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를 생각하다)


   강태규


   우리에게 지리적으로 가까운 북한보다 남미의 북단 카리브해 연안의 섬으로 있는 쿠바는 우리에게 멀리 있기도 하지마는, 이념적 자기검열만 극복할 수 있다면 균열조짐이 보이는 신자유주의 추종국가 보다는 역설적으로 더 나은, 지속가능하거나 예측 가능한 미래가 더 잘 보일 수 있다고도 생각된다.


   이미 부자를 위한 의료정책으로 가는 미국이나 한국의 방향과는 달리 쿠바의 우수한 일차 진료체계는 우리들에게 이미 번역서(『또 하나의 혁명, 쿠바의 일차의료』화이트보드와 브랜치 공저)를 통해 자세하게 소개되기도 하였다. 더구나, 지난 달, 서울에서는 쿠바의 대표적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의 작품들이 성황리에 전시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자리 잡던 1959년, 쿠바 국민들은 쿠바혁명을 통하여  ‘라울 피델 카스트로’ 형제에 의해 오랜 통치를 지금까지 받고 있다. 그런 동안에 우리는 자유, 군정, 문민, 열린, 참여 등의 정치를 통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이념적으로 더 미국적으로 변하였으나, 쿠바는 오히려 반미국적으로 유지 또는 진화하여 왔다.

그러는 사이 다큐영화 '식코'에 의해 조롱받는 미국의료체계와는 달리 현재로서는 미래대안적인 쿠바식 일차 진료체계의 성공적 운용은 국가총생산량이니 인민(국민)의 행복지수를 제쳐두고서라도 최소한 신자유주의 자체의 균열이 분명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비록, 경제봉쇄와 생필품 부족은 있다손 치더라도 최강의 군사력, 외교력의 막강한 힘을 가진 미국을 곁에 두고 버티고 있는 저력은 놀랍기도 하다.


   칼럼기고가겸 출판인 이규항의 표현대로, 인민이라는 좋은 단어가 공산주의 국가에서 더 많이 번역되어 사용된 탓으로 국민이라는 표현에 익숙한 우리에게 또 역설적으로 전체주의적 단어처럼 독해되기도 한다.

즉, 국 + 민, 또는 국 > 민, 으로 해독되기도 한다. 동무라는 좋은 단어가 친구로 대치되어버린 처지와도 같다.


   작년 방북으로 ‘곰프’의 석방유도에 성공한 카터 전 대통령의 탁월한 중재력도, 이번 3월, 쿠바법원에 의해 국가전복혐의로 구금된 ‘그로스’를 석방시키지는 못했다.

도박판으로 비유하자면, 쿠바가 북한 보다는 맞대면하기에 어려운 상대로 읽혀지기도 한다.


   21세기는 문화정치 또는 문화전쟁의 시대가 분명해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는 엄마친구 아들만 보아도 그 집안을 대략 가늠하며 상징적 기호에 규정짓기에 더욱 익숙해지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 아바나의 명물 말레콘, 센트로 아바나에 가득한 쿠바의 야구열광, 프라도 거리, 유기농산물이 넘치는 주말 장터, 헤밍웨이 박물관, 체 게바라 기념관 등으로 쿠바적인 문화적 기호가 넘친다. 

또한, 쿠바혁명에 가담한 한인 2세, 임은조씨( 헤로니모 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946년 한인 최초로 아바나 법학대학에 입학하여 수학하던 중, 체 게바라,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에 선봉을 선 바 있으며, 혁명 성공후 식량사업부에서 30년간 일하며 차관까지 역임하였다고 한다. 


   쿠바를 생각하며 우리와 북한을 떠 올린다.

우리 문화의 기호들을 나열해 본다. 그 기호들에 우리 국민, 아니 인민들은 열광하고 동의하며 살고 있는가.

더 귀한 것들이 천대받고 있는 듯 하다.

큰 도시 중심가의 환자로 차고 넘치는 뻔뻔스러운 대형 병원건물과 간판들을 보노라면.

온갖 기교를 다 부리며 우아하게 쓰여진 영어 간판들을 보노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