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문학’은 안녕하신가?

한경희

서경식 교수가 미국의 노마필드 교수를 초청 ‘교양의 재생을 위하여’라는 특강을 마련한 내용이 “교양 모든 것의 시작”으로 정리되어 있다. 교양과 우리 삶이 어떻게 관련되어있는지를 아프게 묻고 있는 질문을 통해 우리도 함께 고민해보자. (“교양 모든 것의 시작” 서경식 저, 이목 역, 노마드 북, 2007.) 서경식 교수의 책 내용을 요약하면서 교양이 지닌 힘에 대해 다시한번 돌아볼 수 있었다. 굳이 ‘교양’이란 단어가 불편하다면 ‘상식’이라도 좋다. 깨어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면 또 어떤가. 갈수록 살아가기 어려우니 문학책 읽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끼지 못한다. 시대의 모서리에 문학이 서성거리는가, 모를 일이다.


지금 어떤 목적을 위해 인문교양이 필요한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의미있는 삶을 살도록 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 전쟁, 기아, 빈곤을 퇴치해야 한다. 교양은 비판적 인식을 키운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현상을 정확히 포착하는 능력이다. 미국사회, 최고의 강대국이지만 돈 없고 가난한 국민은 정규교육과 의료서비스를 받으려면 군대에 입대하는 것만큼 확실한 게 없다. 혹, 전쟁에서 죽더라도 그 생명의 가치는 사회적 손실로 인식되지 않는다.


불평등의 폐해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의 결핍이다.

전쟁을 자주 도발하는 미국에서 전쟁의 실제 부담을 지는 사회적 약자들은 군인과 그 가족이 전부라는 것, 시카고대학 내 반전 토론회에서 시카고 노숙자 75%에서 80%가 베트남전쟁의 재향군인이라는 사실, 요즘 신입 노숙자들은 거의 걸프전 참가 병사라는 것, 전쟁후유증은 오래 지속된다.

일본의 경제적 풍요가 만든 매력적인 현상으로 일본 대학생이 캄보디아로 가서 난민 실태를 체험한다. 이 청년에게 성원을 보내고 싶지만 동시에, 드는 생각은 일본도시의 노숙자들과 일본 젊은이들의 교류가 가능한가. 해외의 난민과 달리 민족(국민인)의 노숙자를 보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캄보디아는 좀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지만, 국내 난민은 자신도 이처럼 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일으킨다.

국가는 경제난을 전쟁으로 해결한다는 것, 그리고 전시체제를 만들기 위해 맹목적인 애국심(쇼비니즘)과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킨다. 시민의 교양으로 국가가 부추기는 전쟁강요와 (민족주의, 애국심의 유발) 다른 시민간의 단결이 필요하다고 서경식 교수는 주장한다.


교양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그 잔인한 실상을 증언한  이탈리아 화학자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라는 책에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 양심, 대화능력 등 인간성의 척도로 간주되는 관념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를 산산조각이 난 관념인가를 기록하고 있다.

인간이라면 이런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막연한 믿음의 근거는?

인간이라면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실제 현실에서 버젓이 일어난다면?

아우슈비츠는 영양 섭취가 절대 부족해서 아무리 애를 써도 3달 안에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가혹한 강제노동을 매일 강요받았고, 사소한 규칙이라도 어기면 무시무시한 고문과 처벌이 있던 곳, 이런 공간에 있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약점을 고발하거나, 어떻게 남을 속여서 그의 물건을 훔칠까, 나보다 더 약한 인간을 짓밟아 살아남을까를 궁리하는 곳이다. 여기서 동료 수용자 ‘피콜로’가 시를 낭송해달라고 해서 떠오른 단테 “신곡” 중 오디세우스 노래가 떠올랐고 불어로 번역해서 틈나는대로 들려주었다. 레비는 이탈리아인이고 피콜로는 프랑스인.


“그대들은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생각하라

그대들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덕과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태어났도다.”


오디세우스 역시 트로이 전쟁을 경험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고난의 항해를 계속했다. 자신의 동료에게 이 시를 전달할 때, 자신의 생명줄인 빵마저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될 만큼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교양이 나를 도와주었다.”라고 했다. 이 시가 수용소 생활을 견디게 했다. 그런데 이 저자는 수용소에서 귀환한 뒤 40년을 아우슈비츠 증인으로 활동하고 살았지만 1987년 자택계단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 인간은 짐승이 아니고, 덕과 지혜를 구하기 위해 산다는 그의 신념에 의지해 살아온 사람이 자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바로 현대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시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자신이 사는 곳에 틀어박혀 안만 바라보고 외부를 볼 줄 모른다. 자신 외부의 참혹한 현실을 애써 못 본체 한다. 덕과 지혜를 따르려고 노력했지만 실제로는 자진해서 야만화가 되고, 기계로 변해온 존재이다. 이런 현실을 방치해 둬도 좋은가. 역사 속에서 안과 밖을 다 봐야 한다. 타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연하다는 듯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를 막지 못한다. 우리가 자유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지난날 인문지식은 소수 특권 엘리트 남성만이 향유, 이때가 그야말로 야만, 냉혹의 시대였다. 이젠 대중과 시민이 인문적 지식을 향유해야 한다. 


서경식 교수의 책 내용을 간추린 것이라 해도 좋을 만큼 내용 전달에 멈췄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았고,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야만적이지 않을 수 있도록 조절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것이 교양이라면 고색창연하더라도 교양은 되새김되는 것이 마땅하다. 모든 교양이 불안하다면 우리들의 문학은 안녕하신가를 묻고 싶다.

 

한경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