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랭이꽃이 진다

 

 

 

덜 여문 씨앗은 싹이 트지 않는다

아이야, 화분에 자꾸 물을 뿌리지 말아라

아빠는 못나서, 세상에 얼굴 밝히는 저 잘난 것들 앞에

덜 여문 시절이 또록또록 여물도록

양지녘 볕 좋은 곳에 한나절을 세워두고 싶지만

내일은 아침부터 또 비가 온다더라

작은 우산을 들고 오랫만에 손을 꼭 모듬 쥐고

아득한 들판을 지나 강둑 건너

사시사철 꽃이 피는 마을, 읍내 화원을 찾아가자

낡은 경운기가 버려진 논두렁 밭두렁

항시 어머니의 등허리만 보이는 사래 긴 끝자락

폐가 한 채가 엎드려 있는 그곳에서 잠시 쉬어가자

거긴 말이다, 마당가에도 울타리에도

누가 제 욕심으로 애써 씨 부리지 않아도

해마다 나고 자란 패랭이꽃들이

풀인지 꽃인지 모르게 여름내 피어나고

까불까불 찾아오는 이 없어도 좋아라

나비 한 마리 날아가는 날개짓에

하늘하늘 패랭이꽃이 진다

산과 들이 진다.

 

 

 

 

 

억부인 국수집

 

 

 

억부인 국수집에

모처럼 억수로 많은 손님들이 들었는지라

점심 지나 아직 준비해 둔 국수도 없는데

왁자지껄, 얼른 국수를 내오라는 성화인지라

막걸리에 우선 물김치를 주고

된장에 풋고추를 주고

육수를 데우면서 국수를 바삐 삶는데

이놈의 손님들 개울앞 돌망태기 인부들인지라

퍼런 장화에 진창 황토흙이 달라붙어

식당 바닥이 온통 흙투성이 난장판인지라

그중엔 염치 있는 양반도 있어

수돗가에 대충 장화를 씻고 들어오지만

양푼 가득 절여놓은 열무에 흙물이 튀는지라

국수를 나르는 억부인 안절부절 못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시원한 국수 한그릇 훌훌 말아먹고

아이구, 잘 먹었다. 내일두 참은 여그서 먹지 그랴?

떼지어 장화를 털고 식당 문을 나서는 사람들

 

 

 

 

*임성용

1965년, 전남 보성 출생

2002년, 전태일문학상 / 2011년 조영관창작기금 수상

현재 진보작가네트워크 '리얼리스트100'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화물운수노동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