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저편

 

박 문 구

 

 

입술과 목이 계속 말라 갔다. 낮 열두 시. 2리터짜리 석수를 벌써 두 통째 마시고 있지만 그것도 이미 달리는 봉고의 요동에 따라 물통 바닥에서 찰랑거렸다. 하늘에는 뭉툭뭉툭 흩어져 떠 있는 흰 구름 몇 점이 낮은 구릉 위에서 정물화처럼 박혀 있다가 가끔 부는 약한 바람에 천천히 이동했다. 다시 물통 뚜껑을 열면서 운전기사 옆에 앉아 정면만 응시하는 규호의 뒷머리에 대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야, 다 와 가는 거야?」

아주 낮게 천천히 물었지만 그 속에는 목마름에 지친 나의 짜증이 숨어 있었고 규호는 물론 그 말의 속뜻을 금방 알았을 것이다.

「거의 다 왔어. 좀 서둘지 말고 느긋하게 기다려야 이놈아. 여기서는 급한 놈 못 사는 곳이라는데 자꾸 그러네.」

도착한 지 이틀째부터 입안이 깔깔해지기 시작하더니 오늘 4일째에는 증세가 더 심해졌다. 그냥 목만 마르면 냉수로 적시면 되겠다지만, 입 안 전체가 바짝바짝 마르는 것뿐 아니라 아예 입술 언저리까지 죽죽 갈라지는 형편이었다. 물을 입 안 가득 넣고 몇 번 입 속에서 물을 굴리다가 시원한 물기가 머릿속까지 적셨다고 생각되면 조금 마신 후, 남아 있는 물로 혀를 가능한 한 길게 내밀어 입 주변을 둥글게 핥아댔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잠시 후면 다시 바짝 마른 입술이 쩍쩍 붙으며 갈라지는 것이었다. 달아오른 대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낮의 열기마저 갈라지는 입술에 한몫했다.

눈길이 닿는 곳은 오직 발목에도 미치지 못할 키 작은 풀로 덮인 대초원과 평면으로 펼쳐진 지평선의 단조로움에 조금씩 변화를 주는 야트막한 구릉뿐. 그 사이를 질주하는 국산 그레이스 봉고의 딱딱한 좌석에서 우리는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의 장관만 계속 보고 있었다. 그 광경은 동일 장면을 연속으로 찍어낸 필름을 보는 것처럼 계속 이어져서, 바라보는 나는 혀뿌리가 뽑힐 정도로 길게 혀를 내밀어 연신 입술 주위를 핥아댈 일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나마 가끔씩 그들의 주거지인 겔이 멀리서 보이고 그 주변에 말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움직임의 맛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이 없다는 것.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아득한 저 멀리 얕은 구릉이 지평선을 이루고, 그 지평선과 하늘이 맞닿은 부분이 푸르스름한 몽환의 세계를 펼쳐내는 광경은 나에게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경이로운 것이었다. 지난 시간, 숱한 사람들과 부딪쳐 온 그림들로 이루어진 내 머릿속을 다 지워버리고, 다시 백지 위에 원시의 광막함을 가득 담은 새로운 그림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나로서는 손 댈 수 없는, 이곳 사람들의 삶만이 스며든 곳에서 난 값싼 이방인으로서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다시 목이 말라 물통을 통째로 입에 쑤셔 박았다.

아랫배에 다시 묵직하게 통증이 왔다. 역시 이곳에 와서부터 목마름과 함께 나타난 증상이었다. 도무지 시원하지 않았다. 밤에 우리나라의 보통 여관 급 정도인 이곳의 호텔에서 몇 번이나 배변의 욕망을 풀고자 노력했지만, 헛방귀 끝에 토끼똥만큼 떨어지는 느낌 이외에는 답답하게 고여 있는 내 몸의 찌꺼기가 그저 아랫배 속에서 묵묵히 남아 있었다. 그놈은 내가 이곳에서 지낼 십여 일 동안 나와 같이 먹고 자고 움직일 생각으로, 내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술로 엷어진 대장 속에서 죽치고 있을 것처럼 생각됐다. 나는 평소에는 배변의 습관이 철저하게 몸에 배어서 아침 세수 전에는 반드시 변을 시원하게 보고야 모든 일을 시작했었다. 그저 변기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간밤의 내 모든 영양식의 잔해가 너무나 쉽게 빠져나왔다.

「평소에 변 한번 시원하게 보는 것이 소원이요.」

언젠가 공무원인 사촌 동생이 90킬로의 거대한 몸뚱이를 삼겹살이 익어가는 술상 앞에서 비스듬히 뒷벽에 기대며 하던 답답한 말도 난 그냥 우습게 지나쳤던 일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 말이 유독 기억에 남은 것은, 모두들 맛있게 먹고 마시던 사촌들과의 오랜만에 갖는 저녁 식사에서 가장 몸이 비대하면서도 도무지 젓가락을 대지 않고 퉁퉁한 몸만 이리저리 흔들어 대던 그의 커다랗고 다분히 우스꽝스러운 얼굴 탓도 있었지만, 맛있는 음식 앞에서 그의 몸짓만큼이나 서툴게 새어나오는 그의 몇 마디 단어가 나를 눈살 찌푸리게 했던 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를 괴롭혔던 변비의 고통을 그때는 이해하면서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생각되었지만, 막상 이곳에서 그 고통이 나에게 다가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기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벌써 3일째.

현지인 기사를 포함하여 모두 다섯인 우리는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에 눈길을 보내면서도 그것들을 익히 알고 있었던 양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잡담을 풀어내거나 아니면 규호에게 하릴없는 물음을 던졌는데, 그러나 던지는 말도 되던지는 말도 서로의 시간을 조금씩 잠식해 들어간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딱히 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건조하고 지루해서 날짝지근하게 느껴지는 시간의 틈을 농담으로 메우면서 우리는 계속 나아갔다. 야트막한 언덕 옆을 지나가자 길 오른편으로 나무가 우거진 그 틈에 뭔가 햇볕에 반짝였다.

「형! 저기 냇가에서 좀 쉬다 갈까?」

운전석 뒤 여자 곁에 앉아 말 한마디 없이 잠잠하던 병호도 그것을 본 모양이었다. 지루한 얼굴로 뒤돌아보며 말했다.

「야, 규호야. 좀 쉬었다 가자. 저 냇가에서 얼굴도 좀 씻고……급한 일 있나.」

규호가 현지말로 운전기사에게 뭐라고 중얼거리자 봉고는 길 한편으로 비스듬히 섰다. 모두들 구겨진 몸을 펴면서 나와 옷을 털었다. 막막한 초원에서 차가 다니는 황톳길은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워낙 요철이 심하고 굽이가 많아서 속도를 낼 수 없는데, 그나마 조금이라도 속도를 줄이면 뒤에서 불어오는 황토먼지가 그대로 차창으로 밀려들어 와서 차 안은 먼지로 가득 차 버렸다. 우린 먼지를 털면서 냇가에 얼굴과 손을 씻었다. 신기한 장면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이 초원 한복판을 사행(蛇行)하면서 흘러가는 냇물을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저 넓은 초원과 푸른 하늘과 힘찬 말과 한가한 양떼의 상상으로 우리 머릿속은 가득 차 있었으니까. 더구나 버드나무와 자작나무가 냇가 주변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광경은 저 멀리 뻗어나간 초원만 아니었더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고향 언덕을 연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는 습기를 머금은 풀밭 위에서 시원하게 흐르는 냇물로 얼굴과 손을 씻었다. 냇물은 이곳 더위와는 다르게 아주 차가왔다. 나와 규호, 병호와 그가 데리고 온 삼십 대의 애화라는 여자, 그리고 퉁퉁하게 살이 붙고 검게 타서 뒤웅스럽게 보이는 사십 대 운전기사 엘카, 이렇게 다섯은 먼지투성이의 옷을 털면서 굳은 몸을 폈다. 대학 동창인 규호는 이곳 몽골에서 8년째 살아가고 있어서 거의 현지인이 다 됐다. 현지어를 유창하게 할 뿐 아니라 그들의 습관과 풍습을 본능적으로 몸이 익혔다. 더구나 인적 관계의 다양함으로 인해 울란바토르 시내에 펼쳐 놓은 네 군데 사업장은 그런 대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였다.

「애화씨도 얼굴을 씻으세요. 아주 시원한 게 정신이 번쩍 듭니다.」

손만 살짝 씻고는 우리들 뒤에서 서성대고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그러나 난 여자가 결코 얼굴을 씻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 병호 녀석이 데리고 왔을 때부터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키를 숨기고자 밑창이 거의 5센티나 될 정도의 높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인천 공항에서 만날 때부터 여자는 거울이나 유리창만 보이면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얼굴 화장이나 옷맵시를 고치곤 했다. 그리 길지 않은 머리를 참새 꽁지처럼 뒤로 묶어서 산뜻하고 젊은 맛을 보이고 있었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얼굴 이곳저곳에 살짝 드러난 주름살을 짙은 화장으로 숨기고 있었다. 눈이 유난히 작았고 턱이 약간 길게 느껴져 반드레한 모습이었다. 눈썹을 밀어버리고 아이펜슬로 짙푸르게 가느다란 반달 모양으로 그린, 때문에 훤한 대낮의 세수란 아예 금기일 것이라는 것도 짐작했다.

「전 괜찮아요. 물이 굉장히 시원하군요.」

세수를 하면서 난 그녀를 보았다. 앉아서 손을 씻고 있었다. 손마디에 살이 별로 없고 가늘게 말랐다. 그러나 그녀의 엉덩이는 밋밋한 가슴과는 달리 통통하니 살이 붙어서 가느다란 허리를 받쳐주고 있었다. 허리띠 없는 푸른 청바지와 녹색 짧은 상의 사이에 허연 뒷등이 드러났다. 그 밑으로 살짝 검은 망사의 팬티가 보였다. 어제는 흰색 팬티를 입었었다. 그녀는 상의를 정확하게 바지 허리선에 닿도록 상의 아랫부분을 그 선에 맞추고 남은 부분은 안으로 접어 넣었으므로 식사 때 의자에 앉거나 조금이라도 허리를 굽히면 허리 살과 속옷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때로는 마주 보며 이야기할 때 상체를 위로 살짝 젖히면 깨어진 흰 바둑돌 같은 배꼽도 볼 수 있었는데, 그런 점에 그녀는 신경이 가는지 가끔 웃옷을 잡아 내리기는 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매를 숨기는 척하면서도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보이면서 자신의 날씬한 허리선을 자랑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병호는 물론 이런 점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었지만 그저 슬슬 웃고만 있었다.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가벼운 역겨움 정도는 이런저런 여자들 틈에서 많이 겪었던 터이므로.

다시 차를 탔다.

2

오후 한 시를 넘기고부터는 초원을 가르는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달렸다. 말만 포장도로였다. 사이사이에 이빨 빠진 듯이 싯누런 황토가 벌려 있어서 엘카는 계속 곡예운전을 했다. 우리들의 일정은 국립공원인 헤렐지를 들르고 돌아오는 길에 얼림벌랑이라는 분지에 있는 유목민 통나무집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규호는 헤렐지는 못 가더라도 얼림벌랑만은 반드시 보아야 한다고 우겼다. 왜냐고 물으면, ‘가 보면 안다’는 한 마디로 우리들의 입을 막았다.

「저어기, 저것 보이지? 여기가 한국의 소금강처럼 유려한 곳이라고. 깎아지른 산도 있고 깊은 강도 있고, 나무도 울창한 게 딱 소금강 닮았어.」

운전석 옆에 앉아 얼굴을 뒤로 돌리면서 손짓하는 차창 밖의 풍경은 그가 말하지 않더라도 좌석의 맨 뒤에 혼자 앉아 있는 나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가파른 돌산과 그 사이사이에서 힘들게 솟아 있는 수목들이 검게 드러났다. 나는 ‘이런 메마른 곳에도 숲이 우거져 있구나’ 하는 정도의 감흥밖엔 일어나지 않았다. 비록 메마른 곳이라도 하늘과 땅과 물이 숨 쉬고 있고, 당연히 수목도 깊이 박혀 있을 터였다. 울란바토르를 안고 흐르는 톨강의 울창한 숲과 벌판을 사행하는 강물의 깊이와 수량을 보아온 우리에게는 그리 새로운 풍경은 아니었지만 규호는 ‘그래도 이런 곳에 저런 것도 있네’ 하는 어투로 오사바사하게 설명했다. 난 귀를 기울이는 척했다.

다시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내 머릿속은 정선 골짜기를 그리고 있었다. 화암 약수터의 가을은 현란했다. 맑은 약수가 흐르는 계곡과 그 곁을 따라 길게 이어진 식당, 기념품 가게, 한적한 여관까지 모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짙붉은 단풍으로 덮인 지표에서 슬며시 솟아오른 조형물이었다. 약수와 어우러져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물도 그 밑바닥은 온통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깔려 있었다. 그곳에서 일주일을 그와 같이 보냈다. 그리고 그는 떠났다. 이것저것 자기중심으로 요구만 하는 까다로운 여자들 숲에서 직장 생활을 해 오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동안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시달림을 받았다는 느낌만 던져 주고 그는 떠났다. 마흔 중반까지 지방의 금융회사에서 지내오면서, 복잡한 업무보다도 그들을 관리하면서 다가왔던 많은 여사원들의 터무니없는 생태를 보아 온 나는 단순하면서도 표정 하나, 간단한 단어 하나로 자신의 의사를 나타내는 그의 명료한 머리 구조에 마음을 던졌다. 우리는 긴 이야기가 필요 없었다. 그의 이야기는 항상 한 발 앞에서 살아 움직였다. 내가 첫마디를 시작하면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서너 마디를 듣고는 즉시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몇 발자국 건너편에서 짧은 말로 내 생각의 끝을 마무리하곤 했다.

처음, 그곳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우리가 보아온 세계의 평범한 그림을 한순간에 지워버리고, 새로운 화선지에 엷은 녹색과 주황색, 핏빛이 혼합된 그 모든 풍경을 옮겨 놓은 듯한 계곡의 가을 속으로 서슴없이 뛰어들어 두 팔을 푸른 하늘로 뻗어 올리고는 크게 소리쳤다. ‘화이야―’하는 외침의 순간 탄탄하게 부풀은 그의 가슴과 함께 나는 십 몇 년의 출퇴근에 짓눌린 마음을 계곡 속으로 던져버렸다. 앞으로 전개될 불확실한 시간이 슬며시 끌어당기던, 망막하고 어두운 미래도 순간 잊어버렸다. 승진이라는 도가니 속에서 우글거리던 동료들의 영상도, 그들과 별다른 척하면서도 틈틈이 책과 씨름하던 지난 모든 일들도 버렸다. 승진에 탈락되던 그 순간의 모멸감과 아내와의 별다른 상의도 없이 종이 하나로 직장을 떠나던 그 씁쓸한 마지막 날도 잊었다. 그리고 아이의 사건도 잊어버렸다. 우리는 일주일을 보냈다.

언덕을 넘자 아래편으로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넓은 평야에 두 줄기의 강물이 합수하여 수목이 울창한 협곡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사이에 현대식 호텔과 상가가 보였다.

「저기야! 울란바토르 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한 곳이지. 돈 있는 놈들이나 애인 데리고 하룻밤 자고 가는 덴데, 일반인들의 한 달 생활비가 몽땅 빠져나가니 함부로 올 수가 없는 곳이지. 아마 한국인들이 태반일 걸. 여름 한 철은 한국 놈들이 먹여 살린다고.」

차츰 가까워질수록 숲은 더욱 높고 무성해졌다. 건물들을 언덕 위에서 볼 때는 여름의 땡볕 아래에서 자글거리는 것 같았는데, 다가갈수록 무성한 숲의 그늘 속에서 서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3층 호텔 앞에서 내렸다. 관광객들은 모두 더위를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밖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호텔 뒤쪽의 강가 숲에서는 띄엄띄엄 모여서 햇볕을 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규호는 우리를 냇가로 데리고 갔다. 엘카는 우리를 내려놓고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작은 아치를 건너서 두 갈래 강물이 아우러지는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 일 년에 3백 밀리도 채 안 되는 강수량이라 햇볕 아래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솟았지만 그늘로만 들어가면 습기가 없어서 아주 시원했다. 나는 신과 양말을 벗어치우고 바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태백의 깊은 산중에서나 맞을 싸늘한 한기가 발바닥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갔다.

「굉장히 차네! 너무 차! 물도 참 깨끗한 게 그냥 마셔도 되겠어.」

「한국에서는 일급수다. 그냥 마셔도 돼. 강 위쪽엔 원시림뿐이니까. 물고기도 팔뚝만한 것들이 우글대는데 몽골인들은 물고기를 잘 안 먹지. 그러니 더 올라가면 물 반 고기 반이라니까.」

병호와 여자는 머뭇거렸다. 내가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자 마지못한 듯 여자가 들어왔다. 굵은 종아리가 유난히 희게 보였다. 병호는 그냥 그늘 아래의 썩은 통나무 토막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병호씨도 들어가 봐요. 몽골에서도 설악산 골짝 물맛이 살아 있으니까.」

규호는 바지 아랫단을 무릎 위로 말아 올리고는 물속으로 들어가면서 말했지만 병호는 씨익 웃을 뿐 담배만 부지런히 빨아댔다.

「야, 혁민이, 어떠냐? 말라비틀어진 한국에서 우글대는 것보다 여기가 낫지 않냐? 좀 생각을 바꿀만한 곳이잖아?」

「여긴 여기대로, 거긴 거기대로……. 전 단지 잠시 떠나서 있을 곳일 뿐, 다른…… 의미는 없어요.」

규호가 나에게 말을 던졌지만 담배만 줄곧 빨아대던 병호가 불쑥 말했다. 역시 얼굴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도착하던 날만 좀 밝은 표정을 지었을 뿐 그 다음날부터는 얼굴의 실근육 하나까지도 굳어버린 석고처럼 변함없이 그저 묵묵할 뿐이었다. 울란바토르에서 이곳까지 오면서도 별로 말이 없었던 그였다. 올해 갓 마흔인 병호의 호리호리한 몸집에 어울리게 목소리는 평소 가늘었지만, 지금은 말을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내뱉듯이 말했다. 난 이미 병호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특히 병호에 대한 여자의 반응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두 남녀의 관계를 병호에게 직접 들은 바는 없었지만, 또 병호가 그런 일들을 나에게 말할 녀석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근 이십 년 간 우리들이 함께 한 모든 일들에서 병호의 세세한 성격 정도는 손금 보듯 알고 있었으므로 이곳까지 와서 씁쓸하게 뒷모습 보이듯 하는 일탈의 한 부분을 흥미 있게 보고 있었다. 건축사인 병호는 내 고등학교 후배이자 술친구로 지내왔었다. 특히 역사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편으로, 그의 서재는 온통 역사서, 그 중에서도 고대사에 관한 서적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아직 마흔의 나이로 보이지 않은 맑은 얼굴이지만 한번이라도 관심 분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반드시 자신의 논리로 끝장을 보는 성미여서 나는 가끔 그와 다투는 일이 많았다. 그런 녀석을 이곳으로 가자고 내가 슬며시 꼬이자 바로 ‘그럽시다’ 한마디로 옆에 여자를 붙이고 공항에 나타났다.

「넌 탈출이지, 난 여행이고. 마침 여긴 규호도 있고 해서 온 거지만.」

난 어색한 분위기를 돌리고자 떠들었다. 규호는 물론 그 의미를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친구였다. 경영대학 전체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4년 학자금 면제의 혜택 속에서 졸업한 후 우수한 성적으로 회사에 입사했다. 녀석은 그 후 화장실에 가서도 영어 회화 서적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뛰어난 업무 능력을 인정받고 미국과 프랑스에 십 년이 넘도록 주재하고 돌아왔을 때 이미 그가 차지할 자리는 없었다. 중요 부서는 명문 출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그들의 세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실력이란 종이 한 장 차이로 인식되는 세계에서 지방대 출신으로 인맥 하나 없는 규호의 입지는 극히 좁아져 있었다. 발붙일 곳 없었던 그는 결국 회사를 나왔다. 몽골은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원시의 공간으로 그를 받아들였다.

「아니, 형은 너무 단순하게 말하네. 잘 알고 있으면서도……. 형이 여행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현실에서 잠시 피한 것이고, 난 말로는 잠시 머물 곳이라 했지만 나야말로 여행이란 뜻에 가깝겠어.」

병호는 썩어서 부석대는 나무 등걸에 앉아서 계속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그는 여자를 의식적으로 멀리 하는 기색이었다. 사실 그건 이미 도착한 그 다음날부터 알고 있었다. 같이 왔으면서도 병호는 여자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에만 신경을 써 줄 뿐 그저 방임하고 있었고, 여자도 여자대로 그의 가벼운 대화에 마지못해 대답은 하지만 친밀감 있는 분위기를 거부하는 표정을 보였다. 몽골에 온 지 사흘 된 아침, 병호는 나에게 말했다.

「저 여자, 공주병이 돋쳤어. 난 여기 데려오면서 그걸 굉장히 걱정했는데, 결국 어딜 가야 말이지. 남자들이 치켜세우니까 아주 부웅 떠버린 거야. 왜, 도착한 첫날밤에 규호씨 몽골 친구들과 같이 술 마셨잖아? 그때 규호씨와 몽골인들이 치켜 주니 아예 뿌리까지 녹아버린 거라고.」

「그래서, 너가 뭐라고 한마디 했을 것 같은데?」

「뭐라긴 내가 뭐라 해? 그냥 내 생각대로 말해줬지 뭐. 그러니 저 모양이야.」

병호가 무심하게 말은 하지만 이미 그는 여자를 마음속으로부터 떠나보냈음이 틀림없었다. 병호가 7년여의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언했을 때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이든 했어야만 했다. 십대 말엽부터 같이 지내온 후배의 현실에 대한 작은 조언이라도 했어야 했지만, 그러나 난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병호도 나의 조언은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병호의 가정사보다 나에게 다가온 그 사건의 충격이 더 컸기 때문에 병호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 당시 퇴근하면 나의 첫 발걸음은 선술집이었다.

지난 생각이 잠시 소름같이 돋아 오르자 다시 아랫배가 살살 아파 왔다. 변기에 앉아도 나오지 않을 배설물들이 다시 꿈틀거렸다. 난 얼굴을 찡그리며 손으로 배를 눌렀다.

「왜? 아직도 그 모양이냐? 미친 놈! 좋은 곳에 와서 좋은 양고기 먹고 배는 왜 그리도 못났냐?」

「시끄러. 거참 죽겠네, 이 노므 뱃속을 쑤실 작대기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병호, 넌 분명 잠시 탈출한 거고, 내가 여행한 거지. 애화씨 하고 잠시 벗어난 게 맞잖아?」

나는 슬쩍 여자를 병호와 결부시키며 여자의 반응을 살폈는데, 예상대로 펄쩍 뛰었다.

「아니, 무슨 말씀을……. 같이 벗어나다니요? 그런 게 아닌데……?」

여자가 물속에서 발을 담그며 ‘같이’라는 말에 유난히 힘을 주면서 정색을 하듯 말했다. 둘 사이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말이었다. 난 순간 밀알진 여자의 얼굴과 동시에 병호를 보았지만 역시 그는 들은 듯 못 들은 듯 무표정했다.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런가? 그럼 그렇다고 하고. 자, 난 괜찮은데 모두들 출출하지도 않은 모양이지?」

난 얼버무려버렸다. 쑤시는 아랫배를 문지르면서, 뻔한 사이를 그렇게 간단히 부정하는 여자의 얼굴에서 만들어지는 웃음에 오만한 백치미가 섞여 있음을 보았다. 또한 미간에 살짝 집힌 주름살 양편으로 멀쩡한 눈썹을 밀어버리고 검고 푸른 아이펜슬로 가늘게 그린 인조눈썹의 한끝이 지워져 있음도 놓치지 않았다.

3

헤렐지를 벗어나면서 난 계속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물도 계속 마셨다. 마시고 마셔도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물을 마실 때만 잠시 수그러들었다가 다시 입술이 부풀어 올랐다. 이들은 모두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갖고 간 진한 몽골 산 보드카를 몇 잔 들이켰을 뿐 난 포크를 잠시 손아귀에 잡았다가 바로 접시 옆에 던져버렸다. 양고기로 요리한 음식은 맛이 있었지만 도저히 씹어 넘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깨끗하게 비웠다. 기름진 음식을 평소 못 먹는 것이 아니었다. 술안주로 먹는 기름기 넘치는 고기는 난 잘 먹었다. 특히 돼지비계를 좋아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봉고는 오던 길로 계속 가다가 왼쪽 곁길로 꺾어들었다. 그나마 국립공원 부근에만 엉성하게 지표에 붙어 있던 아스팔트는 어느 새 요철이 심하고 바짝 마른 황톳길로 바뀌었다.

「이제 얼림벌랑이란 곳으로 가는 게다. 가 보면 혁민이 넌 아마 까무러칠 게다. 그냥 분지가 수백 만 평이 너 발 밑에 기다리고 있을 테니. 잘못하면 혁민이 넌 안 나온다고 그냥 자빠질지도 몰라. 너 마누라 과부되기에 딱 좋은 곳이니까.」

규호는 되는 대로 뱉어대었다. 항상 자신만만한 표정과 어투가 이곳에서도 그를 지탱해 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한국으로 돌아오면 항상 나를 찾아 와서, 역시 지금이나 다름없이 자신만만하게 대화를 이끌어가곤 했었다. 그러나 난 알고 있었다. 왜 그가 이 황량한 곳에서 뿌리를 박았는지, 박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자신만만함 그 뒤에서 꿈틀거리는 현실의 어려움이 역설적으로 새어나오고 있음을 규호 자신도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규호는 현명했다.

학훈단의 겨울 제복을 멋지게 걸친 규호의 또렷한 구두 소리가 작은 어물가게로 이어진 골목길을 당당하게 울리면, 춥고 어질한 밤의 기온은 물기 먹은 시멘트 바닥 속으로 움츠러들었다. 꿋꿋하게 그가 가는 곳은 단 한 곳뿐. 어머니의 두어 평 가게였다. 중앙에 연탄불이 항상 뜨겁게 피어오르는 원탁 두 개가 놓이고, 벽 쪽으로 낮게 임시 잠자리를 갖춘 시장터 구석의 술집에서 그의 어머니는 허름한 옷을 걸치고 앉아 있었다. 우리는 추위로 얼은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어슬렁거리면서 문을 열면, 규호 어머니는 만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우리를 맞았다. 자식의 장교후보생 복장이 영원한 출세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그곳에서 우리는 김 한 톳과 바다로 갈 시내버스 차비를 얻었다. 우리에게는 그런 가벼운 경비도 조달할 길이 막힌 터이므로. 값싼 소주 몇 병도 검게 물들인 내 야전군복 점퍼에 넣으면 우리들의 발걸음은 이미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가 있었다.

겨울의 눈발이 점차 무거워지는 밤에 둘은 모래사장 위에서 김을 안주로 술잔 없이 들이키기 시작했다. 해안 초소의 서치라이트가 길게 부챗살처럼 퍼지면서 흰 이빨이 번뜩이는 바다 위를 한두 번 쓸고 지나갔다. 흰 눈은 규호의 베레모 위와 그의 검은 제복에, 내 머리와 점퍼에 쌓이고 있었다.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이었다. 밤바다의 검고 칙칙한 촉수가 내리는 눈발을 헤치고 다가와 우리들의 대화를 휘감아버리고는 파도 속으로 숨어들었다. 눈은 계속 내리고 쌓이고, 우리는 점차 눈사람으로 변해갔다. 가끔씩 손이 눈 더미 속에서 삐져나와 술병을 잡고는 입으로 가져가는 동작만 되풀이 될 뿐.

그의 술은 항상 울음으로 끝을 맺었다. 명문대에 다니는 애인 이야기의 끝에서도 울었고, 어머니를 들먹일 때도 울었다. 정식 결혼을 미루고 아이를 낳은 여동생 이야기에서도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자학으로 뭉친 내면의 덩어리가 술이라는 열쇠 하나로 단단한 눈물샘의 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한순간 내뱉곤 했다. ‘야, 우리, 저 바다를 쳐나가는 군함처럼 그렇게 힘 있게 지내자!’

당시 나는 그의 울음에 공감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극히 어려운 환경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고, 모든 사물에서 받아들이는 부분이 어둠으로 치우친 점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해도 그의 울음은 나에게 깊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와 같이 울 수도 있었으니까. 나 역시 앞뒤로 꽉 막힌 상태였다. 그러나 난 울지 않았다. 그냥 속으로 삼켰을 뿐이었다. 술 깬 다음날, 왜 울음과 그리 친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냥 씩 웃었다. 나도 웃었다. 하지만 그 울음에 대한 의문은 지금도 난 버리지 않고 있다. 70년대. 당시 절박하게 다가오던 궁핍과 젊음의 고독을 약간의 과장된 절망감으로 포장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 울음만은 딱히 그렇게 설명해도 뭔가 미흡함이 있었다. 혹시 자신도 몰랐던 삶의 원형질에 그의 휘어진 운명의 편린 한 점이 부딪쳤을 때 일어나는 희미한 불꽃같은 것, 그런 것이었을까.

졸업 후 군 입대와 제대의 수순을 밟은 다음 그가 그럴듯한 중견 회사에 입사하고 서울에서 만났을 때는 나는 아직 4학년의 늙은 학생이었다. 그는 술을 피했다.

「며칠 전 양동 술집에서 하루 자고 왔더니, 여기가 이상해서 병원에 좀 들락거리는 중이다.」

한 손으로 사타구니를 툭툭 쳤다. 학교 시절부터 그는 여자들에게 집요한 관심을 보였음을 생각하며 난 그냥 웃었다. 그는 주로 술집 여자들에게 접근했는데, 세상없는 중요한 일이 눈앞에 있어도 기회가 닿는 여자와의 하룻밤을 놓치는 일이 없었다.

소식이 끊긴 지 5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 나에게 왔다. 꽤나 요염하게 생긴 부인과 딸애 하나를 데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나자 어린 사내애를 덧붙여 찾아왔다. 프랑스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턱을 아래로 지긋이 깔고 가족을 소개하면서 그동안의 작은 성공을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지만 이미 삶의 단단함이 나에게 전해질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몽골에서 마지막 삶을 이어가리라고는 자신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시골의 작은 금융업에서 밥을 먹던 나는 그렇게도 단단하던 그를 밀쳐낸 거대한 사회의 날카로운 손톱을 직접 맛보고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낡은 봉고는 얕은 구릉 사이를 넘다가 나무 울타리가 쳐진 곳에서 멈췄다. 겔 하나를 중심으로 사방이 낮은 나무울타리로 막혀 있었다. 봉고는 이리저리 돌면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가는 곳마다 막혀 있었다. 온 천지에 키 낮은 풀더미만 지표를 덮고 있는 완만한 구릉 지대에서 차 한 대가 지나갈 곳이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투덜거리는 우리를 보고 규호가 말했다.

「한국 놈들이 이곳을 사서 골프장인가 뭔가 한다고 말뚝을 박아놓은 거야. 좆같은 놈들이지. 그저 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놈들이 바로 한국 놈이 아닌가. 한국서 하던 버릇이 어딜 가나?」

우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땅값이 없으니 이곳 관리들만 잘 구슬리면 몇 십만 평 정도는 그냥 빌릴 수 있는 곳이 몽골이야. 몇 푼 집어 주면 안 되는 일이 없는 곳이니까. 하여튼 한국 놈들은 알아줘야 해!」

겨우 울타리를 헤쳐 나가는 데는 삼십 분 이상 걸렸다. 오후 3시가 넘었다. 험한 언덕과 너설지대를 지나 바위와 부스러지는 마사토를 헤치고 내려갔다. 평지에서 우리는 차에서 내려 잠시 쉬었다. 여자는 병호와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나와 규호에게는 말을 걸면서 생글거렸다. 재미있는 분 같아요. 부인은 뭐 하세요? 사랑해 보신 적 있으세요? 눈빛에서 나타나는데? 아이 참,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니까요. 역시 병호는 무표정했다.

8월의 따가운 햇살이 내리꽂히는 풀 위에 앉아 잠시 쉬었다. 무심코 주위를 훑어보던 내 눈에 키 작은 꽃이 보였다. 둥글게 여러 개로 퍼진 잎의 표면에 은회색의 솜털이 보얗게 덮여 있는 아담한 꽃이었다. 에델바이스였다. 설악산에서 가끔 보던 꽃이 이곳에도 있었다. 그리고 쑥부쟁이도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한국에서 흔히 보던 쑥부쟁이를 이곳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설렜다.

「야, 이것 봐라! 별것 다 있네, 이게 쑥부쟁이고 요건 에델바이스야. 솜다리라고도 부르는. 거 참…….」

「왜? 한국에 있던 게 여기라고 없으란 법이 있냐? 거기나 여기나 별 차이가 없어. 인종도 같은 것들인데 별 다른 게 있냐?」

규호는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여자는 신기하다는 듯 몇 송이를 꺾어서 규호에게 내밀었다.

「형! 애화, 저 여자 말이야. 난 불안해. 저 여자가 어떻게 변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 불안해.」

병호가 슬며시 다가와서 옆에 앉으며 낮게 말했다.

「그럼, 저런 여자를 데리고 오긴 왜 와? 가만 보니 속은 비어도 성깔 하나는 날이 선 것 같은데.」

「……그래도 부드러운 점도 있어. 내가 여길 간다니까 가곤 싶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머뭇거리는 게 좀 그래서 그냥 데리고 왔거든. 그런데 오자마자 저 모양이니……. 돌아가면 저 여자가 나에게 뭐라고 할지 궁금도 하고. 웃기지. 문제는 지금이야. 안심을 못하겠어. 꼭 무슨 사건을 벌일 것만 같아서. 럭비공처럼 행동하는 게…….」

사실 병호에게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몇 달 동안 보지 못하고 내 문제에만 잠겨 있었다. 병호가 이혼 후 어린 사내애 하나를 데리고 아이 할머니 집에서 기거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난 전화 한통 하지 못했다. 그의 부인이 테니스 코치와 붙어 지내다가 갑자기 이혼장을 내밀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몇 번 그 집을 갔을 때 그의 부인은 정중하게 술상도 차리고 정갈한 안주를 만들어 내놓던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뜻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삶에서 어디 예측과 법칙대로만 굴러가는 일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으로 병호를 멀리서 보고만 있었다. 나 역시 그런 일에 무관하지는 않았으므로.

「아이는 없고 결혼은 전에 했었는데 지금은 혼자 지내고 있어. 그림을 그리는데, 솜씨는 별로지만……. 평소는 부드럽고 괜찮거든. 역시 막상 자신을 벗어날 환경만 되면 본바탕이 드러나는 모양이야. 전에도 몇 번 그런 일이 있긴 있었지만 그냥 넘어갔었는데, 이젠 참 못 봐주겠어. 착각으로 똘똘 뭉친 허깨비처럼 노네. 그래도 동네에서는 제법 인기도 있는 편인데, 저렇게 뿌리 약한 걸 누가 알겠어?」

「할 수 없어. 이젠 끝까지 끌고 나갈 수밖에. 우리가 맞춰 줘야지. 여기서 그럼 어쩔 거야? 도대체 여잘 끌고 오긴 왜 끌고 와. 미친놈!」

규호가 봉고에 바짝 붙어 서서 여자와 웃음을 주고받고 있었다. 여자도 그와 거의 바짝 붙어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팔을 휘두르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규호는 즐거운 듯 오른손으로 여자의 엉덩이를 슬쩍 쳤는데, 여자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생글거리는 얼굴로 규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내 귀에 여자의 약한 말소리가 들렸다. 난 엉덩이에 살이 많아서 차를 오래 타도 괜찮아요. 여자의 는실난실하는 꼴이 진한 아교풀을 발라놓은 마네킹처럼 보였다.

「혼자 와야지. 그래야 여기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파묻혀 지내다가 다 털고 나가는 겐데……. 아마 규호가 저 여자 때문에 우릴 좋은 곳에도 못 데리고 갈 걸.」

「아휴 형! 그런 얘긴 그만 합시다. 정말 마음에도 없는 얘긴 듣기도 싫고. 저 여잔 그래도 마음으로 도와주고 싶었었는데…… 또 도움이 필요한 여자였는데, 이젠 다 귀찮네.」

병호는 손사래를 쳤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다. 병호의 사정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아래로 천천히 흘러내리듯이 완만하게 내리뻗은 길 좌측 언덕에 거대한 바위산이 보였다. 식물 한 포기 없이 뾰족하게 솟은 메마른 바위산은 몇 조각으로 벌어져 있고, 그 중 커다란 바위 하나는 타원형의 큼직한 덩어리를 등에 지고 있었다. 마치 거북 한 마리가 정상을 향해 기어오르다가 마지막 고비에서 힘이 다해 잠시 쉬고 있는 형상이었다. 목을 움추린 머리 부분과 둥근 등판이 여기서도 완연했다. 순간 짧은 생각이 반짝 스쳐갔다. 잠시 쳐다보고 있던 나는 규호에게 슬며시 다가갔다.

「야, 규호. 잠시 나 좀…….」

나는 애화와 규호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잠시만 저기 저 바위산에 올랐다가 가자! 한 10분이면 넉넉하겠지. 생김새가 묘해서, 잠시만 보고와도 되겠지?」

「저기까지 왕복으로 한 이십 분은 잡아야 될 걸. 빨리 갔다 와. 사진도 한판 찍고.」

규호는 엘카를 부르더니 바위산을 손짓하면서 뭐라고 이야기하고는 카메라를 넘겼다. 마음씨 좋게 생긴 엘카는 우리를 보고는 웃으면서 앞장서서 걸어 올라갔다. 나는 병호와 애화를 곁눈질하면서 같이 갈 의사를 전했지만 둘 다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애화는 그냥 빤히 쳐다보면서 거부의 의사를 슬쩍 내보였다. 싫다는 병호를 강제로 끌고 천천히 올라갔다. 뒤에서 비치는 햇빛에 우리들의 그림자가 발밑에서 짧게 움직였다. 천천히 오르면서 나는 뭔가 하나 놓친 듯 가슴 한 구석에 저려오는 것이 있음을 알았다. 난 어렴풋한 윤곽을 잡았다고 생각했으나 본능적인 거부감으로 그것을 떨쳐버렸다. 앞장서서 올라갔다.

오를수록 거북의 형상은 그냥 평범한 돌덩이로 변해갔다. 정상에 오르자 거대한 돌덩이들이 흩어져 있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가쁜 숨을 진정시키면서 우리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몽골의 초원과 멀리 보이는 산기슭에 박혀 있는 원시림의 검은 수목, 그 사이를 가늘게 흘러가는 강물이 햇빛에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 높지 않은 곳이지만 우리가 있는 곳이 시력의 한계 내에서는 가장 높은 곳처럼 보였다. 아득한 곳에 완만히 솟은 구릉의 어깨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 위로 파르스름하면서도 옅은 회색빛의 기운이 땅과 하늘을 구분하고 있었다. 넓고도 황량한 천지에 우리 셋만 덩그러니 내려앉아 스치는 시간의 바람 속에 내팽개쳐진 느낌이었다.

「형! 돌아가면 애 엄말 다시 만나야겠어. 아무 것도 아니야. 우린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성깔만 살아서 갈라섰어. 애 문제도 힘들고.」

병호가 말했다. 그는 햇빛의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고 초원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관심은 병호의 반대편에 있었다. 봉고 곁의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난 병호와 같은 방향으로 몸은 돌렸지만 마음의 눈은 봉고를 주시하고 있었다. 병호가 눈치채지 않도록 병호의 말에 가볍게 응응거리면서 계속 뒤편의 저 아래에서 조용하게 일어나는 일을 감지하고 있었다. 난 담배를 꺼내어 병호에게 권하면서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몇 분 후면 그들이 차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담배 한 대 피울 동안 그들의 일이 끝날까.

난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그들이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사이일 것이다. 웃음소리에 병호가 내 얼굴을 보자, 난 병호의 말에 동의하는 척하면서 다시 말꼬리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난 스스로 물었다. 규호에게 상황을 만들어 준 것이 내가 아닌가. 이곳에 오르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우리가 사라질 만한 장소가 마침 보였기에 온 것이 아닐까. 내가 언덕을 오른다고 말했을 때 이미 규호와 난 교감을 나눈 것이고, 바위산으로 오른다고 말한 그 순간 여자의 얼굴과 몸에서부터 나에게 전해지던 욕망의 내면을 난 파악하고 있지나 않았을까. 사실은 내가 바라던 그런 일을 은근히 기다리지나 않았을까.

담배를 거푸 두 대를 피우고 난 후 사진을 찍고 우리는 내려왔다. 규호가 운전석에 앉아 담배를 맨숭맨숭 피우고 있었다. 여자는 뒤에 새침하게 앉아 손거울을 위 아래로 돌리며 얼굴을 매만졌다. 엘카가 운전석에 앉는 것을 보자 병호가 말했다.

「내가 뒤에 탈 테니 형이 앞에 타요.」

난 뒷말 없이 운전석 뒤의 여자와 같이 앉았다. 병호는 뒷자리에 혼자 앉았다. 차가 출발하자 병호의 두 무릎이 내 좌석 뒤를 밀치는 느낌을 받는 순간 난 병호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바위산 위에서 병호가 움직이지 않고 계속 봉고와 반대편 쪽 정면만 주시하던 모습을 그렸다. 슬쩍 여자의 얼굴을 보자 아무 표정 없이 창밖으로만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여자는 차창 밖으로 스치는 경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시선은 창밖으로 향했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감정의 잔재를 보듬고 있음을 짐작했다. 바늘귀 같은 그 감정마저 깨뜨려버리고 싶었다. 나는, ‘지루하지 않느냐’고 낮게 말했다. 여자는 그대로 있었다. ‘답답하게 보여서 내가 도리어 답답하다, 차 안에 있는 것보다 같이 바위산에 올랐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가볍게 혀를 차듯이 말했다. 여자는 잠시 그대로 있다가 얼굴만 나에게 돌리고는, ‘고맙지만 신경 쓰지 마시라’고 신경질 섞인 어투로 말했다. 물론 나는 그런 말을 유도한 것이었고 여자는 그렇게 응답했다. 병호를 무시하면서도 남에게 무시당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겉으로는 안차 보여도 속은 더럽게도 가시센 여자라는 생각으로 난 담배를 물었다. 여자는 담배 연기에 얼굴을 찡그리며 나에게 고개를 돌렸지만 난 무시했다.

봉고는 거칠게 달렸다. 끝없이 이어진 황톳길은 엷은 초원 사이로 내려갔다가 어느 순간에 다시 오르막으로 변했다. 마지막 언덕인가 하면 다시 내리막으로 변하고 평원을 가로지르다가 언덕을 오르면 다시 눈 아래로 광막하게 널린 초원이 펼쳐졌다. 지루한 시간을 규호가 깨뜨리며 말했다.

「이제 거의 다 왔어. 저 언덕 옆으로 여러 길이 보이지? 거기만 넘으면 혁민이 너가 자빠질 곳이니, 괜히 안 돌아간다고 떼쓰지나 마라. 애화, 엉덩이가 아프지 않아? 내가 좀 주물러주면 되는데?」

「전 괜찮아요. 거의 다 왔는데요, 뭘.」

규호의 걸쭉한 말에도 여자는 자깝스럽게 남저음의 콧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여자의 음성에는 비음이 유난히 많이 섞여서 감정이 정돈된 것 같아도 듣는 이에게 끈적끈적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난 규호가 여자에 대한 말투를 반말로 바꿨다는 것을 생각했다.

봉고가 마지막이라는 언덕을 막 넘을 때 길 옆에 붉은 깃발이 꽂힌 돌무더기가 있었다. 엘카는 차를 세우고는 가볍게 클랙슨을 세 번 울렸다. 몽골 성황당을 지나면서 참배 대신 던지는 작은 예의였다. 그리고 우리는 정면 아래편으로 펼쳐진 짙푸른 신세계를 내려다보았다. 아스라한 산과 산이 겹쳐 두르며 완만하게 솟은 산맥이 이 넓은 분지를 둘러쌓고 있었다. 희미한 안개가 하늘과 맞닿은 곳이 내가 볼 수 있는 한계였다. 산허리가 계속 둘러쳐진 사이로 부연 빛이 잠겨 있었고, 서쪽에서 비치는 햇빛의 경사면으로는 검은 빛이 뚜렷하게 보였다. 아마 원시림의 군락인 것처럼 보였다. 분지의 중앙에서 조금 오른쪽으로 비껴난 곳에 통나무집과 울타리가 손톱 만하게 보이고 그 너머에 흰 자작나무가 분명할 수목이 우거져 있었다. 수목 사이사이로 강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황톳길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빽빽하게 피어난 풀 위로 갖가지 흩뿌린 물감에 물든 야생화가 점점이 뒤섞여 있는, 전인미답의 공간만이 눈 아래 펼쳐져 있었다. 작은 움직임도 있었다. 그건 점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콩알처럼 보이지만 어슬렁거리는 몇 마리의 말일 것이었다.

「봤지? 어때? 잘 보이냐? 여기가 바로 내가 바라던 곳이다, 짜슥아! 수백만 평의 이 광활한 곳에 내가 뿌리를 내릴 곳이야. 적어도 수천 마리의 양이나 말떼를 기를 만한 곳이지. 강물도 있고…… 앞으로 내 뼈가 묻힐 곳이 여기야. 혁민이 너, 잘 봐 둬라. 맨날 좁쌀만한 곳에서 오글거리며 볶아대다가 이런 곳을 보니 눈이 확 안 뒤집히냐, 임마!」

얼마 전의 일과는 전혀 상관없을 규호의 말에 여자가 감탄의 콧소리를 내면서 차창을 썩 열어젖혔다. 뒤에 있던 병호는 말이 없었다. 난 눈만 크게 뜰 뿐 아무 말도 못했다. 굳이 입을 열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 보아온 몽골의 초원은 붉은 황토 흙에 푸른 풀과 말라비틀어진 누런 풀들이 뒤섞여 있거나 피부가 벗겨져 붉은 내장을 처참하게 드러낸 풍경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황토의 흔적은 짙푸른 빛에 완전히 흡수되어 사라지고 보이는 것은 단 하나뿐!

「좋다!」

무심코 입에서 한 마디가 터져 나왔다.

「좋을 정도가 아니야. 몽골 애들도 이곳을 아는 놈들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 이 넓은 곳에 지금 저 보이는 통나무집 하나만 살아. 내가 잘 아는 영감인데, 앞으로 같이 살게 될 곳이야. 여긴 부족한 게 없어. 물도 있고 말먹이 풀도 무진장이고……, 바람 많은 몽골에서 이렇게 푹 파인 분지라 바람도 심하지 않고……, 메마른 사막도 물은 흐르지만 기복이 심한데, 이곳 물은 수량이 일정해서 항상 그대로야. 그러니 가축은 무한대로 기를 수 있는 곳이야. 혁민이 너, 어때? 다 때려치우고 여기 와 살지 그래? 들볶아대며 살아봐야 그게 그거지 뭐 그래. 한세상 배짱 편하게 말 타고 살다가 콱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뭔 한이 있냐, 혁민아.」

평소 습습하면서도 감상적인 규호는 목을 한껏 뒤로 돌려서 나에게 내뱉어대었다. 나는 그 말에 공감했다. 그러나 그건 삶에 대한 깊은 자신감이 필요한 문제임도 알고 있었다. 나는 흔적을 버릴 수 없는 놈임을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필름처럼 이어지는 흔적들과 나는 결별할 수가 없는 녀석이었다. 봉고는 험한 내리막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찻길이 따로 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방향을 잡고 풀밭을 짓이기면서 나가면 됐다. 멀리 통나무집 옆에 한가롭게 풀을 뜯는 말들이 보이는 곳으로 밀고 나갔다. 바퀴에 짓이겨지는 잘 자란 풀과 야생 꽃들이 안타까웠다. 말발굽에 밟혀나가도 인공물에는 결코 스러져서는 안 될 것들이지만 봉고는 아랑곳없이 뭉개버리면서 다가가 통나무집을 둘러싼 나무판자 울타리 곁에 섰다. 모두 내렸다. 겨울 준비를 벌써 하고 있는지 군데군데 마른 풀더미가 높이 쌓여 있는 사이로 흑갈색 혹은 짙은 황색의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잘 발달된 근육이 단단한 털가죽 겉으로 삐져나올 것처럼 튼실한 놈들이었다. 우리가 넓은 마당으로 들어가자 차 소리를 듣고 늙은 부부가 나왔다. 규호는 부부와 구면인 모양이었다. 서로 반갑게 손을 잡고 그들이 둔징 바이신이란 부르는 통나무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들에게도 들어오라는 손시늉을 했다. 우리도 따라 들어갔다.

「사인 바이노.」

여자는 그 질척한 비음으로 인사를 했다. 몽골인을 만날 때마다 우리 중 맨 먼저 인사를 하곤 했다. 언뜻 보기에 귀틀집처럼 생긴 그 내부는 입구 이외에는 창문이라고는 없어 어두컴컴했다. 겨우 다섯 평 정도의 면적에 낡은 풍로와 엉덩이를 걸칠 ㄱ자 형태의 앉을 곳, 세 식구가 겨우 잘 수 있는 공간엔 낡은 담요와 그릇 같은 세간들이 널려 있었다. 50세라는 규호의 설명에도 주인은 너무 늙어 보였다. 겨울이면 영하 30°의 추위와 여름의 건조한 직사광선 밑에서 평생 가축의 뒷바라지에 그냥 삭아버린 모습이었다. 8살 난 어린 손자를 키우고 있는데, 아들 부부는 도시로 돈 벌러 갔다고 했다. 한국의 시골 모습이 생각났다.

겉으로 드러난 피부의 주름살 깊이에 따라 추함과 늙음을 한 묶음으로 가르는 우리들의 판단이 잘못임을 알 수 있는, 선량한 표정의 늙은 부인은 낡은 네발 탁자 위에 말 젖으로 만든 음료수인 희부연 아이락과, 역시 그것으로 만든 치즈 조각을 평화로운 미소와 같이 내 놓고 작은 사발에 아이락을 가득 담았다. 우린 가져간 담배와 과자, 사탕을 선물로 내 놓고 조금씩 아이락을 마셨다. 시금털털한 막걸리맛과 비슷했다. 주인은 여유가 있었다. 무엇 하나 바쁜 것 없는 사람처럼 규호와 천천히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직감했다. 비록 손은 거친 황야에 시달려 죽죽 갈라지고 터져서 상처투성이지만, 한 번도 물맛을 본 적이 없었을 지저분한 작업복과, 남발한 회색빛 머리칼 속에 마른 검불이 틈틈이 박히고, 필터가 타들어갈 정도로 독한 담배를 연신 피워대지만, 그는 바람의 강약과 습한 정도에 따라 말과 양들이 그 해 먹어치울 풀의 성장점을 정확히 짐작할 수 있으며, 한겨울 북풍의 거센 눈보라 속에서도 말의 가벼운 신음이 두터운 천막의 올올을 헤집고 들어오는 미세한 소리도 끄집어 낼 수 있는 예민한 청각과, 8월의 아침 일찍 일어나 겔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서, 누런 황토를 빽빽이 덮고 있는 이슬 먹은 풀의 날선 눈초리만 보아도 곧 밀려 올 가을의 메마른 바람과 겨울의 칼날 같은 눈의 깊이까지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들은 그렇게 가축의 커다란 눈빛에 잠기며 대초원의 밀밀하게 다가오는 바람의 틈에서 살아오고 살아갈 자연의 적자가 분명했다. 규호와 주인은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나는 답답해 졌다. 비록 어지럽고 지저분한 내부지만 그래도 세 식구가 평화롭게 생활하는 공간은 옛 우리 시골 풍경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광활한 대지 위에 한 점 통나무로 컴컴하게 막아놓은 내부 속에서 나를 계속 박아놓기는 싫었다. 바람을 받고 싶었다. 대륙의 거친 바람 속에 자신을 내 놓고 싶었다. 여자와 병호가 서로 외면을 하면서 앉아 있는 꼴도 보기 싫었다. 밖으로 나왔다. 역시 바람은 있었다. 해는 야트막한 좌측 산머리에서 한 발 정도 떨어져 아직 한여름의 뜨거움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끝을 모르는 광막한 대륙의 하늘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달아오른 가슴 속으로 깊게깊게 파고들었다. 계속 크게 들이마셨다.

‘너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산산이 터져 죽어라!’

고교 시절 일기장의 한 대목이었다. 그때 왜 그런 섬뜩한 말을 썼는지 지금은 명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다. 다만 빡빡한 삶의 그늘이 어린 나이에도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을 것임을 지금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의 실패 끝에 들어간 3류 대학의 경영학과를 거치고, 마흔 중반을 넘기면서도 붙어 있었던 금융회사. 그리고 어린 아들의 영상.

나를 이 몽골의 대초원으로 몰아온 것은 지금까지 쌓아온 예정된 삶의 한 지표일 것이다. 아들이 사라진 것도, 회사를 버린 것도, 그녀와의 짧았던 시간도, 현실의 자신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지표에 속할 것이다. 딸애와 아내와 난 지난 2년 간 서로 말을 아끼면서 지내왔었다. 겉은 멀쩡하지만 이미 밑돌부터 바스러지는 집이었다. 아내도 알고 있을 것이다. 굳이 그 사건을 내뱉어 멀쩡하게 보이는 집을 서까래 들어내듯 들쑤실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가족 중 하나가 이 지상에서 사라졌다 해도 남아 있는 나머지 가족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해야만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에 모두들 말없이 따라주었다. 만약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면,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발을 뻗고 손을 펴고 고개를 쳐들어 혓바닥을 나불댈 것인가. 그저 말없이 현상을 따라갈 뿐이었다.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거의 마흔이 다 되어서 본 아들이었다. 나보다도 아내가 더 즐거워했다. 대개 사람들은 아내가 딸을 원하고 아비는 아들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잘못된 말이었다. 적어도 내 집에서는 그랬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아내는 큰 딸애를 낳고 은근히 아들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둘째를 잉태했을 때 아내는 자신의 둥근 복부를 쓰다듬으면서 계속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물었지만 무언가 차지 않은, 기대한 정량에 모자란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속에 들은 것이 힘이 없다는 거였다. 배냇짓이 약하다는 표정이었다. 난 그 사건 이후에야 당시 그 표정이 아들이 아니고 딸인 것 같다는 표현이었음을 알았다. 그렇게도 난 무심했었다.

아내가 집에 드러누웠다. 약한 소독약 냄새가 났다. 그리고 낮은 음성으로 ‘ 후련한 짬뽕 국물을 먹고 싶다’ 고 했다. 난 알아차렸다. 이미 뱃속의 아기는 사라졌음을. 난 아내의 생각을 존중했다. 나와 의견을 나누지도 않고 일방적인 행동을 벌인 아내에게 약간의 섭섭함마저 숨길 수는 없었지만, 아들을 원하는 생각에 그리 반대할 마음은 없었다. 병원에서 아들인지 딸인지를 은밀히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 일 후에도 2년이나 지나서야 본 아이였다. 아기 때 낮엔 잘도 자다가 밤만 되면 눈을 동글동글 뜨고 우리를 못살게 굴던 아이였다. 우리가 조금만 눈을 붙이면 악을 쓰며 울어댔다. 정말 잘 울던 애였다. 그 애는 6살이 채 되기도 전에 한길에서 덤프트럭 밑으로 사라졌다.

그녀를 만난 건 그 후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승진 시험을 앞두고 오후엔 근처 도서관에서 책에 묻혀 쓰린 기억을 잊던 어느 날 저녁, 지하 구내식당에서 식판에 음식을 담아서 층계로 오르다가 아래로 내려오는 사람과 부딪쳤다. 뜨거운 국과 밥과 김치 종류의 반찬이 그녀의 허리 아래 곧게 뻗어 내린 흰 종아리에 쏟아졌다. 서른 중반의 그녀는 하는 일없이 책만 보러 도서관으로 들락거리는 낡은 백조 신세였다.

사람의 정신이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창고는 차고 넘치는 부분과 모자라서 계속 추구하고 원하는 부분이 서로 충돌하면서 분열되고 결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세포를 만들어 내는 곳이라면, 우리는 그 창고에서 모자람과 넘침의 적절한 배급을 균형 있게 운영할 수 있는 공간을 서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몇 잔의 술이 오고가면서 서로에게 부족함과 넘치고 뻗는 부분을 서로 보듬어 나갈 길을 우리는 확인했다.

사학을 전공한 그녀는 나의 밀착된 실물 경제학적 사고를 지적했으며, 나는 민족 흐름의 원류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그녀의 행동과 말에 일침을 놓았다. 우리는 저녁만 되면 만나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인근 도시의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럴 때면 거역할 수 없던 아이의 가쁜 기억이 잠시 숨을 멈추었다. 남들의 눈을 피해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승용차 속에서 섹스를 나눴다. 먹고 마시고 섹스하고……. 그녀는 솔직했다. 웃어야 할 때에 웃고 말을 멈춰야 할 때 침묵했으며, 내가 사물에 깊이 파고들면서 거친 언사를 내뱉으면 가벼운 미소 속으로 끌어들여 휘어진 언어를 펴 주곤 했다. 몇 달의 만남으로 인해 승진 시험은 자연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직장 내에서의 내 위치는 가벼운 깃발처럼 미미한 바람에도 흔들렸다. 더 이상 버텨 내기가 힘들었다. 그녀와 같이 강원도 정선으로 떠났다.

4

해가 산등성에 두어 뼘 정도 다가섰다. 일행들은 통나무집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해가 있는 산기슭에서 작은 움직임이 보였다. 수많은 작은 물체들이 감실감실하게 계곡에서부터 빠져나오면서 부챗살처럼 넓게 퍼졌다. 그것들은 점점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것이 틀림없었다. 서둘러 햇덧 안으로 그들의 안식처를 찾아 내려오는 말떼들과 억센 몽골 청년들일 것이다. 그들이 이곳에 도착하게 될 때면 우리도 자리를 털고 나서야 한다. 무한한 공간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먹으며 커 가는 저 무리들에게 내가 앉은 자리를 양보해야 할 시간이었다.

다시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바람은 내 가슴 속에서 매듭지고 뒤틀리고 삭아가던 모든 잡것들을 휘몰아 내 가슴뼈 사이를 헤집고 등 뒤로 빠져나갔다. 따가운 햇살을 가리던 모자를 벗었다. 바람은 얼굴 정면을 향해 덤벼들었다. 맴도는 먼지구덩이처럼 어지럽던 머릿속 세포 덩어리가 일시에 세척되면서 허공으로 솟았다. 발밑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오직 이곳에서 자생하는 바람만 가득 차올랐다. 나는 바람처럼 가볍게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몸을 버릴 수 있다면 나를 지탱하던 마지막 정신의 끝줄기도 이곳에서 사라지는 바람에게 맡길 수 있을 것이다. 다 버릴 수 있었다.

일행들이 나오자 간단한 작별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차가 막 출발할 즈음 무겁고 둔탁하게 지표를 울리면서 산기슭에서 달려온 말떼들이 도착했다. 그것들은 단순하게 땅만 밟아대는 것이 아니라 차 속에 앉아 있는 우리들의 가슴팍까지 짓밟아대듯 육중한 몸체를 이긴 단단한 말굽으로 바닥을 치면서 사방으로 돌아쳤다. 그것들은 흥분한 상태였음이 틀림없었다. 대략 백여 마리가 됨직한 살진 말들이 하루 종일 영양가 있는 풀을 마음껏 뜯어먹고, 넘치는 기운을 억제치 못하며 연신 콧김을 내뿜으며 차 주위를 돌며 날뛰었다. 검게 탄 피부의 억센 목동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긴 회초리를 연신 휘두르며 말떼를 진정시키고 있었지만 말들은 막무가내였다. 사람은 없었다. 말들이 이 천지의 주인인 것처럼 보였다. 아득한 옛날부터 이 대자연의 주인은 우리라는 듯 말떼들은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앞발을 높이 치켜들고 탐스러운 갈퀴와 꼬리를 감아 돌리면서 콧김을 연신 사방 천지를 향해 뿜어댔다. 털빛이 검거나 희고 갈기가 검은 것, 붉은 빛깔의, 주둥이만 검고 누른 빛깔, 거무스름한 것, 털은 희고 갈기만 검은 것 등 가지각색의 말떼들이 서로 앞발을 세우면서 목을 비비대거나 부딪치고 뛰어다니는 서슬에 봉고는 그냥 엔진만 달구면서 그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차 주변은 갈초 더미에서 일어나는 티끌과 황토먼지로 가득 찼다. 여자는 얕은 비명을 지르며 차창을 닫았다.

「야, 가만 놔 둿!」

갑자기 뒷자리에서 병호가 소리쳤다. 그 소리는 여자의 뒷머리를 낚아채듯 거칠게 쏟아졌다. 여자는 움찔하며 뒤롤 돌아보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나 역시 그 먼지의 맛을 보고 싶었다. 옆의 차창을 활짝 열었다. 먼지가 안으로 부옇게 밀려들어왔다. 여자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래, 좋다! 여기 먼지는 보약이 될 수도 있어! 좀 마셔 봐라. 먼지도 등급이 있다면 이 먼지가 맨 꼭대기를 차지할 게다. 이런 장면도 좀처럼 보기 힘들어. 저 말들이 미쳐 날뛰는 걸 봐라! 요즘이 한창 살이 올랐을 때야. 힘이 넘쳐서 때론 저 녀석들도 함부로 다루지 못할 때도 있어. 혁민이, 어떠냐? 저 속에서 말을 타 볼 생각이 안 나냐?」

어떤 놈들은 떼 지어 차창에 커다란 머리를 바짝 들이밀기도 했다. 거대한 앞발을 번쩍 쳐들고 봉고의 앞 유리창으로 다가서는 놈들도 있었다. 남자 주인이 목동들에게 뭐라고 손짓을 하며 차를 가리키자 목동들이 일제히 차 앞으로 몰려와서 말떼들을 갈라놓기 시작했다.

엘카가 거푸 클랙슨을 울리면서 차를 출발시켰다. 봉고는 엘카의 능숙한 핸들 솜씨에 따라 날뛰는 말 사이를 헤치고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왁실덕실한 틈으로 연신 급정거를 반복하면서 겨우 빠져나오자 우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말들이 계속 돌아치고 있는 사이사이로 아직도 들어가지 않고 손을 흔드는 통나무 주인 부부가 보였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그들이 보던 안 보던 상관없이. 역시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던 규호가 손을 멈추고 뒤로 돌아보면서 말했다.

「천고마비란 말이 흔한 말이지만 그 뜻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나? 나도 한국에선 몰랐지. 천고마비의 진정한 의미를 여기 몽골에 와서야 알게 된 거야. 방금 봤지? 지금이 몽골의 늦여름 초가을이거든. 겨울의 눈구덩이를 헤치고 얼어붙은 풀을 겨우 얻어먹어 바짝 말랐던 말들이 눈이 녹는 봄부터 지금까지 마음껏 풀을 뜯어먹고 힘이 넘쳐 날뛰는 살진 말로 변한 거야. 저런 광경을 봐야 천고마비의 의미를 알지. 흐흐흐흐흐…….」

「몽골 와서 볼 거 하나는 아주 제대로 봤네.」

병호가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장관이란 말이 바로 이런 때 써먹을 말이야. 정말 굉장했어. 백 마리가 넘는 말떼들이 미쳐 날뛰는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어? 정말 굉장한 걸 봤네!」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건 진정이었다. 영화 속에서 상상력을 덧붙여야 가능할 광경을 실제로 경험했다는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아직 볼 게 많은데 뭘 그래? 애화, 어때? 내일 말 한번 타 보지? 어차피 낼 계획은 시골로 가서 종일 말 타고 돌아치는 건데.」

「저도 타보고 싶어요. 그런데 정말 저 말들처럼 사납게 움직이면 힘들 것 같아요.」

「아니, 우리가 타는 말은 순하지. 특별히 애화에겐 큼직하고 사나운 말을 주지.」

규호는 뒤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여자도 마주 보며 웃었다.

「그럴 땐 꼭 잡아주셔야 해요. 무서우니까.」

봉고는 오던 길을 따라 북쪽으로 달렸다. 해는 이젠 산등성이 바로 위에 걸쳐 있었다. 우리는 모두 조용히 주변 경치만 바라보며 조금 전의 흥분을 삭였다. 가끔 정면에서 불어오는 회오리바람이 황톳길 좌우에서 하늘로 누렇게 치솟아 올랐다. 황량한 초원의 뿌리가 파헤쳐진 듯 군데군데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구덩이를 피해 봉고는 속도를 올렸다. 바람이 앞에서 부는 탓으로 먼지는 차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차창을 활짝 열었다. 대낮의 마른 바람과는 다르게 약간 습습한 바람이 불었다. 뭔가 정면 창에 작은 이물질이 달라붙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아주 작은 점처럼 보였는데 점점 커지더니 내가 앉은 좌석 속으로도 날아들었다.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띄엄띄엄 떨어지는 빗방울은 그리 굵지 않았지만 마른 몽골의 대지에 비가 내리는 광경을 지금 보고 있었다. 규호가 떠들었다.

「야, 이것 봐라! 지금은 비 오는 계절이 아닌데도 비가 오네! 혁민이 너, 참 좋은 때 왔다!

이런 데서 비 구경을 다 하고 말이야!」

그게 아니었다. 차 정면 북쪽 저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부연 기운이 점차 저녁 햇발을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점점 넓게 퍼지면서 낮은 언덕을 삼키더니 어느 새 차 정면을 가득 덮을 정도로 가까이 와 있었다. 엄청난 먼지폭풍이었다. 강한 바람은 바짝 말라버려 뿌리가 약해진 풀뿌리를 할퀴고 파헤치면서 온 사방을 누런 황토로 가렸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서둘러 창문을 닫았다. 차창으로 바람은 금속성 음향을 울리며 맹렬히 스치며 지나갔다. 우리는 그 황토바람 한가운데 있었다.

「먼지바람이야. 한번 지나가면 괜찮아 져. 잠시 기다려 보자. 이 몽골 초원에서는 가끔 부는 바람이야.」

우리는 차 안에서 숨죽이며 앉아 있었다. 세계는 황토바람이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천지에는 달리고 꺾이며 멈추다가 휘돌고 솟구치거나 지표를 갉아먹으며 낮추 파고드는 황토 바람이 내뿜는 기운에 놀란 모든 물상들이 몸을 내맡기면서 부르짖는 위낮은청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때로는 날리는 모래나 작은 돌조각이 차창에 부딪치면서 자르랑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그 모든 소리를 들었다. 시간의 저편에서 태고의 지표를 울리면서 다가오는 원시의 음향이 거대한 날개로 광막한 허공을 수만 갈래로 찢으면서 태양의 반대편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밤바다의 허연 이빨이 바위에 부딪쳐 깨어지는 소리를. 기억조차 희미한 규호의 울음도 있었다. 수백 마리의 말떼가 뒤섞여 토해내는 울부짖음도 들었다. 또 있었다. 단단한 지표가 갈라진 틈으로 거대한 알 하나가 밀려 내려가며 깨어지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어린애 울음으로 바뀌었다. 분명히 들었다. 순간 나는 숨 쉴 수가 없었다. 가슴이 수만 갈래로 찢어지는 소리 없는 비명을 들었다. 차 문을 열고 바람 속으로 들어갔다. 밀려오는 바람 정면으로 서서 온몸으로 파고드는 황토바람을 마음껏 들이마셨다. 텅 빈 내 몸 속으로 바람을 한없이 집어넣고 또 넣었다.

갑자기 아랫배에 감각이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배꼽노리 부근에서 점차 아래로 퍼지면서 맹렬하게 밑으로 밀려내려 갔다. 나는 한 움큼이라도 놓칠세라 벌린 입을 더 크게 벌려 마시면서 바지 허리띠를 풀었다. 그리고 차 뒤쪽으로 걸어갔다. 바지를 발목까지 내리고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눌리고 눌렸던 모든 것들이 내 몸에서 빠져나오고 있음을 알았다. 눌어붙어 있던 마지막 한 조각도 남김없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통쾌했다. 배변의 쾌락과는 또 다른 통쾌감이 머리 위에서부터 발끝까지 전해졌다. 정신이 아늑했다. 바람에 밀려 온 미세한 황토가 차의 배면에서 세차게 맴돌면서 눈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방이 흐릿하게 보였다.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알았다. 난 눈물을 닦지 않았다. 그대로 두었다. 황토와 눈물이 뒤엉켜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하나는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작은 인형 같은 물체가 나에게서 벗어나 바람을 타고 허공으로 구르며 치솟는 것을. 그것은 누런 황토바람 속으로 잠겨 들어가 순식간에 흔적 없이 사라졌다. 숨이 막혔다. 허공으로 얼굴을 곧추 세운 내 눈에 다시 진한 기운이 밀려들어 앞이 더욱 흐릿해졌다. 그것은 배변의 쾌감으로 인한 눈물 때문인지, 몰아치는 황토 때문인지, 몸에서 다 빠져나가고 마지막으로 남은 심장이 떨면서 남긴 눈물 때문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1.박문구

2. 강원일보 신춘문예 소설

3. 강원일보 중편소설 연재

4.단행본 '환영이 있는 거리' 출간

5. urimal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