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2호...
   2019년 10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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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79600 2014-11-03
778 수필 촌평(隨筆寸評) /채선후 file
편집자
209 2019-09-02
수필 촌평(隨筆寸評) 얼마 전 모 문학창작지원금 수필부문 심사평(審査評)을 읽었다. 긴 심사평을 짧게 요약하자면 대부분 일상을 소재로 잡다하기 그지없고, 실험작을 기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요즘은 수필가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 유명 인사들의 수필, 에세이, 산문이라는 제목 하에 정치적, 철학적, 교훈적인 내용에 자기 목소리를 담은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저서들은 많지만 거의 비슷한 분위기다. 심사위원도 새로운 분위기의 글들을 만나고 싶어 촌평에 내비쳤을 것이다. 한 권의 수필집은 새로운 세계와 같다. 수필가는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고픈 세계를 펼쳐 낸다. 그런 수필집 첫 장을 넘기면서 마구 설렌다. 어떤 세계를 담고 있을지 첫 문장에 대한 궁금증으로 떨리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몇 장 넘기다 말고 덮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필집에 담긴 지식은 백화점 판매대 상품처럼 잘 포장된 듯 보이고, 살아온 경험은 훈계적이며, 훈계는 대차서 그만 기가 죽는다. 내 경우는 그렇다. 혹자는 수필은 이것저것 붓 가는 대로 쓰기만 하면 다 담을 수 있고, 담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잡다한 것으로 단정 지어 하찮게 여긴다. 어떤 이는 이런 면을 두고 잡문(雜文)이라고도 한다. 고문(古文)에서는 공적(公的)인 문서에 해당하는 글의 종류 외 개인적인 글은 따로 잡록(雜錄)으로 묶었었다. 잡록이나 잡문은 글의 종류가 여러 가지 섞여있다는 의미지 하찮은 글은 아니었다. 오히려 잡록(雜錄)에 심채(心彩)가 고와 지금에 봐도 아름다운 수필이라 할 수 있는 글들이 많다. 이쯤에서 수필의 시작을 잠깐 적어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송나라 홍매의 『용재수필』을 수필(隨筆)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용재수필』은 수필이란 명칭이 문집 제목에 보이는 시작이지 수필이라 할 수 있는 문형(文型)의 시작은 아니다. 수필의 시작을 파헤치다 보면 고문(古文)의 문형 중에서 전부(詮賦)를 만날 수 있다. 유협은 『문심조룡』에서는 전부(詮賦)에 대해 말하기를 1) 전(詮)은 저울에 달다는 의미고, 부(賦)는 운문의 형식으로 사물에 대해 폭넓으면서도 상세하게 서술한 것이 특징이 있으며, 『시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즉 시의 창작 방법 중 하나였던 부(賦)로 쓰인 산문이 점점 문체로 자리 잡은 것이 수필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산문 중에서 문(文)은 작가의 마음이 실린 글이며, 마음이 실리지 않은 것은 필(筆)이라 한다. 어찌 되었든 수필은 언어예술인 문학이다. 작가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필은 작가 마음이 곧, 예술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文)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예로 문(文)은 ‘유지하다’라는 뜻이 있어 감정이나 품성을 올바르게 지켜 맑은 상태가 된 후에 붓을 잡는 것이며, 그때 붓 가는 대로 쓴 산문이 수필이 될 수 있다. 곧, 수필은 마음의 울림을 좇아 올곧게 유지하여 그 울림을 따라 쓰는 것이다. 그렇게 쓴 문장은 아름답다. 또 누군가에게 약(藥)이 되기도 한다. 약과 같은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을 보여 줄 필요는 없다. 대차게 고집이 세지도, 걱정 넘치는 훈계가 아니어도, 세상을 향해 정치적이 아니어도 된다. 수필에 있어 실험은 무엇인가. 수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내면에 있다. 수필가는 현실과 부딪히면서 끊임없이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고뇌와 번민, 반성, 고찰 이런 것들이 문(文)에 촘촘히 베어 무늬를 만들고, 무늬는 시간이 지나면서 향기를 담아낸다. 곧 수필가는 무늬와 향기를 유지하기 위한 실험을 해야 한다. 그런 작가의 상황을 나는, 선정(禪靜)이라 하고 싶다. 수필가는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참되고 바른 이치를 생각하고, 괴로움을 떠나서 고요한 경지에 이르게 하여 움직이지 않는 상태인 선정(禪靜)2) 을 유지해야 한다. 선정(禪靜)은 특정 종교인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수필가는 선정(禪靜)에 들듯이 글을 써야 하며, 선정에 들기 위한 실험을 해야 한다. 여기서 선정(禪靜)은 쉽게 말하면 설거지다. 작가 자신이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번민과 밖에서 솟구쳐 오르게 하는 세상의 온갖 것들을 설거지해야 한다. 설거지를 어떻게 해야 될지, 어떤 상태로 닦을 것인지, 무엇으로 할 것인지 끊임없이 실험해야 한다. 그래서 맑고, 깨끗한, 개운한 상태를 유지한 순간 붓을 들어야 한다. 그 순간을 따라 쓴 문장은 아름답다. 간혹 어느 시골농부의, 세상 끝에 서 있는 노동자의, 까막눈 할머니의 삐뚤거리는 글에서 묵직한 울림이 단어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글을 만날 수 있다. 그런 글이 아름다운 수필이 된다. 수필은 굳이 수필가가 아니더라도, 문학이론을 모르더라도,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쓸 수 없다. 내게 수필은 그런 것이다. 자꾸만 ‘수필’이 뭔지 속에서 물어온다. ‘수필’, 그 짧은 단어에 답문이 길어지고 있다. 오전 내내 수필에 관해 끄적거려 보았는데 모르겠다. 몇 줄 써 놓고 창밖을 바라본다. 해는 겨울을 꼿꼿이 바라보고 있다. 언 땅 위를 초록 과자상자 같은 버스가 기어가고 있다. 이 추운 날에도 오늘을 유지하기 위해 저리 다니는가 싶어 대견스럽다. 밖은 풍경을 따라 겨울다웠다. 간밤 술 취해 들어온 남편은 아직까지 자고 있다. 술국 타령이 슬슬 기어 나올 때가 되었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 심사(心思)가 복잡하다. 내게 오늘은 이렇게 수필되어지고 있다. 채선후: 약력 2013년 『에세이스트』 등단. 수필집 『십오 년 막걸리』, 『문답 대지도론』, 『사춘기자녀와 부모를 위한 대지도론 마음 비행기』, 『머뭄이 없는 가르침』, 『기억의 틀』, 『Waiting For The First Snow』, 『Mind Glider』 champ5263@hanmail.net 1) 유협, 성기옥 역, 『문심조룡』,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46쪽. 2) 원효, 조용길 외 1인 역, 『금강삼매경론 상』, 동국대출판부, 2002, 43쪽.  
777 J 수평선 외1편/차영호 file
편집자
509 2019-09-02
J 수평선 니 가슴 속 여*에 얼마나 깊은 시추공을 뚫어야 마그마가 쏟아져 나오겠니? 포항 지열발전소 4.5km 구녁 깊이 정도로는 변죽만 울리지 한 열 배쯤 후벼야 풀떡 풀떡이는 시뻘건 짐승 입김으로 보일러를 달구면 수평선 너머로 되밀려가는 세월역주행열차를 전속력으로 운행할 수 있을 거야 내가 거기에 훌쩍 올라타면 앳된 얼굴로 J 별안개 자욱한 차창 밖을 내다보며 객실에 외따로 앉아 있겠지? *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 학꽁치 수평선 양포 방파제 테트라포드에 올라 곤쟁이 몇 주걱 흩뿌리니 굼질굼질 울트라마린 블루 캔버스 가득 빗금을 그으며 부상하는 학꽁치 떼 작은 미끼를 물고 파드닥 꼬리치는 학 날개 없는 것들이 날아오르려면 눈 질끈 감고 미끼를 물어야 하나? 패스워드를 누르면 펼쳐지는 둥근 물침대 바다는 브래지어 끈 끌러 던지고 너울 너울 자지러지고…… 살근살근 수평선 위로 잠망경처럼 떠오르는 살구색 부표 한 기 차영호 (車榮浩) 1986년 《내륙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집 『어제 내린 비를 오늘 맞는다』, 『애기앉은부채』, 『바람과 똥』 등 youngghc@hanmail.net  
776 노래를 불렀어 외1편/강미정 file
편집자
180 2019-09-02
노래를 불렀어 하얀 꽃이 피고 지고 피고 지는 꽃밭이었지 처음엔 콧노래로 시작했어 중간쯤에서 콧날이 시큰거렸지 이 대목에선 같이 불러야 하는 거야 어깨에 손을 얹는 바람 꽃 진 그림자는 내 울음을 자꾸 덮어주었지 하염없이 밀려와서 하염없이 밀려가는 노래였어 여럿이 부른 노래였지만 혼자만의 노래였어 하얀색의 노래 큰 목소리로 부르다가 꽃이 피는 것을 지켜보았지 꽃이 피는 것은 왜 그리 아픈지 꽃이 지는 것은 왜 그리도 아픈지 부르던 노랫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점점 더 작아졌어 아무도 모르게 노래 부른다는 것이 왜 그리도 아픈지 마침내 울음으로 변하는 노래였어 그대가 내 이마를 깊게 짚었다가 슬며시 손을 떼는 노래였어 내일 지병이 도져서 당신에게 갈 수 없는 날을 내일이라 부르겠습니다 허공에 주소를 두고 내 마음에 기울기를 만든 당신 각이 사라지는 지점을, 번개로 살았으나 돌아오지 않는 당신을, 내일이라 부르겠습니다 여전히 새 것인 채로 모든 일어나지 않은 것들의 묘지, 낡고 오래되었으나 사라지 않는 욕망과 위기와 결여와 불행의 도피처 당신이라 부르겠습니다 <약력> 강미정 경남 김해 출생 1994년 『시문학 』에 ‘어머님의 품’외 4편으로 우수작품상 등단 <빈터>동인, (사)한국작가회의 회원. 시집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상처가 스민다는 것 』『타오르는 생 』 등  
775 호박넝쿨을 바라보며 외1편/구재기 file
편집자
158 2019-09-02
호박넝쿨을 바라보며 울타리를 부여잡고, 안아주며 쉼 없이 벋어나고 있는 호박넝쿨 집 뒤 언덕위에 무리로 선 대나무는 안아주는 데 서로에게 너무 인색해 있지 않나 싶다 밤과 낮으로, 봄에서 겨울에 이르기까지 저 깊은 산골짜기 천인단애 위에서 손깍지 끼고서도 단 한 번도 두 손은 놓지 않다가 마침내 온 몸을 휘둘러 부둥켜 끌어안은 채 진한 향으로 온 산을 물들이고 있는 칡넝쿨이며 등넝쿨이며를 바라보며 우리는‘갈등葛藤’이라 역겹게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 갈등을 풀어 머언 하늘을 향하여 아침을 외쳐 노래하는 노란 호박꽃 한 송이 세상은 찬란한 아침으로 깊어진다 시詩란? 쓸 모 없는 구절들만 모아 그 구절들로만 이루어진 백 편 천 편의 시보다 한 그루의 나무가 곧 시詩다 꼭 쓸모만큼 잎 돋우고 꽃 피우고 열매 맺고 가진 거 다 버리고는 깊은 동안거에 들어간 겨울나무가 곧 한 편의 시다 < 구재기 약력 > • 충남 서천 출생 •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 시집『휘어진 가지』와 시선집『구름은 무게를 버리며 간다』등 다수 • 충남도문화상, 시예술상본상, 충남시협본상, 한남문인상, 석초문학상 등 수상. • 충남문인협회장 및 충남시인협회장 역임 • 현재 40여년의 교직에서 물러나 <산애재蒜艾齋>에서 야생화를 가꾸며 살고 있음  
774 목숨을 부러트리다 외1편/ 권 천 학 file
편집자
238 2019-09-02
목숨을 부러트리다 나, 당분간 집을 떠나야겠다 몸 안의 묵은 똥 찌꺼기들을 비워내기 위하여 더러움에 주둥이 박고 우글거리는 벌레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떠나려는 발목을 놓아주지 않는 화분들 오래 가꾸어온 것들이 가로 막는다 손때 묻은 것들이 자행하는 배신행위에 아직도 익숙지 못해 흔들린다 찢어지고 터진 상처마다 쓰라림을 우려내는 핏물 나를 떠나게 만들었던 그 새빨간 핏빛이 내 안의 정신병인자를 발작시킨다 화분을 뒤엎는다 미안하다 목숨이여! 죽어 마땅하다 친구의 주머니 속에 칼이 들어있고 다정한 눈웃음에 독약이 묻어있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체투지로 견뎌내야만 했던 세상 속에서 정 혹은 미움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끝내 집착을 부추기는 너, 떠나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다시 돌아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아서 뜨겁게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목숨도 부러트려야 한다 용서하라 용서하라 용서하라 빈 도시의 가슴에 전화를 건다 전화를 건다 빈 집, 빈 방, 도시의 빈 가슴에 여보세요, 여보세요 ▶►▸▹▹▹◦◦◦ … … … 정좌한 어둠이 진저리를 친다 화들짝 놀라 깬 침묵이 수화기를 노려본다 거미의 파리한 손가락이 뻗어 나와 벽과 벽 사이 공허의 모르스 부호를 타전해온다 뚜뚜뚜⦁⦁⦁⦁뚜뚜⦁⦁⦁⦁⦁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 ~ ~ 뼈마디를 일으켜 세운 싸늘한 어둠이 몰고 온 찬바람 구석진 한 귀퉁이에 겨우 발붙이고 있는 체온을 딸깍 꺼버린다 가느다란 신경 줄 하나 수화기 옆에 오똑 웅크리고 앉아 오로지 듣고 있다, 침묵의 제 발자국 소리를 공허의 빈 들판에서 우롱, 우롱, 우롱‥ ‥ ‥ 소용돌이 치는 죽음 같은 절망, 절망 같은 죽음을 쓸고 오는 금속성의 바람소리를, 대리석처럼 반들거리는 정막의 물살 위에 부딪쳐 미끄러지는 벨소리 메아리 진다 빈 집, 빈 방, 빈 도시의 가슴에서 헛되이 ~ 헛되이 ~ 약력 *하버드대학교주최 번역대회 우승(시 [2H₂ +O₂ =2H₂O] 등 17편 번역:김하나).(2008) *코리아타임즈 주최 한국현대문학번역대회 시 부문 우승. 번역:김하나, 모크린스키(2010년) *경희해외동포문학상 대상 수상.(단편 [오이소박이](2010년) *일한환경시선집 [地球は美しい]에 시『帰郷』이 선정 수록됨(2010) *WIN(Writers International Network)Distinguished Poet Award(2015)수상. *『Multicultural Creative Writing Collection 2015』에 시 『2H₂+O₂=2H₂O』 와 『Middle Age (중년)』가 선정수록됨.(2015) *미국 『Peace Poems』의 World Peace Poets 40인에 선정됨(2015) *캐나다 (BC주)포트무디시의 이달의 문화예술인 선정됨(2016년) *저서:한글시집 12권/ 한영시집 2권/ 일어시집 1권/ 편저[속담명언사전]/외 다수.♣  
773 미지의 세계 외1편/박일아 file
편집자
177 2019-09-02
미지의 세계 처음 본 바다는 파도만 밀려왔지 바다 속을 수시로 TV에 보여주니 바다를 떠올리면 물아래 살아 숨쉬는 물고기, 해초, 산호 등 아름다운 정경이 보이고 때로는 쓰레기 쌓이고 백화현상으로 죽어가는 깊은 바다 속도 보이지만 한 치 사람 속은 평생 함께한 내 마음도 알 수 없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인류대표 이세돌과 바둑대전에서 4승1패를 했다고 세계의 이목이 주목되고 있으니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는 컴퓨터가 나올까 먼 미래에 인간이 로봇에게 지배당하는 날이 올까 목화밭 열매도 맛있고 꽃도 예쁘다고 시어머니께서 손에 쥐어준 목화 씨 화분에 심었더니 따사로운 햇살에 움이 터 분홍색 귀여운 꽃이 피고 지고 파란 열매 익어 탁, 벌어져 하얀 솜꽃이 환하게 웃자 새하얀 눈송이 덮인 들판 보이고 팝송 ‘목화밭’이 들리네 목화솜, 이불 한 장에 온가족 발 덮고 아랫목에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던 시간들 흘렀다 편리하다고 인조 솜과 오리털, 양모, 인견에 밀리고 요즘은 목화송이 가지를 꽃꽂이 소재로도 이용하지  
772 열쇠의 경고 외1편/박은주 file
편집자
148 2019-09-02
열쇠의 경고 열쇠가 사라져 버렸다 열쇠 장수는 자물쇠 따는 값을 후려치지만 열쇠 간수를 못했으니 어쩌랴 철컥, 그 잠기는 소리 너머로 이쪽과 저쪽을 가로막는 건 어쩌면 그 무엇도 아닌 어머니가 열어보고 싶었을 아버지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사람 살아가는 일이 때로는 멍울이 되어 저마다의 가슴에 자물쇠처럼 매달리는 것 열쇠 장수는 그걸 알고 값을 후려치는 것이다 세상의 온갖 자물쇠와 세상의 온갖 문에 대하여 못 여는 게 없다던 열쇠 장수가 돌아간 뒤 오래 걸어두어 잊고 있는 자물쇠가 내게도 있다는 걸 열쇠를 기다리며 녹슬어 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자물쇠 하나가 매달릴 때마다 내 안에 꽃망울 하나씩 떨어져 버렸을지도 모르는데 자물쇠 하나가 매달릴 때마다 누군가의 가슴에 멍울 하나 매달았을지도 모르는데 비는 내리고 열쇠 장수는 가고 없다 누가 이름을 불러주면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는 한낮의 바람 같은 훈훈함이 있는 것 같고 오래 입은 스웨터의 편안함이 있는 것 같고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는 혼자가 아니라는 든든함이 있는 것 같고 돌아보면 언제나 기다리는 자리가 있는 것 같고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는 같이 걸어가는 길이 있는 것 같고 함께 나누어 온 이야기가 있는 것 같고 귀뚜라미가 가을을 노래하듯 누가 이름을 불러주는 그 목소리에는 들어도, 들어도 듣고 싶은 노래가 있는 것 같네 다정한 벗이 이름을 불러주듯 밥은 먹었느냐고 별일은 없느냐고 물어봐 주는 마음이 있는 것 같네 ............................................................................. 박은주 2007년 『아람문학』등단. 2012년 『사람의 문학』에 작품 발표 후 활동 시작 시집『귀하고 아득하고 깊은』이 있다.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 이메일: qwea0626@hanmail.net  
771 파 외1편/임영석 file
편집자
267 2019-07-31
파 ​ 천 번 만 번, 칼질로 네 푸른 의지가 꺾이었다면 어찌 독한 향이 남아 있겠느냐 외롭다는 것, 고독하다는 것 속을 깨끗이 비우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허공의 집 한 채 갖기 위해서 온몸을 비우고 비워 향기로 만들어 놓고 거꾸로 써 놓은 느낌표 하나, 별빛으로 완성할 것인지 태양으로 완성할 것인지 모르겠지만 뿌리째 뽑힌 파들은 그 느낌표 하나 완성하기 위하여 그대 눈물을 훔쳐낼 뿐이다 파 때문에 울었다고 말하지 마라 파는 그대 눈물로 느낌표 하나 완성하고 이 세상 삶 즐거웠다고 말할 것이다 참기름 냄새를 맡으며 -1987년을 기억하며 깨알처럼 많은 사람 그 고통을 압착하여 자유라는 참 맛을 얻었다 너도 나도 한몸이 되어 고소한 맛 하나 남겼다 임영석 1961년 충남 금산출생, 1985년 『현대시조』 봄호 2회 천료 등단, 시집으로 『고래 발자국』, 외5권 시조집으로 『꽃불』외 2권, 시론집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시인』, 시조선집 『고양이 걸음』 등이 있다. 제1회 시조세계문학상(2011년, 수상작 초승달을 보며) 제15회 천상병 귀천문학상 우수상(2017년, 수상작 받아쓰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강원문화재단(3회), 원주문화재단에서 각각 창작지원을 받았다  
770 책아, 너 거기 있어서 외 1 편/하재영 file
편집자
336 2019-07-31
책아, 너 거기 있어서 소리란 것을 만드는 곳에는 으레 움직임이 있다. 발에 채인 깡통이 데구루루 굴러가는 길바닥에 퍼지는 물결 같은 소리도 그렇고 강둑 퍼드득 나는 백로 날갯짓도 하늘에 구름을 둥둥 띄우며 소리를 만든다. 책아, 너 거기 있어 그래 보수동 책방 골목이라든지, 청계천변이라든지, 아니면 아직도 문 닫지 않고 헌책방을 지키는 충청도 작은 읍이라든지, 또는 먼먼 나라 관광지 좁은 골목 고서점에서 만나는 먼지 묻은 책이라든지, 그런 책들은 잔잔한 소리를 갖고 있다. 먼 여행 중 구입한 책을 여행에서 되돌아와 넘기는, 사랑하는, 첫사랑 사람의 손을 잡은 것처럼 손 끝 떨리는 그 순간 책 속 글자들은 진달래꽃처럼, 벚꽃처럼, 복숭아꽃처럼, 모감주꽃처럼, 능소화 꽃처럼, 호박꽃처럼, 볏꽃처럼, 웃음꽃처럼, 꽃으로, 꽃으로, 꽃으로 자꾸 피어나고 지고 피어나고 책아, 너 거기 있어 어제 즐거웠단다. 책아, 너 기기 있어 오늘 기쁘단다. 책아, 너 거기 있어 내일 행복하단다. 대숲 대숲 속으로 풍덩! 파도 같은 흔들림이 어울려 어울려 또 어울려 스크럼 짜고 움직이는 광장의 목소리로 때론 엄마가 들려주는 자장가로 공명할 수밖에 없는 공간 피리로, 단소로, 대금으로, 장난감으로 빗자루로, 바구니로 그리고 그것들이 아닌 몸 전체로 하늘 향해 봄, 여름, 가을, 겨울 푸른 손 모아 기도하는 하재영 199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1992년 《계몽사아동문학상》 장편소년소설 당선, 동화집 『 할아버지의 비밀』, 시집 『별빛의 길을 닦는 나무들』, 『바다는 넓은 귀를 가졌다』 등  
769 씹외 1편/정동재 file
편집자
1797 2019-07-31
씹 씹의 어원을 어학 사전에서 찾다가 十의 비속어라고 단정 짓네 십팔년 십새끼의 정체성이 다시 빚어지네 니미 씹이네 천문 이야기 낙서가 비하하니 음담패설이네 十의 체위를 논하면 풍차돌리기네 동물적 감각으로 홀 중앙 五가 十을 요리하네 오입을 5 入이라 단정 지을 수밖에 없었네 소우주를 대변해 바꿔 말해보네 뭐니 뭐니 해도 사내는 좆심이네 넣고 빼고 오입 중인 달빛 황홀하네 밀물과 썰물 요동치네 야기된 바다의 씹은 생명의 어머니 십오야(十五夜) 바다가 사리를 빚고 있네 산수유 산수유꽃이 피었습니다 창칼도 없이 방패도 없이 산수유꽃이 피었습니다 매서운 바람 부는데 산수유꽃 피었습니다 창칼 앞에 굳은 내 모습을 꺼내 보여줍니다 꽃 피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눈 덮인 산수유 쪼아 먹고 날아간 새에게 묻습니다 칼바람도 아닌 것이 폐부를 찌르며 파고듭니다 산수유꽃 피었습니다 약력/2012 년 《애지 》로 등단 , 시집 『하늘을 만들다 』  
768 앉은뱅이재봉틀 외1편/손창기 file
편집자
355 2019-07-31
앉은뱅이재봉틀 소리의 도미노, 감꽃이 떨어진다 나무가 감꽃 따서 던진 건 아닐 터 보이지 않는 손이 꽃을 밀어낸 것이다 가지 속에 들어있는 앉은뱅이재봉틀 어머니 한복 만들 때, 꼭 감꽃이 떨어졌다 친구는 감꽃 주우러 가자했지만 재봉틀 돌아갈 때 천을 꽉 잡아 당겨줘야 했는데 천을 당겨야 촘촘히 박음질이 되었는데 겨우내 한 목숨을 괴고 있던 꽃손이, 한 목숨을 허공에 뜨게 한 손잡이가 바람을 휘젖는다 드르르- 다르르- 꽃받침을 돌리는 것이다 소용돌이치며 떨어지는 감꽃에 마지막 인두질한 흔적이 아직 반질반질하다 깃털 하나가 깃털로 개미누에를 쓸어내린다 알에서 갓 깨어난 불안을 보듬는다 손끝과 알몸을 이어주는 깃털 하나, 보듬을 때 손가락 힘과 동작이 일정하다 손끝에 온기의 말을 걸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뒹굴던 어린 옆구리에도 가장 오래된 숨결이 숨어 있을 것이다 새벽부터 동틀 때까지 개미누에가 마주했던 어둠이, 손끝 느낌이 깃가지에 가 닿은 그 어둠이 칠일 지나 애기잠을 잘 때까지 누에의 몸을 메운 것이다 잠자리를 같이 한 내 몸에도 뽕잎 뜯어먹는 소리 배어 있을 것이다 쓸어 모은 부드러움으로 네 번 잠자면 누렇게 실이 목까지 차오른다 섶으로 들어서자 우리 집이 커졌다 잠실蠶室 지붕이 날개를 펼친다 떨어지는 저 깃털 하나가 알을 부화시키고 날개 돋치게 할 것이다 약력> 손창기 - 경북 군위 출생. 200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달팽이 성자』가 있음. jangoyes@hanmail.net  
767 청산도 외1편/곽도경 file
편집자
294 2019-07-31
청산도 당리 언덕 붉은 길 그녀가 걸어간다 아리 아리랑 스리스리랑 덩실덩실 걸어간다 눈 바쳐 소리 얻었으니 뭐에 그리 분할꺼나 서러워 고운 그 길 나도 따라 걸어간다 사람이 살면 몇 백 년을 사나 개똥같은 세상에도 기어이 봄은 오고 송화야 유채 환한 그 날 우리 같이 눈을 뜨자 언덕 위 그 집까지 춤추며 올라보자 돌배나무 허리 꺾인 나무 한그루 서있네 아랫도리에 통 깁스하고 쌍지팡이 짚고 마지막 힘 다 짜내어 꽃송이 토해내네 쉰 고개 넘었어도 살림 서툰 딸 때문에 죽지도 못 한다고 푸념하는 울 엄마 소금포대 위에서 떨어져 허리 아픈 울 엄마 그 마당에 한 그루 돌배나무로 서서 참 환하시네 울컥울컥 배꽃이 피네 약력/ 계간 시선으로 등단 시집 / 풍금이 있는 풍경  
766 무하유지향 無何有之鄕* 외1편/심승혁 file
편집자
293 2019-07-31
무하유지향 無何有之鄕* 바삐 흘러가던 계절의 끝으로 서릿발 같은 겨울이 찾아와 이제는 조금 쉬라고 하얀 입김을 걸어 놓았습니다 화려했던 사는 일이 조금씩 퇴색되는 중에 이제는 조금 쉴까 하여 하얀 시선으로 공간을 가릅니다 촘촘히 엮은 거미줄에 지나던 계절이 매달리고 높푸른 하늘에 띄우던 숨의 회한이 하얗게 흔들리면 분주했던 걸음의 속도를 늦춰 잠시 허공의 안식을 문질러 봅니다 서리서리 차가운 복숭아나무 사이로 거미 한 마리, 어제 걸었던 흔적을 따라 따스한 삶 한 올씩 뽑아 다시 길을 내고 있습니다 *장자의 무하유지향 無何有之鄕 <어느 곳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이지만 우리들의 의식 저 건너편에 확실히 존재하는 안식처를 말한다. 도원경, 이상향, 유토피아와 같은 의미. 들어주는 일 소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짊어지고 온 시간이 울퉁불퉁 달라붙어 거친 바다쯤은 이겨낼 갑옷이 되었고 해변을 때리는 파도를 동그래 안고서야 소리조차 품게 되었다고 했다 소리를 잃어버린 바다가 흔들리는 등대의 불빛 밑으로 잠들면 끈끈하게 지나온 지친 발자국들이 모여 조용히 펼쳐놓는 작은 이야기의 밤, 아직 다 못 들은 소라의 생生이 느릿하게 다가와 말을 건네면 그저 귀를 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고맙다고 했고 서로 그러했다 약력 2017. 1 격월간 문학광장 시 부문 등단 2018. 2 (봉놋방 시선집) 『씨앗,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 공저 2018. 9 2018년 서울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 시 공모전 선정 2019. 3 시와글벗문학회 동인지 제7집 『고요한 숲의 초대』 공저 2019. 6 『시마詩魔』 창간호 참여 2019. 7 월간 『우리詩』 7월호 참여  
765 가다가 서면 외1편/이창한 file
편집자
335 2019-07-31
가다가 서면 낡은 옷자락에 시퍼런 추위가 늦가을 한데 바람으로 매달려 불경 한구절로 읽히고 있다 도대체 버릴 것 없어 아무것이나 가득 채워진 육신의 그릇 무얼 더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뒤쪽으로 난 틈사이로 그나마 비워내고 있는 비망록 후려치는 죽비로 혼절하고 마는 세상사 아무렇게나 보아왔던 이럴 줄 알았다면 멀리 돌아서 갈 걸 달 덩어리로 내려 쏟아지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있는 데로 다 벗고 있다 곡(哭) 뻐꾸기 울음 울때마다 껍질로 흩날리는 벌초하지 못한 묏등에 얹혀 퇴색한 소리로 부서진다 해질녘 그림자 밟혀 울며 돌아가는 눈물은 아무 색 묻어나지 않는 메아리 새야! 엄마하고 불러 보렴 대답 없는 마른 풀 더미 사이로 바람에 묻어나는 아린 엄마 젖내음 이라도 좋겠다  
764 마지막 미션 외1편/김만수 file
편집자
1745 2019-07-01
마지막 미션 - *카시니 하위헌스 죽음의 다이빙 7년을 날아가 검은 별과 마주한 후 기름 냄새 가득 찬 낡은 거죽을 안고 그는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쓸쓸한 다이빙을 보는 것이다 화염을 두르고 몸 던지는 그를 오래 앉았던 나무의자와 돗보기 안경을 정신을 꿰어오던 빛의 화살을 오지랖에 싸안고 뛰어내리는 그를 본다 타이탄의 빛나는 눈물과 거수경례를 뒤로하고 그도 하나의 조각이 되어 깊은 은하로 내려앉는 것이다 사방이 시린 직벽 빛의 조각들 모아 집을 얽고 끝내 어두운 빛 부스러기로 흩어져 가는 그를 팬지 꽃문 닫히는 저녁 초록별 창밖 그늘이 설핏 지고 책상 왼쪽 잉크병이 잔잔히 흔들리는 저녁 팔방으로 날아가 점으로 흩어져버리는 쓸쓸한 다이빙 카시니 하위헌스 *토성 탐사선 *후에 낫으로 사탕수수를 치는 그녀가 부처다 노을 번지는 흐엉강 언덕을 끝내 지켜낸 우림 속 민족주의와 초원 비트 속의 형형한 눈빛들이 빠르게 건조되어가는 궁터에서 달콤한 수액 한 종지를 빤다 어린 시절 베트콩으로 읽었던 그들을 낡은 제국의 처마를 들추고 달아오른 해방의 빛살이 사그러 드는 저기 빛나는 자본의 푸른 수수밭을 본다 *베트남 중부에 있는 도시  
763 접었던 나를 펼쳐 놓으니 외 1편/오형근 file
편집자
469 2019-07-01
접었던 나를 펼쳐 놓으니 오래된, 눅눅한 책들을 햇볕에 말리듯이 나를 햇볕에 펼쳐 놓으니, 그렇게 몇 시간이고 서 있었는데 눈만 큰 벌레들이 몸속에서 기어나와 내 그림자를 갉아먹었다 그것을 본 나는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급하게 몸을 접었다 마지막 물 아파트 베란다 좁다고, 신경쓰는 데를 줄이겠다고 저를 산에 심어 놓고서 주고 가신 마지막 물, 방금 다 마셨어요 식어가는 의식을 맑게 데웠어요 주인님의 발자국 소리로 자란 저는 젖떼기 할 나이가 훨씬 지났지만 지금부터는 바람 소리에 겁먹지 말고 햇볕에 졸지 않고, 추위에 지레 놀라 눈감을 생각을 하지 않도록 주인님, 온 힘을 쏟겠지만 쏟아야 하지만 무서워요! 오형근 1978년 《시문학》주최 전국대학문예 시 당선, 1988년《불교문학》· 2004년《불교문예》로 등단. 시집 『나무껍질 속은 따뜻하다』,『환한 빈자리』, 『소가 간다』등.  
762 식물원 호텔 외1편/김길녀 file
편집자
421 2019-07-01
식물원 호텔 문지기 없는 로비로 들어가는 입구 손 때 묻은 통나무문 빗장 풀면 백 년을 떠돌던 유목민 어깨에 묻어온 싸라기눈과 햇살 높은 천장으로 천천히 흩어진다 매일 조금씩 키가 자라는 사다리가 놓인 방 흑백 사진들 제멋대로 마른 덩굴에 걸려 있는 누군가의 작업실 열린 창문에 기대선 나그네나무 지워 가는 얼굴과 이야기 잎사귀마다 스미어 멀리멀리 날아가고 있다 오랫동안 병마와 싸우며 남은 나날이 지루하여 어찌 살아야 할까,를 궁리하던 마흔 살 언저리의 사람이 호텔 정원에서 청포도를 따고 있는 손은 온통 연두색이다 홀로를 위한 최고의 장소로 가는 길 몇 날 며칠 걸어야만 닿을 수 있다 오로지, 망명자의 일기장 지루하지 않을 만큼의 묵직함 아프지 않을 만큼의 고통 기다려도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마른 장마의 날들 그 시절은 침울해서 좋았다 적도의 바람은 한결같이 포근했다 꽃들은 열흘에 또 열흘 지칠 줄 모르고 피어서 지는 날이 없었다 침울하지 않아서 슬픈 날들이었다 *약력 1990년 《시와 비평》 등단 시집 『푸른 징조』 등 여행산문집 『시인이 만난 인도네시아』  
761 아버지의 발 외1편/최순섭 file
편집자
341 2019-07-01
아버지의 발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아버지가 대낮에 절룩절룩 발을 들고 오셨다 군살 배긴 아버지의 발은 못에 찔려도 피가 나오지 않았다 덧나지 않게 피를 빼야 한다고 망치로 발바닥을 마구 두드렸다 온몸에 번지는 통증은 오장육부를 관통한 일용의 양식 못 구멍으로 아버지의 빈 수레가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못 구멍을 호랑이기름 쓱 문질러 막고 공사장 쪽으로 걸어가셨다. 색깔론 봄인데 (…) 한 걱정하다 하얀 거울 앞에 무슨 색을 칠할까 주섬주섬 옷장을 뒤적이다 붉은 티를 입었다 확, 눈에 띄는 것이 불안해 아래는 파랑 청바지와 어울리는 붉은 티를 입은 한 청년이 봄 앞에 서 있다 언제나 지틀리면 벗어던지는 모자는 노랑 최순섭_대전광역시출생. 1978년『시밭』 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말똥,말똥』등이 있음. (현)환경신문 에코데일리 문화부장, 경기대, 동국대,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출강, 한국가톨릭독서아카데미 상임위원.  
760 주남저수지, 가야(伽倻)인의 겨울 외1편/정선호 file
편집자
317 2019-07-01
주남저수지, 가야(伽倻)인의 겨울 저수지 주변에서 가야인들 오리와 새를 잡고 저수지 안에서는 얼음을 깨 물고기를 잡았다 눈이 많이 내렸지만 옷을 두껍게 입은 사내들이 마을과 가족 위해 눈 속을 헤치고 들판을 누볐다 많은 철새들은 추위를 피해 저수지에 왔지만 가야인들의 풍성한 음식 재료가 되었다 가야인들은 겨우내 토기며 베를 짜 옷을 만들고 한해의 농사와 가축을 기를 준비를 했다 야철지에서는 쇠를 만드느라 매우 바빴으며 하인들은 상전이 몸에 장식할 구슬을 만들었다 마을의 한 노인이 명을 다하고 죽어 사람들은 널무덤에 시체를 넣어 땅속에 묻었다 무덤에 수저와 토기며 붓을 넣어 망자가 죽어서도 저승에서 살아갈 수 있게 했다 죽은 가야 사람들은 이천년후에 모두 환생하여 주남저수지 방죽을 걸으며 철새들 보고 사진 찍었다 근처 마을 사람들 여전히 농사를 하거나 가축 기르고 공장에서 옷을 만들거나 돌을 녹여 쇠를 만들었다 어느 노신부의 성경봉독 -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희생자 추모예배에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잘 아시지만 우리나라에는 일제에서 해방 후 정부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한국동란 전후로 좌익세력이나 보도연맹원, 통비분자란 이유로 수백만명이 산골짜기와 바다에서 무참히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늘은 억울하게 죽은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추모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도 잘 아시지만 사람은 누구나 생각과 표현할 자유가 있으나 정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몇몇 사람들의 공산주의 활동을 빌미로 많은 민간인을 재판도 없이 살해했지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유족들은 연좌제에 걸려 나랏일을 하는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 죽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나라와 타인에게 말할 수도 없는 고통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억울하게 죽어 하늘나라에 간 그들을 부디 잘 보살펴 주시고 편안이 살 수 도와주소서 또한 그들에게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할 자유를 주옵소서 민간인들을 무참히 살해한 자들은 멀리 하시어 그들이 하늘나라에서나마 참회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죽은 사람들의 유족들에겐 이제라도 맘 놓고 죽은 자들을 추모하고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소서 하나님도 잘 아시지만 우리나라에는 지금도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싫어해 당시 정부편을 들고 유족들의 추모와 보상을 방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부디 그들에게도 진정 참회하고 올바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그리하여 이땅에 참된 평화와 평등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약력 : 충남 서천 출생, 200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내 몸 속의 지구』『세온도를 그리다』『번함공원에서 점을 보다』가 있다.  
759 눈물겨운 투쟁담 외 1편/김진희 file
편집자
288 2019-07-01
눈물겨운 투쟁담 카운터 직원이 봉투를 연다 누렇게 뜬 사임당 얼굴이 촤르륵 지나간다 pc방에서 알바해서 모은 돈이다 아이는 비 맞은 참새처럼 가늘게 떨었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낳았으므로, 어미였으므로. 남북 분단선도 지우려는 시대에 아이는 금 하나를 긋기 위해 제 돈 내고 벌벌 떨며 이곳에 왔다 더 페이스 성형외과 서면 롯데백화점 뒷골목 무슨 무슨 성형외과가 동네 마트처럼 즐비하다 백화점 뒤에 숨은 병원들 백화점 뒤에 숨은 얼굴들 적당히 눈매가 쳐진 내 또래 엄마들이 고만고만한 딸들의 손을 잡고 와서 수술부작용에 대한 기계적 설명을 듣는 곳 자식 고집은 이길 수 없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한 시간 동안 고문 받는 것 같았어 오징어 굽는 냄새가 나고 눈물이 찔끔 났어 근데 울지 말래 아, 이 얼마나 눈물겨운 투쟁담인가 두엄출판사 대구 두엄출판사 ‘대구’라는 이름의 단단함 ‘두엄’이라는 말의 훈훈함, 진득함 기름난로 붉게 타오르는 사무실 밀양얼음골사과 햇빛과 별빛이 번갈아 드나들어 달디단 옹이를 간직한 열매 후라이팬에 볶은 땅콩, 호밀 오도독 오독 활자 씹는 소리 난무하는 방 칭얼대는 문장들 침침한 눈으로 어르고 달래고 적당히 솎아내고 오독, 그래도 삶은 금방 무성해지고 반질반질 나무 바닥, 서고 누운 책, 책들 그리고 시덥잖은 농담들, 찜찜함, 사소한 오해 오도독, 그 모든 것 적당히 버무려 두엄더미는 후끈 달아오르고 한 쪽에선 납작만두가 납작하게 식어가고 *부산 출생. 시집 『굿바이, 겨울』(2011), 『거미에 기대어』(2019) 출간. bullaey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