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흔적  

 

 

무적함대였던 등판과 막강했던 어깨가 아버지였다

 

힘없는 두 다리 사이,

습하고 냄새나는 아버지의 부자지를 주물럭거려가며

내가 태어난 DNA의 통로가 되어준 흔적과

씨앗주머니의 주름 사이사이를 닦는다

퀴퀴한 역사의 어두운 길을 더듬어 들어간다

초점 없는 시선으로 그윽하게 나를 들여다보시는

아버지, 부끄러움도 없다

어쩌면 아버지는 지금

생명의 시원을 찾아 바이칼 어디쯤을

고비사막의 모래언덕 어디쯤을 찾아 헤매며

원시 이전의 시간이 고여 있는 웅덩이를

응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회로의 어디쯤에서 우린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돌아오세요!


 

5,

아버지의 DNA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아버지,

살면서 그 성깔 못버리겠어요

아버지의 그 충고 때문에 헤깔리며 살았잖아요 그리고

아버지도 그리 사셨잖아요

아버지나

아버지의 딸인 나나

일급수 물고기로 사는 게 편하잖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아버지

살다보니

일급수에 사는 물고기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아버지 가신 곳

거기, 틀림없이

햇빛이 눈부시게 찰랑대는 일급수 바다, 맞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