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비밀

                            

                                                                            

 

*

아내의 전화를 받았을 때, 발신자는 아내가 아니었다. 아내의 이름이 액정화면에 떴기에 그는 당연히 아내라 생각했는데 전화를 건 사람은 그가 사는 아파트 옆 동의 정미 엄마라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는 곧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 했다. 그때 그는 세희와 함께 21년 된 위스키를 막 마시려던 참이었다.

“어쩐 일이시죠?”

그의 건조한 말에 정미엄마는 잠시 말을 잇지 못 했다.

“저, 현수 엄마가…… 우리 집에 있는데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두서없는 말이었다. 그는 위스키를 입에 털어놓고 혀로 한 바퀴 굴리다 꿀꺽 삼켰다. 식도에서 열이 확 났다. 세희는 잔에 술을 따랐다.

“무슨 일이신지…….”

그는 샤워를 하고 속옷을 입지 않은 세희의 옷 밖으로 솟아오른 유두를 엄지와 검지로 만지작거렸다.

“시내 공원에서…… 현수 엄마가…….”

정미 엄마는 말을 더듬거렸다. 그는 손을 세희의 남방 속으로 집어넣었다. 탱탱하고 탄력 있는 유방이 손 안 가득 들어왔다.

“무슨 일인데요. 집사람 옆에 있어요?”

그는 유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화난 일이 있거나 못마땅한 일이 있을 때 하는 버릇이었다. 세희의 몸이 움찔거렸다.

“있는데…… 전화 받을 형편이…… 못 돼요. 하여튼 빨리 집에 오셨으면…….”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정미 엄마의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휴대폰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러니까 공원에서…… 당했어요. 현수 엄마가.”

“당하다니요?”

명확하지 않은 말투에 짜증이 났고 또다시 유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세희는 또다시 움찔거렸다.

“하여튼 빨리 집에 왔으면 해요. 1208동 1513호에요. 그럼 이만…….”

그는 어이가 없었다.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키며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저녁 무렵 시장을 만나 우회도로 건설 건을 타협 짓고 오던 길이었다. H사와 D사가 함께 뛰어들었지만 그가 저번에 준 미끼는 유효했다. 타협되자마자 그는 또다시 큰 미끼를 입에 털어주었다. 시장은 현금만 고집했다. 수표도 차명통장도 싫어했다. 하지만 그는 미끼를 줄 때마다 녹음하는 걸 잊지 않았다. 아마도 교활한 시장은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터였다.

“조 사장 걱정 마. 내 임기 동안만이라도 팍팍 밀어줄 테니.”

시장은 돈이 든 가방을 자신의 책상 밑으로 밀쳐놓고는 필요이상 큰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저 또한 시장님이 다음 선거 뿐 아니라 재직하시는 동안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그 또한 필요이상으로 목청을 높였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비록 시골이라 해도 제법 규모가 큰, 아버지가 창업한 건설회사에 들어와 지금껏 고향에서 있어 왔으니 초 중 고 동창만 해도 어마어마했고 회사를 운영하면서 다진 인맥 또한 그 못지않았다. 시장은 그런 그의 위치를 잘 꿰뚫고 있었다.

그는 세희를 침대로 데리고 갔다. 평소와는 좀 이른 편이었다. 시장과 담판을 짓거나 크거나 작거나 공사가 끝나면 그는 세희에게 왔고 머리꼭지가 돌도록 술을 마셨고 미친 듯이 섹스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술은 몇 잔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 세희는 집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제, 세희와 헤어질 때가 되었구나, 그는 생각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야 되는데, 마음이 조급해지자 세희를 침대에 거칠게 눕혔다.

*

전화를 끊고 나서 정미 엄마는 안방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현수 아빠에게 전화를 한 게 잘 한 짓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 않을까. 고소를 하고 범인을 잡는다 한들 현수 엄마가 당한 상처가 치유될 것인가.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 아무도 모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당한 사람은 결국 가정이 깨진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가정이 깨진다면 범인을 잡은 들 무슨 소용인가.

현수 엄마를 우연히 베란다 너머로 보았다. 밤 9시 뉴스가 끝나고 연속극을 하기 전 막간을 이용하여 화분에 물을 주고 있을 때였다. 흘린 물을 훔쳐내고 베란다 밖을 바라보는데, 한 여자가 비틀거리며,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어두컴컴한 밤인데도 흰 색 바탕에 세로 보라색 줄무늬 운동복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헝클어진 머릿결이 나중에 들어왔다. 눈에 익었다. 아니. 그녀는 순간 현수 엄마라는 걸 알았고 직감으로 무슨 일이 생겼구나 싶었다. 걸레를 베란다에 둔 채 밖으로 나갔다. 역시였다. 비틀거리며 주차장을 가로질러 오는 사람은 현수 엄마였다.

“왜 그래, 현수 엄마.”

그녀가 다가가 어깨를 잡았을 때 현수 엄마는 흠칫했다. 눈의 초점은 풀려 있었고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 했다. 머리는 헝클어졌고 상의와 바지에도 나뭇잎과 마른 풀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직감했다. 당했구나.

“공원에 갔었어? 현수 엄마?”

현수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원은 시내에 있는 야트막한 산에 꾸며져 있는데 몇 개월 전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대낮에 운동을 하던 주부가 강간을 당하여 발가벗긴 채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는 둥 바바리가 나타난다는 둥 하는 소문이었다. 공원에는 산 둘레를 따라 산책길이 놓여 있고 중간 중간에 운동기구도 설치되어 있어 시내 사람들이 자주 찾던 곳이었다. 그녀와 현수 엄마랑 더불어 7공주 회원들과 자주 공원에 운동하러 갔었다.

“자자. 일단 들어가자.”

그녀는 현수네 집으로 가는 대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침대로 가 눕혔다.

“어찌 된 거야? 정말 공원에서 오는 길이야?”

그녀가 재차 다그쳤을 때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녀는 아차, 했지만 이미 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현수 엄마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경찰에 신고해야지. 병원도 가고. 잠깐 우선 마음부터 안정하고.”

그녀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었다.

“참. 현수 아빠 퇴근했어? 집에 있어?”

현수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를 어째. 그럼 빨리 연락해야지.”

그녀의 말에 현수 엄마는 망설이는 듯 하다가 바지에서 휴대폰을 꺼내 주었다.

“몇 번?”

“2번.”

그녀는 안방을 나와 2번을 누르는데 자꾸만 허공을 누르는 듯 했다. 현수 아빠는 피곤한 목소리로 딱딱하게 전화를 받았다. 당했다고 했는데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괜히 전화했나. 그녀는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안방 문을 열어 보니 현수 엄마는 팔을 이마에 얹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문을 조금만 열어 놓고 거실에 앉았다. 밤에는 운동하러 잘 가지 않는데 웬일로 갔을까 싶다. 운동하러 가거나 여성회관이나 도서관에 문화강좌 듣는 멤버들이 있었다. 현수 엄마를 비롯해 일곱 명이 되었다. 모두들 작은애가 이제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난 상태였다. 큰애들은 군대를 갔거나 졸업반이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오전에는 여성회관이나 도서관에서 문화강좌 한 강좌를 듣고 점심엔 어느 한 집에 가 비빔국수를 비롯해 전을 부쳐 먹었고 새로 개업한 집에 가거나 했다. 오후엔 주로 공원에서 운동을 했다.

이제 현수 엄마는 함께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아내는 형사와 마주앉자 고개를 숙이고 불안해했다. 그가 옆에 앉아 어깨에 팔을 두르고 안심을 시켰으나 여전히 아내는 가늘게 떨었다.

“허 참. 이런 시골에서도.”

형사는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때 일을 자세하게 말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여자 형사 분은 없습니까?”

그는 항의조로 말했다. 아무리 형사라지만 그때 그 상황을 남자에게 상세하게 말해야 한다는 게 그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전담 형사에는 여자가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다른 과 여경을 참석시키지요.”

형사는 어떻게 하겠냐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뜸을 들이자 형사는 말을 이었다.

“물론 사장님도 사모님 곁에 계셔도 좋습니다.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그게 좋을 수도 있고요.”

“그렇게 하지요. 되도록 빨리 끝내 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내가 힘들어 하니.”

“예 그러지요.”

형사는 전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심한 흡연 욕구가 일었으나 꾹 참았다. 도저히 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내에게 닥치다니. 말로만 듣던 이야기였다. 내 아내에게, 살림밖에 모르는 순진한 내 아내에게. 처음 전화가 왔을 때 당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 했다. 당하다니. 뭘? 누가? 아내가? 설마, 그랬다. 근데 이게 현실인가. 정말이지 옆에 범인이 있다면 갈기갈기 찢어도 속이 후련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잠시 후 30대로 보이는 제복을 입은 여경이 왔고 형사는 조사실로 가자고 했다. 그는 여전히 아내의 어깨를 팔로 두른 채 조사실로 들어갔다. 조사실은 책상과 의자 뿐 다른 사무기구는 없었다.

“조사 내용은 모두 녹화가 됩니다.”

형사는 여경을 옆에 앉히고 아내에게 마음 편하게 가지라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불쾌한 마음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여경이 비록 옆에 있다손 치더라도 조사하는 사람은 남자였다.

“여자 분께서 조사하시면 안 됩니까?”

그는 항의 비슷하게 말했다.

“그건 좀 곤란합니다. 최대한 사모님의 입장을 고려해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여경도 그에게 이해하라고 했다. 그는 아내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렸다. 나가고 싶다. 조사고 뭐고 그냥 집으로 갔으면 싶었다.

“이름은요?”

“채연희.”

아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좀 더 크게 말씀해 주시고요. 주소와 주민번호 말씀해 주세요.”

아내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더듬거렸다. 그는 아내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럼. 일시와 장소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고요.”

형사는 컴퓨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녁 아, 아홉 시경에, 시, 시민 공원에서…….”

“시민 공원 어디요?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면.”

“산, 산책길에요. 크, 큰 나무 있고…… 운동기구 있는데…….”

“혼자 갔습니까?”

“예.”

“왜 갔지요?”

“우, 운동하러요.”

“평소에도 자주 가십니까?”

“예.”

“음. 범인의 얼굴은 보셨습니까?”

“아뇨. 뒤, 뒤에서…….”

“어떻게요. 좀 자세히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뒤에서 어떻게요. 흉기는 있었나요?”

“모, 모르겠어요. 갑자기 입을 마, 막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낯선 사내에게 그런 일을 상세하게 말하다니. 그는 지금 아내가 강간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진저리를 쳤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형사가 아무리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한다 해도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청사 밖으로 나와 모래가 들은 단지 곁으로 가서 담배를 빼물었다.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는 냉정하자 싶었다. 어쩌면 지금 이런 치욕보다도 더 큰 치욕이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범인을 잡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일은 벌어졌고 어떻게 수습을 잘 하느냐였다. 현재까지 이번 사건을 아는 유일한 사람은 정미 엄마인데 그녀한텐 절대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크게 신뢰가 가지 않았다. 비록 그녀가 비밀을 지켜준다 해도 좁은 시골이라 어차피 소문은 금방 날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쯤 소문은 빛의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번지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떤 놈일까. 나이 오십이 넘은 유부녀를. 가정밖에 모르는 가정주부를. 잠자리를 즐거워하지 않는 순진한 여자를. 어떤 미친놈일까. 그렇게 성욕이 일면 돈 주고 사든지. 천지가 여자투성인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공원에서. 혹 본 사람은 없었을까. 봤다면 아내가 자주 공원에 운동하러 갔기에 금방 아내를 알아봤을 텐데.

언제 아내와 관계를 가졌나. 그는 기억하려고 했지만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러고 보니 아내와 잠자리를 가진 지도 오래 되었다. 아내가 어디 여자인가. 그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자신으로서는 여자로 느껴지지 않는 50대의 아내를 누가 강제로 성폭행을 했다는 게 이해가 안 되고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연달아 담배 두 대를 피우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조사실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소파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렸다.

“다 끝났습니다.”

조사실에서 먼저 여경이 아내와 함께 나오며 말했다. 아내의 얼굴은 여전히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럼 병원에 갑시다.”

뒤따라 나온 형사가 말했다.

“병원에요?”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던 그는 불쾌한 기색으로 물었다.

“검사 하셔야지요.”

그가 아내에게 다가갔을 때 형사가 물었다.

“참, 그대로 오셨지요? 검사 받고 옷은 모조리 제출해 주세요.”

“옷 모두요?”

그는 의아해서 물었다.

“옷 모두 국과수로 보내야합니다. 그러니 사장님은 집에 가서 갈아입을 옷 가져오시고 피해자분은 함께 병원으로 갑시다.”

그는 순간 멈칫, 했다. 병원에 형사들과 함께 가다니. 제복 입은 형사들과. 어디 광고라도 할 작정인가. 그는 형사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데리고 가지요.”

형사는 순순히 물러섰다.

“그러세요, 그럼. 성모병원 아시죠? 미리 전화해 놓을 테니 그리로 가시고. 겉옷과 속옷은 되도록 빨리 제출해 주세요.”

형사는 친절하게 말했지만 그는 조금이라도 경찰서에 있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서둘러 아내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가는 내내 내일 아침 아내의 속옷을 들고 경찰서로 가는 자신의 모습과 그 속옷을 들춰보는 남자 형사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는 소름이 온몸에 돋으며 갑자기 몸이 서늘해졌다.

*

다음날 오후 정미 엄마가 현수네 집을 방문했을 때 현수 엄마는 다행히 문을 순순히 열어 주었다. 마음이 많이 진정 된 것 같았다.

“현수 아빠는?”

“아침에 나갔어. 경찰서에도 가고 회사에도 가야 한다며.”

“그랬구나. 하여튼 오늘 강좌에 자기가 없어 허전했어. 빨리 나아서 또 나가야지.”

현수 엄마는 무릎을 양 팔로 껴안고 가만히 있었다.

“다들 왜 현수 엄마 안 나오느냐고 그러길레 어디 아픈가 보다고 말했어. 그러니 빨리 몸 추슬러.”

그녀는 현수 엄마의 눈치를 보았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 지. 그녀 또한 어제 밤을 새웠다.

“차 한 잔 줄까.”

현수 엄마가 일어서려는데 그녀가 먼저 일어섰다.

“가만히 있어. 내가 탈게.”

그녀는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싱크대는 물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아마도 아침을 해 먹지 않은 모양이었다.

“밥은? 해 주……까?”

“아냐. 먹었어. 애 아빠가 죽을 시켜줬어.”

그래 어떻게든 힘을 내야지. 죽긴 왜 죽어. 살아야지. 그녀는 어젯밤 현수 엄마가 15층에서 떨어지는 상상을 했었다.

“이제 맘 놓고 있어. 경찰에서 범인 잡고 하겠지.”

“근데 나 다시 나갈 수 있을까. 애 아빠가 이사 얘길 하던데.”

현수 엄마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이사 가길 왜 가. 자기가 무슨 죄 졌어? 나쁜 맘 먹지 말고 빨리 몸 추슬러 예전과 같이 우리 재미나게 지내자구. 응?”

그녀가 일부러 경쾌하게 말을 하자 현수 엄마는 예전과 같이? 할 수 있을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럼 할 수 있지. 못 할 게 뭐 있어. 우리 모임이름이 7공주이잖아. 벌써 잊었어? 어, 하다가 20-30대 지나갔고 아차 하다가 40대 넘어 갔잖아. 이제 어어, 하다가 환갑이야.”

“…….”

현수 엄마는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그래. 이제는 재미나게 살자구.”

그녀는 현수 엄마의 손을 잡았다.

“이제 괜찮아. 어젯밤에 수면제를 먹어서 그런지 계속 잠만 와. 오늘 정신과 치료 받으러 가야 하는데.”

“같이 가자. 같이 가 줄게. 다른 데는 괜찮고? 팔에도 멍이 들었던데.”

현수 엄마는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그런 현수 엄마를 그녀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찌 이런 일이. 말로만 듣던 일이었다.

왜 안 나타나지?

함께 문화강좌도 듣고 운동도 함께하는 7공주 회원인 P가 말했다. 어느 날 공원에서 운동을 마치고 막 헤어지던 참이었다. 그때 공원에서 어느 주부가 발가벗긴 채 강간을 당했다는 둥 바바리가 나타난다 둥 하는 소문이 돌 때였다. 그래서 은근히 운동할 때 신경이 쓰였던 무렵이었다.

누구?

일부는 웃고 있을 때 현수 엄마가 물었다.

정말 몰라? 자기는 은근히 안 기다려?

P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놀리듯 말했다.

기다리긴 누굴 기다린다 말이야.

현수 엄마가 그런 말을 했을 때 모두들 폭소를 지르고 말았다.

엉큼하긴. 자기도 은근히 기다리면서.

설마 그 얘기?

현수 엄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을 때 또다시 폭소가 터졌다.

그러게 말이야. 기분도 꿀꾸리한데 바바리님 좀 나타나시지.

우리 같은 할마들한테 나타나겠어.

그러게 젊은 처자들도 많은데.

깔깔깔.

깔깔깔.

그래도 운 좋은 과부는 넘어져도 가지 밭에 넘어진데.

깔깔깔

앉아도 요강 뚜껑에 앉고?

깔깔깔

7공주 회원들은 배꼽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읏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깃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봄부터 매일 강좌를 들었다. 둘째 애들이 대도시로 대학 간다고 떠나고 나자 뭔가 허전했다. 남편들은 여전히 술에 취해 외박하거나 늦게 들어왔고 그녀들은 가끔 낮에 모여도 할 얘기가 없었다. 학원 정보도 과외 선생 정보도, 수시 정보도 공유할 게 없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우리 재미나게 살자. 그래 까짓거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자고. 남편이 어젯밤 외박했다는 누군가 말했다. 그녀들은 7공주란 이름을 짓고 여성회관과 도서관에 문화 강좌를 신청했다. 월요일엔 도예를 화요일엔 글쓰기. 수요일엔 꽃꽂이…… 하는 식었다. 강좌가 없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영화를 보았고 산에 올랐다. 마치 전쟁을 치르듯 그렇게 매달렸다. 매달리지 않으면 왠지 초조했고 불안했다. 허전함과 외로움을 이기는 한 방식이었다.

오후에 공원에서 운동을 할 때면 그 소문이 돌고 나고부터 짜릿한 쾌감도 있었다. 강간이나 바바리가 나타난다는 소문에 온몸이 오싹했지만 공포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런데도 자꾸 운동은 가고 싶어졌다.

어쩌면 우리들은 또 다른 감정이 있었던 지도 몰라.

그녀는 현수 엄마와 택시를 타고 가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벼락 맞을 일인 지 모르지만 그런 맘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공원에서 산책로를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강간범.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하고 바바리 또한 징그러웠고 무서웠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스멀거려오는 짜릿한 쾌감, 또한 없었다고는 말 할 수 없었다. 운동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뭔가 뒤가 허전했고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건 분명 또 다른 감정이었다.

*

일주일쯤 뒤 그는 담당 형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다시 아내를 피해자 조사를 했으면 했다. 그는 단박에 거절했다. 아내의 속옷을 형사에게 가져다주던 날 그는 결심했다. 다시는 경찰서에 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근데 말이죠. 이상한 점이 많아요.”

형사는 공손하게 말했지만 그는 거만하게 들렸다.

“이상하다니요?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요?”

그는 따지듯 물었다.

“국과수 결과가 나왔는데요.”

“그래서요?”

그는 무슨 결정적 증거가 나왔으면 제대로 수사하면 될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로 말씀드리긴 그렇고. 내일쯤 사모님 모시고 한번 나오시죠.”

형사의 말에는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죄송하지만 그럴 순 없습니다. 이제 아내가 진정되어가는 중입니다.”

“예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니요?”

그럼 정신과 의사도 만났다는 말인가. 그래서 아내의 정신 상태를 다 들었단 말인가.

“근데 말이지요.”

형사는 뜸을 들이다 말했다.

“피해자만 있고 실체가 없단 말이지요.”

“무슨 말입니까, 지금.”

그는 음성을 높였다.

“어쨌든 사모님을 한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한번 나오세요.”

형사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이만 끊지요. 아내가 좋아지고 있는데.”

그는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후 아내는 많이 좋아졌는 건 사실이었다. 약 덕분인지 밤에 잠을 잘 잤다. 매일 친구가 찾아오는 눈치이고 제법 표정도 밝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를 생각하면 집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매일 밤 같은 침대에서 아내와 자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비록 잠자리를 하지 않지만 아내의 몸이 닿는 것이 싫었다.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이미 수년째 부부관계가 없었기에 잠자리 부담은 없다 손치더라도 이미 난 소문도 문제였다. 이사 가는 것까지 고려했지만 현 시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지역 기반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특히 건설업체는 더 했다. 아무 탈 없이 자식 키우고 살림만 하는 아내 두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형사의 말을 거절하고 나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집에 있었다. 형사한테 전화 온 내용을 얘기하고 혹 전화할지 모르니 경찰서에 가서 조사 받는 건 하지 말라고 일렀다.

그럼요. 저도 싫어요. 다시는.

아내는 완강하게 말했다.

그는 퇴근하고 세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들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세희는 음대 졸업반이었는데 스폰서를 자청했다. 대금을 전공했는데 대학원 진학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대학원 진학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원룸을 얻어주고 소형차를 뽑아주었다. 그리고 매월 일정액의 용돈을 주었다. 대신 그가 찾으면 언제든 달려와야 했고 그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어야 했다. 서로의 깨끗하고 공평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세희는 학교 연습실에 있었다. 곧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아내는 여자가 아니었다면 세희는 완전 여자였다. 아내는 애들을 낳고부터,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임신을 한 순간부터 이미 여자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세희는 이제 20대 초반의 나이에 걸맞게 탱탱한 몸을 유지했고 섹스에서는 열정적으로 대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둘째 애를 가지고부터는 거의 아내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성욕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또한 실제로 아내에겐 성욕이 일지 않았다. 그냥 내 아이 엄마였다.

세희는 집에 오면서 떡볶이를 사 왔다. 세희에게서 그는 떡볶이 먹는 것을 배웠다. 애들이 어릴 때 가끔 아내가 아이들에게 해 주었지만 그는 먹지 않았다. 세희는 군것질을 좋아했기에 그 또한 세희를 만날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십 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위스키와 떡볶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음식을 세희는 탁자에 놓았다. 그게 세희의 매력이었다.

“사모님은 어떻게 됐어요?”

세희는 위스키는 마시지 않은 채 떡볶이를 먹으며 물었다. 그는 의아하게 세희를 보았다.

“왜요? 아직 범인 못 잡았대요?”

그는 다시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세희가 떡볶이를 입에 물고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는 떡볶이 받아먹으며 오늘이 세희와 마지막이구나, 다른 여자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으로 물었을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묻지 말아야 할 말이었다. 그가 세희의 가족관계 등 사생활에 대해 전혀 모르듯 세희도 혹 통화하는 걸 들었다 해도 그냥 모른 척 넘어가야했다.

그는 떡볶이 먹는 세희를 바닥에 눕혔다.

“이거 먹고요. 배고파요.”

그는 세희 입을 입으로 막았다. 그리고 거칠게 윗옷을 벗겼다. 옷이 부북, 찢어졌다. 세희는 벗어나려고 발버둥쳤지만 그는 바지를 찢었고, 팬티를 벗겼다. 세희가 발버둥칠수록 그는 심하게 다루었다.

다음날 점심 무렵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으로 형사가 찾아 왔다고 했다. 그는 점심 약속이 있어 막 나가려는 참이었다. 전화가 와서 경찰서로 오라는데 안 가니까 집으로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아내 혼자 있는 집에 남자가 찾아가다니. 그것도 지금 몸도 안 좋은 상태인데.

“부득이 찾아 왔습니다. 서로 안 오시겠다니.”

집에 도착하니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형사는 일어서며 양해를 구했다.

“대체 무슨 일이요. 여자가 혼자 있는 집에 이렇게 막 찾아와도 되는 거요?”

그는 화가 나서 숨을 씩씩거렸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한 번 더 피해자 조사를 해야겠습니다.”

형사 또한 단단히 각오한 모양이었다. 아내는 그 옆에 서서 묵묵히 있었다.

“그동안 범인 안 잡고 뭐 했습니까. 이번에 알고 보니 몇 개월 전부터 공원에서 강간을 당했다는 소문도 났고 바바리도 나타난다는군요.”

그는 따지듯 말했고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 소문이 돌았지요. 물론 수사했구요. 하지만 그건 헛소문으로 밝혀졌습니다.

“헛소문이라뇨?”

그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형사를 쳐다보았다.

“이번 사건을 조사 중 저희들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과 연관이 있는 거 같아 조사를 했습니다만.”

“그래서요?”

그가 물었고 아내 또한 형사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형사는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성분들에게만 은밀히 나도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탐문수사도 하고 잠복도 했지만 바바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소문만 있었지 실제로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여자가 강간당해 발가벗긴 채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는 말도 본 사람은 없고 당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참 묘하지요.”

아내는 형사의 말을 들으며 그의 팔을 잡았다.

“당신도 분명 들었잖아.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는 아내를 돌아보며 말했고 아내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건 그 공원에 가는 사람이면 다 아는데.”

“물론 소문이 많이 났지요. 하지만 희한하게도 여성분들에게만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남자 분들은 대부분 그런 소문을 모르고 있더라고요.”

형사는 아내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요?”

그는 항의조로 물었다.

“우선 앉아서 합시다. 사모님도 이리 앉으시고요.”

“아냐, 당신은 방에 들어가 있어.”

그는 아내를 방으로 밀었다. 아내는 머뭇거리다 형사를 흘깃 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소파에 앉자 형사는 난감한 표정을 짓다 자리에 앉았다.

“근데 말이죠. 이번 국과수에서 결과가 나왔는데…… .”

형사는 잠시 쉬었다가 침을 한번 삼킨 후 말을 이었다.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증거물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증거가 없다니요?”

“그러니까 피해자의 옷에 다른 사람의 지문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정액도 발견되지 않았구요. 병원의 결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피해자의 질에서도 남자의 정액이 발견되지 않았구요.”

그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요? 그럼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일어났다고 거짓말한다는 말입니까?”

그는 형사를 향해 음성을 높였다.

“물론 사건은 일어났겠지요. 근데 옷이나 몸에서 타인의 흔적이 전혀 없으니 저희로서는 수사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때 일어난 정황을 다시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그날 형사님도 이 사람 상태를 직접 봤지 않습니까.”

“봤지요. 팔에 타박상도 있었고 옷도 더러워져 있었고. 그래도 사모님께 그때 상황을 다시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정신과 병원에서도 그렇고.”

“정신과에서 뭐라던데요? 정신과에서는 함부로 환자에 대해 다 얘기 합니까? 환자의 사생활이 있는데. 이거 원.”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하고 그는 불쾌한 기색을 그대로 드러냈다.

“수사상 할 수 없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말이 자꾸 달라지더랍니다. 그리고 가끔 남자들에 대한 불신이 필요이상으로 강하다가도 반대로 남자들에게 관대하기도 하고요.”

“그래서요?”

그는 화가 났다.

“그러니까 어떨 땐 피해자로서 불안해하거나 분노를 느끼다가도 어떨 땐 전혀 피해자의 감정이 아닐 때도 있다고. 그러니까 환자가 지금 무의식적으로 어떤 혼란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이보시오. 그게 무슨 소리요?”

그는 탁자를 소리 나게 쳤다.

“저희로서는 다양한 방향으로 수사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지요.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상상속의 일이 어떤 충격을 받으면 실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고요.”

“상상이요? 참, 나. 지금 뭐 하자는 말씀입니까? 그때 아내의 옷차림이나 팔에 든 멍도 봤지 않습니까?”

그는 전투를 앞둔 군인처럼 나섰다.

“아, 흥분하지 마시고요. 봤지요. 근데 그 타박상이나 옷이 더러워진 것도 남의 완력에 의해서일 수도 있지만 혼자 스스로 넘어져도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지요. 또한 저희로서는 단지 의사 말을 참조할 뿐입니다. 빨리 범인을 잡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때 상황을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수사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안 됩니다. 이제 아내가 많이 나아지고 있는 상태에서 또다시 그때 상황을 떠올리라구요. 안 됩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남자에게 또다시 그런 일을 까발리다니. 그건 치욕이었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범인을 못 잡는다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요. 사모님께서는 사장님과 성관계를 가지신 지가 꽤 오래됐다고 하시던데. 맞습니까?”

“그것도 정신과에서 그럽니까? 내가 왜 그런 말을 해야 하죠?”

“중요합니다. 어쨌든 정신과 소견에서는 사모님은 상당기간 정신적으로나 성적으로 상당히 욕구불만이 많았다는 겁니다.”

“그럼 제 아내가 강간을 당하기를 바랬다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피해자는 있는데 목격자는 없고 증거도 없고. 그때가 사람들이 많이 운동하는 시간이거든요. 현장에 몇 번 가봤고 또한 운동하는 사람들도 만나봤지만 그 장소는 가로등이 훤하게 켜져 있는 장소입니다. 그 위쪽이 약간 어둡긴 하지만 산책길에서 보면 다 보이는 곳이지요. 또한 그 시간대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고요. 그래서 말씀입니다. 혹 사모님께서는 혼자 자주 넘어지거나 뭐 그런 적은 없었습니까? 또한 혼절을 했다는 적도.”

“혼자 넘어지다니요. 또 혼절은 왜 합니까. 제 아내는 건강했습니다.”

“건강하더라도 왜 남자도 그렇고 혼자 운동하다보면 넘어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어이가 없군요. 자작극이란 말 같군요.”

“아닙니다, 분명 사모님은 분명 일을 당했습니다. 정신과에서도 그랬고요. 다만 그게 상상일 가능성도 있겠다는 정신과 전문의의 의견이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상상도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느낄 수 있다더군요. 어쨌든 이해해 주시고요. 저희로서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기에.”

“상상이라면 범인이 없겠군요.”

“어쨌든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상상이라도 범인은 있지요. 그렇게 된 동기가 있으니까요.”

상상이라도 범인은 있다? 동기가 있다?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어쨌든 더 이상 아내의 조사는 안 됩니다.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범인 잡거든 전화로 알려 주시오.”

그는 일어섰다. 형사는 머뭇거리다 일어섰다.

“물론 그때 일을 떠올린다는 게 힘들 줄은 알지만 좀 더 생각해 보시고 협조해 주십시오.”

“아니외다. 앞으로 다시는 그때 일을 얘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빨리 범인이나 잡아 여자들이 맘 놓고 공원에서 운동하도록 해 주세요. 그 공원 내가 만들었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사장님이 만드셨군요.”

형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하여튼 협조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아쉬운 듯 안방을 흘깃거리곤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형사가 나간 뒤 현관문을 잠갔다.

*

현수 아빠와 시장은 구속되었다. 현수 아빠의 경쟁건설업체에서 매번 관급공사에서 제외되자 시장과 현수 아빠 뒤를 밟아 비리를 캐어 검찰에 고소하였다고 했다.

현수 엄마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1심이 끝나고 현수 아빠가 대구 교도소로 이송 되자 현수 엄마는 서울 아들한테 갔다. 집은 전세를 주고 서울에서 방을 얻어 아들 밥을 해 주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현수 엄마가 서울 갈 때 버스터미널까지 배웅을 했다. 현수 엄마의 표정은 밝았다.

“운전 배워.”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그래야지 애 아빠 차 그냥 서 있는데. 정미 엄마 그동안 고마웠어. 서울 가면 운전도 배우고 여성회관 문화센터도 더 자주 갈 거야.”

현수 엄마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7공주 회원들은 여전히 오전에는 여성회관이나 도서관에서 문화 강좌를 열심히 들었고 오후엔 공원에서 운동을 했다. 여전히 누군가 강간을 당해 발가벗긴 채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산책로에 바바리가 나타난다고 했다. 그녀들은 소문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공원에 갔고 운동을 할 때마다 짜릿한 그 무엇을 느꼈다. 운동이 끝나고 집에 갈 때면 뒤꽂지를 누군가 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뒤를 돌아보거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현수 엄마의 일은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지나가는 말로라도 누구도 꺼내지 않았다. 모두들 가슴에 비밀을 품었다. 그녀는 가끔 그 일이 가물가물 떠오를 때면 진짜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기도 했고 혹 자신이 겪은 것 같기도 해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

 

소설집 <소도 (蘇塗)> <아버지의 알리바이> 서양화 개인전 1회. 웹진<문학마실>편집인. 한국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