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미래다

 

고창근

 

 

봄이 왔다. 봄이 오면 우리집에서 제일 먼저 하는 게 있다. 그것은 마당가에 있는 텃밭에 땅을 갈고 씨앗을 넣는 일이다. 텃밭은 넓지 않아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데 이 날은 온 가족-이라야 큰놈이 객지에 있는 바람에 나와 아내, 고딩1짜리 아들 한 놈밖에 안 되지만-이 함께 일하는 날이다. 먼저 텃밭에 있는 가을에 묻었던 장독을 꺼낸다. 지난겨울에 동치미를 담았던 장독이다. 아들과 나는 일전을 겨루는 병사처럼 삽과 괭이를 쥐고 달려든다. 신발에 흙이 들어가고 이마에 땀이 날 즈음에 장독을 다 꺼내어 수돗가에 놓는다. 그러면 씻는 것은 아내의 몫.

이제부터 본격적인 일하기. 아들은 우선 쇠스랑으로 땅을 뒤집는다. 사실 이게 가장 힘든 일인데, 그 힘든 일은 우리집에 엥겔계수만 높이는 아들 녀석의 몫이다. 녀석은 그걸 가장 불만스럽게 생각하지만 덩치 큰 소처럼 거친 숨을 내쉬며 쇠스랑질을 하는 것 보면 역시 노동은 신성하다는 것을 느낀다. 녀석은 부정할 테지만 말이다. 다음은 내 차례. 쇠갈쿠리로 흙을 고르는 작업이다.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나면 골을 탄다. 좀 비뚤어도 상관없다. 다만 적당하게 파야한다. 너무 깊게 파거나 얕게 파면 씨앗이 나지 않는다. 그 다음 일을 할 때면 꼭 아내를 부른다. 오늘의 일 중 가장 중요한 일. 씨앗을 넣는 일이다. 아내는 만물의 창조자답게 위엄을 갖추고 상추 씨앗을 골고루 뿌린다. 나는 씨앗을 뿌리는 아내의 모습을 보노라면 어떤 엄숙함을 느낀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숭고함이 있기 때문이다. 역시 아내가 씨앗을 뿌려야 안심이 된다. 언젠가 내가 뿌려봤는데 뭔가 어색했다. 그리곤 도대체 미덥지가 않았다. 씨앗이 날까? 안심이 안 되었다. 며칠 후 보면 역시 예상대로였다. 씨앗이 드문드문 난 것이다. 역시 씨앗은 아내가 뿌려야 한다. 태초부터 생명을 잉태한 것은 여자가 아니던가. 그 다음 씨앗을 덮는 일은 내 몫이다. 깊게 묻지도, 얕게 묻지도 않게, 적당하게 묻어야 한다. 나는 이게 아주 예술적이라 생각하는데 아내와 아들은 가장 손쉬운 일이란다. 이 위대한 일은 아내와 아들이 몰라주지만 어쩔 수 없다. 일은 끝. 이마엔 땀이 맺혔다. 이제 며칠 후면 싹이 트고 몇 주 뒤면 뽑아 먹을 만큼 클 것이다. 당연히 농약도 안 치고 화학 비료도 안 한다. 100% 무공해 식품.

그 다음은? 당연히 막걸리 마시는 시간이다. 일을 하고 난 뒤 마시는 막걸리의 맛을 아는 사람은 노동의 신성함을 아는 사람이다. 당연히 이 맛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마당에서 휴대용 카스레인지에 불판을 올려놓고 삼겹살을 굽는다. 나는 아내의 잔에 술을 따르고 아내는 내 잔에 술을 따른다. 이제 노동의 대가로 향연을 베푸는 것이다. 고기가 익으면 아들은 상추에 고기를 두 점씩 놓는다. 술을 마시는 속도에 비해 고기는 늦게 익기에 먹을 고기가 모자라는 데도 그렇다. 한 입에 고기 두 점씩이나? 엥겔계수만 높이는 이 녀석을 두고만 볼 수 없어 내가 호통이라도 치면 아내가 펄쩍 뛴다.

“한참 커는 아이한테 왜 그래?”

그러면서 아이한텐,

“많이 먹어라. 힘들었지?”

고기를 아들 쪽으로 밀쳐놓는다. 개코나, 쇠스랑질 몇 번이 힘들다고. 나는 투덜거리지만 아들은 내 표정을 살피곤 선수를 친다.

“엄마, 손에 물집.”

제 엄마 코앞에 손바닥을 편다. 손바닥 중앙에 물방울처럼 물집이 돋아나 있다. 역시 일 안 하는 손은 틀리다. 나는 셈통이다, 하고 고기를 날렴. 집어 먹고 아내는 안타까운 눈길로 아들의 손바닥을 바라본다.

막걸리는 한 잔 두 잔으로, 어느새 한 병 두 병을 넘어서고 세 병 네 병까지 늘어난다. 이 정도면 일을 해서 술 마신 게 아니라 술 마시기 위해 일한 거다. 그렇다. 솔직히, 아내와 난 술 마시기 위해 일을 한 거다. 적당히 일을 하고 난 뒤 아내와 술 마시는 기분이란. 아내는 최고의 기분이란다. 물론 나도 최고의 기분. 아들의 요즘 생활, 진로문제, 아내의 학교생활, 나의 요즘 관심 분야. 밤이 늦도록 우리 가족은 향연을 벌인다. 또한 다음 날 아침 북엇국을 끓여놓는 아내. 역시 아내는 미래다.

 

 

문학웹진  <문학마실>편집인

소설집 <소도> <아버지의 알리바이>

서양화 개인전 1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