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 소

 

권 홍 열

 

 

바람은 샛강물이 흘러가는 좁은 물길을 따라 산기슭을 스치며 큰 강으로 떠나야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율동을 타지 못하는 바람은 고달프다. 어느 때는 느리고 여리게 춤추는 듯이또 어떤 때는 빠르고 강하게 고저장단을 맞추며 앞으로만 날아가는 것이 바람의 길이건만 어느 때부터인지는 몰라도 바람은 율동을 타지 못했다. 때로는 좀 더 강한 힘으로 한 떼의 온기를 담은 무리를 이끌고 줄달음쳐 달려가고 싶으나 앞길을 꽉 막은 철벽을 넘기에는 힘겹기는 마찬가지였다. 태풍이라고 일컫는 강한 바람만이 그 철벽을 넘을 수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바람길 언저리에 옹송거리며 떨고 있는 풀꽃들이 추운 겨울도 아닌데 으스스 몸을 움츠리는 것은 우뚝 선 대단지 아파트의 콘크리트벽이 흐름에 혼돈을 주어 수천년을 거슬려 온 바람길에 자리잡은 황토색을 드러낸 개발단지 때문이었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인간들이 좀 더 안락을 누리기 위하여 환경이 파괴되어지는 것이 이제는 통상의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칙칙한 공기가 가슴을 누르는 느낌이다.

강을 사이두고 반대편에는 대조적으로 청보리 밭 둔덕비탈에 달맞이꽃이며 망초꽃이 별로 잘나지도 못한 얼굴을 서로 시샘하며 키 자랑이라도 하는 듯 삐쭉 자라 올랐다. 그 옆에 어딘지 모르게 서로 닮은 쑥부쟁이며 구철초가 작은 키를 뽑아올리려고 하늘을 향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옛적에 바람은 언덕에서부터 아래로 이어지는 갈참나무가 듬성한 활엽수림을 지나서 낙엽송이 미끈하게 자리한 우듬지부터 선택의 여지없이 큰 강으로 향했지만 반대편 산등성이가 깍이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부터는 그 방향이 껵이었다.

그 대신에 잘 개발된 대단지 아파트가 단장된 모습으로 도시의 모습을 대변했다. 그 때문인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밀려난 철 지난 바람이 심술을 부리곤 했다.

짧은 봄에서나 간간이 불던 북서풍의 방향이 우측으로 틀어진 것은 여름이라는 것, 계절은 봄인데 그렇게 철 이른 여름으로 치달아 더운 느낌이다.

날씨는 맑고 청명한데 공기가 혼탁한 것이 왠지 축쳐진 기분이다.

남자는 청보리 밭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구릿빛으로 탄 남자의 피부와 이마에 굵게 자리잡은 잔주름이 진 얼굴은 뚜렷한 윤곽을 이루어 젊었을 때는 상당한 미남형의 얼굴인듯 하다. 꽉 다문 입과 코로 이어지는 인중에 가느다란 선이 그어진 것으로 보아 고집스런 모습은 어쩔수 없다.

먹고 살기 어려울 적에는 청보리가 누렇게 익을 때를 기다린 배부른 공상도 했을 터, 쌀로 주식이 바뀐지 오래된 지금에 그런 상상은 아닐 것이고 남자의 눈길은 청보리 밭을 줄곧 응시하고 있었다.

남동풍을 탄 바람이 빠르게 스치듯 지나가자 하늘거리는 푸른 잎이 하얀 선을 타고 물 흐르듯 일렁이며 쓰러진다.

‘청보리의 물길, 그래, 저것이 물길인거야. 영원으로 가는 물길.....’

남자의 마음 속에 청보리가 흘리는 바람결이 물길로 변해 역광이 가져다주는 신비로움으로 은은하게 초록으로 물든 청보리 밭에 녹아내렸다.

어디에도 붙잡아 둘 수 없는 바람이기에 잔물결을 이루는 청보리의 일렁거림을 보면서 남자는 호수에서 깨어지는 물결과 대조해본다.

‘저건 호수에서 일렁이는 푸른 이파리, 그래 그때 축제장에서도 이런 물결이었지......’

바람결에 일렁이는 잔물결은 분명 넓은 못이나 호수에서만 볼 수 있을 터였지만 청보리 밭에서도 일고 있었다. 투명한 햇빛이 녹색과 만나 이루어지는 만남의 조화가 바람에 의하여 수만 가지로 변화를 부리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래 바람결을 따라 가야겠지, 길다면 긴 인생 후회없게 살았지. 떠난다는 건 다시 만나기 위함이지......’

남들이 알 수 없는 이상한 말을 뇌이며 남자는 옛 기억을 더듬었다.

순간 기억 저편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청보리 밭을 일렁이는 은물결을 타고 넘어왔다.

‘지평선 청보리 축제’ ‘자연과 만남의 광장’라고 적힌 하늘에서 아래로 두가닥 길게 늘어뜨린 거대한 애드밸룬 아래에 사람들이 개미떼가 꼬리를 물고 이동하는듯 가물거렸다.

오후의 번득이는 역광이 스치는 곳에 수를 셀 수 없도록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청보리 축제장으로 완만한 곡선을 따라 길게 줄을 이었다.

축제장이 원래 사람들의 집합장소지만, 자연과 어울려 함께 하려고 하는 독특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담긴 축제장은 더욱 많은 사람들의 집합장소였다.

멀리 삥 둘러쳐진 산과 잘 어울린 초록의 향연에 마음을 열어두고 사람들은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이름도 색다른 녹색 축제의 정경을 마음껏 눈에 담았다.

먼 곳으로 부터 불어온 어디에도 머물기를 거절하는 바람이 부드럽게 청보리를 흔들었다. 이제 갓 까칠한 수염을 얼굴에 뽑아올린 청보리의 머리가 전후 좌우로 일렁이며 반갑다는 인사를 건냈다.

푸른 대지를 쓰다듬은 녹색을 가득 담은 바람의 청량한 기운이 사람들을 누르고 넓게 퍼졌다.

어깨를 맞대고 걸어가는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 틈에서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남자의 손에 여자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찡해옴을 느끼며 옆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이 맞닿을 때마다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느껴졌다.

“참 사람도 많다. 저 사람들 중에는 우리와 같은 사람도 무수히 많겠지. 사랑이란 이름으로 목숨을 건 사람도 있을 거고, 거짓으로 참인양하면서 가면을 쓴 사랑도 있겠지. 어쨌든 사랑은 참 아름다운 거야.”

“우리와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의 사랑인데요?.”

“글쎄, 일테면 뜨거운 가슴으로 아껴주고 싶은 사랑, 불같은 열정을 태우고 싶은 사랑, 그 중간에 있는 어중간한 사랑.”

“오라버닌 어떤 사랑의 사람인데요?.”

여자가 말을 끊고 옆 사람에게로 얼굴을 돌리자, 남자의 눈길과 부딪쳤다.

“글쎄, 가슴으로 사랑을 여는 사람. 아니면, 갈망하는 눈으로 사랑하는 사람”

“피, 미지근한 사랑의 여린 사람은 아니고요.”

“미지근한 사랑은 뜨거워질 가능성이 있는 전단계 이기도 하고.”

“여유가 있어 좋겠네요.”

“여유라, 그 여유가 뜨거운 가슴으로 늘 곁에서 아끼고 돌봐주고 싶은 사랑이 아닐까. 호반우를 영원히 아껴주고 싶은 농부의 마음이랄까.”

“호반우라뇨. 그런 사람이 있었나요.?. 호씨라?.”

“그럼 칡소라고 해야할까.”

“칡소, 칡소는 옛날 우리나라 토종 누렁소를 말하는 거예요.”

“알긴 아네, 칡소를 호반우라고 부르기도 하지.”

“......”

순간 여자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칡소는 누렁소라기 보다는 얼룩소라고 해야지, 옛날 우리의 토종소가 바로 칡소였어,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라고 우리가 아는 동화 속에 나오는 얼룩소가 칡소지. 문제는 이소가 우리나라에 100여마리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거야. 축산하는 사람들이 비육우로 하기에는 수지가 맞지 않아, 축산업이 생산성 위주로 바뀌면서 칡소를 비롯한 흑우 등 토종 가축이 멸종단계에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인거야.”

“많이도 아네요. 동물 애호가 같이.”

“청보리 밭, 아니 청보리 축제장에서 우리의 또 다른 만남이네, 소민의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이대로 옆에 두고 싶은데. 이런 걸 사랑이라고 하나봐. 사람들은 때때로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 있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지. 나 역시 그런가 봐.” “그 사랑이 어떤 건데요. 사랑에 목숨을 걸 자신 있나요.”

“큐피트의 화살이 다른 곳으로 향하길 바랬지만 그러질 못한다면 그게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그런 건 현실에 비추면 꿈같은 애기지요.”

“누군가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사람들은 꿈을 먹고 사는 동물이기에 가능하단 말이지. 박힌 화살을 뽑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데.....”

“여자로 보지말고 동생으로 봐 주신다면.”

“동생이라,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어야하는 것 같은데, 만날 때마다 선이 조금씩 짧아지기는 한데 머리가 따라가 줄지......”

“역시 수학문제는 어렵지, 오라버니......”

남자는 여자를 따뜻한 품으로 세상을 감싸주고 싶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닌 것 같아 마치 어디선가 한번 만나고 또 다시 만나는 것처럼. 이런 것을 두고 인연이라 한다지.”

“인연, 그래요 아무래도 그런가 봐요. 오빠.”

“오빠라, 오라버니 보다는 듣기 좋은데. 앞으로 오빠라고 해.”

“그래요, 난 오빠가 없어요.”

“그래, 언제나 편한 오빠로 옆에 있어 줄꺼야.”

“네.”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지. 사랑은 아름다운 거야.’

남자는 혼자 미소를 지었다.

햇살이 서쪽으로 떨어져 내리고 검은색 커튼이 주위를 둘러지자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 속으로 스며들었다. 노래방으로 통하는 입구가 어둠을 가득 물고 텅빈 공간 쪽으로 입을 벌렸다.

시간만 되면 팽팽한 기운이 흐른다. 이윽고 거미줄을 친 전선이 떨린다. 신경을 거미줄에 곤두세우니 꿍꿍거리는 소리가인가하면 꽁꽁대는 발소리도 들린다. 구석에 몸을 숨긴 거미의 신경이 긴장을 한다. 암거미의 안테나가 소리의 진동을 감지하고 신경을 곤두세운다. 자동차가 사람들 곁을 천천히 지나가는 동안 눈길은 자동차의 색깔을 감지한다. 검정색을 띤 자동차가 연기푸 지나갔다. 그 안에서 운전대를 잡은 사람을 어림잡아 본다.

목표물이 거미줄에 걸리길 바라지만 좀처럼 걸리지 않는다. 기다린지도 벌써 이테가 넘었다. 아름다운 날개짓을 하던 매미도 걸리고, 여린 날개를 가진 잠자리도 걸리고, 아무런 쓸모없는 독나방도 걸렸는데, 목표물은 걸릴듯 하면서도 비껴가기 일수였다. 어쩌면 목표물이 암거미의 천적일지도 모른다.

운전대를 잡은 남자의 눈길이 짙게 썬팅 된 창문을 통하여 거미집을 훑는다. 암거미가 어딘가에 있을거라고 느낀다. 이윽고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 울려나오는 음향을 듣는다. 그리고서는 좋아하는 노래를 연거푸 불려대면서 암거미의 구미가 당기도록 유도해본다. 남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암거미의 얼굴 표정이지만 가슴이 일렁거리는 것으로 보아 생각을 무너뜨린 것인지 약간의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다.

남자는 여자를 그곳에서 만났다. 처음 만난 여자는 얼룩말 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검은색 가로 무늬가 빙 둘러 처진 가슴에서 아래로 흐르는 곡선이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때때로 연한 갈색 무늬가 있는 옷을 번갈아 즐겨 입었던 여인은 얼굴 또한 예뻐 남자는 한 눈에 여자에 빠져들었다. 얼룩말 무늬를 띤 옷을 입은 여자는 호반우같았다. 여자의 예쁜 얼굴과 어깨까지 치렁거리는 웨이브진 머리카락이 어디에도 걱정거리 같은 건 없어 보였지만 사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남자는 느꼈다. 남자만이 느낄 수 있었던 여자의 가느다란 숨소리는 여자가 혼자일거라는 것을 감 잡고부터는 연민의 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 정이란 것이 귓바퀴만 맴도는 작은 사랑이기도 하고 심장을 고동치게 하고 크게 진동하는 헐떡거림을 연속하는 피장이 긴 열정이기도 했다.

남자는 여자의 가슴을 만지고 싶었다. 사랑이란 것을 전제로 남들이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이 ‘에이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능동적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을 터였지만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판단이 서지않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여자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다. 마치 고고한 두루미인양 눈길을 아무에게나 던지지 않았다.

“이름이나 알고 지냅시다. 속이지 말고.”

“소민이라고 불러주세요”

거미집을 찾아가기를 여러 번 만에 남자는 여자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여자가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다린지 오랜만에 얻은 기회였는데 왠지 차가운 얼굴이라 더 이상은 묻고 싶지 않았다.

여자는 계절 따라 들러오는 소리에 귀를 닫고 살아온 듯 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훒는 소리나 소나기 내리기전에 일어나는 천둥소리마저도 듣지 못한 심한 귀머거리처럼 보였다.

여자는 나들목을 돌아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혼자라는 외로움을 다른 방법으로 달래고도 싶기는 해도 하늘과 땅을 이어 붙이지지 못한 듯 했다.

남자는 사랑의 가시거리내에 하나의 빈자리를 두기로 하고 여자를 잊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를 만들지 않으려고 먼 길을 돌아갔다.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감정을 억지로 접으려고 하니 삶의 비늘이 떨어져나가는 듯 했다. 그리고 다시 그 여자를 우연히 몇 번 먼발치 길거리에서 조우했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강한 꽃송이가 피어오름을 느꼈다.

‘그래 이건 우연이 아니고 하나의 인연인 거야. 어쩌면 필연인지 모르고’라고 몇 번의 우연한 만남으로 필연이란 단어를 연거푸 뇌이며 남자의 마음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거미줄에 걸린듯 자기도 모르게 거미집으로 발길을 돌리곤했다.

먼 기억의 저편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바람소리를 되새기며 남자의 눈은 길게 이어진 선을 쫓으며 빛이 부서지는 바람의 소리를 들으려고 벌써 몇 시간째 청보리밭을 보고 있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아니 혼자만이 알고 있었던 사연이 남자의 지워진 기억의 잔영을 걷어들었다.

그때 온 몸에 칡덩굴 같은 어릉어릉한 얼룩무늬를 띤 소 한마리가 잔영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 놈은 호랑이 무늬를 닮았다고 하여 호반우라고도 부르는 칡소였다. 칡소를 스쳐간 가장자리 길 언덕에는 길다랗게 이어진 금계국의 노오란 물결이 바람에 쓰러지고 있었다.

칡소는 남자가 아낀 얼룩두렁이 암소였다. 무슨 까닭인지 남자는 칡소만을 고집했다. 남자의 부인보다도 칡소를 더 아낀다고 부인이 흘리는 넋두리가 가끔 부부싸움으로 번져도 얼룩두릉이는 농기계가 농사일을 대신하고도 휠씬 오래도록 가족으로 있었다. 농사에 필요 없는 소를 팔지 않고 키운다는 무수한 핀잔에도 남자의 얼룩두릉이에 대한 애정은 변함없었다. 십수년을 함께한 얼룩두릉이가 죽고 청보리 밭머리에 묻던 날 남자는 많이 울었다.

그 이후부터 남자에게 심적 변화가 오기시작했는지 마음이 울적한 날이나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면 남자는 늘 청보리 밭을 찾아가기도 하고 잘 보이는 먼 곳에서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이 손으로, 지금까지 잘 살았지, 재물을 지킬 생명선이라.....’

남자는 손바닥을 펴고 더덕하게 굳은살로 덮흰 손바닥에 굵은 재물선과 가늘게 이어진 생명선을 바라보았다.

‘거참. 이 생명선이 끝나는 지점에 내가 서 있는 것인가.’

남자는 삶이 고달프다고 느낄 때 손바닥을 보곤했다. 손금을 잘 본다는 점장이가 ‘재물복은 있다마는 재물을 지킬 생명선이 따라주지 않네......’라고 하는 말을 우습게 생각했는데 그 말이 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혼자 빙그레 웃었다.

남자는 절룩거리는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나이가 들고는 그 왕성하던 신체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음을 노인들이 다 겪는 통례로 느꼈는데, 퇴행성관절염의 말기적 증세로 다리를 영 못쓰게 된다는 의사의 말에 삶의 의욕을 잠시 상실하기도 했다.

농사를 짓는 농사꾼에게는 건강한 신체가 요구되는데 남자의 다리는 농사꾼이 가지고자하는 욕망감의 충족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언제부터인가 다리에 이상이 있고 자식들이 농사를 그만두고 편히 여생을 보내라는 말을 건성으로 여기고 기력이 있는 한 농사일을 할 것이라 했는데 그 생각을 접기로 한 것이 불과 달포 전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제법 딴딴한 종아리었건만 삭정이마냥 가늘어진 것이 영 볼품이 없었다. 그래도 그 종아리로 무거운 등짐을 지고 논밭을 열심히 가꾸어 농촌살림으로는 제법 탄탄한 부자였었다. 젊은 시절에는 마을의 같은 또래들이 도시로 나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때는 마음의 변화가 있긴해어도 시골에서 부모 모시고 농사를 짓는 것을 보람으로 느꼈다.

농사를 버리려고 하니 낯선 풍경 속에 서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장승처럼 서 있는 자신의 존재가치가 느껴지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자존심 하나로 자신의 가치를 세우고 그것 때문에 뭇 여인들이 좋아 했고, 그 중에 한 여인을 오래도록 가슴에 두고 무척 사랑하기도 했다.

“올해도 또 농사를 짓는구먼. 안 짓는다고 하고서는.”

지나가던 정노인이 남자의 뒤통수를 보면서 말을 던졌다.

“누구여 돌반이 아니여. 땅 파먹고 사는 넘이라 그게 어디 잘 되는감, 아무래도 다리 때문에도 접어야 겠구먼.”

남자가 바짝 마른 등짝을 돌리면서 뒤돌아 보면서 응답했다.

돌반이라 불리는 연배의 남자가 삽을 들고 가던 삽자루를 바닥에 놓으며 옆에 앉으며 돌아선 남자의 눈과 마주쳤다.

바람이 살랑거리고 연한 구름이 산 쪽으로 밀려났다. 비개인 탓인지 선명하게 성큼 다가선 푸른 산, 그 무성한 신록의 갈피에서 진한 꽃 향기와 풀냄새가 묻어났다.

그 때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저놈의 뻐꾸기, 또 울어대는구먼, 저 소리 들으면 속이 터지단 말이야. 지 둥지도 아니면서 둥지 비우라고 또 소리치는 것이 영 거슬려, 지놈의 새끼가 숲 어딘가에 있겠지. 참 뻐꾸기는 묘한 동물이야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속으로 애태우고 키우기는 다른 새가 키우고.”

“다 살아가는 방편인거야. 우리가 사는 세상사도 마찬가질세,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젊을 때는 괜쟎은데 늙어서 불행한 사람도 있고......”

“세상은 뻐꾸기 같은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환경이야. 양심껏 사는 사람은 어쩌면 저들의 희생물이고.”

“근데, 축 늘어진게 어째 영 생기가 없어 보이는구먼, 아들 놈 때문인겨. 내가 뭐랬나, 죽을 때까지 농토를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했제이."

“그것 때메 그런게 아니랑게.”

“아니면, 왜 죽을 상인겨.”

“할망구가 밉어, 집에 들어가기 싫고, 아들 놈도 그렇고.”

“아들 놈은 그렇다 치고 할망구가 왜 미운겨. 늙으면 할망구가 최고라던데.”

“나이는 먹어 기력은 점점 약해지고 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

“늙어서 기력으로 살려고 했남, 그럭저럭 사는 거지. 살고 싶지 않다니 또 그 소린 겨, 그랑게 내가 뭐랬나. 있을 때 돈 좀 쓰라고 했제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라고. 자식에게 물려 줘 봤자. 우리 아버지 고맙소 하지 않는다고 입이 닳도록 했제이, 어이구 불쌍한 영감탱이. 내가 내 아들 한데 당한 것처럼 자네도 당했구먼. 쯧 쯧 쯧...., 아들이 재산을 받은 처음에는 잘했지, 해가 지날수록 바쁘다는 핑게로 섬기는 태도가 달라 지지, 그게 요즘 자식들의 속성이야 이 사람아.”

“그라게, 돌반이 말이 맞는가 보이. 근데 부모의 마음은 그게 아니쟎는가. 다 지놈들 잘 되기를 비는 것이 부모의 마음 아닌감. 우리 노인네는 가시고기신세일 그려.”

“새끼 다 키우고 죽으면 그 살을 먹이로 먹고 사는 그 고기 말인겨, 이제는 아니여. 세월이 바뀌었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우리 때 하고는 완전히 달라졌네. 물려준 재산 지키고 다시 자식에서 물려주었던 우리 때하고는 생각하는 자체가 다르단 말일세. 토바우골 박영감도 전 재산 자식한데 증여해 줬더니만, 사업하는 아들이 부도나 재산 다말아 먹었다고, 남은 건 집 밖에 없다고 속병이나서 다 죽어간다고 하던데 자네도 그 꼴인감?.”

“아니, 박영감 아들이 처음부터 사업하다가 부도나서 그런게 아니고?. 땅 팔아 사업 확장하다가 망했다는 소문이던데. 박영감도 집마저 날아가면 가시고길셀 그려.”

“그렇게 되었남. 그랑게 땅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했제이. 우리 노인네는 너나없이 전부 다 그렇다니깐.”

“내가 죽어야겠지. 이 손으로 일구고 지킨 땅인데,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고 살았제이, 청보리밭, 혹여 내가 죽으면 저 청보리밭 얼룩두릉이 옆에 묻어달란다고 전해주게나.”

“이 사람은 그게 무슨 소린겨, 죽다니 왜, 이 좋은 세상에 왜?. 선산 놔두고 청보리 밭은 또 왜?.”

“언젠가는 죽을 게 아닌감. 자넨 안 죽고 백년까지 살겨.

“그래, 백년해로는 옛말인겨.”

“......”

남자의 손등 위로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그때 청보리 밭을 스친 풀 향기를 담은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하긴”

“청보리 밭, 저 청보리밭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어. 저 곳에 영원히 묻히고 싶다네.”

“우째 청보리하고 무슨 사연이라고 있는감?. 젊을 때 청보리 밭에 첫사랑을 묻기라도 했는감. 우리 땐 청보리하곤 누구나 사연이 많지만서도.”

“그런 일이 좀 있긴 하지. 돌반이 자네도 청보리하면 생소한 기억이 아닐텐데.”

“그렇지. 청보리가 아니고 보리밭에서 그런 일이 있긴 하지.”

“허허허, 허허허”

인생의 황혼으로 접어든 두 늙은이의 마음은 아련히 떠오르는 지난 날의 기억으로 빠져들었다.

같은 기억을 더듬던 돌반이 노인이 청보리 밭의 추억을 떠올리고 떠나가자 남자의 얼굴에 검은 기운이 돌기시작했다.

바람에 쓸리다 다시 일어서기를 헤아릴 수 없이 반복하는 청보리 잎이 내는 소리가 스스스 하고 들렸다. 푸르른 잎사귀가 쓰러지면서 흘리는 선은 부드러운 여인의 곡선이다. 남자의 영혼이 그 소리의 곡선을 따라 나풀대드니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정성을 다하던 마음에 균열이 생기면 사람은 누구나 우울증에 시달린다. 이 우울증의 단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는 것이다.

‘삶이란 아름답고 귀중한 것인데, 더 살아야할까? 절박한 현실을 이기는 것이

악착같이 산다는 것인데, 아니야. 그래, 이제 갈 때가 되었지. 미련 없이 저 청보리 밭 호반우 곁으로 떠나야지. 눈을 감는다는 건 기울어져가는 빛을 거두는 것이라고 했지, 그래, 이제 떠날 때가 다 되었지.....’

남자가 마음을 굳힌 듯 촛점 잃은 시선을 허공으로 던졌다.

이윽고 먼 산을 응시하던 남자는 준비해 온 소주에 무엇인가를 타고 마셨다. 핏줄기를 타고 온 몸을 돌기도 전에 갈증이 찾아왔다.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바람이 흔들렸다. 시간의 흐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우주가 정지된 듯한 어두운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왔다.

남자의 입에서 물을 찾는 소리가 연이어 터지고 어깨가 먼저 닿은 몸으로 바닥을 딩굴기 시작했다.

남자의 기억속에서 어지럽게 돌아가는 인생의 필름이 파노라마로 이어졌다. 어디에서는 잘리고 어디에서는 잠시 스치고 또 어디에서는 오래 머물고 그러다가 또 이어지기를 계속했다. 흩어지는 시간을 잡으려는 기억이 모였다가 사라졌다.

호반우를 부르는 남자의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남자의 눈동자가 소리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따라 움직이다가 제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그 때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칡소가 다가오는 발꿉소리가 남자를 찾아오는 발자국 소리가 되어 둥둥둥 북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