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 새

 

황 정인

 

외출을 하려고 차로 향하던 나는 깜짝 놀랐다. 운전석 옆 백미러에 새똥이 잔뜩 묻어 있었고 난도질 한 듯 자잘한 금이 수도 없이 그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볼일이 급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대충 닦아내고 나갔으며 그 일은 가는 동안 까맣게 잊어버렸다.

며칠 후, 나는 똑같은 상황을 맞아야했다. 지저분해진 차를 다시 닦아내야한다는 것이 무척 성가셨고 짜증이 났지만 새가 한 짓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새 똥이 묻은 백미러를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저 놈의 새 가만 놔두나봐라’ 협박을 일삼곤 했다.

작년 시월부터 남동생이 하던 음식점을 인수해 운영하게 되었다. 인수라고 하지만 내 의사는 아니었다. 맨 처음 동생이 내게 해보라고 말을 꺼냈을 때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었다. 빚을 얻어야한다는 부담도 컸지만 평생 장사라고는 해 본적 없는 터라 자신 없었다. 또한 인상 좋고 살가운 동생과 달리, 나는 좋은 인상도 아니었고 살갑고 다감한 성격도 아니라 더욱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들은 그 음식점을 맡아 해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고 남동생은 내게 떠넘기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나보다 아들은 더욱 여건이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이제 겨우 스물 댓 된 아들이 맡아 하기엔 다소 큰 가게이기도 했지만 평소, 음식을 해야 할 상황이오면 음식 하느니 굶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는, 음식에 대해 문외한인 녀석이 많은 사람에게 내 놓을 음식을 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애초 손 사레를 쳤었지만 두 놈이 작정하고 졸라 대는 데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단서를 붙였다. 인수하기 일 년 전부터 아들은 주방에서 나오는 음식의 조리법은 물론, 설거지나 온갖 허드렛일 까지 배우게 했고, 동생에게는 자신의 부재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들이 이끌어 나갈 수 있게끔 가르쳐 놓으라는 것이었다. 물론 대출받은 돈은 전부 갚는다는 단서까지 붙였다. 그런 후 시작한 일이지만 매사 허점 많은 아들이 도무지 미덥지가 않았다.

가게를 인수하기로 한 날. 나는 오년간 다니던 학원을 그만 두었다.

내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었다. 아이들과 나누는 이야기나 숨결 속에는 기억에서 허물어져가는 어린 날의 나와 마주할 수 있어 좋았다. 또한, 편안하게 책 속에 파묻혀 지낼 분위기를 만들어주어 어떤 일보다 만족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일을 그만 둔 것이다. 아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그저 얻어지는 경험이란 건 없었다. 서툰 일을 한다는 것이 타인의 눈에도 비춰진 건지 온몸의 뼈가 덜그럭 댈 지경으로 일을 했지만 손님들은 한눈에 서툰 사람의 손길이란 것을 알아차리는 듯 불만이 많았다.

음식점에서 점심시간을 맞는다는 것은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과 흡사했다. 한두 시간 내 이백여 명의 음식을 내고 상을 치우고 또 모자란 음식을 다시 내어가고 실수를 하면 욕을 듣기도 했다. 낯가림이 심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만 며칠 사이 평소의 내 성격과는 달리 문이 열리면 어느새 인사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손님이 없는 시간이라고 해서 조용한 것은 아니다. 언제 몰려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손님 없는 시간은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시간 이었다 네모난 식당 안을 열댓 시간 종종거리며 다니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발목이 두 배 정도 부풀어 올랐다. 당기고 아파 걸을 때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지만. 내가 없으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병원 갈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적응이 되면 나아지려니 하던 바람과는 달리 발목과 발뒤꿈치의 통증이 극심해 도저히 일어서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았다. 의사 왈

“ 너무 걸어 다녀서 오게 된 통증입니다,” 평소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난생 처음 들어보던 소리였다.

그 날부터 카운트에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들이건 직원이건 알바건 스스로 알아서 하는 일이 없는 듯 보였다. 앉은뱅이 용쓰듯 몸을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니 앉아서 보는 일이 더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잘못을 찾지 못해 안달난 사람처럼 호시탐탐 지적 할 것만 찾아내었다. 누가 잘못을 하건 매번 아들을 불러 나무랐다. 조금만 허술한 구석이 눈에 뜨여도 참지 못하고 당장 불러 잔소릴 해야 직성이 풀렸다.

누구 앞이건 가리지 않고 아들에게 화를 내고 잔소리 강도를 점 점 더 높여 가던 어느 날.

“엄마, 내가 사장 맞기는 맞아? 도대체 내가 여기 왜 있는 건데? 그렇잖아도 나이 어리다고 ......” 아들은 입을 닫아 버렸다.

잔소리 하는 양이 많아질수록 아들은 전과 달리 하루가 다르게 가게에 대한 애착도 열정도 사그라지는 것만 같았다. 걸핏하면 내 눈을 피해 바깥으로 쏘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서너 달 집에 홀로 남겨진 남편은 하루하루 불만을 늘어놓더니 어느 날은 아예 폭발을 해 당장 이혼 해치우자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했다. 일이 차고 넘쳤던 나로서는 남편의 그런 불만에 대해 배부른 소리라고 일축해버렸고 이해심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남편이 아둔하고 소심하기 짝이 없는 위인이라 폄훼하기까지 했다.

가게인수만 해 주면 정신없이 일만 하겠다던 아들과 아들이 개업을 했으니 당연히 가서 돌봐주라던 남편이었다. 그들의 나에 대한 불만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온몸이 아파 일어서지 못할 지경으로 일을 하고 있으면 내게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나는 알지 못할 배신감이나 분노가 치밀어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나 없이 고생해 보란 듯 짐을 챙겨들고 집으로 올라왔다. 집으로 올라올 때조차 아들은 내다보지도 않았다. 내 호의와 노동이후에 얻은 것이라고 하나도 없었다. 오는 내내 눈물이 났다.

아들은 철이 들면서부터 나를 많이 챙겼고 내 말을 어긴 적 없었다. 늘 성격 거친 남편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했고, 잘 생긴 얼굴이나 좋은 성격으로 어딜 가나 내 어깨에 힘을 실어주던 아들이었다.

“엄마. 우리는 다른 집 모녀 사이 같지?” 라고 하던 불과 한 해전의 아들 목소리가 쉼 없이 떠올랐다.

집에 돌아온 나는 하루 스무 시간씩 잠만 잤다. 피곤해서 자는 것이 아니었다. 억울해서 자고 잊고 싶어서 자고 생각하기 싫어서도 잤다. 잠과 꿈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두 달 가량을 보냈다. 스무 시간씩 일할 때도 피곤한지 몰랐고 스무 시간씩 잠만 잘 때도 개운한 줄 몰랐다. 몸은 상황에 둔감하게 반응을 했고 정신은 안개 속을 걷는 듯 모든 것이 흐릿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선잠에서 깬 나는 새소리에 끌려 바깥에 나가보았다.

주차해둔 차 왼편 백미러 쪽으로 급하게 날아가던 새가 기우뚱대는 모양이 언뜻 보였다. 내차를 수시로 더럽혀 놓던 그 새였다. 부리엔 풀이나 부드럽게 동강난 작은 나뭇가지를 문 채, 몇 번이나 백미러에 머리를 부딪치고 있었다. 도대체 다른 곳도 아니고 왜 하필 저 백미러에 가서 열심히 머리를 박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살펴보러 가까이 가 보았다. 손바닥만 한 백미러엔 새가 묻혀놓은 이물질과 더불어 자잘한 잔금이 수도 없이 그어져 있었다. 거울에 이만큼의 금이 갈 정도로 새부리로 쪼기도 했고 머리를 부딪치기도 했다는 것이 안쓰러웠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일단 백미러에 검은 봉지를 씌워두기 위해 봉지를 하나 가지고 내려오다 또 새가 부딪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좀 떨어져서 보니 거울 안에는 나무하나가 사진처럼 들어가 있었고 나뭇가지 우듬지사이에 새가 짓다만 둥지가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 새가 거울속의 나무를 향해 왜 거침없이 날았던 것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검정비닐을 씌우는 대신, 그 나무가 비춰지지 않는 위치로 차를 빼놓았다.

어리석은 새를 향해 깔깔대다 말고 문득, 마치 새가 나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진지하게 잠시도 쉬지 않은 채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일상에 온몸을 부딪치던 내가 새 같았다.

‘거울을 향해 헤딩을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머리가 안 아프고 베길까.’

새가 바보라고 비웃듯, 누군가 나를 보고 비웃을까 얼른 사방을 살피며 들어왔다.

내가 떠난 가게는 방학이 무색할 만큼 잘 돌아갔다. 미덥지 않던 아들은 수시로 전화를 하며 가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세세히 알려주었고, 역시 미덥지 않은 공약을 남발하지만 그 공약 때문에 은연중 웃게 된다.

 

2012년 7월 30일

 

 

도도새: 이름만 들었을 때는 자기할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도도한 새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그 의미하는 바는 포루투칼 어로 바보 새 란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