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

 

이 병 순

 

 

기타를 튕길 줄 알지만 걸터앉을 창턱이 없었던 내게 창은 마냥 스테인드글라스 사탕 빛 정서는 아니었다. 남녀 한 쌍이 별 박힌 하늘을 바라보며 와인 잔을 들고 있거나 누군가 열어젖힌 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창틀에 기대선 모습들은 창 아래서 연인을 향해 세레나데를 부르는 영화 장면처럼 실감나지 않은 이미지였다. 내게 창은 알맞은 양분의 햇빛을 관통시키는 프리즘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창은 프리즘도 사탕 빛 정서도 아닌 틀과 유리로 이루어진 건축구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깨달았다.

오전에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텅 빈 창틀을 언제 다 메울까 아득했다. 깨진 유리조각이 창틀 곳곳에 끼어 있었다. 나는 코팅장갑을 끼고 창틀이나 베란다 바닥의 유리조각부터 치웠다. 거실 베란다와 바깥 베란다 유리 모두 깨진 채 창틀이 뚫려 있어 28 층은 공중에 붕 뜬 것 같았다. 깨진 유리조각이 든 커다란 쓰레기봉투들이 베란다 한쪽 통로를 막고 있어서 작업하는데 거치적거렸다. 쓰레기봉투를 찢고나온 유리조각은 두껍고 날카로웠다.

과장을 따라다닌 지 열 달가량 동안 같은 집을 다섯 번 오기는 처음이다. A/S를 십 년 넘게 해 온 과장도 같은 집을 이렇게 자주 오기는 처음이며 새시에 묻은 가느다란 선 한 줄 갖고 보수수리를 신청하는 집도 이 집이 처음이라고 한다. 현관 입구에 있는 화장실 앞 마루판이 컵 받침 만하게 팬 것은 창틀 새시의 가느다란 줄에 비해 큰 하자인데도 집 주인 여자는 보수공사 신청을 하지 않았는지 올 때마다 마루판은 팬 채 그대로다. 과장 말 대로 여자는 창에만 붙어 있는지도 모른다.

사다리에 올라선 과장이 드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콧잔등으로 흘러내리는 안경을 밀어 올린다. 나는 잡았던 창틀을 벽에 기대세우고 과장한테 드릴을 건넨다. 치이잉. 과장이 드릴로 문고리를 겨누자 짧은 비명이 터진다. 과장이 입은 연회색 작업복의 왼쪽 가슴에는 ‘창에 대한 긴 생각’의 본사 로고가 붉게 박혀 있고 여기저기 허연 실리콘이 묻어 있다. 재바른 손놀림과 서두르지 않는 과장의 행동에서 오랫동안 현장을 누벼온 관록이 엿보인다. 과장이 문고리를 딸깍딸깍 매만지는 소리 사이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쇼 호스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자는 과장과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짜증어린 말투를 쏟아내던 때와 달리 오늘은 조용한 편이다.

이 집에 처음 불려 왔을 때는 창틀이 헐거워 유리가 흔들거렸다. 창틀을 조이고 실리콘을 먹여 틀에 유리를 고정시켜 주었다. 두 번 째 왔을 때는 문짝 손잡이 부분에 거뭇한 선이 쳐져 있어 제거해 주었다. 세 번 째 왔을 때는 베란다 맨 안쪽 새시문짝의 밑면에 못 자국 만하게 꺼진 홈이 있어 열풍기를 불어넣어 평평하게 펴주었다. 그것은 어지간한 눈썰미가 아니면 찾아내기 힘든 하자였다.

네 번 째 찾아온 그저께는 안쪽과 바깥쪽 베란다 유리문 모두 박살이 나 있었다. 관리사무실을 거치지 않고 여자 남편이 과장한테 전화를 했을 때부터 낌새를 알아차렸어야 했다. 서비스센터에 접수되지 않은 하자보수는 굳이 과장이 해주지 않아도 되지만 요즘 계속 이 단지를 돌고 있던 중이어서 우리는 지나는 길에 이 집을 들렀다. 깨진 유리는 A/S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과장의 말이 채 나가기도 전에 여자 남편은 다급하게 말을 뱉었다. 업무 중에 유리 때문에 잠시 들렀다는 그의 말투는 사정조였다.

“동네에 있는 유리 집에서 맞추는 것보다 이왕이면 이 아파트 시공업체에서 담당하는 유리가 낫지 않을까 해서 전화했습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여자는 그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샌들을 신은 발로 유리파편을 휘저었다. 유리조각에 여자의 발길이 닿자 짜랑짜랑 소리가 났다. 유리조각에 찍힌 거실 마루판 여기저기는 생채기처럼 긁혀 있었다.

“일단 유리조각부터 다 치우시고 다시 연락하십시오.”

과장의 말투는 차분하고 단호했다. 유리 파편을 발로 살살 밀어내며 딛던 과장의 모습은 현장 감식을 끝낸 노련한 형사 같았다. 공구함을 들고 과장 뒤를 따라 나가던 나도 조심스레 바닥을 디뎠다.

아령으로 유리창을 향해 던졌다지요, 아마. 오늘 오전에 과장과 내가 유리를 맞잡고 승강기에 타는 것을 본 경비가 몸서리치는 시늉을 하며 중얼거렸다. 경비는 우리가 유리를 맞잡고 경비실 앞을 지날 때마다 한 마디씩 보탰다. 여자의 남편은 지방의 고위공무원이며 며칠에 한 번씩 집에 들렀다. 여자가 베란다에 뛰어내리려는 것을 그녀의 남편과 아들이 붙들었다는 말을 하며 경비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파트를 돌아다니다보면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저절로 귀에 들어왔다.

창틀에 끼운 창은 문짝끼리 딱 맞물려 있다. 과장은 사다리에 한 발을 땅에 내리고 창틀 롤러 쪽을 훑어본다. 문이 쓰륵쓰륵 열고 닫힐 때마다 우기에 젖은 텁텁한 바람이 들쳐든다. 어둑한 숲이 반사된 창유리에 드릴을 쥔 과장의 옆모습이 흐릿하게 비친다. 어디선가 창문 닫는 소리가 탁탁 들린다. 밤을 맞는 소리는 창문 닫는 소리부터 시작된다. 일곱 시가 조금 지나 있다. 여느 때 같으면 A/S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도로 위에 있거나 사무실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을 시간이다.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수진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보면 어느새 내릴 때가 되곤 했다.

수진은 요즘 학습지 회원 수가 많이 늘어 집에 도착하면 거의 열 한 시라고 했다. 나는 수진을 만나기 위해 도서관에 갔지만 이제 수진은 도서관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수진은 교직 임용고시 준비 때문에 주말이면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했다. 몇 달 전부터 수진은 임용고시에 대한 불안감이나 시험을 대비하는 새로운 각오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두 번이나 연거푸 임용고시 시험에 낙방한 수진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수진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것뿐이라 여겼었다. 수진이 학습지 지국장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내 문자메시지에 답하는 걸 소홀히 했고 내 전화를 잘 받지 않았다. 그것은 도서관에도 나타나지 않은 시기와 비슷했다. 나는 답답한 마음을 친구 몇에게 털어놓았다. 친구들은 오래된 연인들이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수진이 제 발로 떠나는 걸 고맙게 여겨라 했다.

“자, 여기.”

과장은 창의 위 칸 손잡이를 잡으며 내게 드릴을 건넨다. 텅 빈 창틀은 번들거리는 유리로 다 메워졌다. 일머리를 훤히 꿰고 있는 과장이 아니라면 하루 만에 끝내기는 힘든 작업이었다. 과장은 내가 보조를 착착 잘 맞춰줘서 일이 순조롭게 끝난다고 하지만 나는 고작 유리나 창틀을 맞잡아주거나 창틀에 매달린 과장에게 연장을 건네주는 일밖에 하지 않았다.

내가 복학을 하고 회사를 그만 두면 누가 과장보조로 나설 것인지 과장은 벌써 걱정이었다. 2학기에 복학을 하려면 여기서의 아르바이트는 보름가량이면 끝이다. 회사에 처음 올 때는 생산 현장의 바쁜 일손을 거드는 게 내 일이었다. 생산 라인뿐만 아니라 포장이나 래핑까지 각 팀마다 일손이 모자라 과장 보조로 외근 나올 만한 사람은 마땅히 없었다. 회사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사람은 나뿐이었다. 낮은 임금에 비해 공단지역 주변의 집세는 비싼 편이라 일꾼 구하기는 어려웠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니면 물량을 제대로 출하해내지 못할 만큼 일손은 귀했다. 본사에서 지시하는 주문량과 주문날짜를 맞추려면 생산 현장은 늘 밤 9 시까지 기계를 가동시켜야 했다.

나는 생산품 작업지를 뽑아 복사를 해 현장에 보내고 공문과 팩스를 챙겨 본부장한테 보고하고 남는 시간은 래핑이나 포장 실을 오가며 모자라는 일손을 거들어야 했다. 래핑실에 늘린 체리 빛이나 원목 색을 입혀놓은 창틀을 보고 있으면 창틀에 비칠 풍경들이 머리에 스쳤다. 본사 광고모델인 여배우가 창을 어루만지며 ‘창에 대한 긴 생각은 당신에 대한 긴 생각이에요’라고 속삭이는 것을 들었을 때는 군 내무반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다. 대기업에서 새시문짝에까지 손을 뻗치는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 창에 대한 긴 생각을 하고 있기에는 생각할 게 너무 많은 제대말년이었다.

인문학부를 졸업해서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입학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대말년쯤 되니 그런 공부에 대한 회의감부터 들었다. 복학하지 않고 공무원채용시험 대비를 착실히 하는 게 실속 있겠다는 것과, 복학을 해 학교 다니면서 언론고시공채 준비를 할까하는 생각들이 오가기도 했고 무엇보다 평생 엄마 아버지가 꾸려왔던 철물점을 비워줘야 한다는 게 마음이 무거웠다. 집 주인이 집을 헐어 5 층짜리 건물을 지어 새로 임대를 하겠다고 했지만 새 건물에 철물점을 임대하는 가격은 비싸서 다른 곳을 알아봐야 했다.

제대한 지 며칠 만에 나는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군에 가기 전에는 독서실이 내 거처였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밥 먹을 때 말고는 대부분을 집 근처에 있는 독서실에서 생활했다. 좀 더 빨리 독서실을 거처로 삼아야 했었다. 고등학생이면 부모가 단칸방에서 다 큰 아들과 함께 자야한다는 게 얼마나 커다란 고역인가 알 만한 때였다. 창문으로 어두운 색 도배지로 모조리 가린 독서실이었지만 그곳이 우리 집보다 편했다. 커튼을 드리워 엄마 아버지 방과 내 방을 나누었지만 커튼은 휘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커튼의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거울에는 엄마 아버지가 다 보였다. 실금 같은 커튼의 틈이라도 거울로 보면 엄마 아버지 모습이 훤히 보였다. 자라면서 나는 커튼 사이로 벌어진 틈을 보지 않으려고 커튼을 등지고 벽을 향해 눕기 시작했다.

엄마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조금만 기다리면 창이 넓고 전망이 트인 곳에 내 방을 멋지게 꾸며주겠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보였다. 대형마트에서 공구나 철물을 팔기 시작하면서 철물점을 찾는 사람들은 나날이 줄었다. 겨우 세 식구 호구지책 하기에도 급급했다. 어릴 때부터 농짝에 창이 가려져있어 나는 창이라는 개념을 지니지 못했다. 다만 부모가 전망이 트인 창을 들먹일 때마다 창이 삶의 핵심 부품처럼 귀에 와 박혔다.

철물점 입구에는 개 줄이 주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바닥에는 똬리를 틀어 둘둘 말린 고무호스가 늘려있고 문 옆에는 삼지창처럼 마대가 버티고 있었다. 손님이 찾는 물건을 꺼내려면 선반에서 먼지가 풀풀 날렸다. 가게에 앉아 밖을 바라보면 호프집 간판 너머 역광이 비쳐 흘렀다. 역광은 우리 가게 유리문을 비추었고 그 빛은 호프집 유리에 되비쳤다. 유리끼리 반사된 빛이 우리 집에 어른거린 유일한 빛이었다.

넌 우리의 빛이다. 제대를 하던 날 아버지가 내 어깨를 두들기며 소주잔을 건네며 했던 말이다. 그것은 연기에 서툰 배우가 겨우 외워서 뱉는 대사 같았다. 빛이라는 말이 그토록 무겁게 들리기는 처음이었다. 엄마는 상추에 삼겹살을 싸서 내 입에 넣어주었다. 육십 살도 채 되지 않은 부모가 내 눈엔 노인으로 보였고 그들을 컴컴한 동굴에서 벗어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날 나는 삼겹살을 오래 씹었고 소주는 급하게 들이켰다.

“터치펜으로 여기 좀.”

과장은 새로 끼운 문짝의 흠을 손가락으로 짚는다. 새시 문짝에 난 작은 흠집은 터치펜으로 문지르면 감쪽같다. 흰색 래핑에 얼룩을 지우는 도구가 물파스라는 걸 아는 입주민은 거의 없다. 그들은 로고가 찍힌 작업복과 덜컥거리는 공구함을 믿음직스러워 했다.

“알았다니까요? 글쎄 잘 끼워졌어요. 네? 어디 걔만 고3인가? 고3, 고3 그만해요. 고3 엄마가 뭔 죄라도 지었어요? 일단 알았어요.”

여자의 목소리가 베란다로 흘러나온다. 우리가 처음 왔을 때처럼 다소 앙칼진 목소리다. G그룹이라는 대 기업에서 만든 창이 이게 뭐예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유리가 쑥 빠지겠어, 정말. 여자는 창틀에 벗겨진 실리콘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툴툴댔다. 우리 회사는 G그룹이 아니라 G그룹의 하청업체라는 말까지 여자한테 할 필요는 없었다. 과장은 여자가 가리킨 곳 말고도 흠집을 샅샅이 찾아 실리콘을 먹였다. 나는 커팅 칼로 창틀에 묻은 실리콘을 긁어냈다. 여자가 덜 마른 실리콘을 자꾸 손가락으로 문질러대는 바람에 짧게 끝날 일을 조금 지체했던 날이었다.

과장은 주스 잔에 빠진 날벌레를 손가락으로 건져내고 주스를 꿀꺽꿀꺽 마신다. 바지 뒷 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이 온다. 스팸이다. 핸드폰 바탕 창에 수진이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웃는 모습이 떠 있다. 제대하고 얼마 있다 수진과 함께 튤립축제에 갔다가 찍은 사진이다. 부재중 세 통 중에 두 통은 엄마한테 온 것이다. 끼니 거르지 말라는 똑 같은 말을 엄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했다. 나는 더 이상 수진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수진의 핸드폰에 표시된 부재중 내 이름이 문자메시라면 문자메시지일 것이다.

나는 창틀 홈에 유리 모서리를 끼우고 손바닥을 탁탁 쳐보지만 과장처럼 단박에 쏙 들어가지 않는다. 과장이 하는 게 쉬워보였던 것은 과장이 문을 어루만지는 게 아니라 문짝을 갖고 노는 것처럼 비쳤기 때문이었다. 과장이 내 반대편 문짝을 잡고 창틀을 기울여 유리를 톡톡 치니 유리는 창틀에 쏙 들어간다. 과장이 한쪽을 훌렁 들자 맞잡은 내 팔이 문짝에 딸려가는 것 같다. 창틀과 유리가 축축하다. 는개인지 안개인지 모르겠다.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면서 텔레비전에서 밤부터 비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도 나는 고시원의 창을 닫지 않고 나왔다. 그것은 창이라기보다 숨구멍 같은 쪽창이었다. 그 구멍으로 거미가 기어오르거나 날벌레들이 날아 들어오곤 했지만 요즘처럼 더운 때는 늘 열어두었다. 쪽창으로 팔을 뻗으면 옆 고시원 벽이 닿기 때문에 빗발이 들이칠 틈도 없을 터였다. 싼 월세에 비해 교통이 편리하고 주위의 싼 밥집도 많아 다른 곳으로 옮길 이유는 굳이 없었다. 간혹 고시원 주변의 편의점 앞에 놓인 간이 테이블에 나와 같은 고시원에 묵는 사람들이 맥주를 들이켜며 앉아 있곤 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나를 잡고 말을 했다. 갑갑해서 나왔슴다. 우리 고시원 말이오, 다 좋은데 창문이 좀 넓었으면 얼마나 좋겠소. 나는 쪽창이라도 좋으니 앞에 가리는 벽이 없었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답해 주었다.

“앞이 트였다고 모두 전망인 것은 아니라고. 김 군도 아파트를 많이 다녀봐서 알겠지만 창 앞에 볼 게 뭐 있었어? 전망, 전망들 하지만 정작 전망 좋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전망이라 하지 않지. 요새 사람들, 세계로 어디로 다니면서 좋은 것은 다 보고 사는데 뭘 더 보고 싶겠어. 사람들이 넓은 창을 원하는 것은 뭘 보겠다는 뜻이 아니라 누가 저들을 봐주기를 바라는 거지.”

얼마 전 이 아파트 109동에서 우울증을 앓던 중년 남자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이야기는 입주민들 사이에 쉬쉬하던 이야깃거리였다. 과장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베란다 창으로 뛰어내린 이야기는 또 언급하고 싶지도 않은 눈치였다. 좀 다른 방법으로 죽든가 하지, 참. 과장은 라디오볼륨을 더 높이고 가속기를 조금 더 세게 밟았다. 차창으로 바람이 펄럭펄럭 들쳐들었지만 나는 창을 쑥 내렸다. 과장의 말에 창밖이 절벽처럼 느껴져 섬쩍지근했지만 창이란 열어젖히는 맛이라는 게 창에 대한 나의 간명한 생각이었다.

제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버스를 탔을 때 나는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에 눈길을 주었다. 창으로 스치는 풍경에 눈길을 주고 있으니 내무반과 연병장을 누볐던 지난 시간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행군 때 발바닥이 갈라지는 듯한 고통과 특공훈련 때 무술 연습을 하던 것과 공수훈련 때 낙하하는 연습을 하던 것 등 힘들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시간만 흐르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러나 제대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자 답답했다. 창이라도 확 열어젖히고 싶었지만 내가 탄 고속버스는 창을 열 수 없게 되어있었다. 유리는 차고 단단한 벽이었다. 접촉되지 않는 바깥 공기는 풍경이 아니라 감질 나는 미끼였다.

아파트도 창 광고와 다름없이 풍경을 미끼로 삼았다. 사람들이 모두 창 앞을 서성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아파트 분양 광고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베란다 창 앞에 선 광고 속의 여자는 펄럭이는 흰 커튼자락을 살포시 거머쥐며 속삭였다. 나는 ‘창밖은 햇살’에서 살아요. 아파트 광고인지 창 광고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다니다보면 전망이 그럴싸한 곳이 많았다. 강줄기와 억새 숲이 보이는 아파트들, 구불구불한 기찻길이 펼쳐진 산 중턱의 빌라들, 바다가 훤히 보이는 마린시티의 타워들, 벽의 디귿자가 유리로 된 전원주택에 다녀온 날이면 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엄마 아버지의 골방이 떠올랐다. 엄마 아버지는 이사하면서 받은 전세금으로 예전에 받은 내 학자금 대출금을 갚아버렸다. 나머지 돈으로 집을 구하려면 전보다 더 나을 수는 없었다. 옮긴 철물점은 건물이 낡아 비가 많이 오면 벽에 물이 뱄고 창 앞에는 술 상자들이 쟁여져 있었다. 주점을 하는 옆집의 자지레한 물건들은 모두 뒷마당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둡고 습진 엄마 아버지의 방을 생각하면 내 마음은 눅눅했다.

유리에 빛이 달궈진 것만 보면 마음을 그 위에 올려놓고 싶었다. 가끔 사무실에서 복사물을 복사하기 전에 네모난 유리에 나를 비춰보았다. 복사기 유리 밑에 깔린 어둠이 투명한 거울이 되어주었다. 나는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턱밑의 뾰루지도 어깨의 툭툭한 살집도 제대하고 나서 생긴 변화였다. 복사기의 검은 유리는 우물 같았다. 아무런 특징 없는 스물다섯 살의 희멀건 얼굴이 검은 우물에 풍덩 빠져 있었다.

넌 우리의 빛이다. 아버지의 그 말은 ‘우린 너의 빚이다’라는 말로 울려 퍼졌다. 우리 조금 떨어져 있어 보기로 해. 떨어져 있다 보면 뭔가 좋은 해결책이 있을 거야. 스물다섯 살의 여자에게 동갑나기 예비복학생 연인이 어떤 존재인지 떨어져 있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 기계공학과도 졸업해 봐야 어차피 기름밥 먹어. 기계공학과가 바로 공돌이를 배출하는 과 아니야? 너 복학하지 말고 그 회사에 말뚝 박아. 공대 다니는 친구의 말이었다. 전공을 살려 취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정상적인 월급쟁이를 해서 평균적인 생활을 누리지도 못한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조바심이 약간 사라지곤 했다. 나는 우물을 휘젓고 싶어 복사기 전원을 켰다.

드르륵거리는 렌즈 조절기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시작’이라는 단추에 푸른 불빛이 들어오자 나는 복사기 뚜껑을 들고 유리판에 얼굴을 대고 버튼을 눌렀다. 위이잉 하고 복사기가 가동되면서 빛이 번쩍 터졌다. 눈이 부셨다. 옆모습도 찍고 손바닥도 찍었다. 용지 배출구로 빠져나온 비 포 용지는 검은 색이었다. 뭉텅 빨려 들어간 빛은 흔적도 없었다. 시커먼 용지를 꾸깃꾸깃 접어서 쓰레기통에 넣는데 본부장이 인터폰으로 나를 불렀다.

“할 일이 없나? 저것 보라고, 본사에서 막 부려놓은 자재를 실장 혼자서 자재실에 옮기고 있다구. 어서 가서 자네가 맡아하게.”

본부장이 가리킨 곳은 벽 모퉁이에 달린 CC카메라였다. 거기에는 다섯 개의 CC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자재실, 래핑실, 포장실, 창틀 생산 라인, 사무실 등의 모니터에 나타난 사람들의 움직임은 꿈틀거리는 아메바 같았다. 어깨에 멘 새시뭉치들을 자재실에 쟁여놓는 실장의 모습도 보였다. 자재과 박 반장이 자는 모습을 잡은 것도 CC카메라였다.

박 반장은 정상 업무를 마친 뒤 밤 열 두 시까지 경비를 서서 업무 외의 수당을 챙겨야 아이 셋 뒷바라지를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잠이 모자라는 그는 점심을 일찍 먹고 자재실에 가서 자곤 했다. 점심시간이 끝난 줄도 모르고 계속 자던 그는 CC카메라에 잡히고 말았다. 그 뒤 회사 여기저기에는 CC카메라가 몇 대 설치되었고 본부장은 박 반장에게 경비 업무를 보지 못하게 했다. 박 반장은 얼마 있다 회사를 그만두었다. 박 반장이 그만 둔 뒤 현장의 생산량은 다른 때보다 더 많다는 말이 들렸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1 층에서 살았어요. 베란다에 방범창을 가린 거기는 감옥 같았어요.”

언제 왔는지 여자가 베란다 문턱 앞에 서서 중얼거린다. 여자는 거실 벽에 기대 세워진 가족사진 앞에 서 있다. 가족사진은 이 집에 올 때부터 안방 입구의 벽에 세워져 있었다. 사진 속의 여자는 웨이브 진 단발머리에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다. 안경을 쓴 여자 남편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아들은 여자 옆에 앉아 있다. 저때의 여자는 베란다 창가에 놓인 티 테이블에 앉아 남편과 찻잔을 기울였을지도 모른다. 계절마다 커튼을 바꿔 달고 그 앞에 예쁜 꽃병을 놓았을지도 모른다. 창 앞에 서성거리는 것만으로 행복했을 시절이 분명 여자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우울증은 남 얘기인줄 알았을 것이다.

“이곳으로 이사 오고부터는 덜 마른 옷을 입은 것처럼 몸에 젖은 습기가 기분 나빠. 아저씨, 다른 아파트들도 이래요?”

베란다 안쪽에 있는 과장은 여자 말을 듣지 못한 것 같다.

“이 아파트는 강을 끼고 있는데다 오늘 날씨까지 이러니 더 그렇겠지요. 이 아파트 25 층 이상에 사는 입주민들 중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다고 하는 집이 더러 있더라고요. 안개가 걸쳐지는 지점이라서 그러던데요.”

나는 그동안 보고 들은 깜냥에서 아는 체 했다. 여자는 우리를 볼 때마다 이사 온 이곳이 싫다는 불만을 나타냈다. 변기와 세면대가 모델하우스에서 본 것과 다르다든가 지하주차장에 고인 빗물이 웅덩이 같다는 말은 그렇다 쳐도 숲에 바바리맨이 숨어있다는 말을 할 때 여자는 꼭 여중생 같았다. 저 숲에 바바리맨이 숨어 있어요. 숨어 있다가 으쓱할 무렵에 아파트 뒷길에 나타나 여자들 앞에서 바바리자락을 젖힌다더라고요. 바바리맨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면서 호기심이 도사린 말투였다.

바바리맨이 바바리자락을 펼쳤을 때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면 그는 바바리 자락을 펼치지 않을 걸? 바바리 자락을 펼치는 순간, 괴성을 지르며 달아나는 여자가 있어야 그가 재미를 느끼겠지. 김 군은 폭우가 쏟아지는 높은 산봉우리에 홀로 서 있는 것처럼 외로울 때가 없었나? 아마 처음부터 바바리맨으로 타고난 사람은 없을 거야. 모든 것을 창과 연결 지어 이야기하는 과장의 말이 재미있었다. 그때 차창 너머로 바라보이는 아파트 창들 모두가 바바리자락처럼 보였다.

“아, 연락드린다는 게 깜빡 했네요. 여기서 마치면 바로 가겠습니다. 사모님이 도착하는 시간과 비슷하게 이곳 일도 마쳐질 것 같습니다. 예, 있다 뵙죠.”

맞벌이하는 입주자들의 하자보수 수리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이 퇴근한 뒤 찾아야 했다. 과장이 받은 전화는 며칠 전에 접수된 105동의 롤러 교환 건일 터였다. 밤 업무는 주로 과장 혼자 했다. 먼저 퇴근하는 내가 미안해하자 과장은 아무도 없는 빈집에 들어가기 싫어 일부러 밤일을 만드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말고 나 먼저 퇴근하라고 했다. 빈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과장과 결혼할 뻔 했다는 여자가 궁금했지만 물을 용기는 없었다. 혼자 빈 집에 들어서는 마음은 과장이라고 나와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았다.

두 달 전쯤 회사 회식 때 나는 술을 좀 마셨다. 여느 때는 회식자리에 끼지 않거나 끼더라도 나는 술을 마시지는 않았다. 늦게 시작한 회식자리였기 때문에 다음 날 아침 여덟 시까지 출근하려면 2차까지 갈 여유는 없었다. 더러 몇 사람은 2차를 가는 듯했지만 과장과 나는 자리를 빠져나왔다. 나는 과장이 자기 집에 가서 자고 다음날 함께 출근하자는 말에 따랐다. 과장 집은 원룸이었지만 베란다와 넓은 창도 있었다. 블라인드가 창을 가렸어도 공단지역이라 창밖 풍경은 짐작할 수 있었다. 창틀에 담배꽁초가 드문드문 끼어 있었고 베란다 한쪽에는 빈 소주병과 빈 맥주 캔이 수북했다.

입가심 해야지. 과장은 거실 바닥에 캔 맥주를 내려놓으며 텔레비전을 켰다. 우리는 텔레비전 마감뉴스에 눈길을 주면서 맥주 캔을 하나하나 비워냈다. 복학은 하라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학교를 다니면서 고민하고. 그날 과장도 대학교 2학년까지 마치고 군에 갔다가 제대를 한 뒤 복학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과장이 군에 가기 전에 사귀던 여자 얘기를 하는 바람에 나도 수진 얘기를 해버렸다. 그 아가씨가 김 군이 제대할 때까지 기다린 게 실수고, 김 군이 그 아가씨와 끝내지 않고 군에 간 것도 실수고. 과장은 알아듣기 어려운 알쏭달쏭한 말을 중얼거리며 소파 밑에 있던 무협지를 당겨 베고 누웠다. 잠든 과장의 얼굴 그 어디에도 커다란 창틀을 훌쩍 들어 올리던 기운 찬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새벽 한 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고 어두운 창밖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오렌지 빛 가로등이 희미했다. 그 빛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창에 엉겨 붙은 날벌레들이 꼼지락거렸다. 나는 수진에게 전화를 했다. 발신음이 떨어지자 이내 끊었다. 발신버튼을 눌렀다 끊었다 서너 번을 반복한 뒤 나는 바탕 화면에서 웃고 있는 수진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 뒤 나는 일을 마친 뒤 과장과 가끔 회사 부근의 피시방에서 'WAR ROCK'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윈도라는 영어자막이 뜨면서 퍼런색 화면이 떴다. 피시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컴퓨터 창에 펼쳐진 장면과 대화를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화면을 보며 웃는 사람, 인상을 찌푸린 사람, 입술을 실그러뜨리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 등 표정은 갖가지였다. 모두들 키보드를 다급하게 누르고 있었다. 나는 게임을 멈추고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나마나한 복학수속을 또 훑어보았다.

홈페이지 창 사진에는 대학생들이 책을 안고 활짝 웃으면서 본관 앞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모습들이 실려 있었다. 사진 속의 학생들은 나보다 몇 살 적을 뿐일 텐데 나는 그들보다 열 살 이상이나 더 먹어버린 느낌이었다. 아르바이트 일거리들을 훑어보았다. 시급을 많이 주는 곳은 여전히 치킨 배달원이었다. 복학을 한다는 것은 치킨 배달원이 된다는 뜻이었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과장의 창을 엿보았다. 과장의 창에는 ‘GAME OVER'라는 자막이 깜빡거렸고 과장은 의자에 기대 졸고 있었다. 컴퓨터의 알록달록한 화면은 충혈 된 눈동자 같았다.

“영수증입니다.”

과장은 여자에게 창 설치대금 영수증을 내민다.

"한 번 확인해 보시고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십시오, 그럼.”

과장은 접은 사다리를 옆구리에 끼고 현관을 향해 걷는다. 여자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고 거실 베란다 창틀을 잡고 서서 바깥을 바라본다. 어둠이 꽉 찬 창은 맑은 거울이다. 거기에는 과장의 뒷모습과 창턱을 딛고 선 여자의 모습과 공구함을 들고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이 비친다.

여자는 베란다로 내려서서 창을 손으로 쓰윽 문지른다. 여자가 창에 다가갈수록 부스스하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싸인 여자 얼굴이 또렷하게 비친다. 여자는 창밖에 서 있는 것 같다. 여자가 달그락거리며 갈고리를 만지는 소리가 창에 노크를 하는 것처럼 들린다. 여자가 창을 열자 빗소리가 세차게 들린다. 방충망 얼개 사이로 빗물이 들쳐드는데도 여자는 창 앞에서 꼼짝 않고 그대로 서 있다. 나는 실리콘 튜브와 커팅 칼을 주워 공구함에 챙겨 넣고 여자에게 인사말을 건넨다. 여자는 내 말을 듣지 못했는지 뒤돌아보지 않는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이 온다. 엄마다. 전화기를 귀에 대면서 현관문을 나온다.

빗줄기는 굵다. 아파트 뒤 공터에 주차된 차는 우리 트럭뿐이다. 나는 조수석 뒷자리에 공구함을 놓고 의자 레버를 당긴다. 과장은 트럭 시동을 걸어 둔 차창 앞으로 가 와이퍼를 들고 젖은 방문차량 스티커를 걷어낸다. 차창에 흐릿하게 비치는 과장의 얼굴에 창 앞에서 꼼짝하지 않던 방금 전의 여자 모습이 겹쳐진다. 창에만 붙어있는 사람은 여자만이 아닌 것 같다. 앞이 너무 어둡다. 나는 운전석으로 몸을 기울여 쌍 라이트를 켜준다.(끝)

 

 

 

 부산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끌’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