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생



이 중 기 



  잠에서 깨어난 나는 아까부터 인기척 하나 들리지 않는 방안의 공기를 꼼꼼하게 읽고 있다. 조용하다. 너무 조용해서 벽시계 초침소리가 귓속을 텅텅 차댄다. 나는 방문 쪽으로 머리를 돌려놓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쪽으로 난 방문 앞에 붙박혀 있던 손바닥만한 햇살이 기척도 없이 걷히어 가고 제법 서늘한 기운이 깔린다. 어디 먼데서 낙엽 타는 냄새가 코끝에 와 닿는다. 내 코는 습자지처럼 낙엽 타는 냄새를 빨아들인다.

 설핏, 어둠이 내린다. 환경의 변화가 아무런 충격이 될 수 없다면 어둠의 도래가 그러하리라. 나는 기분 좋게 눈을 감으며 정신이 무척 맑아져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방바닥을 차고 올라오는 냉기에 소스라친다. 나는 망설이다가 벌떡 일어나 앉는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데 갑자기 허기가 아랫배를 왈칵 거머잡는다. 나는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는다. 몇 끼를 굶었던가, 지난 며칠을 찬찬히 훑어본다. 그러나 아무것도 제대로 기억해낼 수가 없다. 내장을 타고 물 흐르는 소리가 차갑게 들린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나는 언제 어떻게 집으로 돌아 왔는지 기억되지 않는다. 숙취에서 깨어날 때처럼 단절된 기억의 이쪽과 저쪽을 부지런히 들락거려 본다. 그러나 기억은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며칠째, 엄습해 오는 오한과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는 콧물을 간신히 견디다가 해거름에 집을 나선 게 어젠지 그저껜지도 희미하다.

  종규에게도 그는 연락두절이었다. 술에 취해 내게 들렀다가 간 기억이 희미한데 집을 비운지가 열흘이 지났다고 한다. 휴대전화는 전원이 끊어져 있고 노모와 누이가 있는 도시의 집에서도 그는 연락두절이었다. 나는 종규에게 애써 초조함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했던성싶다. 종규의 강요로 두 점 접바둑을 두었는데 두 판을 내리 졌던 것 같다. 나는 마지막 돌을 팽개치듯 내던지며 고꾸라졌던 기억이 난다. 이마를 찡그리며 아득하게 먼 기억의 끈을 당겨본다.

  나는 혼미한 상태에서 신열을 앓는다. 끊임없이 뒤척거렸으리라. 누군가 내 손을 잡고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린다. 개들이 자지러지게 짖으며 달려들어 전신을 낭자하게 물어뜯어 놓아도 나는 꼼짝할 수가 없다. 알 수 없는 사람들이 턱없이 발길질을 해대고, 갑자기 대형 화물차가 달려와 깔아뭉갰고, 느닷없이 주먹들이 날아와 명치끝에 박힌다. 으으으으, 씹어뱉듯 뇌까린 신음과 뒤척거림이 끝없이 이어졌으리라. 어쩌다 간신히 잠의 늪에서 빠져나와 게으르게 눈을 떠도 그러나 내 눈빛은 사물을 제대로 붙들어내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냅다 등을 떠민다. 몸 곳곳에서 땀이 질척거린다.

  나는 소리 없이 방안에 들어차는 어둠의 부피가 두터워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새벽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 빠져나온다. 가슴에 손을 대자 공명함처럼 울린다. 마치 부스럼이 앉은 상처나 물집을 건드렸을 때의 감촉과 흡사하다. 나는 등과 배를 쓰다듬으며 전신이 하나의 상처나 물집으로 변해버린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나는 그것이 엉망으로 앓은 몸살의 후유증임을 안다. 나는 허리 뒤에 두 손을 대고 힘을 준다. 끊어질 듯 허리가 아프다. 아직 다 철수하지 못한 몸살의 잔류병 탓이다. 나는 허리를 반듯하게 눕힌다. 어느새 방안은 수중처럼 깜깜하다. 어둠의 무게에 숨이 가쁘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기고 대문 쪽에다 신경을 매복시킨다. 발소리가 들린다. 발소리는 거침없이 마당을 가로질러와 방문 앞에서 멎는다.

  나는 벌떡 일어나 문을 연다. 그러나 그는 거기 없고 찬바람이 이마를 치고 간다. 나는 멍하니 어둠 속을 바라보다가 문을 닫고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무릎을 당겨 배에 붙이고 새우처럼 척추도 접어 몸을 조그맣게 만든다. 문득 배고프다는 생각 끝에 허기가 사정없이 아랫배를 걷어찬다.

  내리 여섯 해나 농사를 망친 그의 부엌 냄비 속에는 가끔씩 거미가 줄을 치기도 했다. 달포 전에 내가 갖다 준 김치는 맛이 변했을 것이고 라면을 끓여 먹고 남은 찌꺼기를 노린 쥐들이 냄비 속을 들락거릴 것이다. 땟물이 줄줄 흐르는 서른여섯 사내의 부엌과 방을 나는 눈을 감고 찬찬히 살피다가 어금니를 깨문다.

  이마가 넓은 갓 서른 사내를 빚더미에 앉혀버린 건 순전히 내 탓이었다. 그는 열심히 살았으나 농사는 어설펐다. 농운은 늘 그를 비켜갔다. 올해 고추농사마저 징그럽게도 쏟아 부은 장맛비가 깡그리 망쳐버렸다. 2천 평을 조금 넘는 부재지주의 땅을 얻어주며 꼬드긴 6년 전의 내 잘못을 술이 취해 탓하던 그의 젖은 목소리가 가슴을 후빈다.   

  형님…… 이건 내 인생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이 타인의 생 이었어요. 

  그 젊디젊은 나이에 6년이나 타인의 생을 살아주다 만 사내의 절규 앞에 나는 안주도 없이 소주만 들이켤 뿐 무어라 한 마디 변명할 자신이 없었다. 젊은 사내의 생을 파탄 내버린 것은 나라의 농업정책이 아니라 내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는 어디에서 무었을 하고 있을까. 나는 그를 만나고 싶다. 6년이나 타인의 생을 살 수밖에 없었던 그의 아픔을 20년 넘게 타인의 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나의 말 몇 마디로 덮기에는 태부족이겠지만, 나는 그를 만나 이 한 마디는 꼭 들려주고 싶다. 궁색한 변명일지라도, 빨래줄 가득 흰 기저귀가 펄럭이는 나라가 그리웠노라고. 이제 막 말을 배운 어린 것들의 깔깔거림을 보고 싶었노라고. 단지 그것뿐이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