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속으로

 

 저 연꽃밭!

 

우리에게 누락된 장()을 세기의 장인들이 놓쳤을 리가 없다

대성당이 내게 열어 보여준 그 충만한 색깔과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일렁임까지

 

어제의 메아리들이 돌아오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몹시 지쳤으나 내심 우리의 눈빛이 생에게 말하려는 것들

 

노을 속으로 세월의 저 망연자실에게로

태양과 암흑의 왕들이여 나와서 보라.

 

 

 

 

하늘 아래

 

 

어느 해인가, 그 마을에

여자 거지가 아이 하나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들은 뽕나무 아래서 맴을 돌다

허겁지겁 오디 열매를 따먹기 시작했다

이 가지 저 가지를 휘어 당겨

고픈 배를 달래고

이따금 어린 거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어진 이가 있어

다음 해도 그 다음 해에도 뽕나무는 그들 차지였다

 

오디를 먹으면 거지가 된다더라

하늘은 이미 그 뜻을 알고도 남았다

주린 자의 양식을 빼앗지 말며

가난한 자의 좌판을 발로 걷어차지 말며.

 

 

이승호

춘천 출생. 2003년 《창작21》로 등단. 시집 《행복에게 바친 숱한 거짓말》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