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꽃잎 그리고 허기

 

진 란

 

 

이별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에는

이미 그대의 등이 차가워지는 쯤이다

이별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혼자가 아니다

등을 밀어 보내고, 그 그림자까지 다 밀어 보내고

둘이 함께 숨쉬던 자리

둘이 함께 피었던 자리

둘이 함께 뜨겁던 자리

그 꽃자리에 바람만 오갈 때

비로소 홀로 서는 것이다

비로소 외로운 것이다

비로소 완전한 이별이 끝난 것이다

그리고 꽃잎이 피었던 자리

그 꽃잎이 진 자리 들여다보면서

환하게 피었던 순간의, 날숨과 들숨에 대하여

하늘로 돌아간, 이후의 깊어짐에 대하여

고요히 땅으로, 깊이 뿌리를 묻는 중이다

 

배가 고프다

아직은 습작 중인

 

 

 

 

 

 

 

번지점프를 하다-이은주*

 

 

 

 

아리안의 한 왕족

그녀의 눈동자는 푸르게 젖어 있었네

눈부신 꽃송이의 배경 그 꽃 안으로

남모르는 슬픔이 일곤 했었지

눈을 뜰 수 없는 영혼의 윤슬, 그 깊이에

누구도 들여다 볼 수 없었던 그 터널에,

눅눅하고 무겁고 지친 그림자를 부려놓고

어느 날 아슬한 허공에 올라

스물 다섯의 얽혔던 옷을 벗어버렸네

영혼을 자아서 그네를 걸었네

황량한 크레바스에 마지막 꽃물을 찍어

우울한 자음 모음을 남겨놓고

그 여자 한 줄의 그네를 탔네

아무도 알지 못하리

탯줄에 매달려 비상하는

나비의 꿈에 대하여

 

그 여자 다시는 길 위에 서지 않았네

 

(그녀의 우울은 또한 나의 우울이다

그녀를 따라간 우울은 돌아오지 말아라)

 

 

 

*이은주: 배우 '! 수정'(2000), '번지점프를 하다'(2000) 등 다수의 작품이 있음

2005 2 22일 돌연사 함

  

 

 

진 란

전북 전주 출생

2002년 계간《주변인과 편집동인으로 작품 활동, 편집위원 편집장 역임

2009년 월간《우리》편집교정위원

2012년 계간《시와소금》기획위원

시집 『혼자 노는 숲』

이메일 ranigy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