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셨는가요?

 

한경희


사랑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사랑은 청춘의 꽃처럼 상징화 되어 있지요. 늙은이들의 연애담은 코미디 정도일 뿐 대중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집안의 가장, 한 세대를 정리하고 새롭게 연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서 그럴까요. 아니면 늙음에 대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일까요. 농경사회에서 노장을 아주 지혜로운 인물로 권위를 부여했다면 오늘날은 어떤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화는 질병쯤으로 여겨지지요. 누구든 젊어보이고자 하는 열망을 돌아보세요. 그렇게 늙는 일이 다들 싫은가 봅니다. 그래도 늙지 않고 살 사람 하나 없지요. 사람이 늙는다고 연애와 사랑도 시들해질까요. 숙제입니다.

물론 이 영화의 주제는 사랑이죠. 그것도 노년의 사랑을 중심에 두죠. 세월의 파도를 함께 잘 넘어온 한 쌍의 노부부와 연애가 막 시작되는 할배, 할매 이야기가 중심을 이룹니다. 노부부야 좀 도덕적인 버전입니다. 부부이야기를 뺄 수 없어 넣어둔 건 아닐까요. 가족단위에서 부부를 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가족이 많지만 보편적인 가족을 무시할 수 없지요. 제가 봐서는 노년의 연애가 중심을 이룹니다. 이미 결혼 안에서 나누는 사랑은 개인의지 외 결속과 책임감이 강하게 작용하지만. 개인의 사랑만이 둘의 관계를 지속시키는 연애이야기가 좀더 박진감이 넘치죠.

영화에 등장하는 노부부의 이야기는 일상과는 좀 차이가 나죠. 치매를 앓는 아내에게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남편이 나옵니다. 주차장 관리인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남편은 아내를 봐줄 사람이 없어 늘 출근할 때마다 대문을 자물쇠로 잠금니다. 밥이며, 목욕이며, 일상에 필요한 모든 일을 남편이 대신하는 거죠. 만약, 이 구도를 바꿔 치매 걸린 남편과 희생하는 아내가 나오면 영화적인 맛이 살아지겠지요. 어떤 통계자료에 따르면 남편보다 부인이 병든 자신의 반려자를 위해 간호하는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하네요. 그 일상의 비율을 넘어선 것이 영화일까요. 아무튼. 영화에서 남편은 너무나 아내를 사랑하지요.

그러던 어느날, 고물상이 건네준 자명종 시계를 믿고 늦잠을 자고 정신없이 출근하면서 대문을 잠그지 못하죠. 그때부터 아내의 외출이 시작됩니다. 쌀쌀한 날씨에 맨발로 잠자던 차림 그대로 다니기 시작합니다. 치매는 사람을 여리고 순수한 세계로 안내하기도 하죠, 출근하는 남편 뒤에서 잘 다녀오라는 손짓까지 하지요. 그리고 자유로운 여행아닌 여행을 나서고 뒤늦게 남편은 아내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거지요.

이 치매든 아내가 다행히 약수터 가는 할배에게 포착되어 집을 찾아가게 되지요. 이 할배는 오토바이에 이 사람을 태우고 집을 찾아나서지만 좀처럼 쉽게 찾지를 못하지요. 동네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고불고불 이어지는 골목을 두루 돌아다니고, 오토바이 뒷자리 앉은 사람은 마냥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그저 자신의 남편으로 착각하고 딱 붙잡고 그 자유로운 공기를 마음껏 마시지요.

오토바이를 모는 할아버지는 혼자되신지 꽤 오래되지만 아들, 손녀, 며느리와 함께 사는 비교적 행복한 사람이죠. 늘 아침 일찍 우유배달을 다니지요. 오토바이로 동네 언덕을 오를 때면 리어카에 폐휴지를 모아서 끌고 힘겹게 오르는 할머니를 만나지만 무심결에 지나다닙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넘어지면서 리어카 끄는 일을 도와주다가 그만 마음이 할머니 쪽으로 옮겨갑니다. 할머니를 돕겠다고 빈 우유곽을 모아 갖다 주기도 합니다.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맞춰 골목에서 기다리기도 하고요. 그러다 데이트신청을 편지로 하는데, 글쎄 할머니는 글을 읽을 줄 몰라 주차관리하는 할아버지가 대독을 해 줍니다. 그러자니 시간이 너무 늦었지요. 그때까지 할아버지는 기다리고. 기다리지 않은 척을 하지만 배에서는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였지요.

이 둘의 사랑이 어쩌면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한때 부부로 살던 사람들이 자신의 반쪽과 사별하고 혼자 남아서 노년을 보낼 때 맞이하는 사랑을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요. 늙어서 하는 연애를 망측하게 바라보는 우리의 관념 때문이겠지요. 칠십대에 십대소녀를 좋아했던 괴테처럼 연애를 할 수야 없지만 서로의 형편을 너무나 잘 헤아리는 사람끼리 사랑하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요. 나이가 무슨 상관이나 있을까요. 자식들에게 얼굴이 안 서는 일일까요.

영화에서야 예쁜 손녀가 할아버지 연애의 상담사가 되지요. 사회복지사인 손녀에게 이름도 없는 송씨 할머니의 이름을 지어 매달 연금을 타게 하기도 하고, 덕분에 할머니 생일까지 알게 된 할아버지는 마음을 전할 기회를 잡지요. 할머니의 생일날 케잌에 촛불을 켜고 머리핀을 선물로 주면서 ‘그대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 전에 죽은 아내의 무덤을 찾아가 ‘그래도 괜찮은가’를 묻고 허락을 받았나 봅니다. ‘당신’은 먼저 간 아내만을 위한 호칭이라 ‘그대’라고 부른 것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제일 두려운 건 헤어지는 일인가 봅니다. 사랑의 다툼도 헤어지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일테고요. 사랑은 함께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럴까요. 치매아내를 수발하던 남편도 너무 늦게 발견한 아내의 암으로 동반자살을 합니다. 자식들에게 부담도 되기 싫고 암으로 아파하는 아내를 위해 마지막 결단을 내린거죠. 둘이 함께 가는 길은 외롭지 않을까요. 그것이 죽음이라도. 송씨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결별을 선언합니다. 죽음이 둘을 갈라놓는 일을 지켜볼 수 없어서죠. 첫 아이 출산하고 집나간 낭군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까지 죽었던 자신의 아픈 경험을 다시 체험하고 싶지 않아서일까요. 그리고 평생을 혼자살다 황천길이 멀지 않는 시간에 사랑을 느끼는 건 기쁨만큼 불안했던 거지요.

그 불안에 할아버지는 어쩌지 못해 화를 내고 할머니가 선물로 준 자랑스런 가죽장갑도 내팽개치지만 시골 고향까지 할머니를 데려다 줍니다. 복사꽃이 환한 고향에서 둘은 포옹을 하지요.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지요. 노년의 연애는 죽음이라는 두려운 시간 때문에 몹시 망설여지는 거 같아요.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훨씬 덜 외롭지 않았을까요. 그 죽음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할머니는 여전히 할아버지와 연애 중이겠지요. 영화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나라고 가면서 멈추죠.

노년에 만나는 연애가 청춘들의 연애보다 못할 게 뭐 있나요. 참 아름답고 감동적이죠, 그 솔직하고 진지하게 배려하는 마음씀씀이가 곱지요. 청춘들 보다 성숙해서 속도는 좀 느릿느릿하지만 마음이야 다를 게 하나 없지요. 노년의 연애담에 다들 눈물, 콧물 짠하게 흘리는 이유가 그런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