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잠




                                                이 홍사





오토바이 뒤에 수레를 달아서 네 명이 마주보고 탈 수 있는 툭툭이 몇 대가 호텔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택시를 대신하는 툭툭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이미 책과 인터넷으로 훑어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창밖의 풍경을 한참 내다보았다.

-참 감칠맛이 있겠다.

창밖을 내다보던 내 입에서 흘러나온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그 말에는 나가고 싶은 충동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었다. 툭툭이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볼까? 흥정을 하고 타야 된다던데....... 나는 조금 망설였다. 그 때 누군가가 방문을 노크했다. 열어보니 문우정이라고 자기 이름을 거듭 얘기하던 한국인 가이드였다. 불편한 게 없냐고 건성으로 물었다. 아주 만족한다고 하자 에어컨 때문에 감기에 걸려서 가는 여행객이 더러 있다며 에어컨의 적정 온도를 조절해주고, 한국뉴스가 나오는 곳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맞춰주고 얼마간의 공동경비와 정해진 가이드 팁을 받아서 나가다가 돌아섰다.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저어~ 혹시 혼자 주무시기 뭣하면 아가씨를 불러드릴까요? 골프 치러 오는 팀들은 거의 다 아가씨들을 불러서 자거든요.

생각지 못한 뜻밖의 제안이었다. 나는 조금 어색한 말투로 화대가 얼마냐고 되물었다. 아가씨를 부르면 아침 여섯시까지 같이 자야하고 아가씨 화대와 호텔에 두 명이 사용하는 방값을 지불해야한다고 그 금액을 일러주었다. 가이드가 소개비로 얼마를 뜯어먹는다고 해도 턱없이 싸다. 콜걸의 화대를 알아보면 대충 그 나라의 물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가 있다.

-오늘은 제가 생리중이거든요. 필요하면 내일 말씀드리지요.

-생리대는 많이 준비하셨나요? 까딱하면 야자수 잎을 이용하는 불상사가 생깁니다.

가이드도 워낙 많은 사람을 상대한 터라 만만치 않았다. 웃으면서 그렇게 농담을 하고 가이드를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짐을 풀 생각도 없이 다시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야자수가 가로수로 서있는 그 거리가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냥 잤다가 나중에 돌아가서 돌이키면 아까운 시간이라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


이번 여행은 순전히 셋째 딸 진이 덕분이었다. 덕분이라기보다는 진이 때문이었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겠다. 그러니까 지난해가 된다. 12월 30일 새벽이었다. 내가 ‘나 홀로 여행’ 계획을 세우고 인터넷을 뒤져 앙코르 와트로 여행 신청을 한 것이.

구정 전의 마지막 ‘땡처리, 라는 타이틀을 앞세우고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자를 모집하는 여행사의 스폰서링크를 찾아내고 바로 망설임 없이 회원가입을 하고 앙코르 와트로 가는 일정표를 훑어보았다. 가격은 저렴했다. 모든 일정의 경비가 캄보디아에 가는 일반인의 편도 비행기 삯보다 조금 넘어설 가격이었다. 패키지라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자유여행이나 배낭여행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가격이었다. 그 가격으로 왕복 비행기 삯과 사박오일의 호텔비와 식대, 그리고 유적지 입장료까지 포함되어 있다. 나는 바로 신청을 했다. 출발일은 바로 닷새 후였다. 신청을 하고 확인을 클릭하니 바로 메일이 들어왔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메일을 확인하니 여행사에서 날아온 자동 메일이었다. 여행의 가부 결정은 24시간 이내에 전화로 통보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막연히 기다리기에는 너무 초조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고 유명 대학에 가는 것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지만 떨어지고 보니 서운했다. 서운한 건 둘째로 치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지방이지만 특목고 3년간 장학생으로 다닌 아이다. 수능을 좀 잘못 쳤다고는 하지만 그 대학에 수시입학에 떨어지고 또 정시 가군의 상위50%만 합격자를 발표했는데 그 학과에 또 떨어진 것이다. 물론 합격자 발표가 다 난 것도 아니고 또 그 대학이 아니더라도, 그 성적이면 서울 중상위권 대학에 충분히 갈 수가 있고 웬만한 지방대의 사 년 장학생으로 다닐 수 있는 성적이었다. 딸아이는 학교보다 인기 학과에 몰리는 경향이 진하게 두드러지고 있고 하향지원하는 학생들이 있으니까 등록하는 걸 보아서 나머지 50%의 합격자를 발표한다는 그 대학의 모집 전략을 설명하고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고 태연해하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하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건 그 대학의 전략이고 떨어질 것에 대비한 나의 전략은 전무했다. 합격자 발표가 난. 그날 저녁에는 연말이라 밖은 흥청거리고 나오라는 친구들과 후배도 있었지만 나갈 기분이 아니었다. 딸애는 제 기분을 숨기고 친구를 만난다며 나가고 아들 녀석이 들어오지 않은 밥상머리에서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말없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반주로 소주 한 병 반을 비우고 취기에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실컷 잤다고 생각했는데 일어나니 열두 시가 되지 않았다.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참으로 어중간한 시간에 깨어난 것이다. 취기가 조금 남아있었지만 다시 잠이 들기 힘들 것 같았다. 거실로 나오니 언제 들어왔는지 집안의 골칫거리인 아들 녀석이 그 때까지 컴퓨터에 붙어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딸 셋을 낳고 아들을 낳겠다고 벼르고, 기도가 효험 있다는 절에 가서 불공까지 들여 계획생산을 해서 얻은 아들 녀석이 이렇게 속을 섞이고 있다.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던 녀석은 고등학교 1학년에서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고 있다. 녀석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일찍 자라고 고함을 질러 녀석을 방으로 들여보내고 입고 있던 트레이닝에 방한파카를 걸치고 사무실로 내려가서 컴퓨터를 켜고 앙코르 와트로 가는 패키지여행에 나 홀로 여행을 계획하고 덜컥, 신청하고 확인을 클릭 한 것이다. 

그리고는 한 숨도 자지 못하고 내가 가보아야 할 미지의 나라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훑어보았다. 이곳저곳 훑다가 어느 사이트로 들어가 그 나라의 인사말 정도는 수첩에 적어가며 공부를 했다. 밤을 꼬박 새우고, 내 밥줄인 중기들이 현장으로 일을 나가는 것을 일일이 확인하고 사무실 문을 닫고 올라가서 아침을 먹었다.

밤을 새워 시리고 따가운 눈을 붙이려고 이부자리를 펴고 누우니 여행사에서 여권 사본을 팩스로 보내라는 전화가 왔다. 최소 출발 인원이 7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신청자가 7명은 넘어선 모양이다. 혼자 가느냐고 여행사의 여직원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나 홀로 여행이라고 대답하고는 부랴부랴 옷을 다시 챙겨 입고 사무실로 내려가 여권을 사본으로 만들어 팩스로 송부하고 그곳의 호텔에서 방을 혼자 쓰는데 대한 얼마간의 추가비용까지 불러주는 계좌로 송금했다. 맘이 변하기 전에 후딱 송금해야지, 하며 길 건너에 있는 은행에 가서 송금을 하고나서 아내에게 여행계획을 말했다. 아내는 혼자서 자알~ 다녀오라고 비꼬듯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지만 아파트가 아닌 상가주택이라서 집을 비울 수가 없다. 아내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 저녁이면 기사들이 들어오고 마당에 설치해 놓은 주유기에 유류를 주입하러 들어오는 중기 때문에 집을 비울 수가 없다. 사무실과 집이 같이 있어서 불편한 점이 그것이다. 어쩌다가 야간작업을 마치고 늦게 들어오는 중기가 있으면 밤 열시고 열 한 시고 간에 사무실 문을 닫을 수가 없이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다.

아내에게 허락 같은 것은 필요 없다. 그렇게 통보만 하면 된다. 여태 그런 식으로 거의 삼십 년을 살아왔다. 그렇게 통보만 하고 배낭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열대지방이라 이 겨울에 반팔 티셔츠와 여름바지를 찾아달라고 아내에게 부탁을 했다. 아내는 가려면 아직 닷새나 남았는데 성질 급한 것 하고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귀찮은 내색 없이 옷장을 뒤져 입을만한 여름옷을 챙겨서 내 방으로 디밀었다. 나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 수첩에 필요한 물건들을 적어가며 꼼꼼히 배낭을 챙겨 윗목에 놓아두었다. 사실 여행보다 더 좋은 것은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다. 그 가슴 설레는 시간이 더 즐겁다. 막상 집을 나가면 고생하는 것이야 뻔히 보이지만 준비하는, 가슴 설레는 그 시간을 한껏 즐기는 것이다. 메고 떠나야할 배낭을 보며 설렘과 미지의 세계에 혼자 간다는 기분 좋은 두려움을 즐긴다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겠다.

공항에서 미팅시간은 비행기 출발 두 시간 전이다. 메일로 날아온 일정표에는 그렇게 되어 있었다. 일찌감치 버스 터미널로 가서 그 시간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는 인천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표를 미리 예약하고 은행에 들러 후진국이라 일 달러짜리를 많이 섞어서 환전까지 했다. 필요한 여행 경비는 얼마 되지 않겠지만 선택 관광도 있고 해서 여윳돈으로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금액을 환전 했다. 그리곤 심심하면 인터넷으로 그 나라의 역사와 언어에 대해서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닷새! 언제나 기다림은 지루한 법이다.

닷새를 그렇게 설렘과 지루함으로 보낸 후 나는 배낭을 메고 버스 시간에 맞추어 터미널로 나갔다. 인천공항까지는 버스로 네 시간이 소요된다. 새벽잠이 깨면 할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노래나 듣고 책을 보겠다고 읽다가 만 소설집 두 권과 흘러간 노래를 다운받은 MP3를 준비한 것이다. 내 귀에는 MP3가 꽂혀 있었다. 버스에 오르니 일단은 이름 모를 해방감이 느껴졌다. 작업현장에 대한 문제도 배차에 관한 사항도 집안일도 모두 잊고 오로지 여행을 즐기다가 오리라고 맘을 다잡았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못 먹는 건 딱 두 가지가 있다. 없어서 못 먹는 것과 안 줘서 못 먹는 것, 이 두 가지만 빼면 뭐든지 다 잘 먹는다. 물론 배낭에는 아내가 기어이 넣어준 고추장이 들어있지만 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내가 준비한 먹을거리는 사탕 두 봉지가 건부다. 물론 내가 먹을 것이 아니고 그곳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하나씩 주려고 준비한 것이다.

공항의 약속장소인 A카운터의 1번 테이블로 가니 여행사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몇 명이 출발하느냐고 물어보니 17명이 동행이라고 했다. 거의가 가족 단위이고 나 홀로 여행자는 정말 나 홀로라고 했다. 그 사람들이 걱정하는 그게 맘에 쏙 들었다. 혼자나 둘이 온 떨거지들이 있으면 성가시게 될 것만 같았다. 또 불특정의 인간이 한 잔하자거나 내가 불편해할까 조심하는 그 태도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것 같았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혼자 즐기다 오는 것이 훨씬 편할 것이다. 17명이라고 했지만 동행 가이드는 없고 현지에서 가이드가 나오는 모양이다. 개별로 티켓을 끊고 출국심사를 마치고 면세점을 들러 필요한 물건을 사고 정해진 게이트 쪽으로 갔다.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라고 해봤자 담배 한 보루가 전부다. 씨엠립으로 가는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는 게이트로 갔다. 그곳으로 가니 탑승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같이 가는 일행이 누구인지 알 턱없다. 다섯 시간의 비행이다. 내가 그 동안 할 일이 무엇인가? 지독한 골초인 내가 할 일은 바로 흡연이다. 다섯 시간 동안 흡연욕구를 참자면 금단증상이 나타난다. 항상 비행기를 타면서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왜 새로 만드는 여객기에는 흡연실을 만들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속으로 불평을 한다.

공항에 있는 흡연실을 줄기차게 들락거리며 목구멍이 따갑도록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흡연실에 있다가 출발 오 분 전에 마지막 단배를 끄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벨트 사인 램프가 켜지자 바로 기내식이 나왔다. 밥을 먹고 일찍 자두라는 얘기다. 자는 편이 속이 편하다. 기내식을 먹고 나면 흡연욕구가 나타나기에 나의 경우로 말하자면 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자려고 눈을 감고 있는데 승무원들이 그 나라의 입국신고서와 비자 서류를 나누어 주었다. 받아들고 보니 글씨가 너무 작아 도대체 알아볼 수가 없었다. 손가방에 돋보기를 찾았지만 없었다. 그렇게 꼼꼼히 챙긴다고 챙겼지만 휴대용 돋보기를 빠트린 것이다. 지나가는 스튜어디스에게 돋보기가 있냐고 물었다. 없다는 대답과 함께 자기가 적어주겠다며 쪼그려 앉아 내 여권을 보며 적어주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비자 서류에 붙일 증명사진이 없어진 것이다. 분명히 사진을 여권의 비닐 커버 주머니에 꽂아 두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아무래도 티켓을 끊으면서 흘렸거나 출국 심사대에서 흘린 모양이다. 난감했다. 여행사에서 증명사진 한 장을 준비하라는 소리를 누누이 들었는데 이런 낭패가 없었다. 지갑을 뒤져 보았다. 넣은 기억이 없는 증명사진이라곤 있을 턱이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궁리하다가 적성검사 기간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운전면허증의 사진을 오려서 붙이면 되겠다는 생각에 머리 위 선반 아래 달린 콜 버튼을 누르고 스튜어디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국내 여객기라서 다행이다. 나는 쫒아온 여승무원에게 가위가 있느냐고 물었다. 가위는 없는데 가위를 어디에 사용하려냐고 되물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면허증을 보여주니 상관없다고 했다. 그곳 공항에 내려서 여권에 있는 사진을 스캔해서 붙이면 된다고 했다. 그런 방법도 있구나, 생각하며 고맙다고 했지만 그래도 번거로울 것 같아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비행하는 내내 증명사진이 마음에 걸려 어디선가 흘린 그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열대지방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코를 막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을 따라서 공항으로 들어가니 내가 선택한 여행사의 피켓을 든 현지안내원이 나와 있었다. 여권을 거두는 그에게 사진이 없다고 말하고 비자피를 여권과 함께 지불하니 상관없다고 저쪽 통로로 나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입국심사도 없이 그냥 인원만 체크하고 단체 여행객들이 나가는 열려진 통로로 나가서 기다렸다. 눈치를 보니 인원수만 파악하고 입국심사는 단체로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전전긍긍하던 사진은 문제가 되지 않겠다.

괜히 맘고생만 했구먼!

안도의 한숨을 쉬고 출구 쪽으로 나가니 바로 공항 주차장이었다. 국제공항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웬만한 기차역 정도의 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주차장 입구 재떨이 앞에서 담배부터 빼물었다. 지독한 골초라서 담배 한 대로는 그 동안 참았던 니코틴 보충이 되지 않았다. 연거푸 두 개비를 피우고 나니 피켓을 든 가이드를 따라서 같은 여행사로 온 일행들이 오합지졸, 우르르 뭉쳐 나오는 게 보였다. 후딱 담배를 끄고 그들의 몇 걸음 뒤에 따라 붙었다. 우리가 타고 갈 중형버스가 주차장에 시동을 걸고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에는 에어컨이 틀려있어서 시원했다. 비행기에서 두 시간을 뒤로 돌린 손목시계를 보니 밤 열 시가 좀 넘었다. 두 시간의 시차가 있으므로 한국시간으로 자정이 넘었다. 불과 다섯 시간 만에 두 계절을 뛰어 넘었다. 다섯 시간 전에 엄동설한이었는데 에어컨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천공항에서 방한 파커를 벗어 배낭에 넣었으므로 내 복장은 날씨에 맞게 간편했지만 일행 중에는 그때까지 겨울옷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둘러보니 가족단위로 온 여행객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과 노인까지 모시고 효도관광을 온 이도 있었다. 일행들이 차에 다 타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국인 가이드가 급하게 차에 올라와서 자기소개를 장황하게 하고 여행을 마치고 가는 날까지 자기 통제에 잘 따라 줄 것을 당부하는 동안 현지 가이드가 인원체크를 했다. 가이드가 둘이다. 현지 가이드와 한국인 가이드. 말하자면 한국인가 현지 가이드 하나를 조수로 데리고 다니는 셈이다. 현지 가이드가 차 문을 닫으며 오라이~,라고 기사에게 외치자 차는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호텔은 겨우 차로 오 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그 오 분 동안 가이드는 우리의 여행일정을 대충 일러주었다. 이미 메일로 날아온 일정표에서 다 읽은 부분이다.

호텔에 도착하여 로비에서 가족 단위로 방을 배정받고 다음날 아침 모닝콜 시간은 일곱 시라는 것과 아침을 먹을 식당이 일 층에 있다는 것만 알려주며 식권과 카드로 된 키를 나눠주었다. 내가 쓸 방은 삼 층이었다. 방으로 올라가서 창을 열고 보니 거리가 훤히 보이는 넓고 전망 좋은 방이다. 트윈 침대가 놓인 방을 혼자 쓰는 것이다. 창밖은 불야성이다. 아마도 시내 번화가에 있는 호텔인 모양이다. 대만이나 중국으로 패키지여행을 가면 거의가 호텔이 도시 변두리에 있다. 작년에 대만의 타이베이에 가보니 호텔이 시내 식당에서 버스로 두 시간 이상 걸리는 변두리였다. 부근에는 슈퍼하나도 없는 빈민촌에 우뚝 선 호텔이었다. 그 가격에 맞추려면 여행사에서 그런 곳의 호텔을 예약할 수밖에 없겠지만 캄보디아는 달랐다. 시내 번화가에 호텔이 있는 것이다. 시 외곽에는 호텔이 없거나 시내 호텔과 가격에 차이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야자수가 가로수로 서있는 거리를 바라보다가 문득 잊었던 진이 생각이 났다.

제 마음에 드는 대학에 합격해야 될 텐데.......

혼자 중얼거리다가 이마를 쳤다. 그걸 잊자고 떠나온 여행인데 그 아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당분간 잊자고 마음을 도사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의 풍경은 매혹적이다. 나는 황홀한 밤거리에 유혹당하고 있었다. 그 매혹적인 풍경 속으로 풍덩 빠지지 않고 그냥 자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서운한 구석이 있었다. 결국 그 유혹에 못 이겨 지갑과 카메라가 든 손가방만 들고 호텔을 빠져 나섰다. 나서면서 로비의 카운터에서 호텔의 명함 한 장을 챙겼다. 내가 나가자 밖에서 기다리던 툭툭이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서툰 영어와 손짓발짓을 동원해서 시내를 한 바퀴 도는데 얼마냐고 물었다.

30분 정도 걸리는 코스를 흥정하고 맨 앞에 있는 툭툭이를 탔다. 우르르 몰려와서 서로 태우겠다고 난장판이 될 줄 알았는데 그건 지나친 기우였다. 나름대로 순서가 있었다. 그들이 맨 앞의 툭툭이로 안내했고 내가 툭툭이를 타자 손을 흔들어주는 다른 기사까지 있었다. 툭툭이는 나를 태우고 거침없이 대로로 나서서 달렸다.  가로등이 훤한 야자수가 있는 길을 달려보니 호텔에서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길은 아주 옛날에 건설한 것 같은데 도시계획도로처럼 반듯반듯하게 구획정리가 되어 있는 도시였다. 이따금 한국음식점의 간판이 보이기도 하고 ‘평양랭면’ 이라고 쓰인 북한 식당의 간판도 보였다. 이곳 어디엔가 ‘김씨마트’라고 있을 것이다. 김용수라는 고등학교 동기가 하는 한국인마트다. 녀석은 우리와 같은 계원이었다. 칠판 년 전에 녀석이 동기회 총무를 할 적에 부도를 내고 곗돈과 친구 두엇에게 보증을 부탁해서 저축은행에서 거액을 빌려 캄보디아로 날아와 마트를 한다고 했다. 보증을 서 준 친구 둘은 알거지가 되었다. 씨엠립을 관광차 다녀간 어느 동기가 우연히 녀석을 만났다고 계모임 자리에서 느닷없이 잊혀져가는 녀석에 대해서 공포를 했고 앉은 자리의 동기들은 천인공노했다. 그 때 돈으로 모은 계금이 이천 만원이 넘었다. 결국 그 동기회는 재구성해서 돈을 모으지 않고 친목계 형태로 바뀌었다. 찾으려면 쉽사리 찾을 수가 있겠지만 나는 그 녀석을 만나고 싶지 않다. 

지나가는 사람들 표정은 모두가 순박해 보였고 걱정이 없어 보이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툭툭이를 타고 지나가면서 재래시장 입구에서 몇 컷의 사진을 찍고 턴을 하자고 툭툭이 기사에게 손짓했다. 툭툭이 기사는 툭툭이를 돌리고는 비어~ 하고 말하며 맥주를 마시는 시늉을 했다. 내가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조금 달려 슈퍼 앞, 포장마차에서 맥주를 파는 곳에 툭툭이를 세웠다. 나는 내려서 길거리 파라솔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맥주 두 개를 시켜 툭툭이 기사에게 하나를 내밀고 나도 하나를 마셨다. 캔에 든 맥주의 상표는 베트남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타이거 비어였다. 맥주를 마시며 툭툭이와 맥주를 파는 아가씨를 카메라에 담았다. 아가씨는 한국인이냐고 물으며 사진을 찍기 좋게 포즈를 취해 주었다. 그 포즈에도 순박함이 잔뜩 배어 있었다. 시계를 보니 막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이제 들어가면 쉽게 잘 수가 있겠는 생각으로 툭툭이 기사에게 돌아가자고 했다. 툭툭이는 호텔 현관 앞까지 나를 모셔다 주었고 호텔 지배인이 꾸뻑 인사를 했다. 나는 중세의 황제가 된 기분으로 툭툭이에서 내려 방으로 올라갔다.

잠깐이지만 씨엠립의 무늬만 훑고 들어와서 샤워를 하고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천국은 언제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그래 이곳이 천국이구나, 모든 걸 잊고 자자, 천국을 헤아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모닝콜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담배를 한 대 물고 화장실에서 거사를 치루고 있는데 침대머리에 있는 전화기가 서너 번 울렸다. 느긋하게 거사를 치루고, 씻고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고 여행사의 일정대로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따다 다니는데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패키지여행은 항상 그랬다. 앙코르 와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진으로 본 앙코르 와트를 실제로 밟아보는 것 밖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가이드는 일행들에게 그 유적의 역사와 전설에 대해서 땀을 흘려가며 설명하고 있었지만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하지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앙코르 와트란 뱀의 사원이라는 뜻이란다. 앙코르는 앙고라 뱀의 변형된 말이고 와트란 사원을 뜻한단다. 가는 곳마다 뱀의 형태가 보였다. 머리가 일곱 개 달인 뱀이 가는 사원마다 돌로 조각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부처나 어느 신의 광배조차도 머리가 일곱 개 달린 뱀의 형상이었다. 그 날은 폐허가 된 작은 사원부터 건축한 시대의 순서대로 둘러보았는데 나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대신 연신 담배를 피울만한 구역을 찾아서 담배를 피우기에 바빴다. 그렇게 가이드를 따라다는 여행은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 나는 관광이 아니라 여행을 원했다. 일행들은 혼자 메모를 끼적이며 자꾸 뒤처지는 내가 뭐하는 사람이기에 혼자 왔는지 은근히 궁금해 하는 눈치다. 앙코르 와트, 거대한 돌덩이를 보고 나와서 식당으로 향하는 짬을 이용하여 나는 가이드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아직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우리 일행끼리 자기소개나 하자고 했다. 가이드가 화들짝 놀라며 인천공항에서 인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인천에서 개별 출발했다고 핀잔을 주자 미안하다며 바로 마이크를 잡고 거듭 미안하다며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주었다.

마이크는 앞좌석부터 뒤로 전달되었다. 맨 처음에 소개한 육십 대 아저씨? 육십 대를 아저씨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할아버지라고 명명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어느 전자회사의 사장까지 올랐다가 정년퇴임을 하고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를 데리고 왔다고 했다. 그 다음 내 또래로 보이는 오십 대 가장은 아들이 군에 가는데, 입대 기념으로 아들 둘을 데리고 가족 여행으로 왔다고 하며 하는 일은 목재 무역업이라고 했으며 그 다음 삼십 대 후반의 젊은 부부는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가족 여행을 왔다고 소개했다. 한사람 소개할 적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다음 사십 대 후반의 아저씨는 장모님과 처조카들을 데리고 일곱 명이서 효도관광차 왔다고 했으며 맨 뒷좌석에 앉은 내게 마이크가 오자 나는 좀 장황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하는 일은 중기 임대업인데 그에 걸맞지 않게 소설을 쓰고 있으며, 소설집을 네 권 낸 바가 있고 저를 알려면 인터넷 검색창에 내 이름을 치면 내 프로필이 뜨고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게 취미이고 이번 여행은 유적지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소제를 찾아 소설 사냥을 왔다고 했으며, 내가 사냥감을 찾아서 나갈 수도 있다고, 혹시 내가 없어지더라도 걱정하지 말고 그냥 가이드를 따라서 여행을 잘 하라고 했다. 내가 없어져도 저녁이면 호텔에 있을 것이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출국하는 시간에 맞추어 공항에 있을 거라고 했다.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없어질지 모르지만 제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내 소개가 끝나고 마이크는 가이드에게로 돌아갔다. 가이드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소설가 선생님! 없어지더라도 가이드에게는 귀 뜸을 해주고 가셔야 합니다.

금세 호칭이 소설가 선생님으로 변했다. 맨 뒤에 앉은 나는 가이드가 들리도록 알았다고 앞쪽을 향해 소리쳤다. 알았노라고. 소개를 하고나서 저녁을 먹으니 훨씬 화기애애해졌다. 저녁은 캄보디아 식당에서 압살라 민속공연을 보면서 현지음식으로 먹었는데 누가 가져왔는지 소주잔이 나에게도 돌아왔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친해져서 같이 앉고 장모님을 비롯한 여자는 여자들끼리, 술을 먹을 만한 사람끼리 따로 자리를 만들어 더 세부적으로 자기소개를 하면서 잔을 돌렸다. 그 식당은 외부 음식반입이 당연히 금지된 곳이지만 우리는 공범이 되어 물 컵을 이용하여 종이팩에 든 소주를  감쪽같이 네 개나 비웠다. 겨우 서로 카메라 셔터나 눌러주던, 서먹서먹하던 팀이 그렇게 친숙한 공동체로 변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여행은 한결 마음이 가볍고 수월하겠다.

식사를 마치고 남들보다 일찍 식당을 나와 식당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가이드에게 다가갔다. 거기서 나는 가이드에게 양해를 구했다. 다음날은 바이욘 사원을 관광하기로 되어 있지만 나는 빠져서 하루를 캄보디아 사람들이 사는 구경을 하며 혼자 돌아다니고 싶다고 양해를 구하자 가이드는 좀 걱정스런 얼굴로, 그렇게 하시면 여행자 보험이 안 되니 조심해서 다니시라고 하면서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일러주었다. 나는 수첩에 전화번호를 받아 적으면서 해외여행을 혼자서 많이 했기에 걱정 않으셔도 좋다고 했다. 허락은 그것으로 받은 셈이다. 내가 혼자 싸돌아다닌 곳은 많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개나 고양이와 삼십 분 정도 같이 있으면 교감이 형성된다. 동물이지만 눈빛만으로도 배가 고픈지 나를 좋아하는지 오줌이 마려운지 금세 알게 된다. 하물며 인간인데 어디를 가더라도 의사전달이 안 되겠는가? 내가 혼자서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생각하는 역사가 있다. 그건 역사이기 이전에 나에게는 교훈이다. 바로 전쟁을 두 번이나 참전한 세대가 있다.

1922년생에서 1926생까지, 그 불우한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에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나가서 걸어서 중국 대륙을 거쳐 베트남이나 미얀마까지 갔다. 그곳에서 밀림의 총알받이로 전쟁을 치룰 적에 히로시마에 원폭이 터져 일본이 패망하고 지휘관이 없는 패잔병이 되어 그 대륙을 걷고 또 걸어서 고향까지 찾아왔다. 말이 통해서 찾아 온 게 아니었다. 그들이 찾아올 수 있었던 건 바로 눈치였다. 몇 년에 걸쳐 걷고 또 걸어서 고향에 찾아오니 이번에는 한국전이 터졌다. 그 때는 군에 갈 나이가 되었으니 당연히 국군으로 참전을 했던 세대가 있다. 내가 혼자 여행을 할 적마다 전쟁을 두 번이나 치룬 그  불우한 세대를 생각하고 비교한다. 그 세대에 비교하면 나 홀로 여행에 용기가 생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나 홀로 여행을 한 나라는 많다. 티베트,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마카오, 몽골, 베트남,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나라를 홀로 다녔다. 일단은 그들보다 나은 여건을 지니고 있다. 전쟁이 아니고 여행이라는 점과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경비가 있고 말이 조금 통한다는 자신감과 가기 전에 그 나라에 대해서 미리 주의사항에 대한 공부와 인사말 정도는 알고 간다는 점이다. 가고 싶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는 나라도 많다. 유럽이나 미주가 그렇다. 순전히 담배 때문이다. 거의 스무 시간 비행하는 동안 담배를 참을 자신이 없어 그쪽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뿐이 아니라 담배 때문에 벌써 이십 년 전부터 아내와 각방을 쓴다. 자다가도 일어나 좋은 문장이 떠오르면 메모를 하고 담배를 피우기 때문이다. 이놈의 골초라는 딱지를 언제쯤 떼어버릴지, 아마도 죽기 전에는 어렵지 싶다.

다음날 새벽 모닝콜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 여행자로서의 의관을 정제하고 소설사냥에 나설 준비를 했다. 최소한 아포리즘 하나라도 건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워킹투어! 걸어서 캄보디아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녀볼 생각이었다. 거기서 소설 한편을 구상하면 그보다 큰 수확이 없고 아니면 짤막한 아포리즘하나라도 떠올려 메모를 하는 수확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단어 하나라도 괜찮다. 담배를 두 갑이나 챙기고 사탕을 손가방에 두 봉지나 넣고 준비를 한 다음 일찌감치 내려가 아침을 먹고 호텔 밖으로 나오니 벌써 우리 일행이 타고 갈 버스가 호텔 마당에 대기하고 있었다. 한국인 가이드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현지 가이드와 기사가 있었다. 그들이 맨 먼저 나오는 나를 보고 알은 체 했다. 나는 버스에 올라 아이스박스에 있는 물을 한 병 챙겨 들었다. 그리고 사탕을 하나씩 현지 가이드와 기사에게 돌리고 투데이 워킹투어! 라고 짤막하게 말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버스 뒤편으로 돌아 호텔 마당을 빠져나와 대로를 따라 한참 걸어 내려가니 가로수로 서 있는 야자수 사이로 정글로 빠지는 비포장 길이 나왔다. 무작정 그 길로 들어섰다. 마을로 들어가는 지름길인 모양이다. 코끝에 낯선 바람이 휘감고 지나갔다. 내가 집시가 되는 순간이다. 익명성의 해방감! 그것은 바로 발기를 불러오는 것이다. 익명성은 발기를 유발한다. 이 말은 나에게만 국한된 명제다. 낯선 곳에 가면 이상하게도 발기인대회 주최자가 되는 것이다. 참 희한한 신체 구조다. 바지 앞섶이 잔뜩 부풀었다. 발기를 달랠 방법이 없다. 시간이 흐르도록 기다리는 수밖에는, 너무 팽팽히 부풀어 걸음을 걷기 곤란할 정도였다. 한쪽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 발기된 물건을 움켜쥐고 야자수 그늘에서 오래토록 서성이고 있었다. 해는 내가 들어가는 길 왼편에서 솟아올라 있었다. 그 쪽이 동쪽인 모양이다. 방향만 알면 길을 잊을 염려는 없다. 숙연하게 애국가를 속으로 몇 소절 부르고 나서야 발기대회가 끝났다.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는 말이 맞다. 나는 해방감을 느끼며 열대의 잡목들이 우거진 길을 한참을 걸어 들어갔다. 조금 들어가니 들판이 보였다. 무논인데 벼를 베어 놓은 곳도 있고 갈잎으로 만든 모자를 쓴 사람들이 구부려 모를 심고 있는 논도 보였다. 삼모작 정도는 하는 모양이다. 그 길을 따라 쭉 들어가니 마을이 나왔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판자로 만든 집이다. 그 첫 집을 기웃거리다가 무작정 골목을 들어섰다. 열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처녀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학생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마당에 있는 평상에 걸터앉으며 인사를 했다.

-쑤어 쓰다이.

-쑤어 쓰다이.

처녀도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느닷없이 들어온 이방인에게 다소 수줍은 듯 나를 힐끔 보고는 구부려서 허리춤이 드러난 티셔츠를 당겨 허리춤을 감추고 하던 빨래를 하고 있었다. 벌써 땀이 이마에 맺혀 있었다. 수줍어하는 처녀에게 말을 걸지 않고 평상에 걸터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일어나 집안을 둘러보았다. 전형적인 캄보디아 가옥구조였다. 우기에 습기가 차지 않도록 어른 키 높이의 사각으로 된 기둥을 세우고 수상가옥처럼 그 기둥 위에 판자를 깔고 벽은 야자수 잎을 엮어 통풍이 잘되게 세우고 지붕은 볏짚으로 비가 들어오지 않게 씌운 초가의 구조다. 기후에 맞는 아주 과학적인 구조였다. 집 뒤란은 정원이었다. 정원에는 바나나 나무가 있었다. 뱀이 바나나 나무에서 나는 향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집을 지으면 정원에 누구나 바나나 나무를 심는다고 했다. 뱀의 퇴치법은 그 뿐이 아니다 기둥을 사각으로 만든 이유 또한 뱀이 올라오지 못하게 사각으로 만들었다. 둥근 기둥이라면 뱀이 똬리를 틀고 올라올 수도 있다는 우려로 사각으로 만든다고 했다. 불교국가라서 집집마다 신주단지 모시듯이 나무로 깎아 세운 키 높이의 불단이 있다. 꼭 애완조류의 새집 같았다. 그 집도 마당 한 귀퉁이에 파란색으로 칠한 불단이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옆에 놓인 향을 하나 집어  불을 피워 향로에 꽂고 합장을 했다. 이방인과의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내 행동에 소녀는 놀라는 듯했다. 그 집을 나서며 처녀에게 인사를 했다.

-오꼬지날!

-바이바이!

처녀는 빨래를 짜다가 멈추고 영어로 잘 가라고 인사를 했다. 나는 골목을 나서다 말고 다시 들어가 처녀에게 주머니에 든 사탕을 한줌 집어주었다. 처녀는 고른 치아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으며 거절하다가 마지못해 받았다. 처녀는 영어로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유창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처녀는 오~ 꼬레! 라며 놀라워했다. 캄보디아에서는 한국이 꼬레라고 불리는 모양이다. 다시 처녀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사람간의 정은 이렇게 살아나는 법이다. 나는 골목 깊숙이 마을로 들어갔다. 가다가 꼬마를 만나면 사탕 하나를 내밀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을 만나면 쑤어 쓰다이! 하며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다정다감해 보였다.

마을 깊숙이 들어가 이집 저집을 기웃거리다가 사람이 있으면 쑤어 쓰다이! 하고 들어가서 집안을 둘러보고 불단에 향을 하나 피워놓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어른을 만나면 담배 한 개비를 내밀고 아이를 만나면 사탕하나를 내밀곤 했다. 모두가 경계심을 허물어버린 얼굴로 친근하게 맞아주었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사람 사는 구경을 하고 나오니 어디선가 무엇을 두드리는 소리가 딱, 딱, 하며 일정한 간격으로 들렸다. 그 소리가 너무나 경쾌했다. 나는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보았다. 두 집 건너 바로 다음 골목의 공터였다.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 있는 가운데 평상에 한 남자가 앉아서 무언가 조각품을 깎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하나씩 돌리면서 보니 사십대의 남자가 평상에 앉아 끌과 나무망치로 불상을 조각하고 있었다. 불상은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평상에 걸터앉았다. 소쿠리에 담긴 끌과 연장은 보잘 것 없지만 그것을 다루는 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 도면 같은 것은 없었다. 도면은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모양이다.

사탕을 받은 꼬마들은 하나 둘 돌아가자 작품에 몰입하고 있는 그에게 담배를 한 개비를 내밀었다. 그는 웃으며 받아 물었고 나는 불까지 붙여 주었다. 물론 나도 담배를 한 대 물었다. 말을 통하지 않지만 영어와 손짓발짓으로 이것저것 물어가며  한참을 그와 놀았다. 그가 만들고 있는 것은 불상인데 광배로 머리가 일곱 개 달린 뱀의 형상이었다. 좌대는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연화대인데 반해 그가 만들고 있는 좌대는 뱀이 똬리를 틀고 있고 그 뱀이 부처의 등을 휘감고 올라가 머리가 일곱 개, 그중에서 중간에 있는 뱀 머리가 가장 크게 아가리를 벌리고 광배가 되고 있었다. 그는 끌질을 하다말고 바로 아래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 금세 조그만 앨범을 들고 나왔다. 앨범에는 나무로 만든 문이나 나무로 깎은 불상, 나무로 만든 호텔 장식장 등속이 찍힌 사진이었다. 모두 자기가 직접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일테면 그는 소목이고 장인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작품이 좋다고 굿! 하며 엄지를 세워 내밀었다. 사진을 보며 자기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자 그는 건강한 치아를 드러내고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끌질을 했다. 딱, 딱, 딱, 끌을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가 장구나 북을 두드리듯 리듬을 지니고 있었다. 그 리듬을 한참 듣다가 그에게 다시 담배를 권하고 몇 컷의 사진을 찍고 그 골목을 빠져나와 다음 골목으로 들어섰다.

아이들이 우글거리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천진한 아이들은 낯선 이방인을 구경삼아 나를 빙 둘러섰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하나씩 돌리자 바로 옆에 있는 집에서 아이 셋이서 밥을 먹다말고 사탕을 받으려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까지 사탕을 돌리고 집안을 기웃거렸다. 어른들이 밥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 중에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합장하며 인사를 대신하고 신발을 벗고 나무계단을 올라갔다. 밥을 먹는 것을 보니 상은 없고 마룻바닥에 앉아 제각기 그릇에 밥을 퍼고 먹는데 반찬이라곤 손가락만한 이름 모를 물고기 튀김이었다. 젓가락도 없이 손으로 물고기 튀김을 소스에 찍어 먹고 있었다. 밥상머리, 아니 그 식사자리에 끼어 앉자 안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에게 뭔가를 물었다. 눈치로 미루어 밥을 줄까하는 말이다. 나는 다시 인사를 하며 거리낌 없이 달라고 했다. 금세 밥그릇에 밥을 가득 퍼서 숟가락과 함께 내 앞으로 내밀었다. 너무 많은 양이었다. 나는 밥을 조금 들어내고 그들과 같은 방식, 손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밥을 먹으며 아주 맛있다고 했다. 시간은 이미 점심시간을 넘어서고 있었고 시장기가 돌 시간이었다. 때를 맞추어 밥을 먹는 집에 들른 것이다. 그렇게 먹는 밥은 맛이 있었다. 반찬을 가만히 보니 물고기 중간에 좀 이상한 고기가 있었다. 내가 그것을 집어 들고 살펴보자 그 집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펄쩍펄쩍 뛰는 개구리 흉내를 내었다. 개구리 튀김인 모양이다. 내가 그 개구리 다리를 뜯어서 소스에 찍어 먹자 아주머니가 가만히 보더니 계단을 내려가서 서너 마리의 개구리튀김을 더 가지고 올라왔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개구리튀김으로 밥을 먹었다. 어릴 적에 뒷산에 소 풀을 뜯으러 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잡아서 구워 먹어보고 처음 먹어보는 개구리다.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먹고 남은 뼈나 물고기 머리는 마룻바닥에 가지런히 모아두니 한 아이가 그것을 마룻바닥 틈이 벌어진 곳으로 밀어 넣었다. 가만히 보니 마룻바닥 밑에 키우는 닭들이 그것을 쪼아 먹고 있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간단하게 처리하며 동물과 공존하는 방식이었다. 밥그릇을 물리고 주인 남자와 담배 한 대를 나눠 피우고 있으니 안주인이 텔레비전을 틀어주었다. 한국방송이었고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뉴스들은 내 관심을 끌지 못했고 나는 그들이 분리해놓은 방안을 슬쩍 훔쳐보았다. 야자수 잎을 잘라서 엮은 벽체지만 안방과 아이들 방을 분리해 놓았다. 밥을 먹고 앉아있는 곳은 바로 거실인 셈이다. 윗도리를 입지 않고 목도리만을 목에 걸친 그 집 아들로 보이는 스무 살쯤으로 보이는 청년이 영어로 이것저것 물었다. 나는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고 담배를 다 피우고  둘러앉은 식구 중에서  그 집의 안주인에게 지갑에 든 10달러짜리 한 장을 내밀고 합장을 했다. 고마움을 돈으로 표현하는 건 썩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그 방법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안주인은 사양하지 않고 합장을 하며 받아주었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왔다. 골목을 빠져 나오려고 하니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집 아들이었다. 역시 윗도리를 입지 않고 햇빛가리개로 쓰는 목도리를 걸치고 열대의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어깨를 드러낸 채 좇아왔다.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는 나에게 내 숙소까지 오토바이로 태워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극구 사양했으니 내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그는 꼭 태워주겠다고 고집했다. 지금 워킹투어 중이니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오겠노라고 말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마을을 돌았다. 집들이 대충 고만고만했다. 그런 집들을 훑어보며 지나가다가 아주머니가 서너 살 된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현대식 시멘트로 지은 집이고 마당이 넓은 게 집구조로 미루어 좀 부유해 보이는 집이었다. 쑤어 쓰다이! 밥을 먹이고 있는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고 차광막에 밑에 있는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한눈에 보아도 아이의 할머니로 보이는데, 참 곱게 늙었다 싶을 정도로 정정하고 곱상한 얼굴이었다. 아주머니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고 보니 아주머니가 앉은 뒤쪽에 불단이 보였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향에 피우니 아주머니가 금세 새끼손가락 굵기의 노란색 양초를 가져와서 내밀었다. 나는 초에 불을 붙여 불단에 올려놓고 합장을 하고는 1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향로 옆에 올려놓았다. 일종의 시주인 셈이다. 아주머니가 그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고는 밥은 먹었냐고 물었다. 밥을 먹었다고 대답하며 배가 부르다고 배를 쓰다듬어보였다. 길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고마웠다. 차광막 아래 의자에 앉아서 아이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주머니가 집 뒤란을 가리키며 정원을 구경하라고 했다. 나는 그렇잖아도 정원을 둘러볼 참이었다. 집 뒤로 돌아가니 참 정성스럽게 열대수와 이름 모를 화초들을 가꾸어 놓았다. 키가 큰 야자수와 바나나나무를 비롯하여 열대의 식물원처럼 가꾸어져 있었다. 아주머니의 세심한 손길이 닿은 곳이다. 정원 가운데에는 야자수와 야자수 사이를 묶어놓은 그물침대가 있었다. 그물침대 위에 기둥을 네 개 세워 지붕은 함석으로 따가운 햇살이나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만들어놓은 쉼터였다. 나는 신발을 벗어놓고 올라가 누워보았다. 살짝살짝 흔들리는 게 참 안락하고 편안했고 흔들림에 기분 좋은 현기증까지 일었다. 나는 그 현기증을 즐기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꿈도 꾸지 않고 잔 달콤한 잠이었다. 이렇게 곤히 자본 적이 얼마만인가? 시계를 보니 겨우 이십 분 넘게 잤다. 너무도 꿀 같은 낮잠이었다. 일어나 신발을 신으려고 보니 내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신발 옆에 작은 소반에 파파야 하나와 과도, 그리고 물 한 컵이 정성을 담뿍 담고 놓여 있었다. 아주머니가 나를 주려고 가지고 왔다가 잠이 든 나를 보고 두고 간 모양이다. 그건 하나의 먹을거리이기 이전에 뜨거운 감동이었고 세심한 정성이었다. 신발까지 신기 좋게 돌려서 가지런히 놓아둔 배려! 울컥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나는 그물침대에서 내려와 소반과 그물침대를 카메라에 담았다. 이 사진은 돌아가서 내 노트북 메인화면에 올려놓고 노트북을 켜고 끌 때마다 이 달콤한 잠을 떠올리리라고 다짐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평생 가장 달콤한 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