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이름의 냉장고 - 그리하여 모리기아나*는 컴컴한 고시원의 냉장고가 되기로 했다    



- 최형심



 똑,똑,똑, 정확하게 세 번. 이렇게 해야 냉장고가 대화할 준비를 한다. 원래는 분명 하얀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든 여인네처럼 기미 같기도 하고 주근깨 같기도 한 반점이 곳곳에 박힌 구식 냉장고. 누리끼리한 게 세련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촌부 같다. 때 묻은 벽지와 살을 맞댄 냉장고는 이 허름한 고시원과 한 몸으로 태어난 붙박이장처럼 보인다. 나는 우선 주변을 살핀다. 아무도 없다. 이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을 차례다. 나는 먼저 두 손을 냉장고 문 중앙에 얹어 본다. 약간 차갑다. 냉장고의 상태가 썩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다. 일단 정해진 대로 냉장고문을 살짝 열었다 닫는다. 그리고는 좀 과장되게 인사를 한다.

“자기~!”

 윙,윙,윙 냉장고가 불연속적으로 세 번 운다. 준비 됐다는 신호다.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냉장고가 말문을 열기를 기다리며 손을 턱으로 가져간다. 면도를 하지 않은 턱이 까칠하다.

 냉장고와 대화하기 위한 절차는 꽤 까다로운 편이다. 냉장고의 말을 빌자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안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하긴, 새벽에 부엌에서 혼잣말을 하는 것을 들키기라도 하는 날이면 뒷감당이 힘들겠지. 나는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핀다. 역시 아무도 없다. 이제 냉장고 문을 연다. 

 “또 주문 까먹었구나! 어이구 아예 머리에다 동굴을 파자! 그게 바위지 무슨 머리야?”

 “야, 깨방정, 나 무시 하지 마. 바지 속이야말로 바위야, 바위!”

 “흥! 바위면 뭘 하나? 파도 한 번 스칠 일 없는 바위면서.” 

 윙…… 윙…… 냉장고의 반응이 시원치 않다. 예상을 살짝 빗나간 셈이다. 

 “어떻게 된 게 너는 입만 열만 찬바람이 쌩쌩 나냐?”

 주문을 잊어서 좀 겸연쩍어진 내가 받아친다.

 “외우랄 때 외워.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을 잊어버려서 동굴에 갇힌 사람의 이름이잖아!”

 “알리바바 아냐?”

 “아휴, 아니라니까! 알리바바의 욕심쟁이 형 이름이잖아!” 

 “알았어, 알았다고. 그깟 주문 때문에 매일 냉전이야, 진짜. 주문을 배꼽춤이나 홀딱쑈 같은 걸로 했어봐, 내가 잊어 먹겠냐고. 하여간, 냉장고도 갱년기가 있나?

 나는 궁시렁 거리다 순간, 손잡이를 놓친다.  

 “어…… 어…….”

 냉장고 문이 닫히려고 한다. 냉장고는 있는 힘을 다해 윙 소리를 낸다. 나는 깜짝 놀라 닫히려는 냉장고문을 잡아챈다. 인사를 나누는 동안만큼은 녀석의 문고리를 공손하게 잡고 있어야만 한다. 냉장고 문고리를 잡아채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손을 내려다본다. 손톱이 까맣다. 나는 이럴 땐 문득 슬퍼져야 할까? 하고 생각한다.

 “좀, 조심 좀 해. 이럼 다시는 말 안 할 거야.

 냉장고는 삐친척한다. 나는 피식 웃는다. 내가 말을 시켜주니까 이제는 자기가 사람인 줄 아는 모양이다. 아니, 여자인줄 아는 모양이다.

 “그러든지. 나날이 몸이 불어서 잡고 있기 힘들어서 그런다. 뭘 그렇게 많이 품고 있냐?”

 나는 농담조로 받아친다.

 “흥! 내 허리둘레 늘어나는데 보태준 거 있어? 그깟 맥주 몇 캔 넣었다 뺐다 뭐 하자는 거야?”

 냉장고가 찬바람을 휙 분다. 시큼한 김치냄새가 확 풍긴다.

 “그런데, 너…… 아직도 그 냄새나는 김치를 그대로 품고 있냐?”

 나는 이마를 찌푸린다. 더는 냉장고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아서 말투가 조금은 진지해진다.

 “211호야. 그 여자는 내가 좋은 냄새 풍기는 걸 좀 싫어해야지! 질투도 그런 질투가 없어! 하여간 좀 반반하게 생긴 것들이 문제야, 쯧쯧.”

 냉장고는 어설프게 혀 차는 소리까지 낸다.   

 그때 누군가 뚜벅 뚜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냉장고는 갑자기 차가워진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다문다. 나는 얼른 맥주를 챙겨들고 문을 닫는다. 눈짓으로 인사를 한다. 냉장고는 알았다는 듯 윙, 윙, 윙 다시 세 번을 운다.


 냉장고와의 대화가 갑자기 끊겨서 서운하다. 하지만 나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내 방으로 향한다. 좁은 고시원 복도에서 나오는 남자와 잠깐 눈이 마주친다. 땀에 젖은 셔츠에서 싸구려 향수 냄새가 난다. 나는 얼른 공동부엌 앞에 있는 내 방 문을 연다. 혹시 냉장고랑 이야기 하는 것을 들킨 건 아니겠지. 쿵, 약간 과장된 몸짓으로 문을 닫는다. 등 뒤에서 남자가 냉장고를 여는 소리가 들린다.

 맥주 캔을 따고 컴퓨터를 켠다. 발자국 소리가 문 앞을 스쳐간다. 아까 그 남자가 부엌에서 일을 마치고 나가는 모양이다. 내 방은 공동부엌 앞에 있어서 편한 점도 있지만,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발소리는 가끔 나를 짜증나게 한다. 나는 일어나 다시 냉장고에게 갈까 생각해보았지만 조금 더 기다렸다가 새벽에 가는 편이 낫겠다고 결론을 내린다.


 인터넷을 켜고 나는 언제나처럼 살로메의 블로그를 방문한다. 오늘은 새로운 포스트를 올리지 않았다. 몇몇이 남긴 안부 인사를 겸한 댓글이 보인다. 아마도 고등학교 친구들인 모양이다. 나는 블로그 오른쪽에 걸린 그녀의 사진을 유심히 본다. 어제도 보고 그제도 본 얼굴이다. 그녀는 어제보다 1미리 더 활짝 웃는 것 같다. 나는 반달모양으로 웃고 있는 그녀의 눈을 바라본다. 심장이 쿵쿵 뛰는 게 술기운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가 없다.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아차, 진동으로 바꿔두는 걸 잊었나? 나는 전화기를 집어 들고 얼른 수신보류버튼을 눌러둔다. 고시원에 살면서 가장 난처한 순간은 이때다. 전화가 올 때 마다 안에서 받을 것인가, 아니면 계단으로 나가서 받을 것인가를 잠시 고민해야한다. 누구한테 왔는지는 그 다음의 문제다. 일단 옆방의 문 따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는지를 먼저 떠올린다. 만약 실수해서 녀석이 있을 때 전화를 받는다면 옆방 녀석이 신경질적으로 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그것이 아무리 모기 기침소리만 한 목소리라고 해도 여기는 고시원이다. 나는 귀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고 옆방의 소리를 모은다. 인기척도 문 따는 소리를 들은 기억도 없는 것으로 보아 녀석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방안에서 받아도 되겠다는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이다. 이제 전화기 화면을 살핀다. 다행히 아직 전화가 끊기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발신인을 살핀다.


 엄마.

 “아들, 잘 있어?”

 이 아줌마는 옥편 찾아가며 지었다는 종복이라는 이름 놔두고 꼭 일반명사로 부른다. 

 나, 무응답.

 “아들? 너 또 고시원 방 안에서 받는 거구나.”

 나

 “어.”

 “넌 어째 갈수록 단답형이냐?”

 나, 역시 무응답.

 “알았다. 알았어. 엄마는 잘 있다. 넌 밥 잘 먹고 잘 있지?”

 나

 “어.”


 우리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공부 열심히 하고 있냐고 묻지는 않는다. 그 사실에 나는 안도한다. 지난해 졸업장만 덜렁 받고 나는 이 시대의 다른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산업예비군, 그러니까 실업자가 되었다. 집에 손님이 올 때면 구석방에 숨는 것이 내 일이었다. 아들의 소식을 묻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엄마는 땀을 쏟았다. 엄마는 자주 냄비가 끓는다고 전화를 빨리 끊었다. 사실은 가슴이 끓었던 것이다. 더는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유행에 편승해 짐을 쌌다. 친구 녀석들과 고시원에 방을 얻었다. 처음에는 근처 도서관에 다닌답시고 몰려다녔지만 형편이 어려웠던 그들은 곧 지쳤다. 그러자 그들은 이마트에서 닭고기 따위를 파는 일자리를 얻고 직장근처의 또 다른 고시원으로 이사하기 위해 다시 짐을 쌌다. 나는 혼자 남겨졌다. 창문이 있는 방으로 옮긴 것은 그 즈음이었다. 냉장고와 말을 트는 사이가 된 건 방을 옮긴 직후였다.   


 엄마는 ‘사랑해 아들’을 두 번이나 외치고 전화를 끊는다. 왜 하필 그 말을 두 번이나 하는 거야? 나는 심통이 난다. 난 이상하게 그 말만 들으면 오그라드는 것 같다. 약간의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찌릿함을 느낀다.

 절전모드로 가기 전에 나는 서둘러 컴퓨터로 돌아간다. 그녀의 얼굴이 떠있는 상태에서 화면이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살로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는 얼른 그녀의 일기가 올라오는 메모게시판을 뒤진다. 오늘 새로 올라온 것이 없는 탓에 나는 예전 포스트들을 복습한다. 

 이번에는 포토로그를 뒤진다. 그동안 못 보고 지나쳤던 사진 하나를 발견한다. 사진 속 그녀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 입술을 쭉 내밀고 있다. 물론 뽀샵 성형과 얼짱각도를 잊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성의와 노고에 잠시 감사한다. 그것은 냉장고에게 대화를 신청할 때만큼이나 진심이 우러나야 한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사진 위에 있는 제목을 읽는다. 모두 모두 사랑해요~. 바로 그때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짜릿한 전류가 몇 초간 나를 통과한다. 나는 놀라 마우스를 쥐고 있던 손을 가슴에 가져간다. 심장에서 시작한 전율이 온 몸에 퍼지는 순간, 나는 극심한 근육통을 느낀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통증이 멈추자 나는 다시 마우스를 잡는다. 이상하다. 마우스가 좀 커졌나?


 그녀의 안부게시판 새 글을 점검하는 것으로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과를 끝낸다. 공개로 설정된 안부게시판에는 광고 비슷한 글이 몇 개 올라와있다.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는 의자를 뒤로 살짝 밀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난다. 의자와 침대 사이가 좁기 때문에 의자를 미는 강도 조절에 실패할 경우 의자와 침대가 충돌하는 일종의 접촉사고가 날 수 있다. 운이 나쁘면 허리가 나가는 대형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숙련된 고시원생활자이므로 그 미묘한 강도를 섬세하게 컨트롤한다. 이어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먼저 빼고 몸을 돌려 의자를 책상 쪽으로 민다. 그리고 뒤돌아선다. 침대다. 소파보다 약간 넓은 정도의 매트리스 네 귀퉁이에 한 뼘 정도 길이의 발을 달아놓은 물건이다. 나는 침대에 풀썩 주저앉는다. 85Kg의 다소 육중한 나의 몸을 받아든 침대가 떨린다. 마치 내 가슴이 그런 것처럼. 나는 아무렇게나 몸을 눕힌다. 침대의 머리 쪽 공간을 늘 넉넉하게 쓸 수 있는 것은 나의 작은 키 덕분이다. 하지만 폭이 좁은 침대는 나의 푹 퍼진 몸을 다 받아주기에 좀 부족하다. 나는 푸우 깊은 숨을 쉬어 본다. 오늘따라 침대가 좀 넉넉해진 느낌이다.


 내 침대는 창문에 바짝 붙어있다. 이것은 고시원생활자에게는 큰 사치다. 창문이 있는 이 방을 얻기 위해서 오만 원이나 월세를 더 낸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약간 기운이 빠진다. 말하자면 월 오만 원에 빌린 창문이다. 캄캄하던 창밖이 갑자기 밝아진다. 오만원이 제 값을 하는 순간이다. 옆 건물 복도에 불이 들어온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모양이다. 옆 건물은 식당인데 내 방에서 보이는 쪽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 쪽이어서 식당의 손님들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창문을 조금 열고 ‘띵!’ 경쾌하게 울리는 엘리베이터 도착 신호음을 듣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남자와 여자가 내린다. 아마 꼬옥 손을 잡고 있을 거야,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곧 식당 문을 열고 그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 살로메를 생각한다. 살로메의 블로그를 들락 거린지 두 달 만에 나는 ‘서로이웃 맺기’를 신청했다. 어제 그녀로부터 승인이 났다. 나는 수많은 그녀의 추종자들 가운데 가장 충성스러운 부류로 임명받은 것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먼저 냉장고에게 알려주고 싶은데 번번이 기회를 놓쳤다. 사실, 나는 어제도 떨리는 가슴으로 냉장고를 똑,똑,똑, 하고 두들겼다. 헌데 옆방 녀석이 술에 취한 채 갑자기 토하러 뛰쳐나오는 바람에 한밤중 우리의 은밀한 대화는 중단되었다. 침대에 누워서 문밖 부엌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세운다. 발을 끌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냉장고에게 말을 걸려면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나는 일단 한숨 자기로 한다.


눈을 감는다. 그러자 깜깜하던 방안이 점점 밝아진다. 벽들이 점점 탈색되고 있다. 희미한 형체 하나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내 앞에 와 멈춘다. 그녀, 살로메다. 나는 놀라 몸을 일으킨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헤집는다. 살짝 드러난 그녀의 가녀린 목마저 흔들릴까 나는 마음을 졸인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에서 파도소리가 난다. 파도소리가 커질수록 그녀의 머리카락은 자꾸 자꾸 자란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입을 움직이는데 나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머리카락은 쑥쑥 자라 순식간에 사방을 뒤덮는다. 나는 곧 파도소리에 둘러싸인다. 내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그녀는 눈 오는 날의 게이샤처럼 창백하게 굳은 얼굴로 눈물만 뚝뚝 흘린다. 나는 손을 뻗어 파도소리를 쓰다듬는다. 부드러운 촉감이 황홀하다. 내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점점 밝아진다. 그녀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나는 파도치는 하얀 머리카락을 만져본다. 머리카락은 어느새 길고 하얀 고래회충으로 변해있다. 순간, 살아 움직이는 그녀의 머리카락들이 나를 향한다. 나는 움찔한다. 눈을 뜬다. 아무것도 없다. 꿈이었구나. 따스한 그녀의 체온이 묻은 파도 소리가 방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

 

 그리고는 꿈보다 더 꿈같은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래서? 드디어 사랑을 확인한 거야?”

 냉장고는 사뭇 진지하다.
 “아, 이야기가 길어.”

 나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킨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는다. 감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소매로 얼굴을 슥 닦고는 바닥에 주저앉는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작아 보이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한 것 같은데.”

 냉장고는 내 눈치를 살핀다. 그러나 독촉하지는 않는다. 다행이다.

 “이야기가 길어.”

 나는 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이야기를 시작하려는데 숨이 턱 막힌다.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신다. 그동안 냉장고는 모터를 끄고 조용하게 내가 입을 열기를 기다린다. 나는 냉장고같이 냉정할 수 있는 친구를 둔 것은 참 다행이야,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이래.”

 나는 맥주캔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입을 연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오늘은 여러모로 평소와는 다른 날이었다. 우선 나는 평소보다 늦잠을 잤다. 옆방 남자가 출장이라도 가는지 알람을 새벽 다섯 시에 맞춰둔 때문이었다. 고시원에서 알람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 방안에서 전화를 받는 것과 같은 정도의 몰상식한 행동이다. 그러나 사람의 의지만으로 이 복잡한 세상을 때 맞춰가며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하기에 어느 정도는 용인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알람은 반드시 첫 울림이 있을 때 총알처럼 벌떡 일어나 끄는 것이 이 바닥의 원칙이다. 그런데 오늘 새벽, 일어나-아침이다-일어나-아침이다-일어나-아침이다-일어나-아침이다, 규칙을 어긴 외침이 다섯 번째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잠이 반쯤 깬 채 벽 쪽을 째려보았다. 그리고는 아이 씨! 하고 외쳐주었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일어나-아침이다-일어나-아침이다,가 거의 열 번을 향해가고 있었을 때 짜증이 난 나는 저도 모르게 일어나-아침이다,라고 외치고 말았다. 그러자 알람이 꺼졌다. 기분이 묘했다. 이러다 내가 알람이 되겠어,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잠을 청했다. 옆방 녀석은 오늘따라 유난히 부산스러운 소리로 나를 괴롭혔다.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라니까,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잡아당겼다.  


 점심때가 지나 눈을 떴다. 찬물을 한 컵 들이키려고 부엌으로 나갔다. 방문을 열자 시큼한 냄새가 나를 맞았다. 그동안 그토록 냉장고를 화나게 만들었던 오래된 김치를 211호 여자가 일회용 비닐장갑을 낀 채 꺼내고 있었다. 그놈의 김치 때문에 항상 속에 가스가 찬다고 화를 내던 냉장고에게는 너무나 다행한 일이었다. 물을 마시고 싶었던 나는 주춤주춤 냉장고 곁으로 다가갔다. 내가 냉장고에게 볼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그녀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는 얼른 우유팩을 꺼낸 뒤 나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는 오래된 우유를 개수대에 버렸다. 참을 수 없는 냄새가 났다. 오래되어 몽실몽실 덩어리가 된 것들이 무슨 응어리라도 진 것처럼 울컥울컥 소리를 내며 세상으로 나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버려졌다. 그녀는 코를 막지도 않고 천천히 우유를 흘려보냈다. 오래되어 먹을 수 없는 것들을 버리는 동작이 슬프고 나른했다. 나는 찬물을 꺼내 마시고 정신부터 차렸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바퀴 하나가 빠진 빨간 슈트케이스를 들고 버스정류장에 211호가 서있었다. 우리 고시원은 여자 구역과 남자 구역이 나누어져 있고 화장실도 남녀용이 따로 있었지만 부엌과 세탁실만은 공통으로 사용해야 했다. 나는 부엌 앞에 사는 바람에 자주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공용밥솥에서 푼 말라비틀어진 밥을 냄새나는 김치에 자주 비벼먹었다. 나는 아는 척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고시원을 떠난다는 것이 고시에 붙는다는 것은 아니니까. 그녀는 아마 집으로 들어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한동안 손님이 오면 숨는 일을 하거나, 변두리 고시원으로 들어가 친구들과 연락을 끊을 것이다. 어쩌면 인터넷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모집한 후 번개탄을 사러 갈지도 모를 일이다. 계단에 서서 자기소개서를 신경질적으로 찢어 날리던 여자는 그렇게 떠났다. 나는 그녀가 갈기갈기 찢어버린 자소서 파편에 기꺼이 맞아준 적이 있었다.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 하지만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슬리퍼를 끌며 버스정류장을 그냥 지나쳐 왔다. 냉장고는 더 이상 시큼한 가스를 내뿜지 않았다. 나는 맥주를 냉장고에 넣었다. 211호가 떠난 후 냉장고는 평소보다 기운이 없었다. 툴툴툴 힘겹게 모터 돌리는 소리가 내 방안까지 들렸다.   


 “그래서?”

 냉장고는 서론이 길다는 투다.

 “알았어, 기다려.”

 나는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211호의 잔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고시원은 떠난다고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전쟁터에서 전우가 죽어 나가는 것을 본 것처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나는 그녀처럼 용감하게 세상과 싸우고 쓰러질 능력도 없었다. 나는 그러니까 수험생이라는 이름으로 고시원이라는 벙커에 숨어 살고 있는 것이다. 최전선에 뛰어드는 것은 어쨌든 두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비겁하더라도 벙커에 숨어 지내다 보면 언젠가 전투가 끝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럼 슬그머니 세상 밖으로 나가면 그만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세시가 넘어있었다. 나는 직업적 양심 때문에 도서관에 가야할까를 잠시 고민했다. 책을 펴고 자리를 잡으면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텐데, 가봐야 몇 시간 공부 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냥 오늘 하루는 공치기로 했다. 도서관에 가기를 포기하고 나자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나는 양심의 가책을 줄이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공무원시험 준비 카페에 들렀다. 스터디를 구한다거나 같이 도서관에 다닐 사람을 구하는 게시물이 몇 개 올라와있었다. 번개를 하자는 게시물도 있었다. 나는 제목만 한 번 씩 읽고는 창을 닫았다.


 늦잠을 잔 탓에 그녀에게 인사가 늦었다. 나는 서둘러 블로그에 접속했다. 밤새 새로운 포스트가 몇 개 올라와 있었다. 은주 생일파티에 다녀왔어요,라는 제목 아래 하늘거리는 연두색 쉬폰 원피스차림의 그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왕관모양의 귀걸이를 한 그녀는 음식이 수북이 담긴 커다란 접시들을 배경으로 앉아있었다. 뽀얗고 몽환적인 사진 속의 벽지, 샴페인 잔을 들고 있는 젊은 아가씨들, 헤어제품으로 멋지게 머리를 매만진 남자들, 어깨가 반쯤 드러나는 꽃무늬 옷들, 반짝이를 잔뜩 붙인 고깔모자, 빨간 장미꽃다발,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려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온 아르바이트생의 제복……. 나는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다. 사방에서 폭죽이 팡팡 터졌다. 나는 갑자기 눈을 뜨게 된 장님처럼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러다가 ‘번개’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순간, 나는 마른 고시원 천장에서 벼락이 치는 소리를 들었다. ‘오늘 밤에는 카페 번개에 가요~.’라니? 나는 재빨리 창을 하나 더 열어 공무원시험 준비 카페에 다시 접속했다. 그리고는 아까 지나쳤던 ‘번개’를 클릭했다. ‘요즘 공부가 너무 힘드네요. 머리도 식힐 겸 같이 술이라도 한 잔 하는 게 어떨까요?’라는 글 아래 줄줄이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익숙한 아이디 하나를 찾아냈다. 살로메! 하하, 고시원에 있다는 사실도 잊고 나는 크게 웃었다. 동시에 나는 망설였다. ‘그녀의 화사한 세계와 나는 어울리지 않아.’와 ‘아니야 그래도 용기를 내는 거야.’라는 두 문장이 천사와 악마처럼 번갈아가며 한동안 내 마음을 저울질 했다.   

 

 밤 7시, 우리는 시내의 한 술집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대충 열댓 명이 모였다. 그녀 말고도 두 명의 여자들이 나왔다. 그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였다. 그녀는 눈부셨다. 가늘고 긴 팔에 영어책을 끼고 그녀가 나타났을 때 나는 외국어가 되고 싶었다. 알파벳이 된다면 그녀의 입술이 매일 나를 발음해줄까? 그녀에게 눈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나는 목부터 벌겋게 달아올랐다.

 술자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오늘의 모임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동물의 왕국 짝짓기 편>이었다. 한 명의 암컷을 차지하려는 능글맞은 수컷들의 때깔 뽐내기. 서로의 닉네임을 확인하고 새로 나온 교재 이야기로 활기를 띠던 모임은 그녀가 들어서자 순식간에 본질이 변질되었다. 그녀의 하늘거리는 짧은 치마가 봄을 몰고 오는 순간, 서로 자리를 내주려고 일어서는 남자들 사이에서 나는 갑자기 성별이 도태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동안 그녀와의 만남을 위해 혼자 준비했던 그 많은 말들은 다 휘발성이었는지 머리에서 이미 증발하고 없었다. 그녀의 앞자리 혹은 옆자리 같은 명당을 두고 경쟁이 벌어지는 것을 구경만 하며 나는 그녀에게 말 한마디 걸어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구석에 박혀있었다. 찬밥이 된 다른 두 여자들은 애써 모른 척 했지만 결국 떨떠름한 얼굴로 일찍 자리를 떴다. 명당경쟁에서 밀려난 몇몇은 열시가 넘기도 전에 이런저런 핑계로 역시 자리를 떴다. 나는 처음부터 열외였으므로 아무도 내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남들이 웃으면 따라 웃었지만 대체로 아웃사이더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조용히 있었다. 모임은 자리를 옮겨 노래방으로 2차를 갔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다 사랑해, 사랑해,를 외치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안 그래도 존재감이 없던 나는 왠지 더 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사이 희망이 없는 것을 안 몇 명이 빠져나갔다. 우리는 자정이 갓 넘은 시각에 다시 3차를 위해 술집으로 향했다. 3차에 이르자 비로소 대결구도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집요하게 그녀의 옆자리와 앞자리를 차지하던 두 녀석이 노골적으로 경쟁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와 그 둘을 제외하고 같이 3차까지 따라온 세 명의 남자들은 단지 미련을 버리지 못한 부류에 불과했다.


 그녀는 은근히 남자들의 경쟁을 즐기는 것 같았다. 누군가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긴 생머리를 슬쩍 뒤로 넘겨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때로는 인증샷을 찍으려는 이들을 향해 무거워 보이는 인조속눈썹을 치켜뜨기도 했다. 나는 자주 물을 벌컥벌컥 마셔야 했다. 경쟁구도의 정점에 남은 두 명의 수컷 중 한 명,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질기게 수작을 부리는 남자는 고슴도치처럼 머리를 세우고 스키니 진을 입었다. 한눈에도 좀 놀아본 티가 났다. 그녀의 옆자리를 고수하는 남자는 좀 더 범생이처럼 보였다. 그쪽도 범생이 특유의 하면 된다,는 근성 하나는 끝내줬다. 그는 고슴도치의 노골적이고도 노련한 구애행위에 자주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결코 목소리를 높이거나 과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대신 범생이는 은근슬쩍 자신이 가진 스펙을 자랑했다. 예컨대, 이번에 토익이 만점이 나왔더라고요, 현아씨 영어공부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런 식이다. 아 참, 그녀 살로메의 세속적인 명칭은 현아다, 김현아. 그러면 고슴도치는 지지 않고 아버지의 벤츠와 청담동 빌딩을 힘주어 발음했다. ‘청담동’과 ‘빌딩’이라는 단어에서 그녀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그녀는 활짝 웃는 얼굴로 술잔이 비었네요, 하며 우아한 동작으로 고슴도치에게 술을 따랐다. 그 장면에서 그만 범생이가 이성을 잃고 말았다.


 범생이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자신의 학벌자랑에 돌입했다. 여긴 품위가 없어, 내가 신촌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이런 술집 쳐다도 안 봤는데, 이렇게. 이 말에 그녀가 옆자리 범생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혹시 의대? 이러면서 술병을 들었다. 곧 따라줄 기세다. 그러자 범생이가 아까와는 달리 다소 머뭇거렸다. 아, 나는 철학을…….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때를 놓치지 않고 고슴도치가 일침을 놓았다. 그런 과가 아직 남아있나? 거기 의대는 아버지 빽만 있으면 된다던데. 요즘 누가 철학과 따위를 다니려고 등록금을 내겠어?, 이렇게. 그러자 범생이가 그녀의 손아귀에서 술병을 빼앗았다. 그는 연거푸 술잔을 비우더니, 부의 대물림에 대해여, 경제적 정의에 대하여,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하여,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대학등록금에 대하여, 시간당 아르바이트 비용에 대하여, 부엉이 바위에 대하여, IMF에 대하여, 영세상인에 대하여, 불황과 여자들의 치마길이에 대하여, 칸트에 대하여,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가 A+를 받았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대하여, 역시 A+를 받은 마르크스의 <헤겔 법철학 비판>에 대하여, 그 학기 평점이 4.2였다는 것을 힘주어 말하고는 헤겔의 변증법에 대하여…… 거의 20분을 혼자 떠들어댔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효과 만점의 전략이었다. 들러리로 기회를 엿보던 3명이 완전히 나가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자리를 떴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나는 그냥 있었다. 범생이가 말을 시작한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그녀는 화장을 고치고 왔다. 그래도 범생이가 입을 닫을 생각을 하지 않자 그녀는 분첩을 열어 새로 고친 화장을 재점검했다. 오징어만 씹고 있던 고슴도치가 결국 한 손을 들어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그만! 그리고 되물었다. 빨갱이세요? 그 말에 얼굴이 시뻘게진 범생이가 벌떡 일어났다. 너는 자본론 책표지라도 만져봤어? 그는 고슴도치의 멱살을 잡았다. 이에 질세라 고슴도치도 범생이의 멱살을 잡았다. 둘은 서로 곧 입이라도 맞출 것처럼 얼굴을 맞대고 씩씩거렸다. 시끌벅적하던 술집이 갑자기 술렁였다. 먼저 주먹을 날린 것은 고슴도치였다. 범생이의 안경이 바닥에 뒹굴었다. 여기저기서 엄마를 찾는 비명이 이어졌다. 당황한 그녀는 얼른 자신의 명품백을 꼭 껴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나와 그녀는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당황해서 입이 헤벌어진 나에게 턱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이야, 멋진데!”

 냉장고는 윙윙윙 신이 난다.

 “그래서 어떻게 된 줄 알아?”

 나는 다시 맥주캔을 집는다.


 술집을 빠져나온 그녀는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녀는 별로 취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예의를 다해 댁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하고 말하며 택시를 잡았다. 그녀는 고맙다는 말로 동행을 허락했다. 택시에 타자 그녀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술을 잘 못하는데 억지로 몇 잔 먹었더니 취하네요, 잠시 정신이 깬 그녀가 말했다. 


 그녀가 조금씩 머리를 끄덕이기 시작하더니 어느 틈에 내 어깨를 점령했다. 나는 절벽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발끝이 저려왔다. 막 시험지를 받았을 때처럼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발끝에서 시작된 짜릿한 전율이 방광에 이르러서야 나는 잠들어 있는 그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헤벌어진 입술과 두꺼운 아이라인이 그려진 얼굴, 찍은 문제가 1번으로 나왔을 때처럼 순식간에 요의가 사라졌다. 대신 물리학의 법칙에 따라 점점 어깨가 뻐근해졌다. 그녀의 머리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현실의 무게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판타지 소설 속 여신 살로메는 더 이상 매끈한 2차원 모니터 속의 여인이 아니었다. 각도와 포토샵으로 빚어진 모니터 속의 요정은 현실에서는 고름이 꽉 찬 뾰루지가 난 턱과 털이 자라는 점이 있는 팔뚝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떨림과 당혹감이 뒤섞이는 감정의 칵테일 탓에 어지러웠다. 잔뜩 웅크리고 살아온 그동안의 세월 탓인지, 구부정한 나의 어깨를 빌린 그녀의 사랑스러운 머리통이 점차 부담스러워졌다. 곧 나는 참을 수 없을 만큼 팔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팔을 뺄 용기가 없었다. 그녀를 다시 모니터로 돌려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다. 급기야 식은땀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그녀가 확 몸을 일으키더니 한손으로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 유리창을 마구 두들겼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백미러로 쏘아보며 택시기사는 인상을 썼다. 작작 좀 마시지, 기사는 신경질적으로 차를 길가에 댔다. 내가 그녀가 차에서 내리도록 돕는 동안, 기사는 혹시나 그녀가 시트에 토하지나 않을까 매서운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녀는 내 손을 뿌리치고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건물로 사라졌다.


 한참 후 그녀는 기운이 빠진 얼굴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어쩔 줄 몰라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말없이 유흥가 골목을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가끔 멈춰서 입으로 손을 가져갔다. 나는 혹시 그녀가 다시 토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요란한 불빛과 삼삼오오 무리를 이룬 취객들이 우리를 스쳐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유흥가가 끝나는 지점에서 하나 둘 모텔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내심 엉뚱한 곳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잠시만 쉬었다가요, 그녀가 건조하게 말했다. 나는 무슨 뜻인지 몰라 눈을 껌뻑거렸다. 그녀는 그런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비틀거리며 근처의 건물로 들어갔다.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설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입이 헤벌어진 채 그녀가 모텔로 걸어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모텔입구에서 문을 어깨로 밀려던 그녀는 그만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문에 머리를 부딪쳤다. 나는 놀라서 얼른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그러자 그녀가 몸에서 힘을 쫙 빼고 나에게 체중을 실었다. 나는 한손으로 무거운 그녀의 몸을 감당하며 다른 한 손으로 가까스로 문을 열었다.


 위잉위윙위윙윙윙윙 갑자기 냉장고의 모터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왜 그래?”

 이야기에 몰두하던 나는 좀 신경질적으로 묻는다.

 “열 좀 식히고.”

 냉장고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모터를 돌린다.

 “그…… 그래서 어떻게 됐어?”

 냉장고는 열을 다 식히기도 전에 나를 다그친다. 냉정을 잃은 냉장고를 보는 일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것은 냉장고가 내 이야기에 몰두해 있다는 것이므로 나는 이해하기로 한다.                  

 모텔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그녀는 침대에 쓰러졌다. 장소가 좀 그렇기는 했지만 나는 내게도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목동과 같은 추억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양을 한 번도 쳐본 적이 없지 않은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때맞춰 그녀가 아 더워, 원피스를 훌렁 벗어버렸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스위치가 꺼졌다. 나의 순결한 별에 전원이 나갔다. 비로소 현실이 보였다. 조악한 조명 아래 맨살을 드러낸 여인, 내가 목동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상황이 동화가 될 수는 없었다. 하긴, 나까지 국어교과서에 실릴 필요는 없지. 하지만 나는 한참 동안 멍하게 제자리에 서있었다. 동화가, 꿈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는 내가 거기 서있었던 것이다. 그때, 갑자기 그녀가 내 목을 낚아챘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벗는 동안 나의 몸은 내가 느낄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로 작아졌다. 나는 그녀가 내 뒷덜미에 대고 반복했던 말들을 저도 모르게 되뇌었다. 벌벌 떨리는 다리를 가까스로 주체하며 샤워기를 틀었다. 몸이 작아지자 물줄기가 더 없이 굵고 세게 느껴졌다. 사랑해…… 거품을 내면서 나는 그녀가 속삭이던 말을 조심스럽게 한 번 더 되뇌었다. 그러자 온몸의 피가 혀끝으로 모였다 흩어졌다. 사랑해, 사랑해, 단어를 따라 나의 온몸이 심장을 향해 조여들 때마다 나는 극도의 쾌감을 느꼈다.

 몸 전체를 대충 씻고 나자 나는 다시 비누를 집어 들었다. 이미 오래전에 중력의 영향권을 벗어나 있는 몸 한구석을 경건한 마음으로 문질렀다. 나는 물리학의 법칙을 무력화시키는 나의 몸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다. 뉴턴은 물건이 부실했던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사과 따위에 집착해서 모든 것은 지구의 중심을 향한다고 할 수가 없지, 시도 때도 없이 몸이 예외를 입증하고 있는데 말이야, 암. 나는 비누를 제자리에 두고 물 묻은 손으로 마구 거품을 내며 중얼거렸다. 거품이 몸을 불릴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자주 복습하던 일본 야동이 고배속으로 돌아갔다. 이러다가 예고편만 찍고 끝나면 큰일인데, 나는 얼른 다시 샤워기를 틀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그렇게 오래도록 몸을 씻은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이러다 물줄기가 나를 다 녹여 버릴 거야, 하지만 나는 선뜻 밖으로 나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건 하나의 정화의식 같은 거야, 나는 이제 곧 남자 되는 거라고, 지금까지는 달콤한 막대사탕을 빠는 덩치 큰 소년이었지만 저 문만 열면…….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너무 오래 사탕이 다 녹아 버린 막대만 빨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대를 버려야하는 그 순간이 너무 갑작스럽게 닥친 감이 있었다. 나는 한참이나 망설인 끝에 샤워기를 껐다. 타월로 꼼꼼하게 물기를 닦고 화장실 문고리를 잡았다. 내 생애에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 쉬고 문을 열었다. 달칵,


 거기에 그녀는 없었다. 모든 것이 신기루였나? 나는 한동안 텅 빈 방 안에 그대로 서있었다.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녀의 긴 머리가, 그녀의 체온이, 그녀의 하얀 종아리가, 그녀의 향기가, 그리고 무엇보다 내 옷이! 아, 선녀가 나무꾼의 옷을 훔치다니! 나는 그녀가 누웠던 침대 위에 허탈하게 주저앉았다.


 어느새 냉장고는 차가워져 있다. 나는 온몸으로 냉기를 뿜는 냉장고를 느낄 수 있다.

 “왜?”

 나의 물음에 냉장고는 한동안 말이 없다.

 “그래서 그냥 있었다는 말이야?”

 터질 것 같은 냉기를 품은 냉장고가 묻는다. 나는 온 몸이 시리다.

 “그럼, 홀딱 벗고 쫒아가?”

 나는 퉁명스럽게 되묻는다. 그러자 퍽 소리를 내며 냉장실 문이 열린다.

 “으이구, 속 터져!”

 냉장고는 문자 그대로 속이 터진다. 쉰내를 풍기는 반찬통과 먹다 남은 식빵묶음이 와르르 쏟아진다. 나는 바닥에 나뒹구는 것들을 대충 챙겨서 다시 냉장고에 넣고 문을 닫아 준다.

 “그래도 최악은 아니었어. 내 냄새나는 팬티와 양말은 남겨두었거든.”

 이번에는 냉동실과 냉장실 문이 동시에 확 열린다. 나는 그냥 내버려둔다. 냉장고는 한참을 그러고 있다. 잠시 기다린 후 나는 조용히 다가가 문을 닫아준다.

 “나는 그거라도 남겨준 그녀의 배려에 감사하며 주섬주섬 팬티를 챙겨 입었어. 그러다가 코끝이 시큰해졌지. 그때 비로소 온몸으로 느꼈어. ‘사랑해’라는 말을 들으면 몸이 줄어든다는 걸 말이야.”

 나는 조금은 감상적이 된다.

 “어떻게?”

 냉장고는 여전히 냉랭하다.

 “평소 꽉 끼던 팬티가 흘러내렸어.”


 내 말에 냉장고는 말도 하지 못한다. 냉장고의 침묵이 오히려 귓속을 시끄럽게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냉장고를 그저 바라본다. 그때, 갑자기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보세~.’ 귀가 먹먹해지는 것 같다. 나는 주머니에서 낡은 구형 휴대전화를 꺼낸다. 딸깍 딸깍 딸깍, 통화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좁은 화면이 캄캄하다. 배터리가 다 닳은 지 오래다. 주머니에 집어넣으려는데 다시 전화 벨소리가 들려온다.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나는 환청 때문에 잠시 머리가 멍해진다. 벨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뚜벅 뚜벅……, 벨소리가 고막 속으로 걸어 들어온다. 소리는 곧 뇌까지 잠식한다. 벨소리가 날카로운 이빨로 내 머릿속 한쪽 귀퉁이부터 파먹기 시작한다.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나는 양손으로 머리를 꽉 움켜쥔 채 꼼짝하지 못한다.

 

 우리는 둘 다 한동안 말이 없다. 그렇게 한참이 흐른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냉장고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 말을 해줘. 그 말? 냉장고는 좀 놀랐는지 되물었다. 응, 그 말. 나는 냉장고의 말을 확인해 주었다. 그럼 지금보다 더 작아질 텐데? 냉장고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상관없어. 나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래? 냉장고는 잠시 망설인다. 맥주는 이미 바닥이 났다. 나는 빈 캔을 이리저리 흔들고 빈 젖을 빠는 아이처럼 입구를 빨면서 냉장고의 눈치를 본다. 이윽고 천천히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사랑해, 처음에 그것은 막 돌기 시작한 모터소리만큼이나 무언가 결핍되고 힘없고 진부하게 들린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점차 모터가 가속도를 더할수록 단어들은 음절로 해체되고 공기와 결합하여 재탄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 깊고 의미심장한 것으로 다가온다. 물론 나의 몸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리 줄어든다. 갑작스럽게 몸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몸이 발작적으로 반응한다. 전기충격을 받은 것처럼 부르르 떨리며 자주 중심을 잃는다. 동시에 나는 온몸을 조여 오는 묘한 쾌감에 눈을 감는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나는 심장을 쥐어짠다. 갑자기 모터소리가 멈춘다. 그만할까? 냉장고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 아니 아니, 아직 멀었어. 하지만 벌써 김장용 무만큼이나 작아졌잖아? 이런 어중간한 크기가 오히려 불편해. 나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무슨 성감대가 심장에 있나봐, 사랑해, 사랑해, 냉장고는 틈틈이 내 눈치를 살피며 계속한다. 엄지손가락만큼 작아졌을 때 나는 문득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동시에 나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다. 하하하하하하하하, 하, 하, 그것은 극한의 고통과 궁극의 쾌락에 접한 인간이만이 보일 수 있는 표정인 것이다. 괜찮아? 냉장고가 갑자기 멈추며 묻는다. 더, 더. 나는 자극에 취해 머리가 멍해진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나는 어느새 개미만큼 작아져있다. 이제 된 것 같아. 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개미 오줌만큼이나 눈물을 쏟아낸다. 몸이 개미만큼 작아지고서야 개미 오줌만큼이 얼만한 양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기분이 어때? 모든 게 다 너무 크지 않아? 피로와 연민이 섞인 목소리로 냉장고가 묻는다. 세상은 내게 늘 너무 컸어,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때 우리는 희미한 발소리를 듣는다. 어쩌지? 나는 개미만한 목소리로 냉장고에게 묻는다. 어쩌기는? 빨리 안으로 들어와! 냉장고는 슬며시 냉장실 문을 열어준다. 개미만큼 작아져 바라보는 냉장고 안은 별천지다. 나는 문득 한때 읽은 소설 ‘동정 없는 세상’의 한 대목을 떠올린다. ‘몇 십 센티만 더 들어가면 젖과 꿀이 흐르는, 기쁨으로 가득 찬 세상이 나타날 것이다.’라고 했던가? 냉장고 안에 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젖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소설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들어가도 되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발소리가 확연히 가까워진다. 냉장고가 찬바람을 풍풍 뿜으며 재촉한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다. 서둘러 모텔 알바생에게 빌린 옷을 빠져나온다. 문득, 알바생이 옷을 던져주며 하던 말이 귓가를 스쳐간다. 그 여자 오늘 또 한 건 했군. 그 여자는 왜 꼭 옷까지 챙겨가나 몰라. 그냥 깔끔하게 지갑만 챙기지. 주말에도 다른 놈 데리고 올지 모르니 꼭 빨아서 내일 다시 가져다주세요. 나는 울컥한다. 어느새 냉장고 문 바로 앞, 나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냉장고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러나 워낙 작아서 한 발자국을 떼어봐야 그 자리다. 나는 가까스로 발자국 소리가 냉장고에 바짝 다가오기 전에 냉장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산더미처럼 쌓인 반찬통과 먹다 남은 음식들 사이에서 숨부터 막힌다. 개미로 사는 것도 쉽지는 않겠군, 한숨이 절로 난다. 맨 안쪽으로 들어가면 공간이 좀 있어, 냉장고가 속삭인다. 참으로 속 깊은 냉장고로군, 나는 까마득한 안쪽을 바라보며 투덜거린다. 그때다. 쿵, 소리를 내며 누군가 온몸을 부딪치는 바람에 나를 위해 살짝 열어둔 냉장고 문이 쾅 닫힌다. 나는 너무나 놀라 거대한 식빵 부스러기를 잡고 바들바들 떤다. 조금만 늦었어도 냉장고 문에 끼어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 정말 이젠 냉장고도 날 무시하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를 치냐? ”

 익숙한 목소리다. 옆방놈, 이 자식은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야. 나는 안심하고 빵 부스러기를 놓아준다. 그리고 다시 안쪽으로 향한다.

 “돈 때문에 날 버리고 그놈한테 갔으면 잘 살아야 할 거 아냐! 왜 남편 출장 갔다고 날 보자고 그래?”

 못난 놈, 나는 혼자 중얼거린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린다. 자세히 들어보니 익숙한 멜로디다. 예스터데이 올 마이 트러블 씸 쏘 팔 어웨이, 발음하고는. 아무래도 혓바닥에 버터를 좀 발라줘야 할 것 같다. 노래가 멈춘다.  

 “또 왜 못 잊겠다고 울고 난리야! 난리냐고!”

 그는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른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이 뒤집어 지고야 만다. 아 정말,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라니까.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려는데 쿵! 쿵! 쿵! 온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진동이 온다. 한동안 조용히 있던 냉장고 모터가 갑자기 윙,윙,윙, 돌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야? 요즘은 왜 이렇게 나를 찾는 인간들이 많지? 난 너무 인기가 많아서 탈이라니까! 호호호.”

 냉장고가 과장된 목소리로 떠들어댄다.

 “내가 술 좀 마셨다. 왜? 냉장고면 다야?”

 단단히 취했나보군, 나는 내 일에나 집중하기로 다짐한다. 

 “아휴~ 술 냄새~ 그러다 허리 꺾어지겠어. 이제 첫인사는 그만하면 됐으니까 이리와 앉아봐.”

 냉장고의 코맹맹이 소리에 나는 소름이 확 돋는다. 잘들 논다, 나는 갑자기 주변에 있던 과자부스러기를 발로 걷어찬다. 윽, 발이 엄청나게 아프다. 나는 욱신거리는 발을 잡고 한 발로 깡충깡충 제자리 뛰기를 한다. 다시 한 번 쿵 소리가 난다. 나는 아픈 발도 잊고 멈춰 선다. 다행히 이번에는 냉장고가 아닌 밖에서 난다. 아마 폴더형 휴대폰 접히듯 절을 하고난 녀석이 바닥에 주저앉은 모양이다. 나는 피식 웃는다. 왜냐? 나도 저렇게 냉장고랑 말을 텄으니까.     

 “아까 술집에서 뉴스 보니까……”

 이야기가 갑자기 중간에 끊긴다. 나는 부지런히 적당한 구석자리를 탐색하며 귀를 기울인다.

 “이야기 하다말고 자는 건 또 뭐야?”

 냉장고가 투덜거린다. 나는 주워온 빵부스러기들을 이빨로 갉아서 네모나게 만든 후 그것들을 벽돌처럼 쌓기 시작한다.

 “어떤 여자가 모텔 창문을 테이프로 막고 연탄을 피워 자살했다는군.”

 잠시 잠이 깬 남자가 중얼거린다.

 “저런…… 쯧쯧.”

 냉장고가 혀를 찬다.  

 “그 여자가…… 가지고 온 바퀴가 하나 밖에 없는 빨간 여행가방 속에는……”

 벽돌을 쌓던 나는 깜짝 놀라 일손을 놓고 냉장고 벽에 귀를 바짝 댄다.

 “다 채우지 못한 이력서가 유서대신 들어있었……”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남자는 결국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다시 잠이 든 모양이다.

 “아…… 아…… 아아아아아……”

 냉장고는 탄식한다. 그때, 섬광 같은 것이 이나 싶더니 갑자기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멈춘다. 냉장고에 전원이 나간 것이다. 뭐야 이런 중요한 때에, 나는 투덜거리며 하던 일을 중단하고 구석에 쪼그리고 앉는다. 이내 등이 축축해온다. 빵으로 만든 벽돌들이 눅눅해온다. 싱싱해보이던 야채가 시들시들 풀이 죽는다. 이윽고 나의 온몸이 젖는다. 빵으로 쌓은 나의 성이 무너진다. 냉장고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성애 녹은 물이 마치 눈물 같다.

 “아, 또야?”

 낮선 목소리가 감상에 젖어있던 나를 확 깨운다. 나는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공기 중으로 미묘한 파장이 일렁이는 것이 느껴진다.

 “잠 좀 자자, 진짜. 온도가 맞아야 겨울잠을 자지.” 

 다른 목소리다. 전원이 나간 냉장고 안에서 나는 얼어붙는다.

 “누가 또 뚜껑 열리게 했나보지.”

 이번에는 또 다른 목소리다.

 “뭐, 한두 번 겪는 일인가? 뚜껑도 열렸겠다, 이참에 동굴로 쳐들어가자고.”

 여러 가지 목소리가 섞여 우우 소리를 낸다. 냉장고 안쪽 벽으로 몰려드는 발소리가 들린다. 구석에 서있던 나는 순간, 우르르 몰려드는 무리에 떠밀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 사람들이 웅얼웅얼 무슨 주문 같은 것을 외운다. 어,어, 내가 외마디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시커먼 벽이 마치 젤리처럼 말랑해지더니 내 발을 확 잡아끈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바람에 나는 눈을 뜰 수가 없다. 둥둥 북소리가 들린다. 이어 나른한 피리소리가 나를 반긴다. 피리소리 사이로 짤랑짤랑 방울소리 같은 것이 끼어든다. 실눈을 뜬다. 사방이 번쩍거린다. 한 떼의 무희들이 반라로 다가온다. 길고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손놀림으로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긴다. 살!로!메! 수많은 그녀, 살로메가 한꺼번에 머리를 쓸어 넘긴다. 그때다. 나를 알아보았는지 베일 뒤에서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나의 살로메가, 그것도 떼로 몰려든다. 엉덩이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보석이 빨갛게 흔들린다. 다리가 저려온다. 아니, 젖어온다. 내 코앞에 바짝 다가온 그녀가 내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잡으려는 찰라, 그녀가 갑자기 내 목을 조른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나는 허우적거리다 그만 그녀의 얼굴을 가린 베일을 확 잡아당긴다. 그러자 211호 여자와 눈이 딱 마주친다. 나와 마주친 211호 여자의 얼굴이 얼어붙는가 싶더니 이내 이력서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흩날린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문득, 뒤를 돌아본다. 벽 너머 냉장고에는 지금쯤 전기가 들어왔을까?


 아, 그런데 주문이 대체 뭐더라?    





 * 모리기아나 -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나오는 아주 영악하고 똘똘하면서 야심찬 하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최형심 약력 : 2008년 『현대시』등단. 2009년 아동문예문학상 수상. 2012년 한국소설신인상 수상. 현재 웹진 『시인광장』편집장.

휴대폰 : 010-4314-5114

이메일 : ir48@naver.com

주소 : 133-850 서울시 성동구 천호대로 400 신창 비바패밀리 4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