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임영석

 

 

이 세상 슬픔이란 슬픔, 기쁨이란 기쁨

바다에 가득 채워 놓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허공이 더 높고 넓구나.

 

철썩철썩 제 가슴 물어뜯는 것이라 생각했던 파도

갈매기의 발목을 제 가슴에 묶어 두려고

허공을 잡아당기는 힘인 줄은 몰랐다.

 

무엇이 가득하다고 바다가 되는 것은 아니구나,

가득함을 품어주는 허공이 바다였구나.

 

 

희망록(希望錄)

 

달팽이는 더듬이로 어둠을 더듬으며

별빛까지 가겠다는 제 몸을 잠시 쉬며

만삭의 부처바위를 물꾸럼이 바라본다

 

천 년 전 입덧하여 배만 부른 부처바위

한 걸음도 꿈쩍 않고 서 있는 모습에서

기어서 가는 달팽이 더 느리게 기어간다

 

토끼가 껑충껑충 얼마나 살았는가

사람이 성큼성큼 몇 년을 살았는가

기거나 걸어서 가나 한 세상은 똑 같다

 

 

임영석_ 1961년 충남 금산 출생, 1985년 『현대시조』 천료, 시집으로 『이중 창문을 굳게 닫고』 ,『사랑 옆서』 ,『나는 빈 항아리를 보면 소금을 담아 놓고 싶다』 ,『어둠을 묶어야 별이 뜬다』 ,『배경』 ,『고래 발자국』_(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지원 발간 시집) ,『초승달을 보며』_(2012년 강원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지원 발간 시조집) 있고, 계간 스토리문학 부주간, 2011년 제1회 시조세계문학상 수상, (주) 만도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