갈라져 
  아, 땅속보다 깊은 고뇌가 되려
  제 키를 키운다는 사실은
  참 아름다운 충격이었어요.
  노란 수선화 한 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