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타비아로 가는 항로

 

 

1

배는 쉬지 않고 남지나해를 북상하고 있었다. 화물을 싣고 있고, 그 화물을 양륙할 항구가 지정되어 있는 한 머뭇거릴 아무런 이유는 없다.

바다는 잔잔한 편이었다. 자바 해 남쪽 바다를 서성이고 있는 열대성 저기압의 영향인지 항해등 불빛 속으로 실안개가 춤을 추고 있었고, 목덜미로는 습기 찬 바람이 진득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어제 말라카 해협을 통항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말레이반도와 자바 섬 사이의 좁은 협수로인 그곳에서 돌풍이 휘몰아쳤는데, 그 바람에 갑판은 어디라고 없이 물기로 질퍽하게 젖어버렸다. 만약 남지나해로 들어선 다음에도 사정이 변하지 않았다면 앞길은 결코 지금처럼 순탄하지 못 하였을 것이다.

“앞으로는 큰 문제없겠어.”

선장은 마치 크루즈를 타고 세상 유람에 나선 관광객처럼 아주 무덤덤하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여유로움일 것이었다.

2등항해사 장혜옥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03시 변침하는 거 잊지 말아.”

선장의 지시는 매번 그런 식이었다. 재차 돌풍이 휘몰아치더라도 그 억양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네, 알고 있습니다.”

2등항해사 장혜옥은 조타실을 나가는 선장의 뒷모습을 잠시 훔쳐보았다.

그녀는 물론 선장의 지시가 갖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배는 지금 028도의 침로로 전속력 항진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싱가포르 해협을 빠져나와 동지나해를 북상하는 배라면 반드시 채택하여야 하는 침로였다. 그리고 그 침로로 꼭 아홉 시간을 달리면 방금 선장이 지시한 변침점에 도달하게 되어 있었다.

침로의 정확한 유지가 항해의 핵심이자, 특히 항해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책무 가운데 하나다. 단 1도의 오차가 개입하여도 배는 영락없이 엉뚱한 바다로 굴러간다.

진수한 지 10년도 넘은 화물선 오션 글로벌 호가 싱가포르 해협을 빠져나와 경제속력인 13노트로 아홉 시간을 항주하면 남지나해의 아남바스 군도에 속한 망카이 섬을 지나치게 되어 있었다. 결론적으로 보르네오의 부속도서 가운데 하나인 망카이 섬만 존재하지 않는다면 남지나해를 북상하는 모든 배의 침로는 지금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새벽 세 시경, 오션 글로벌 호가 망카이 섬에서 침로를 변경하면 그 때부터 중국 해남도 인근의 서사군도에 이르기까지 향후 나흘 동안은 오로지 남지나해의 쪽빛 바닷물을 가르는 일만 남게 된다. 그 같은 여건에서, 만약 컴퍼스와 엔진을 비롯한 모든 항해 장비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거기에 기상이 까탈을 부리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조타실을 지키더라도 항해 결과는 똑같아질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변수가 작용한다. 항해란 원래부터 엉뚱한 마술로 사람의 간담을 써늘하게 만드는 요술쟁이인 것이다.

2

“2항사님, 수고하세요.”

오션 글로벌 호 2등항해사 장혜옥이 조타실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3항사는 벌써부터 계단을 내려갈 채비였다. 자정에 이르도록 눈을 멀거니 뜬 채 조타실을 지켰으니 폭신한 침대 생각이 굴뚝같을 만도 하다.

“그래. 들어가 쉬어.”

일상적인 응답이었다.

그 순간부터 배의 운항은 전적으로 그녀에게로 넘겨졌다.

그녀는 플래시를 비추어 흑판에 적힌 선장의 지시 사항을 읽었다.

- 03:00 a/co. 037.

어제 싱가포르 해협을 빠져나오면서 그녀가 손수 적은 내용 그대로였다.

3항사가 조타실을 빠져나가는 것을 본 그녀는 먼저 현재의 컴퍼스 눈금부터 확인했다.

- 028도.

그 또한 틀릴 까닭이 조금도 없었다. 침로는 어제 오후 여섯 시, 싱가포르 해협 어귀의 이스턴 뱅크에서 오토파일럿 팅으로 전환된 이래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그리고 자정 무렵이면 앞서 말한 대로 새 침로로 변침된다.

그녀는 두어 번 눈을 깜박였다. 방금 잠에서 깨어난 참이라 흐릿한 항해등 불빛이 전부인 시야는 아무래도 깜깜 칠흑일 수밖에 없었다.

좌현 브리지 윙에는 등을 보인 워치 맨 한 명이 상체를 난간에 의지한 채 전방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배를 탄 지 10년도 더 된다는 미얀마 출신 갑판원 샌디다. 미래 어느 날 항해사가 되는 게 꿈이라는 그는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한국 국적의 배만 타왔다고 한다.

외국인 선원은 샌디 혼자만이 아니다. 그를 포함한 세 명이 같은 나라 출신이고, 필리핀과 태국인이 각각 두 명씩이다. 거기에 인도네시아 출신 3등기관사 마르코스 군을 보탠다면 승조원의 절반이 넘는 숫자가 외국인이다. 그게 한국 국적 화물선 오션 글로벌 호의 현 승조원 구성현황인 것이다. 오션 글로벌 호의 선원구성이야말로 다국적 혼성팀인 셈이다.

물론 한국 국적의 선박이니까 그 승선원들은 당연히 한국인으로만 짜여 지는 게 만 번 옳다. 하지만 승선 희망자가 많지 않은 오늘 날 승조원 정원을 채우지 않으면 출항 허가가 떨어지는 않는 선박안전법 규정상 부득이 모자라는 머릿수는 외국인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 문제가 생긴다.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무작정 어느 한 나라 출신으로만 국한할 수 없다는 게 그것이다. 몇 해 전, 원양어선 패스카마 호에서 작업에 불만을 품은 조선족 선원들이 똘똘 뭉쳐 선장을 비롯한 한국인 사관들을 모두 살해한 사고도 멋모르고 여덟 명이라는 숫자적 우위를 부여한 결과였던 것이다.

미얀마 출신 워치 맨 샌디는 여전히 뚫어져라 전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의 포트 켈랑을 출항한 어제 밤에도 그랬다. 레이더를 확인하고 무심코 고개를 들었더니 녀석이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나쁜 감정은 숨어 있지 않았다. 추측컨대 아마도 2등항해사인 자신이 아직도 일반 화물선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조타실에 들어서기만 하면 웬일인지 가슴이 설레면서 정신이 맑아진다. 1만 톤급 육중한 선체를 내려다보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고, 거대한 선체가 물결을 일으키며 짙푸른 바다를 헤쳐 나가는 격동적인 광경도 그랬다. 네 시간의 당직근무 동안 누구의 간섭이나 지시를 받음도 없이 오로지 그녀만의 판단과 조치로 거대한 배의 운항은 이루어진다. 그래서 긴장의 끈이 늦추어지지 않는 것이다.

동서양 요충지인 남지나해에는 통항선이 많다. 시야로는 오가는 배들의 항해등으로 어지럽기 짝이 없다. 먹물을 쏟아 부은 듯 한 칠흑의 밤바다여서 항해등은 더욱 명료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불빛이 너무 멀리 보인다. 실안개 때문일까.

그녀는 재차 배의 위치를 확인했다. GPS는 매초 매초 위도와 경도를 정확하게 알려준다. 그녀는 옛날의 천문항해술에 대체하여, 현대과학의 결정체 가운데 하나인 GPS가 보이고 있는 현재의 위치를 해도에 옮겼다. 그게 당직 항해사가 수행하여야 할 기본적 책무가운데 하나였다. 그 일이야말로 전투에 임한 병사의 소총과 실탄에 해당한다.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랐다. 놀랍게도 배는 예정 침로로부터 엄청나게, 자그마치 6~7마일도 더 오른쪽으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위치가 풀라우 다마르라는 작은 바위섬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섬과의 충돌이거나 좌초가 아닌가.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앞뒤 살필 겨를도 없었다. 무작정 조타실을 뛰쳐나가 우선 배의 선수 방향부터 살폈다. 만약 방금 위치를 알려준 GPS가 에러를 갖고 있지 않고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선수 방향으로 틀림없이 바위섬 하나가 버티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겁도 없이 돌진해 오는 배의 선수부를 사정없이 뭉갤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었다. 머리칼이 뾰족 곤두섰다. 하지만 칠흑의 밤바다가 그녀의 시야를 방해했다.

그러자 문득 그 섬에 등대가 있다는 사실이 머리에 떠올랐다. 매 3초마다 한 번씩 섬광을 발한다고 해도는 기록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배가 예정된 항로를 정확히 밟아 왔다면 그 등댓불은 지금 우현 방향 6~7마일 거리에서 명멸하고 있어야 옳았다. 그러나 사방 어디에도 등댓불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당장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를 얼른 알아낼 수 없었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 한 기분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두 다리가 마냥 후들거렸다.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들쑤셔댔다.

“워치 포워드!”

그녀는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 미얀마 워치 맨 샌디에게 전방을 잘 살펴볼 것을 지시하면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선수 방향 조금 우현 쪽으로 거무튀튀하고 물기를 머금은 축축한 물체 하나가 천천히 접근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완강한 돌진이라고 해야 옳았다. 소리만 들리지 않았다 뿐이지, 그것은 마치 새벽 야음을 틈타 아군 진지를 향해 당당하게 굴러오는 적의 장갑차와도 같은 중압감이었다. 그 순간의 전율스러움이라니!

- 섬이다! 풀라우 다마르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방금 해도에서 확인한 풀라우 다마르라는 바로 그 섬이었다. 불과 몇 백 미터 남짓한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어둠 속을 표류하는 유령선처럼 섬은 소리도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앞뒤 살필 겨를도 없었다. 조타실로 뛰어든 그녀는 무조건 자이로컴퍼스 리피터의 중앙 놉을 오른쪽으로 비틀었다. 그러면 전타를 하는 것과 똑같은 타효를 얻어낸다. 키를 수동으로 전환할 여유도 없었다.

순간 타이타닉 호가 떠올랐다. 바위도 아닌 한갓 얼음덩이를 스쳤을 뿐인데도 불침을 장담하던 타이타닉 호 외판은 아주 쉽게 종잇장처럼 찢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자이로컴퍼스의 헤드라인에 못 박혀 있었다. 지금쯤, 컴퍼스 눈금은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아가야 옳다. 그래야 뱃머리가 왼쪽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꼼짝도 않는다.

그녀는 안간힘을 썼다.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좀 전의 물기 머금은 바위섬은 지금쯤 아마도 뱃머리 가까이로 다가와 있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이 들려올 것 같았다. 두 다리가 마냥 후들거렸다.

이윽고 딸깍거리는 톱니바퀴 소리와 함께 눈금이 천천히 왼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선수 방향으로 보이는 카시오페이아 성좌가 그것을 확인해 주고 있었다. 드디어 뱃머리가 왼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보았다. 우현 뱃전으로 손을 내밀면 닿을 만큼, 아주 가까운 거리로 물기 번질번질한 바위섬 하나가 마치 슬로비디오의 화면처럼 소리도 없이 지나치고 있었다. 육안으로도 얼마든지 게딱지와 소라고둥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그 바위섬 꼭대기에 하얗고 장승처럼 높다란 구조물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등대였다. 해도가 말한 바로 그 풀라우 다마르 섬의 등대였다.

하지만 그건 섬광이 꺼져버린 죽은 등대였다. 태양광으로 충전하는 배터리가 기능을 상실해버린 것인지, 생명력을 잃은 허수아비였다.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순간의 일이었다. 단 몇 초만 늦었더라도 배는 한순간 타이타닉 호 꼴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아니, 섬을 들이받은 배는 그대로 중심을 잃으면서 전복하고 만다.

온몸의 힘이 죽 빠져나갔다. 정신이 멍한 게 마치 무중력의 공간 속을 유영하는 느낌이었다.

휠 스탠드의 난간을 움켜쥔 채, 겨우 몸을 버틴 그녀는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배가 원침로로부터 수 마일도 더 벗어났는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의문은 곧 풀렸다. 자이로컴퍼스가 고장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녀는 천문항법의 논리에 근거하여 그것을 알아냈다. 마침 좌현 정횡 방향, 수평선 나지막이로 영롱한 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동양에서는 직녀성이라 부르고, 그리스신화에서는 아폴로가 음악의 명수인 오르페우스에게 선사한 거문고라는 일등성 ‘비거’였다. 그녀는 곧 시진방위법으로 얻어낸 비거 성에 대한 진방위 수치를 자이로컴퍼스의 눈금과 비교한 끝에 지금까지 배를 엉뚱한 방향으로 항진하게 한 원인을 알아냈던 것이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팽이는 넘어지지 않는다’는 원리에 근거하여 아주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자이로컴퍼스가 자그마치 오른쪽으로 7도나 치우치는 엄청난 오차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확인한 메인 자이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형을 유지하고 있어야 할 로터 케이스가 오른쪽으로 꼭 7도만큼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배는 원침로인 028도에서 7도가 가산된 035도의 방위로 항진한 셈이었던 것이다. 7도의 에러로 일곱 시간을 달리면 예정된 항로에서 대략 7~8마일을 벗어난다는 것은 지극히도 상식에 속하는 일이었다.

조타실에 나타난 선장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선장은 방금 전까지 배가 처한 아슬아슬한 상황을 금방 파악해냈다.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베테랑 선장이 그걸 모를 까닭이 없었다.

“아이구나, 자네가 아니었다면 우린 모두 고기밥이 되고 말았을 거네.”

그게 한참 만에 입을 연 선장의 첫마디였다.

“기계는 믿을 게 못 된다니까.”

그게 선장의 결론이었다.

“이거 액땜을 한 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뒤늦게 브리지에 나타난 해군부사관 출신 1항사도 경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3

2항사 장혜옥에게 오션 글로벌 호로 전선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은 출항을 겨우 이틀 앞두고 있을 때였다. 그 동안 그녀는 미주를 왕복하는 4,000TEU급 컨테이너선에 2등항해사로 승선하고 있었다. 부산 감만동의 컨테이너 전용부두를 떠난 배는 때로는 일본의 요코하마를 경유하면서 대권항법(大圈航法)으로 불과 보름여 만에 태평양을 횡단하여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에 기항하곤 하였는데, 항해의 단조로움에 따분함을 느껴 다소간의 변화를 갈망하고 있을 때였다.

전선 사유는 병을 얻은 전임자의 하선으로 생겨난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였다. 하선자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선주는 옳다구나 하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여섯 척의 항해사를 대상으로 승선선박을 재배당하는 인사를 단행하여 보따리를 싼 항해사들이 이 배 저 배로 옮기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해군제독 출신인 선주는 무엇보다도 항해사들의 정신상태가 올바르지 않으면 언제 어느 때 사고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그만의 독특한 지론과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걸 위해 선주는 무엇보다도 강력한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면서 항해사들에 대한 정신훈육을 맹렬하게 펼치곤 하였는데, 그 방법의 하나가 사관들을 곧 이 배 저 배로 전선시키는 일대 인사 조치를 단행하는 것이었다. 전선 명령을 받은 사관들은 짐을 꾸리면서 내내, 선주는 함대도 아닌 일반 해운회사에서 아주 철저하게 군대식 운용을 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어떻게 하랴. 꼭 모가지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단 한 번이라도 선주의 눈 밖에 나면 그것으로 해원의 생명은 곧 끝장이기 때문이었다.

선주의 그 지론을 현장에서 곧이곧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또한 오션 글로벌 호의 선장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처음 배에 승선한 날 곧바로 확인되었다. 선장은 승선신고를 하는 신임 2등항해사 장혜옥에게 마치 신병교육대의 훈련조교처럼 다음과 같이 카랑카랑하게 불만을 토로했던 것이다.

“이거 원, 하필이면 여자 항해사라니!”

선장은 그렇게 마뜩찮아 했다. 불만은 곧 그녀에 대한 자질 평가로 이어졌다.

“그래, 귀 항해사는 지금 이 배가 어느 항로를 뛰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마치 갓 배속된 신병을 닦달하는 부대 지휘관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는 긴장한 채, 알고 있습니다, 동남아 항로입니다- 그렇게 답해 주려 했다. 하지만 그건 항해사가 아닌 미얀마 출신 평선원이어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답변이었다. 꼭 그 대답을 해야 하나, 하고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선장이 가로채고 나섰다.

“지금 이 배는 야만적인 해적 놈들이 들끓고 있는 동남아 일대를 뛰고 있다네!”

선장은 그처럼 단호했다.

전선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그녀는 곧장 여객기 편으로 쿠알라룸푸르로 날아간 다음, 마중 나온 대리점 직원의 안내로 그곳에서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포트 켈랑 부두에 도착하였는데, 그 시각 배는 이미 출항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원래 2등항해사가 공석인 배의 출항은 불가능하므로 선장은 그녀가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자 항해사라니! 그게 꼬장꼬장한 오션 글로벌 호 선장의 불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임자의 하선 사유가 문제가 된다. 못난 전임자는 일주일 전쯤 계단을 굴러 떨어지면서 그만 한쪽 다리를 삐는 사고를 당하였는데, 내내 죽는 시늉을 하더니 급기야 추연골 헤르니아라는 괴상한 자기소견을 내세우며 하선을 자청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선장은 당연히 첫 마디로 핑계라고 일축했다. 선장의 단언에 의하면, 추연골 헤르니아라는 요상한 병을 빙자한 환자는 1년 전 승선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어떻게 하면 죽음의 그림자가 얼른거리는 동남아 항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자면 뭐니 뭐니 해도 우선 오션 글로벌 호에서 탈출하는 게 급선무 아닌가, 오로지 그 하나의 음모에만 골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 내가 그 녀석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아나? 아주 혼절할 만큼 두들겨 패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어떡하겠나? 정승도 제 하기 싫다면 그만이라지 않던가! 그래 두 번째는 따지지도 않고 녀석의 하선을 승낙해버렸지.

그게 선장의 후일담이었다.

“그래서 묻는 말인데, 자네 역시 무슨 괴상한 병을 빙자할 요량이거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

멀쩡한 사내 녀석도 해괴한 병을 빙자하여 도망쳤는데, 여자로써야! 그게 제독의 첫 번째 대리인인 선장의 최종 결론이었던 것이다. 그걸 달리 표현하자면, 귀하와 같은 여자라면 차라리 얼마든지 한가하고 고급스러운 무슨 유람선이나 찾아보는 게 만 번 옳지 않겠느냐는 비아냥거림일 수도 있었다.

하기는 선장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 육지를 떠난 장기간의 항해는 무엇보다도 강인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바다란 분명코 변덕스럽기 짝이 없어서, 당장은 잔잔하고 고즈넉하다가도 언제 어느 때 악마의 망토를 펄럭일지 알 수 없다. 그 같은 온갖 악조건을 극복하며 장기간의 항해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해내려면 무엇보다도 마음 다짐부터 옹골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 그녀는 아주 작심을 하고, 고집불통의 선장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제가 이 배에 승선한 것은 여자도 남자 이상으로 항해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여자 운운하지 말라는 게 그녀의 주장인 것이었다. 고맙게도 선장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런 다음 포트 켈랑을 출항한 오션 글로벌 호는 지금 중국 광저우 만의 황푸 항을 향해 속력을 높이고 있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말라카해협 통항은 몇 차례나 쏟아진 스콜로 해서 갑판이 축축해진 것 말고는 매우 순조로웠다. 다만 싱가포르를 앞둔 풀라우 쿠쿱(풀라우란 인도네시아 말로 섬이라는 뜻) 인근에서 수상한 고기잡이배 하나가 그물을 푸는 시늉으로 꼼지락거리고 있어서 바짝 긴장하였으나 다행히도 배들의 왕래가 잦은 항로여서 아무 탈 없었다.

그만큼 세상은 각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설령 조난에 처한 표류선을 발견하더라도 인정에 끌리지 말라는 게 동남아 항로를 뛰는 선박 사관들의 공통된 인식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딱하다 싶어 무심코 접근하였더니, 표류자들이 갑자기 기관총을 꺼내들며 일순간 해적으로 돌변하기가 예사였던 것이다.

4

포트 켈랑을 출항한 다음의 일이었다.

방에서 한창 짐을 풀고 있는데 선장의 호출이 왔다. 캡틴 룸은 조타실 뒤쪽의 한 층 위에 있었다.

“이걸 잘 보관하게나.”

방으로 들어서자 천천히 몸을 돌린 선장이 서류봉투 하나를 내밀면서 말했다.

“무엇입니까?”

그녀가 물었다.

“비상 선용금인데, 1만8천 달러야. 나머지 2천 달러는 내가 보관하겠다. 선용금 모두를 해적 놈들에게 몽땅 털릴 수야 없지 않나?”

원양항로를 뛰는 배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선주는 얼마간의 비상금을 선장에게 맡기는데, 그 돈의 상당액수를 2항사더러 따로 보관하라는 것이었다. 앞서의 미주를 뛰던 컨테이너선에서는 못 보던 일이었다. 그렇다면 선장은 이번 항해에서 해적과의 조우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는 말인가. 결코 반가운 일일 수 없었다.

그녀가 머뭇거리자 선장이 곧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유비무환! 알았냐?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몹쓸 녀석들을 만난 적이 없지만 말이다.”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봉투를 든 채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마땅한 은닉 장소가 눈에 띄지 않았다. 어느 배든 마찬가지지만, 항해사 전용 공간이라야 그게 그거 아닌가. 설마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만약 배로 기어 올라온 해적 놈들이 선교를 점령한 상황에서 숨겨둔 선용금을 내놓으라며 총을 들이대기라도 하면 이놈의 봉투 때문에 어떤 화를 당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비닐봉지에 싼 봉투를 냉장고 동결실 한 귀퉁이에 쑤셔 넣어버렸던 것이다.

항해는 아무래도 순조로울 것 같지 않았다. 출항 임박하여 본사로부터 메시지가 온 게 그 단서였다. 당초의 스케줄에 의하면 다음 기항지는 대만의 타이베이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메시지는 당초의 스케줄을 무효로 한 다음, 새로운 스케줄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거 원!”

선장이 또 혀를 끌끌 찼다. 선장은 걸핏하면 혀를 끌끌 찼다. 평생을 바다에서만 살아온 그에게는 무엇이든 만족스러운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기백이나 정력으로만 따진다면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벌써 은퇴하고도 남았을 나이에 아직도 현역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 같은 불타는 정열 덕분일 것이다.

“이거 원! 우리더러 평생을 남지나해에서 살라는 거야, 뭐야? 올라갔다가 또 내려갔다가!”

수신지를 든 선장의 손등에 힘줄이 시퍼렜다.

본사가 타전한 새 스케줄에 의하면, 대만의 타이베이 대신 중국 광저우 만의 황푸 항으로 선수를 돌릴 것과, 그곳에다 포트 켈랑에서 적재한 화물을 모두 양륙한 다음 다시 지정된 화물을 싣고 재차 남하하여 자바의 자카르타 항으로 직항하라는 것이었다. 어선의 항로는 고기 떼가 결정하지만, 상선의 항로는 해치 속 화물이 결정한다. 따라서 일반 화물선이 화물을 찾아 이 항구 저 항구를 맴도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숙명이 된다. 또 그 일로 태평양을 열두 번 왕복하라한들 무슨 항변을 할 것인가.

특히 남지나해를 주 항로로 하는 오션 글로벌 호 입장에서 보면 이번 항해에는 아무래도 문제가 없을 수 없었다. 선장이 불만을 토로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장의 불만은 메시지 끄트머리에 토끼 꼬리처럼 대롱대롱 매달린 다음 문구를 보자 쑥 들어갔다.

- ……따라서 금차 항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면 본사는 별도의 과외수당을 지급할 계획으로 있음. 귀선의 안전항해를 기원함.

마치 상급부대로부터 하달된 작전 명령서와도 같았다.

선장이 수신지를 해도 위에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룸으로 돌아가자 다음에는 해군부사관 출신 1등항해사가 나섰다.

“도대체 뭘 갖고 그러시는 거야?”

그러더니 눈을 번쩍 떴다.

“뭐? 과외수당이라고?”

그의 견해인즉, 원래부터 월급만 꼬장꼬장 지급해 온 회사가 갑자기 무슨 까닭으로 과외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나섰느냐는 것이다. 매번 당해본 경험 끝의 일이지만, 상황이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입을 쓰윽 닦고 마는 게 화물선을 부리는 회사들의 고약한 심보가 아니냐는 것이다. 돈 문제라면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선원들이 거대한 골리앗인 회사를 상대로 꼬치꼬치 대들고 따지는 것은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 뿐이다.

“샤일록도 두 손 번쩍 들 구두쇠가 생돈을? 그렇다면 답은 뻔해. 이번에 실을 화물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안 그래, 2항사?”

그렇게 그녀에게 동의를 구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살짝 웃었다.

해군부사관 출신인 1항사는 원래부터 선주에게 불만이 많았다. 그로 말하자면 참수리 포술장을 하던 하사관 때는 야밤중에 NLL을 넘어 온 북한 경비정을 대파시킨 무공으로 훈장을 받았고, 전역 직전까지는 주력 구축함에서 조타장을 역임하였으며, 그런 다음에는 복무 중 취득한 해기사 자격증으로 지금의 오션 글로벌 호에 승선하면서 새로운 바다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참이었다. 그 세월이 어느덧 5개성상이라던가. 그런데 아쉽게도 어느덧 쉰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선장으로 승진하지 못 하고 있다. 방금 작전명령문을 타전한 선주가 왕년에 함대를 쩡쩡 울려댄 해군제독 출신임을 감안한다면 그의 승진이 이처럼 지연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흔쾌한 일이 못 된다.

그 이유를 2등항해사인 그녀는 해군부사관 출신의 지나치게 깐깐하고 소심한 탓은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출항하기 전 무심코 침실 문을 열었다가 목격한 일에서도 충분히 확인되고 있었다. 그 순간 해군부사관 출신은 치약을 묻힌 칫솔로 한창 비닐 바닥을 닦고 있는 중이었다. 도대체 선내를 마음껏 질질 끌고 돌아다니던 슬리퍼 그대로 드나들기를 예사로이 하던 침실 바닥을 칫솔로 박박 문지르다니! 그 순간 느낀 것이 저처럼 결벽성이 지나치니까 대범해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깐깐한 소인배로 치부되는 건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해군부사관이 내던진 메시지를 다음에는 그녀가 집어 들었다.

- ……안전항해를 기원함.

마음에 걸리기는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항해를 앞두고 안전항해를 기원하는 것은 용기를 북돋우는 격려의 당부이자, 선주로서의 애틋한 바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악명 높은 말라카해협 통항을 앞둔 오션 글로벌 호 입장에서 그 말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건 멀쩡한 사람을 두고 공연히 안색이 나쁘다거나 건강에 유념하라고 곱씹는 것과 같다.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 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동남아 항로에 투입된 선박 처지에서 남지나해는 결코 건너뛸 수 없는 외나무다리였다. 말로만 망망대해지, 그곳이야말로 사방이 벽으로 둘러쳐진 막다른 길목이자 악몽의 터널이 분명했다. 정작 들어서고 보면 육지 자락이라곤 눈에 띄지도 않는 광활한 바다가 분명한데도 해도에서 보면 곳곳에 크고 작은 섬들이 똬리를 틀고 있어서 항해를 하는 동안이면 브리지 사관들은 말 그대로 오금을 절이고 만다. 거기에다 요 앞 태평양을 뛸 때와는 달리,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해적 놈들이 득시글거리는 판이다.

해군부사관 출신 말에 의하면 앞 항해에서도 그랬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해적선으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괴선박 하나가 몇 시간 동안이나 배 꽁무니를 따라붙고 있어서 그걸 떨쳐내느라 선원 모두가 마치 적의 총공격에 대비한 진지 속 병사들처럼 꼬박 뜬눈으로 밤을 하얗게 밝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이다. 요행히도 마침 이라크 앞바다의 페르시아 만으로 향하는지 일단의 미국함대가 전투대형으로 길게 줄을 잇고 있어서 염치불구하고 그 대열로 슬쩍 끼어들었는데, 그 덕분인지 수상한 배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일반 상선의 입장에서 말라카해협과 남지나해는 정나미 떨어지는 해적 놈들의 진짜 소굴인 것이었다.

2항사 장혜옥도 오션 글로벌 호가 처한 제반 상황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어차피 배를 타기로 마음먹은 이상, 더욱 국내 연근해가 아닌 외항선을 타기로 작정한 이상, 자신의 기호에 딱 들어맞는 배만 골라 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오션 글로벌 호에 승선한 첫날, 자네 역시 무슨 괴상한 병으로 하선할 요량이거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 라고 한 선장의 말에서도 충분히 설명되고 있었다.

5

당직근무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 온 2항사 장혜옥은 우선 침대에다 몸부터 털썩 내던졌다. 사지는 나른하였고,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는 게 미열이 있는 것도 같았다. 육체는 상당 시간의 휴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세상만사를 모두 잊고 깊이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사정은 딴판이었다. 알맞은 실내온도와 폭신한 매트의 감촉이 더없이 안온하였건만 쉽게 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억지로 눈을 감고 있으려니 풀라우 다마르 섬의 시커먼 그림자가 눈앞에서 맴을 돌았다.

몸을 뒤척이는데 머리맡으로 딱딱한 물체 하나가 손에 잡혔다. 짐을 풀 때 꺼내놓은 <In The Heart of The Sea>라는 두꺼운 책자였다. 오래 전 어느 고래연구가가 미국 포경산업의 본거지이던 낸터키트 섬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기술한 것으로, 에식스라는 포경선이 고래에 받혀 난파하면서 바다에 내던져진 선원들이 겪은 끔찍하면서도 처절한 표류기였다. 처음에는 스무 명의 선원들이 세 척의 보트에 나누어 타고 표류를 시작하였으나 나중 구조되었을 때는 단지 두 사람만 남아 있었다. 얼마나 오래토록 표류하였던지 퀭한 얼굴에 피골이 상접한 두 생존자는 구조선이 다가가도 알아보지 못한 채 무언가를 열심히 핥고 있었다. 그게 죽은 동료들의 뼈 조각이었음을 안 사람들은 경악했다. 두 사람은 92일 동안이나 표류를 하는 동안 나중에는 동료들의 인육을 뜯어먹으며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것이다.

전율스럽기 그지없는 그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그녀는 자신도 언젠가는 그 같은 고립무원의 조난자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망념에 푹 빠져 들었다. 지금까지 허다한 조난기를 읽어 보았지만, 그 책만큼 공포와 전율을 불러일으킨 것은 하나도 없었다.

책장을 펼쳤으나 시선은 헛돌기만 하였고, 자꾸만 엉뚱한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의 상념이 머문 곳은 여자인 자신이 어떻게 하여 금단의 영역인 외항선에 승무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후회스러운 생각에서는 절대로 아니었다.

그녀가 배를 타기로 마음먹은 것은 꼭 아버지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아버지의 권유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고향을 등지고 월남한 아버지는 살아가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고기잡이배를 타기로 하였는데, 그게 그만 평생의 직업으로 굳어진 경우였다.

바다에서 돌아온 아버지에게서는 언제나 상큼한 소금 냄새가 풍겨났다. 특히 먼 바다에 파도가 높다는 뉴스를 들은 다음이면 그 냄새는 더욱 농도가 짙었다. 높은 파도와 싸우느라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게 바닷물에 찌들어 있었다.

- 나도 자격증만 가졌다면 벌써 그놈의 선장이라는 것을 해먹었을 텐데.

동해안에서 오징어잡이를 하는 채낚기선에서 나중 갑판장까지 한 아버지는 한 잔 술만 들이켜면 잠꼬대처럼 그렇게 한탄하기를 버릇으로 하였다. 그게 그녀로서는 멍에였던가.

어느 날 바다로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실종자라는 이름으로 수색의 대상이 되었으나 며칠 후 수색선들이 앞 다투어 철수하면서 그만 기억 속에 파묻힌 사람이 되고 말았다.

중학을 다닐 때부터 그녀는 또래의 다른 여학생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유별나게도 콜럼버스와 마젤란, 그리고 섀클턴 등 숱한 모험가들이 겪었던 모험기가 환영 이상의 실체로 다가와 이제는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배를 타고야 말겠다는 집념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게다가 원양어선을 타고 남태평양과 대서양을 두루 다녀온 사촌오빠로부터 전해들은 외국 항구의 이야기들은 그녀를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외국선박에서는 허다한 여자들이 사관으로 승선하여 얼마든지 자신들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내고 있다는 대목이 그녀를 더욱 안달 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귀항하지 않은 아버지의 빈자리는 순전히 어머니 몫이었다. 동도 트기 전에 집을 나선 어머니는 어시장에서 마련한 생선을 함지박에 하나 가득 담아서는 머리에 인 채 먼 시골길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 처지에서 대학진학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그녀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바다 계통의 대학으로 진학하여 외국선박에서처럼 사관으로 승무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자가 승선 가능한 외국으로 나가는 건 어떨까. 그 같은 궁리는 꼭 바다에 뼈를 묻은 아버지의 한이나 미련 때문일 수는 없었다.

세상은 날로 급변하는데, 한국은 아직도 근대 이전의 미망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여자가 배에 타면 재수 없다는 말이 아직도 횡행하던 게 작금의 현실이었다. 여자가 배에 타면 안 된다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심지어 어느 고전소설에서는 출항하기에 앞서 용왕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친 다음에야 비로소 돛을 펼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그래야만 안전항해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그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가. 도대체 삼면이 바다인 어엿한 해양국이면서, 바다를 공포와 지옥의 세계로만 치부하는 게 이 나라의 오랜 인식이자 관념인 것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996년 가을, 영도에 자리 잡은 한국해양대학이 그 미신을 타파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그 여파였던가. 그 3년 후에야 해군사관학교도 여자생도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으니 영도 대학의 결단은 참으로 선지적이라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캠퍼스에는 기숙사까지 마련해 두고 있고, 학비도 전액 국고로 지원하고 있다는 대목은 그녀의 마음을 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녀는 보란 듯이 동남아 항로를 뛰고 있는 화물선의 2등항해사로 어엿이 승선해 있는 것이다.

순간, 그녀의 망막 속으로 한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재학 동안 친구 이상의 정을 나누어 온 남학생이었다. 미래의 멋진 해기사답게 매사 적극적이면서 활달하기 그지없는 그의 성격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캠퍼스 부두에 나란히 앉아 우람하기 그지없는 실습선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우리도 미구에 저처럼 멋들어진 배를 타고 세계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을 거라며 얼마나 마음을 부풀렸던가.

그런 그가 졸업 임박하여 스스로 승선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부모의 완강한 반대가 그 이유라고 하였으나 구차한 변명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고귀한 해기사 자격증이 아깝게도 휴지가 되어버렸네!”

그것으로 끝이었다. 미련 없는 헤어짐이었고, 그 뒤로 피차 딴 세상 사람이 되었다.

6

망카이 섬에서 변침한 다음에도 바다는 여전히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바다가 잔잔한 것은 바람이 없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그녀의 귀밑 머리칼을 휘날리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배의 항진에 의한 대기의 심술궂은 희롱 때문일 것이다.

남지나해의 뜨거운 열기가 갑판으로 쏟아지고 있었지만, 한바탕 쏟아진 스콜 덕분에 더위는 한 풀 꺾여 있었다.

때때로 몸통 굵은 날치가 뱃전 물결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열대 해역의 날치는 몸통이 크다. 한껏 날개를 벌리고 허공을 날 때의 몸매는 프로펠러 단발기에 영락없다. 그래서 밤사이 방향을 잘못 잡거나 혹은 된 바람을 이겨내지 못해 잘못 갑판에 떨어진 놈들은 선원들의 더없는 별식이 된다. 배기가스의 열기로 가마솥만큼이나 뜨거운 연돌 속에 잠깐 넣어두는 것으로 날치는 꽁치 맛을 내는 훌륭한 소금구이로 변모하는 것이다.

“2항사님, 이거 하나 드실래요?”

미얀마 출신 샌디가 날개도 뜯어내지 않은 갓 구워낸 날치 한 마리를 내민 적이 있었다.

“맛있어?”

그 호의가 너무 고마워 그녀가 물었다.

“그럼요. 꼭 고등어 맛이거든요.”

거무스레한 피부여서 배시시 웃는 입술 사이의 치아가 더욱 하얗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에도 놀란다던가. 어디에도 천적(天敵)이 보이지 않는데, 날치 떼가 일제히 바닷물을 박차 올라서는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치고 있다. 필경 오션 글로벌 호가 일으키고 있는 거대한 물결 때문이리라.

무슨 까닭인지, 돌고래와 판이하면서도 돌핀이라는 같은 이름을 얻어낸 만다이라는 물고기는 날치 떼를 보면 한사코 따라붙는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기운이 소진되어 바닷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불쌍한 날치를 천적인 만다이는 한입에 집어삼키는 것이다.

다음날도 기상은 여전했다. 다만 멀리 아마득한 수평선 낮게 비를 머금은 구름덩이가 부풀어 오르고 있었지만, 걱정할 일은 못 되었다. 필경 두어 차례 스콜을 만나는 것으로 모든 것은 끝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시 그녀가 주간당직을 끝낼 시각이었다. 시간은 15시 45분이 되어 있었다.

다음 당직자는 해군부사관 출신이었다. 오랫동안 해군에 몸담아서인지 시간관념이 투철하기가 자명종 시계 그대로였다. 우정 일깨우지 않더라도 자로 잰 듯 정확한 시간에 모습을 나타내곤 했었다. 그걸 보고 그녀는 군대란 사람을 정밀기계로 만드는 공장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미스 장, 수고했어. 가서 쉬도록 하게.”

해군부사관 출신은 2등항해사라는 엄연한 직함을 두고도 장난기 섞은 목소리로 그렇게 부른다. 처음에는 무척 거슬렸다. 여자라고 우습게 보는 건가. 아니면 치밀하게 연출하는 신종 성희롱인가. 하지만 별다른 악의가 엿보이지 않아 그냥 흘려 넘기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은 시간이 되어도 통 나타날 기미가 없다. 도대체 정밀기계가 웬일일까. 깊이 잠이라도 들었단 말인가.

해군부사관 출신은 결국 정시를 넘겨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당직교대는 정시보다 15분 빨리 이루어진다.

항해일지 정리를 마친 그녀는 결국 계단을 내려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노크했다.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좀 더 세게 두드렸다. 역시 무응답이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복도를 꺾어 돌아 살롱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예기치 못한 목소리를 들었다.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보아 해군부사관 출신이 틀림없었다.

“3번 해치야. 거기서 냄새가 난단 말이야.”

목소리는 더욱 낮아졌다. 방금 해군부사관이 말한 3번 해치에는 포트 켈랑에서 선적한 화물로 가득 차 있다.

“조심해. 누구도 알아서는 재미없으니까.”

그러자 누군가가 염려 마세요, 하고 동조했다. 의외에도 인도네시아 출신 3등기관사 마르코스였다.

이야기가 끝났는지,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 그녀는 재빨리 조타실로 뛰어 올라갔다.

“미스 장, 수고했어.”

정시에서 20분도 더 지나 조타실에 모습을 나타낸 해군부사관 출신이었다.

“좀 늦었네.”

멋쩍은 웃음이었다.

“괜찮습니다.”

방으로 돌아와서도 그녀는 의아심을 떨쳐낼 수 없었다.

- 3번 해치야. 거기서 냄새가 난단 말이야.

해군부사관 출신의 그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인가.

그러자 그녀는 포트 켈랑을 출항하기 전 선장이 세 명 항해사 앞에서 메시지를 읽어 주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 때 해군부사관 출신은 ‘틀림없이 이번에 실을 화물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안 그래, 2항사?’라고 동의를 구하기까지 했었다.

그걸 놓고 해군부사관 출신은, 그렇다면 아주 위험한 화물이던가 아니면 불법적인 화물이 틀림없다고 단정했다. 그렇다면 마약일까, 금괴일까. 아니면 세상을 발칵 뒤집어엎을 만큼 무시무시한 비밀 병기를 싣기라도 했단 말인가. 적하목록에는 다만 일반잡화로 되어 있는 게 더욱 궁금증을 자아냈다. 어쨌거나 지금 자신이 승선해 있는 오션 글로벌 호는 본의든 아니든 간에 어떤 알지 못할 사건에 깊숙이 개입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항해를 완료하는 대로 과외수당을 지급하겠다는 본사의 제의를 두고 갖가지 추측이 난무한 순간의 미묘함도 있었다.

7

남지나해를 북상하면서 세 번째로 맞는 새벽 무렵, 방금 수평선을 딛고 솟아오른 보름달이 잔잔한 바다에 은빛 가루를 뿌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달을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곳은 고향 마을이라던가. 문득 지금도 여전히 먼 시골 길을 맴돌고 있을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세월의 연륜이 더한 만큼 주름은 깊어지고 손마디는 더욱 거칠어져 있을 것이다.

베트남의 판다린 갑을 통과하면서 2등항해사 장혜옥은 침로를 다시 015도로 변침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015도에서 자이로컴퍼스의 오차 수치인 7도를 뺀 008도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항해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배의 조종이 자신의 손끝 하나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아버지가 이 모습을 보신다면 얼마나 대견해 하실까.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벽시계는 정확하게 새벽 2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배는 줄곧 경제속도인 시속 12노트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이가 10년도 넘은 화물선이 그만한 속력을 갖고 있다면 그건 우량아인 편이었다.

시야 어느 곳에서도 불빛 하나 확인할 수 없었다. 외로운 항해였다. 따분한 느낌도 들었다. 기지개라도 켜고 싶었다. 문득 읽다 만 난파선 에섹스 호 뒷이야기를 읽는 건 어떨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행위야말로 항해사 본분을 망각한 짓이다. 그녀는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내고자 하였다. 그 같은 정갈한 근무 자세가 바위섬 풀라우 다마르에서의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카시오페아 좌는 더욱 고도를 높이고 있었고, 그 무렵부터 선수 좌현 방향으로 아주 낮게 폴라리스(북극성)가 수줍게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북극성은 눈어림으로 대략 10도 가량의 고도를 갖고 있었다. 북반구에서 북극성의 고도는 배의 위도와 일치한다. 천문항법에서는 이를 극성위도법이라 한다. 따라서 굳이 GPS로 확인하지 않더라도 위도 하나만큼은 정확하게 알아맞힐 수 있다. 곧, 방금 변침을 단행한 판다란 곶의 지리상 위도가 정확하게 북위 12도에 해당하는 것이다.

뱃전으로 부챗살처럼 퍼져나가는 물결 틈으로 야광충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바다는 수많은 생명체로 충만했다. 밤하늘의 별처럼 명멸하는 야광충들은 새우나 규조 따위의 플랑크톤이 틀림없었다. 물속 유기물질을 섭취하면서 자라난 플랑크톤은 멸치나 전갱이의 먹이가 되고, 이들 회유성 작은 물고기는 참치나 상어 등 대형어류의 포식 대상이 된다. 이를 사람들은 바다라는 대자연에서 항용 벌어지고 있는 먹이연쇄라 말한다. 결국 바다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신비와 마법의 별천지인 것이다. 스웰이 넘실거리는 수면으로 물속에 잠긴 밤하늘의 별들이 배의 부단한 요동으로 일렁일렁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새벽 네 시 15분 전, 정확하게 해군부사관 출신이 브리지에 나타났다. 어느 새 교대 시간이 된 것이다. 어머님 얼굴을 떠올리고, 에섹스 호 표류자들의 사투에 경악하고, 북극성을 벗 삼고, 그리고 바다라는 대자연의 마법과 신비스러움을 마음껏 그려보는 동안 네 시간이라는 고독한 당직근무가 끝이 난 것이다. 이제 브리지는 해군부사관 출신에게로 넘겨졌다.

방으로 돌아 온 그녀는 근무복 차림 그대로 침대에 몸을 내던졌다. 온 몸을 조이고 있던 나사들이 깡그리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그녀는 현창 너머로 희끗한 플래시 불빛을 보았다. 처음에는 환영인가 하였다. 여명까지는 아직도 한참이었다.

- 3번 해치야. 거기서 냄새가 난단 말이야.

문득 인도네시아 출신 3등기관사 마르코스에게 은밀히 건네던 해군부사관 출신의 나지막한 속삭임이 떠올랐다. 그 속삭임에 인도네시아 출신은 아무 염려 말라고 응답했었다. 한국 선박을 오래 탄 인도네시아 출신은 한국말을 제법 잘 구사했다. 해군부사관 출신은 자신의 음모에 만만한 인도네시아 출신을 끌어들인 게 분명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알지 못 하는 무슨 음모가 벌어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뿌리칠 수 없는 궁금증이었다. 몸을 일으켜 살금살금 복도로 나갔다. 그 시각 복도는 비어 있었다. 백열등 불빛이 흐릿했다.

그녀는 우선 살롱 쪽으로 다가갔다. 아까 해군부사관 출신이 인도네시아 출신 3기사 마르코스와 은밀하게 속삭이던 곳이다. 귀를 기울였으나 아무 기척이 없었다. 살롱은 비어 있었고, 빈 찻잔 두 개만 뒹굴고 있었다.

그 옆, 상갑판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 있었다. 밤공기는 서늘했고, 곧 동이 트려는지 한쪽 수평선이 희붐해지고 있었다.

문득 얼른거리는 불빛을 보았다. 메인 데크 3번 해치 부근이었고, 불빛은 두 개였다. 그녀는 어둠을 방패삼아 살금살금 브리지로 올라갔다. 양쪽 윙을 살폈으나 역시 예상한 대로 워치 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확신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메인 데크의 불빛은 인도네시아 출신 3기사와 워치 맨이 틀림없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돌아보니 해군부사관 출신이었다.

“미스 장, 잠이 오지 않아?”

가슴이 철렁하였으나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워치 맨 보이지 않네요.”

그 말에 해군부사관 출신이 움찔했다.

“서드 엔지니어(3기사)와 갑판 순찰을 돌게 했다.”

“메인 데크 쪽인가요?”

“별거 아냐! 미스 장은 가서 잠이나 자라고.”

“안전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려고요?”

“매사 자상한 건 좋지만, 너무 지나치면 그건 탈이 될 수도 있어. 그래서 부탁하는데, 내가 하는 일에는 제발 좀 모르는 척 해줘, 응.”

산호해 바위틈에서 곰치를 만난 돌돔 처지였다. 그대로 물러서는 게 상지상책이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방으로 돌아왔으나 미심쩍은 생각은 쉽게 털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해군부사관 출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8

장기간의 항해는 인간을 무력하게 만든다. 둘러보면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와 그 바다를 체육관의 돔처럼 뒤덮은 하늘뿐이다. 거기에 마주치는 사람이라야 제한되고 각인된 몇몇 선원들. 무료하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그 무료함을 떨쳐내기 위해 선원들은 간혹 장난을 친다. 해치 속 화물의 포장을 뜯어낸 다음 갖가지 내용물을 점검하여서는 적당한 메뉴가 발견되면 그것으로 퇴화한 미각을 되살리는 따위의 짓이다. 고급 비스킷이나 냉동 육류가 얻어걸릴 경우도 있고, 때로는 잘 정제된 고급 위스키가 튀어나올 때도 있다.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화물의 손상이나 분실은 흔한 일이다. 설령 클레임을 거는 화주가 나타나더라도 항행 중 조우한 태풍 탓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그걸 문제 삼는 화주는 없다.

해군부사관 출신은 어쩌면 그 같은 유희에 맛을 들인지도 모른다. 그는 때때로 병마개를 딴다. 체스터에 숨겨둔 위스키가 그의 심신을 달래는 데는 그저 그만이다. 서해교전 때 눈앞에서 스러져간 부하 수병들의 얼굴이 얼른거릴 때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임무와 관련한 실수를 저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방금 두 명의 외국인 선원을 갑판으로 내려 보낸 것일까. 위스키 병이 바닥나서인가. 온갖 잡화로 가득한 화물 뭉치 속에 위스키는 빠지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그건 비도덕적인 일이며, 결단코 칭찬할 일이 못 된다. 더욱 1등항해사로 말하자면 그 같은 행위를 일삼는 선원들을 단속해야 할 최고 책임자가 아닌가. 어쨌거나 제발 엉뚱한 말썽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그녀는 고대했다. 그런데 날이 밝으면서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2항사 장혜옥은 갑판으로부터 왁자한 소리에 잠을 깼다. 아침 일곱 시 무렵이었다. 잠자리에 들고 채 두 시간도 되지 않아서였다.

소란은 틀림없이 해군부사관 출신의 해치 수색작전의 결과라고 그녀는 단정했다. 어쩌면 조타실에서 병을 거꾸로 치켜들다가 선장의 눈에 띄었는지도 모른다. 그 혼자만의 자유 영역인 방에서라면 모를까, 조타실은 사정이 다르다. 비록 제독 출신은 아니지만, 선주 이상의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완고하기 그지없는 선장이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한창 남지나해 바닷물을 헤치고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어야 할 배가 기관을 끈 채 타력만으로 천천히 원을 그리고 있으니 말이었다. 그녀는 결국 잠을 포기하고 갑판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곧 배가 멈춘 까닭을 알아냈다. 배 주위로 많은 부유물이 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난파선의 잔해임이 분명했다. 박살 난 널빤지 조각도 보였고, 눈을 시리게 하는 붉은 색깔의 구명재킷도 보였다. 고기잡이에 나선 소형 목선 하나가 거대한 화물선 선체에 정통으로 들이받힌 게 분명했다. 동남아 해역의 고기잡이배는 소형선이 대부분이어서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도 않는다. 주낙 깔기를 마치면 두어 시간 대기를 하게 되는데, 호롱불 하나 밝히지도 않고 배를 띄워둔 채 잠이 든 탓으로 앞길이 바쁘기만 한 일반 상선들의 충돌 대상이 되어버리곤 한다. 그 충격 또한 미미하기 그지없어서 대형선들은 알아채지도 못 한다. 그 날 아침의 참극도 그 경우를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에도 생존자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 침몰선은 도대체 무슨 고기를 잡으려다 변을 당한 것일까. 다시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그런 한가한 생각을 했다. 작은 고깃배가 한가로이 낚시를 드리울 만큼 육지는 가깝지 않았다. 지금도 거리를 정확히 외우고 있는데, 그곳은 중국의 하이난다오로부터 적어도 1백마일 이상 떨어진 한바다가 된다.

“1항사, 도대체 무슨 일이야?”

선장이었다. 그만한 소란이었으니 선장인들 깨어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충돌사고입니다.”

해군부사관 출신의 대답이었다.

잠시 조용하였으나, 이내 선장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래서 배를 세운 거야?”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메이데이라도 수신했나?”

“그건……아닙니다.”

그러자 선장이 버럭, 역정을 냈다.

“이거 원! 자네는 그렇게도 한가한가?”

다시 항해가 재개되었다. 널브러진 잔해를 피해 배는 반 바퀴나 원을 그렸다. 배가 일으킨 파도가 부유물들을 한곳으로 끌어 모으면서 일렁일렁 그네를 태우고 있었다.

그로부터 사흘 후, 배는 드디어 광저우의 황푸 항으로 들어섰다. 고대 적, 상아와 비취 등 진귀한 보물을 탐낸 진시황에 의해 몇 차례나 경략된 중국 남부 지방의 광저우는 청나라 시대에 아편전쟁의 무대가 되었을 만큼 번영과 쇠퇴를 반복한 역사 속의 성도였다. 그게 오늘에 이르러 철강․조선을 비롯한 중화학공업이 번창하면서 해외무역의 허브 항으로 떠오른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었다. 그 때문인지, 화물의 종류도 많았을 뿐 아니라 포장 방식도 각양각색이었다. 그야말로 해상운송물의 총체적 전시품인 것이었다.

오션 글로벌 호는 그 항구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포트 켈랑에서 선적한 화물 양륙을 끝낸 다음 다시 자카르타로 운송할 새 화물을 받아 싣기까지의 체항 기간이었다.

자카르타로 운송할 화물은 많았다. 다섯 개 해치를 모두 채우고도 화물이 넘쳐 부득이 12피트 중형 컨테이너 한 짝은 갑판에 적재할 수밖에 없었다. 악천후에 대비하여 와이어로프로 튼튼히 고정시키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화물 적재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웬 일인지 해군부사관 출신이 직접 갑판을 쏘다니며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일이었다. 화물의 적하와 양륙작업은 전적으로 2등항해사 몫이다. 그런데 그는 적하목록과 화물을 꼼꼼히 대조하면서, 미심쩍다 싶으면 그 내용물을 확인하는 극성까지 떨었다. 좀체 없던 일로, 그렇다고 그를 만류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샘플 한두 개로 충분하지 않나?”

시간이 지체된다는 한 가지 이유로 선장이 그렇게 한 차례 제동을 걸었을 뿐이었다.

침실 바닥을 칫솔로 박박 문질러야 직성이 풀리는 지나친 결벽증도 일종의 병이라면, 결과적으로 고질적이라고나 해야 할 1항사의 그 병으로 한 가지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를 붙잡은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한창 12피트 컨테이너를 적재하고 있을 때였다.

“1항사님, 이놈 좀 보십시오. 허락도 없이 선미갑판을 기웃거리고 있었습니다.”

태국 출신 기관원이 중국인 한 명을 1항사 앞으로 끌고 왔다.

1항사 면전에서 사내는 무조건 도망치려고 외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왼쪽 광대뼈를 거쳐 턱밑까지 깊게 납빛 흉터를 가진 인상이 험악한 30대 중반의 사내였다. 왼쪽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는 것은 아마도 상처를 입을 때 안구까지 탈이 난 때문일 것이다. 아주 예리한 칼끝으로 길게 내려 그어지지 않은 한 결코 생겨날 수 없는 흉측한 상처였다.

“당신 중국인이야?”

1항사가 안전모를 벗으며 서투른 중국말로 물었다. 이마로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답 대신 사내는 한사코 1항사로부터 멀어지려고 버둥거렸으나 태국 출신 기관원이 워낙 허리춤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어서 뜻을 이루지 못 했다. 사내는 짐승처럼 비명을 질렀다.

외국 항에 기항한 화물선은 그 자체가 하나의 보세구역이 된다. 양륙하거나 선적되는 모든 화물은 세관 당국에 의해 철저한 검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불법적인 화물이 되면서 엄격한 통제 하에 놓이게 된다. 말하자면 밀수품인 것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든 당해 선박이나 화물과 관련하여 어떤 식으로든 연고를 갖지 않는 한 함부로 선박에 오르내릴 수 없다.

“너, 도둑놈이야? 아님 밀항 꾼인가?”

1항사의 아주 단정적인 닦달이었다. 사내는 대답 대신 여전히 머뭇거리기만 했다.

그러자 1항사가 둘러선 선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외국 항구에서 부두에 배를 대고 있을 때면 감시를 철저히 해야 한다. 그곳이 차이나라면 더욱 그렇다. 중국은 아직도 자유가 넉넉하지 않다. 봐라, 러시아가 철의 장막을 거둬내고 개방하면서 자유경제 체제로 전환하자 맨 먼저 생겨난 것이 미국처럼 마피아와 약(마약)장수였다. 사회주의 때는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사회가 달라지자마자 사람들 마음이 먼저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밀항꾼들이 득시글거린다. 앞으로 이런 놈이 다시 갑판을 어정거릴 때면 우선 네놈들부터 혼 내주겠다!”

서슬 퍼런 1항사의 고함소리에 선원들이 주춤했다. 한 선박의 1등항해사라면 잘못을 저지르는 선원들을 강제 하선시키는 일도 가능하다. 그게 외국인 선원들이 항해사관을 겁내는 이유다.

갱웨이라고 한다. 배가 부두에 접안하면 사람들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사다리를 걸쳐두는데, 현문이라고 하는 그곳 갑판에는 반드시 한 사람의 선원이 배치되어 승하선하는 모든 사람들을 통제하거나 검문한다. 특히 정박 중인 군함에서는 당직 장교의 날카로운 호각 소리와 함께 ‘누구누구 승함!’ 또는 ‘누구누구 하함!’ 등의 구령으로 요란하기 그지없다. 그만큼 갱웨이는 정박선의 가장 중추적인 메인 게이트여서,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배에 오르거나 내릴 수 없게 되어 있다. 허락 없는 승하선은 무단침입으로 간주되어 당장 현지 경찰에 신병을 넘길 수도 있다. 더욱 오션 글로벌 호 1등항해사로 말하자면 오랫동안 엄격한 규정 속의 함상 생활이 몸에 밴 해군부사관 출신이 아닌가.

문제는 한창 화물 선적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별도로 현문당직자를 배치하지 않는 데 있었다. 부두에는 세관원이나 경비원들이 산재해 있고, 선상에서는 작업이 분주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그 같은 상황에서 구태여 당직자를 따로 배치하지 않더라도 몰래 숨어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디에든 구멍은 있다. 가령 한창 작업 때의 선미갑판이 좋은 예다. 갑판은 비록 눈코 뜰 새 없이 작업으로 분주해 있지만, 기관원들이 기계를 점검하느라 모두 엔진룸으로 몰려 들어가 있기 때문에 선미갑판은 비어 있기 십상이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뱃전을 기어오를 수 있다. 왼쪽 뺨따귀로 깊은 납빛 상처를 새기고 있는 녀석도 아마 틀림없이 그 허점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그 틈에 태국 출신 기관원이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불법 침입자를 발견했던 것이다.

1항사가 선내질서 유지에 그토록 예민한 것은 그 자신이 오래토록 해군부사관으로 함정 생활을 한 덕분일 것이다. 전역하자마자 그가 오션 글로벌 호에 승선하여 처음으로 마닐라 항에 기항하였을 때의 일이었다. 배는 접안 차례가 올 때까지 잠시 내항 한 곳에 닻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선수갑판에 예비해 두고 있던 계류삭 한 코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중에 추정된 일이지만, 좀도둑들이 닻줄을 타고 기어 올라와 방수제이면서 비중도 낮은 폴리에틸렌 계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계류삭을 통째 바닷물로 끌어내린 다음 마치 사행(蛇行)하는 바다뱀처럼 감쪽같이 육지로 끌고 가버렸던 것이다. 1항사가 납빛 상처의 중국인을 그렇게 몰아붙인 것은 그 같은 악몽이 되살아나서였다.

“아님, 그럼 공짜로 자카르타에 가려고 했단 말이야!”

그러고 나서도 해군부사관 출신의 닦달은 그치지 않았다.

“아닙……니다.”

태국 출신 기관원의 손아귀에 붙들린 사내는 사색이었다.

뱃전 난간까지 밀린 사내가 시선을 문득 부두 쪽으로 보냈다. 그곳에 검은 선 그라스를 낀 또 다른 사내가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저 녀석과 한 패란 거야?”

그렇잖아도 1항사는 아까부터 부두 가까이에서 내내 선적작업을 훔쳐보고 있던 선 그라스의 사내가 마뜩치 않았다. 그가 적하목록과 화물을 꼼꼼히 대조하는 동안 마피아 조직의 부두목쯤으로 보이는 사내는 시종 날선 눈빛으로 갑판을 넘겨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1항사로서는 아직도 포트 켈랑을 출항하기 전 본사로부터 받은 지시문에서 과외수당 어쩌고 하는 대목을 보고, ‘그렇다면 답은 뻔해. 이번에 실을 화물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안 그래, 2항사?’라며 의문을 제기했던 기억을 떨쳐내지 못한 게 분명했다.

해군부사관 출신은 결국 수상한 사내의 엉덩이를 자신의 구둣발로 힘껏 내지른 다음 배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사태를 일단락 지었다.

그 여파 때문이었을까. 선적작업을 끝내고 출항을 앞둔 저녁 시간에 상륙을 나갔던 해군부사관 출신이 배로 돌아오던 길에 일단의 괴한으로부터 기습 폭행을 당하는 의외의 사고를 당했다. 괴한들은 혼자인 그를 다짜고짜 각목으로 난타한 다음 지갑과 쇼핑 물 등을 챙겨 바람처럼 사라졌는데, 그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좀도둑의 짓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만약 그 순간 부두 경비원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는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해도 다행이야.”

선장이 위로하였으나, 1항사는 이빨을 우두둑 갈았다.

“바로 그 자식이야!”

오른쪽 어깨에서 팔목까지 칭칭 붕대로 동여맨 해군부사관 출신은 분함을 참지 못 했다. 왼쪽 눈두덩으로 멍 자국이 손바닥만큼이나 번져나 있었고, 뒷머리도 살점이 찢어져 크게 부풀어 오른 판이었다. 아예 죽이기로 작정한 무자비한 폭행에 틀림없었다.

“1항사님, 누가 말입니까?”

붕대를 처매면서 2등기관사가 물었다. 군대에서 위생병으로 근무한 그는 선내에서 발생하는 웬만한 안전사고 끝의 상처 부위는 제법 완벽하게 처치해 낼 만큼 돌팔이 이상의 봉합기술을 갖고 있었다.

“그 장궈이란 놈! 색안경을 끼고 12피트 컨테이너 박스를 지키고 있던 놈! 바로 그 마피아가 틀림없어!”

“뭐라고요?”

물론 2기사가 그 내막을 알아들을 턱이 없다. 그는 선적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내내 말썽을 부려 온 발전기를 점검하느라 기관실에만 처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을 이맛살을 찌푸리며 선장이 듣고 있었다.

“틀림없다고요! 나를 공격할 때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마스크로 콧잔등을 가리고 있었지만, 선 그라스를 낀 꼬락서니가 그 자식이 틀림없었다고요! 그 새끼가 컴컴한 부두에서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단 말입니다!”

“…….”

“그 놈은……화물을 선적하는 동안 한시도 부두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컨테이너 내부를 확인하겠다고 하니까, 이미 세관 검열을 마쳤다면서 한사코 제지했었고요.”

그걸 헛소리라고 넘겨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선장님, 뭔가 일이 있습니다! 당장 배를 돌려 신고부터 하고 보십시다!”

하지만 선장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황푸 항을 떠난 뒤였고, 설령 신고를 해봤자 수사 주체라는 게 그들 패거리인 중국 공안부일 게 뻔 한 만큼 결과는 보나마나가 아니겠느냐는 게 선장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며칠이나 날짜를 까먹게 될 테고…….”

그렇게 얼버무렸지만 선장의 속내는 달랐다. 한시라도 빨리 닻을 감아올려야 1등항해사의 하선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임 2등항해사도 헤르니안가 뭔가 하는 요상한 병을 핑계로 하선을 실행하지 않았던가. 1항사의 유고는 곧 항해 중단을 의미한다. 기관 부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세 명 항해사 가운데 한 사람만 탈이 나도 정상적 운용은 불가능하다. 전임 2항사의 억지 하선을 경험한 선장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2항사 장혜옥은 어쩐지 자카르타 항까지의 항해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9

황푸 항을 뒤로한 오션 글로벌 호는 자이로컴퍼스의 고질적인 오작동조차 수정하지 못한 채 그렇게 엊그제의 침로를 되짚어나가는 역행(逆行) 길에 올랐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한 가운데 오션 글로벌 호의 항해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틀째 한밤중, 오션 글로벌 호는 다시금 남지나해의 서사군도를 좌현으로 두고 지나쳤다. 침로는 적어도 사흘 동안은 정남(正南) 방향을 유지하게 되어 있었다.

그 동안 몇 차례 쏟아진 스콜을 제외한다면 다른 일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스콜이 그치면 하늘은 더욱 청명해졌고, 날치 몸통도 자꾸만 굵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새벽녘이 되자 갑자기 바람이 눅눅해지더니 급기야 안개가 번져나기 시작했다. 짙은 해무(海霧)였다. 연안도 아닌 한바다에서 안개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2항사 장혜옥은 레이더스코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직도 풀라우 다마르에서의 악몽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지독하군. 이것도 다 지구온난화 때문인가?”

선장은 깊이 잠들지 못 했다. 오랜 해상생활로 긴장감이 체질화된 탓인지, 한밤중이면 느닷없이 조타실로 나타나서는 바람이나 기압 등, 배를 에워싸고 있는 대기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했다.

선장의 견해는 그녀로서도 공감이었다. 지구온난화는 특히 바다 환경을 급변시키는 주범이었다. 아프리카의 광활한 세렝게티 국립공원에다 생명력을 부여하는 우기처럼 자주자주 스콜이 쏟아지는 것도, 북회귀선 해역에서 편서풍이 기세를 누그러뜨린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필리핀 동해의 적도 해역에서 태풍발생의 빈도가 부쩍 증가한 것도 모두가 지구온난화에 근거한 게 틀림없다는 게 기상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인 것이다. 그 결과 이제는 꽁꽁 얼어붙은 베링 해의 만년빙도 허물어지면서 유럽으로 가는 최단코스가 열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나오는 판국이다. 이를 반갑다고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구의 종말이라는 말이 새삼스러운 지금인 것이다.

마스트 꼭대기에 매달린 항해등 주위를 안개가 칭칭 휘감고 있었다. 안개는 쉬이 걷힐 것 같지 않았다.

“2항사, 들어가 눈 좀 붙이게.”

선장의 배려였다. 선장은 예기치 않은 사고로 부상을 당하여 침실에 처박힌 1항사 때문에 2등항해사인 그녀의 당직 몫이 배로 증가한 사실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선장님.”

말은 그렇게 하였어도 그녀는 자신의 육체가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었다. 한쪽 수평선이 희멀개질 무렵에는 두 다리가 납덩이처럼 무거워지면서 버티기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여자라고 해서 동정의 대상이 되는 건 싫었다. 대학 시절 본 어느 영화에서 강건한 체력의 남자들 사이에 끼인 어느 여자군인 하나가 인간 능력의 한계를 훨씬 초월하는 특수훈련 과정을 훌륭히 극복해내면서 나중 뛰어난 지휘관으로 거듭나는 경우도 보았다. 그 드라마가 그녀에게는 한 권의 교과서였다. 어차피 남자세계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정신무장은 물론 신체적 강건함까지 갖추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거기에 모자라는 것은 오로지 인내심으로 보완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10킬로미터 왕복주영에도 기꺼이 참가하였고, 거기에 서너 가지 호신술 연마에도 소홀하지 않았었다.

“자네를 만난 건 나로서 행운이야.”

브리지 앞 유리창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에게 선장이 새삼스러운 말을 꺼냈다. 처음 포트 켈랑에서 승선신고를 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그럴 때면 그녀는 그만 목구멍으로 무엇이 치받고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평생 자네만큼 책임감이 투철한 사람은 보지 못 했네. 그래서 하는 말이네만, 처음에는 얼마나 견뎌낼까 했었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단 말이다.”

마치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이번 항해를 마치는 대로 그만 배를 내릴까도 싶네. 힘도 의욕도 예전 같지 않아.”

선장이 한숨을 푹 쉬었다. 이전에 듣지 못한 자조 섞인 말이었다.

“그래서…… 자네를 후임으로 추천하려고 하네.”

그만 가슴이 고동을 쳤다. 얼마나 고대하고 바라던 말인가.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과연 내가 선장 직을 무난하게 수행해낼 수 있을까. 폭풍우 속에서 배를 안전하게 운용하는 것만이 선장에게 주어진 책무의 전부는 아니다. 상상 이상의 거대한 파도를 만나면 키 조작 하나로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망념이다. 아니더라도 내가 요구하는 만큼 키가 움직여 줄까. 순간적이지만, 공연한 걱정이 머리를 스쳤다. 더구나 배에는 그녀보다 오랜 경력의 해군부사관 출신이 있다. 그녀는 시선을 전방에 고정시킨 채 완강하게 머리를 내저었다.

사흘째는 산호초 무더기인 남사군도를 멀찌감치 비켜갔다. 안개 때문이었다. 안개는 여전히 시야를 가로막은 채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남사군도는 원래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등 주변 국가가 아주 적절하게 분할, 점유해 온 광활한 산호 군도다. 지금도 산호가 무럭무럭 자라나 섬 숫자가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그 산호초 일대로 석유와 가스 등 엄청난 양의 해저자원이 부존하고 있다는 보고가 잇따르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어느 날, 중국은 소총을 든 인민군 병사 몇 명을 목까지 차오르는 산호초 위에다 세워 놓고, 구(舊) 소련으로부터 사들인 뤼다 급 구축함 서너 척을 주변에 띄워놓은 가운데 서둘러 시멘트를 퍼부어댔다. 작업은 밤낮 가리지 않고 두어 달 가량 계속되었는데, 나중에 보니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을 만큼 큰 인공섬 하나가 축조되어 있었다. 중국은 그 섬에다 소 하이난다오라는 그럴싸한 이름까지 붙여놓고 아예 군인들을 상주시킨 채 안방살림을 차렸다. 놀란 주변국들이 함정을 출동시켜 시위를 벌였으나 거대한 중국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게 바로 대륙 국가이던 중국의 놀라운 변신이었다. 해군본부가 펴낸 《동북아 3개국 해양력 비교》라는 책에서 본 내용이었다.

이제 중국은 더 이상 마오쩌둥 시대가 아니었다. 미국의 절대적 통제 하에 있던 태평양마저도 넘겨다보는 신생 해양국가로 거듭난 것이었다. 댜오위다오(조어도)만 하더라도 그 실체는 분명해진다. 마오쩌둥은 ‘그 섬은 원래 우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우리 해군력이 일본을 능가할 때가 곧 그 시기가 된다.’라고 사태해결의 시기를 먼 미래로 미루었다. 마오쩌둥의 그 말이야말로 미래 어느 날 일본과의 한 판 대결을 전제한 예언에 다름 아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핵 항모까지 보유하게 되면서 그 옛날 마오쩌둥의 말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겨 나가고 있는 것이다.……

10

항푸 항을 출항하고 나흘째, 오션 글로벌 호는 이제 태양의 열기가 이글거리는 열대해역으로 들어서 있었다. 보르네오 섬의 중허리쯤인데, 그 외곽으로 남 베사르 섬의 부속 도서가 올망졸망 널려 있어서 공연히 신경이 곤두서는 곳이었다.

그 해역에서 모처럼 안개가 걷혔다. 항해등 불빛 속으로 몇 마리 도둑갈매기들의 날갯짓이 보이더니 얼마 안 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언제나 바다에서만 맴도는 해조들이었다. 짙은 안개로 며칠 동안 먹이를 찾아내지 못해 굶주렸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 오션 글로벌 호가 남기고 있는 하얀 물거품의 항적을 보고 고기잡이에 나선 배로 오인하였을 수도 있다. 예망작업을 끝낸 트롤선이 그물을 선미 가까이로 끌어당기면 틀림없이 무수한 바닷새가 떼를 지어 몰려드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틀렸다. 아무리 따라붙어도 양망의 낌새가 없자 그만 따라붙기를 포기한 것이었다.

“이상 없습니다.”

조타실로 들어서는 그녀를 보고 3항사가 경례를 붙였다. 장난기가 발동한 것인가. 가만 보니 얼굴이 꺼칠해져 있었고 윗입술 한쪽으로 물집이 허옇게 잡혀 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몸져누운 선배(1항사)의 몫을 나누어 감당하느라 피곤이 겹친 게 틀림없었다.

“가서 푹 좀 쉬기나 해.”

그게 그녀가 건네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의 말이었다.

“2항사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웬일인지 3항사는 전과 달리 얼른 조타실을 뛰쳐나가지 않았다. 긴장의 표정이 역력했다.

“무슨 일 있어?”

그녀는 항푸 항 부두에서 도둑의 습격을 받은 1항사와 관련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였다. 그 동안 해군부사관 출신은 침실에만 처박혀 있었다. 조타실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황푸 항을 떠난 지 사흘째가 되는 어제 저녁때였다.

부스스한 얼굴이 영락없는 환자였다. 그녀와 얼굴을 마주치자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쪽 팔을 온통 붕대로 동여매고 있으니 민망할 수밖에는 없다. 어쩐지 그가 측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간간히 팔꿈치를 꼼지락거리는 것으로 보아 상박골 어디가 크게 결딴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3항사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2항사님, 레이더 말인데요……아무래도 이상하더란 말입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잠시 조타실엘 들렀었다. 간밤의 일이 꺼림칙해서였다. 야간당직 중 아직도 안개가 스멀거리고 있을 때여서 간간이 레이더를 지켜보았는데, 수상한 물체 하나가 후방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15마일 가량 되는 거리에서였다.

휑한 바다에 수상한 물체라면 배밖에 없다. 고기잡이배일 수도 있고, 항로가 다른 여객선일 수도 있다. 그런데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스코프에 잡히다가 때로는 사라지는 게 여간 미심쩍지 않았다. 수상할 수밖에 없었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괴선박은 황푸 항을 떠난 직후부터 내내 뒤쫓아 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틀리지 않다면 이거야말로 원양작전이자 대양작전에 나선 해적선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체가 해적선이 아닐까 하는 확신이 든 것도 그 때였다. 해적선이라고 무작정 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놈들도 어떤 식으로든 그럴 듯한 정보망을 확보하고 있어서, 가령 어느 배가 무슨 종류의 화물을 싣고 있으며, 그리고 어디를 목적항으로 삼고 있는가 하는 따위의 정보는 갖고 있을 것이다. 어렵사리 배 하나를 장악하였는데, 해치를 열고 보니 겨우 석탄이나 철광석 따위만 싣고 있다면 놈들로서도 망연자실한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물 내용물을 알아내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선적작업 중인 부두를 어슬렁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낟알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니면 패거리 중 한 녀석을 부두노무자로 가장시켜 투입시키는 것도 한 가지 훌륭한 방법이 되고, 처음부터 아예 세관원을 구워삶는 것도 좋은 계책일 수 있다. 세관원 치고 밀수에 가담하지 않은 작자는 보지 못 했다. 해적들은 그렇게 치밀하게 정보를 얻어낸 다음 고가의 화물을 실은 배 하나를 지목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3항사에게 레이더를 잘 지켜보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2항사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선미 쪽으로 계속……방향과 거리에 변화가 없는 것도 그렇고요. 지금도 그래요.”

순간 그녀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이 착착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3항사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다.

“그런데 마침 선장님이 조타실로 나오시기에 보고를 드렸더니 일언지하로 무시해버렸어요. 선장님, 선미 쪽에 수상한 배 하나가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고 드렸더니 짜증을 내시면서, 여기는 공해상이야, 바다에 배가 떠다니는 게 이상해? 그러시더라고요. 그래 그만 입을 꽉 다물어버렸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가서 좀 쉬기나 해.”

그녀는 즉시 레이더를 확인했다.

그대로였다. 선미 후방 15마일 거리에 물체 하나가 포착되고 있었다. 레이더 스코프에서 움직이는 두 물체의 방향과 거리에 변화가 없다면 두 배는 똑같은 침로에 똑같은 속력으로 움직인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 물표의 방위는 변함이 없는데, 피차간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면 그것은 본선을 추월하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보아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신경이 곤두섰다. 보르네오에서 싱가포르에 이르는 해역은 오래 전부터 해적출몰로 잦은 높은 곳이다.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 본부를 둔 IMO(국제해사기구)의 보고에 의하면, 바로 이곳에서 해적으로 인한 선박 피해가 매년 100건을 상회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주변국이 많다보니 도대체 해적 놈들의 정체를 분간해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동남아 해적들은 근래 들어 기승을 부리는 소말리아 해적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역사도 오래된다. 중세기 적 이슬람 전제군주의 최고 권위자이던 술탄 시대부터 필리핀의 루손과 민다나오와 비사야 등지를 근거지로 기세를 떨친 이래, 나중에는 스페인 함대를 격파시키기까지 한 천하무적의 조직적인 집단이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얼마 전에는 정박 중인 해군함정까지 습격하여 갑판에 장착하고 있던 51밀리 함포를 통째 뜯어간 경우도 있었다. 함대라면 모를까, 단독으로 출동한 전투함도 겁내지 않는 판국이다. 도대체 어느 놈이 어느 놈인지, 피해를 입은 당사국도 감을 잡지 못 하는 형편인 것이다.

해적이라면 조우(遭遇)하는 것부터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한 번 목표물로 찍히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아무런 방어무기를 갖지 못한 일반선 처지에서 총을 난사해대며 공격해 오는 해적과 대적하는 것은 파멸일 수밖에 없다. 선박이나 화물도 문제지만, 당장 승조원들의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 사람 목숨을 파리보다도 더 우습게 여기는 놈들 아닌가. 그런 다음에는 선박을 통째 몰고 달아나는 것이다. 심지어 중국의 어느 항구에서는 페인트칠을 다시 하고, 버젓이 선명까지 바꾼 실종 선박을 찾아낸 적도 있는 판국인 것이다.

정체불명의 물체는 다시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기에는 아직도 일렀다.

11

다음 날 새벽 인도네시아 출신 3등기관사 마르코스가 헐떡거리며 브리지로 달려왔다.

“2항사님, 이걸 좀 보십시오.”

그의 손에는 손톱만한 단자 조각 하나가 들리어 있었다.

“그게 뭔데?”

그녀로서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글쎄 말입니다.”

모르기는 마르코스도 마찬가지였다. 메인 엔진 거대한 실린더가 방아를 찧어대는 것만 지켜보았지, 이 같은 정체불명의 게딱지는 처음인 것이었다.

“어디서 난 거야?”

그녀가 물었다.

“선미갑판에서요.”

마르코스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새벽께 하복부가 뻑뻑해진 그는 눈을 떴다. 당장 오줌통을 비우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방광이 부풀어 오른 때문이었다. 그는 달콤한 잠에서 깨어난 게 아쉬워 애써 눈을 깜박이며 조금이라도 더 버텨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압박감이 증대되기만 하여 그는 더 이상 참지 못 하고 모포에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계단을 더듬어 선미갑판으로 올라갔는데, 웬일인지 시야가 전 같지 않게 지나치게 어둡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상하다 싶어 얼굴을 들고 보니 언제나 갑판을 알맞게 밝히고 있던, 야간항해 중이면 반드시 밝혀져 있어야 하는 선미 백등이 꺼져 있더라는 것이다. 흐릿하지만 적어도 5마일 범위의 광달거리를 가진 그 불빛으로 타 선박은 이쪽의 진로 방향을 알아내면서 충돌을 예방하는 안전조치를 강구하게 하는 항해등의 하나였다.

그는 방광을 짜내면서 전구가 나간 때문이라 판단하고 즉시 예비품으로 갈아 끼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만약 그가 기관사가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예사롭게 넘겨버렸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는 곧 창고에서 예비품을 찾아내어 다시 선미갑판으로 올라갔다. 선미등은 세 길 높이의 작은 마스트 꼭대기에 부착되어 있었다. 그는 기관실 지붕을 거쳐 원숭이처럼 마스트를 타고 올라가 덮개를 연 다음 필라멘트가 끊어진 스크루 식 전구를 돌려 빼낸 다음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그러자 불이 들어오면서 선미갑판이 환해졌다.

다시 마스트를 내려오는데 문득 발끝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하고 갑판을 내려다보았더니 손톱 크기만 한 요상한 물건이 하나 굴러 떨어져 있었다. 도대체 기둥뿐인 밋밋한 마스트에서 떨어져나갈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게 손톱만큼 한 칩이었고, 마르코스는 그 요상한 물건을 당직 중인 2항사에게로 갖고 온 것이었다.

“어디 좀 보자.”

마르코스로부터 받아든 그 요상한 물건을 그녀는 자세히 관찰했다. 아마도 거칠고 투박한 남자와 달리 여자들만이 갖는 천부의 섬세함과 예민함 덕분이었을 것이다.

“글쎄 이게 뭐지?”

그녀로서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암튼 수고했다.”

마르코스를 돌려보낸 그녀는 그 요상한 물건을 상의 포켓에 집어넣은 다음 날이 밝는 대로 통신장에게 그 정체를 확인해 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그 물건을 본 통신장이 의외의 말을 했다.

“이건……칩의 일종이군요. 크기는 작지만 고도의 성능을 가진 송신기 같은 거죠.”

그러면서 통신장은 꽤 멀리까지 전파를 송신할 수 있는 위치 추적장치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럴까요?”

순간 그녀는 황푸 항 부두에서 한창 화물 적재작업을 하고 있는 동안 선미갑판을 서성거리다 붙들린 납빛 흉터의 중국인 사내를 기억해냈다. 바로 그 사내가 이 요상한 칩을 몰래 갖다 붙인 게로구나. 그렇다면 지금 선미 방향 15마일 거리에서 꼼지락거리는 괴선박이야말로 이 요상한 물건이 발사하는 전파를 수신하며 아주 쉽게 오션 글로벌 호의 항적을 따라붙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희귀동물의 생태적 활동을 추적 연구하는 동물학자들이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추론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를 역이용할 방법은 없을까. 얼른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추론이 옳다면 이거야말로 당장 선장에게 보고하여야 할 중대 사안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선장이 쉽게 납득하고 수긍할까.

“수고 많네, 미스 장.”

그 때 1등항해사가 조타실로 들어섰다. 그 순간만큼은 너무 반가웠다.

1항사는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자주자주 브리지로 올라와 해도를 들여다보며 자카르타까지의 남은 항정을 재보는 일이 그의 유일한 일과일 정도였다. 그런 다음이면 반드시, 아직도 사흘이나 더 가야 돼? 그렇게 혼잣소리로 웅얼거리곤 하였다. 그가 바람은 오로지 한시라도 빨리 목적 항에 도착하는 일이었다. 그러면 채 닻을 던져 넣기도 전에 첨버덩 물로 뛰어들어 병원으로 달려갈 요량이었다. 그래서 선장에 대한 존경심이나 외경감도 일찌감치 달아나 있었다. 저놈의 영감탱이가 나를 죽게 만드는 거야. 그렇게 악을 쓰기도 여러 번이었으니 말이었다.

1항사는 여느 때처럼 해도실부터 들렀다. 아까처럼 자카르타까지의 잔여 항정을 재보기 위해서였다.

“제기랄, 아직도 사흘이나 남았네.”

또 투덜댔다.

“어? 국장(배에서의 통칭)이 웬 일이야?”

그 때야 1항사는 조타실 한 귀퉁이에 서 있던 통신장을 알아보았다.

“무슨 일 있는 거야?”

해군부사관 출신은 눈치가 빨랐다. 통신장이 조타실에 나타나는 건 반드시 수신한 메시지가 있을 때뿐이기 때문이었다.

“1항사님, 이것 좀 보세요.”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뭔가?”

그녀는 호주머니에서 칩을 꺼냈다.

“선미 마스트에서 마르코스 군이 찾아낸 것입니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래?”

1항사가 두 눈을 홉뜨면서 소리쳤다. 그는 금세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맞다! 바로 그 자식이야!”

버럭 소리쳤다. 그 바람에 조타실 바닥이 삐걱거렸다.

그녀로부터 칩을 받아든 1항사가 통신장을 가까이 불렀다.

“국장, 당장 리시버로 수신 체크를 해 봐요. 이놈이 요상한 전파를 발사하고 있다면 틀림없이 잡힐 거 아뇨?”

1항사의 판단을 옳았다.

“알았습니다.”

통신장이 급히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통신실로 뛰어든 통신장이 헤드 리시버를 끼고 수신기의 다이얼을 찬찬히 돌리기 시작했다. 다이얼 바늘이 주파수 눈금을 치훑기 시작했다. 그러자 리시버로 크고 작은 갖가지 사운드가 들려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이얼 바늘이 1,300케이시에 이르자 갑자기 고막을 찢을 듯 한 모스부호가 흘러나왔다.

통신장이 흘러나오는 문자부호를 받아 적기 시작했다.

- TTWS308, TTWS308…….

수신기를 끌 여유도 없이 통신장은 조타실로 뛰어 올라갔다.

“이겁니다. 이 괴상한 문자가 잡혔습니다.”

헐떡거리며 통신장이 메모지를 내밀었다.

“맞다! 놈들 수작이다! 이 요상한 콜사인을 따라 줄곧 우리 배를 추적해 온 거야!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게 1항사의 판단이었다.

“선장님께 보고 드려야지요?”

2항사가 물었다. 그게 순서였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1항사는 단호했다.

“그런다고 캡틴께서 수긍할까? 절대로 아니지! 이거 원, 무슨 쓸데없는 걱정인가! 그렇게 뭉개버리고 말 텐데. 그만하면 캡틴의 성격을 알고도 남지 않아?”

일언지하로 묵살한 다음 1항사가 느닷없이 갑판장을 호출했다. 눈을 부비며 조타실로 들어서는 갑판장에게 1항사가 말했다.

“갑판장, 물에 띄울 거 하나 갖고 와.”

갑판장은 얼른 분간하지 못 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물에 띄울 거니까요. 아무 거나 뜨는 거면 됩니다.”

2항사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갑판장이 곧 플라스틱 제 부이 한 개를 갖고 왔다.

“맞다, 바로 이거다. 이걸 반창고 같은 걸로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매달도록 해!”

1항사는 거침이 없었다.

“네.”

땀을 뻘뻘 흘리며 갑판장이 부이에다 칩을 꽁꽁 동여맸다.

“됐다! 그걸 바다에 던져 넣어!”

“네.”

그렇게 부이는 내던져졌다.

“잘 부탁한다.”

배 꽁무니 쪽으로 멀리 떠내려가는 부이를 향해 1항사는 손 키스까지 해 보였다.

해군부사관 출신의 조치는 옳았다. 칩이 부착된 부표는 지금의 위치에서 출렁거리고 있을 테고, 시간이 흐를수록 배와의 거리도 점점 멀어질 것이다. 그러면 놈들은 자신들이 추적하고자 하는 오션 글로벌 호가 아닌, 적어도 한참 동안은 남지나해의 거친 물결에 희롱당하고 있을 부표를 따라잡는 엉뚱한 짓거리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것이다.

1항사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놈들을 교란시킬 필요가 있다.”

그 방법의 하나가 침로를 변경하는 일이었다. 변침은 배를 원래의 항로를 벗어나게 만든다. 만약 놈들이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만으로도 놈들을 따돌리는 데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마침 남 베사르 군도를 통과한 참이어서 인근에는 어느 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큼 배는 운신의 폭이 넓어 있었다.

“좌현 30도로 서너 시간이면 충분할 거야.”

1항사의 견해였다.

그녀도 물론 동의했다.

물론 침로의 설정이나 변경은 전적으로 선장의 책임이자 권한에 속한다. 그러나 1항사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나중 문제가 생기면 이건 모두 내 책임이다.”

1항사의 결심은 확고했다.

1항사의 견해를 수용하여 침로는 곧 30도 좌현으로 돌아갔다. 배는 이제 전혀 엉뚱한 곳으로 달리고 있었다.

“어차피 난 이번으로 항해는 끝이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게 해군부사관 출신인 1등항해사의 자조 섞인 혼잣소리였다.

12

며칠 전부터 선장의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자주자주 밭은기침을 하는가 하면, 오한을 호소하기도 했다. 어제는 두 끼니 식사도 걸렀다. 나이를 고려한다면 흔한 몸살 정도로 가볍게 넘길 일도 아니었다. 그저께는 이번 항해를 마치는 대로 하선하겠다는 말까지 했었다.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선장의 진정한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를 꿈꾼다. 경제적인 여유만 있다면 무럭무럭 커가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가정이란 인간만사의 가장 기본적 토대이자 울타리가 아닌가. 고희를 얼마 앞두지 않은 선장은 그게 아쉬울지도 모른다. 회고해 보면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의 대부분을 가정을 떠나 오로지 황량하고 건조하기만한 바다에서 흘려보낸 셈이다. 서글프지 않을 도리가 없다.

왜 갑자기 선장의 서글픈 모습만 떠오르는 것일까. 선장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 것일까. 갑자기 어느 날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함께 상큼한 소금 냄새도 풍겼다. 특히 먼 바다에 파도가 높다는 뉴스를 들은 다음의 바로 그 농도 짙은 냄새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게 바닷물에 찌들어 있었다.

그러나 선장은 달랐다. 소금 냄새는커녕 퀴퀴한 담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선장은 그렇게 깔끔했다. 오징어 채낚기선에서 갑판장을 한 아버지와는 달리 바닷물을 뒤집어쓸 일도 없고, 하루 종일 해풍으로 눅눅해진 피부도 매일처럼 잠들기 전 캡틴 룸에 딸린 샤워실에서 반드시 깔끔하게 씻어낸 덕분일 것이다.

- 나도 자격증만 가졌다면 벌써 그놈의 선장이라는 것을 해먹었을 텐데.

한 잔 술만 들이켜면 아버지는 잠꼬대처럼 언제나 그렇게 한탄하기를 버릇으로 했었다.

하지만 선장은 그 같은 사사로운 한탄을 늘어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미완의 꿈이 있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날 만만한 상대를 만나면 혼자 간직하고 있던 내밀한 이야기를 토로하게 된다. 그게 인지상정인 것이다. 하지만 선장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내의 모습이나 성격은 어떠하며, 슬하에 자식은 몇 명이나 되며, 또 틀림없이 장성하여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자식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입을 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선장은 그녀에게 선배가 된다. 선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선장 역시 영도의 아치 섬을 통째 캠퍼스로 점령한 해양대학을 나왔다. 그리고 졸업한 그 해부터 배를 탔다. 그 햇수가 어언 35년이나 된다. 선장이 대학을 다닐 때는 물론 여자가 없었다. 그녀가 비로소 첫 입학생이었다. 사정이 그렇다면 당연히 궁금한 점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선장은 한 번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술이라면 입에도 대지 않는 성격 탓일까. 그 문제라면 앞전의 미주를 왕복하던 컨테이너선 선장과 확연히 달랐다. 태평양은 넓다. 태평양을 건너는 보름여 동안 섬 조각 하나도 구경할 수 없다. 중간에 하와이제도가 올망졸망 늘어서 있지만, 대권항법으로 북위 40도를 거슬러 가는 관계로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다. 세계의 바다를 통틀어 미주를 왕복하는 태평양 항로야말로 망망대해를 실감케 하는 유일한 곳이다.

그럴 때면 앞전의 컨테이너선 선장은 무료함을 주체하지 못해 심야당직자인 그녀와 함께 날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아직 쉰 살도 안 된 나이 탓이었을 것이다. 혈기왕성한 그 선장은 특히 영도 아치 섬에 자리 잡은 자신의 모교가 가장 먼저 여자를 받아들이기로 한 데 대해 많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게 한국이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과감한 결단의 하나라고 역설하기까지 했다.

- 이거 원, 하필이면 여자 항해사라니!

물론 그 같은 푸념을 늘어놓은 적도 없다.

한 번은 아내와 만나 결혼을 하게 된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그 선장 말에 의하면, 아내가 된 여자는 순전히 마도로스의 멋진 제복에 반해 먼저 접근해 왔다는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였는데 그녀는, 나는 마도로스 아내가 되는 게 꿈이에요, 그러더라는 것이다. 연신 허허 하고 헤프게 웃어대던 그 선장의 표현에 따르면, 제법 얼굴이 반반한 편이어서 싫지는 않았는데, 지금 와서 가만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조금 모자라는 여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꼬리를 문다는 것이다. 미주를 왕복하는 배를 탄 덕분에 두 달이면 반드시 집엘 들르게 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마주칠 적마다 조금 모자라는 여자라는 생각만 들어 이제는 자꾸 거리가 멀어지는 것만 같다는 말도 했다. 선장은 또 허허 웃고 나서, 만약 자신이 지금처럼 마도로스를 꿈꾸는 여자와 함께 대학을 다니고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와 결혼하고 말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이었다. 잡다한 선장 이야기는 날이 희붐해서야 겨우 끝났었다.

2항사 장혜옥의 소망은 우선 단 한 가지였다.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임무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그게 국내 최초의 여자항해사가 된 그녀의 도리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를 악물고 여기까지 버텨 왔다.

다음 날 오후 두 시, 당직을 교대하면서 그녀는 다시 레이더를 확인했다. 그것은 시계 초침보다도 더 정확하게 몸에 밴 습관이었다. 그녀는 안도했다. 스코프 어디에도 괴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몇 시간 전 선장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부표를 내던지고 침로를 바꾼 덕분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낮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해적 놈들은 마치 아군의 진지를 공략하는 적군들처럼 오로지 야밤만을 노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잠시나마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 안도는 길게 가지 못 했다. 그 날 자정께, 교대시간이어서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조타실로 들어서자 레이더를 들여다보고 난 3항사가 보고했다.

“2항사님, 이것 좀 보세요.”

그만 머리끝이 곤두섰다. 이제 레이더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가 났다. 아무 것도 아닐 거야! 그렇게 소리치고도 싶었다. 이럴 때는 선장처럼 대범해졌으면 싶었다. 자네는 그렇게도 한가한가? 여긴 바다야! 바다니까 배가 있는 건 당연하지! 그렇게 흉내 내고도 싶었다. 멀쩡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변한다더니, 이렇게 사람이 표변하는가도 싶었다.

겨우겨우 마음을 추스른 다음 스코프에 시선을 박았다. 3항사가 잘못 볼 리 없었다. 어제와 똑같은 거리를 두고 밤하늘의 1등성처럼 물표는 명멸하고 있었다.

물표 크기로 미루어 대형선은 아니었다. 해적선이 클 필요는 없다. 기관총과 자동로켓포로 무장하고, 속력을 높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니 말이었다.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도 미확인 물체일 뿐이다. 다만 저 수상하고 확인 불가능한 물체가 잔혹하고 야만적인 해적선이 아니기만 빌고 또 빌 뿐이었다. 배는 은은한 진동을 남기며 꾸준히 항진하고 있었다.

페가수스 좌가 머리 꼭대기로 올려다보였다. 그리스 신화에서 천마(天馬)로 불리는 별자리다. 천공(天空)의 적도(赤道)에 걸려 있으니까 지구상 적도인 보르네오 섬 인근에서 머리 꼭대기로 보이는 건 당연하다. 오늘따라 삼태성(三台星)이 더욱 명료했다.

배는 이제 보르네오 섬의 남서쪽 카리마타 해협을 지나고 있었다. 그곳은 사방이 어지러운 산호해였다. 따라서 마음껏 침로를 회피할 만큼 여유롭지 못 하다.

그녀는 언뜻 시간을 읽었다. 02시 50분. 세상이 깊이 잠든 한밤중이다.

다시 레이더를 확인했다. 싱가포르 해협을 통항하고 남지나해로 진입한 날 한밤중, 만약 그녀가 레이더부터 확인하였더라면 등대 고장으로 불이 꺼진 풀라우 다마르에 접근하는 아찔한 사고는 얼마든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레이더야말로 항해사에게는 둘도 없는 벗이자, 자신감을 부여하는 반려자인 것이다.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랐다. 수상한 물체는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처음의 15마일이 지금은 10마일로 좁혀져 있었다.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사이에 5마일 이상 단축된 셈이다. 대형선이라면 얼마든지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거리였다. 쾌속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10여 분이 지났다.

- 8마일!

그 잠깐 사이에 2마일이나 좁혀졌다. 속력이 20노트에 상당하는 쾌속선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실리콘 칩을 물에 띄워 괴선박을 교란시키고자 한 일도, 그리고 서너 시간이나 변침을 가하여 위치를 속인 일도 모두 헛일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놈들 역시 고성능 레이더를 갖추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러니 이쪽의 교란 행위를 금세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이다.

상황은 이제 너무도 분명해져 있었다. 선미 쪽 괴물체는 황푸 항을 출항할 순간부터 미행에 나선 게 틀림없었다. 그게 옳다면 놈들은 지금 오션 글로벌 호가 선적하고 있는 화물의 내용에 대해서도 일찌감치 파악을 끝내고 있을 것이다. 놈들은 어쩌면 갑판에 적재하고 있는 컨테이너를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상한 배는 그 정보를 넘겨받았음에 틀림없다. 황푸 부두에서 선적 화물을 꼼꼼히 체크하던 1항사의 모습도 떠올랐다. 점점 머리가 명료해지면서 야릇한 전율이 그녀의 육체를 관통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브리지 윙으로 나가 후방을 응시했다. 시야는 여전히 캄캄 칠흑 속이었다. 그래서 별들이 더욱 명료해 보였다. 선수 방향으로 남십자성인 크럭스(Crux) 좌가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장담컨대, 후방의 괴물체도 지금 남십자성을 향해 쾌속으로 바닷물을 가르고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항해등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더 레이더를 확인했다.

- 7마일!

이제는 항해등이 초인될 때도 되었다. 그런데 어둠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레이더로는 확인이 되는데, 항해등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불을 밝히지 않은 개 틀림없다.

그 사이 괴선박은 5마일 거리로 접근해 있었다. 그 때서야 쌍안경으로 제법 명료하게 괴선박의 형체를 관찰할 수 있었다. 아무런 불빛도 내비치지 않은 20톤이나 될까 한 소형선이었다.

이제는 더 망설일 아무 것도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선장에게 보고해야 할 순간이라고 판단했다. 위기에 봉착한 때의 모든 지휘는 선장 몫이다. 깊이 잠든 승조원들을 깨우는 일도, 그리고 일제히 비상체제로 돌입시키는 일도 모두 선장의 지휘명령권에 속한다. 선원들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동남아 여러 나라로부터 수입된 선원들이지만, 해적의 목표물이 되기로는 똑같은 처지일 수밖에 없다.

그녀는 인터폰의 버튼을 눌렀다.

삐이-

인터폰 소리가 적막을 깨트렸다.

“선장님, 2등항해사입니다. 곧 브리지로 올라 오셔야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목소리가 까칠까칠했다. 기침 소리도 섞여 있었다.

“수상한 물체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매우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뭐라고?”

선장의 반응은 평소와 달랐다. 가장 신뢰하는 항해사의 보고여서일 것이다.

“수상한 물체라고? 언제부터지?”

조타실로 올라온 선장이 물었다.

“한 시간 전부터입니다.”

한 시간 전이면 상대선과 15마일의 거리를 두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지금은 불과 몇 마일로 좁혀져 있다!

괴선박이 갑자기 속력을 높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똑바로 오션 글로벌 호를 향해 내달아왔다.

놈들은, 지금이야말로 공격의 기회라고 판단한 게 틀림없다. 추적용 칩의 존재가 발각되면서 오히려 역이용당한 다음의 일이다. 놈들로서도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그렇더라도 왜 하필이면 운신의 폭이 좁은 카리마타 해협에서인가. 바로 이 부근이 악랄하기 그지없는 놈들의 근거지 가운데 하나란 말인가. 술탄 시대 때는 본거지가 필리핀의 루손과 민다나오와 비사야 등지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시대가 바뀐 오늘 날에 이르러서까지 놈들이 그 섬 일대를 고수할 것이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어느 배든 공격하기 만만하고, 약탈할 화물이 가득 실려 있는 한 목표물로 손색이 없을 게 아닌가.

선장 역시 머뭇거리지 않았다. 빼내 든 선내 마이크로 소리쳤다.

“전 선원, 비상!”

그 소리는 스피커를 통해 선실 곳곳으로 울려 퍼졌다.

비상벨은 울리지 않았다. 이쪽의 움직임을 해적에게 미리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선장의 명령에 깊이 잠들었던 배가 깨어났다. 해군부사관 출신과 3항사가 조타실로 뛰어 올라왔다. 갑판장도 통신장도 빠지지 않았다. 상갑판에서는 갑판장 얼굴도 보였다.

안색이 모두 납빛이었다. 심야에 비상이 걸렸으니 정신이 혼미해질 건 당연한 일이다. 항행 중의 비상벨 소리는 누구에게나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선내에서 휘파람을 불어서도 안 되고, 언성을 높여서도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어느 배에서나 정숙을 미덕으로 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메이데이를 타전합니까?”

1항사였다. 완전 해군 식이었다.

“구조요청도 하고, 본사에 보고도 해.”

그 일이야말로 자신이 수행해야 한다고 믿은 통신장이 별도의 지시도 받지 않은 채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것으로 해적과의 조우는 이제 기정사실이 되었다. 모든 것은 분명해 있었다.

하지만 조난신호를 발사한다고 해서 그 효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같은 최악의 상황을 가상하여 경비정이나 군함이 따라붙어 있는 것도 아니다. 소말리아 인근의 아덴만과는 달리, 대양을 항행하는 모든 배들을 호위할 수 없는 노릇이다. 세상의 모든 배들은 오로지 자선 혼자서만 외로운 항해를 할 수밖에는 없다. 그러니 설령 긴급히 구조 요청을 타전하더라도 구조대가 도착할 때쯤이면 상황은 이미 종료되어 있다.

13

“전 선원, 부서 배치!”

마치 군사작전 그대로였다. 해적선은 이제 우현 1마일 거리로 바짝 따라붙고 있었다. 언제 어느 때 총성이 들릴지 모른다.

외국인 선원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부산항을 출항하고 동지나해를 남하하는 동안 해군부사관 출신이 주도하여 꼭 한 번 비상훈련을 실시하였다고 한다.

조타수는 키를 잡고 있었고, 3항사는 엔진 텔레그래프에 바짝 붙어 있었다.

“물대포!”

1항사가 소리쳤다. 갑판 양현으로 길게 배관되고 있는 해수 파이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세찬 물줄기를 말한다. 물줄기가 제법이어서 뱃전을 기어오르는 놈들을 향해 정통으로 쏘아 맞히면 나가떨어지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일시적인 퇴치 방법은 될지 몰라도 격멸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 치기 꼴이다.

갑판장이 앞장 선 가운데 외국인 선원들이 부지런히 호스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기관 전속!”

선장은 몇 번이나 같은 명령을 되풀이했다. 배는 물론 진작부터 전속력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1만 톤급 대형 화물선이 낼 수 있는 속력이라야 뻔 하지 않은가.

해적선은 그 사이에 반마일 거리로 접근해 있었다. 육안으로도 얼마든지 사람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였다. 실제로 몇 개의 그림자가 갑판에서 얼른거리는 게 보였다. 군복을 걸친 녀석이 있는가 하면 아예 반바지 차림의 알몸인 녀석도 있었다. 기관총으로 보이는 무기도 여러 정이나 되었고, 뱃전 난간에다 걸치려는지 훅이 엮어진 로프 가닥도 보였다.

곧 해적선으로부터 강렬한 서치라이트 불빛이 날라 왔다. 그 불빛 속에서 오션 글로벌 호의 선체가 환히 드러났다.

그 상황에서 엔진을 정지하라는 놈들의 핸드 마이크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레이시아 계 원주민들의 고함소리였다. 술탄의 피를 이어받은 악마가 틀림없었다.

“전속전진! 알피엠 최고로!”

기관실로 연결된 보이스튜브로 선장의 연이은 명령이 쏟아졌다. 선장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배를 정지시켜서는 안 된다고 소리쳤다.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왔지만 그가 지금까지 해적을 만났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단 한 번이라도 몹쓸 일을 당하였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급격한 알피엠 상승으로 엔진이 요동을 쳤다. 완전 연소되지 못한 배기가스가 연돌에서 울컥울컥 뿜어져 나왔다. 그럼에도 속력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엔진은 진작부터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톱! 엔진 스톱!”

연이은 해적선의 핸드 마이크 소리였다. 이제는 뱃전과 어깨를 나란히 한 상태였다. 오션 글로벌 호는 응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없었다. 그것은 곧 죽음일 뿐이다.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총성은 거푸 들렸다. 밤바다 적막을 깨트리기에 충분한 파열음이었다.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놈들은 이제 아주 본격적인 공격 자세로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머리 위로 어지럽게 총탄이 날았다. 뱃전에서는 몇 차례나 총알이 튕겨났다. 그럴 때마다 고막을 찢는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불꽃이 튀어 날았다.

2항사 장혜옥은 브리지 윙을 방패삼아 몸을 숙이고 있었다. 계속 총알이 허공을 갈라내고 있어서 머리를 들 수도 없었다. 그런 중에도 그녀는 되풀이, 이로써 바다에 대한 사랑도 평화로운 항해도 그리고 희망의 장밋빛 미래도 끝이라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바다는 외경 그 자체이고, 폭풍우 또한 두렵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언제까지나 바다사람이고 싶었다. 이제 그 꿈이 깨트려지고 있었다.

처음 배를 탔을 때, 그녀는 광활하면서도 거대한 대자연을 바라보면서 바다로 나온 자신이 자랑스럽기만 했었다.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동안이면 뭇 시선이 제복 차림의 집중되곤 했었다. 그녀는 얼마든지 그 시선을 느꼈다. 남자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었고, 여자들에게서는 부러움과 함께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해기사 자격증을 따고서도 스스로 승선을 포기한 못난 사내 대신 그녀는 그녀만의 바다를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4년의 긴 대학생활을 거치는 동안 그 사내라면 얼마든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다고 다짐하였건만, 바다를 외면한 그에게는 미련조차 둘 필요가 없었다. 이후 자신은 어느 무엇에도 구속되거나 견인되지 않는 차가운 열정으로 오로지 바다만을 삶의 목표이자 무대로 삼아 왔다. 그리하여 어느 먼 훗날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멋진 캡틴이 된다! 장엄하고 멋들어진 배를 이 자그맣고 연약한 손으로 지휘하여 끝내 광대한 대양을 건너리라!……

해적선은 이제 뱃전에 달라붙기 직전이었다. 치솟는 물결에 자그만 배는 조랑말처럼 껑충껑충 뛰어 올랐다. 오션 글로벌 호 중앙 뱃전으로 바짝 접근할 작정이었다. 그 동안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여러 번이었고, 고속으로 배 주위를 맴돌며 자동소총을 난사하기도 몇 차례였다.

그럴수록 선장의 결심은 더욱 확고했다. 해적에게 장악된 배들은 모두 총탄 공격에 주눅이 들어 기관을 끈 게 그 화근이었다. 설령 뱃전으로 총탄 자국이 남는다고 해도 그쯤으로 배가 침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절대로 배를 세우지 마라!”

그게 선장의 지시였고, 확고한 신념이었다. 하긴 그 같은 상황에서 이쪽이 할 일이라고는 그저 지그재그로 사행하는 것 말고는 아무 대책이 있을 수 없었다.

총탄은 계속 머리 위를 날았다. 브리지 곳곳으로 총탄 자국이 무수했다. 그 같은 위기의 순간순간은 한 시간 너머나 계속됐다. 배가 멈추지 않는 한 놈들로서도 뱃전을 타오르기는 쉽지 않다. 갑판은 너무 높고, 배의 항진이 만들어내는 거친 파도도 놈들의 접근을 방해하는 데 퍽 유용했다. 날이 밝지 않은 것도 큰 도움이었다. 상대를 빤히 바라볼 수 있는 한낮이라면 아무래도 이쪽이 먼저 주눅이 들고 말았을 것이다.

“세 시 방향, 물대포!”

선장의 외침에 드디어 방어가 시작됐다. 방어가 최선의 공격이라던가. 때를 놓치지 않고 갑판장이 동키 호스로 물대포 세례를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그 효과가 없지도 않았다. 물대포를 맞은 한 녀석이 맥없이 갑판으로 나가떨어졌으니 말이었다.

외국인 선원들의 적극적인 행동도 눈물겨운 일이었다. 인도네시아 출신 3등기관사 마르코스는 필리핀 출신 샌디 군과 함께 해치의 화물 속에서 찾아낸 오렌지 박스를 꺼내 놓고 있었다. 태국 출신 기관원 민라이 군은 선미창고에서 들고 나온 고철 조각들을 발밑에 수북이 쌓아놓고 있었다. 그게 시방 뱃전을 타오르려는 해적 놈들에 대한 최선의 방어용 무기인 것이었다.

어떻게든 놈들이 갑판으로 올라오는 최악의 상황만큼은 막아내야 했다. 그러면 그 뒤의 일은 너무도 뻔하다. 이내 브리지부터 점거되면서 배는 통째 놈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만다.

지금의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끝을 모른다고 해서 순순히 손을 들 수는 없는 일이다.

“물대포!”

선장의 목소리는 처절했다. 쉰 소리에서 진한 분노가 묻어나고 있었다.

다시 총성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경기관총이었다. 브리지를 똑바로 겨냥하고 있었다. 총알 하나가 브리지 유리창을 꿰뚫었다. 몽니를 부리는 파도를 정통으로 맞더라도 견뎌낸 유리창이지만 총탄을 튕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리가 박살나는 파열음이 고막을 때렸다.

그것을 신호로 드디어 놈들의 공격이 본격화됐다. 오션 글로벌 호와 속력을 나란히 맞춘 다음 로프를 던져 올리기 시작한 것이 그 하나였다. 아까 본 네 가닥 갈고리를 매단 로프였다. 그걸 뱃전 난간에다 걸고는 원숭이처럼 기어오를 작정이었다.

그 때마다 갑판장은 손도끼를 휘둘러 로프를 잘라냈다. 도끼를 맞은 철판에서 불꽃이 튀었다. 불꽃은 로프를 절단했다는 증거였다. 그럴 때면 난간에는 갈고리만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기관장도 해적선을 따라 상갑판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환갑을 앞둔 그의 손에는 긴 쇠 파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갑판장, 위험해!”

상갑판에서 1항사의 외침이 들려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아악!”

동시에 데크로부터 비명이 들려왔다. 갑판장이었다. 한쪽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흐릿한 항해등 불빛 속으로 작업복 왼쪽 어깨 부분이 벌겋게 물들고 있는 게 보였다.

“갑판장이 맞았다!”

3기사 마르코스가 먼저 데크로 뛰어 내려가 갑판장을 들춰 맸다. 곧 두 선원이 갑판장을 울러 메고 살롱으로 옮겼다.

2기사가 달려왔다. 손에 약통이 들려 있었다.

“다행히 급소는 피했습니다.”

총탄은 갑판장의 왼쪽 어깨를 관통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놈들을 막아야 해.”

신음 섞인 갑판장의 당부였다. 그 역시 환갑의 나이였다. 소학교를 나온 열다섯 살 때부터 배와 인연을 맺었다는데, 이제는 시퍼런 바닷물만 보아도 멀미가 난다며 넌더리를 쳤다. 정작 바다가 기승을 부리는 파도 속에서도 멀쩡했던 노수부다.

다시 해적선이 중앙 뱃전으로 달라붙었다. 야만적이고 악랄하기 그지없는 놈들이니 순순히 물러설 턱이 없다.

2항사 장혜옥은 다시 브리지 윙으로 나갔다. 우현 뱃전 가까이로 놈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여간 끈질기지 않았다. 이쯤에서 그만두면 어떨까.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이쪽의 기대일 뿐이다. 이제는 오히려 약이 바짝 올라 있었다. 순순히 물러설 놈들이라면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머리 위로 총알이 빗발쳤다. 허공으로 총탄 음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오렌지 박스를 든 샌디 군이 그녀 가까이로 다가온 것은 그 때였다. 우현 갑판에서 기관장과 함께 오렌지를 내던지던 필리핀 출신 갑판원이었다.

“2항사님, 조심하세요.”

“그래, 너도.”

그녀도 오렌지를 투척했다. 총을 난사하는 놈들에게 물렁물렁한 오렌지가 당키나 할까.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럴 때의 적절한 퇴치법은 없는 것일까. 국가가 시행하는 해기사면허시험에 해적퇴치법을 논한 과목은 없다. 다만 구술시험에서 어느 시험관이 물은 적이 있다. 거기에 정답은 없다. 그래서 그녀는 최선의 방어책은 해적과 조우하지 않는 겁니다, 하고 답했다. 시험관은 만족한 표정이었다. 결코 틀리는 답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앗, 위험해요!”

순간 샌디 군이 소리치며 그녀의 등을 감싸 안았다. 그녀는 분명 무슨 충격을 느꼈다. 그 충격으로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넘어졌다. 쓰러진 그대로 그녀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굳은 듯 한 샌디 군의 몸뚱이가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안간힘을 다하여 밀쳐내려 하였으나 쉽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가린 샌디 군의 긴 머리칼을 걷어냈다. 그러자 밤하늘의 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이 총을 맞은 것이라 생각했다. 손바닥으로 이상한 감촉을 느껴서렷다. 따스하고 끈적끈적한 액체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손바닥을 눈앞으로 가져갔다. 두려워서였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브리지 상단에서 빛을 발하는 불그레한 우현 항해등 불빛 속에서 그것은 검붉은 색깔을 띠고 있었다. 피였다. 샌디 군의 가슴팍에서 뿜어 나오는 피였다. 샌디 군은 자신의 몸으로 그녀를 총탄으로부터 막아낸 것이었다.

“아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분노와 함께 증오감이 머리 꼭대기로 솟구쳐 올랐다. 결코 놈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증오감이었다.

순간 그녀의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시그널 로켓이었다. 선박이 위기에 처할 때면 공중으로 높이 쏘아 올려 조난선의 위치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지만, 그 위력의 대단함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원통형인 신호탄을 한손으로 움켜쥐고 발사 끈을 잡아당기면 슈우욱! 하는 폭발음과 함께 고공 70미터의 높이까지 솟구쳐 오른다. 그런 다음 마치 불꽃놀이 때처럼 화염을 내뿜으며 천천히 낙하한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는 퇴선한 1항사 머독이 구명보트에서 허공에다 대고 권총 형의 발사기로 쏘아올린 것과 같은 것이다. 그만한 높이까지 화염이 솟구쳐 오르면 반경 20마일 이내의 모든 선박에 대해 조난 사실을 알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만큼의 위력이니 가까운 거리의 놈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녀는 조타실 한편의 수납장 문을 열고 신호탄 박스를 꺼냈다. 그 속에는 여섯 개의 신호탄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급한 대로 우선 두 개를 손에 쥐고 우현 쪽 브리지 윙으로 달려 나갔다.

마침 뱃전 가까이로 달라붙은 해적선 갑판에서 한 녀석이 로프를 휘두르는 게 보였다. 그 곁에서 다른 녀석 하나는 연신 자동소총을 난사해대고 있었다. 놈들로서는 목표물이 분명한 만큼 아무 주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윙 밖으로 상체를 내민 채 먼저 자동소총을 난사하고 있는 녀석을 조준했다. 그리고 와락 발사 끈을 잡아당겼다.

콰앙!

고막을 찢을 듯 한 폭발음이 들렸다. 동시에 내용물이 신호탄 껍질을 박차는 충격과 함께 통을 쥔 그녀의 왼쪽 팔뚝을 사정없이 뒤로 밀쳐냈다.

순간 그녀는 똑똑히 보았다. 신호탄은 마치 영양을 좇는 날렵한 치타처럼 아주 정확하게 해적선 갑판을 향해 사행해 갔다. 그리고 그 폭약은 한창 자동소총을 난사해대던 녀석의 가슴팍을 정통으로 맞췄다. 곧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머뭇거리지 않고 두 번째 발사 끈도 잡아챘다. 이번에는 로프를 휘두르는 녀석을 겨냥했다. 하지만 크게 빗나갔다. 의외의 공격에 놀란 해적선이 급히 뱃머리를 돌린 결과였다. 그러나 그걸 다만 빗나갔다고 할 수 없는 것이, 그녀의 손을 떠난 두 번째 화염 줄기는 해적선 조타실 내부를 관통한 다음 반대편 바닷물에 꽂히면서 한 길이나 되는 물기둥을 치솟게 하였으니 말이었다. 조타실 안으로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선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효력은 대단했다. 무어라고 왁자하게 떠들어대며 해적선이 저만치로 물러간 게 그 증거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격에 혼비백산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총질을 그친 것은 아니었다. 더욱 요란스럽게, 완전한 난사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녀는 다시 나머지 신호탄을 꺼내올 참이었다.

순간 상갑판 저만치서 무엇이 허물어지는 듯 한 소리를 들었다. 1항사였다. 총알을 맞은 게 틀림없었다. 서해교전 때는 참수리에 승무하면서 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을 대파했었고, 한창 때는 주력 구축함에서 조타장을 역임한 대한민국 해군의 부사관 출신이었다.

“앗! 1항사님!”

소리치며 그녀는 다짜고짜 선배에게로 달려갔다.

14

상갑판으로 옮겨진 1항사는 자신의 손바닥으로 오른쪽 가슴을 감싸 안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압박붕대!”

선장이 소리쳤다.

“저는……괜찮습니다.”

1항사의 잦아든 목소리였다. 점점 초점을 잃어가는 눈망울이었다.

갑자기 사방이 적막 속에 빠졌다. 웬 까닭인지, 해적선의 난사가 그쳐 있었다.

“미스 장, 대단해……. 아주……대단해.”

1항사가 손을 내밀었다. 떨리는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려고 애 쓰는 것 같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재빨리 그 손을 잡았다.

“미스 장……저기 말이야…….”

1항사의 시선이 갑판 중앙으로 향해 있었다. 와이어로프로 고정된 12피트 소형 컨테이너 쪽이었다.

“저 컨테이너 말인가요?”

그녀 물음에 1항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기에 뭐가 있나요?”

그녀가 다그쳤다. 꼭 알아내어야 할 일이었다.

“놈들은……놈들은 저걸 노리고 있었다.”

두어 번 실눈을 깜박이며 1항사가 말을 이었다. 꼭 당부해야 할 말이 있어서였다.

“뭐라더라? 도용이라던가……중국 후베이 성 어딘가에서 발굴된 진 나라 때의 시황제 유물 같은 거……병사와 함께 수레도 있었고, 말도 있었지? 수천 구도 더 되었다지, 아마? 그게 컨테이너 속에……그 장궈이란……마피아……그래서 아마 비싼 운송료가 제의된 거 같아……우리 선주는 물론 알지 못 했고……수당 어쩌고 하는 말은 거기서 나왔던 거야.”

그럴지도 모른다. 1항사는 안전항해를 기원하는 본사의 메시지를 수신한 순간부터 의구심을 씻어내기 위해 나름대로 혼자서 퀴즈풀이에 전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포트 켈랑을 출항한 직후 선원들을 시켜 해치를 조사한 건가요?”

“그건……포트 켈랑에서 실은 천연고무 원료 라텍스 같은 거……그건 아니고……황푸 항의 컨테이너……그 속에 진시황릉의 유물이 들어 있어. 그 장궈이란 일당의 수작이었어. 해적 놈들은 그걸 노렸고.”

“아, 이제야 알겠어요.”

그랬었구나. 그랬었구나. 순간, 맞잡은 1항사의 손이 스르르 풀리는가 싶더니 그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젖혀졌다.

“1항사님……!”

2항사 장혜옥은 그만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15

대양의 맑은 아침이었다. 바다에는 잔 비늘 하나 보이지 않았고, 하늘에는 구름 한 조각 떠 있지 않았다. 모처럼 하늘과 바다가 맞붙어 있었다.

어제 적도를 통과한 배는 남지나해의 마지막 섬인 빌리톤을 뒤로한 다음 이제 마지막 기항지인 자카르타 항을 향해 속력을 올리고 있었다. 내일 오후면 도착할 수 있을까.

동남아 항로를 뛰는 오션 글로벌 호의 자이로컴퍼스는 여전히 오른쪽으로 7도의 에러를 갖고 있었지만,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항로를 밟아나가고 있었다.

부상한 갑판장은 곧 입항할 자카르타에서 병원조치를 받으면 얼마든지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선장이 맡긴 1만8천 달러의 비상 선용금도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항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갑판에 적재된 12피트 컨테이너와 관련한 미스터리는 자카르타 항에 도착하는 대로 그 내막이 깡그리 밝혀질 것이다.

2항사 장혜옥은 광대하게 펼쳐진 남지나해 끝자락을 망연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독히도 두렵고 두려웠지만, 정겹고 따사로울 때가 더 많은 바다였다.

“2항사, 내가 끓였다.”

다음 날 오후, 아직도 기침을 멈추지 못한 노선장이 조타실로 올라왔다. 평생 동안 외항선에 승선하여 세계의 바다를 누벼온 올드 캡틴이었다.

“고맙습니다, 선장님.”

선장이 건네 준 커피는 따뜻했다.

때맞추어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바타비아라 불리었던 자카르타 항의 산자락이 수평선 나지막이 솟아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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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주문진 수산고, 강원도립대학 해양산업학과 졸업.

과학기술부장관명의 해양학사 취득.

한국해양대학교대학원 국제지역문화학과 석사과정.

제 3회 원양산업노조공모전 대상 <해양시>  제 1회 <계간문예> 영목신인상〈시〉

제12회 바다의 날 해수부장관 표창  제11회 한국해양문학상 대상〈해양시〉

제13회 한국해양문학상 우수상〈해양소설〉

제 4회 해양문학상 우수상 <해양소설>

제13회 여수해양문학상 우수상 <해양소설>

제 2회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대상 <해양소설>

  해양시집〈진화하지 못한 물고기〉<대왕고래를 만나다>

해양산문<바다 위에서>

어선, 상선1급항해사. 동력레저조종1급항해사.

소형선박항해사. 요트항해사. GOC항해사.

  한국해양문학연구회-빅블루 동인. 원양봉수망 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