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이한걸

 

 

변변한 그림 한 폭 없는 빈곤한 우리 집에 자랑거리를 들라면 단연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이라는 서예작품이다. 가로 175cm 세로 43cm 폭에 빼꼭히 수놓은 서예작품은 우리 집 거실을 빛나게 하는 문화재다.

한국의 대표적 저항시인 “님의 침묵”을 받게 된 연유는 순전히 아내의 공이다. 그해 가을, 처음으로 백담사를 다녀온 아내는 “님의 침묵”에 반해버렸다. 남편이 노동문학을 하는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평소 시에 대해 무관심했던 아내는 백담사를 가서야 시의 가치를 발견했던 모양이다. “님의 침묵”을 노래 부르던 아내는 우연히 알게 된 서예가 남곡 선생을 졸라 작품을 선물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벗으로 사귄지 몇 개월 되지 않은 남곡 선생이 아내의 청을 흔쾌히 들어준 성의가 고마울 따름이다.

 

1947년생 남곡 선생을 만난 곳은 강원도 주문진에서다.

마산에서 살던 나는 일 관계로 2009년 7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혼자 주문진에서 살았다. 광활한 동해바다와 주문진 읍내가 훤히 보이는 아파트에서 살았다.

33년 만에 찾은 고향 강릉!

머나먼 타향에서 심신이 지쳤던 나는 고향이 그처럼 좋을 수 없었다. 바다에서 막 건저올린 생선이 펄떡이는 주문진어시장, 밤이고 낮이고 달려가 파도와 장난치는 모래톱, 보릿골 산책로, 소금강, 진고개, 절경의 해안도로,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수십 년 만에 찾은 정든 고향에서 남곡 선생을 만난 것은 뜻밖의 행운이다.

남곡 선생은, 내가 사는 아파트의 이웃집 남자와 친구 사이였다.

직업군인이었던 이웃집 남자는 나와 사돈의 팔촌지간이다. 강릉지역에서 군대생활을 했던 이웃집 남자는 정든 주문진을 떠나기 싫어 정년퇴임 후에도 그대로 눌러 살고 있었다. 바다낚시를 다니면서 노후의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사돈 간이라 그들 부부는 우리부부와 자주 어울렸다.

“내 친구가 예술가랍니다”

내가 글을 쓰는 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웃집 남자는 어느 날 남곡 선생을 소개시켜 주었다. 남곡 선생은 술은 냄새도 맡지 못하면서 술좌석을 피하지 않는 사람이다. 유모감각이 뛰어나 언제나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내가 문인이라서 그런지 선생은 나를 편안하게 대해주었다.

남곡 선생!

선생은 서예, 그림, 조각을 두루 섭렵한 다재다능한 예술가다. 이미 20년 전 세종문화예술관에서 서예전을 열었을 만큼 명성을 떨쳤다 한다. 선생이 쓴 8폭 병풍이 사오백 만원을 호가한다는 것이다. 선생이 그린 노무현 전직대통령을 비롯 장미희, 장동건, 채시라, 손담비의 초상화는 압권이다. 선생이 그린 연예인은 탄성을 지를 만큼 아름다웠다. 이효석문학축제가 열리는 봉평에서 그려온 나의 초상화를 보고 “이건 그림 축에도 못 듭니다.”하던 말을 실감했다. 선생의 작업실에서 손수 작업한 여러 가지 조각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선생은 또 한의원을 운영한 한의사였다. 남쪽의 공단도시에서 수 십 년간 한의원과 서예학원을 운영한 경력이 있다는 것이다. 선생은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3년 전부터 주문진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보낸 주문진의 1년!

이웃집 남자는 나와 사돈이고 남곡 선생은 같은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 우리는 금방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마산과 주문진을 오르내렸던 아내는 주문진에만 오면 그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낚시를 즐겼던 그들은 우리부부를 바다로 안내하였다. 바위를 뛰어다니면서 낚시를 하는 재미는 의외로 즐거웠다. 남자들은 우럭을 낚아 회를 뜨고 여자들은 게를 잡아 즉석에서 찌개를 끓였다. 바다에서 마시는 소주는 취하지 않는다. 수평선에는 오징어배가 떠있고 갈매기가 끼룩거리는 남애항에서 여러 날을 보냈다.

냇가에서 벌인 천렵도 재미있는 놀이다. 우리는 동심으로 돌아가 벌판을 가로 지른 연곡 천을 첨벙거렸다. 왁자지껄 모래바닥을 휘저으며 미꾸라지를 잡고 바위를 들썩이며 꺽지를 잡았다. 냇가에서 먹는 추어탕 꿀맛이다.

5일장이 열리는 북평, 양양 장거리를 기웃거리다 국밥으로 배를 채우고 푸짐하게 한보따리씩 장을 보던 일도 즐거웠다. 추암, 하조대를 구경하면서 풍월을 읊었을 옛날 선비들이 부럽지 않았다. 남곡 선생이 사는 텃밭이 있는 마당에서 양미리와 도루묵을 숯불에 구워먹던 만찬도 빼놓을 수 없다.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찻집을 찾아다니며 인생을 논하고, 또 예술에 관해 이야기꽃을 피우던 추억은 오래도록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 님의 침묵을 써 주실 수 없을까요?”

어느 날 백담사를 갔다 온 후 아내는 남곡 선생에게 글을 부탁했다. 아니, 부탁이 아니라 떼를 썼다. 나는 이미 나의 시 5편과 한문 작품 몇 편을 받아 방에 걸어뒀던 터라 아내의 장단에 보조를 맞출 수 없었다. 그러나 아내는 막무가내였다. 얼굴만 마주치면 “님의 침묵”을 들먹였다. 선생에게 붓을 놓은 지 오래 되었다는 말을 들었기에 아내의 부탁은 부질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써 드리지요.”

아내의 끈질긴 부탁에 남곡 선생은 손을 들었다. 나는 농담인줄 알았다. “님의 침묵”은 19행에 364자나 되는 긴 작품이다. 이것을 쓰려면 여간 공을 들이지 않고는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선생은 두루마리 작품을 들고 왔다.

“붓을 놓은 지 오래되었지만 사모님이 하도 간절하게 부탁해서 썼습니다. 두 편을 썼으니 마음에 드는 작품을 표구 하시면 됩니다. 먼저 써준 선생님의 시와 한문 글귀는 두고 보다가 찢어버리십시오. 이곳 방이 허전해서 공간을 메우느라 대충 쓴 것이지요.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해서 남곡 선생의 귀한 서예작품을 얻을 수 있었다.

아내는 마산에 내려온 즉시 한 편을 표구하여 거실의 가장 어울리는 곳에 걸어 두었다. 예술작품 하나 없는 삭막한 거실에는 “님의 침묵”이라는 명시의 서예작품이 걸려있어 어느 정도 품위를 갖추고 있다.

나는 “님의 침묵”을 볼 때마다 기계로 찍어낸 듯 일정한 규격을 유지한 붓글씨의 묘미를 감상한다. 한 획, 한 획, 어쩌면 저토록 바르게 쓸 수 있을까? 붓글씨는 한문보다 한글이 어렵다고 한다. 한 글자만 균형을 맞추지 못해도 작품전체가 이상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루 4-5시간 10여년의 수련을 쌓아야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는 붓글씨 작업, 그래서 서예가는 존경받는 예술인이다.

남곡 선생과 이별한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우리는 귀한 서예작품을 얻고도 변변한 답례를 못했다. 강릉을 갈 기회가 있으면 선생을 찾아봐야 겠다. 아직은 건강하시겠지. 선생의 작업실을 찾아 다시 한 번 연예인들의 초상화를 하나하나 감상하고 싶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때처럼 바다낚시를 하고 냇물을 첨벙거리며 미꾸라지를 잡을 것이다. 남곡 선생도 그런 날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선생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주문진으로 달려가고 싶다.

 

 

주소: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1동 105-13 101호

이메일 주소: l-rorx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