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꽃향기 날릴 때

 

권순자

 

 

무르익은 봄빛이 왔네

봄빛 따라 고양이 만나러 갔네

누가 버린 건지

잃은 건지

보호센터에서 마주한 고양이

겁이 묻어있었네

 

야생은 오래 전에 탈색되었나

쭈뼛쭈뼛 새 주인을 따라

사과꽃향기 가로질러 작은 집에 왔네

겁이 나서 우는 것도 잊어버렸나

사랑을 잃어버려서 자꾸 쭈뼛거리나

수척한 몸에서 털이 자주 빠지네

 

사과꽃향기 진해지면

고양이 눈망울 붉어질까

잃어버린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길 떠나버린 꽃잎들

허공에서 뱅뱅 돌다 다시 올까

 

봄은 아린 고양이 눈에 머물다가

꽃무늬 치마폭에 사과꽃씨 심는지

젖은 바람과 펄럭이네

 

 

 

바람의 혀

 

불안한 소리들이 달려온다

나무들의 몸부림이 소란하다

 

흔들리며 휘어지는 것들의 아우성

무성한 잎들이 후드득

 

바람의 혀는 날카롭고 빠르다

 

바람의 거친 발소리에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가여운 몸들

 

쓰라린 후회는 아픈 유산이다

가슴에 박힌 가시

하얗게 말라가는 잔가지들

흩어져 날리는 이파리들의 신음

 

키워준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건

가슴에 허공을 하나씩 키워가는 일

 

그러나 나무의 어깨는 단단하다

흔들리더라도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바람의 혀가 나른한 유혹을 뿌린다 해도

말발굽처럼 굽이치며 후려친다 해도

진실은 어둠에 매몰되지 않는 힘을 지녔으므로

매서운 갈퀴에 아물지 못하는 상처는

정신을 깨우는 쓰리고 쓰린 약이므로.

 

 

 

경북 경주 출생. 2003년 《심상》신인상. 시집『우목횟집』『검은 늪』『낭만적인 악수』『Mother's Dawn』등이 있음. 시인통신 동인.

주소: 158-837 서울시 양천구 신월2동 475 서울가든아파트 101동 803호

이메일: skjm70@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