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사다리

 

박승민 

 

 

 

감나무가지를 잡고 있는 조롱박의 손

힘줄이 파랗다

 

나이를 한 살 더 한다는 건

허공으로 난 사다리를 오르는 일

 

지상의 낯익은 온기들과 멀어져

바람과 구름의 사원을 지나

낯선 별자리를 찾아 중얼거리며 가는 길

 

흔들려도

잡아줄 손이 더 이상 옆에 없다는 사실

 

아득한 꼭대기에서

누군가의 발이 후들거리는지

밤부터 울고 있었는지

내 손까지 내려오는

저릿한 통증

 

조롱박의 왼손이 감나무사다리를 올라

장천(長天)의 푸른 강을 넘고 있다

 

 

 

천공(天空) 

 

 

스물두 살 때

폐에 구멍이 생기는 기흉(氣胸)을 앓은 적 있었지

웃으면 가슴이 바늘로 찔린 듯

그래서 웃음의 바깥으로만 돌아다니던 시절

 

어찌어찌 不惑 지나 天命을 알리라 하지만,  

내 몸 어딘가에는 아직도 반 뼘 바람구멍이 있는 듯

 

채우자마자 휙,,, 휘리리,,, 풍선처럼 빠져나가는

천공(天空)이 숨어사는 듯

 

늘 복대를 하고 깻단의 마른 몸 이쪽저쪽을 옮겨 놓으시는

음지마을 할매의 몸속에도 그런 살바람 쿨럭이는 구멍이 있는지

 

흙바닥이 거울인양

서울로 공무원 살러간 아들의 주름살도 보이고

중증장애 손녀도 보이고

종종 영감도 다녀가시는지

 

오늘은 부처님의 영험까지도 고구마줄기처럼 내려오시는지

흙의 법당 마루로 자꾸 고개를 숙이는데

 

숙이기만 하고 가끔은 고개 드는 것도 깜빡깜빡하시는데,

삼배 삼백배 일만이천배를 느릿느릿 채우고 내려가는 고샅길 너머

 

빨리 온 가을,

빨리 늙는 은행나무 옹이 곁으로

한창 불붙은 맨드라미들 붉은자줏 융단을 펼쳐들고

겹겹이 벽을 두르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