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빨래는 말라야 한다

 

 

필리핀의 우기(雨期)는 수많은 태풍을 만들어

북녘으로 올려 보내고 비를 연신 만들어냈다

휴일에도 비 내리지만 여자들은 빨래를 했다

많은 여자들이 세탁기도 없이

흐르는 강물이나 수돗물로 빨래를 했다

 

우기에 사람들은 늘 가난에 젖어있었고

여자들은 마르지 않을 빨래를 널었다

빨래는 줄에 매달려 햇볕을 기다렸지만

해는 나오지 않고 젖어만 갔다

사람과 모든 것들 구름 안에 똬리를 틀었다

 

구름의 벌레들은 빨래 속에서 번식되었고

무직의 남자들은 길가에 퍼질러 앉았다

구름만 마르지 않을 물감을 뿌리며

비를 주제로 한 노래를 되뇌었다

 

그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비가 내렸으며

빨래에 대한 걱정은 원시부터 사라졌다

우기엔 체념처럼 빨래는 늘 젖어있어야 했다

누가 빨래는 말라야 한대도 상관 안했다

 

 

 

 

 

성탄절, 적도에 눈 내리면

 

지구 생성 후 처음으로 적도지방에 눈이 왔다

망고나무와 야자수 나무에도 꽃들 위에도

겨울에 벼가 자라는 논에도 눈이 내렸다

사람들은 갑작스런 눈에 어쩔 줄 몰라 했으며

간밤에 내린 눈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거리엔 시체가 온 곳곳에 쌓여 난리다

완전한 생지옥이다

 

크리스마스고 뭐고 다 끝장 이었다

겨울에도 벼와 많은 과일이 자라났으나

한 번의 눈으로 식량들이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은 집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거리에는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몇 명의 아이들만이 옷을 두껍게 입고

눈이 신기한 듯 뭉쳐보고 눈싸움도 했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특별히 시험에 들게 한

하나님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거리에 걸어 두었던 장식을 떼어내고

다시는 눈 오는 성탄절을 원하지 않았다

 

성탄절 후 다시 눈은 내리지 않았으며

얼마 후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연인과 해변을 걸었다

 

 

충남 서천 출생, 200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3년『시와상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내 몸속의 지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