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1호...
   2019년 09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 오늘방문자 : 
    295
  • 어제방문자 : 
    544
  • 전체방문자 : 
    414,204

지난호 보기

분류에서 보고싶은 호를 선택한후 GO 를 누르세요.

번호 닉네임 조회 등록일
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78041 2014-11-03
771 파 외1편/임영석 file
편집자
194 2019-07-31
파 ​ 천 번 만 번, 칼질로 네 푸른 의지가 꺾이었다면 어찌 독한 향이 남아 있겠느냐 외롭다는 것, 고독하다는 것 속을 깨끗이 비우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허공의 집 한 채 갖기 위해서 온몸을 비우고 비워 향기로 만들어 놓고 거꾸로 써 놓은 느낌표 하나, 별빛으로 완성할 것인지 태양으로 완성할 것인지 모르겠지만 뿌리째 뽑힌 파들은 그 느낌표 하나 완성하기 위하여 그대 눈물을 훔쳐낼 뿐이다 파 때문에 울었다고 말하지 마라 파는 그대 눈물로 느낌표 하나 완성하고 이 세상 삶 즐거웠다고 말할 것이다 참기름 냄새를 맡으며 -1987년을 기억하며 깨알처럼 많은 사람 그 고통을 압착하여 자유라는 참 맛을 얻었다 너도 나도 한몸이 되어 고소한 맛 하나 남겼다 임영석 1961년 충남 금산출생, 1985년 『현대시조』 봄호 2회 천료 등단, 시집으로 『고래 발자국』, 외5권 시조집으로 『꽃불』외 2권, 시론집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시인』, 시조선집 『고양이 걸음』 등이 있다. 제1회 시조세계문학상(2011년, 수상작 초승달을 보며) 제15회 천상병 귀천문학상 우수상(2017년, 수상작 받아쓰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강원문화재단(3회), 원주문화재단에서 각각 창작지원을 받았다  
770 책아, 너 거기 있어서 외 1 편/하재영 file
편집자
226 2019-07-31
책아, 너 거기 있어서 소리란 것을 만드는 곳에는 으레 움직임이 있다. 발에 채인 깡통이 데구루루 굴러가는 길바닥에 퍼지는 물결 같은 소리도 그렇고 강둑 퍼드득 나는 백로 날갯짓도 하늘에 구름을 둥둥 띄우며 소리를 만든다. 책아, 너 거기 있어 그래 보수동 책방 골목이라든지, 청계천변이라든지, 아니면 아직도 문 닫지 않고 헌책방을 지키는 충청도 작은 읍이라든지, 또는 먼먼 나라 관광지 좁은 골목 고서점에서 만나는 먼지 묻은 책이라든지, 그런 책들은 잔잔한 소리를 갖고 있다. 먼 여행 중 구입한 책을 여행에서 되돌아와 넘기는, 사랑하는, 첫사랑 사람의 손을 잡은 것처럼 손 끝 떨리는 그 순간 책 속 글자들은 진달래꽃처럼, 벚꽃처럼, 복숭아꽃처럼, 모감주꽃처럼, 능소화 꽃처럼, 호박꽃처럼, 볏꽃처럼, 웃음꽃처럼, 꽃으로, 꽃으로, 꽃으로 자꾸 피어나고 지고 피어나고 책아, 너 거기 있어 어제 즐거웠단다. 책아, 너 기기 있어 오늘 기쁘단다. 책아, 너 거기 있어 내일 행복하단다. 대숲 대숲 속으로 풍덩! 파도 같은 흔들림이 어울려 어울려 또 어울려 스크럼 짜고 움직이는 광장의 목소리로 때론 엄마가 들려주는 자장가로 공명할 수밖에 없는 공간 피리로, 단소로, 대금으로, 장난감으로 빗자루로, 바구니로 그리고 그것들이 아닌 몸 전체로 하늘 향해 봄, 여름, 가을, 겨울 푸른 손 모아 기도하는 하재영 199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1992년 《계몽사아동문학상》 장편소년소설 당선, 동화집 『 할아버지의 비밀』, 시집 『별빛의 길을 닦는 나무들』, 『바다는 넓은 귀를 가졌다』 등  
769 씹외 1편/정동재 file
편집자
1395 2019-07-31
씹 씹의 어원을 어학 사전에서 찾다가 十의 비속어라고 단정 짓네 십팔년 십새끼의 정체성이 다시 빚어지네 니미 씹이네 천문 이야기 낙서가 비하하니 음담패설이네 十의 체위를 논하면 풍차돌리기네 동물적 감각으로 홀 중앙 五가 十을 요리하네 오입을 5 入이라 단정 지을 수밖에 없었네 소우주를 대변해 바꿔 말해보네 뭐니 뭐니 해도 사내는 좆심이네 넣고 빼고 오입 중인 달빛 황홀하네 밀물과 썰물 요동치네 야기된 바다의 씹은 생명의 어머니 십오야(十五夜) 바다가 사리를 빚고 있네 산수유 산수유꽃이 피었습니다 창칼도 없이 방패도 없이 산수유꽃이 피었습니다 매서운 바람 부는데 산수유꽃 피었습니다 창칼 앞에 굳은 내 모습을 꺼내 보여줍니다 꽃 피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눈 덮인 산수유 쪼아 먹고 날아간 새에게 묻습니다 칼바람도 아닌 것이 폐부를 찌르며 파고듭니다 산수유꽃 피었습니다 약력/2012 년 《애지 》로 등단 , 시집 『하늘을 만들다 』  
768 앉은뱅이재봉틀 외1편/손창기 file
편집자
253 2019-07-31
앉은뱅이재봉틀 소리의 도미노, 감꽃이 떨어진다 나무가 감꽃 따서 던진 건 아닐 터 보이지 않는 손이 꽃을 밀어낸 것이다 가지 속에 들어있는 앉은뱅이재봉틀 어머니 한복 만들 때, 꼭 감꽃이 떨어졌다 친구는 감꽃 주우러 가자했지만 재봉틀 돌아갈 때 천을 꽉 잡아 당겨줘야 했는데 천을 당겨야 촘촘히 박음질이 되었는데 겨우내 한 목숨을 괴고 있던 꽃손이, 한 목숨을 허공에 뜨게 한 손잡이가 바람을 휘젖는다 드르르- 다르르- 꽃받침을 돌리는 것이다 소용돌이치며 떨어지는 감꽃에 마지막 인두질한 흔적이 아직 반질반질하다 깃털 하나가 깃털로 개미누에를 쓸어내린다 알에서 갓 깨어난 불안을 보듬는다 손끝과 알몸을 이어주는 깃털 하나, 보듬을 때 손가락 힘과 동작이 일정하다 손끝에 온기의 말을 걸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뒹굴던 어린 옆구리에도 가장 오래된 숨결이 숨어 있을 것이다 새벽부터 동틀 때까지 개미누에가 마주했던 어둠이, 손끝 느낌이 깃가지에 가 닿은 그 어둠이 칠일 지나 애기잠을 잘 때까지 누에의 몸을 메운 것이다 잠자리를 같이 한 내 몸에도 뽕잎 뜯어먹는 소리 배어 있을 것이다 쓸어 모은 부드러움으로 네 번 잠자면 누렇게 실이 목까지 차오른다 섶으로 들어서자 우리 집이 커졌다 잠실蠶室 지붕이 날개를 펼친다 떨어지는 저 깃털 하나가 알을 부화시키고 날개 돋치게 할 것이다 약력> 손창기 - 경북 군위 출생. 200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달팽이 성자』가 있음. jangoyes@hanmail.net  
767 청산도 외1편/곽도경 file
편집자
208 2019-07-31
청산도 당리 언덕 붉은 길 그녀가 걸어간다 아리 아리랑 스리스리랑 덩실덩실 걸어간다 눈 바쳐 소리 얻었으니 뭐에 그리 분할꺼나 서러워 고운 그 길 나도 따라 걸어간다 사람이 살면 몇 백 년을 사나 개똥같은 세상에도 기어이 봄은 오고 송화야 유채 환한 그 날 우리 같이 눈을 뜨자 언덕 위 그 집까지 춤추며 올라보자 돌배나무 허리 꺾인 나무 한그루 서있네 아랫도리에 통 깁스하고 쌍지팡이 짚고 마지막 힘 다 짜내어 꽃송이 토해내네 쉰 고개 넘었어도 살림 서툰 딸 때문에 죽지도 못 한다고 푸념하는 울 엄마 소금포대 위에서 떨어져 허리 아픈 울 엄마 그 마당에 한 그루 돌배나무로 서서 참 환하시네 울컥울컥 배꽃이 피네 약력/ 계간 시선으로 등단 시집 / 풍금이 있는 풍경  
766 무하유지향 無何有之鄕* 외1편/심승혁 file
편집자
213 2019-07-31
무하유지향 無何有之鄕* 바삐 흘러가던 계절의 끝으로 서릿발 같은 겨울이 찾아와 이제는 조금 쉬라고 하얀 입김을 걸어 놓았습니다 화려했던 사는 일이 조금씩 퇴색되는 중에 이제는 조금 쉴까 하여 하얀 시선으로 공간을 가릅니다 촘촘히 엮은 거미줄에 지나던 계절이 매달리고 높푸른 하늘에 띄우던 숨의 회한이 하얗게 흔들리면 분주했던 걸음의 속도를 늦춰 잠시 허공의 안식을 문질러 봅니다 서리서리 차가운 복숭아나무 사이로 거미 한 마리, 어제 걸었던 흔적을 따라 따스한 삶 한 올씩 뽑아 다시 길을 내고 있습니다 *장자의 무하유지향 無何有之鄕 <어느 곳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이지만 우리들의 의식 저 건너편에 확실히 존재하는 안식처를 말한다. 도원경, 이상향, 유토피아와 같은 의미. 들어주는 일 소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짊어지고 온 시간이 울퉁불퉁 달라붙어 거친 바다쯤은 이겨낼 갑옷이 되었고 해변을 때리는 파도를 동그래 안고서야 소리조차 품게 되었다고 했다 소리를 잃어버린 바다가 흔들리는 등대의 불빛 밑으로 잠들면 끈끈하게 지나온 지친 발자국들이 모여 조용히 펼쳐놓는 작은 이야기의 밤, 아직 다 못 들은 소라의 생生이 느릿하게 다가와 말을 건네면 그저 귀를 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고맙다고 했고 서로 그러했다 약력 2017. 1 격월간 문학광장 시 부문 등단 2018. 2 (봉놋방 시선집) 『씨앗,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 공저 2018. 9 2018년 서울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 시 공모전 선정 2019. 3 시와글벗문학회 동인지 제7집 『고요한 숲의 초대』 공저 2019. 6 『시마詩魔』 창간호 참여 2019. 7 월간 『우리詩』 7월호 참여  
765 가다가 서면 외1편/이창한 file
편집자
235 2019-07-31
가다가 서면 낡은 옷자락에 시퍼런 추위가 늦가을 한데 바람으로 매달려 불경 한구절로 읽히고 있다 도대체 버릴 것 없어 아무것이나 가득 채워진 육신의 그릇 무얼 더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뒤쪽으로 난 틈사이로 그나마 비워내고 있는 비망록 후려치는 죽비로 혼절하고 마는 세상사 아무렇게나 보아왔던 이럴 줄 알았다면 멀리 돌아서 갈 걸 달 덩어리로 내려 쏟아지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있는 데로 다 벗고 있다 곡(哭) 뻐꾸기 울음 울때마다 껍질로 흩날리는 벌초하지 못한 묏등에 얹혀 퇴색한 소리로 부서진다 해질녘 그림자 밟혀 울며 돌아가는 눈물은 아무 색 묻어나지 않는 메아리 새야! 엄마하고 불러 보렴 대답 없는 마른 풀 더미 사이로 바람에 묻어나는 아린 엄마 젖내음 이라도 좋겠다  
764 마지막 미션 외1편/김만수 file
편집자
1285 2019-07-01
마지막 미션 - *카시니 하위헌스 죽음의 다이빙 7년을 날아가 검은 별과 마주한 후 기름 냄새 가득 찬 낡은 거죽을 안고 그는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쓸쓸한 다이빙을 보는 것이다 화염을 두르고 몸 던지는 그를 오래 앉았던 나무의자와 돗보기 안경을 정신을 꿰어오던 빛의 화살을 오지랖에 싸안고 뛰어내리는 그를 본다 타이탄의 빛나는 눈물과 거수경례를 뒤로하고 그도 하나의 조각이 되어 깊은 은하로 내려앉는 것이다 사방이 시린 직벽 빛의 조각들 모아 집을 얽고 끝내 어두운 빛 부스러기로 흩어져 가는 그를 팬지 꽃문 닫히는 저녁 초록별 창밖 그늘이 설핏 지고 책상 왼쪽 잉크병이 잔잔히 흔들리는 저녁 팔방으로 날아가 점으로 흩어져버리는 쓸쓸한 다이빙 카시니 하위헌스 *토성 탐사선 *후에 낫으로 사탕수수를 치는 그녀가 부처다 노을 번지는 흐엉강 언덕을 끝내 지켜낸 우림 속 민족주의와 초원 비트 속의 형형한 눈빛들이 빠르게 건조되어가는 궁터에서 달콤한 수액 한 종지를 빤다 어린 시절 베트콩으로 읽었던 그들을 낡은 제국의 처마를 들추고 달아오른 해방의 빛살이 사그러 드는 저기 빛나는 자본의 푸른 수수밭을 본다 *베트남 중부에 있는 도시  
763 접었던 나를 펼쳐 놓으니 외 1편/오형근 file
편집자
437 2019-07-01
접었던 나를 펼쳐 놓으니 오래된, 눅눅한 책들을 햇볕에 말리듯이 나를 햇볕에 펼쳐 놓으니, 그렇게 몇 시간이고 서 있었는데 눈만 큰 벌레들이 몸속에서 기어나와 내 그림자를 갉아먹었다 그것을 본 나는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급하게 몸을 접었다 마지막 물 아파트 베란다 좁다고, 신경쓰는 데를 줄이겠다고 저를 산에 심어 놓고서 주고 가신 마지막 물, 방금 다 마셨어요 식어가는 의식을 맑게 데웠어요 주인님의 발자국 소리로 자란 저는 젖떼기 할 나이가 훨씬 지났지만 지금부터는 바람 소리에 겁먹지 말고 햇볕에 졸지 않고, 추위에 지레 놀라 눈감을 생각을 하지 않도록 주인님, 온 힘을 쏟겠지만 쏟아야 하지만 무서워요! 오형근 1978년 《시문학》주최 전국대학문예 시 당선, 1988년《불교문학》· 2004년《불교문예》로 등단. 시집 『나무껍질 속은 따뜻하다』,『환한 빈자리』, 『소가 간다』등.  
762 식물원 호텔 외1편/김길녀 file
편집자
372 2019-07-01
식물원 호텔 문지기 없는 로비로 들어가는 입구 손 때 묻은 통나무문 빗장 풀면 백 년을 떠돌던 유목민 어깨에 묻어온 싸라기눈과 햇살 높은 천장으로 천천히 흩어진다 매일 조금씩 키가 자라는 사다리가 놓인 방 흑백 사진들 제멋대로 마른 덩굴에 걸려 있는 누군가의 작업실 열린 창문에 기대선 나그네나무 지워 가는 얼굴과 이야기 잎사귀마다 스미어 멀리멀리 날아가고 있다 오랫동안 병마와 싸우며 남은 나날이 지루하여 어찌 살아야 할까,를 궁리하던 마흔 살 언저리의 사람이 호텔 정원에서 청포도를 따고 있는 손은 온통 연두색이다 홀로를 위한 최고의 장소로 가는 길 몇 날 며칠 걸어야만 닿을 수 있다 오로지, 망명자의 일기장 지루하지 않을 만큼의 묵직함 아프지 않을 만큼의 고통 기다려도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마른 장마의 날들 그 시절은 침울해서 좋았다 적도의 바람은 한결같이 포근했다 꽃들은 열흘에 또 열흘 지칠 줄 모르고 피어서 지는 날이 없었다 침울하지 않아서 슬픈 날들이었다 *약력 1990년 《시와 비평》 등단 시집 『푸른 징조』 등 여행산문집 『시인이 만난 인도네시아』  
761 아버지의 발 외1편/최순섭 file
편집자
308 2019-07-01
아버지의 발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아버지가 대낮에 절룩절룩 발을 들고 오셨다 군살 배긴 아버지의 발은 못에 찔려도 피가 나오지 않았다 덧나지 않게 피를 빼야 한다고 망치로 발바닥을 마구 두드렸다 온몸에 번지는 통증은 오장육부를 관통한 일용의 양식 못 구멍으로 아버지의 빈 수레가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못 구멍을 호랑이기름 쓱 문질러 막고 공사장 쪽으로 걸어가셨다. 색깔론 봄인데 (…) 한 걱정하다 하얀 거울 앞에 무슨 색을 칠할까 주섬주섬 옷장을 뒤적이다 붉은 티를 입었다 확, 눈에 띄는 것이 불안해 아래는 파랑 청바지와 어울리는 붉은 티를 입은 한 청년이 봄 앞에 서 있다 언제나 지틀리면 벗어던지는 모자는 노랑 최순섭_대전광역시출생. 1978년『시밭』 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말똥,말똥』등이 있음. (현)환경신문 에코데일리 문화부장, 경기대, 동국대,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출강, 한국가톨릭독서아카데미 상임위원.  
760 주남저수지, 가야(伽倻)인의 겨울 외1편/정선호 file
편집자
280 2019-07-01
주남저수지, 가야(伽倻)인의 겨울 저수지 주변에서 가야인들 오리와 새를 잡고 저수지 안에서는 얼음을 깨 물고기를 잡았다 눈이 많이 내렸지만 옷을 두껍게 입은 사내들이 마을과 가족 위해 눈 속을 헤치고 들판을 누볐다 많은 철새들은 추위를 피해 저수지에 왔지만 가야인들의 풍성한 음식 재료가 되었다 가야인들은 겨우내 토기며 베를 짜 옷을 만들고 한해의 농사와 가축을 기를 준비를 했다 야철지에서는 쇠를 만드느라 매우 바빴으며 하인들은 상전이 몸에 장식할 구슬을 만들었다 마을의 한 노인이 명을 다하고 죽어 사람들은 널무덤에 시체를 넣어 땅속에 묻었다 무덤에 수저와 토기며 붓을 넣어 망자가 죽어서도 저승에서 살아갈 수 있게 했다 죽은 가야 사람들은 이천년후에 모두 환생하여 주남저수지 방죽을 걸으며 철새들 보고 사진 찍었다 근처 마을 사람들 여전히 농사를 하거나 가축 기르고 공장에서 옷을 만들거나 돌을 녹여 쇠를 만들었다 어느 노신부의 성경봉독 -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희생자 추모예배에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잘 아시지만 우리나라에는 일제에서 해방 후 정부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한국동란 전후로 좌익세력이나 보도연맹원, 통비분자란 이유로 수백만명이 산골짜기와 바다에서 무참히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늘은 억울하게 죽은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추모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도 잘 아시지만 사람은 누구나 생각과 표현할 자유가 있으나 정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몇몇 사람들의 공산주의 활동을 빌미로 많은 민간인을 재판도 없이 살해했지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유족들은 연좌제에 걸려 나랏일을 하는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 죽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나라와 타인에게 말할 수도 없는 고통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억울하게 죽어 하늘나라에 간 그들을 부디 잘 보살펴 주시고 편안이 살 수 도와주소서 또한 그들에게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할 자유를 주옵소서 민간인들을 무참히 살해한 자들은 멀리 하시어 그들이 하늘나라에서나마 참회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죽은 사람들의 유족들에겐 이제라도 맘 놓고 죽은 자들을 추모하고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소서 하나님도 잘 아시지만 우리나라에는 지금도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싫어해 당시 정부편을 들고 유족들의 추모와 보상을 방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부디 그들에게도 진정 참회하고 올바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그리하여 이땅에 참된 평화와 평등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약력 : 충남 서천 출생, 200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내 몸 속의 지구』『세온도를 그리다』『번함공원에서 점을 보다』가 있다.  
759 눈물겨운 투쟁담 외 1편/김진희 file
편집자
246 2019-07-01
눈물겨운 투쟁담 카운터 직원이 봉투를 연다 누렇게 뜬 사임당 얼굴이 촤르륵 지나간다 pc방에서 알바해서 모은 돈이다 아이는 비 맞은 참새처럼 가늘게 떨었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낳았으므로, 어미였으므로. 남북 분단선도 지우려는 시대에 아이는 금 하나를 긋기 위해 제 돈 내고 벌벌 떨며 이곳에 왔다 더 페이스 성형외과 서면 롯데백화점 뒷골목 무슨 무슨 성형외과가 동네 마트처럼 즐비하다 백화점 뒤에 숨은 병원들 백화점 뒤에 숨은 얼굴들 적당히 눈매가 쳐진 내 또래 엄마들이 고만고만한 딸들의 손을 잡고 와서 수술부작용에 대한 기계적 설명을 듣는 곳 자식 고집은 이길 수 없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한 시간 동안 고문 받는 것 같았어 오징어 굽는 냄새가 나고 눈물이 찔끔 났어 근데 울지 말래 아, 이 얼마나 눈물겨운 투쟁담인가 두엄출판사 대구 두엄출판사 ‘대구’라는 이름의 단단함 ‘두엄’이라는 말의 훈훈함, 진득함 기름난로 붉게 타오르는 사무실 밀양얼음골사과 햇빛과 별빛이 번갈아 드나들어 달디단 옹이를 간직한 열매 후라이팬에 볶은 땅콩, 호밀 오도독 오독 활자 씹는 소리 난무하는 방 칭얼대는 문장들 침침한 눈으로 어르고 달래고 적당히 솎아내고 오독, 그래도 삶은 금방 무성해지고 반질반질 나무 바닥, 서고 누운 책, 책들 그리고 시덥잖은 농담들, 찜찜함, 사소한 오해 오도독, 그 모든 것 적당히 버무려 두엄더미는 후끈 달아오르고 한 쪽에선 납작만두가 납작하게 식어가고 *부산 출생. 시집 『굿바이, 겨울』(2011), 『거미에 기대어』(2019) 출간. bullaeya@hanmail.net  
758 그 섬에 가고 싶다 외1편/허남기 file
편집자
229 2019-07-01
그 섬에 가고 싶다 푸른 꿈의 날개짓이 가득한 곳 발목이 잡혀 뿌리를 내렸다 섬의 깊이를 발설한 꼭지점의 태동이 태초의 둘레길을 섬섬이 돌아 혼돈을 벗기어 물길을 열어 젖힌다 깊은 숙면에 들고 싶은 이맘때 가끔은 궁금증이 뇌리에 정박하여 연어로 살고 싶은 날들이 허다하다 정녕 섭리의 방향타가 되는것인가 가마우지 헛물켜는 곤두박질에 굽이쳐 내려온 강물들의 왕성한 다툼이 두물머리 점이지대에서 돌아나온 바닷길이 열리는 모습을 읽어 내린다 가끔은 잃어버린 편린을 거슬러 겨울바다에 발을 담근 별들의 초대로 섬의 외딴집에 문패를 다는 거룩한 밤 긴 하루를 정박시킨 '비진도'*의 깊은 곳 여기,오늘 따라 기도 시간이 무척 길어진다 *비진도:경남 통영에 위치한 섬 저녁노을 칠흑의 어둠을 이기고 까만 불씨로 가둬버린 노을의 춤사위는 햇볕에 취해 가슴 깊이 거나하게 젖어든다 서산 마루에 멈춘 해는 붉은 면면에 언질을 준 파란 하늘을 수평선 위로 게눈 감추 듯 흥건히 가슴을 적신다 처서가 빚어낸 낙조의 아름다운 댓가이다 서로의 아름다움을 격려하며 낮과 밤이 오버랩하는 동안 붉게 물든 찬란한 노을은 뒹굴뒹굴 앵두빛으로 온종일 빨갛게 열애중이다 허남기 프로필ㅡㅡㅡ 경북영천 출생/2014<문장21>등단 경북문협회원/영천문협편집국장 시에문학회회원/시객의 뜰 기회국장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메일: hurdang62 @daummail.net  
757 4월이 5월에게 외1편/나병서 file
편집자
363 2019-07-01
4월이 5월에게 묻는다 나를 사랑하세요? 제주가여수가진도가광주가 4월이 5월에게 묻는다 “시몬요안누, 아가페스 메 플레온 투톤?” “시몬요안누, 아가페스 메?” “시몬요안누, 필레오 메?” 4월의 예수가 5월의 예수에게 묻는다 여보세요? 나를 사랑하세요? 너 조선에게 묻는다 나를 사랑하세요? 조선땅 깊숙히 스며든 하늘빛 피 들 이 솟아나와 하늘 바 라 며 묻는다 나를 사랑하세요? 날개깃털 리빙스턴데이지 자다깨다를반복한다 꿈속에서는고흐의색감이눈으로내리고있다 나는한쪽눈이보이지않았고 투명한허공위에서 그녀와함께눈으로내리고있다 내리막길을긴머리칼휘날리며뛰어오는 그녀 나는일을끝마쳤고돌아가는길에는 연기가피어오르고있다 지폐네장이불안하게접힌채 어딘가가야하는듯한 어지럽고뒤섞여버린 그런꿈속에는 일주일간의고된노동후에느끼는 그런저녁이살고있다 “당신은 사랑하는 것들이 있었나?” “나는 알고있지” “당신은 그 것들의 뒷모습을 모두 보았어” “지금도 사랑하는 것이 있다고?” “아니, 잠시 후 그 것의 뒷모습을 보게될거야” “조금은 억울하고 아마 외로울거야” 토요일저녁은두꺼운껍질이으스러지는 그런신음소리를내고있다 지금빛은검은색수트를입고그것들의뒷모습들은 사라진다 오늘잠시깃털가진뒷모습을보았지 나는사랑했던모든것의뒷모습을보았지만 날개깃털을가진뒷모습은처음이지 “얼마나 날고 싶었을까?” “날아가려고 하고있잖아?” “아니, 사랑했던 모든 것들의 뒷모습을 보았다니깐. 리빙스턴데이지!“ 멈추는시간의뒷모습을보면서 나는자는것을멈출것이고 다시는잠깨지도않을것이다 리빙스턴데이지의색감으로날아오르는 고흐의눈발도멈출것이고 나는여전히한쪽눈이보이지않은체 그녀없이도허공에서멈추는것이지 “사랑하는 것이 있었다고?” “지금 사랑하는 것이 있다고?” “뒷모습을 보게 될거야” “멈추게 되겠지” 날개달린뒷모습은모든것이 이곳이고향이아니라는 땅위에서는태어나지않았다는 언젠가는 내가보았던사랑했던모든것의뒷모습처럼 뒤돌아서날아간다는 그것을약속하고있는것이지 “사랑했었던 적이 있었다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고?” 보게될거야 세상은아름다와야된다는 당신의거짓말을 그날개깃털가진뒷모습을. 나병서 시인/ 시집 지렁이* 똥* 붉은 죽* 별바라기*  
756 책을 죽이는 여자 외 1편/김주애 file
편집자
230 2019-07-01
책을 죽이는 여자 책을 죽이지 않고 어떻게 보느냐며 빳빳하게 각이 잡힌 책장을 꺾어 단번에 때려눕히는 여자 이래야 책을 볼 맛이 난다고 침을 묻혀 책장을 펼치자 펄럭이던 글자들이 가지런히 눕는다 풀물 든 손은 러시아 자작나무 숲을 거니는 안나 카레리나를 불러내어 저녁밥을 짓고 고랑마다 깨알 같은 씨를 오차도 없이 심는 솜씨에 주눅 든 글자들은 요리를 거든다 침을 콕콕 찍어가며 간을 보는 페이지마다 나타샤의 나풀거리는 드레스 자락에 간물이 배어들고 하루일로 고단한 다리를 잘근잘근 주물러 준다 하루 종일 구부린 허리를 펴듯이 그렇게 그녀의 손에 죽은 삼백 쪽 책은 각이 잡힌 채 머리맡에 죽어있다 몸부림의 흔적처럼 숨구멍처럼 부풀어서. 복종의 자세로 서 있는 너에게 너는 항상 나를 보고 있었다 문을 열면 마주치는 그 곳에 서서 속속들이 나를 들여다보고는 죽음을 선택했다 질질끌거나 매달리는 방법이 아니라 단방에 끝내버리는 통째로 잎을 떨군 너의 앞에서 희미하게 웃었던가 너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내 이름을 불러보았다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일처럼 너는 가고 남은 나는 죽음을 생각한다 놓쳐 버린 말이 무엇이었을까 김주애 경북 상주 출생. 2014년 시집 『납작한 풍경』으로 등단.  
755 눈길 외1편/김수화 file
편집자
225 2019-07-01
눈길 눈길로만 키운 것들엔 닿을 수 없는 애절함이 스며있다. 북쪽으로 난 서재 창 너머 발길은커녕 눈길조차 외면당한 후미진 곳 나리꽃 몇 송이 몇 년째 저 혼자 세월을 이고 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 그저 묵연히 바라만 볼 뿐 지독한 가뭄에도 물 한 모금 건네지 못했지만 때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창을 두드린다. 출렁이는 빌딩숲 꼬박꼬박 내는 월세에 저당 잡혀 연애도 결혼도 자식도 꿈도 희망도 포기해야하는 5포 세대의 막막한 산길 같은 청춘이 시름시름, 산그늘마냥 깊어가도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봐야하는 물노을에 깃든 마음길이다. 시간의 그림자 물새는 파문을 열어 노을빛 퍼 나르고 연잎에 맺힌 사리 마지막 빛 사라지면 어둠이 나비 앉듯이 소리 없이 내린다. 가슴속 스민 어둠이 가을의 끝 날과 같아 세월이 그려놓은 삶의 무늬 따르노라면 어릴 적 눈감고 걷던 그 골목에 서 있다 한생을 풀어놓는 소나기 내리는 밤 그리운 이 볼 수 없어도 꽃밭 일구는 마음으로 어둠도 지우지 못할 그림자로 남는다. 김수화 약력 2003년 자유문학 시 부문 신인상 수상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북여성문학회 회장(전), 백수문학제 운영위원, 경상북도문인협회 편집위원장, 김천문인협회 사무국장 , 논술 토론 강사. 제3회 경북여성문학상 수상. 2018 김천예술인 공로상 수상, 시집 ‘햇살에 갇히다’  
754 유월 외1편/강미정 file
편집자
326 2019-06-01
유월 텃밭에는 타 죽을 것 같은 마음을 부려놓고 풋것이 심지를 올린다 풋것은 초록의 맹목을 보여주는 것일까 맹신자처럼 하늘을 향한 기도를 텃밭에 촘촘하게 못 박은 것일까 반은 볕에 녹고 반은 살아보려고 오체투지 하는 풋것의 머리에 물뿌리개로 성수 같은 물을 뿌리면 당신에게 못 박힌 마음이 가장 먼저 타고 마음을 퍼낸 울음소리로 가장 늦게 우는 당신도 나도 벙어리처럼 질문을 잠근 염천을 가졌다 소리도 없이 타들어가는 우렛소리를 울음 속에 메우고 반이나 녹아 없어진 마음을 다 태우고나서야 울음도 시시해져 우렛소리도 염천도 순한 짐승처럼 핏줄에 새겨진다 배웅 그날 저녁은 생가지 타는 연기가 가슴에서 일어 눈이 매웠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보내온 이메일에는 악보가 불타고 있었다 바람 속으로 첼로선율이 뜨겁게 날아가고 있었다 당신의 마음이었다고 생각했지만 당신을 보내지 못한 내 마음임을 알았다 악보가 불타는 동안 미움이 남았으면 다 태워 달라는 주문 같기도 했다 인생은 불타는 악보처럼 연주해야 한다고 노래는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한다고 불이 닿은 악보는 붉게 번지다가 검게 날렸다 노을 속으로 스몄다 소리를 놓아주며 바람이 되고 있는 악보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고 있다고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가슴을 퍽퍽 치면서 말하던 당신은 내 마음의 어디에 스미는 걸까 매운 연기가 일어 눈이 오래 매운 것이 불타는 악보 때문만은 아니었다 경남 김해 출생 1994년 『시문학 』에 ‘어머님의 품’외 4편으로 우수작품상 등단 <빈터>동인, (사)한국작가회의 회원. 시집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상처가 스민다는 것 』『타오르는 생 』 등  
753 단백질14-3-3 외1편/손창기 file
편집자
351 2019-06-01
단백질14-3-3 태반 속부터 나는 복제되어 있는 동물이다 달려오는 승용차를 향해 반인반수의 몸을 던지고 싶을 때가 있다 세포자살을 유도하는 유전자, 단백질 14-3-3을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여름 들판의 바람까지 복제되었다고 느꼈을 때, 늑대 스널프*는 야성까지 복제된 완벽한 방어기제, 아주 비릿한 향기. 빳빳한 창살 속에서 추억이 흐려진다면 자살본능은 흘려버린 추억을 담는 것, 잃어버린 길에서 선율을 찾아보는 것, 마지막 울음소리로 달에 숨구멍을 내는 것, 늑대는 달밤을 이빨에 끼우고 들판을 내질렀다 얼굴에 드리운 죽음은 뼈 없는 달밤에 가한 혁명, 암호의 해독기 도시의 복제 동물에게 퍼져있는 14-3-3 단백질, 너와 나의 몸속에 은밀하게 봉합된 맹독. *2005년 서울대 연구팀이 탄생시킨 세계 최초의 복제 늑대 발등 섬은 흰제비갈매기를 불러 모은다 물결이 빚은 발등이 섬의 몸이기 때문이다 가라앉지 않는 발등에 새가 앉는 꼴이랄까 피소니아 나무가 팔을 벌려 새들을 길들인다 날개를 달래야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태평양을 날아온 지친 새들에게 일용할 열매와 둥지를 내어 줄 때 도꼬마리처럼 끈적한 씨앗들이 깃털에 묻는데, 가끔 새벽에 새의 발바닥이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가지 위에는 햇살과 지난 여름, 죽음과 갈매기들 어미새는 몸까지 딱딱하게 굳어 입멸한다 새를 잡아먹는 나무! 날개는 다리를 달래고, 다리는 발등을 달래는 새 죽음에 애걸복걸하지 않는 새 저승 갈 때 귀때기 맞고도 꿈쩍하지 않는 새, 깃들인 침묵으로 바다는 발바닥을 숨긴 채 뼈를 없애는 중이다 새의 가슴뼈가 나무의 발등뼈에 스며듣다 여린 발등에서 곧추 올라 자신의 골격을 다지는 나무들, 그들의 골격은 점점 새의 뼈를 닮아 간다 끊임없이 죽음을 건네주면서 그들은 날개 달고 이 섬을 떠나고 싶었던 걸까 이제 새가 열매로 태어나 날고 있다 약력> 손창기 - 경북 군위 출생. 200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달팽이 성자』가 있음. jangoyes@hanmail.net  
752 슬픔 외 1편/채형복 file
편집자
317 2019-06-01
슬픔 -자연과학자 박 아무개 교수에게 생명을 창조하는 인간에게 신이 설 자리는 없다 다윈을 믿고 따르던 어느 발생학자의 호기로운 말을 기억한다 둘이서 서로의 말을 주고받으며 논쟁하는 날은 존재는 겉껍질을 벗고 말랑한 속살로 탈각하였고 관념은 번데기를 벗고 화려한 날개로 우화하였다 수백 개의 새로운 하늘이 만들어지고 그만큼의 낡고 오래된 땅이 허물어졌다 우리는 경계를 벗어난 전지전능한 창조주-신이었고 인류가 피땀 흘려 쌓아올린 정교한 지성의 바벨탑을 경배하는 학자였다 따뜻한 감성의 피가 흐르는 이성의 차가운 판단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우리는 행복한 순교자로 진리의 제단에 기꺼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학문은 영혼의 배고픔을 채우지 못하는가 나의 나를 복제하여 무한수열로 줄 세우고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삶을 꿈꾸던 그는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죽는다는 자명한 자연의 이치를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나를 가두고 얽어매는 관념에 굴복하여 노예로 사느니 긴 창을 꼬나물고 앞으로 엎어져 죽을지라도 자유인으로 살리라 결기를 세우고 사는 나는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에 허리 꺽은 그 자연과학자가 미워졌다 담판 - 손 아무개 교수에게 텅 빈 카페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다고 노래도 감미롭고 울기 좋다고 억지웃음으로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갈바람에 서걱대며 억새 부딪는 소리가 났다 울지 마라, 말하지 못하고 우는 만큼 행복하여라, 궁색하게 위로하는 내게 그가 말한다 불의한 현실에서 물러서면 비겁하잖아요 그는 지금 덧칠된 대학 역사의 민낯을 벗기고 늙어 구부러진 정의의 허리를 펴는 중이다 먼지 낀 검은 현실을 붓에 찍어 교룡의 얼굴에 까만 눈동자를 그리는 중이다 양심과 지성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면 머잖아 정의로운 사회가 오겠지요 불의한 현실에 온몸으로 맞서고 깨지면서도 그는 가치 있고 고귀한 걸음을 걷고 예수의 십자가를 등에 메고 힘겹게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는 신앙에 물든 순교자가 흘리는 진한 피 냄새가 난다 그렇다, 그는 강고한 현실의 제단에 기꺼이 자신의 몸을 희생물로 바칠 것이다 신은 그의 옆구리에 날카롭고 예리한 칼날을 꽂아 넣고는 외길 구석으로 세차게 몰아치겠지 약속은 약속 내게 한 약속을 지키라 너의 심장 가장 가까이에서 살덩이 일 파운드를 뭉텅 잘라 내게 바치라 그는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신과 거룩한 담판을 벌이리라 좋습니다, 신이여! 오늘 나는 기꺼이 심장을 내놓을 것이니 정의로 포장된 칼과 저울을 준비하시오 머리카락 한 올의 오차도 없이 분노로 살아 펄떡이는 내 심장 가장 가까이에서 살덩이 일 파운드를 한 방울의 피도 흐르지 않게 잘라 가시오 그는 지고 싶어도 이길 것이고 신은 이기고 싶어도 질 것이니 검은 법복으로 가린 포샤의 날선 비웃음이 할렐루야 신의 영광을 길이 찬송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