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었던 나를 펼쳐 놓으니


오래된, 눅눅한 책들을

햇볕에 말리듯이

나를 햇볕에 펼쳐 놓으니,

그렇게

몇 시간이고 서 있었는데

눈만 큰 벌레들이

몸속에서

기어나와

내 그림자를 갉아먹었다


그것을 본 나는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급하게

몸을 접었다



마지막 물



아파트 베란다 좁다고,

신경쓰는 데를 줄이겠다고

저를 산에 심어 놓고서

주고 가신

마지막 물, 방금

다 마셨어요

식어가는 의식을

맑게 데웠어요


주인님의 발자국 소리로 자란 저는

젖떼기 할 나이가 훨씬 지났지만

지금부터는


바람 소리에 겁먹지 말고

햇볕에 졸지 않고,

추위에 지레 놀라 눈감을 생각을 하지 않도록

주인님,

온 힘을 쏟겠지만

쏟아야 하지만

무서워요!


오형근

1978년 《시문학》주최 전국대학문예 시 당선, 1988년《불교문학》· 2004년《불교문예》로 등단. 시집 『나무껍질 속은 따뜻하다』,『환한 빈자리』, 『소가 간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