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중편소설

쇄 빙 항 해



이  윤  길



300장



  1


  - 캡틴 박, 한 시간 후야.

  아침 일찍 셔틀 비행기 편으로 세인트존스 항으로 나간 앙리의 전화였다.

  “알았네.”

  나는 서둘렀다.

  앙리의 요청이라면 더 물어볼 것도 없었다. 그는 화물선 두 척을 소유한 뉴잉글랜드 라인의 오너이고, 나는 그 중 하나인 폴라리스 호의 선장이기 때문이었다.

  두 배는 대서양 연안의 북미 각 항구에서 이리 호의 하항인 몬트리올까지의 세인트로렌스 수로를 정기적으로 운항하고 있었다. 따라서 앙리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면서도 수익이 보장된 항로에 배를 투입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거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가령 1월부터 3월까지의 한겨울 철이면 강물은 두껍게 꽁꽁 얼어붙고, 거기에 딸린 만마저 그린란드로부터 떠내려 온 부빙으로 하얗게 뒤덮이면서 항로가 그만 제 기능을 잃고 만다는 점이었다. 그러면 배는 세인트존스 항에 닻을 놓을 수밖에 없고, 덕분에 나는 생피에르 섬으로 돌아가 해빙기가 올 때까지 가족과 함께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는 것이다.

  사흘 전 나는 앙리와 함께 사냥에 나섰으나 겨우 토끼 두 마리를 잡는 데 그쳤다. 프랑스의 유일한 해외 자치령인 생피에르 섬은 사주(砂洲)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키 낮은 떨기나무만 띄엄띄엄할 뿐, 당초부터 풀 한 포기 자라나지 않는 황무지였다. 사정은 인근의 미크롱 섬도 마찬가지여서 그곳에는 세상을 등진 수도승이나 은둔자 몇 명만이 자신들의 인내심을 저울질하며 고독한 삶을 살고 있을 뿐, 주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버려진 땅이었다.

  그러나 자연은 너무도 너그럽고 위대하기만 하여, 그 같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얼마든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 그 하나가 뉴펀들랜드 섬 너머의 그랜드뱅크인데, 만약 그곳에 대구나 청어 등 값진 어족이 회유하고 있지 않다면 아무 멋모르고 첫 발을 내딛은 이주민들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 하고 그곳을 떠났거나 아니면 굶어 죽고 말았을 것이다. 일찍이 신대륙 개척시대에 캐나다 동북부를 선점한 영국인들에게서 쫓겨난 피레네 산맥 출신의 바스크 인들이 지금까지 그곳에서 용케 살아남은 것은 인근 바다가 둘도 없는 천혜의 어장이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 어느 화주의 전화를 받은 앙리는 서둘러 셔틀 비행기를 탔다. 생피에르에서 외지로 나가려면 일주일에 두 번씩 뜨는 셔틀 수상비행기가 유일했다. 따라서 한 시간 후에 뜬다는 셔틀기는 순전히 나를 위해 앙리가 서둘러 마련한 특별기가 분명했다.

  “급한 화물이 있는 모양이지.”

  출발에 앞서 앙리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하기는 제아무리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던 해운회사 오너라도 급한 화물이 있다는 데는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기왕이면 플로리다 쪽이 좋겠네. 오랜만에 따뜻한 바람이나 쐬게 말이다.”

  내가 앙리의 어깨를 툭 치며 그렇게 농을 한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세인트로렌스 수로는 지금 단단히 결빙된 상태여서 어떤 항해도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항로는 틀림없이 세인트로렌스 수로가 아닌 다른 곳일 수밖에 없다.

  “그랬음 얼마나 좋겠나.”

  앙리도 웃으며 나의 농을 받아 주었다.

  “플로리다라면 나도 동행하고 싶네.”

  우리는 소리 내어 웃었다.



  2


  내가 계류장에 도착하였을 때 셔틀기는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기세에 있었다.

  “이거 날씨가 보통 아닌데요.”

  청바지 차림의 뚱뚱이 조종사가 찰랑거리는 물결 위의 착수용(着水用) 플롯을 내려다보며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면서 조종사는, 잠깐 동안인데 이렇게 살얼음이 달라붙어버렸으니 말입니다, 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한낮에도 태양은 남쪽 지평선 한 뼘 위에 잠깐 걸쳐지는, 밤이 낮보다 네 배는 더 긴 북구의 한겨울 철이었다. 며칠 전부터 기온은 영하 30도 아래로 곤두박질친 가운데 하늘은 두터운 구름으로 뒤덮여 있어서 이러다가는 행여 아이스 스톰으로 발전하지나 않을까, 더럭 겁이 날 정도였다. 얼음 폭풍우라고나 해야 할 국지적 기상이변인 아이스 스톰은 몇 년 전 몬트리올 일대를 강타하여 빙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가옥은 물론 아름드리 거목이나 전신주가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면서 일주일 동안이나 정전 사태를 일으켜 세상을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었다.

  “잘 다녀오세요.”

  아내 마들렌은 에스키모 여인들처럼 이제 일곱 달이 된 찰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이럴 땐 아빠 바이바이, 그러는 거야.”

  마들렌이 앙증스러운 찰리의 손을 잡고 함께 흔들어 주었다.

  마들렌을 만난 것은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운명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내는 신천지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바스크 인의 후예답게 시원시원한 면모를 갖고 있었다.

  당시 나는 뉴펀들랜드 어장에 시험조업차 입어한 트롤선의 1등항해사였다. 수산계 고등학교를 나온 게 학력의 전부인 나는 그 때문에 번번이 선장 진급에서 탈락하는 비운의 처지였다. 그래서 선택한 게 그랜드뱅크에 투입된 시험조업선 승선이었다. 그만큼 그곳은 미지의 세계였고, 기상이 험악하기로 이름나 있었다. 따라서 만약 내가 그 모험적인 항해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그 성과만으로도 나의 선장 진급은 따 놓은 당상이라 해도 좋았다.

  앞서 말한 대로 그랜드뱅크는 황금어장이어서 한 달 남짓이면 얼마든지 어창을 채워낼 수 있었다. 그렇게 만선을 이루면 배는 어획물의 양륙과 선원들의 휴식을 위해 세인트로렌스 만 어귀의 생피에르 섬으로 귀항하곤 하였다.

  첫 항차를 마치고 기항하였을 때였다. 어획물 양륙은 시간을 다투는 일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어창을 비워낸 다음 서둘러 어장으로 달려 나가는 게 어부들이 할 일이었다. 그래서 짧은 해가 진 다음이면 부두는 작업등으로 휘황하게 밝혀지고, 대낮 같은 그 불빛 속에서 이슥한 밤 시각에 이르기까지 어부들은 어획물 양륙으로 눈코 뜰 새 없다. 그렇다고 거푸 사나흘을 계속하여 고기 푸는 일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다못해 시원한 한 잔 맥주로 목구멍을 걸러낸 다음이라야 무슨 일이든 엄두가 날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모처럼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내가 행여 부두에서 누가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서둘러 상륙을 나간 것은 밤 열 시도 가까워서였다.

  목적지는 부두 정문 맞은편의 ‘로제’라는 이름의 자그만 바였다. 자정 가까운 시간인데도 홀은 술꾼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늦가을 어기가 끝난 참이라 그들 모두가 어장에서 돌아온 어부들이었다. 몇 달 동안 북대서양 그랜드뱅크의 거친 파도에 시달리기만 한 어부들인 것이다. 좋은 성과를 낸 치들은 기분이 좋아서 한 잔, 결과가 신통치 않은 치들은 기분이 나빠서 한 잔, 그렇게 밤을 새워가며 육지의 훈훈한 땅 냄새에 흠뻑 취하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 생선 가공공장의 노동자 얼굴도 몇몇 보였다. 그만큼 생피에르 섬은 세계에서도 이름난 수산업의 중심항이었다.

  그곳에 여자들이 끼인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일이었다. 방금 어장에서 돌아온 남편과 함께든가, 아니면 영원히 귀항하지 못한 남편을 기다리기에 지쳐 한 잔 술로 고독을 달래려는 여인들이었다.

  그 사이에 마들렌 양도 끼어 있었다. 붉은 색 풍성한 머리카락과 늘씬한 몸매가 그녀의 미모를 한결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첫눈에도 결코 어부로 보이지 않는 사내와 함께였는데, 마침 우리 일행과 테이블을 접하고 있어서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마주치면 스스럼없어지는 게 바닷사람들의 속성이자 강점이 아니던가.

  그곳에서 언어 소통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몸짓 손짓 하나로도 얼마든지 의사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먼저 ‘어이, 프렌드!’ 하면, 상대방 역시 술잔을 높이 들고 ‘어이! 아미고!’ 라고 답하는 것으로 금세 막역한 사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바다라는 한자 ‘海’에는 어머니를 뜻하는 어미 ‘母’ 자가 뜻글자로 들어가 있다. 프랑스 말도 마찬가지다. 철자 하나만 다를 뿐 바다도 어머니도 다같이 ‘라 메르’ 또는 ‘엘 마르’라 부르는 게 그것이다. 결국 바다에 사는 뱃사람들은 누구나 없이 자상하고 따뜻한 어머니의 자식들인 것이다.

  두 남녀는 태평양 너머로부터 원양어장을 찾아 나선 우리 동양인들을 아주 반갑게 대해 주었다. 그랜드뱅크는 연중조업이 가능할 만큼 어자원이 풍부한데다가, 낯선 동양인이 잡아온 어획물이라도 그것을 가공하여 팔면 경제도 윤택해진다는 게 그들의 소박한 생각인 것이다.

  “유, 저패니스?”

  그녀가 나에게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아니, 꼬레안입니다.”

  내가 고쳐 주었다.

  “와우! 레드 데블!”

  그녀가 환성을 질렀다. 붉은악마의 응원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던지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한국이라면 2002년 서울에서 개최된 월드컵을 쉽게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반갑다며 몇 번이나 잔을 부딪쳐 왔다.

  “앙리예요.”

  그녀가 함께 앉은 사내를 소개해 주었다. 그것으로 나는 훤칠한 몸매의 그 사내가 세인트로렌스 수로에서 화물선을 운항하고 있는 오너라는 것과 두 사람은 남매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혼은 했나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그런 경험은 가져본 적이 없다고 답해 주었다. 수줍어하는 나를 보고 그녀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한국의 풍습에 이어 나의 신상에 관해서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이를 물어봐도 될까요?”

  그녀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갔다.

  “스물여덟입니다.”

  “아이! 나보다 세 살 많네요.”

  우리 둘의 대화를 앙리는 웃으면서 듣고 있었다.

  뮤직박스에서는 끝없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락이 끝나자 다음에는 블루스 차례였다. 로제 바에서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었다. 문이 열리고 술꾼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 맨 먼저 블루스 곡이 흘러나오고, 새벽 두 시가 되면 다시금 블루스 곡을 트는 게 그것이었다. 첫 번째 곡은 영업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멘트이고, 마지막 곡은 곧 문을 닫겠다는 클로징 시그널인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블루스 곡이 흘러나오면 순식간에 홀은 의자를 밀쳐내는 소리로 왁자해진다.

  그녀가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한 곡 추실까요?”

  사양할 일이 아니었다.

  “댕큐!”

  그녀의 손에 이끌리어 홀 중앙으로 나간 나는 서투르게 스텝을 밟았다. 흑인영가와는 다른 낮은 톤의 잔잔한 블루스 곡이었는데, 스텝을 밟는 동안 나는 자꾸만 가슴이 설레어 재어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 이유를 나는 알고 있었다. 다른 항구와는 달리 생피에르 섬 여인들이 마지막 블루스 곡에 맞추어 스텝을 밟으면 그 상대 남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의사의 표시이고, 그런 다음 자리로 돌아와 남자의 점퍼를 엉덩이에 깔고 앉으면 ‘당신은 내 것이야!’라는 완강한 자기표현이라는 말을 들어서였다. 나는 기대에 부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의 소망을 이해했다. 곡이 끝나고 테이블로 돌아오자마자 앞장선 그녀가 의자 등받이에 걸쳐 두고 있던 나의 점퍼를 잡아채어서는 자신의 엉덩이에다 깔고 앉은 것이었다.

  여동생의 그 모습을 본 앙리가 깔깔 웃었다.

  “아이구나! 당신을 좋아하는 것 같소.”

  “아니, 뭐라고요?”

  “마들렌이 당신에게 반했단 말이요.”

  그러더니 앙리가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치는 저쪽 여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들렌은 저런 여자들과는 다릅니다. 아직도 처녀니까요. 게다가 당신도 미혼이라면서요?”

  그게 마들렌과 인연을 맺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결국 그 같은 생피에르 섬 여인들의 기이한 관습 덕분에 나는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 셈이었고, 앙리는 자신이 소유한 선박의 운항을 도맡아 줄 멋진 항해사를 찾아낸 것이었다.

  셔틀 비행기가 천천히 계류장을 벗어나자 나도 마들렌과 찰리를 향해 가만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3


  셔틀기가 뉴펀들랜드 섬의 상공을 날고 있을 때 기어코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눈이 아니라 비였다. 하강하는 동안에는 물방울에 틀림없는데, 어디건 달라붙는 대로 결빙하는 아이스 스노우였다. 예사롭지 않은 기상의 조짐을 본 나는 셔틀기에 오르기 전 잠깐 떠올렸던 아이스 스톰을 되살려내고는 조금 불안한 마음이 되었다.

  아이스 스노우는 와이퍼의 쉼 없는 작동에도 불구하고 금세 시야를 가로막을 만큼 비행기 앞 유리창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슬그머니 조종사의 눈치를 살폈으나, 그는 전혀 개의하는 기색이 없었다. 나의 불안은 점점 커져갔다. 그러나 셔틀기가 뉴펀들랜드의 구릉을 넘어선 다음 시야가 확 트이면서 광활한 대서양 바다를 내려다보게 되자 거짓말처럼 아이스 스노우가 그쳐 있었다. 아마도 망망대해로부터 불어온 바닷바람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의 우려는 사라졌다.

  내가 중앙부두에 도착하였을 때 폴라리스 호에서는 벌써부터 화물의 선적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조심해! 조심하라고! 세인트존스를 불바다로 만들지 않으려면 말이다!”

  헬멧을 쓴 사내 하나가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갑판에서 나를 본 앙리가 손을 흔들었다. 앙리는 나를 재빨리 발견했다. 그만큼 그는 눈 빠지게 나를 기다렸던 것이다.

  “이 화물을 몬트리올까지 운송해 주기로 했다.”

  “몬트리올?”

  의외의 목적항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선장을 맡고 있는 화물선 폴라리스 호는 지금 결빙 상태에 있는 세인트로렌스 수로를 뚫고 나가야 한다는 말이 된다.

  “거긴 지금……결빙 상태 아닌가?”

  나는 농담이려니 했다. 하지만 앙리는 진지했다.

  “그래서 화주가 최신 아이스브리커 한 척을 수배해 놓았다네.”

  “아이스브리커?”

  아이스브리커가 무엇인지는 나도 안다. 얼음이 덮인 비해(氷海)를 앞장서서 빙반을 깨트리며 뒤 따르는 배의 길을 터주는 쇄빙선(碎氷船)이다.

  “블루스타라고, 미국 국적선이래. 최근에 취역한 1만3천 톤급 아이스브리커로, 디젤엔진과 가스터빈을 동시에 가동하는 트리플 프로펠러 시스템이래. 선폭도 25미터를 넘는 대형선이어서 우리 배를 유도하기에는 그저 그만이라는 거야.”

  블루스타 호라면 나도 들어본 적 있다. 앙리가 말을 계속했다.

  “하긴 우리나라(캐나다)에도 아이스브리커가 없는 건 아니지. 원자력으로 추진되는 3만7천 톤급 아크티카 호가 있지 않나? 하지만 지금은 여기 없어. 한 달 전 시추선의 길을 터주기 위해 북극해에 나가 있다더군.”

  앙리는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미리부터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애를 쓴 게 틀림없었다.

  “저 화물은 뭔데?”

  당연히 화물 종류가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화물이기에 이처럼 법석인가 해서였다.

  “다이너마이트래.”

  “뭐? 다이너마이트?”

  앙리의 설명은 이러했다.

  어젯밤 오타와 인근의 한 원유 채굴장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워낙 불길이 거세어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도대체 진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현장을 확인한 전문가들은 수년 전 텍사스 유전에서 한 것처럼, 일시에 다량의 화약을 폭파시켜 유정을 폐공(閉孔)시키는 것만이 불길을 잡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제언했다는 것이다. 그 다량의 화약이 마침 세인트존스 항 인근에 보관되고 있었고, 그 운송을 폴라리스 호가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카고나 디트로이트에도 확인하였는데 충분한 양이 되지 못한대. 왜 안전관리법에도 있지 않나? 화약 보관은 인구밀집지역에서 멀리 떨어지라고! 마침 이웃 래브라도에는 주석과 보크사이트 광산이 많지? 그래서 세인트로렌스 인근에는 광산에 다이너마이트를 대주는 대규모 창고가 즐비한 거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제반 사정은 이미 폴라리스 호의 출항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그러자 앙리가 마지막으로 다잡았다.

  “꼭 운송료가 탐나서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진압하지 못 하면 환경적으로도 큰 재앙이 될 것 아닌가?”

  동의하면서도 나는 배를 몰고 가야 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임을 분명히 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꽁꽁 언 빙반을 깨트리며 몬트리올까지 가려면 며칠이나 걸릴 텐데?”

  앙리 역시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것도 이미 고려한 다음이야. 어쨌거나 현재로는 이 방법이 유일하다는 거야! 물량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마땅한 항공기도 구하지 못 해서래.”



  4


  나는 출항 준비를 끝낸 1등항해사 빌리로부터 승조원 현황을 보고받았다.

  “갑판장만 빠졌습니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한 갑판장은 모처럼의 휴가를 활용하여 가족과 함께 유럽을 여행 중에 있다는 것이다.

  “저 친구가 있지 않나?”

  브리지까지 올라온 오너가 한창 카고 윈치 조종에 여념 없는 한 선원을 가리켰다.

  “꼬레안 헤드세일러 말인가?”

  김갑준이라는 한국인 선원이었다.

  “그래.”

  오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출신 헤드세일러인 김갑준의 캐나다 귀화 역시 나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몇 년 전 트롤선의 갑판원이었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다른 배편으로 급히 후송되었는데, 맹장염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다음 며칠간 입원을 하고 있는 동안 어느 간호사와 눈이 맞았다. 그런 일이야 뱃사람에게는 너무도 흔한 일이어서 그가 기항하는 동안이면 두 연인은 수시로 만나곤 하였는데, 몇 차례 출어와 귀항을 반복하는 사이에 그녀가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되면서 그는 그만 꼼짝없이 발이 묶이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가정이란 원래부터 일정한 수입이 있어야 유지되는 것 아닌가. 그가 갑판원으로 폴라리스 호에 승선하게 된 것은 그 같은 사유에서였다.

  선장인 나로서도 나쁠 게 없었다. 마침 갑판원 자리가 하나 비어 있어서 승선의 기회를 주었던 것인데, 워낙 근면하고 성실한 성품인지라 그로부터 몇 달 후 그는 갑판장 다음 직책인 헤드세일러로 승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출항 준비는 끝났다.

  그렇다고 나의 마음이 여유로웠던 건 아니었다.

  쇄빙항해라니!

  나는 문득 인듀런스 호로 남극탐험에 나섰다가 부빙에 갇히면서 영하 40도의 혹한을 이겨내고 무사 귀환한 영국 탐험가 섀클턴을 떠올렸다. 그는 눈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세 개의 마스트가 차례로 부러지고, 사방에서 죄어오는 얼음덩이의 압박으로 늑골재와 선미재까지 파손되면서 탐험선의 기능을 상실한 인듀런스 호를 떠나 눈보라와 혹한의 극한 상황으로 내몰렸으나 2년 가까운 긴 조난 상황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의 희생자도 내지 않은 채 무사 귀환함으로써 아문센이나 스콧보다도 더 위인으로 추앙되고 있는 불세출의 탐험가였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사진에서 본, 털실로 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조끼 차림으로 승마용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깊이 찔러 넣은 섀클턴의 늠름한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렇다면 이번 항해가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는 징조는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쇄빙선 블루스타 호 역시 진작부터 출항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두꺼운 얼음장을 차례차례 깨트리며 항로를 터나가는 게 본업인 블루스타 호는 아이슬란드의 트롤선처럼 몽톡하면서도 육중한 느낌을 주는 특이한 선체를 가진데다가 외판을 온통 빨간 페인트로 칠하고 있어서 일반선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쇄빙항해가 처음인 나는 출항하기 전 잠시 캡틴 윌리스와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가졌다. 전임 선장이 노령으로 은퇴하자 그 직을 이어받았다는 나와 비슷한 연배의 전문가였다.

  “꼬레안이라고요? 오너로부터 들었습니다.”

  첫눈에도 캡틴 윌리스는 서글서글했다.

  “이 미녀는 우리 배 1등항해사 미스 모니카입니다.”

  캡틴 윌리스가 먼저 동행한 여자 항해사를 소개해 주었다. 윌리스 말처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늘씬한 몸매에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나의 의례적인 인사를 경쾌하게 받으면서도 그녀는 연신 가슴에다 껴안은 강아지의 목덜미를 가볍게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수북이 자라난 새까만 털이 두 눈을 거의 가리다시피 한 요크셔테리어 종이었다.

  캡틴 윌리스가 쇄빙항해의 요령을 설명했다.

  “아이스브리킹은 처음이라지요? 하지만 크게 걱정할 건 없습니다. 이래 뵈도 나는 평생을 아이스브리커만 탔습니다. 이번에도 온타리오(호)를 다녀왔습니다. 갈 때는 래브라도 산(産) 철광석을 실은 화물선을 유도했고, 올 때는 곡물을 싣고 유럽으로 가는 벌크선을 안내했습니다.”

  그는 아주 자신이 만만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의 장담처럼 이번 항해가 아무 탈 없이 순탄하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장담할 수 없었다. 나는 난생 처음 경험하게 될 쇄빙항해를 앞두고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기묘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캡틴 윌리스의 주문은 딱 한가지였다.

  “항해하는 동안 우리 배(블루스타 호)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부단한 교신이 필수적입니다. 피차의 상황을 충분히 파악해야 하니까요. 그 일을 위해 우리 배 토키맨 한 명이 귀선으로 건너갈 겁니다. 이건 반드시 필요한 조치입니다. 그래야만 어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봉착하더라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 거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는 요크셔테리어를 안은 1등항해사가 나섰다.

  “중요한 건 두 배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일입니다. 너무 멀리 뒤쳐져도 안 되고, 너무 접근해서도 곤란합니다. 우리는 얼음을 깨기 위해 수없이 래밍을 되풀이해야 하거든요. 조금만 지체해도 강물은 금방 얼어버리지 않던가요?”

  나는 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녀가 말하는 동안 요크셔테리어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자, 그럼 출항하실까요?”

  두 배의 출항은 아이스브리커의 토키맨인 한센 씨가 폴라리스 호로 건너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토키맨은 먼저 워키토키의 성능을 체크하는 것으로 그의 임무를 시작했다.

  “여기는 폴라리스 호, 폴라리스 호! 감도 아주 좋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꽤 카랑카랑했다.



  5


  방파제를 벗어난 순간부터 나는 곳곳에 떠 있는 크고 작은 부빙부터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두 북극해의 그린란드로부터 떠내려 온 얼음덩어리였다. 지구온난화가 어쩌고 하지만, 북대서양의 뉴펀들랜드 해역은 지금 무수한 빙산으로 뒤덮인 동계의 절정기였다.

  도처에 즐비한 부빙은 꼭 길들지 않은 야생마였다. 길을 터나가고 있는 쇄빙선의 공격적인 항진으로 얼음덩이는 가차 없이 밀려났지만 그것도 잠시, 야생마는 곧 그 여백을 채우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 결과 부빙과 스치기도 여러 번이었다. 낮은 속력이어서 큰 충격은 아닐지라도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선수로부터 잇달아 부빙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면 잠시 후 얼음덩이는 어김없이 뱃전을 훑고 지나가면서 야릇한 마찰음을 내곤 하였다.

  - 이러다가 배가 견뎌 내기나 할까.

  그게 나의 걱정이었다. 보나마나 외판 곳곳은 벌써부터 길게 칠이 벗겨져 있을 것이다.

  토키맨은 한시도 쉬지 않고 유도선인 아이스브리커와 교신했다. 지시는 시시각각 달랐다. 폴라리스 호로 하여금 속력을 올리라거나 내리라는 등의 조선상 주문이 대부분이었고, 때로는 엔진을 정지하라는 다급한 지시가 전해 올 때도 있었다. 그러면 토키맨은 지체하지 않고 이쪽 당직자에게 기관정지를 명했다. 두 배는 그렇게 한순간의 방심도 허락할 수 없는 극도로 긴장된 항해를 이어나갔다.

  곧 바다에 어스름이 깔렸다. 그러자 수백 미터 앞의 유도선 모습이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저기 지시등을 똑바로 맞추세요.”

  토키맨이 아이스브리커의 선미 불빛을 가리켰다. 그 시각 쇄빙선 선미에는 고촉광의 불빛이 후방으로 길게 뻗어나 있었다.

  밤 동안 쇄빙선은 한시도 쉬지 않고 강력한 서치라이트 불빛을 이리저리 휘둘러댔다. 전방의 빙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동안 배는 어쨌거나 조금씩 전진했다. 말 그대로 살얼음을 딛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 같은 기이한 운항은 뉴펀들랜드 남단의 레이스 곶을 꺾어 돌아 세인트로렌스 만으로 진입하기까지 꼬박 사흘 동안 계속됐다. 만 어귀에 생피에르 섬이 있었다. 마을 불빛이 반딧불처럼 명멸하고 있었다. 나는 행여 찰리를 안은 마들렌이 손을 흔들고 있지나 않을까 하고 두리번거렸으나 뒤덮인 산자락만 아련할 뿐이었다.

  생피에르 섬을 지난 다음 날 만으로 들어서자 부빙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육지로 둘러싸인 지형의 특성상 와류가 형성된 결과일 것이다. 항진은 마냥 조심스러웠고,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 두 배가 뉴펀들랜드와 노바스코샤 섬 사이를 뚫고 만 안으로 비집고 들어섰을 때는 빈틈이라곤 없는 말 그대로 끝 간 데 없는 빙반의 은세계였다.

  그리고 사흘 째 오후, 배는 이윽고 만 깊숙한 세인트로렌스 강 어귀에 이르렀다. 그곳은 지금까지 보던 상황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사방이 온통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것은 바닷물보다 결빙이 용이한 담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동안 그쳐 있던 아이스 스노우가 비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처음에는 그저 흩날리는 보슬비 같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송이가 굵어지더니 이제는 강낭콩보다도 더 굵어져 있었다. 때문에 수백 미터 앞의 유도선 지시등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식별하기 좋아라고 선체를 붉은 페인트로 칠하고 있는데도 쌍안경으로 겨우 가물거릴 정도였다. 토키맨 한센 씨가 없다면 따라잡는 일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거 아주 굉장합니다.”

  기관장 브론슨이었다. 그는 모항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 꼬박 이틀 동안 엔진룸을 지켰다. 자칫 엔진이 말썽을 부리기라도 하면 무슨 사고로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잠시 커피나 한 잔 하라는 나의 말을 듣고 조타실에 나타난 기관장은 점점 굵어지는 얼음비를 한참이나 응시했다.

  아무래도 아이스 스톰으로 발전할 게 틀림없어 보였다. 아이스 스노우는 선상 어디라고 없이 내리는 대로 사정없이 달라붙어 결빙했다. 갑판 허공을 가로지른 데릭 붐은 금세 한 뼘이나 되는 얼음으로 뒤덮였고, 그 아래로 고드름이 대롱대롱 매달린 채 시시각각 키를 늘이고 있었다. 그 옛날 그랜드뱅크에서 강설을 동반한 허리케인을 만나기도 여러 번이었지만, 지금과 같은 광경은 비로소 처음이었다.

  기상대로부터 경보가 발령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지형의 국지적 현상으로 어쩌면 아이스 스톰으로 발전할지 모르니 방송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그 경보를 듣고 기관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이거 큰일이군요.”

  몬트리올 출신인 그는 수년 전 그 지역을 강타한 아이스 스톰을 직접 경험하였다고 한다.

  “말도 마세요. 전신주가 모두 넘어지는 바람에 꼬박 일주일 동안 정전이 되었단 말입니다. 다친 사람은 부지기순데, 병원에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으니 어떤 꼴이었겠습니까? 그 바람에 얼어 죽은 사람만도 수백 명이 넘었으니까요.”

  그러면서 브론슨 기관장은 아메리카 중서부 지역이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토네이도로 쑥대밭이 되고 있다면, 북극 지방과 인접한 캐나다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드는 자연재앙은 뭐니 뭐니 해도 아이스 스톰이라고 단언했다.

  그런데도 앞장선 블루스타 호는 여전히 얼음을 깨트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설마 그렇게까지야…….”

  그게 그 순간의 나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앞장선 블루스타 호 역시 쉽지 않은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두꺼운 빙반을 깨트리기 위해 배는 쉬지 않고 래밍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출항하기 전 1등항해사인 미스 모니카가 말한 전진과 후퇴의 반복이었다.

  두꺼운 빙반은 쇄빙선이 무작정 앞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쉽게 분쇄되는 게 아니었다. 처음 빙반을 밀어붙일 때의 쇄빙선 자세는 마치 투우사가 펼쳐들고 있는 카포테를 향해 무작정 돌진하는 황소와도 같았다. 경기를 앞두고 소는 며칠 동안이나 캄캄한 우리 속에 가두어져 있었다. 그렇잖아도 사나운 놈인데 더욱 성깔이 고약해져 자극적인 빨간 카포테를 보는 순간 더욱 흉포해진다.

  쇄빙선에 의해 밀려난 빙괴가 꼭 그 꼴이었다. 웬만한 빙반은 쇄빙선 선체가 세차게 밀어붙이는 돌파력만으로도 쉽게 분쇄된다. 그러나 두께가 3미터를 넘게 되면 쇄빙선도 힘에 부쳐한다. 부득이 쇄빙선은 뒤로 물러난 다음 재차 돌진하는 래밍을 되풀이한다. 그래도 빙반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부득이 모험적인 방법을 추가할 수밖에 없다. 곧 빙반에 올라탄 채 선내의 탱크 물을 모두 선수 쪽으로 이동시키는 방법이다. 그제야 빙반은 더 이상 버텨내지 못 하고 우지직, 몇 조각으로 분쇄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전진이 늦어지지만 그 손실은 감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같은 선체의 운용은 자칫 쇄빙선으로 하여금 평형감각을 잃게 하는 지극히도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중심을 잃고 전복한 예도 비일비재하였다는 게 토키맨 한센 씨의 말이었다.

  - 전속 전진!

  - 전속 후진!

  - 좌현 바라스트, 우현 쪽으로!

  워키토키에서는 연신 흘러나오는 캡틴 윌리스의 지시를 한센 씨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복창했다. 그럴 때면 쇄빙선 선체는 반드시 좌우를 번갈아가며 기우뚱거렸다.

  깨트려진 얼음덩이도 문제였다. 잠시만 머뭇거려도 얼음덩이는 곧 선체에 달라붙는다. 그것을 막기 위해 쇄빙선은 선수부에 추가로 설치한 스크루인 바우 스러스트를 돌려 바닷물을 선미 쪽으로 강제 배출시키면서 동시에 양현으로는 쉬지 않고 뜨거운 수증기를 뿜어낸다. 그게 에어버블링이다. 쇄빙작업이란 결국 선체의 온갖 기능을 총동원한 두꺼운 얼음판과의 한 판 돌격전이며, 그렇게 한 걸음 후퇴하고 두 걸음 전진하는 끝없는 싸움의 되풀이인 것이었다.

  워키토키를 통해 때때로 강아지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출항 임박하여 만났을 때 미스 모니카가 안고 있던 요크셔테리어가 틀림없었다.

  그러자 토키맨이 나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저놈이 미스 모니카 보디가드예요.”

  쉰 살도 넘은 그는 손질하지 않은 턱수염 때문에 까칠까칠한 인상을 주고 있었는데, 의외에도 천진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보디가드라니요?”

  나는 부쩍 흥미를 느꼈다. 남자들만의 세계인 선내에서 여자 항해사의 존재는 어쩌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별스러운 사건이 발생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앞선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한센 씨의 말은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럼요! 보디가드지요! 녀석이 얼마나 앙칼스러운지, 여우 사냥에 나선 폭스하운드는 저리가라예요. 한 번은 초사(1등항해사) 방으로 들어섰다가 아주 혼쭐이 났으니 말입니다. 무심코 문을 연 순간 녀석이 풀쩍 뛰어오르더니 순식간에 장딴지를 물고 늘어졌으니까요. 바로 그 개새끼가 말입니다. 말도 마세요, 얼마나 아팠다고요! 바지를 걷어 올리고 보니 겨우 손톱만큼 한 이빨 자국이 나 있을 뿐인데, 찔끔 눈물이 쏟아질 만큼이었으니까요. 그만하면 보디가드로는 그만이지요.”

  한센 씨가 허허 웃었다.

  그 뒤로도 강아지 낑낑거리는 소리는 자주자주 들렸다. 미스 모니카는 자신의 당직근무 동안에도 새까만 털북숭이 녀석을 품에 꼭 껴안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6


  이윽고 강폭이 좁아지면서 이제는 남쪽으로 아련하게 솟아오른 산언덕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험준하기로 이름난 노트르담 산맥의 한 자락이 분명했다. 그러나 세인트로렌스 수로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그곳 지형은 물론 눈에 익어 있었다. 구불구불한 강 언덕도, 그리고 여인의 허리 같은 먼 산등성이도 예전에 보던 그대로였다. 결빙기가 아닌 때면 폴라리스 호가 일상적으로 지나다니던 통항로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야가 온통 새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지금은 생소하기가 그지없어서 마치 난생 처음 발을 내딛은 비경(秘境)과도 같았다. 날씨가 쾌청하다면 아마도 북쪽 멀리로 퀘벡 주의 아련한 마을 불빛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세인트존스를 출항하고 벌써 나흘째를 맞고 있었다. 따지고 보니 그 동안 배는 시간당 겨우 3마일 남짓 전진한 셈이었다. 그런데도 쇄빙선 캡틴은 절대로 속도가 느린 편이 아니라고 우기고 있었다.

  나는 자꾸만 시선이 캘린더로 향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식의 속력이라면 목적지까지는 열흘도 더 걸리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걸릴지도 모른다.

  배가 곤궁에 처하여 는적거리고 있는 동안 제발 지하 원유가 바닥나면서 자연스럽게 화재가 진화되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알랭에게서 온 전화는 아직도 채굴장은 맹렬한 화염으로 뒤덮여 있으며, 그저 속수무책인 채로 폴라리스 호가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 화물 운송을 책임진 나로서는 결코 마음이 편할 까닭이 없었다.

  세인트로렌스 수로의 관문인 퀘벡 항을 50여 마일 앞둔 로카티에레 삼각주(三角洲) 부근에 이르자 배의 전진이 멈추었다. 빙반이 배 이상으로 두꺼워진 데다가 아이스 스노우가 더욱 기승을 부려서였다. 강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폭설은 시야를 차단하고 있었다. 갑판의 빙설은 무릎 높이 이상으로 차올라 있었으며, 양묘기를 포함한 선수부는 이제 그 전체가 거대한 얼음언덕을 만들고 있었다. 영하 30도 아래로 곤두박질친 한파로 하강하는 족족 아이스 스노우가 얼음으로 변하면서 아무 데나 달라붙은 결과였다. 강풍으로 옆 사람의 말도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 무렵 기상대로부터 세인트로렌스 일대에 아이스 스톰이 내습하고 있다는 뒤늦은 경보발령이 전해졌다.

  - 갓뎀!

  워키토키를 통해 블루스타 호 캡틴 윌리스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기상대 녀석들이 뒷북을 치고 있다고 소리쳤다.

  - 아주 죽일 작정인 거야! 우린 벌써 이틀 전부터 아이스 스톰 속에 갇혀 있는데 말이야!

  폴라리스 호의 레이더가 기능을 상실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갑자기 레이더가 먹통이 되었다는 1등항해사의 보고를 받았다. 나는 그만 간담이 써늘해졌다. 스코프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스코프에는 흐릿한 빛만 번져날 뿐, 아무런 타깃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톱 브리지로 올라간 헤드세일러가 레이더 안테나를 받치고 있던 지주(支柱)가 부러져 있다는 보고를 받고서였다. 손바닥만 한 넓이의 가름대 위에 쌓인 얼음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한 지지대가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빙글빙글 돌며 온갖 물표의 방향과 거리를 정확하게 알려주던 레이더가 그만 무용지물이 되고 만 것이었다. 나는 또 눈앞이 캄캄해졌다.

  헤드세일러가 서둘러 선원들을 갑판으로 내몰았다. 삽이나 곡괭이 등 모든 도구를 동원하여 연신 내려와 쌓이는 얼음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곧 갑판 여기저기에서 얼음 깨트리는 소리가 빙원의 정적을 깨트리기 시작했다.

  얼음덩어리는 웬 만큼의 망치질로도 잘 깨트려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머나 곡괭이를 마구 내려찍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얼음이 달라붙어 혹한에 노출된 강판은 사소한 충격에도 파열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손의 부족을 탓했다. 모두해서 열 명뿐인 인원으로는 선체를 뒤덮은 눈덩이를 모두 제거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1등항해사가 조타실 왼쪽 도어를 열려다 비명을 내질렀다.

  “캡틴, 이거 좀 보세요! 문짝이 통째 얼어붙어버렸습니다요!”

  아이스 스톰은 브리지 도어까지도 꽁꽁 결빙시켜버렸던 것이다. 얼음장은 조타실 출입문만 밀폐시킨 게 아니었다. 브리지 앞 유리창도, 기관실 천장인 스카이라이트도 마찬가지였다. 쉬지 않고 유리창의 얼음을 제거하는 갑판원의 방한모에는 주렁주렁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고, 눈썹에도 허옇게 서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쌍안경으로 쇄빙선의 상황을 살폈다. 그 시각, 블루스타 호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둔해졌다. 이쪽과 사정이 다를 까닭이 조금도 없었다. 쇄빙선은 항로를 막고 있는 빙괴만 공격할 줄 알았지, 선상으로 쌓이는 얼음을 제거하는 방안까지는 마련하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쇄빙선은 빙반을 공격할 때의 충격을 고려하여 일반선보다 두꺼운 강판을 사용한다. 특히 흘수선을 따라 선체 외판을 빙 둘러치고 있는 아이스벨트는 빙괴와의 부단한 접촉을 고려하여 영하 50도 이상의 초저온도 견뎌낼 만큼 두 배나 되는 두꺼운 강판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니 당초부터 자체 중량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기동이 무뎌질 건 당연한 일이다. 곧 워키토키로 전해진 말은 쇄빙선 역시 전 선원을 동원한 가운데 제빙작업이 한창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우려는 점점 커져갔다. 아이스 스톰이 그치지 않는 한 어떤 최악의 상황에 봉착할지 모른다. 이제 두 배는 전진을 멈춘 채 빙괴에 갇힌 처지가 되고 말았다. 두 배는 사방에서 욱죄어오는 압박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꼼짝없이 거대한 빙산의 한 부분이 되고 말았다. 다시 섀클턴의 인듀런스 호가 떠올랐다.

  “30피트입니다.”

  1등항해사 빌리의 보고였다.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출항할 때의 드라프트는 20피트를 조금 넘고 있었다.

  드라프트란 선체의 과부하 여부를 판단하는 흘수선 깊이를 말한다. 공선일 때는 배가 뜰 테고, 만재일 때는 물속 깊이 가라앉는다. 배라는 것은 공간이 있다고 해서 무한정 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래브라도 산 철광석을 만재하는 경우와 루이지애나 산 목화를 싣는 것은 전적으로 다르다. 황천 속에서 철광석을 만재한 배의 사고가 빈번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배에나 과적을 방지하기 위한 로드마크를 현측에다 표시해 두고 있는데, 그게 곧 드라프트다. 그런데 지금 폴라리스 호는 위험 수치인 30피트 이상의 드라프트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처럼 선체를 물속으로 가라앉힌 것은 전적으로 내려와 쌓인 엄청난 양의 적설 때문임이 분명했다.

  선체 곳곳에서 강판이 뒤틀리는 야릇한 마찰음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불과 수 미터 깊이의 추진기마저 얼음덩이에 파묻히고 말 것이다.

  “그 쪽은 어때요?”

  나는 쇄빙선 캡틴에게 이쪽 배가 항진을 멈추었다고 말한 다음 그렇게 물었다.

  - 우리라고 별 수 있나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처음의 충만해 있던 자신감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둘 사이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선원들이 휘두르는 망치 소리가 지축을 쿵쿵 울리고 있었다. 선체 곳곳에 달라붙은 얼음덩이는 망치로 내려치지 않으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겨우 한쪽을 제거하면 새로운 얼음눈이 곧 그 자리를 메우는 식이었다. 아이스 스톰은 여전히 기승을 부려대고 있었다.



  7


  재앙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재앙을 물고 온다던가. 정오 무렵, 끔찍한 사고 하나가 발생했다. 승조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갑판원 허드슨 군이 얼음에 미끄러지면서 몸의 중심을 잃고 뱃전 너머로 추락한 사고였다.

  “사람이 떨어졌다! 허드슨 군이다!”

  비명 소리를 듣고 나는 상갑판으로 뛰어나갔다.

  선원들이 주갑판 우현 쪽에 우르르 몰려 있었다.

  “사다리! 사다리를 갖고 와!”

  헤드세일러가 소리쳤다.

  두 선원이 로프 사다리를 타고 빙반으로 내려갔다. 허드슨 군은 빙반 위에 새우처럼 허리를 구부린 채 죽은 듯이 엎디어 있었다. 빙반까지는 세 길도 넘는 높이였다. 그 높이에서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음판으로 떨어졌으니 온전할 까닭이 없다.

  “조심해! 함부로 다루면 안 돼!”

  갑판장이 두 선원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곧 카고 네트가 내려졌고, 허드슨 군은 화물처럼 인양되어 살롱으로 옮겨졌다.

  두터운 방한복을 벗겨내고 보니 오른팔 전완골이 흐느적거렸다. 틀림없는 골절이었다. 빙반 위로 떨어지는 순간 팔을 먼저 짚은 탓이었다.

  의사가 없는 배에서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었다. 골절 부위에 부목을 대고, 진통제 주사를 놓는 게 고작이었다. 허드슨 군은 계속 고통을 호소했다.

  나는 곧 퀘벡 항의 코스트가드를 호출했다.

  “여기는 폴라리스 호, 위급한 환자가 있으니 곧 구조기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기대와 판이했다. 예기치 않은 아이스 스톰의 강습으로 진작부터 모든 비행이 금지된 상태에 있다는 것이었고, 얼마만큼 기상이 호전되어야 출동이 가능하겠다는 응답이었다. 아이스 스톰은 이미 캐나다 북서부 일대를 강타하면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교신하는 동안 리시버로 바람소리가 파고들 만큼 강풍이 기세를 떨치고 있었다.

  - 지금으로선 예측하기가 곤란하네요.

  언제쯤 출동이 가능하겠느냐는 나의 물음에 코스트가드가 내놓은 대답이었다. 어리석은 질문이었고, 너무도 뻔한 답변이었다.

  나는 구조기가 뜨지 못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다. 그렇군. 아이스 스톰이야. 나는 자연의 냉엄한 위력을 새삼 실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제발 부탁입니다. 환자가 너무 위독해서입니다.”

  나는 이쪽의 상황을 재차 강조하였고, 퀘벡 코스트가드는 마지막으로 기상이 호전되는 즉시 우선적으로 구조기를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선원들의 표정도 조금씩 달라졌다. 시야 속으로 산자락을 빤히 바라다보고 있는 문명세계의 한복판에서 꼼짝없이 조난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난감함이었다.

  곤궁에 처하기는 쇄빙선도 마찬가지였다. 금방이라도 전복할 듯이 중심을 잃고 좌현으로 10도나 기운 채 복원하지 않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전복을 막기 위해 온갖 장비를 갖추고 있는 쇄빙선이 맥없이 기울고 있다면 그건 결코 예삿일일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워키토키를 통해 캡틴 윌리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계속 전해졌다. 무슨 까닭으로 선체가 복원하지 않느냐는 닦달이었다. 곧 미스 모니카의 대답이 들려왔다.

  - 좌현 스케그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스케그가?

  캡틴 윌리스의 반문이 이어졌다. 그가 스케그를 모를 까닭이 없다. 미끄러운 빙판 위에서도 얼마든지 중심을 잡아내는 물개의 두 앞발처럼 어떤 경우에도 선체의 평형을 유지하게끔 용골 앞쪽에 부착한 양 날개 같은 장치를 말한다.

  목소리로 미루어 캡틴 윌리스는 결코 동의하고 싶지 않은 게 분명했다. 이렇게 되면 이제는 마음 놓고 빙반으로 돌진할 수도 없다. 빙반을 올라타는 순간 중심을 잃고 그대로 전복하고 만다.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망연한 마음이 되었다. 그렇다고 팔짱을 끼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두 배는 어차피 같은 항로를 뚫고 나가야 할 파트너인 것이다.

  나는 캡틴 윌리스를 호출했다. 필경 넋을 놓고 있을 그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 미안합니다.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캡틴 윌리스의 풀 죽은 목소리가 먼저 들려나왔다.

  “용기를 내세요. 악화된 기상 탓이니까요. 대자연의 위력 앞에 우리는 나약해질 수밖에 없지요.”

  그러자 캡틴 윌리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 모든 게 다 이놈의 아이스 스톰 때문이란 말입니다!

  “그건 그래요.”

  나는 캡틴 윌리스를 위로한 다음 블루스타 호의 상황을 물었다.

  - 스케그에 문제가 있는 모양입니다만, 곧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캡틴 윌리스의 말처럼 그로부터 얼마 후 블루스타 호가 크게 요동을 치는 것 같더니 천천히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나는 그 동안 쇄빙선에서 일어난 일을 얼마만큼 추측할 수 있었다. 그것은 쇄빙작업의 중추적 보조도구인 스케그가 블루스타 호 항해 책임자들의 판단과는 달리 파손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아이스 스톰이 그쳐야 무슨 일이든 궁리가 나올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우선은 선상에 쌓인 얼음덩이를 제거하는 일밖에 없었다. 해머와 곡괭이 휘두르는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쿵쿵, 선체가 통째로 울리면서 얼음 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날았다. 수북이 쌓인 얼음 조각을 쉬지 않고 뱃전 너머로 내던지지만 잠깐 동안 쏟아진 얼음눈이 그 자리를 다시 채운다. 참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이었다.

  뱃전 가장자리로 길게 내뻗은 동키 파이프도 완전히 얼음 속에 파묻혀 있었다. 망치질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혹한에 노출된 파이프는 조금의 충격에도 손상을 입고 만다.

  나는 잠시 망연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하늘이었다.

  - 잘 다녀오세요.

  어디선가 마들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 찰리, 아빠야! 아빠라고!

  역시 마들렌의 목소리였다.

  그래,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잠시 닻을 놓고 있을 뿐이거든. 닻을 끌어올리는 대로 우리는 다시 항해를 계속할 거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시야는 여전히 하강하는 빙설로 가로막혀 있었다.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한겨울 북반구의 낮은 짧다. 백야는 없고, 스무 시간 가까이 밤만 계속된다. 어둠은 또 하나의 장애물이었다. 어둠의 먹물만큼 공포감이 엄습하고 있었다. 대륙의 산자락을 빤히 바라다보는 곳에서 나는 고립무원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설마 죽기까지 하랴. 섀클턴은 구조되기까지 2년 가까이를 혹한 속에서 헤맸다지 않던가. 설령 고립무원의 상태라 할지라도 두 달만 견뎌내면 해빙기가 온다. 날씨가 풀리면서 얼음은 녹아내릴 것이고, 그러면 빙괴의 지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엄습하는 공포감을 털어내려고 나는 안간힘을 썼다.

  트롤선을 타고 있을 때 허리케인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아네로이드 바늘은 920헥토파스칼을 가리키고 있었고, 초속 40미터를 넘는 강풍이 쉬지 않고 선체를 강타하고 있었다. 폭우로 갑판이 물바다가 된 가운데, 밤새도록 곤두선 파도 더미와 맞서 싸웠다. 한 차례 파도를 맞으면 배는 크게 경사한 채로 맥없이 떠밀렸다. 그 같은 횡파를 거푸 두 번만 뒤집어쓰면 배는 그대로 나자빠지고 만다. 그럴 때 살아남는 최선의 방법은 가로파도를 받지 않도록 키를 돌리는 것뿐이다. 부단히 추진력을 증감시키면서 파도와 마주서기 위한 전타를 쉼 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그럴 때의 배는 한 조각 나뭇잎이다. 사투는 꼬박 이틀 동안이나 계속됐었다.

  겨우 바람이 숨을 죽인 다음 무심코 뱃전을 내려다본 나는 깜짝 놀랐다. 양현 외판 모두가 움푹움푹 패여 들어가 있었고, 앙상하게 늑골재가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파도의 끊임없는 후려치기 결과였다.

  그렇다면 결빙 속의 선체는 어떻게 될까. 섀클턴의 인듀런스 호처럼 늑골재와 선미재가 동시에 파손되면서 한순간에 본래의 형체를 잃어버리고 말 것 아닌가.

  아이스 스톰은 도무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8


  다음 날 아침, 마들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 아무 일 없는 거지요?

  마들렌은 떨고 있었다.

  “그래,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잠시 닻을 놓고 있을 뿐이야.”

  나는 어제 아내의 얼굴을 그려보며 혼자 중얼거렸던 말을 그대로 재생했다. 굳이 아내에게까지 지금 처한 최악의 상황을 전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마들렌은 좀체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 했다.

  -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이틀 너머 계속되고 있는 아이스 스톰 때문에 마을 역시 눈 속에 파묻힌 채 완전 고립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눈은 처마 높이까지 쌓여 겨우겨우 현관 앞 쪽 길을 튼다고 해도 몇 발작 앞의 경사진 비탈길 도로에는 밑동 채 꺾여나간 거목들이 수십 그루나 널브러져 있어 심지어는 동네 마트로 나가는 일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 꼭 투모로우 영화 같아요.

  마들렌의 말이었다. 나도 물론 그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는 수년 전 몬트리올을 강타한 아이스 스톰의 악몽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

  마들렌은 어쩌면 곧 전기가 끊길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건너 마을에서는 이미 전기가 끊겨 자가 발전기로 겨우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제발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마들렌은 오히려 이쪽을 걱정했다.

  - 아빠!

  그 때 나는 난생 처음으로 생소한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전혀 귀에 익지 않은 목소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재차 똑같은 소리가 들렸다.

  - 아빠!

  찰리였다. 일곱 달이 된 찰리가 난생 처음으로 말문을 연 것이었다. 셔틀 비행기를 탈 때까지도 찰리는 말을 하지 못 했다. 그런데 집을 떠난 며칠 사이에 말문을 텄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웅얼거린 말이 아빠였다.

  - 찰리가 말을 하기 시작했네요! 놀랐지요? 나도 놀랐어요. 그런데 찰리는 당신을 먼저 찾는군요.

  마들렌의 미소 짓는 얼굴이 떠올랐다.

  “찰리는 틀림없이 엄마를 더 좋아할 텐데.”

  - 아니에요. 당신이 출항한 다음 내내 아빠만 찾던 걸요. 휴가 동안 당신 얼굴을 익혀둔 게 틀림없어요.

  마들렌의 그 말에 나는 위안을 얻었다.

  결혼하고 3년이 지나도 임신의 기미가 나타나지 않았다. 마들렌은 예쁜 딸을 갖기를 원했다.

  - 당신 닮은 딸을 갖고 싶어요.

  그게 마들렌의 소망이었다. 그런데 그 소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걱정은 마들렌 쪽이 더했다. 2년을 넘어서자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몇 차례 병원을 들락거리는 동안 나도 두 번이나 동행했다.

  - 두 분 다 정상입니다.

  닥터가 웃으며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마들렌에게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런데 그 해 결빙휴가를 보내는 동안 반가운 소식을 날아들었다.

  - 사내아기래요.

  마들렌이 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래, 당신은 나의 아내이고, 우리는 부부야. 그러니 아기를 갖는 건 너무도 당연하지.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찰리였다.

  - 앙리도 걱정을 많이 하고 있어요.

  마들렌이 화제를 돌렸다.

  물론 앙리와도 몇 차례나 통화했다.

  - 도대체 기상대 놈들이라니!

  통화를 할 때마다 앙리는 그렇게 소리쳤다.

  - 진작 예보를 해 주었다면 이런 일은 없을 거 아닌가!

  그게 앙리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배는 이미 항해에 돌입해 있었고, 그리고 지금은 아이스 스톰의 한복판으로 내몰린 상황이었다.

  - 기상대 녀석들이 그러는 거야. 이게 모두 기상이변 때문이라고! 그게 말이나 돼?

  앙리의 불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 도대체 지구온난화란 게 뭐야!

  하기는 지구온난화라는 말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 지도 오래 되었다. 글쎄, 지구는 더워진다는데 아이스 스톰이라니! 쉽게 납득할 수 없는 해괴한 논리였다.

  앙리가 그걸 모를 까닭이 없다.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나 유기물의 부패로 발생한 메탄가스가 태양열을 차단하면서 결국 지구의 기온을 빙점 이하로 떨어트린다는 게 잘난 과학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증거의 하나가 바로 지금의 아이스 스톰인 것이다.

  - 암튼 조심하게나. 마들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앙리의 그 말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9


  “스노모빌을 보내겠다는데요.”

  1등항해사 빌리의 보고였다. 폭설로 헬기 출동이 불가능하자 퀘벡 코스트가드가 내놓은 궁여지책이었다.

  “빌어먹을! 차라리 개썰매를 보내라지! 그걸로 어떻게 환자를 후송하겠다는 거야!”

  나는 불안하고 조급스럽기만 한 마음을 도무지 진정시킬 수 없었다. 전 같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다행히도 새벽녘에 아이스 스톰이 조금 기세를 꺾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동이 트면서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엄청난 얼음눈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노아의 홍수가 이러하였을까. 얼마나 많은 비가 쏟아졌던지, 물이 빠지는 데만 꼬박 1백50일이나 걸렸다는 것이다. 필경은 폭우였고, 그리하여 방주를 제외한 땅 위의 움직이는 모든 생물은 꼼짝없이 익사하고 말았다. 도대체 하루 이틀도 아니고, 40주야를 폭우가 퍼부어댔으니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까지 물이 차오를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 엄청난 바닷물이 지금 아이스 스톰으로 되살아났단 말인가.

  북극여우를 본 것은 그 때였다.

  “라고푸스다!”

  북위 80도 가까운 그린란드 최북단 마을의 에스키모 출신인 붉은 수염 에리크가 소리쳤다. 예순 살의 에스키모 출신은 원래 포경선의 작살꾼이었다. 그런데 작살을 던질 기회가 없어졌다. 상업 목적의 고래잡이가 금지된 때문이었다. 부득이 새 일자리를 찾아나설 수밖에 없었는데, 그곳이 세인트로렌스 수로를 왕래하는 폴라리스 호였다.

  “뭘 갖고 그러는 거야?”

  선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붉은 수염 에리크를 따라갔다. 행여 광활한 빙원 어느 한 곳에 숨구멍 같은 것이라도 뚫려 있어서 그곳으로 일각고래의 뿔이라도 솟아올랐나 하였다. 하지만 눈발 희끗희끗한 빙원 어디에서도 시선을 사로잡을 무엇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무렵 아이스 스톰이 그치면서 북쪽 하늘로 오로라가 피어올랐다. 마치 새벽녘을 틈타 승천하는 여인의 금발 머리칼처럼 핑크색 스펙트럼을 허공 높이로 발산하고 있는 그것은 고대 신화에서의 여명의 여신 그대로였다. 배를 파묻다시피 극성을 부려댄 아이스 스톰은 그렇다면 오로라 탄생의 예고였던가.

  “저걸 보고 그러는 거야?”

  한 선원의 물음에 에리크는 그러나 완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아니다! 오로라가 아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저놈 한 마리면 위스키 두 박스는 얻을 수 있다!”

  에리크는 흥분하고 있었다. 좀체 않던 짓이었다.

  “위스키?”

  한 선원의 귀가 번쩍 뜨였다.

  “맞다, 위스키다! 위스키, 좋은 술이다!”

  붉은 수염 에리크는 당장이라도 달려갈 태세였다. 결코 실성한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하기는 에스키모 인들의 위스키에 대한 선호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베리아 툰드라 지대의 타타르 인들이 밤낮 없이 보드카 병을 옆구리에 끼고 있다면, 에스키모는 위스키라면 마누라도 저만치로 밀쳐낸다. 도대체 끝없이 펼쳐진 빙원을 응시하며 붉은 수염 에리크가 흥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여우 아냐?”

  쌍안경으로 희끄무레한 빙원을 훑어보고 난 1등항해사 빌리가 알아맞히었다. 북극여우 한 마리가 빙괴 더미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이쪽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맞다! 여우다! 북극여우, 라고푸스다!”

  붉은 수염 에리크는 손뼉까지 쳤다.

  “여름에는 잿빛 갈색이지만, 한겨울에는 지금처럼 청회색을 띤다. 털 색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저놈을 라고푸스라 부른다. 비싸다! 아주 비싸다!”

  에리크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사방이 어두컴컴한데다가 에리크 말처럼 푸르스럼한 겨울털로 치장한 놈을 분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고래잡이배 작살꾼 출신은 아주 용케도 육안으로 최고급 목도리 재료를 찾아냈던 것이다.

  “아이스 스톰, 곧 그친다! 틀림없다!”

  라고푸스를 본 에리크의 장담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라고푸스야말로 극지방의 혹한 속에서도 얼마든지 생존해낼 만큼 내한력이 월등한 ‘개’라는 것이었다. 워낙 영리하여 좀체 덫에도 걸려들지도 않을 뿐 아니라, 폭설이 내리거나 혹한이 내습할 기미라도 엿보이면 동굴 안에 틀어박힌 채 언제까지라도 버텨낼 만큼 지독한 인내심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폭설이 그치면 가장 손쉽게 먹이를 얻는 방법으로 마리띠무스(북극곰) 꽁무니를 살랑살랑 뒤쫓으며 먹다 남긴 물범이나 수염고래 살코기를 가로챈다는 것이다. 바로 그 라고푸스가 나타났으니 이제 폭설이 그치면서 기상이 회복될 게 틀림없다는 게 붉은 수염 에리크의 장담인 것이었다.

  그 사이 날은 더욱 어두워졌고, 푸른여우도 어디로인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10


  자정 무렵, 드디어 한쪽 하늘이 트이면서 한두 개씩 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붉은 수염 에리크의 예언 그대로였다. 꼬박 사흘 동안 기승을 부려댄 아이스 스톰이 그친 것이었다.

  별은 나타났다가는 곧 사라졌다. 모처럼 얼굴을 내밀려니 수줍어서일 것이다. 아니면 구름 틈이 너무 작아서인가. 게다가 구름조차 발길이 바빴다.

  별은 항해가들의 길동무다. 그것은 고대로부터 이어진 전통이자 유산이다. 나는 북극성부터 찾았다. 그것은 습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가장 찾아내기 쉬워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극성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북두칠성 일곱 별자리 가운데 하나인 ‘두베’가 구름 속의 북극성 존재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반가웠다. 모처럼 보는 별이어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발이 묶인 두 배의 상황이 호전된 것은 아니었다. 쇄빙선 블루스타 호는 다시 좌현으로 10도나 기울어진 채 조선불가 상태가 되어 있었다. 좌현 스케그의 파손이 틀림없었다. 그 결과로 쇄빙작업이 중단된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일이었다.

  워키토키를 통해 캡틴 윌리스의 당황해 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소란은 반시간 가까이나 이어졌다.

  저쪽 블루스타 호로서도 선체를 파묻다시피 한 얼음덩이를 제거하는 일이 급선무로 되어 있을 것이다. 선체 어디라고 없이 얼음덩이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 같은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기동력을 자랑하는 아이스브리커라도 기능을 잃을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가 블루스타 호는 기어코 최악의 상황과 맞닥뜨리고 만 모양이었다.

  - 키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1등항해사 모니카였다.

  - 이걸 보세요! 까딱도 하지 않아요!

  그러나 곧 이어진 미스 모니카의 비명은 나를 절망 속으로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 아이스호른이 떨어져 나갔군요!

  그 하나만으로 나는 쇄빙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배의 후진은 스크루를 역으로 회전시켜 꽁무니 쪽 바닷물을 빨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진다. 그 흡입류에 분쇄된 빙괴 조각이 함께 빨려들면서 스크루와 타에 손상을 입히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새가 빨려들면서 비행기 엔진이 파손되는 것과 이치다. 그걸 예방하기 위해 타 위 쪽에 나팔 모양의 덮개를 씌워두는데, 그게 곧 아팔 모양의 아이스호른이다. 결국 블루스타 호는 수없는 래밍의 반복 끝에 쇄빙선의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 가운데 하나인 아이스호른을 요절내고 만 것이었다. 그건 이제 전진도 후진도 불가능한 쇄빙선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였다는 절망적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패기 넘치고 자신만만한 캡틴 윌리스의 무리한 지휘가 그 같은 참담한 결과를 불러온 것이었다.

  - 엔진 스톱!

  캡틴 윌리스의 외침이었다.

  그 후로 쇄빙선은 다시 일어서지 못 했다. 좌현으로 10도가량 기울어진 그대로였다. 방금 손상을 입었다는 왼쪽 스케그와 아이스호른이 파손된 결과임이 분명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빙괴에 꼼짝없이 갇힌 처지에서 앞으로 닥쳐올 갖가지 최악의 사태가 눈앞에서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1등항해사 빌리에게 드라프트를 체크하라고 지시했다.

  “35피트입니다.”

  빌리가 보고해왔다. 그 보고는 나를 더욱 절망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절망감은 폴라리스 호의 적하기준표(積荷基準表)를 검토한 다음 더욱 증대되었다. 방금 빌리가 보고한 그 수치는 1만 톤급 화물선인 폴라리스 호의 안전항해를 위해 반드시 확보하여야 할 적재량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었다. 결국 만 사흘 동안 퍼부어댄 얼음눈의 부하가 폴라리스 호의 예비부력을 완전히 잠식해버렸다는 결론인 것이었다.

  드라프트가 가리키는 대로 선체는 이제 거의 눈 속에 파묻히다시피 하고 있었다. 얼음눈은 배에다만 야료를 부려댄 것이 아니라, 결빙한 세인트로렌스 강에도 마찬가지였다. 갑판이 높아진 만큼 수로의 빙반 높이도 함께 부풀어 올라 있었다.

  멀리서 비행음이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나 지나서였다. 비행음은 선원들의 기운을 북돋우기에 충분했다. 지금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곳이 지구의 한 변경일 뿐이라는 일종의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구조기인가 했다. 선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어디서도 기체는 발견할 수 없었다. 비행음은 1만 피트도 더 높은 적란운 속에서 들려왔던 것이다. 구름 속의 비행 물체를 발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으로 비행 물체는 구조기가 아님이 확실해졌다. 틀림없이 북극노선을 채택하고 있는 어느 평화로운 여객기일 것이다.

  비행음은 가까워지는 대신 점점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것은 여운과 함께 남쪽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세상은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다.

  앙리가 다시 전화를 해왔다.

  - 이제 화재 현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목소리에 맥이 빠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앙리의 다음 말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 말도 말아. 그 동안 세상이 얼마나 시끄러웠나? 텔레비전이고 신문이고 없이 마치 지구 종말이라도 온 것처럼 야단법석이었다. 특히 지리적으로 인접한 보스턴타임스는 편서풍을 탄 매연이 오대호를 뒤덮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어댔고! 그게 모두 폴라리스 호 탓이라는 식이었으니 미칠 수밖에는! 결국 아메리카가 나섰는데, 플로리다 주 특수전부대인 포트 베닝 기지의 비상 화약을 대체 투입하기로 했다는 거야. 운반은 대형 군수송기가 맡기로 하고.

  “그럼 오타와 쪽은 아이스 스톰이 없었다는 거야?”

  - 그래서 하는 말이네. 세상은 참 요지경 속이라고.

  “…….”

  나는 그만 입을 닫고 말았다. 지금 결빙된 세인트로렌스 강 인근은 난데없는 아이스 스톰으로 진저리를 치고 있는데, 이곳에서 겨우 500마일 남짓한 거리의 오타와 지역은 자연재앙과는 딴 세상이라는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 아메리카 군수송기가 나섰다고 해서 그걸 반갑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세인트존스를 출항한 이래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화재 현장의 처참한 모습을 떠올렸다. 원유 채굴장은 말할 것도 없고, 몰려나온 마을 주민들이 매연으로 고통 받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자신이 실화범(失火犯)이라도 된 양 안절부절 하지 못 했다. 세상사는 모두 결과로 말해진다. 그 책임을 꼭 자연재앙인 아이스 스톰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혹은 몇 가지 오판과 착오를 거듭한 쇄빙선 캡틴 윌리스에게로만 전가시킬 수 있을까.

  - 이제는 딱 한 가지다. 한시라도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것 말이다.

  앙리의 그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 날이 밝는 대로 세인트존스 코스트가드도 구조기를 띄우겠대. 가능하다면 그 편으로 나도 그곳에 갈 생각이네.

  앙리는 할 말이 많았다.

  - 허드슨 군뿐이지? 다른 일은 없는 거지? 제발 이제 더 이상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네.

  통화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멍해 있었다.



  11


  - 폴라리스 호! 폴라리스 호! 감, 잡힙니까?

  통신기가 웅웅 울었다. 날이 밝자마자 곧장 기지를 이륙한 구조기로부터 온 반가운 호출이었다. 남쪽 하늘이 희부옇게 트여올 때였다.

  “네, 여기는 CFFY, 세인트존스의 MS 폴라리스 호입니다.”

  나는 이쪽 콜사인부터 밝혔다.

  - 여기는 퀘벡 코스트가드입니다. 캡틴과 교신하고 싶습니다.

  “네, 내가 캡틴 박입니다.”

  - 고생 많으시지요? 우리는 방금 기지를 이륙했습니다.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이자 체취였다. 그 하나만으로도 절망감이 떨쳐졌다.

  나는 도착 예정 시각을 물었다.

  - 곧 도착할 겁니다. 환자는 한 사람 뿐이지요?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선박이 처한 상황을 물었다. 나는 이쪽의 상황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 아무래도 우리 소관은 아닌 것 같군요. 우리는 겨우 인명구조만 가능할 뿐입니다.

  구조대원의 그 말이 틀리는 게 아니었다. 나는 환자 후송 하나만으로도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잠시 후 구조기가 남서쪽 방향에서 나타났다. 헤드세일러가 먼저 구조기를 발견했다.

  폴라리스 호 상공에 도달한 구조기는 착륙할 마땅한 장소를 찾아내기 위해 몇 차례나 선회했다. 하지만 갑판 어디에도 내려앉을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얼어붙은 빙반 역시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로프를 내리겠소!

  결국 호버링 상태에서 환자를 달아 올리겠다는 구조기의 최종판단이 전해졌다.

  “꼭 폴라리스 호로 다시 돌아와야 해.”

  들것으로 옮겨지기 전 허드슨 군에게 내가 위로해 줄 말이라고는 그뿐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허드슨 군의 눈이 촉촉해 있었다. 가능하다면 그는 퀘벡 쪽보다는 고향인 세인트존스로 갔으면 하였다. 그래야 어머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미혼인 그에게 가족은 오직 홀어머니 하나뿐이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오래 전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쪽은 너무 멀어.”

  나는 물론 허드슨 군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었다.

  “금방 완쾌될 거야.”

  나는 허드슨 군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허드슨 군은 그렇게 배를 떠나갔다.

  다시 앙리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퀘벡 코스트가드 소속 헬기가 출동했다는 말을 듣고 세인트존스 코스트가드는 출동 계획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처음부터 출동 자체가 무리라는 의견이 분분했다는 것이다. 세인트존스에서 로카티에레 삼각주까지는 1천 마일도 더 되는 먼 거리이기 때문이었다.

  구조기 비행음이 잦아질 무렵 갑자기 통신기가 시끄러워졌다. 목소리는 아이스브리커 캡틴 윌리스의 것이었다.

  - 퀘벡! 퀘벡! 퀘벡 코스트가드!

  곧 구조기에서 응답이 왔다. 그러자 캡틴 윌리스의 하소연이 장황하게 이어졌다.

  - 여기는 아이스브리커 블루스타 호입니다. 한 가지 긴급한 요청을 하려고 합니다.

  구조대원이 무슨 요청이냐고 묻자 캡틴 윌리스는 ‘귀환하는 대로 아크티카 호에 전해 달라’고 말했다.

  - 부탁합니다. 아크티카 호가 꼭 와야 합니다. 우리는 그 배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긴급 상황입니다.

  아크티카 호라면 지금 시추선의 길을 터주기 위해 베링 해로 나간 또 다른 아이스브리커가 아닌가.

  - 본선 좌현 쪽 스케그와 아이스호른이 모두 파손됐습니다. 때문에 지금 항해불능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이대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조난에 처했다고 해도 좋습니다. 상황이 그러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아크티카 호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 라저.

  구조대원으로부터 그렇게 몇 차례나 알았다는 답변을 받고나서야 캡틴 윌리스는 겨우 통신기를 껐다.

  나는 캡틴 윌리스의 심경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가 말한 조난 처지도 틀리는 게 아니었다. 선박이 자력(自力)으로 기동할 수 없는 처지라면 그게 곧 조난이 아닌가.

  그래서 점점 절망적인 기분에 빠져든 것인지도 모른다. 도대체 여기서 베링 해가 어디냐는 것이었다. 당장 아크티카 호가 뱃머리를 돌린다고 하더라도 그 날짜가 얼마나 소요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두 배가 항진을 멈춘 지 나흘째가 되고 있었다.

  그 동안 아이스브리커의 몸부림은 가히 필사적이었다. 달라붙은 얼음덩이를 털어내기 위해 에어버블링을 수차례나 시도하였으나 아무런 효과도 얻어내지 못 했다. 그럴 때마다 뱃전 주위로 수증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캡틴 윌리스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만 모양이었다.

  오래 전 노르웨이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오슬로 교외의 한 박물관에 영구 정박한 난센의 프람 호를 떠올렸다. 프람 호는 선체를 우뚝 세운 채 지금이라도 당장 항해에 나설 것처럼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문센이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발을 디딘 모험가라면, 난센은 10수년도 더 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설계하고 건조한 떡갈나무의 프람 호를 타고 북위 87도 선에 도달함으로써 지금까지 허다한 탐험가들을 좌절시켰던 북극권 정복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북극해는 남극과 달리 연중 내내 만년빙으로 뒤덮여 있어서 선박에 의한 도전은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죽음의 개썰매라는 아이디타로드 식으로 하루 종일 달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개썰매의 최고 종이라는 알래스카의 말라유트나 시베리안 허스키도 며칠만 달려도 얼음 조각에 발바닥이 찢겨져 피투성이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개는 주저앉는 법 없이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끝없이 광활한 빙원을 달린다. 그렇게 죽어나간 개가 얼마라던가. 허다한 탐험가들의 북극탐험이 실패로 끝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 사정을 안 난센은 한 가지 기발한 착상을 떠올렸다. 북극해의 거대한 얼음은 한 자리에 못 박혀 있지 않고 해류를 따라 부단히 압류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해안에서 발원하여 북극을 향해 도도히 흘러가는 지류의 하나를 이용하기로 작정했다. 그는 탐험선을 아예 북극으로 떠밀려가는 빙반 위에다 걸치기로 작정하고, 거기에 적합하게 떡갈나무로 배를 만들었다. 마치 상륙정처럼, 배가 쉽게 얼음을 걸탈 수 있도록 밑바닥을 넓고 납작하게 설계한 희대의 착상이었다.

  그 예측은 정확했다. 모항인 크리스티안샌드 항을 떠나 말 그대로 유빙항해를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프람 호는 북위 80도 선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였고, 동료인 요한센과 함께 나머지를 개썰매에 의지하여 20일 만에 북위 87도 선에 도달함으로써 당시로서는 인간이 이룩한 북극의 최고점을 정복했던 것이다.

  떡갈나무와 강철-.

  내가 망연하게 프람 호를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떡갈나무로 만든 프람 호는 건조되고 1백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원형 그대로를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게 떡갈나무라는 재질 덕분인가. 그렇다면 쇠로 만들어진 배는 어떨까. 하지만 자꾸만 고개가 내저어졌다. 해안 바위 틈서리에 좌초하여 비스듬히 드러누운 난파선은 불과 수년만 지나면 본디의 모습을 잃고 시뻘건 고철 덩어리로 변하고 말았지 않던가.

  폴라리스 호 역시 결빙이 없는 계절만을 택하여 겨우 세인트로렌스 강을 오르내리던 볼품없는 선박에 불과하지 않은가. 게다가 건조되고 20년도 더 된 노후선이다. 나는 결빙으로 인한 항해불능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망연한 생각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 마음은 좀체 떨쳐지지 않았다. 배는 인적도 없는 적막한 변방으로 밀려나 있었다. 해빙기가 오기까지 배는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시야 속의 빙반이 무한히 광활하고 아마득하게만 느껴졌다. 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빙반이 지구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인 것이었다. 몇 날 며칠을 걸어가더라도 문명세계는 없고, 다만 눈보라 치는 하얀 은세계만 펼쳐져 있을 것이라는 괴이한 생각이 나의 영혼을 꽁꽁 묶여 놓고 있는 것이었다.

  “캡틴께서는 참 행복하시군요.”

  토키맨 한센 씨였다. 브리지 윙에서 망연히 빙반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끝없이 펼쳐진 은세계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만 하루 동안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두 배의 항진이 멈추자 그의 할 일이 없어져버린 탓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지요?”

  나는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캡틴께서 부인과 통화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내를 무척 사랑하고 계시더군요.”

  나는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는가 싶었다. 먼 동양에서 온 나와 프랑스인 여자가 어떻게 만났느냐는 따위의 야릇한 질문을 하고 싶다면 대답을 하는 대신 뺨이 얼얼해지도록 주먹맛이나 야무지게 보여줄 작정이었다. 그래서 퉁명하게 찰리 이야기부터 꺼냈다.

  “찰리라고 아들놈도 있습니다. 그저께 처음으로 나를 아빠라고 부르더군요. 이제 일곱 달 됐습니다.”

  그러자 순수 바이킹 후예가 분명한 토키맨 한센 씨가 그의 진심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럼요. 그래서 너무 너무 부럽습니다요.……”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얼른 마음을 고쳤다. 공연히 남을 의심한 내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물었다.

  “그런데……한센 씨에게도 가정이 있을 텐데요?”

  토키맨이 살짝 웃었다. 그 웃음에 허망함이 깃들어 있었다.

  “네에……물론이지요. 있고말고요. 한데…….”

  “한데요?”

  “캡틴께서도 아시다시피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 속이 아닌가요?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세상은 자꾸만 엉뚱하게 돌아가니 말입니다. 가령 가족이라는 것이 말이지요.……”

  나는 난간에서 몸을 돌려 천천히 한센 씨를 마주 바라보았다.

  “아, 아닙니다. 모두 쓸데없는 말입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듣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공연히…….”

  “그럼 내가 먼저 얘길 할게요. 나는 결혼하고 3년이나 지나 겨우 찰리란 놈을 얻었습니다. 무어랄까, 찰리는 부부 사이를 이어주는 끈 같은 것이더군요. 아니, 끈끈한 접착제 같다고나 할까, 요컨대 녀석 때문에 우리는 더욱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내가 만약 생피에르에서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여기 있지도 않을 겁니다. 고국으로 돌아갔거나, 아니면 다른 배를 타고 다른 바다로 나가 있거나……. 그런데 지금 이렇게 생피에르에 살면서 캐나다 국적의 이 배를 타고 세인트로렌스 수로를 운항하고 있습니다. 전혀 꿈도 꾸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더욱 행복한지 모릅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다고나 할까요?”

  “캡틴께서는 틀림없이……멋진 미래를 얻어낼 것입니다. 이래 뵈도 나는 사람을 좀 볼 줄 알거든요. 하지만…….”

  “하지만?”

  “네, 하지만입니다. 하지만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인생이란 게……”

  한센 씨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어렵게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시작했다.

  “나에게도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노르웨이 수도인 오슬로가 고향이라는 한센 씨는 천생 뱃사람이었다. 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 누군가가 바이킹 무리 속의 한 사함일 게 틀림없다고까지 말한 그는 그래서 배를 타는 것만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의 전부라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 선택에 불만이 있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바다야말로 노력한 만큼 거짓 없는 보상을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도 한창 젊었을 때는 유럽의 여러 항구를 왕복하는 화물선을 탔다고 했다. 몇 달 동안의 항해를 끝내면 연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오곤 하였는데, 집 마당으로 들어설 적마다 몰라보게 아들이 부쩍부쩍 자라나 있곤 하여 그 한 가지 보람과 희망만으로도 인생은 재미를 붙이고 살 만한 값어치가 있더라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인생은 있는 것이지만, 지금 한센 씨가 말하는 그것과 나의 그것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한데 그 놈이 말이지요……무어랄까, 나를 그만 배반하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한센 씨는 벌써 세 개비 째의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는 지포라이터를 켜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엄지손가락으로 줄날바퀴를 돌렸으나 워낙 혹한이어서인지 잘 점화가 되지 않았다.

  “뭐랄까요? 세상은 참으로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이런 게 있지요. 사람 사는 곳이면 반드시 해코지를 하고 평화를 깨트리려는 악마가 기웃거리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사람은 물론 혼자 살 수 없지요. 이웃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마을 같은 것도 생기면서 나중에는 큰 도회로 발전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곳에 반드시 악마가 기웃거린단 말입니다. 그 악마란 것이……악마가……내 아들놈을 해코지하고 말았단 말입니다.”

  “…….”

  한센 씨의 푸념은 이어졌다.

  어느 날 귀항한 부두에서 그는 틀림없이 마중을 나와 손을 흔들고 있어야 아들 디크를 찾아 두리번거렸으나 끝내 실패했다. 그를 맞는 아내의 표정도 웬일인지 이전 같지 않았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디크는?”

  참지 못한 한센 씨가 아내에게 물었다는 것이다.

  “수업이 있는가 봐요.”

  아내의 대답이었지만, 얼버무리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더욱 의아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대학 진학을 앞둔 때라지만 이미 수업도 끝나 있을 시간이었다. 어쨌든 집으로 돌아가면 얼마든지 진실은 밝혀질 것이었다.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모처럼의 귀항인지라, 친구들과 어울려 한 잔 맥주로 목을 축인 다음 이슥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는데도 그 시각까지도 집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어떻게 된 거야?”

  그는 아내에게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아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평소 차분한 성격이어서 아무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모르는 사이에 쉽게 발을 빼내기 어려운 함정에 빠져 있더라는 것이었다. 어느 때는 얼굴에다 멍 자국을 남기고도 있었고, 또 어느 때는 팔뚝이나 허벅지에 칼자국 같은 것을 내기도 하였다. 가슴이 철렁하였으나 그녀가 아들을 제어하기에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마약 따위에 손을 대면서 이권을 다투는 몹쓸 조직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있음을 안 것은 이미 모든 것이 회복 불가능한 한계를 넘어선 다음의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는 것이다. 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 디크가 조직에서 발을 빼려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결과는 너무도 처참했다. 어느 날 디크는 수산물 가공공장이 밀집한 주차장 옆 공터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때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모든 게 다 제 자리에 있는데, 그런데도 마치 남의 집 같더란 말입니다.”

  한센 씨가 다시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가 담배 연기를 내뿜을 때마다 입김도 함께 번져났다. 며칠째 손질하지 않은 턱수염에는 서리가 하얗게 맺혀 있었다.

  “모든 게 다 제 잘못이었습니다. 제가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셈이니까요. 어쨌거나 아이에게는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더 요긴한가 싶습니다.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 뱃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모두 낙제생이 분명합니다. 이해하십시오. 저의 이 말은 꼭 찰리를 두고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이대로 오도가도 못 하는 빙반 위가 말이지요. 저는 조금도 조갑증이 나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차라리……이대로 얼음 속에 영원히 파묻혀 버렸으면……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새 그의 눈가가 축축해져 있었다.

  “……”

  그 때문이었을까. 날이 밝기 전, 캡틴 윌리스로부터 토키맨 한센 씨를 보내달라는 전갈이 왔다. 선체를 뒤덮은 얼음 제거작업에 한 사람의 손도 아쉽다는 것이었다. 하기는 언제 다시 아이스 스톰이 덮칠지도 모른다.

  “항해 준비가 되는 대로 돌아올게요.”

  빙반으로 내려서기 전 불행한 사내가 말했다. 그 동안 한 치는 더 자라났을 그의 수염에는 여전히 서리가 하얗게 맺혀 있었다. 그가 매달린 뱃전 로프 사다리에는 주먹만큼 한 얼음 덩어리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조심하세요.”

  헤드세일러가 주의를 주었다.

  갑판을 올려다보며 한 번 손을 흔들어 보인 다음 한센 씨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치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먼 나라로 떠나는 사람 같았다.

  발을 옮겨 딛을 때마다 그의 부츠 밑에서 꽈리 소리가 들렸다. 쇄빙선까지는 3백 미터 남짓한 거리였다. 그 사이 어디엔가 크레바스가 똬리를 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지독한 혹한이라도 강 밑바닥까지 통째 결빙할 수는 없는 일이다. 틀림없이 하저(河低)로는 강물이 흐르고 있을 테고, 그러면 어디에든 숨구멍은 트여 있기 마련인 것이다.

  나는 어쩐지 나의 면전에서 눈물을 보인 한센 씨를 앞으로는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괴이한 생각을 했다.



  12


  아크티카 호와 관련한 메시지가 온 것은 구조기가 기수를 돌린 지 두 시간도 더 지나서였다. 아크티카 호가 소속한 본사로부터였는데, 베링 해 작업이 조만간 종료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먼저 전해졌다. 그런데 날짜가 문제였다. 세인트로렌스 수로에 닿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한 달은 더 소요될 것이라는 지극히도 비관적인 말이었다.

  베링 해로부터 세인트로렌스 수로까지는 두 가지 뱃길이 있는데, 하나는 알래스카와 북미대륙 서안을 거슬러내려 파나마 운하를 통항한 다음 다시 북대서양을 북상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독자적으로 쇄빙작업을 계속하며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방법인데, 두 뱃길 모두 비슷한 항해일수가 소요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진작 예측한 그대로였다.

  - 갓뎀!

  캡틴 윌리스는 뱃전 난간을 잡고 흔들며 마구 욕설을 퍼부어댔다.

  - 아주 해빙기까지 기다리라는 거군!

  그 말을 전해들은 나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해빙기 운운하던 반갑지 않은 말이 현실로 다가온 듯한 절망감이었다.

  참다못한 캡틴 윌리스가 다시 본사에다 새로운 요청을 제의했다. 쇄빙선 본래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파손된 선체 밑바닥의 보조 장치를 수리할 지원팀을 파견해 달라는 게 그 요지였다.

  “스쿠버다이빙이 가능한 엔지니어라야 합니다.”

  캡틴 윌리스가 악을 썼다. 손보아야 할 스케그와 아이스호른 모두 배 밑바닥에 장착된 것을 고려한 말이었다. 거기에다 선체를 둘러싸고 있는 얼음을 제거할 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본사 간부는 당연히 화를 냈다. 사람 구하기가 말처럼 쉬우냐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본사 간부는 캡틴 윌리스를 매우 나무라고 있었다. 이의 모든 책임이 적절하지 못한 캡틴의 운용술에 기인한다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배에서 끌어내리고 싶지만, 마땅한 후임자를 찾아내지 못해 참고 있다는 언급도 있었다. 곤궁에 처한 쪽이나 그렇지 않은 쪽이나 모두 마찬가지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 도대체 손해가 얼만 줄이나 알아? 꼼짝없이 클레임을 물어야 한단 말이다!

  회사 간부는 지금까지 아마도 몇 번은 계산기를 두들겨댔을 것이다.

  - 그게 말이 됩니까? 도대체 보통 아이스 스톰이었냐고요!

  캡틴 윌리스도 지지 않았다.

  결국 회사 간부는 마지못해 조선소에다 인력을 수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날이 저물 때까지 반가운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 간부는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으므로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 갓뎀! 세상은 모두 무관심한 놈들뿐이라니까! 다른 사람이야 죽든 말든!

  캡틴 윌리스의 푸념이 워키토키로 나에게까지 들려왔다.

  나는 백설로 뒤덮인 끝없는 빙원을 바라보며 다시금 망연하면서도 처절한 마음이 되었다. 두 배는 필경 조난선 처지에 다름 아니었다. 두 배는 순식간에 빙괴에 둘러싸이면서 이제는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궁지에 처하고 말았다. 말 그대로 해빙기까지 겨울잠이나 자야 할 처지가 된 것이었다.

  처음부터 무리한 항해였다. 아이스 스톰 예보를 게을리 한 기상대를 원망할 처지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토록 자신만만해 하던 캡틴 윌리스를 나무랄 일도 아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윌리스의 말처럼 남이야 죽든 말든 자신만 안전하고 편하면 그만인 뭇 세상 사람들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고개를 완강히 가로저었다. 이것은 운명이다. 대자연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신도 아닌 인간이 운명을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설령 최악의 경우에 처하더라도 죽는 일이야 없을 것 아닌가. 가령 배를 포기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구조기는 언제든 호출할 수 있다. 게다가 퀘벡까지는 겨우 50마일 남짓한 거리다. 아니 북쪽으로는 눈 더미에 파묻혀 있을 라말바이에라는 읍내도 있다. 도보로 행군하더라도 며칠 걸리지 않는 거리다.

  그러자 나는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가 샘솟아났다. 스스로를 포기하는 행위야말로 가장 비겁하고 무책임한 일 아닌가. 이것은 필경 극복해야 할 시련이다. 시련은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삶의 귀중함을 깨우치며 결코 좌절하지 않겠다는 인간의 굳건한 도전정신이 필요할 때다.

  나는 다시 캡틴 윌리스를 호출했다. 응답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빠져나가 있었다.

  “윌리스 씨, 우리는 지금 시련에 봉착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걸 극복해야 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

  캡틴 윌리스가 짜증을 냈다.

  “우리에게는 의지가 있습니다. 그걸 확인하자는 겁니다.”

  “당신은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겁니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의지 말입니다.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힘을 합치자고요?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말입니까? 어찌되었든 우리는 지금까지 힘을 합쳐 왔습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이 났는데……가령 지원팀이 온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루? 이틀? 아니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지요. 당장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닌데, 어느 누구가 제 발로 얼음 구덩이로 뛰어들려 할까요? 당신 말처럼 세상은 온통 무관심한 녀석들뿐입니다. 처지를 바꾸어보면 더 분명해지지요. 그래서 우리는 더욱 뭔가를 해야 합니다.”

  “도대체…….”

  “아니 이제 확실해졌습니다. 이쪽 선원 모두를 그 쪽으로 건너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캡틴 윌리스가 슬그머니 억양을 낮추었다.

  “그래서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제 기상은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힘을 모아 선체에 달라붙은 얼음덩어리를 하나하나 제거하자는 겁니다.”

  “뭐라고요?”

  “무엇보다도 당신 배의 기능부터 살려내자는 겁니다. 지원팀은 언제든 도착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작업을 하려 해도 선체가 얼음 속에 파묻힌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힘을 합치자는 겁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자꾸 악화될 뿐이니까요.”

  “그건 그래요.”

  나의 제의를 캡틴 윌리스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13


  작업은 아이스브리커의 선수 우현 쪽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선체는 좌현으로 기울어진 그대로였다. 따라서 우현을 압박하고 있는 빙괴를 제거해야만 최소한의 평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작업은 곡괭이와 해머를 휘두르는 지극히도 원시적인 것이었다. 사방으로 얼음 조각이 튀어 올랐다. 얼음이 갈라지고 깨트려지는 소리가 빙원을 메아리치며 끝없이 퍼져나갔다.

  작업은 더디기만 했고, 끝도 보이지 않았다. 1백 미터도 넘는 길이의 대형선 선체를 압박하고 있는 빙괴를 제거하는 일이니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선체는 빙반 깊숙이 박혀 있었다. 아이스 스톰 탓이었다. 작업은 수로 밑바닥의 강물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되어야 했다.

  “굉장한데요.”

  캡틴 윌리스가 멋쩍게 웃었다. 선체를 파묻고 있는 빙반의 두께가 엄청나다는 이야기였다.

  “드라프트가 40피트를 넘으니까요.”

  나도 맞장구를 쳤다.

  무언가를 생각하던 눈치더니 캡틴 윌리스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나는 이 친구가 무슨 말을 하려는가 싶었다.

  “뭐랄까……말하자면 우리가 힘을 모아 무엇을 한다는 건……그건 확실히 용기를 준다는 사실 말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주 절망적이었습니다. 눈을 감아도 세상이 온통 눈밭처럼 하얗게만 보이더군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절망에 빠지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법인데 말입니다.”

  이번에는 내가 그렇군요, 하고 동의했다.

  “그 동안 나는 틀림없이 누군가가 나를 골탕 먹이고 있다는 생각밖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틀림없이 누군가가!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았습니다. 모두가 다 내 잘못이라는 걸 말입니다.”

  나는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미스 모니카가 보온병을 들고 다가왔다. 그녀는 벌써 몇 번째나 차를 끓어왔다.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나는 장갑 낀 손으로 컵을 받았다. 장갑은 나무 막대기처럼 꼿꼿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고마워요.”

  미스 모니카의 미소는 아름다웠다. 아니 어느 여자라도 그럴 때는 아름다울 것이다.

  “보세요, 배에도 여자는 필요하답니다.”

  멀리서 곡괭이를 휘두르는 작업원들에게 차를 나눠 주기 위해 저만치로 멀어져간 미스 모니카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캡틴 윌리스가 웃었다.

  “본인이 들으면 싫어할 텐데요?”

  “아니죠. 그건 내가 할 말입니다. 저놈 강아지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캡틴 윌리스는 짓궂은 데가 있었다. 마침 쇄빙선 블루스타 호 상갑판의 난간 사이로 요크셔테리어 종이 귀를 쫑긋 세운 채 머리통을 내보이며 뚫어져라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스 모니카를 따라잡고 있는 게 분명했다.

  “요컨대 개라는 건 말입니다……영악하다고나 할까, 좀 엉뚱한 데가 있어요. 가령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난 개가 그렇다는 얘깁니다.”

  내가 흥미를 갖기 시작하자 그는 더욱 열을 올렸다.

  “그렇게 자라난 개는……자신이 개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어느 동물심리학자들이 떠들어댄 겁니다만, 가령 태어나면서부터 사람한테서 자라난 개는 자신을 돌보아 준 사람을 제 어미로 여긴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지금까지 자기를 돌보아 준 여자가 아기에게 젖꼭지를 물리기라도 하면 개새끼는 자신의 사랑이 도둑맞는다며 앙칼지게 대든다는 겁니다. 아기를 할퀴기도 하구요. 그게 도대체 말이 되기나 합니까?”

  “그건 좀 끔찍하군요.”

  캡틴 윌리스가 다시 요크셔테리어 종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 좀 보세요. 저놈만 하더라도 미스 모니카를 어미로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단 말입니다.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거든요.”

  “당신은 분명 개를 좋아하지 않는군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난 개새끼라면 아주 질색입니다. 처음 미스 모니카가 배에 올라왔을 때도 그랬습니다. 처음 승선할 때부터 개새끼를 안고 있었으니까요. 그래 내가 물었지요. 그렇게 정을 주다간 출항하면 어떡할 거냐고요. 그러니까 뭐란 줄 아십니까? 얘도(강아지를 가리키며) 시맨카드(선원수첩) 쯤은 갖고 있다고요! 아이고, 그만 한 방 맞고 말았지요.”

  우리는 웃었다.

  그 시각 앙리는 세인트존스를 떠나 퀘벡에 도착해 있었다.

  “허드슨 군은 지금 수술실에 있다.”

  그는 아이스 스톰이 그치자마자 다른 무엇도 제쳐두고 맨 먼저 퀘벡으로 넘어간 것이었다.

  “혼자 내버려둘 수야 없지 않나?”

  그게 뉴잉글랜드 라인의 오너인 앙리의 말이었다.

  “허드슨 군 어머니는?”

  “사고 소식을 듣고 그만 몸져누워 버렸다네.”

  그랬었구나.

  “아무튼 이쪽은 걱정할 거 없네. 퇴원하는 대로 곧장 휴가를 보낼 거니까.”

  나는 앙리에게 이쪽의 사정을 알려 주었다.

  “지금 빙반을 깨고 있는 중이네. 지원팀이 도착할 때까지 말이다.”

  앙리는 제발 몸조심하라고 신신 당부했다.

  통화를 마치고 작업장으로 돌아가던 나는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쇄빙선 갑판으로부터 좌현 뱃전 너머로 길게 데릭 붐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끄트머리 리프팅 후크로는 앵커가 단단히 매달려 있는 광경이었다. 틀림없이 후갑판에 따로 보관되고 있던 예비 앵커였다.

  그 광경을 보고 나는 그게 캡틴 윌리스의 의도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챘다. 곡괭이나 해머 따위의 도구로는 작업의 진척이 원활하지 않자 그는 그 같은 기발한 방안을 강구해낸 것이었다.

  “다들 멀찌감치 비켜서!”

  캡틴 윌리스가 주의를 준 다음 수신호와 함께 소리쳤다.

  “다운 앵커!”

  참으로 어느 항해용어에도 존재하지 말이었다. 순간 허공 높이 매달려 있던 육중한 앵커가 빙반을 향해 수직으로 낙하했다.

  쿠웅!

  300킬로그램의 육중한 앵커 크라운이 내리꽂히자 커다란 분화구가 만들어지면서 빙반이 몇 조각으로 갈라졌다.

  “와아!”

  선원들의 함성이 터졌다.

  그 효과는 대단했다. 곡괭이나 해머로 내려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갈라진 틈 사이에 지렛대를 박아 젖히면 빙반은 아주 쉽게 조각났다.

  “역시 쇄빙선 캡틴다워.”

  나의 칭찬에 캡틴 윌리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모두 캡틴 박 덕분입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투정만 부리고 있었을 테니까요.”

  갑자기 캡틴 윌리스가 사슴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벗더니 손을 쑥 내밀었다.

  “우리는 친구입니다.”

  그의 손은 작고 차가웠다.

  윈치 조작은 아무래도 헤드세일러 몫이었다. 그는 마스트 하우스에 올라앉아 능숙하게 윈치를 조작했다. 천천히 앵커를 허공 높이 감아올린 다음 브레이크를 풀면 쇠뭉치는 그대로 육중하게 수직으로 꼬나 박혔다.

  “조심해!”

  캡틴 윌리스가 거푸 주의를 주었다. 자칫 앵커의 낙하지점이 어긋나기라도 하면 엉뚱하게도 선체 외판이 손상을 입고 만다.

  반나절의 작업 끝에 드디어 선수 쪽 우현 뱃전으로 숨구멍이 트이면서 그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떼어낸 얼음 조각은 멀리 내던져졌으므로 다시 아이스 스톰이 퍼붓지 않는 한 숨구멍이 메워질 걱정은 없었다. 분쇄된 얼음 조각이 저만치에서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윌리스는 이제 선미 쪽 차례라고 말했다. 그 때는 아이스버블링 만으로도 얼마든지 배를 둘러싸고 있는 양현의 얼음을 제거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14


  다음 날 아침, 블루스타 호 본사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캡틴 윌리스가 요청한 대로 지원팀을 헬기편으로 보내겠는 내용이었다.

  “댕큐!”

  캡틴 윌리스는 본사 간부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 하나만으로도 궁지에 몰린 캡틴 윌리스가 그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도착은 언제인가요?”

  그만큼 캡틴 윌리스의 마음은 바빠 있었다.

  “두어 시간 후면 도착할 거야.”

  “아이구,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캡틴 윌리스는 송수화기에다 대고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렸다.

  “곧 온답니다.”

  통화를 끝낸 캡틴 윌리스가 나를 보고 말했다.

  “빌어먹을! 이제 고생도 끝입니다.”

  입김을 뿜어내며 캡틴 윌리스는 연신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 기운들 내자고요! 솜씨 좋은 에이에스(A/S) 팀이 곧 온다니 말입니다!”

  캡틴 윌리스가 쇄빙선 바깥 빙반 위로 죽 늘어선 선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시 앵커 크라운이 빙반을 내려찍는 작업이 재개되었다. 앵커 크라운이 찍어내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빙반이 갈라지는 소리가 빙원을 메아리쳤다.

  열 시경, 드디어 반가운 비행음이 들렸다. 본사 간부와 통화를 끝낸 두어 시간 후였다.

  “헬기다! 지원팀이 온다!”

  한 선원의 말에 캡틴 윌리스가 직접 쌍안경으로 남서쪽 하늘을 살폈다.

  “맞다! 지원팀이다!”

  캡틴 윌리스가 확인했다.

  그러나 상공으로 접근한 헬기를 본 캡틴 윌리스의 안색이 확 변했다.

  “아니, 저건 휴즈500 아냐?”

  캡틴 윌리스가 단번에 기종을 알아맞히었다. 소형 기종인 휴즈500은 겨우 두 명만 탈 수 있으며, 오늘날에는 광활한 농장에서 겨우 농약이나 살포하는 정도의 용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틀 전 허드슨 군을 구조해 간 퀘벡 코스트가드 소속의, 열 명도 탈 수 있는 시코르스키 기종과 비교한다면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 하는 아주 소형기였다.

  “저 자식들, 무슨 시찰 나온 거야, 뭐야?”

  캡틴 윌리스의 얼굴이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과연 그의 판단을 옳았다.

  휴즈500은 쇄빙선 블루스타 호 가까이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 동안 얼음눈은 헬기가 내려앉아도 충분할 만큼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아직도 메인 로터가 맹렬하게 회전하는 가운데, 한쪽 문이 열리면서 안전모를 쓴 사내 하나가 빙반으로 내려섰다.

  “수고 많습니다.”

  사내가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두 선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눈썰미가 있었던지, 사내는 첫눈에도 두 캡틴을 알아보았다.

  캡틴 윌리스가 엉거주춤 내민 사내의 손을 맞잡았다.

  “내가 블루스타 호 캡틴이오.”

  캡틴 윌리스는 퉁명했다.

  “저는 퀘벡 조선소 현장 감독관입니다.”

  “그래서요?”

  억양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그로서는 당장 전문 수리 팀이 도착하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는데, 감독관 혼자 나타났으니 반감이 생길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감독관이라고요.”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 감독관을 요청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말하다 말고 캡틴 윌리스는 빙반 위에 꼼짝없이 결빙 상태에 들어가 있는 두 척 배를 손가락 끝으로 번갈아 가리켰다.

  “……무엇보다도 아이스브리커의 기능부터 살려내자는 겁니다. 그래야만 항해를 재개할 수 있을 것이니까요. 그런데…….”

  캡틴 윌리스의 말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본사로부터 들었고, 우리가 일을 맡았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먼저 현장에 나온 것입니다. 얼마의 인력이 필요한지, 또 작업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일에는 다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이거 무슨 설교를 하시는 겁니까? 우리는 지금 한 시가 급한 상황에 있단 말입니다. 얼음덩이에 갇힌 지 벌써 나흘째란 말입니다. 이만하면 우리 사정을 이해하시겠지요?”

  두 사람의 언쟁은 끝이 없었다.

  “자, 그만하면 됐습니다. 빨리 상황을 파악해 보시지요.”

  내가 나서서 말리고 난 다음에야 두 사람은 겨우 언쟁을 그쳤다.

  “아이구나!”

  감독관은 비명부터 질렀다.

  “세상에! 아이스브리커가 얼음에 갇히다니!”

  감독관이 비아냥댔다. 다행히 캡틴 윌리스는 저만치서 담배를 빼내 무느라 그 소리를 듣지 못 했다. 만약 들었다면 큰 소동이 벌어졌을 것이다.

  감독관은 한 시간도 넘게, 천천히 두 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다음 엄숙하게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힘들겠습니다.”

  그 말을 캡틴 윌리스도 들었다.

  “아니, 뭐라고요?”

  캡틴 윌리스가 악을 썼다.

  “이것 보세요. 배를 둘러싼 얼음 깊이가 10피트도 넘습니다. 도대체 이걸 무슨 재주로 제거합니까? 얼음부터 제거해야 고장 난 개소를 고칠 게 아닙니까?”

  감독관은 느긋했다.

  “그래서 전문가를 부른 게 아닙니까?”

  눈치가 빠른 캡틴 윌리스는 이미 일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이런 작업을 우리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나섰다.

  “무슨 기발한 방법이 있을 텐데요?”

  그러나 감독관의 말은 기대 밖이었다.

  “해빙기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뭐라고요?”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이지만, 이처럼 얼음에 파묻힌 배를 끌어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드디어 캡틴 윌리스의 감정이 폭발했다.

  “당장 꺼져버려! 꺼져버리라고!”

  뒷걸음을 치던 감독관이 헬기 쪽으로 몸을 돌리기에 앞서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그럼 모두……수고들 하세요.”

  그렇게 휴즈500은 현장을 떠났다.

  “망할 녀석이라니!”

  캡틴 윌리스는 한참이나 분을 참지 못 했다.



  15


  끝없이 펼쳐진 빙원으로 다시금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아니 빙원은 하루 종일 어스름 속이었다. 아마득한 빙원 끝자락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바람도 거세어졌다.

  나는 이쯤으로 오늘의 작업을 중단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캡틴 윌리스도 동감이었다. 선원들이 작업 도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북극곰이 나타난 것은 그 때였다.

  “봐라! 마리띠무스다!”

  붉은 수염 에리크가 소리쳤다.

  “뭐라고?”

  선원들은 미처 에스키모의 말을 알아듣지 못 했다.

  “곰이다! 북극곰이다!”

  붉은 수염 에리크가 재차 소리쳤다. 선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쪽으로 쏠렸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곰을 발견할 수 없었다.

  “어디야?”

  사방을 살피며 헤드세일러가 물었다.

  “저쪽, 얼음 언덕이 있는 곳!”

  붉은 수염 에리크가 손가락으로 빙원 한쪽을 가리켰다.

  “맞다! 북극곰이다!”

  선원들도 소리쳤다.

  두 배로부터 겨우 몇 백 미터 남짓한 거리로 집채보다도 큰 몇 개의 얼음 언덕이 보였고, 그 사이로 거대한 몸집의 북극곰 한 마리가 몸을 일으켜 세운 채 입으로 거품을 뿜어내고 있었다.

  곰은 자신을 해치려고 하지 않는 한 좀체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 웅성거리는 사람 소리가 들리면 먼저 조용히 그 자리를 벗어난다. 예기치 않게 맞닥뜨린 경우에도 자신을 해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대로 조용히 몸을 돌린다. 그래서 죽은 듯이 엎디어 있는 것도 공격을 피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동물학자들은 조언한다. 반면 틀림없이 자신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는 확신이 서면 그 때는 돌변하여 어디까지든 추격해 온다. 그렇게 하여 어마어마한 앞발로 끝장을 낸다. 단 한 차례의 가격으로 웬만한 동물은 살점이 발겨지고 뼈가 으스러진다. 특히 새끼를 거느린 경우에는 상상 이상으로 포악해진다.

  주변을 살폈으나 다행히도 새끼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미스 모니카가 안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앗! 미스 모니카, 위험해!”

  먼저 비명을 지른 것은 나였다. 요크셔테리어 종을 품에 안은 1등항해사 모니카는 멋모르고 계속해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모니카! 조심해! 북극곰이다!”

  나는 거듭 주의를 주었다. 그제야 눈치를 챈 미스 모니카가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천천히 북쪽으로 돌렸다.

  꼭 슬로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다. 먹이를 좇을 때의 최고 속력이 50킬로미터를 넘는다니까 몇 백 미터 거리는 북극곰에게 한순간의 일이었다. 올림픽 단거리 선수도 따라잡기 불가능한 속력인 것이다. 북극곰은 어쩌면 미스 모니카가 안고 있는 요크셔테리어 냄새에 혹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순간 영원히 얼음 속에 갇혀도 좋다던 바이킹의 후예 한센 씨의 외침이 들렸다.

  “미스 모니카, 가만 계세요! 움직이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는 다짜고짜 곰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센 씨 안 돼!”

  그건 의외에도 붉은 수염 에리크의 목소리였다. 누구보다도 라고푸스나 마르띠무스의 생태와 습성을 잘 알고 있는 작살꾼이었다.

  소리친 붉은 수염 에리크가 한센 씨 쪽을 항해 곧장 내달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의 손에는 기다란 막대기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빙괴 조각을 젖혀내던 쇠 지렛대였다.

  “아니, 에리크가!”

  나의 고함소리가 그의 등을 쫓아갔으나 아무 소용없었다.

  붉은 수염 에리크가 한센 씨의 두어 걸음 뒤에서 우뚝 달리기를 멈추었다. 두 사람의 그 같은 행동은 북극곰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니 어쩌면 극 지대에서 가장 야성적이며 육식성 동물인 북극곰의 공격 본능을 자극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미스 모니카에게로 향하고 있던 북극곰의 시선을 두 사람에게로 돌려지는가 싶더니 곧 허연 거품을 문 윗입술을 더 격렬하게 떨어댔다. 사방으로 입김이 번져났다.

  곧 두 길도 넘는 육중한 몸을 일으켜 세운 북극곰은 허연 거품을 문채 두 앞발로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뒤집어 올린 입술 아래로 상아 색깔의 커다란 송곳니가 드러났다. 송곳니는 상하 각각 두 개씩이었다. 들소의 질긴 가죽도 찢어발긴다는 무시무시한 이빨이었다. 커다란 송곳니를 내보인 채 푸르르 입술을 떨어대자 침방울이 고드름처럼 가슴팍으로 타 내렸다. 부릅뜬 두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몇 차례 거푸 가슴을 두들겨댔다. 상대에게 위협을 과시하는 몸짓이 틀림없었다. 그게 북극곰의 전형적인 공격 직전의 자세인 것이었다.

  “위험하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 동안 붉은 수염 에리크는 한센 씨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천천히 뒤로 끌어당겼다. 한센 씨는 뒤뚱뒤뚱 뒤로 물러났다.

  이제 북극곰과 맞서게 된 붉은 수염 에리크는 천천히 쇠 지렛대를 움켜쥔 오른손을 어깨 위로 가져갔다. 그 옛날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포악하다는 말향고래의 등덜미에 작살을 내리꽂던 당당하면서도 우람한 자세 그대로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과 맹수 사이의 거리는 여남은 발자국으로 좁혀져 있었다. 선원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북극곰이 가슴 두들기기를 멈추는가 싶더니 시선을 뒤로 돌렸다. 두 마리 새끼 곰이 얼음 언덕 사이로 모습을 보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결국 자신의 가슴팍을 두들기고 입술을 뒤집어 보인 야수는 두 마리 새끼를 가진 어미곰이었던 것이다. 어미곰은 두 마리 새끼와 함께 부빙에 의지하여 그린란드로부터 뉴펀들랜드까지 떠밀려 온 게 분명했다. 그리고 먹이를 찾아 헤맨 나머지 엉뚱하게도 결빙한 세인트로렌스 강에 다달은 게 틀림없었다.

  이윽고 어미 북극곰이 앞발로 빙반을 내려치듯 하더니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두 사람을 향해 재차 돌진을 시작했다.

  “앗!”

  선원들 모두 비명을 질렀다.



  16


  폴라리스 호가 생피에르 섬으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 달도 더 지나서였다.

  당초의 항해는 당연히 실패로 끝났다. 휴즈500 편으로 현장을 답사한 감독관은 지원팀 투입을 거부한 게 틀림없었다. 본사 간부는 그 결과를 전하면서 이제는 베링 해에 머물고 있는 아크티카 호를 기다릴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 결과 결빙한 세인트로렌스 강에 좌초되었던 두 배는 한 달이나 지나 현장에 도착한 캐나다 원자력 추진선 아크티카 호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겨우 귀항 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 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쇄빙선 블루스타 호의 캡틴 윌리스를 위로해 주었다. 그는 블루스타 호가 수리를 마치는 대로 북위 80도 선상의 퀸에리자베스 제도로 북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여기서는 할 일이 없으니까요.”

  그 동안 결빙해 있던 세인트로렌스 만이 모두 풀렸다는 말이었다.

  “우리 언제 한 잔 하십시다.”

  그의 우정 어린 제의였다.

  “그럽시다.”

  맞잡은 두 손은 한참 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아이스 스톰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자연의 위력이 그만큼 위대하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이나 지나 나는 폴라리스 호가 정박하고 있는 세인트존스로 나갔다. 새 항해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때는 3월 중순, 항해에 나서기에는 더없는 봄날이었다.

  그 날 나는 방금 퀘벡에서 돌아온 붉은 수염 에리크와 재회했다. 그는 꼬박 한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퇴원하자마자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폴라리스 호에 재승선하기 위해 때맞추어 모선을 찾아온 것이었다. 선원들 모두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앙칼진 요크셔테리어 보디가드를 안은 미스 모니카의 모습을 본 것도 그 때였다. 그녀는 얼음세계에서 풀려나자마자 곧 바로 퀘벡 병원으로 달려가 붉은 수염 에리크를 위로했던 것이다.

  살롱에 마주 앉은 나는 붉은 수염 에리크가 그토록 즐겨하던 위스키를 손수 따러 주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네.”

  그 동안 나는 무척 궁금해 있었다.

  “말씀 하시지요.”

  아끼듯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 붉은 수염 에리크가 되물었다.

  “마르띠무스를 만났을 때 이야긴데……에리크 씨라면 그 때 얼마든지 먼저 북극곰을 해치울 수 있었지 않았나? 왜 머뭇거린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처럼 장기간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나는 그 이유가 지금도 궁금하다네.”

  내가 다시 잔을 채워 주었다.

  “그건……새끼 곰 때문이었지요! 캡틴 박께서도 아시다시피 나는 얼마든지 놈의 목덜미에 작살을 명중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까부터 얼음 더미 뒤쪽에서 두 마리 새끼 곰이 꼼지락거리는 것을 보았단 말입니다. 어미를 죽이면 새끼는 어떻게 되나요? 내가 머뭇거린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

  “만약 녀석이 공격해오지 않았다면 나는 끝까지 작살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구요. 그 때문에 한센 씨가 그만…….”

  붉은 수염 에리크가 말을 멈추었다.

  그랬었구나. 나는 가슴 속으로 찡한 감동을 받았다.

  그 날, 붉은 수염 에리크는 돌진해 오는 어미 북극곰을 겨우 서너 발 앞에다 두고 쇠 지렛대를 날려 정통으로 가슴팍에 명중시켰다. 하지만 한센 씨는 무사하지 않았다. 작살을 맞은 채 돌진을 멈추지 않은 북극곰에 깔리면서 그는 북극곰이 마지막으로 휘두른 억센 발톱에 그만 회복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고 만 것이었다.

  “이제 마리띠무스를 만날 일도 없을 거야.”

  나는 정겹게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길게 내뻗은 방파제 너머로 언제나 보던 대서양 바닷물이 망망하게,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찰리와 나란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랑하는 아내를 향해 천천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끝>



약력 


   주문진 출생

   주문진수산고 강원도립대학 원양산업학과 졸업

   과학기술부장관명의 해양학사 취득

   한국해양대학교 국제대학 동아시아학과 석사과정


   제 1회 <계간문예> 영목신인상〈시〉등단

   제12회 바다의 날 해수부장관 표창
   제11회 한국해양문학상 대상〈 해양시〉

   제13회 한국해양문학상〈해양소설〉

   제 4회 해양문학상 <해양소설>


   해양시편〈진화하지 못한 물고기〉<대왕고래를 만나다>

   해양중편〈쇄빙항해>〈바타비아로 가는 항로〉<남서대서양>

   해양수필<바다 위에서>


   어선1급, 상선1급, 동력레저 조종1급,

   소형선박 항해사, 요트 조종자격, GOC


  (주)태영교역 선장 / (현) 북태평양 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