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責任)

 

김재수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신발을 새로 사 오시면 꼭 고무신 코에 빨간 색실로 수를 한 뜸 놓아 주셨습니다. 이런 일은 초등학교를 거의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고 심지어 중학생이 되어 운동화에까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표시를 해 주셨습니다. 새 신발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는 할아버지의 배려였지만 난 빨갛게 수가 놓인 그 신발이 정말 싫었습니다.

우리 모두 경험이지만 그 시절엔 신발도 많이 잃어버렸지요. 학교에서 신발을 잃고 맨발로 터벅터벅 신작로를 걸어오는 날은 발바닥이 아픈 것 보다 어른들에게 들어야 할 꾸중이 무서워 가슴은 더 무거웠습니다.

이런 아픈 경험들을 가끔 생각나게 하는 곳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식당입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식당을 들어가다 보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이런 글귀가 보입니다.

‘신발 분실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 글귀를 보는 순간 솔직하게 그 식당을 나와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긴 장례예식장에 갈 때는 ‘헌 구두를 신고 가라’는 우스갯말도 있으니 ‘아직도 우리 사회가 신발을 훔쳐가는 사회인가’ 하고 쓴 웃음을 웃곤 합니다.

‘책임(責任)’이란 ‘맡아서 행해야 할 의무나 임무’라고 사전적 의미는 말합니다. 흔히 ‘고객은 왕’, ‘고객은 황제’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찾아오는 고객의 신발은 식당이 당연히 책임져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왕 같은 고객’을 향해 면전에서부터 ‘당신의 신발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은 고객을 우습게 보는 처사입니다.

오늘날 대부분 회사의 경영방침은 ‘고객중심’입니다. 다시 말해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생존이 가능합니다. 이 고객중심이 관공서의 민원실에도 적용되어 고객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신발을 책임지지 않는 다는 것은 고객중심이 아니라 결국은 ‘주인중심’의 영업일뿐입니다. 물론 식당에도 할 말은 있습니다. 분실한 신발의 종류, 브랜드, 가격 등 주인으로서는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고객의 말만 듣고 보상해 주는 일도 쉽지는 않습니다. 어떤 가게는 분실한 신발을 보상했더니 이를 악용하는 고객도 있더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고객의 신발을 보상해 주었을 때 고객이 가지는 신뢰의 가치와 또한 보상으로 인한 금전적 손해 중 과연 어느 것이 유익한 것인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입니다.

오늘도 저녁 시간에 식당엘 들렸습니다. 들어가는 정면 신발장 위에 어김없이

‘신발 분실은 책임지지 않습니다.’라는 표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귀중한 신발은 주인에게 맡겨 주십시오. 잘 보관하겠습니다.’ 이렇게 멋진 표어가 신발장 위에 붙어있는 가게를 상상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일까요? 허허 글쎄요.

 

 

 

어떤 경매(競賣)

 

경매란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여럿일 때 가장 높은 값을 부르는 사람에게 파는 일’을 말합니다. 경매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고미술품이나 보석과 같은 고가의 물건도 있고 때로는 연예인, 스포츠 맨, 또는 사회적인 지위를 가진 이들이 평소 아끼는 물품들을 목적있는 행사에 내 놓았을 때 경매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어느 TV 에서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에게 적절한 경제적 이익을 보장 하고 기업은 아이디어를 경매를 통해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매는 사고 판 사람은 기쁨으로, 미처 사지 못한 이는 아쉬움으로,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흥미로움으로 경매장을 가득 채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법원이나 집달관이 주도하여 동산이나 부동산을 경쟁하여 파는 경우, 물건을 싼값에 낙찰 받은 이는 기분 좋은 일이지만 파는 이의 입장에서는 가슴 아픈 현장일 수도 있지요.

그런데 참 아름다운 경매의 현장이 있었습니다. 이웃돕기 바자회가 열렸습니다. 원래는 경품으로 나온 자전거 6대를 주최 측에서 경매에 붙인 것입니다.

입담이 좋은 아마츄어 경매사가 가격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5만원부터 출발 한 가격이 조금씩 탄력을 붙이더니 이윽고 11만 5,000원까지 올라갔습니다. 첫 번의 자전거가 11만 5,000원에 팔렸습니다. 두 번째 자전거와 세 번 째는 12만원에 팔렸습니다. 이 경매를 지켜보는 손님들의 호기심도 점점 더해 갔습니다.

이윽고 마지막 자전거가 또 12만 5,000원에 팔렸습니다. 경매사는 모든 경매가 끝났음을 알렸습니다.

그 때입니다. 관중석에 앉아 있던 한 노인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아직 경매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자전거 한 대를 가져오겠습니다.”

모두들 의아한 눈으로 그를 봐라 봤습니다. 그는 어디선가 자신이 타고 다니던 중고 자전거를 번쩍 들어 무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비록 중고 자전거지만 좋은 일에 쓰십시오.”

어쩌면 장난 끼 있는 노인의 표정을 살피던 경매사는 호기심으로 다시 경매를 시작했습니다.

“ 자, 3만원부터 시작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중고 자전거는 마침내 6만원에 낙찰이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구입한 청년이 훌쩍 단상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그는 자전거를 끌고 한 바퀴 무대 위를 돌더니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자전거를 경매로 내어 주신 분에게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 비록 중고 자전거지만 좋은 일에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자전거는 저분의 유일한 교통수단임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분의 고마운 뜻은 마음으로 받고 이 자전거는 다시 그분에게 돌려 드리겠습니다.”

청년은 무대 위를 내려오더니 6만원에 구입한 자전거를 선뜻 그 어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터졌습니다. 가을 하늘이 놀랐는지 삽시간에 저녁놀을 비단처럼 펼쳐 내렸습니다. 이웃돕기 바자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아름다운 순간임을 모두들 가슴으로 마음껏 누리고 있었습니다.

 

 

상주아동문학회장.

낙서가 있는 골몰, 겨울 일기장, 농부와 풀꽃 동시집이 있고

사랑이 꽃피는 언덕, 하느님의 나들이 동화집과

트임과 터짐 산문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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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상산로 71-20 054-533-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