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신 구 자

 

 

지금 머리 속에는 지우개 하나

내 보폭만큼 함께 자라나면서 갈잎 갉아먹듯 사각사각

맛있게 뇌를 갉아 먹고 있는 모양이다

 

그제는 우리집 기둥 아들 생일을 콩까먹더니

오늘은 생각만 해도 아롱삼삼한 손녀 생일도,

무수히 꽃피고 꽃지던 속수무책의 그리움도

봄눈 녹듯 사르르 녹여버린다

 

멀쩡하게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도

기억의 괄약근이 풀어지면

멍하니 먼산 돌아서는 구름의 뒷꽁지를 쫓다

개울물에 빠지기도, 발길질 당하기도 한다

 

두렵다

큰길 접어두고 지름길로 달려오고 있는것 같은

저 무뢰한의 지우개,

살살 꼬드겨 꽃그늘 속에 코 박아

도끼자루 삭아내리도록 잠재울 수 없을까

돌부리에 걸려 무릅 팍, 꺾이게 할 수 없을까

 

 

 

 

송포역엔

 

경주에서 대구 오는 사이

두 번씩이나 새마을호를

마중하고 배웅해야 하는

무궁화호 열차

깃발 쥐고 흔들어 주던 역무원 대신

철로변에 마중 나온듯 줄지어선

개나리와 볼 붉힌 살구나무만 배웅하고 있다

봄햇살만 나른히 조을고 있던

송포연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