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판 없는 고라니

 

오형근

 

 

깜깜밤중

고속도로, 길 잃은 한 마리의

고라니가 달린다

두 동강 난

산기슭에서 떨어진

고라니에게는

질긴 타이어가 없다

지칠 줄 모르는 엔진도 없다

놀란 가슴만 있는

고라니의 숨결은

점점 빨갛게 달아오르고

눈에서는

점점 눈물이 맺히는데

건너편 차선에서 사납게 달려오는

자동차의 불빛에

고라니의 몸뚱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몇 번,

고라니에게는

질긴 타이어가 없다

지칠 줄 모르는 엔진도 없다

자동차처럼

좌우측 깜빡이도 없다

이제는

고라니의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끼어 있던,

엄마와 형제의 오줌 냄새가 스며 있는

달콤한 흙마저 떨어져 나갔다

고라니의 뒤에서

자동차가 냅다 덮친다 사람의

비명 소리가

칼날을 펴고 화들짝 날아올랐지만

 

자동차처럼 번호판 없어서,

나동그라진 고라니가

어떤 고라니인지 알 수 없었다

 

 

 

無題

 

……인간에대한절망인간에대한희망 사 이 내가건너야할세상이구름다리처럼흔들흔들놓였는데일단은똥잘싸고밥잘먹을일이다잠도잘자고숙제인금생今生을,일단은견디고잘견디고볼일이다잘!

 

**1988년 《불교문학》신인상, 2004년 《불교문예》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시집 『나무껍질 속은 따뜻하다』와『환한 빈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