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8호...
   2020년 04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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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90016 2014-11-03
119 달콤한 잠/이홍사 file
편집자
4185 2011-04-30
11. 5월 12호 소설 달콤한 잠 이 홍사 오토바이 뒤에 수레를 달아서 네 명이 마주보고 탈 수 있는 툭툭이 몇 대가 호텔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택시를 대신하는 툭툭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이미 책과 인터넷으로 훑어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창밖의 풍경을 한참 내다보았다. -참 감칠맛이 있겠다. 창밖을 내다보던 내 입에서 흘러나온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그 말에는 나가고 싶은 충동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었다. 툭툭이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볼까? 흥정을 하고 타야 된다던데....... 나는 조금 망설였다. 그 때 누군가가 방문을 노크했다. 열어보니 문우정이라고 자기 이름을 거듭 얘기하던 한국인 가이드였다. 불편한 게 없냐고 건성으로 물었다. 아주 만족한다고 하자 에어컨 때문에 감기에 걸려서 가는 여행객이 더러 있다며 에어컨의 적정 온도를 조절해주고, 한국뉴스가 나오는 곳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맞춰주고 얼마간의 공동경비와 정해진 가이드 팁을 받아서 나가다가 돌아섰다.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저어~ 혹시 혼자 주무시기 뭣하면 아가씨를 불러드릴까요? 골프 치러 오는 팀들은 거의 다 아가씨들을 불러서 자거든요. 생각지 못한 뜻밖의 제안이었다. 나는 조금 어색한 말투로 화대가 얼마냐고 되물었다. 아가씨를 부르면 아침 여섯시까지 같이 자야하고 아가씨 화대와 호텔에 두 명이 사용하는 방값을 지불해야한다고 그 금액을 일러주었다. 가이드가 소개비로 얼마를 뜯어먹는다고 해도 턱없이 싸다. 콜걸의 화대를 알아보면 대충 그 나라의 물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가 있다. -오늘은 제가 생리중이거든요. 필요하면 내일 말씀드리지요. -생리대는 많이 준비하셨나요? 까딱하면 야자수 잎을 이용하는 불상사가 생깁니다. 가이드도 워낙 많은 사람을 상대한 터라 만만치 않았다. 웃으면서 그렇게 농담을 하고 가이드를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짐을 풀 생각도 없이 다시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야자수가 가로수로 서있는 그 거리가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냥 잤다가 나중에 돌아가서 돌이키면 아까운 시간이라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 이번 여행은 순전히 셋째 딸 진이 덕분이었다. 덕분이라기보다는 진이 때문이었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겠다. 그러니까 지난해가 된다. 12월 30일 새벽이었다. 내가 ‘나 홀로 여행’ 계획을 세우고 인터넷을 뒤져 앙코르 와트로 여행 신청을 한 것이. 구정 전의 마지막 ‘땡처리, 라는 타이틀을 앞세우고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자를 모집하는 여행사의 스폰서링크를 찾아내고 바로 망설임 없이 회원가입을 하고 앙코르 와트로 가는 일정표를 훑어보았다. 가격은 저렴했다. 모든 일정의 경비가 캄보디아에 가는 일반인의 편도 비행기 삯보다 조금 넘어설 가격이었다. 패키지라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자유여행이나 배낭여행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가격이었다. 그 가격으로 왕복 비행기 삯과 사박오일의 호텔비와 식대, 그리고 유적지 입장료까지 포함되어 있다. 나는 바로 신청을 했다. 출발일은 바로 닷새 후였다. 신청을 하고 확인을 클릭하니 바로 메일이 들어왔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메일을 확인하니 여행사에서 날아온 자동 메일이었다. 여행의 가부 결정은 24시간 이내에 전화로 통보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막연히 기다리기에는 너무 초조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고 유명 대학에 가는 것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지만 떨어지고 보니 서운했다. 서운한 건 둘째로 치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지방이지만 특목고 3년간 장학생으로 다닌 아이다. 수능을 좀 잘못 쳤다고는 하지만 그 대학에 수시입학에 떨어지고 또 정시 가군의 상위50%만 합격자를 발표했는데 그 학과에 또 떨어진 것이다. 물론 합격자 발표가 다 난 것도 아니고 또 그 대학이 아니더라도, 그 성적이면 서울 중상위권 대학에 충분히 갈 수가 있고 웬만한 지방대의 사 년 장학생으로 다닐 수 있는 성적이었다. 딸아이는 학교보다 인기 학과에 몰리는 경향이 진하게 두드러지고 있고 하향지원하는 학생들이 있으니까 등록하는 걸 보아서 나머지 50%의 합격자를 발표한다는 그 대학의 모집 전략을 설명하고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고 태연해하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하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건 그 대학의 전략이고 떨어질 것에 대비한 나의 전략은 전무했다. 합격자 발표가 난. 그날 저녁에는 연말이라 밖은 흥청거리고 나오라는 친구들과 후배도 있었지만 나갈 기분이 아니었다. 딸애는 제 기분을 숨기고 친구를 만난다며 나가고 아들 녀석이 들어오지 않은 밥상머리에서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말없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반주로 소주 한 병 반을 비우고 취기에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실컷 잤다고 생각했는데 일어나니 열두 시가 되지 않았다.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참으로 어중간한 시간에 깨어난 것이다. 취기가 조금 남아있었지만 다시 잠이 들기 힘들 것 같았다. 거실로 나오니 언제 들어왔는지 집안의 골칫거리인 아들 녀석이 그 때까지 컴퓨터에 붙어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딸 셋을 낳고 아들을 낳겠다고 벼르고, 기도가 효험 있다는 절에 가서 불공까지 들여 계획생산을 해서 얻은 아들 녀석이 이렇게 속을 섞이고 있다.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던 녀석은 고등학교 1학년에서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고 있다. 녀석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일찍 자라고 고함을 질러 녀석을 방으로 들여보내고 입고 있던 트레이닝에 방한파카를 걸치고 사무실로 내려가서 컴퓨터를 켜고 앙코르 와트로 가는 패키지여행에 나 홀로 여행을 계획하고 덜컥, 신청하고 확인을 클릭 한 것이다. 그리고는 한 숨도 자지 못하고 내가 가보아야 할 미지의 나라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훑어보았다. 이곳저곳 훑다가 어느 사이트로 들어가 그 나라의 인사말 정도는 수첩에 적어가며 공부를 했다. 밤을 꼬박 새우고, 내 밥줄인 중기들이 현장으로 일을 나가는 것을 일일이 확인하고 사무실 문을 닫고 올라가서 아침을 먹었다. 밤을 새워 시리고 따가운 눈을 붙이려고 이부자리를 펴고 누우니 여행사에서 여권 사본을 팩스로 보내라는 전화가 왔다. 최소 출발 인원이 7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신청자가 7명은 넘어선 모양이다. 혼자 가느냐고 여행사의 여직원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나 홀로 여행이라고 대답하고는 부랴부랴 옷을 다시 챙겨 입고 사무실로 내려가 여권을 사본으로 만들어 팩스로 송부하고 그곳의 호텔에서 방을 혼자 쓰는데 대한 얼마간의 추가비용까지 불러주는 계좌로 송금했다. 맘이 변하기 전에 후딱 송금해야지, 하며 길 건너에 있는 은행에 가서 송금을 하고나서 아내에게 여행계획을 말했다. 아내는 혼자서 자알~ 다녀오라고 비꼬듯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지만 아파트가 아닌 상가주택이라서 집을 비울 수가 없다. 아내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 저녁이면 기사들이 들어오고 마당에 설치해 놓은 주유기에 유류를 주입하러 들어오는 중기 때문에 집을 비울 수가 없다. 사무실과 집이 같이 있어서 불편한 점이 그것이다. 어쩌다가 야간작업을 마치고 늦게 들어오는 중기가 있으면 밤 열시고 열 한 시고 간에 사무실 문을 닫을 수가 없이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다. 아내에게 허락 같은 것은 필요 없다. 그렇게 통보만 하면 된다. 여태 그런 식으로 거의 삼십 년을 살아왔다. 그렇게 통보만 하고 배낭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열대지방이라 이 겨울에 반팔 티셔츠와 여름바지를 찾아달라고 아내에게 부탁을 했다. 아내는 가려면 아직 닷새나 남았는데 성질 급한 것 하고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귀찮은 내색 없이 옷장을 뒤져 입을만한 여름옷을 챙겨서 내 방으로 디밀었다. 나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 수첩에 필요한 물건들을 적어가며 꼼꼼히 배낭을 챙겨 윗목에 놓아두었다. 사실 여행보다 더 좋은 것은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다. 그 가슴 설레는 시간이 더 즐겁다. 막상 집을 나가면 고생하는 것이야 뻔히 보이지만 준비하는, 가슴 설레는 그 시간을 한껏 즐기는 것이다. 메고 떠나야할 배낭을 보며 설렘과 미지의 세계에 혼자 간다는 기분 좋은 두려움을 즐긴다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겠다. 공항에서 미팅시간은 비행기 출발 두 시간 전이다. 메일로 날아온 일정표에는 그렇게 되어 있었다. 일찌감치 버스 터미널로 가서 그 시간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는 인천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표를 미리 예약하고 은행에 들러 후진국이라 일 달러짜리를 많이 섞어서 환전까지 했다. 필요한 여행 경비는 얼마 되지 않겠지만 선택 관광도 있고 해서 여윳돈으로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금액을 환전 했다. 그리곤 심심하면 인터넷으로 그 나라의 역사와 언어에 대해서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닷새! 언제나 기다림은 지루한 법이다. 닷새를 그렇게 설렘과 지루함으로 보낸 후 나는 배낭을 메고 버스 시간에 맞추어 터미널로 나갔다. 인천공항까지는 버스로 네 시간이 소요된다. 새벽잠이 깨면 할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노래나 듣고 책을 보겠다고 읽다가 만 소설집 두 권과 흘러간 노래를 다운받은 MP3를 준비한 것이다. 내 귀에는 MP3가 꽂혀 있었다. 버스에 오르니 일단은 이름 모를 해방감이 느껴졌다. 작업현장에 대한 문제도 배차에 관한 사항도 집안일도 모두 잊고 오로지 여행을 즐기다가 오리라고 맘을 다잡았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못 먹는 건 딱 두 가지가 있다. 없어서 못 먹는 것과 안 줘서 못 먹는 것, 이 두 가지만 빼면 뭐든지 다 잘 먹는다. 물론 배낭에는 아내가 기어이 넣어준 고추장이 들어있지만 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내가 준비한 먹을거리는 사탕 두 봉지가 건부다. 물론 내가 먹을 것이 아니고 그곳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하나씩 주려고 준비한 것이다. 공항의 약속장소인 A카운터의 1번 테이블로 가니 여행사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몇 명이 출발하느냐고 물어보니 17명이 동행이라고 했다. 거의가 가족 단위이고 나 홀로 여행자는 정말 나 홀로라고 했다. 그 사람들이 걱정하는 그게 맘에 쏙 들었다. 혼자나 둘이 온 떨거지들이 있으면 성가시게 될 것만 같았다. 또 불특정의 인간이 한 잔하자거나 내가 불편해할까 조심하는 그 태도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것 같았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혼자 즐기다 오는 것이 훨씬 편할 것이다. 17명이라고 했지만 동행 가이드는 없고 현지에서 가이드가 나오는 모양이다. 개별로 티켓을 끊고 출국심사를 마치고 면세점을 들러 필요한 물건을 사고 정해진 게이트 쪽으로 갔다.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라고 해봤자 담배 한 보루가 전부다. 씨엠립으로 가는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는 게이트로 갔다. 그곳으로 가니 탑승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같이 가는 일행이 누구인지 알 턱없다. 다섯 시간의 비행이다. 내가 그 동안 할 일이 무엇인가? 지독한 골초인 내가 할 일은 바로 흡연이다. 다섯 시간 동안 흡연욕구를 참자면 금단증상이 나타난다. 항상 비행기를 타면서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왜 새로 만드는 여객기에는 흡연실을 만들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속으로 불평을 한다. 공항에 있는 흡연실을 줄기차게 들락거리며 목구멍이 따갑도록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흡연실에 있다가 출발 오 분 전에 마지막 단배를 끄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벨트 사인 램프가 켜지자 바로 기내식이 나왔다. 밥을 먹고 일찍 자두라는 얘기다. 자는 편이 속이 편하다. 기내식을 먹고 나면 흡연욕구가 나타나기에 나의 경우로 말하자면 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자려고 눈을 감고 있는데 승무원들이 그 나라의 입국신고서와 비자 서류를 나누어 주었다. 받아들고 보니 글씨가 너무 작아 도대체 알아볼 수가 없었다. 손가방에 돋보기를 찾았지만 없었다. 그렇게 꼼꼼히 챙긴다고 챙겼지만 휴대용 돋보기를 빠트린 것이다. 지나가는 스튜어디스에게 돋보기가 있냐고 물었다. 없다는 대답과 함께 자기가 적어주겠다며 쪼그려 앉아 내 여권을 보며 적어주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비자 서류에 붙일 증명사진이 없어진 것이다. 분명히 사진을 여권의 비닐 커버 주머니에 꽂아 두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아무래도 티켓을 끊으면서 흘렸거나 출국 심사대에서 흘린 모양이다. 난감했다. 여행사에서 증명사진 한 장을 준비하라는 소리를 누누이 들었는데 이런 낭패가 없었다. 지갑을 뒤져 보았다. 넣은 기억이 없는 증명사진이라곤 있을 턱이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궁리하다가 적성검사 기간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운전면허증의 사진을 오려서 붙이면 되겠다는 생각에 머리 위 선반 아래 달린 콜 버튼을 누르고 스튜어디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국내 여객기라서 다행이다. 나는 쫒아온 여승무원에게 가위가 있느냐고 물었다. 가위는 없는데 가위를 어디에 사용하려냐고 되물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면허증을 보여주니 상관없다고 했다. 그곳 공항에 내려서 여권에 있는 사진을 스캔해서 붙이면 된다고 했다. 그런 방법도 있구나, 생각하며 고맙다고 했지만 그래도 번거로울 것 같아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비행하는 내내 증명사진이 마음에 걸려 어디선가 흘린 그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열대지방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코를 막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을 따라서 공항으로 들어가니 내가 선택한 여행사의 피켓을 든 현지안내원이 나와 있었다. 여권을 거두는 그에게 사진이 없다고 말하고 비자피를 여권과 함께 지불하니 상관없다고 저쪽 통로로 나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입국심사도 없이 그냥 인원만 체크하고 단체 여행객들이 나가는 열려진 통로로 나가서 기다렸다. 눈치를 보니 인원수만 파악하고 입국심사는 단체로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전전긍긍하던 사진은 문제가 되지 않겠다. 괜히 맘고생만 했구먼! 안도의 한숨을 쉬고 출구 쪽으로 나가니 바로 공항 주차장이었다. 국제공항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웬만한 기차역 정도의 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주차장 입구 재떨이 앞에서 담배부터 빼물었다. 지독한 골초라서 담배 한 대로는 그 동안 참았던 니코틴 보충이 되지 않았다. 연거푸 두 개비를 피우고 나니 피켓을 든 가이드를 따라서 같은 여행사로 온 일행들이 오합지졸, 우르르 뭉쳐 나오는 게 보였다. 후딱 담배를 끄고 그들의 몇 걸음 뒤에 따라 붙었다. 우리가 타고 갈 중형버스가 주차장에 시동을 걸고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에는 에어컨이 틀려있어서 시원했다. 비행기에서 두 시간을 뒤로 돌린 손목시계를 보니 밤 열 시가 좀 넘었다. 두 시간의 시차가 있으므로 한국시간으로 자정이 넘었다. 불과 다섯 시간 만에 두 계절을 뛰어 넘었다. 다섯 시간 전에 엄동설한이었는데 에어컨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천공항에서 방한 파커를 벗어 배낭에 넣었으므로 내 복장은 날씨에 맞게 간편했지만 일행 중에는 그때까지 겨울옷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둘러보니 가족단위로 온 여행객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과 노인까지 모시고 효도관광을 온 이도 있었다. 일행들이 차에 다 타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국인 가이드가 급하게 차에 올라와서 자기소개를 장황하게 하고 여행을 마치고 가는 날까지 자기 통제에 잘 따라 줄 것을 당부하는 동안 현지 가이드가 인원체크를 했다. 가이드가 둘이다. 현지 가이드와 한국인 가이드. 말하자면 한국인가 현지 가이드 하나를 조수로 데리고 다니는 셈이다. 현지 가이드가 차 문을 닫으며 오라이~,라고 기사에게 외치자 차는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호텔은 겨우 차로 오 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그 오 분 동안 가이드는 우리의 여행일정을 대충 일러주었다. 이미 메일로 날아온 일정표에서 다 읽은 부분이다. 호텔에 도착하여 로비에서 가족 단위로 방을 배정받고 다음날 아침 모닝콜 시간은 일곱 시라는 것과 아침을 먹을 식당이 일 층에 있다는 것만 알려주며 식권과 카드로 된 키를 나눠주었다. 내가 쓸 방은 삼 층이었다. 방으로 올라가서 창을 열고 보니 거리가 훤히 보이는 넓고 전망 좋은 방이다. 트윈 침대가 놓인 방을 혼자 쓰는 것이다. 창밖은 불야성이다. 아마도 시내 번화가에 있는 호텔인 모양이다. 대만이나 중국으로 패키지여행을 가면 거의가 호텔이 도시 변두리에 있다. 작년에 대만의 타이베이에 가보니 호텔이 시내 식당에서 버스로 두 시간 이상 걸리는 변두리였다. 부근에는 슈퍼하나도 없는 빈민촌에 우뚝 선 호텔이었다. 그 가격에 맞추려면 여행사에서 그런 곳의 호텔을 예약할 수밖에 없겠지만 캄보디아는 달랐다. 시내 번화가에 호텔이 있는 것이다. 시 외곽에는 호텔이 없거나 시내 호텔과 가격에 차이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야자수가 가로수로 서있는 거리를 바라보다가 문득 잊었던 진이 생각이 났다. 제 마음에 드는 대학에 합격해야 될 텐데....... 혼자 중얼거리다가 이마를 쳤다. 그걸 잊자고 떠나온 여행인데 그 아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당분간 잊자고 마음을 도사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의 풍경은 매혹적이다. 나는 황홀한 밤거리에 유혹당하고 있었다. 그 매혹적인 풍경 속으로 풍덩 빠지지 않고 그냥 자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서운한 구석이 있었다. 결국 그 유혹에 못 이겨 지갑과 카메라가 든 손가방만 들고 호텔을 빠져 나섰다. 나서면서 로비의 카운터에서 호텔의 명함 한 장을 챙겼다. 내가 나가자 밖에서 기다리던 툭툭이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서툰 영어와 손짓발짓을 동원해서 시내를 한 바퀴 도는데 얼마냐고 물었다. 30분 정도 걸리는 코스를 흥정하고 맨 앞에 있는 툭툭이를 탔다. 우르르 몰려와서 서로 태우겠다고 난장판이 될 줄 알았는데 그건 지나친 기우였다. 나름대로 순서가 있었다. 그들이 맨 앞의 툭툭이로 안내했고 내가 툭툭이를 타자 손을 흔들어주는 다른 기사까지 있었다. 툭툭이는 나를 태우고 거침없이 대로로 나서서 달렸다. 가로등이 훤한 야자수가 있는 길을 달려보니 호텔에서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길은 아주 옛날에 건설한 것 같은데 도시계획도로처럼 반듯반듯하게 구획정리가 되어 있는 도시였다. 이따금 한국음식점의 간판이 보이기도 하고 ‘평양랭면’ 이라고 쓰인 북한 식당의 간판도 보였다. 이곳 어디엔가 ‘김씨마트’라고 있을 것이다. 김용수라는 고등학교 동기가 하는 한국인마트다. 녀석은 우리와 같은 계원이었다. 칠판 년 전에 녀석이 동기회 총무를 할 적에 부도를 내고 곗돈과 친구 두엇에게 보증을 부탁해서 저축은행에서 거액을 빌려 캄보디아로 날아와 마트를 한다고 했다. 보증을 서 준 친구 둘은 알거지가 되었다. 씨엠립을 관광차 다녀간 어느 동기가 우연히 녀석을 만났다고 계모임 자리에서 느닷없이 잊혀져가는 녀석에 대해서 공포를 했고 앉은 자리의 동기들은 천인공노했다. 그 때 돈으로 모은 계금이 이천 만원이 넘었다. 결국 그 동기회는 재구성해서 돈을 모으지 않고 친목계 형태로 바뀌었다. 찾으려면 쉽사리 찾을 수가 있겠지만 나는 그 녀석을 만나고 싶지 않다. 지나가는 사람들 표정은 모두가 순박해 보였고 걱정이 없어 보이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툭툭이를 타고 지나가면서 재래시장 입구에서 몇 컷의 사진을 찍고 턴을 하자고 툭툭이 기사에게 손짓했다. 툭툭이 기사는 툭툭이를 돌리고는 비어~ 하고 말하며 맥주를 마시는 시늉을 했다. 내가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조금 달려 슈퍼 앞, 포장마차에서 맥주를 파는 곳에 툭툭이를 세웠다. 나는 내려서 길거리 파라솔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맥주 두 개를 시켜 툭툭이 기사에게 하나를 내밀고 나도 하나를 마셨다. 캔에 든 맥주의 상표는 베트남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타이거 비어였다. 맥주를 마시며 툭툭이와 맥주를 파는 아가씨를 카메라에 담았다. 아가씨는 한국인이냐고 물으며 사진을 찍기 좋게 포즈를 취해 주었다. 그 포즈에도 순박함이 잔뜩 배어 있었다. 시계를 보니 막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이제 들어가면 쉽게 잘 수가 있겠는 생각으로 툭툭이 기사에게 돌아가자고 했다. 툭툭이는 호텔 현관 앞까지 나를 모셔다 주었고 호텔 지배인이 꾸뻑 인사를 했다. 나는 중세의 황제가 된 기분으로 툭툭이에서 내려 방으로 올라갔다. 잠깐이지만 씨엠립의 무늬만 훑고 들어와서 샤워를 하고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천국은 언제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그래 이곳이 천국이구나, 모든 걸 잊고 자자, 천국을 헤아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모닝콜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담배를 한 대 물고 화장실에서 거사를 치루고 있는데 침대머리에 있는 전화기가 서너 번 울렸다. 느긋하게 거사를 치루고, 씻고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고 여행사의 일정대로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따다 다니는데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패키지여행은 항상 그랬다. 앙코르 와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진으로 본 앙코르 와트를 실제로 밟아보는 것 밖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가이드는 일행들에게 그 유적의 역사와 전설에 대해서 땀을 흘려가며 설명하고 있었지만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하지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앙코르 와트란 뱀의 사원이라는 뜻이란다. 앙코르는 앙고라 뱀의 변형된 말이고 와트란 사원을 뜻한단다. 가는 곳마다 뱀의 형태가 보였다. 머리가 일곱 개 달인 뱀이 가는 사원마다 돌로 조각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부처나 어느 신의 광배조차도 머리가 일곱 개 달린 뱀의 형상이었다. 그 날은 폐허가 된 작은 사원부터 건축한 시대의 순서대로 둘러보았는데 나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대신 연신 담배를 피울만한 구역을 찾아서 담배를 피우기에 바빴다. 그렇게 가이드를 따라다는 여행은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 나는 관광이 아니라 여행을 원했다. 일행들은 혼자 메모를 끼적이며 자꾸 뒤처지는 내가 뭐하는 사람이기에 혼자 왔는지 은근히 궁금해 하는 눈치다. 앙코르 와트, 거대한 돌덩이를 보고 나와서 식당으로 향하는 짬을 이용하여 나는 가이드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아직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우리 일행끼리 자기소개나 하자고 했다. 가이드가 화들짝 놀라며 인천공항에서 인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인천에서 개별 출발했다고 핀잔을 주자 미안하다며 바로 마이크를 잡고 거듭 미안하다며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주었다. 마이크는 앞좌석부터 뒤로 전달되었다. 맨 처음에 소개한 육십 대 아저씨? 육십 대를 아저씨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할아버지라고 명명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어느 전자회사의 사장까지 올랐다가 정년퇴임을 하고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를 데리고 왔다고 했다. 그 다음 내 또래로 보이는 오십 대 가장은 아들이 군에 가는데, 입대 기념으로 아들 둘을 데리고 가족 여행으로 왔다고 하며 하는 일은 목재 무역업이라고 했으며 그 다음 삼십 대 후반의 젊은 부부는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가족 여행을 왔다고 소개했다. 한사람 소개할 적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다음 사십 대 후반의 아저씨는 장모님과 처조카들을 데리고 일곱 명이서 효도관광차 왔다고 했으며 맨 뒷좌석에 앉은 내게 마이크가 오자 나는 좀 장황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하는 일은 중기 임대업인데 그에 걸맞지 않게 소설을 쓰고 있으며, 소설집을 네 권 낸 바가 있고 저를 알려면 인터넷 검색창에 내 이름을 치면 내 프로필이 뜨고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게 취미이고 이번 여행은 유적지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소제를 찾아 소설 사냥을 왔다고 했으며, 내가 사냥감을 찾아서 나갈 수도 있다고, 혹시 내가 없어지더라도 걱정하지 말고 그냥 가이드를 따라서 여행을 잘 하라고 했다. 내가 없어져도 저녁이면 호텔에 있을 것이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출국하는 시간에 맞추어 공항에 있을 거라고 했다.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없어질지 모르지만 제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내 소개가 끝나고 마이크는 가이드에게로 돌아갔다. 가이드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소설가 선생님! 없어지더라도 가이드에게는 귀 뜸을 해주고 가셔야 합니다. 금세 호칭이 소설가 선생님으로 변했다. 맨 뒤에 앉은 나는 가이드가 들리도록 알았다고 앞쪽을 향해 소리쳤다. 알았노라고. 소개를 하고나서 저녁을 먹으니 훨씬 화기애애해졌다. 저녁은 캄보디아 식당에서 압살라 민속공연을 보면서 현지음식으로 먹었는데 누가 가져왔는지 소주잔이 나에게도 돌아왔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친해져서 같이 앉고 장모님을 비롯한 여자는 여자들끼리, 술을 먹을 만한 사람끼리 따로 자리를 만들어 더 세부적으로 자기소개를 하면서 잔을 돌렸다. 그 식당은 외부 음식반입이 당연히 금지된 곳이지만 우리는 공범이 되어 물 컵을 이용하여 종이팩에 든 소주를 감쪽같이 네 개나 비웠다. 겨우 서로 카메라 셔터나 눌러주던, 서먹서먹하던 팀이 그렇게 친숙한 공동체로 변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여행은 한결 마음이 가볍고 수월하겠다. 식사를 마치고 남들보다 일찍 식당을 나와 식당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가이드에게 다가갔다. 거기서 나는 가이드에게 양해를 구했다. 다음날은 바이욘 사원을 관광하기로 되어 있지만 나는 빠져서 하루를 캄보디아 사람들이 사는 구경을 하며 혼자 돌아다니고 싶다고 양해를 구하자 가이드는 좀 걱정스런 얼굴로, 그렇게 하시면 여행자 보험이 안 되니 조심해서 다니시라고 하면서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일러주었다. 나는 수첩에 전화번호를 받아 적으면서 해외여행을 혼자서 많이 했기에 걱정 않으셔도 좋다고 했다. 허락은 그것으로 받은 셈이다. 내가 혼자 싸돌아다닌 곳은 많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개나 고양이와 삼십 분 정도 같이 있으면 교감이 형성된다. 동물이지만 눈빛만으로도 배가 고픈지 나를 좋아하는지 오줌이 마려운지 금세 알게 된다. 하물며 인간인데 어디를 가더라도 의사전달이 안 되겠는가? 내가 혼자서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생각하는 역사가 있다. 그건 역사이기 이전에 나에게는 교훈이다. 바로 전쟁을 두 번이나 참전한 세대가 있다. 1922년생에서 1926생까지, 그 불우한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에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나가서 걸어서 중국 대륙을 거쳐 베트남이나 미얀마까지 갔다. 그곳에서 밀림의 총알받이로 전쟁을 치룰 적에 히로시마에 원폭이 터져 일본이 패망하고 지휘관이 없는 패잔병이 되어 그 대륙을 걷고 또 걸어서 고향까지 찾아왔다. 말이 통해서 찾아 온 게 아니었다. 그들이 찾아올 수 있었던 건 바로 눈치였다. 몇 년에 걸쳐 걷고 또 걸어서 고향에 찾아오니 이번에는 한국전이 터졌다. 그 때는 군에 갈 나이가 되었으니 당연히 국군으로 참전을 했던 세대가 있다. 내가 혼자 여행을 할 적마다 전쟁을 두 번이나 치룬 그 불우한 세대를 생각하고 비교한다. 그 세대에 비교하면 나 홀로 여행에 용기가 생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나 홀로 여행을 한 나라는 많다. 티베트,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마카오, 몽골, 베트남,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나라를 홀로 다녔다. 일단은 그들보다 나은 여건을 지니고 있다. 전쟁이 아니고 여행이라는 점과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경비가 있고 말이 조금 통한다는 자신감과 가기 전에 그 나라에 대해서 미리 주의사항에 대한 공부와 인사말 정도는 알고 간다는 점이다. 가고 싶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는 나라도 많다. 유럽이나 미주가 그렇다. 순전히 담배 때문이다. 거의 스무 시간 비행하는 동안 담배를 참을 자신이 없어 그쪽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뿐이 아니라 담배 때문에 벌써 이십 년 전부터 아내와 각방을 쓴다. 자다가도 일어나 좋은 문장이 떠오르면 메모를 하고 담배를 피우기 때문이다. 이놈의 골초라는 딱지를 언제쯤 떼어버릴지, 아마도 죽기 전에는 어렵지 싶다. 다음날 새벽 모닝콜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 여행자로서의 의관을 정제하고 소설사냥에 나설 준비를 했다. 최소한 아포리즘 하나라도 건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워킹투어! 걸어서 캄보디아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녀볼 생각이었다. 거기서 소설 한편을 구상하면 그보다 큰 수확이 없고 아니면 짤막한 아포리즘하나라도 떠올려 메모를 하는 수확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단어 하나라도 괜찮다. 담배를 두 갑이나 챙기고 사탕을 손가방에 두 봉지나 넣고 준비를 한 다음 일찌감치 내려가 아침을 먹고 호텔 밖으로 나오니 벌써 우리 일행이 타고 갈 버스가 호텔 마당에 대기하고 있었다. 한국인 가이드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현지 가이드와 기사가 있었다. 그들이 맨 먼저 나오는 나를 보고 알은 체 했다. 나는 버스에 올라 아이스박스에 있는 물을 한 병 챙겨 들었다. 그리고 사탕을 하나씩 현지 가이드와 기사에게 돌리고 투데이 워킹투어! 라고 짤막하게 말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버스 뒤편으로 돌아 호텔 마당을 빠져나와 대로를 따라 한참 걸어 내려가니 가로수로 서 있는 야자수 사이로 정글로 빠지는 비포장 길이 나왔다. 무작정 그 길로 들어섰다. 마을로 들어가는 지름길인 모양이다. 코끝에 낯선 바람이 휘감고 지나갔다. 내가 집시가 되는 순간이다. 익명성의 해방감! 그것은 바로 발기를 불러오는 것이다. 익명성은 발기를 유발한다. 이 말은 나에게만 국한된 명제다. 낯선 곳에 가면 이상하게도 발기인대회 주최자가 되는 것이다. 참 희한한 신체 구조다. 바지 앞섶이 잔뜩 부풀었다. 발기를 달랠 방법이 없다. 시간이 흐르도록 기다리는 수밖에는, 너무 팽팽히 부풀어 걸음을 걷기 곤란할 정도였다. 한쪽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 발기된 물건을 움켜쥐고 야자수 그늘에서 오래토록 서성이고 있었다. 해는 내가 들어가는 길 왼편에서 솟아올라 있었다. 그 쪽이 동쪽인 모양이다. 방향만 알면 길을 잊을 염려는 없다. 숙연하게 애국가를 속으로 몇 소절 부르고 나서야 발기대회가 끝났다.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는 말이 맞다. 나는 해방감을 느끼며 열대의 잡목들이 우거진 길을 한참을 걸어 들어갔다. 조금 들어가니 들판이 보였다. 무논인데 벼를 베어 놓은 곳도 있고 갈잎으로 만든 모자를 쓴 사람들이 구부려 모를 심고 있는 논도 보였다. 삼모작 정도는 하는 모양이다. 그 길을 따라 쭉 들어가니 마을이 나왔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판자로 만든 집이다. 그 첫 집을 기웃거리다가 무작정 골목을 들어섰다. 열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처녀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학생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마당에 있는 평상에 걸터앉으며 인사를 했다. -쑤어 쓰다이. -쑤어 쓰다이. 처녀도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느닷없이 들어온 이방인에게 다소 수줍은 듯 나를 힐끔 보고는 구부려서 허리춤이 드러난 티셔츠를 당겨 허리춤을 감추고 하던 빨래를 하고 있었다. 벌써 땀이 이마에 맺혀 있었다. 수줍어하는 처녀에게 말을 걸지 않고 평상에 걸터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일어나 집안을 둘러보았다. 전형적인 캄보디아 가옥구조였다. 우기에 습기가 차지 않도록 어른 키 높이의 사각으로 된 기둥을 세우고 수상가옥처럼 그 기둥 위에 판자를 깔고 벽은 야자수 잎을 엮어 통풍이 잘되게 세우고 지붕은 볏짚으로 비가 들어오지 않게 씌운 초가의 구조다. 기후에 맞는 아주 과학적인 구조였다. 집 뒤란은 정원이었다. 정원에는 바나나 나무가 있었다. 뱀이 바나나 나무에서 나는 향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집을 지으면 정원에 누구나 바나나 나무를 심는다고 했다. 뱀의 퇴치법은 그 뿐이 아니다 기둥을 사각으로 만든 이유 또한 뱀이 올라오지 못하게 사각으로 만들었다. 둥근 기둥이라면 뱀이 똬리를 틀고 올라올 수도 있다는 우려로 사각으로 만든다고 했다. 불교국가라서 집집마다 신주단지 모시듯이 나무로 깎아 세운 키 높이의 불단이 있다. 꼭 애완조류의 새집 같았다. 그 집도 마당 한 귀퉁이에 파란색으로 칠한 불단이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옆에 놓인 향을 하나 집어 불을 피워 향로에 꽂고 합장을 했다. 이방인과의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내 행동에 소녀는 놀라는 듯했다. 그 집을 나서며 처녀에게 인사를 했다. -오꼬지날! -바이바이! 처녀는 빨래를 짜다가 멈추고 영어로 잘 가라고 인사를 했다. 나는 골목을 나서다 말고 다시 들어가 처녀에게 주머니에 든 사탕을 한줌 집어주었다. 처녀는 고른 치아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으며 거절하다가 마지못해 받았다. 처녀는 영어로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유창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처녀는 오~ 꼬레! 라며 놀라워했다. 캄보디아에서는 한국이 꼬레라고 불리는 모양이다. 다시 처녀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사람간의 정은 이렇게 살아나는 법이다. 나는 골목 깊숙이 마을로 들어갔다. 가다가 꼬마를 만나면 사탕 하나를 내밀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을 만나면 쑤어 쓰다이! 하며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다정다감해 보였다. 마을 깊숙이 들어가 이집 저집을 기웃거리다가 사람이 있으면 쑤어 쓰다이! 하고 들어가서 집안을 둘러보고 불단에 향을 하나 피워놓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어른을 만나면 담배 한 개비를 내밀고 아이를 만나면 사탕하나를 내밀곤 했다. 모두가 경계심을 허물어버린 얼굴로 친근하게 맞아주었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사람 사는 구경을 하고 나오니 어디선가 무엇을 두드리는 소리가 딱, 딱, 하며 일정한 간격으로 들렸다. 그 소리가 너무나 경쾌했다. 나는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보았다. 두 집 건너 바로 다음 골목의 공터였다.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 있는 가운데 평상에 한 남자가 앉아서 무언가 조각품을 깎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하나씩 돌리면서 보니 사십대의 남자가 평상에 앉아 끌과 나무망치로 불상을 조각하고 있었다. 불상은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평상에 걸터앉았다. 소쿠리에 담긴 끌과 연장은 보잘 것 없지만 그것을 다루는 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 도면 같은 것은 없었다. 도면은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모양이다. 사탕을 받은 꼬마들은 하나 둘 돌아가자 작품에 몰입하고 있는 그에게 담배를 한 개비를 내밀었다. 그는 웃으며 받아 물었고 나는 불까지 붙여 주었다. 물론 나도 담배를 한 대 물었다. 말을 통하지 않지만 영어와 손짓발짓으로 이것저것 물어가며 한참을 그와 놀았다. 그가 만들고 있는 것은 불상인데 광배로 머리가 일곱 개 달린 뱀의 형상이었다. 좌대는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연화대인데 반해 그가 만들고 있는 좌대는 뱀이 똬리를 틀고 있고 그 뱀이 부처의 등을 휘감고 올라가 머리가 일곱 개, 그중에서 중간에 있는 뱀 머리가 가장 크게 아가리를 벌리고 광배가 되고 있었다. 그는 끌질을 하다말고 바로 아래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 금세 조그만 앨범을 들고 나왔다. 앨범에는 나무로 만든 문이나 나무로 깎은 불상, 나무로 만든 호텔 장식장 등속이 찍힌 사진이었다. 모두 자기가 직접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일테면 그는 소목이고 장인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작품이 좋다고 굿! 하며 엄지를 세워 내밀었다. 사진을 보며 자기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자 그는 건강한 치아를 드러내고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끌질을 했다. 딱, 딱, 딱, 끌을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가 장구나 북을 두드리듯 리듬을 지니고 있었다. 그 리듬을 한참 듣다가 그에게 다시 담배를 권하고 몇 컷의 사진을 찍고 그 골목을 빠져나와 다음 골목으로 들어섰다. 아이들이 우글거리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천진한 아이들은 낯선 이방인을 구경삼아 나를 빙 둘러섰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하나씩 돌리자 바로 옆에 있는 집에서 아이 셋이서 밥을 먹다말고 사탕을 받으려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까지 사탕을 돌리고 집안을 기웃거렸다. 어른들이 밥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 중에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합장하며 인사를 대신하고 신발을 벗고 나무계단을 올라갔다. 밥을 먹는 것을 보니 상은 없고 마룻바닥에 앉아 제각기 그릇에 밥을 퍼고 먹는데 반찬이라곤 손가락만한 이름 모를 물고기 튀김이었다. 젓가락도 없이 손으로 물고기 튀김을 소스에 찍어 먹고 있었다. 밥상머리, 아니 그 식사자리에 끼어 앉자 안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에게 뭔가를 물었다. 눈치로 미루어 밥을 줄까하는 말이다. 나는 다시 인사를 하며 거리낌 없이 달라고 했다. 금세 밥그릇에 밥을 가득 퍼서 숟가락과 함께 내 앞으로 내밀었다. 너무 많은 양이었다. 나는 밥을 조금 들어내고 그들과 같은 방식, 손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밥을 먹으며 아주 맛있다고 했다. 시간은 이미 점심시간을 넘어서고 있었고 시장기가 돌 시간이었다. 때를 맞추어 밥을 먹는 집에 들른 것이다. 그렇게 먹는 밥은 맛이 있었다. 반찬을 가만히 보니 물고기 중간에 좀 이상한 고기가 있었다. 내가 그것을 집어 들고 살펴보자 그 집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펄쩍펄쩍 뛰는 개구리 흉내를 내었다. 개구리 튀김인 모양이다. 내가 그 개구리 다리를 뜯어서 소스에 찍어 먹자 아주머니가 가만히 보더니 계단을 내려가서 서너 마리의 개구리튀김을 더 가지고 올라왔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개구리튀김으로 밥을 먹었다. 어릴 적에 뒷산에 소 풀을 뜯으러 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잡아서 구워 먹어보고 처음 먹어보는 개구리다.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먹고 남은 뼈나 물고기 머리는 마룻바닥에 가지런히 모아두니 한 아이가 그것을 마룻바닥 틈이 벌어진 곳으로 밀어 넣었다. 가만히 보니 마룻바닥 밑에 키우는 닭들이 그것을 쪼아 먹고 있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간단하게 처리하며 동물과 공존하는 방식이었다. 밥그릇을 물리고 주인 남자와 담배 한 대를 나눠 피우고 있으니 안주인이 텔레비전을 틀어주었다. 한국방송이었고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뉴스들은 내 관심을 끌지 못했고 나는 그들이 분리해놓은 방안을 슬쩍 훔쳐보았다. 야자수 잎을 잘라서 엮은 벽체지만 안방과 아이들 방을 분리해 놓았다. 밥을 먹고 앉아있는 곳은 바로 거실인 셈이다. 윗도리를 입지 않고 목도리만을 목에 걸친 그 집 아들로 보이는 스무 살쯤으로 보이는 청년이 영어로 이것저것 물었다. 나는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고 담배를 다 피우고 둘러앉은 식구 중에서 그 집의 안주인에게 지갑에 든 10달러짜리 한 장을 내밀고 합장을 했다. 고마움을 돈으로 표현하는 건 썩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그 방법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안주인은 사양하지 않고 합장을 하며 받아주었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왔다. 골목을 빠져 나오려고 하니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집 아들이었다. 역시 윗도리를 입지 않고 햇빛가리개로 쓰는 목도리를 걸치고 열대의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어깨를 드러낸 채 좇아왔다.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는 나에게 내 숙소까지 오토바이로 태워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극구 사양했으니 내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그는 꼭 태워주겠다고 고집했다. 지금 워킹투어 중이니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오겠노라고 말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마을을 돌았다. 집들이 대충 고만고만했다. 그런 집들을 훑어보며 지나가다가 아주머니가 서너 살 된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현대식 시멘트로 지은 집이고 마당이 넓은 게 집구조로 미루어 좀 부유해 보이는 집이었다. 쑤어 쓰다이! 밥을 먹이고 있는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고 차광막에 밑에 있는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한눈에 보아도 아이의 할머니로 보이는데, 참 곱게 늙었다 싶을 정도로 정정하고 곱상한 얼굴이었다. 아주머니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고 보니 아주머니가 앉은 뒤쪽에 불단이 보였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향에 피우니 아주머니가 금세 새끼손가락 굵기의 노란색 양초를 가져와서 내밀었다. 나는 초에 불을 붙여 불단에 올려놓고 합장을 하고는 1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향로 옆에 올려놓았다. 일종의 시주인 셈이다. 아주머니가 그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고는 밥은 먹었냐고 물었다. 밥을 먹었다고 대답하며 배가 부르다고 배를 쓰다듬어보였다. 길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고마웠다. 차광막 아래 의자에 앉아서 아이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주머니가 집 뒤란을 가리키며 정원을 구경하라고 했다. 나는 그렇잖아도 정원을 둘러볼 참이었다. 집 뒤로 돌아가니 참 정성스럽게 열대수와 이름 모를 화초들을 가꾸어 놓았다. 키가 큰 야자수와 바나나나무를 비롯하여 열대의 식물원처럼 가꾸어져 있었다. 아주머니의 세심한 손길이 닿은 곳이다. 정원 가운데에는 야자수와 야자수 사이를 묶어놓은 그물침대가 있었다. 그물침대 위에 기둥을 네 개 세워 지붕은 함석으로 따가운 햇살이나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만들어놓은 쉼터였다. 나는 신발을 벗어놓고 올라가 누워보았다. 살짝살짝 흔들리는 게 참 안락하고 편안했고 흔들림에 기분 좋은 현기증까지 일었다. 나는 그 현기증을 즐기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꿈도 꾸지 않고 잔 달콤한 잠이었다. 이렇게 곤히 자본 적이 얼마만인가? 시계를 보니 겨우 이십 분 넘게 잤다. 너무도 꿀 같은 낮잠이었다. 일어나 신발을 신으려고 보니 내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신발 옆에 작은 소반에 파파야 하나와 과도, 그리고 물 한 컵이 정성을 담뿍 담고 놓여 있었다. 아주머니가 나를 주려고 가지고 왔다가 잠이 든 나를 보고 두고 간 모양이다. 그건 하나의 먹을거리이기 이전에 뜨거운 감동이었고 세심한 정성이었다. 신발까지 신기 좋게 돌려서 가지런히 놓아둔 배려! 울컥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나는 그물침대에서 내려와 소반과 그물침대를 카메라에 담았다. 이 사진은 돌아가서 내 노트북 메인화면에 올려놓고 노트북을 켜고 끌 때마다 이 달콤한 잠을 떠올리리라고 다짐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평생 가장 달콤한 잠이었다.  
118 괴뢰군 인형 외1편/임술랑 file
편집자
4148 2011-04-30
11.05월 12호 시 괴뢰군 인형 임술랑 개운못 예비군 훈련장 전봇대에 묶어 놓은 괴뢰군 프라스틱 인형 늠름하다 꽃도 피었다 지고 낚시꾼도 왔다가 가고 단조로운 햇살만 내리쬐는 날 바람 속에 멍하게 있다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그와 둘이서 듣는다 편하고 한가하다 그는 총을 들고 지키고 그 옆에서 나는 한숨 잔다 伏龍洞幢竿支柱 임술랑 내가 이 당간지주 앞에서 머뭇거릴 줄 몰랐다 그러다가 이 지주처럼 여기서 붙박일 줄도 모른다 거대한 기둥을 세워 佛깃발 휘날리던 하늘은 크고 바람도 많다 당간지주가 있는 횡단보도 여기 머뭇거릴 이유가 있는가 내가 그대를 몹시도 사랑하는가 살이 뽀얀 당신 아아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117 예수의 가출 외1편/안병호 file [2]
편집자
6375 2011-04-30
11.05월 12호 시 예수의 가출 안병호 -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예레미야 5장 30절) 나의 본성은 원래 좌파였다.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섰고, 바닥에 팽개쳐진 이들을 위해 기도하였으며, 분별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뜻을 증거하였다. 그런데 동방의 목사들과 장로 때문에 삼류 드라마 보다 더한 막장을 보고야 말았다. 말도 소리도 아닌 역한 소음으로 인해 내 귀에선 진물이 흐르고 심히 쪽이 팔린다. 하여 관련된 증빙 몇몇만을 남겨두고 이제 나는 떠난다. (이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아멘) 지금 집나간 예수께서는 찬바람 몰아치는 어느 지하도 계단 아래에서 추위에 떨며 담배 한 개비 물고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 붉은 불빛 출렁이는 이 밤에도 『관련된 증빙들』 . K모 목사 나는 얼음 깨는 배가 되어 앞으로 나아가겠다. 불교, 우상 깨부수고 나아가겠다. 봉은사에는 떡이나 얻어먹는 20만 명이 있다. . G모 목사 중들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하나님 믿어라. . S모 목사 내가 대놓고 이명박 찍으라고는 못하고, 그래서 뽑힌 대통령인데 어떤 사람들이 지금 막 퇴진하라고, 그런 싸가지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 같은 소리를 해야죠. 더구나 머리를 밀은 사람들이, 정신 나간 사람들이여. . J모 목사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사태에 대해) 일본국민이 신앙적으로 볼 때는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위대한 장로 가카 못생긴 마사지 걸이 서비스가 좋다.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하는 시대는 끝났다. 부실 교육의 핵심은 교육을 책임진 사람들이 모두 시골 출신이라는 데 있다. (자식을 위장 취업시켰으면서) 우리 집 가훈은 정직이다. (등록금 반값 공약을 해 놓고) 등록금 싸면 교육 질 떨어진다 …… 배경 어느 별에서 추락한 물상처럼 나는, 아무도 없는 해변에 우두커니 박혀있다 경계 밖 시간을 함께했던 여자의 희미한 그림자가 섬 그늘에 포개져 실려 온다 오래 앓은 위통은 파도에 더욱 더 서늘해지고 몸속을 떠다니던 계절이 낙엽처럼 뚝 뚝 진다 백사장에 밀려 온 하얀 소라 고동 한 마리, 바다의 불규칙한 악장에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저것도 위통을 앓았는지 내장이 모두 상해 있다 내가 지녔던 시간은 대체로 눈이 젖었고 여자가 긴 머리카락을 쓸어내릴 때마다 손가락 사이에서 바다가 시름시름 앓았다 파도와 음악 그리고 청담빛 섹스는 내가 지향한 불온이념이었기에 지워지지 않을 전과가 늘었는데 나는 불편한 형식으로 등장했고 불편한 형식으로 아웃됐다 버려진다는 것은 속부터 상해가는 것, 발을 떼면 할퀴어진 몸 안쪽 대륙이 점점 침식됐고 아팠으므로 매일, 죽지 않을 만큼 술을 마시고 내가 속한 별의 자전과 공전을 계산했다 그러므로 다시 아팠다 소줏집 은하포를 나와 어두운 바다에 서면 별들은 서론과 결론 없이 추락했고 쓸쓸했다 일인 병실, 말기환자처럼 꿈은 실종상태였고 피는 늙어갔다 증오마저 사랑한다는 것은 미지를 향한 고독한 항해이므로 방향을 잃고 한데서 끼니를 마셨다 내 문명이 된 위통의 배경은 그렇게 형성되었을 터 배경이 바람이 몰고 온 그림자 쪽으로 휜다 저 소라 고동도 어느 별에서 버림받고 추락하여 내장까지 할퀴어져 이곳까지 흘러왔는지 외계에서 수신된 소리로 울음 울고 있다 윙- 윙- (안병호) 프로필 . 경남김해 출생 . 2009년 『포항문학』신인상 . 2010년 『불교신문』신춘문예 당선 . . 메일: dominiko8@hanmail.net  
116 아브라카타브라 외1편/곽도경 file
편집자
4444 2011-04-30
11.05월 12호 시 아브라카타브라 곽 도 경 대가야체험축제 마지막 날 역사테마공원 입구 키 작은 나무줄기에 주렁주렁 매달린 소원을 읽는다. ‘동성로 여자들 다 상혁이꺼’ ‘하늘에서 멋진 남자들 주룩주룩 떨어져라’ ‘나만 잘 되게 해 주세요 오직 나만......’ ‘똥방오빠 여드름 빨리 낫길’ 어이없고, 황당하고 이기적이고, 재미있고 기발한 소원들 훔쳐보다 무슨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소리 죽여 키득키득 웃는다 문득 내 소원은 뭘까 마음에게 묻는다 소원 하나 없이 살았는지 선뜻 답을 찾지 못한 마음이 남의 소원지 위를 몇 바퀴 서성인다 다른 이들의 소원 앞에서 오히려 내가 더 간절하다 아브라카타브라 아브라카타브라 복수초 곽도경 약속도 없이 너를 기다린다 네가 올 것만 같은 그 산자락에 언제나 너 보다 먼저 가 기다리는 동안 고장 난 심장은 늘 그렇게 쿵쿵거리고 세상 누구보다 먼저 봄을 데리고 온 네가 금빛 얼굴 세상 밖으로 쏘옥 내밀면 눈이 부셔 나는 너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오래 기다렸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환해진 허공만 널 만지 듯 가만히 쥐었다 놓는다 ********* 대구시민백일장 입상 한맥문학 신인상 계간 시선 신인상 고령문학상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원 은시동인 대구문학아카데미 회원 고령문인협회사무국장 시집/ 풍금이 있는 풍경  
115 아는 게 없네 외1편/육봉수 file
편집자
5204 2011-04-04
11.04월 11호 시 아는게 없네 육봉수 몽울 맺은 생강나무 꽃가지 꺾어와 연필꽂이 통 비워 모양대로 꽂는데 여보 이 꽃은 왜 생강냄새가 날까? 몰라 하루 종일 잔디 심고 받아 든 일당 팔만원 침 바른 엄지손가락 힘주어 세고 또 세는데 왜? 적어요? 글쎄요 사모님 잘 모르겠어요 수니파와 시아파가 얽히고 섥히고 민주와 반민주가 끼어들더니 반정부가 정부를 몰아 부치는 듯 하다가 다시 정부가 반정부를 쫓아다니고 있는 아랍 아프리카 상황 속보의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아빠! 저 나라들은 왜 맨날 지네들끼리 지지고 볶고 저 모양이야? 모르겠다 아들아 소문에는 고삐를 묶어 죄였다. 풀었다. 싸움을 붙이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들 있다는데 뭐가 뭔지 아빠도 정말 잘 모르겠다. 그리운 선생님께 육봉수 시린 바람받이 문풍지 운다고 방안 화로 곁불이나 쬐시며 성에꽃 망연히 바라보시던 분 아니셨지요 밤새 내려 가벼운 가지 같은 건 하얗게 뚝뚝 꺽어 내리시던 눈꽃 이셨지요 어느틈 촉촉히 내린 빗물들 모아 엉덩이 툭툭 두드려 얼리셨다가 햇살 아래 비로소 눈물 처럼 떨어져 스미게 하시던 얼음꽃 이셨지요 이영희 선생님  
114 어이쿠/고석근 imagefile
편집자
3711 2011-04-02
11. 04월 11호 수필 좁은 인도에서 자전거를 조심스레 타고 가는데 갑자기 가게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뛰쳐나왔다. 나는 양손으로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고 그와 부딪치기 직전 자전거는 아슬아슬하게 멈춰 섰다. 어이쿠! 이 말을 함께 남기고 그와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각자의 길을 갔다.  
113 아름다운 시절/정복태 file
편집자
4409 2011-04-01
11. 04월 11호 소설 아름다운 시절 정 복 태 느티나무는 마을의 중심에 있었다. 여름철이면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의 쉼터로써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더러는 세상의 가장 나른한 모습으로 낮잠을 즐기던 동네 노인네들의 잠을 깨우는 바람에 시끄럽게 하던 아이들이 혼줄을 당하는 때도 자주 일어나기도 했다. 느티나무 가지속의 새들이 그런 광경을 보면서 소리를 질러대면 아이들은 언제 우리가 혼줄을 당했느냐는 모습으로 이곳 저곳을 쏜살같이 내달리고 있었다. 마을 앞은 강이 흘렀고 사람들은 그 강물을 퍼다 밥을 해먹었고 묵혀 두었던 빨래거리를 강물에서 빨았다. 강은 마을의 동쪽 끝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흘렀는데 여름철에는 더위를 못 참은 아이들이 해마다 그곳에서 빠져 죽었다. 그러면서 여름철 강물은 범람하여 마을의 논밭을 다 지은 농작물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강 맞은 편에는 산의 낮은 자락으로 나있는 신작로가 펼쳐져 있는데 그 길의 언덕머리에 관수루 정자가 우뚝 서있었다. 15C부터 세워져 그 당시의 시인묵객들이 주연과 더불어 시를 읊조리며 가까운 곳의 역참에서 밤을 보내고 정자의 한 자리에 자신의 시 한 편 씩을 남기고 떠난 곳이었다. 관수루에서 바라다 보면 동쪽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흘러가는 강의 전모가 한 눈에 드러나고 긴 모래밭이 강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름의 홍수를 위하여 강 입구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버드나무는 그 연한 목질로 하여 목재의 역할을 못하였지만 성큼성큼 자라는 성장 속도로 하여 사람들이 즐겨 심었던 수종이었다. 여름철 홍수로 불었던 물이 빠져나가면 동네 사람들은 버드나무 사이로 천렵을 하였다. 붕어며 버들치, 강새우 그리고 잉어 등 사시사철 보리밥 한 덩이로 단백질 부족의 마을 사람들의 영양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무엇보다 이 곳의 장관은 두 마을을 강이 막아서 서로 간 단절된 두 공간을 큰 목선을 만들어 서로 간을 소통하도록 이어주었다는데 있었다. 하루에 몇 차례 지나가는 버스도 이 목선으로 건넜다. 목선에서 일하는 사람을 사공이라고 했다. 대부분 뱃사공들은 이쪽 마을의 버드나무가 우거진 나루의 입구에 얼기설기 임시로 만든 집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부실한 목재로 지어진 처소에서 살았다. 목선의 입구로 신작로 옆으로 버스 승객들이 잠시 강을 건널 때의 머묾을 이용하여 작은 요기를 파는 가게들이 나란히 줄을 이어 생겼다. 그곳에는 막걸리만도 흡족하게 마시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처음보는 싸구려지만 양주도 있었고 양과자며 일본제 과자도 팔았다. 마을의 아이들은 목에 나무로 만든 목판을 만들어 목에 걸고 땅콩이며 자잘한 주로 먹을 것 중심으로 된 물품들을 버스 승객들에게 팔았다. 강물은 사공들의 튼실한 두 어깨에 의해 긴 장대로 강을 건넸다. 대부분 사공들은 아침이면 막소주 한 사발로 그런 힘든 일을 시작하여 종일 그렇게 거의 취해서 그 일을 하곤 했다. 해방 후 선거철마다 강으로 막힌 두 지역을 이어줄 다리를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입후보자들은 약속했지만 국회로 간 그들은 그 이후 그 약속을 까맣게 잊었고 조금 양심이 있는 인사는 그 곳에다 다리를 준비하는 다릿목을 하나씩 박았다. 그것이 선거용 다릿발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선량들을 비웃었다. 그러나 두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는 세워지지 않았다. 더욱 난감한 일은 해마다 여름철의 홍수로 하여 수십만 년의 흐름으로 만들어진 삼각주 마을 평야의 다자란 곡식들이 물에 잠겨서 마을사람들의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라는 이런 작은 마을까지 국가적 지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옛적 목선에서 수십 걸음 가까이 일제 시대의 주재소와 동척 지소가 있었다고 하는 곳은 이제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도로를 따라 대부분 논으로 이어져 있고 그 뒤로는 밭이 넓게 펼쳐 있었다. 마을에는 초등학교가 하나 도로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세워져 있었다. 유일한 이곳의 교육기관인 이 초등학교는 마을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봄과 가을 두 차례 있었던 학교 운동회는 마을의 축제였다. 백군 청군으로 나누어 학부형은 자신의 아이들 편에서 어른들과 아이들은 맹렬한 응원으로 운동회에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 날은 마을의 축제였다. 술에 취한 어른들이 더러 말다툼을 넘어 드잡이도 벌어지곤 하는 것이 다반사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운동회에 모두 모여 농사일로 힘들었던 시름겨웠던 일들을 이 날 하루만은 모두 잊어버리는 시끄러우면서 활기와 즐거움이 가득한 하루를 보냈다. 봄 가을 두 차례의 초등학교 운동회는 그렇게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공동 축제의 장 역할을 해 냈었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 아주까리 기름이나 겨우 동네 시장의 철물점에서 한됫박 사온 석유 등잔이 마을 사람들의 어둠을 밝혀주는 재료였다. 우리는 어렸을 때 그런 어둠침침한 속에서 연필에 춤을 묻혀가며 숙제를 했고 이튿날이면 코끝이 새까매진 것을 서로 보며 웃기도 했다. 언제나 먹는 문제가 가장 큰 이 곳 사람들의 걱정이었다. 대부분 소작농이었던 마을 사람들은 사시사철 온몸으로 일을 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식량은 늘 모자랐다. 아이들은 그것을 못참아했고 그 어린 아이들을 보는 부모들은 돌아서서 한숨을 쉬었고 어미는 눈물을 훔쳤다. 봄이면 벌써 보릿쌀까지도 떨어지고 먹을 것이 없는 집들은 아직 겨우 올라온 쑥을 뜯어서 기울에 버물러 끼니를 이어가는 참으로 흉측한 궁핍을 견뎌야 했다. 그래도 철없는 우리는 앞산에 뛰어노는 야생 산짐승처럼 동네를 휩쓸며 뛰어 놀았다. 동네 한 가운데 동네 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수령이 500년도 더 되었다고 전해 내려오는 느티나무는 자고 일어나면 우리 어린 것들이 뛰어놀던 놀이터였다. 느티는 아fot도리가 패져서 깊은 상흔에도 불구하고 희안하게 봄이 되면 잔잔한 잎을 솟구치며 여름으로 들어서면 짙은 녹음으로 우리 어린애들의 놀이터를 만들어 주었다. 단오가 되기 한 달 전부터 마을 장정들은 마을 어른들의 지시를 받으며 그네줄을 꼬았다. 느티나무의 실한 가지에 한 달 정도를 꼬은 굵은 동아줄로 그네를 매었다. 단오 전 날 마을 어른 한 분이 부디 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기원을 드리는 고사를 드리고 나서 이튿날 단오가 되면 동네 사람들은 동네 아낙네와 처녀애들의 치마와 함께 하늘 위로 솟구치는 아름다운 모습에 마을 사람들의 환성과 고함소리로 느티나무 밑은 분주해 지기 시작하여 거의 열흘 정도의 그네 타는 즐거운 축제가 이어졌다. 이 날 단오에는 아낙네들도 더러 치마가 바람에 휘날려 속 옷이 조금 드러나도 흠이 되지 않았다. 여인들에게 이 날 단오는 집안 담 안에서 지내다가 마음껏 바깥세계를 구경하는 날이었다. 오후가 되면 마을 풍악대가 흥겨운 풍악을 울리며 흥을 돋우며 한 켠에서는 돼지 한 마리가 삶겨져 온 마을 사람들의 뱃속을 즐겁게 하였고 술이 한 순배 돌아가면서 마을의 느티나무 아래는 최고의 놀이판이 벌어져서 여기저기서 춤을 치면서 왁자한 즐거운 웃음이 퍼져 올랐다. 그러면 우리 어린 것들은 덩달아 어른들 사이를 돌면서 한껏 단오의 기운과 무한한 즐거움을 느꼈다. 어른이 되어서야 옛 어른들이 단오절을 지켰던 세시풍속의 의미에 의하면 단오는 남자의 정기가 가장 강한 날이고 남의 집 일을 하는 머슴들에게도 이 날만은 용돈과 술과 고기를 주인이 대접했고 편안한 하루의 휴식을 허락한 날이라고 한다. 여인네들은 청포로 머리를 정갈히 감기도 했다. 단오도 끝나고 끊겨 나간 그네줄을 멍하니 보면서 흥겨웠던 단오의 기쁨을 떠올리며 시무룩히 느티나무 가지 위에 올라가 멀리 강물을 바라보면 강물은 미루나무 사이로 투명하게 빛을 품어내고 있었다. 긴 삿대로 목선이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까지 먼 빛으로 보였다. 동네의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갑자기 할 일을 잊어버린 듯 시무룩해져 활기를 잃어버렸다. 빛을 반사시키는 강물 위로 목선이 움직이는 광경을 보면서 저 목선을 건넌 버스는 어디까지 가는 지 그 향방이 늘 동경과 더불어 마을의 아이들은 몹시 궁금하기만 했다. 그때 우리가 알던 거리 감각은 고개를 넘은 바로 그 저쪽이 사람들이 가는 대구란 곳인 줄 알았다. 사실 우리는 초등학교를 마친 삼촌들이 돈을 벌기 위해 갔던 서울에서 명절날 고향을 다니러 온 일이 신기하기만 했다. 우리 아이들은 한 번도 서울은 커녕 대구조차 가본 적이 없는 피안의 저쪽 땅이었다. 강어귀에서 놀다가 목선에 실려 가던 버스에서 잠시 내린 손님들은 우리들에게 특별한 사람처럼 신기하게만 보였다. 강의 저 먼 곳으로 주름지어 끝없이 이어진 산들의 겹친 모습처럼 느티나무 위에서 바라보는 버스의 향방은 언제나 그리움과 더불어 깊은 동경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때 이르게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여름이 천천히 저 멀리서 오고 있었다. 여름철에는 강물이 불어서 마을 옆으로 냇물조차 강폭처럼 깊어질 때가 있었다. 처음 비가 시작하면서 논배미마다 있는 작은 보에서 물이 흘러 강으로 흐를 때면 우리는 작은 찌그러진 양동이를 들고 시냇물이 모래밭을 적시며 보에서 강으로 향하던 붕어며 강새우와 메기들을 주어 담았다. 점점 강물이 불어서 강어귀로 밀려나온 피라미들도 양동이에 담기에 바빴다. 대충 반 시간쯤 되면 양동이는 민물고기로 거의 반쯤을 채워져 집으로 오면 그날은 각자의 집에서 매운탕을 끓여서 집안 어른들의 술추렴이 벌어졌다. 어른들의 누렇고 탁한 이빨 사이로 일제시대와 해방 후의 아팠던 사람들의 드난살이의 슬픔이 배어든 유행가가 육자배기의 민요와 함께 집집마다 흘러 나왔다. 그러나 대체로 동네 사랑의 장년층 사내들의 사랑방에서 함께 합창으로 흘러나오는 일이 많았다. 빗소리와 그 합창의 유행가 가락은 참으로 끈적하게 밀착하여 두 소리의 교합을 몹시 듣는 사람에게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마력을 가졌다. 그것은 이 땅의 장삼이사가 겪었던 사람살이의 공통된 슬픔이었기 때문일까. 밖에는 비가 내리고 노래 소리는 이윽하니 취한 장년 사내들의 힘든 농사일에서 겨우 한숨을 쉬게하는 축복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여름의 일은 이런 기쁨만은 아니었다. 뙤약볕을 견디지 못했던 조무래기 동네 애들 중의 하나가 강물에 익사하는 날이던지 이웃 마을의 처녀를 사모하던 떠거머리 못난 청춘이 큰 못에 몸을 던져서 동네를 온통 눈물 바다로 흥건하게 젖게 할 때는 마을에는 신원 굿이 벌어졌다. 원혼을 풀어주는 신원굿을 하는 큰 무당은 마을의 외곽지에 혼자 살았다. 젊은 나이에 원통하게 이승을 떠난 가여운 넋을 그 원혼을 풀어주는 굿은 온 동네 아낙네들이 모인 곳에서 사고로 죽은 집의 마당에서 벌어졌다. 무당의 징소리와 온갖 원색의 무녀의 옷차림, 머리에 쓴 모자, 듣는 사람의 마음을 헤집어 놓는 음색, 대나무을 잡은 대잡이가 무당의 신통력으로 죽음에 이른 과정을 쏟아놓게 될 때,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하릴없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고 눈물의 강을 이루었다. 남정네들은 차마 아낙네 틈서리에서 울지 못하고 멀리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다. 사람의 슬픔은 무녀의 귀기서린 단장의 애끓는 타령에 무녀의 신통력에 감탄하며 흑흑하며 그 슬픔에 목이 메였다. 해마다 강의 신은 이런 어린 동네 아이들을 한둘씩 희생시켰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이 마을의 액운이라고 했다.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 신원을 풀어주어야 동네의 피해가 없어진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여름은 그렇게 길게 이어지면서 뜨거운 햇빛과 며칠씩 계속되는 지루한 장마와 지겨운 콩밭이며 논의 피살이 같은 힘든 노동과 더불어 깊어 갔다. 동네 한 가운데 서있는 느티나무는 오후의 한 때 마을 사람들의 휴식 공간을 톡톡히 해냈다. 우리 어린애들은 어머니의 걱정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느티나무로 올라가 술래잡기도 했고 소꼬리털로 매미를 잡기도 했다. 홍수로 강이 불어나면 강을 마주한 두 마을 사람들의 왕래가 당분 간 끊기기도 했다. 목선은 그 와중에도 마을을 지나는 버스와 트럭을 옮겨주기 위해 위험한 도강을 하기도 했다. 1930년 무렵 강은 그 아래의 바다에서 내륙으로 소금을 실어나르던 경유지였다. 나루라 불리어 지던 그 시절에는 주막이라는 이름의 밥집이 있었다. 보부상이라 불리어 지던 한 무리의 상인들이 나루에서 소금을 받아 더 큰 마을로 소금을 날랐다. 나루에서 마을의 중심을 지나 ‘부치데이 고개’라는 고갯길이 있었다. 근처에서 가장 높은 나각산이 뻗어내린 곳으로 가끔 화적이 출몰하기도 해서 도부꾼들은 고개에다 부처를 모시는 절을 세웠다. 그래서 이 고개를 ‘부처당 고개’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강의 선창은 언제나 막소주에 벌건 얼굴을 한 사공들과 동네 왈패들의 불콰한 술에 취한 모습이 있었다. 아비의 담배 심부름으로 나루에 가면 빼꼼히 내민 저고리가 풀어 헤쳐진 술집 작부들의 모습들을 보고 기이한 마음을 아이들에게 가져다 주기도 했다. ‘삐루’라 불리어지던 캔 맥주도 이곳 선창에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언감생심의 술이었다. 6.25전란과 더불어 유행한 이 삐루란 맥주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천상의 술로 마시기에는 너무 고가의 상품이었다. 6.25전란으로 나라가 어지럽던 시절 강은 피난민들이 여기저기 모진 목숨을 유지시켜 주기도 한 주요한 터전이기도 했다. 이 곳 강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남부여대하여 청도 밀양까지 걸어서 한많은 피난을 갔었다. 멀고 가까이 포성이 울리는 그 때 굶주림과 의식주가 최악의 상황에서 오직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마을 사람들은 난리를 피해야 했다. 마을마다 집안에 거름터라는 곳이 있었다. 이즈음으로 보면 쓰레기를 모아 놓는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피난을 가는 사람들은 가벼운 귀중품은 피난살이에서 즉시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휴대해서 가져 갔지만 무거운 것들은 대체로 자신의 집 거름터에다 깊이 묻고 떠났다. 전란이 끝난 후 돌아온 마을은 가옥은 물론이고 논밭까지 샅샅이 폐허화 되어 있었다. 한숨을 쉴 사이도 없이 먼저 어른들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논밭마다 묻혀 있는 포탄알의 빼냈고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을 베어내고 먹을 수 있는 작물을 심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미국이 준 구호시품인 밀가루, 옥수수 가루, 분유 가루를 받아서 집으로 가져왔다. 들에서 자라는 먹을 수 있는 산채를 뜯어서 아이들이 가져온 가루에 버물러 겨우 죽지 않을 만큼 끼니를 이었다. 모질고 너무나 배고픈 시절이 계속되었다. 강물은 그래도 푸르게 흘렀다. 때 이르게 닥친 장마는 굶주림에 지친 마을 사람들을 영양결핍의 온몸을 나른하게 가라앉혔다. 강물이 불어나는 그 사이로 흘러들던 작은 시내에서 봇물에 갇혔던 민물고기를 쪽대로 후려 마을 어른들은 막소주를 마져댔다. 모두가 절대적으로 빈곤한 시절이어서 자고 나면 첫 인사가 식사에 대한 말이었다. 견디지 못할 정도의 결핍의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강 둔덕에 서있는 산복숭아나무에서 까칠한 설익은 복숭아를 따먹으며 소를 뜯겼다. 산복숭아 열매는 떫고 입안에서 까끄러웠지만 배룰 채우는 고마운 것이었다. 모두가 허기졌고 마음은 저녁 하늘처럼 힘을 잃었다. 강은 수만 년을 흘러서 마을을 휘돌아 흐르면서 종은 지질의 퇴적층 땅을 형성하여 대체로 물이 잘 공급될 수 있는 곳은 벼를 심었고 그 외는 밭으로 어떤 작물을 심어도 잘 되었다. 강 옆으로 여름의 끝에 칠칠한 녹청색의 남자 어른의 종아리 크기만한 무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무가 무성하기 전에 이 곳은 원두막을 설치하여 참외, 수박 농사를 지어서 여름 한 철의 수입을 거두어 들였다. 무는 그 때쯤 도시에서 온 트럭이 줄을 이어 실어 날랐다. 칠칠한 잘 자란 무는 산더미처럼 트럭에 실려서 마을 사람들이 입을 함지만하게 만드는 효자 작물이었다. 가을이 되면서 마을의 뒷산으로 잘 익은 밤알들이 떨어지면서 아이들은 주인 몰래 밤을 털어서 집으로 가져갔다. 햇밤은 간식으로 더할 수 없이 감미롭고 은근하게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다. 강어귀에서는 민물게가 통통한 살을 올려서 어른들의 술안주감으로 최고였다. 특히 가을의 미꾸라지는 노란 몸통을 굴려 농사철 수확이 끝난 뒤 못을 퍼내서 몇 동이의 미꾸라지를 잡아서 마을의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절대적 빈곤의 시절이었지만 그러나 모두가 같은 처지였기에 인심은 너무나 도탑고 정겨웠다. 공동체가 가진 인심이 그런 대로 궁핍한 시대를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작은 위안이었다. 인정은 풍요로운 시절이었다. 가을이 되면 마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여름내내 궁핍한 어려운 시절을 지내면서 가꾼 곡식들과 과일들이 마을 이곳저곳에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풍요로운 현장을 보는 기쁨이었다. 비록 소작농으로 힘든 노동에 비해서는 보잘 것 없는 몫을 가져갈 뿐이지만 가을의 황금색 들녘은 사람들의 마음을 풍성한 환상으로 가득 채워 주었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맞이하는 추석, 집집마다 이 날만은 조상에 추원보본하기 위해서 떡을 빚고 먹지 못하던 고기근을 사서 삶고 지지고 볶았고 갖가지 나물을 새로 짠 참기름에 묻히면 마을은 고소하고 기름진 음식 냄새와 더불어 마을 사람들은 행복으로 이끌어 주었다. 아이들은 전을 부치던 가마솥에서 날쌔게 고기 한 점을 먹다가 어미에게 치도곤을 맞곤 했다. 또 누렇게 익어가는 논배미의 둔덕에서 잘 익은 햇콩을 뽑아서 쇠죽솥에 쇠죽과 함께 끓이면 햇콩맛의 구수함 그 맛은 참으로 최고의 미각을 느끼게 하였다. 소는 늘 우리네 농사꾼들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지금이사 소고기 수입 문제로 건강을 걱정하는 시절이 되었지만 그 시절은 소고기보다 소 한 마리는 한 집안의 재산 그 자체였다. 그런데 어떻게 가족 같은 소를 잡아 먹을 수 있었겠는가. 재산상의 가치는 고사하고 가족과 같은 그 정을 어찌 그 인연을 없앨 수 있었겠는가.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와 맨처음하는 일은 소를 이끌고 풀을 뜯기러 가서 소풀을 베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어느 곳에 가면 소가 좋아하는 풀이 많은 줄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고 그 곳에 닿으면 소를 풀어서 자유롭게 풀을 뜯게하고 풀을 베어서 망탱이에 채웠다. 마을을 굽어보는 산들은 대체로 낮았고 그 아래의 강은 마을 전체를 돌아서 유장하게 흘렀다. 마을 맞은 편은 옛날 역참이었고 이 곳은 멀리 부산포에서 소금을 내륙의 끝 지점인 안동 지역까지 실어다 주는 수운의 관문이었다. 장천이라고 옛날부터 불리어 졌다고 어른들이 말씀하는 것을 아이들은 들었다. 이 마을의 지역적 특성이어서인지 몰라도 마을의 구성원들 중 특별히 뛰어난 사람들도 없었고 거부의 대농장 경영자도 없었고 고만고만하게 찢어지는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햇빛과 산과 강과 논밭이 그들의 삶의 고단하면서도 즐겁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가을걷이가 거의 끝나면서 매서운 바람이 불어재키면서 겨울이 왔다. 겨울은 마을 사람들이 지게며 보따리를 가족수대로 하여 가까운 마을의 뒷산으로 땔감을 하러 다녔다. 유난히 오리나무와 참나무와 소나무도 많았다. 소나무 바늘끝 같은 갈색의 잎을 갈비라고 하여 아낙네들이 특히 많이 긁어 모은 땔감이었다. 갈비는 집안의 제삿날이나 축제 때 전을 부칠 때 매우 쓸모가 많은 땔감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른들은 대체로 소나무의 삭정이와 나뭇잎을 긁어모아 집체만한 땔감을 지게에 재워서 집으로 날랐다. 우리는 겨우 꼴망태 정도의 솔잎을 개미 보따리처럼 매고 어른들의 뒤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산 위로는 파아란 더 없이 맑고 높을 하늘을 기러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보리밥 한 덩이로 배를 채웠던 배는 다시 꼬르륵하는 소리가 났고 우리는 서둘러 감자며 고구마를 쇠죽 끓이는 부엌 아궁이에 넣었다. 겨울이 들면서 학교를 가야하는 아이들은 동네 골목의 따뜻한 양광이 비치는 곳으로 모였다가 함께 시끄럽게 재잘대면서 학교로 걸어갔다. 학교는 마을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십리나 떨어져 있는 아이들이 등에 책보따리를 매는 일에 비해서는 편했다. 대체로 교실 바닥은 가마니가 깔려 있었고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건물을 지어서 목재로 지어진 마루로 바뀌었다. 6학년이 되어도 아이들의 코 밑은 번들거렸고 옷소매는 콧물을 닦은 흔적이 햇빛에 반짝였다. 체육 시간은 언제나 달리기 한 종목이었다. 분단별 경쟁을 하면서 우리는 고함을 쳐대며 열광했다. 학교 운동장 담은 대체로 측백수로 빽빽이 줄을 이어서 둘레를 지었다. 일제 시대의 벚나무가 운동장 가로 서있기도 했다. 벚꽃은 봄에 꿈처럼 꽃망울을 터뜨려 어린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했다. 시험은 원지에 긁은 글씨 위로 등사 잉크를 발라 롤러도 눌러 시커먼 시험지에 등사하여 시험을 치렀는데 간혹 여러 번 눌러서 글자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늙은 대통령이 통치하던 그 시절 조회 시간이라는 아침 모임이면 애국가가 끝난 뒤 우리의 맹서를 소리 높여 암송하였었다. 당시의 선생님들은 마을 사람들의 우상이었고 숭앙의 대상이었고 마을의 처녀들 마음을 달뜨게 하는 대상이었다. 학교에서 우리는 토끼를 사육하였다. 물론 상급 학년이 되어야 그 임무가 맡겨졌다. 우리는 나각산 근처까지 올라 토끼가 좋아하던 씻냉이 혹은 씀바퀴를 뜯어러 당번이 되면 그 풀을 한 자루씩 뜯어서 학교로 돌아와 붉은 눈망울을 한 흰 빛과 잿빛을 띤 토끼에게 던져주면 토끼는 오물거리며 우리가 뜯어온 씀바퀴를 열심히 먹었다. 토끼들은 선생님들의 토요일 오후 술안주로 한 마리씩 희생되는 것을 우리 조무래기들은 이비 알고 서로 소리 낮추어 그 야만적 권위주의을 비웃곤 했다. 그러나 그 때 우리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은 정말 지극정성으로 우리의 교육에 열심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군사부일체라는 동양의 고전적 이념에 우리는 일제시대가 끝난 때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일본인이 우리에게 남겨준 군국주의적 의식 교육도 더러 받기도 했다. 겨울이 들어서면 마을의 사랑방에서는 볏짚으로 가마니를 짰다. 가마니를 짜는 나무로 만든 기계와 함께 마을 어른들은 밤마다 모여서 술내기 화투도 쳤고 옛날 이야기를 목청 좋은 마을의 어른 한 분이 읽으면 가마니 짜는 소리를 탓하며 귀를 귀울려 이야기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다. 마을에는 대부분 누구네 제삿날이라도 모두 꿰고 있었고 살아있는 집안 어른들의 생일까지 두루 알고 있었다. 제사를 지내면 음식을 한 밤중 돌려서 은근히 기다리기도 하는 풍습이 일반화 되었다. 동짓날 집안의 선조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집안의 좋은 운세를 비는 고사를 지냈다. 갓 빻은 찹쌀로 팥고물을 뿌려서 시루떡을 공통적으로 해서 고사를 지낸 집은 한 조각씩 집집마다 아이들을 통하여 빠짐없이 돌렸다. 찰지면서도 또 그 양이 많지 않아서였는지 맛이 너무 입에 감겼다. 쫀덕거리며 혀 끝에 감겨드는 그 찹쌀 시루떡 맛은 이웃 간의 인정을 그렇게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매개체였다. 그런 겨울의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밤에 돌아다니던 아이들은 고뿔이라는 감기에 걸린다. 아이의 콜록이는 기침 소리가 심해지면 집안의 할머니는 액운을 몰아내는 의식을 하여 몸살로 열이 오른 아이를 깨워서 시퍼런 칼날을 들이대어 머리카락을 세 번 문대고 침을 세 번 뱉어내라고 한다. 고뿔에 시달리던 아이는 고만 그 시퍼런 칼날에 간담이 콩알만 해진다. 문을 닫고 나가신 할머니는 천지신명과 조왕신에 간절히 빌다가 그만 바가지를 엎고 그 위에 칼을 꼽았다. 아마 이열치열의 고뿔퇴치법이었는지 모른다. 겨울이 더 깊어지면 마을 앞의 강이 얼어붙었다. 강이 얼면 목선을 띄우지 못할까 사공들은 밤새 얼어붙는 강물을 왔다갔다 하면서 얼지 못하게 했다. 적어도 그들은 그 일을 잠을 한 숨도 자지 않고 왕복하면서 계속했다. 도끼로 내려쳐도 언 강물이 얼음으로 단단해지면 우리는 나무 아래에 쇠줄을 씌운 썰매를 지치기 시작하였다. 더러 아이에 대한 엄한 어미들은 그런 아이를 강으로 가지 못하게 불호령을 내리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몰래 제 또래들과 지치도록 얼음판에서 썰매를 탔다. 썰매의 속도는 썰매 밑에 댄 쇠줄의 날카로움에 의해서 우열이 가려졌다. 동네 대장간에서 잘 연마된 쇠줄을 가진 아이들은 그 위에 대는 나무 조각도 매우 질 좋은 것을 대서 다른 아이들에게 과시하기도 하였다. 가난한 그 시대의 겨울밤은 너무 길고 길었다. 마을의 남자 어른들은 어느 집의 큰 사랑에서 가마니를 쳤고 그리고 묵내기 화투를 쳤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서 그렇게 긴 겨울밤을 보냈고 아낙들은 더러 길쌈을 하여 광목천을 짜기도 했고 아이들의 떨어진 옷을 꿰매기도 하고 양말짝도 깁으면서 한 없는 겨울밤을 견디었다. 그러다가 출출하게 배가 허전해지면 가을에 담가둔 쉬원한 통무우김치를 꺼내어 우적우적 씹기도 하면서 가까운 마을의 장터까지 걸어가 메밀묵을 사와서 신김치에 말아서 먹었다. 사실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먹을 것을 돈으로 구한다는 일은 사치한 일이었고 또 그것을 살 돈도 그들은 없었다. 김장 때 묻어두었던 배추뿌리며 알맞게 물이 마른 고구마도 긴 겨울밤을 보내는데 요긴한 식품이었다. 배추뿌리는 적당히 물기가 빠져 껍데기를 깎아서 씹으면 그 알싸한 매운 맛과 더불어 한참을 씹으면 은근히 혀끝으로 느껴지는 단맛은 일품의 맛이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긴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동지가 되면 팥죽을 쑤어서 마을의 재앙을 쫒는 의식을 치르면서 죽 속의 새알심을 나이에 맞추어 먹었다. 더러는 마을 전체의 앞날의 무운장수와 행운을 빌기 위하여 수수떡을 빚어서 동네의 한 가운데 서있는 느티나무에 가서 치성을 올렸다. 느티의 둘레에 사람으로 말하자면 옷 같은 그 해 생산된 볏짚으로 엮은 연개를 휘둘렀다. 마을의 가장 나이 많은 할머니가 지극정성으로 손을 모아 빌면서 마을의 무사태평을 정성껏 빌었다. 느티나무 속에서 잠을 자던 새가 부리나케 날아가기도 하고 더러는 게으른 새는 두 눈을 껌벅이며 횃불 속의 이 광경을 내려다 보기도 했다. 그리고 일 때문에 미루어 두었던 처녀 총각들의 결혼식이 벌어진다. 대체로 두어 마장 떨어진 이웃과 사둔관계를 맺었고 이 날 사모관대를 한 신랑이나 청홍 비단으로 단장한 신부는 마을 사람들의 과분한 찬사를 받으며 전통 혼례식의 주인공이 되었다. 혼례를 준비하는 집에서는 돼지를 한 마리 정도는 잡았는데 결혼식 당일 마을 사람들의 식욕을 돋구어서 마을 전체가 즐거움의 극한으로 몰아가게 하였다. 겨울 밤에 우리 개구쟁이 어린애들은 어렵게 구한 전짓불을 가지고 처마마다 잠자는 참새를 손으로 잡았다. 간혹 처마에서 구렁이가 나와 기겁을 하는 낭패고 겪어 소란을 떨기도 했지만 작은 마을의 초갓집 처마마다 참새는 자주 우리 개구쟁이들의 손에 잡혀 나와 애처롭게 파닥이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겨울에는 가을에 말린 무청과 배추 시레기로 보리밥에 된장과 고추장을 비벼서 먹는 맛도 겨울만이 주는 한 맛이었다. 모두가 어려운 살림살이에 먹는 행위가 마을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리고 어느날 망을의 남자 어른들은 도끼와 새끼줄과 긴 장대를 들고 꽁꽁 얼어붙은 강으로 함께 나간다. 숨구멍을 도끼로 둘레를 깨서 만들어 긴 장대 끝에 못을 박아 강바닥으로 휘적이면 한참후 민물장어가 거짓말처럼 대롱대롱 대달려 못에 박혀 딸려 나왔다. 민물장어는 단백질이 부족한 마을 사람들에게 긴 겨울을 이겨내게 하는 영양분을 제공하는 귀한 물고기였다. 특히 장어 작살을 하는 날은 눈이 뿌리면 더욱 실하고 튼실한 굵은 장어가 많이 잡혔다. 장어들은 추위 때문에 강의 바닥에서 겨울잠을 자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끌려 나왔다. 간혹 많이 잡힌 날은 장어에다 고추장을 발라 구워먹는 맛도 천하 일미였다. 설날은 일년 중 가장 신성한 날이면서 가장 풍요로운 명절 중의 명절이었다. 서울까지 돈별러 갔던 청년들이 이 날만은 모두 번쩍이는 신사복을 입고 선물을 사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집집마다 그 해 농사 지은 것중 가장 귀하고 좋은 곡식으로 차례상을 준비하였고 우리들도 설빔이라하여 비록 광묵천에 염색한 옷감으로 만든 옷이지만 새로운 옷을 입게 되고 양말도 새로 마련하여 아이들은 설날이 오기를 참으로 간절하게 기다렸다. 조상님들께 차례를 드리고 마을의 어른들을 나이순으로 차례차례 세배를 드렸다. 아이들은 색색의 팽이를 꺼내 돌렸고 처녀애들도 이 날 더 예쁜 얼굴 표정으로 생글거렸다. 정월 대보름의 쥐불놀이, 부름 깨물기 귀밝이 술 ‘내 더위 사라’는 말장난 등 이때쯤이면 지난 보름 전의 강정들이 집안 여기저기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대체로 쌀강정이나 깨강정은 처음 선호하는 강정이었고 들깨강정이나 콩강정은 그 맛과 단단함 때문에 손이 잘 가지 않던 강정이 보름이 지나면 콩강정까지도 아쉽게 사라지게 되었다. 음력 이월이면 집집마다 소지를 올렸다. 한 해 농사의 풍년을 베풀어 준다는 영등 할머니신에게 비는 간절한 기원의 지성님 소지의 제를 지냈다. 이월 초하룻날 새벽은 할머니의 주름진 손에서 얇은 한지로 만들어진 소지가 식구들 수대로 사루어졌다. 대체로 영등 할머니신이 들어 온다는 부엌에서 이 의식을 치렀다. 못자리에 사용할 짚단을 밑에 깐 그 위에 소반을 놓고 몇 가지의 정성을 다한 나물을 올리고 신성한 물 한동이를 옆에 두고 할머니는 집안의 식구들 각자의 이름을 호명하며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간절히 기원하는 치성을 드렸다. 그 날 이후 집안의 며느리는 정화수를 매일매일 떠 받쳤다. 그 지극정성의 섬김은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된 운명론적 간구, 절대적 종교와 같은 것이었다. 신령스러움조차 간직한 외경심의 극치였다. 차돌처럼 단단히 결빙되었던 강물이 풀리면서 겨울이 끝나고 먼빛으로 봄이 오고 있었다. 강물 위로 겨우내 찬기운이 풀리면서 엷은 안개가 조금씩 밀려왔다. 강어귀의 수양 버들 가지에서도 여린 잎사귀의 싹이 안간힘으로 솟아 올랐다. 다시 마을 사람들은 농사 준비로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집집마다 외양간에 있던 쇠똥이며 돼지울을 치워서 얻은 거름을 논에다 뿌렸다. 집식구들의 뒷간도 말끔하게 퍼서 밭에다 뿌렸다. 겨우내 꼼짝대지 않던 개들도 함부로 뛰어 다니기 시작했다. 마을이 침묵 속에 갇혀 있다가 한바탕 크게 기지개를 펴면서 봄을 맞고 있었다. 목선이 있는 나루에도 버스에서 내린 손님들의 왁자한 소리들이 활기에 넘쳤다. 땅콩과 과자를 파는 소녀애들도 덩달아 신명나게 물건을 팔기에 고함을 돋구었다. 목선의 사공들은 일이 없는 늦은 밤에 막소주를 너무 많이 마셔대어 서로 간 드잡이도 자주 벌어지고 하는 것이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면서 한층 고함 소리로 드높였다. 계절이 가져다 주는 따뜻한 축복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겨우내 움추렸던 마음을 한꺼번에 바꾸고 있었다. 봄이 되면 이웃 마을 사람들이 가득 목선을 건너서 장터로 몰려드는 때도 이 때였다. 장은 닷새마다 열렸지만 봄을 맞으면서 열리는 장터가 더욱 활기를 띄었다. 가축전에는 강아지와 어린 병아리가 둥주리 채로 가져와 팔았다. 아직은 쌀쌀한 기온에 이 가여운 강아지와 병아리들은 오소소 떨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연민에 잠기게 하였다. 국밥집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솟구쳐 장꾼들을 끌어 모았고 순대를 넣은 뜨껀한 국밥은 인기를 끌었다. 비단전이며 옷전은 별 재미를 볼 수 없었고 오직 사람들 발길이 이어지는 곳은 작물 씨앗전과 농기구를 파는 철물전과 농기구를 수선하는 대장간이었다. 건장한 사내의 땀이 흐르는 망치질 소리와 식칼이며 쟁기날이며 호미날, 괭이등을 두드리며 야금하는 주인 대장간 나이 든 대장장이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일을 다 본 마을 사람들은 저녁에 돌아올 때 간고등어 한 손, 호미 고기 한 줄 간혹 파란 연록빛 싱기 한 묶음을 사가지고 돌아갔다. 이튿날은 무를 넣은 간고등어국이 밥상에 올라 땀을 흘리면서 그것을 먹어댔다. 싱기는 물에 풀어서 돌을 가려내고 물을 짜내고 양념을 하여 참기름과 파와 다진 마늘을 넣어 조근조근 무치면 그 맛도 일품이었다. 우리는 호미고기를 쇠죽 끓이는 부엌에서 구워 먹었다. 간혹 호미고기에서 알이라도 나오면 그 날은 행재를 만난 날이었다. 먼 빛으로 보이는 나각산도 부우윰하게 회색과 아른아른한 푸른 빛을 비치고 있었다. 비록 높지는 않은 산이지만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산은 늘 위엄을 가지고 그 곳에 서있었다. 우리들은 그 곳에서 학교에서 키우던 토끼며 닭을 위하여 지천으로 풀이 우거진 나각산으로 즐겨 오르곤 했었다. 나각산 정상에서는 강물이 휘돌아 마을로 스며들 듯이 한 눈에 들어왔고 마을 전체가 손바닥만하게 아스라이 보였다. 산의 정상 바로 밑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바위 곳곳에 이상하게 조개껍질이 박혀 있는 형상이 신비했다. 아마 수만 년 전 바다던 지층이 화산 폭발로 융기하여 지금의 산으로 형상화된 모양이었다. 언제나 그 산을 오르면 가슴이 탁 트이는 쉬원함이 있었다. 나각산의 끝에 이 곳 저 곳의 마을이 올망졸망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같은 성씨로 마을을 이룬 곳도 있었고 옛날 서울에서 큰 벼슬을 했다는 낙향한 집안의 기와집은 그들의 위세를 자랑하는 제실과 더불어 망루처럼 대단히 크고 위용이 넘쳤다. 흔히 그 집을 가르켜 마을 사람들은 ‘대감댁’이라 불렀다. 지금에사 신분제가 폐지된 사회지만 적어도 마을 사람들은 옛날의 상감마마 아래서 벼슬을 했던 그 집의 조상에 대한 극진한 예우를 해 주었다. 그런 마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윗 상전에 대한 자연스런 의식이 끊이지 않고 적어도 그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그 큰 고대광실의 기와집의 주인은 먼 일가가 살고 있을 뿐 정작 대감의 후손들은 그곳에 살고 있지 않았다. 해마다 그 기와집의 뒷산에 있는 제실에서 일가 문중이 모여들어 훌륭한 조상들을 위한 묘제를 올리곤 했다. 마을의 배고픈 아이들은 묘제를 지낼 때 쯤 슬며시 구경꾼으로 끼어들면 그 사람들은 아이 어른 가리지 않고 묘제에 올렸던 음식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언제부터인가 용바위라 불리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명주 실꾸러미 한 통이 다 들어가는 깊은 곳이라 일켣든 용바위 주변에 고무로 만든 기괴한 옷을 입은 사람이 입에 담배대 같은 것을 물고 들어가 가마니로 잉어를 잡아 올렸다. 잠수부가 건져올린 잉어는 꼬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잉어 본래의 힘찬 용틀림을 하며 퍼득였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얼마간의 적은 돈을 주고 잉어를 샀다. 잉어는 닭과 더불어 가마솥에 푹 고와서 특히 아이를 낳은 아낙네들에게 귀한 음식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용봉탕’이라 불리어진 이 잉어탕은 사실 맛은 별로였다. 용바위가 마을의 맞은 편에 있었는데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그 곳은 바위가 유난히 날카롭게 솟구쳐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곳이었다. 아이들도 수영에 능했지만 용바위 근처로는 수영을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곳에는 강신이 살기 때문에 해마다 제물을 필요로 해서 강신에게 잡혀간다는 전설이 전해져 왔기에 마을 사람들에게는 외경의 장소였다. 그런 곳이 위험해서인지 차 사고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 길이 험해서 운전하는 사람들도 용바위를 지날 때는 속도를 줄이고 유난히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마을 쪽에는 언덕이 있어 여름날 소를 뜯기러 가서 언덕 위에서 우리는 강물로 뛰어드는 담력 겨루기를 하기도 했다. 언덕 옆 방죽에는 복숭아며 산 사과나무와 돌배나무가 있어서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배를 채워주는 고마운 과일나무가 있던 곳이었다. 산복숭의 열매는 떫고 거친 맛이었고 돌배의 속살은 못이 박힌 것처럼 단단하기만 했고 사과 열매조차 사과의 조상이라는 능금처럼 그 크기가 너무나 작았다. 그러나 가난한 시대 아이들의 간식용으로 그 열매들은 반갑고 고마운 것들이었다. 강을 마주한 모랫벌 뒤의 긴 방죽은 소를 마음대로 풀어놓을 수 있었고 대체로 소풀이 언제나 풍성하게 자라 있는 곳이었다. 우리들은 그 강을 마주한 방죽에서 장난을 쳤고 풀을 뜯었고 소에게 풀을 먹게 하였다. 서쪽 하늘로 붉은 놀이 마지막 빛을 품어낼 때쯤 우리는 망태기와 소를 몰고 집으로 천천히 돌아왔다. 노을빛에 비친 우리들과 소의 그림자는 길게 돌아오는 우리들과 함께 길게 그리고 배 고픈 마음처럼 늘어져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강은 그 시절의 마실 물이었고 사계를 마을의 아낙네들의 빨래터였고 농사 짓는 물을 공급해 주던 생명의 젖줄이었다. 수만 년 전부터 흘러왔고 끝없이 흘러갈 강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그렇게 끈질기고 온유하게 흐르는 강을 닮게 하는 어떤 힘을 가진 존재였다. 대부분 마을 사람들의 집은 근처의 산흙을 파와서 짚을 썩어서 흙벽돌을 찍어 만들었다. 나지막한 구조로 집의 높이는 그렇게 되었었고 아궁이에 산에서 나뭇잎과 삭정이를 해와 밥과 추위을 피하기 위하여 불을 때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여름에는 시원했고 겨울에는 따뜻했다. 가을철 타작을 한 뒤에 남은 볏짚을 이엉으로 엮어 해마다 지붕을 이었다. 마을 사람들 사이 품앗이로 그 일은 이루어졌다. 이엉을 올리고 그 위에 굵게 꼬은 새끼줄로 단단히 묶어서 지붕을 새로 덮었다. 벗겨낸 지난 해 이엉은 좋은 거름이 되었다. 집의 방 앞에는 툇마루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가 매일 닦아서 마루의 표면은 오래된 고색창연한 오래된 빛깔로 어두운 빛과 더불어 거울처럼 맑게 비칠 정도로 은은한 빛살을 품어내고 있었다. 할아버지 거처 옆으로 ㄱ자로 꺽여진 곳에는 성주 단지를 모신 집안의 성스러운 곳이 각목으로 받침을 해서 일 년 내내 그곳에 안치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명절을 모신 뒤에도 그 곳에는 다시 상을 차려서 집안의 성주신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하였다. 마루위의 서까래 끝에는 제비집이 늘 봄에 와서 새끼를 길러서 가을이면 먼 곳으로 날아갔다. 간혹 제비가 눈 분비물이 마루에 떨어져 추했지만 집안의 그 누구도 제비를 탓하지는 않았다. 제비에 대한 우리 나라의 전래 동화에서 유래된 흥부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제비란 존재는 신비한 우리가 갈 수 없는 이상향의 높은 곳에서 우리들 곁을 찾아준 외경의 새로 제비를 생각했고 봄날 새로 새끼를 얻은 뒤 어미 새가 가져온 먹이를 서로 탐을 내는 노란 여린 입이 너무나 귀엽게 느껴졌다. 서까래 끝에서는 어린 제비 새끼가 살았고 마을 사람들은 그 제비 새끼 같은 어린 자식들을 낳아서 길렀다. 마당마다 새로 부화하여 어미 닭이 갓 태어난 병아리를 몰고 다니면서 마당가의 풀잎이나 지렁이아 벌레들을 쪼으면서 종종걸음을 쳤다. 개는 봄날의 긴 기지개를 켜며 온몸을 길게 빼면서 한껏 게으른 몸짓을 하였다. 미국이 가져다준 밀가루 우윳가루 강냉이가루를 먹는 고단하고 궁핍한 시절인데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게 슬프지도 괴롭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시절이었다. 봄이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논밭을 갈면서 사람들은 비록 작은 소작의 전답이었지만 가을의 풍요로운 황금들판을 떠올리며 정성으로 일을 시작했다. 마을 앞으로 길게 흘러가는 강과 강에서 비롯된 기름진 땅에서 일을 했고 뒷산으로 이어진 산비탈에는 과실나무를 심었고 사람들은 정신적인 풍요로움에 모두 어느 정도는 느긋한 즐겁고 행복함을 서로 나누며 살고 있었다. 겨울의 끝에는 6 년간의 배움에서 떠나는 졸업식이 있었다. 교실 두 칸을 터서 교단 여러 개를 포개서 단을 만들고 만국기를 게양하고 작은 음악회도 마련하고 그리고 근처 장터의 노점상들이 주변을 채우고 졸업하는 아이가 없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졸업식을 하는 날이면 마을의 축제가 되었다. 특히 송사와 답사가 낭독될 즈음이면 여기저기 여자애들이 하나씩 울기 시작하여 이윽고 전체 졸업생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울어대는 가운데 졸업식은 절정에 이르른다. 더러 마을의 아낙네들도 두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기에 바빴다. 이월의 여린 햇살이 비쳐드는 졸업식의 광경은 기쁜 슬픔의 한 순간으로 삶의 한 잊을 수 없는 절대의 모습으로 마을 모든 사람들의 머릿 속에 간직되는 일이 되었다. 아이들은 더러 중학교로 가기도 하고 그 때만 해도 어렵던 시절이라 대부분 가정을 위하여 일을 하기 위해 그 공부 기간이 그것으로 끝은 맺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졸업하는 아이들은 정말 그렇게 섧게 울었는지 모른다. 새로올 삶이 그들을 기다리는 그런 졸업식이 그 때는 마을의 한 큰 축제였다.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끝> 정복태 경북 상주 출생. 영남대 국문학과 졸업. 한국문인협회 한국 소설가 협회 회원. 상주문협지회장. 작품 <환상의 덫> <행어의 죽음> <혜국사> <나른한 오후> <깊은 산 속 옹달샘> <언젠가 그런 시간이 온다> 외 다수 발표.  
112 낙동강/박희용 file
편집자
4427 2011-04-01
11.04월 11호 시 낙동강 박희용 늙은 어미 자르고 깎고 막고 파 성형수술하면 무엇해 늙은 어미 빨갛게 노랗게 파랗게 분칠해 다시 시집가면 무엇해 늙은 어미 팔자에 없는 호강은 싫다 평생소원 하나 태백산맥 가장 높은 곳에서 시작 해 영남의 가장 낮은 곳까지 소리 소문 없이 흐르는 것 늙은 어미 토막 내어 시장에 내 놓는 자식들아 내 팔리거든 부디 잘 살아라 배반을 가슴에 보듬어 안으며 황지에서 부산까지 저절로 흐르는 것 봄에는 꽃잎을 싣고 가을에는 풀씨를 품고 하늘이 준 수수한 옷 차려입고 하염없이 흘러 천삼백리 길 알알이 열린 강변 생물들 잘사나 못사나 여울마다 몸 뒤척이며 물어보다 하얀 머릿수건 흔들며 남쪽바다 깊숙이 한 생애 묻는 것  
111 봄이 오는 소리 외1편/신구자 file
편집자
4803 2011-04-01
11.04월 11호 시 봄이 오는 소리 신구자 내려오기 위해서 올라가는 가파른 길, 대둔산 마천대처럼 홀로 우뚝 솟은 중지만한 고드름, 파아란 이끼이불 조심스레 펴놓고 봄과 은밀하게 체위를 바꾸고 있는 중이다 수줍은듯 발소리 낮추며 계곡물은 졸졸졸 길을 나서고 있다 명자꽃을 보며 신 구 자 불임의 딸 가진 어미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날마다 장독대 정안수 떠놓고 지켜본 너의 여린 몸속, 드디어 잉태의 씨앗 눈 뜨기 시작했구나 황사바람의 늪 속에서도 앙다문 인내 앞에선 불타던 빙벽도 무릎 꿇었구나 종달새 탄주하듯 눈부신 새 아침 약력 경북 칠곡군 약목 출생 1994년 [대구문학]과 1999년 [불교문예]신인상 시 당선으로 등단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불교문인협회, 대구여성문인협회, 칠곡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솔뫼시>와 <반짇고리> 동인으로 활동 시집 [낫골 가는 길] 출간  
110 퇴강 외1편/김숙자 file
편집자
4952 2011-04-01
11.04월 11호 시 퇴강 김숙자 매호골 부는 바람 퇴강의 나룻배여 어릴적 강심에서 달을 따던 소녀의 꿈 이제는 되돌아 앉아 퇴강 섶에 지켜 섰다 강건너 배띄우던 아버지 추억의 강 칠백리 백사벌에 물총새 고이 울고 물놀이 달리던 아이 옛친구는 어디로 갔다. 벼랑끝 버들가지 춤추는 강나루에 어풍대(御風臺) 홀로 앉아서 글을 읽던 조우인 선생 임호정(臨湖丁)그림자 안고 낙동강은 흘러갔다. 새마골* 가는 길 김숙자 운무 휘감긴 어풍대* 돌아서면 수양버들 머리 풀어 헤치고 멱감는 은비늘 곧추세우며 꿈틀대는 낙동강 벌개미취 뒤에 숨은 하늘 닿은 상풍교* 옛 나룻터 지키는 구멍가게 주인은 달바다 이고 춤추는 방랑자를 맞는다. 희망 보이지 않던 절망의 늪에서 수평선처럼 끝없이 펼쳐진 금모래 물총새 꽁지깃 흔들며 냉가슴을 보듬네 새마골:상주시 사벌면 퇴강리(새마) 상풍교:상주와 풍양을 잇는 다리 어풍대:관동속별곡과 매호별곡을 쓴 조우인 시인이 머물수 있는 곳을 찾다가 쉬던곳 조우인 시비 맞은편에 있는 (두평 정도되는 둥글 넓적한 큰바위) 아호:명헌(茗軒) 김숙자 드라마를 사랑하는모임 (작가) 3기수료 샘터인간승리상 수상 여성동아 체험수기공모 수상 전국독도사랑작품공모대회 안용복 장군상 수상 문학세계 시 등단 문학세계 신인문학상수상 나래시조 신인문학상수상 이육사 시낭송경연대회 수상 문학세계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상주문인협회 회원 상주아동문학회 회원 경북문화유적해설사 회원 경북 향토문화연구사 회원 경천대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 정기룡장군 추진위원회 회원 함창초등학교 논술강사 역임 문경글사냥문학회 사무국장 역임 상주 시민신문기자 역임 저서:날고싶은 제비(장편소설) 공저:아름다운사람들(1,2,3,4,5,6,7집) 내마음은 독도, 푸른잔디, 경북의 얼굴 시조시인 100인선집외 다수 현:상주문화유적해설사 회장 다사랑복지센터 논술강사 문경글사냥문학회 부회장 dkll2004@naver.com http://blog.daum.net/love2004-2004 http://cafe.daum.net/myeong2011(별빛언덕) 경북 상주시 함창읍 오사1리 211  
109 서정적 풍경 외1편/황명강 file
편집자
4534 2011-04-01
11.04월 11호 시 서정적 풍경 황명강 전봇대 서있는 풍경은 서정적이다 책가방 둘러메고 뛰던 유년의 공터에 박힌 따뜻한 위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나는 전봇대에 얼굴을 묻고 자주 술래가 되곤 했었다 눈을 뜨면 사방 어둠이 물들어 딱딱한 어둠에 눌려 혼자 울곤 했는데, 젖은 어깨 토닥여 주던 전봇대의 크고 기다란 손 누군가 지금도 서정을 말하라면 내 마음 훔쳐보던 전봇대를 떠올린다 단발머리 계집애 하나 감꽃처럼 쪼그리고 앉아 있는 촛불 황명강 어둠을 핥아대고 있는 저 널름거리는 혓바닥을 봐 비명 지르며 허공들은 불의 입속으로 삼켜지고 조금씩 어둠의 나라 정복하고 있는 저 짐승의 식욕을 봐 내 안에서 나를 핥아대고 있는 이 짐승 좀 보라지 내 오장육부를 삼키고 대뇌와 소뇌를 삼키고 마침내 나를 정복하고 마는 한 마리 광폭한 현재를 약력 황명강 경북 경주 출생 서정시학 시 등단 한국시협, 경북문협, 경주문협 회원 현, GBN경북방송(주) 대표이사  
108 별 외1편/서 하 file
편집자
4126 2011-04-01
11.04월 11호 시 별 서하 청송 쪽 35번 국도를 따라 흐르다 보면 하늘로 가는 길 열린다 천 길 낭떠러지가 길이었고 발부리 끝이 벼랑이었던 기억을 더듬어 별들이 길 내고 있는 보현산 천문대 소소리바람에도 시린 속내 들키는 시루봉 열어 살며 쪼이던 당신을 꺼낸다 아득히 멀어서 평생 말문 닫은 당신 차마 뱉을 수 없었던 말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데 주머니마다 꾹꾹 눌러 담은 그늘이 소복하다 비층구름이 겹으로 달려들어도 잎은 꽃이 되고 꽃은 별이 되는 곳 하늘말나리 뜨거운 이마위에 직녀별이 꾀꾀로 손 얹을 때 말라비틀어진 몸에도 물이 차올라 구불구불 당신 사랑한 날이 지붕에 푸른 박을 낳는다 새우 서하 힘들 때마다 아무도 찾지 못할 곳으로 잠수해버리겠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가 정말 사라졌다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일곱 식구가 새우처럼 옹기종기 잠들던 아랫목에 두근두근 피어나던 꽃, 민망하기만 한데 세상을 안으로만 껴안은 탓인가 해 저문 뒷산이 내려다보는 마을 앞길도 굽을 데가 아닌 곳에서 슬며시 굽는다 찬바람 굽은 채 마당으로 깔릴 때 사라진 새우 기다리며 파도는 꼬박 밤을 새운다 ♧서하(徐 河) 경북 영천 출생 1999년 계간시지『시안』신인상 수상 현재 한국시인협회, 시안시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주 작은 아침』시안 출판  
107 쿠바를 생각하다/강태규 file
편집자
2645 2011-04-01
(쿠바를 생각하다) 강태규 우리에게 지리적으로 가까운 북한보다 남미의 북단 카리브해 연안의 섬으로 있는 쿠바는 우리에게 멀리 있기도 하지마는, 이념적 자기검열만 극복할 수 있다면 균열조짐이 보이는 신자유주의 추종국가 보다는 역설적으로 더 나은, 지속가능하거나 예측 가능한 미래가 더 잘 보일 수 있다고도 생각된다. 이미 부자를 위한 의료정책으로 가는 미국이나 한국의 방향과는 달리 쿠바의 우수한 일차 진료체계는 우리들에게 이미 번역서(『또 하나의 혁명, 쿠바의 일차의료』화이트보드와 브랜치 공저)를 통해 자세하게 소개되기도 하였다. 더구나, 지난 달, 서울에서는 쿠바의 대표적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의 작품들이 성황리에 전시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자리 잡던 1959년, 쿠바 국민들은 쿠바혁명을 통하여 ‘라울 피델 카스트로’ 형제에 의해 오랜 통치를 지금까지 받고 있다. 그런 동안에 우리는 자유, 군정, 문민, 열린, 참여 등의 정치를 통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이념적으로 더 미국적으로 변하였으나, 쿠바는 오히려 반미국적으로 유지 또는 진화하여 왔다. 그러는 사이 다큐영화 '식코'에 의해 조롱받는 미국의료체계와는 달리 현재로서는 미래대안적인 쿠바식 일차 진료체계의 성공적 운용은 국가총생산량이니 인민(국민)의 행복지수를 제쳐두고서라도 최소한 신자유주의 자체의 균열이 분명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비록, 경제봉쇄와 생필품 부족은 있다손 치더라도 최강의 군사력, 외교력의 막강한 힘을 가진 미국을 곁에 두고 버티고 있는 저력은 놀랍기도 하다. 칼럼기고가겸 출판인 이규항의 표현대로, 인민이라는 좋은 단어가 공산주의 국가에서 더 많이 번역되어 사용된 탓으로 국민이라는 표현에 익숙한 우리에게 또 역설적으로 전체주의적 단어처럼 독해되기도 한다. 즉, 국 + 민, 또는 국 > 민, 으로 해독되기도 한다. 동무라는 좋은 단어가 친구로 대치되어버린 처지와도 같다. 작년 방북으로 ‘곰프’의 석방유도에 성공한 카터 전 대통령의 탁월한 중재력도, 이번 3월, 쿠바법원에 의해 국가전복혐의로 구금된 ‘그로스’를 석방시키지는 못했다. 도박판으로 비유하자면, 쿠바가 북한 보다는 맞대면하기에 어려운 상대로 읽혀지기도 한다. 21세기는 문화정치 또는 문화전쟁의 시대가 분명해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는 엄마친구 아들만 보아도 그 집안을 대략 가늠하며 상징적 기호에 규정짓기에 더욱 익숙해지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 아바나의 명물 말레콘, 센트로 아바나에 가득한 쿠바의 야구열광, 프라도 거리, 유기농산물이 넘치는 주말 장터, 헤밍웨이 박물관, 체 게바라 기념관 등으로 쿠바적인 문화적 기호가 넘친다. 또한, 쿠바혁명에 가담한 한인 2세, 임은조씨( 헤로니모 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946년 한인 최초로 아바나 법학대학에 입학하여 수학하던 중, 체 게바라,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에 선봉을 선 바 있으며, 혁명 성공후 식량사업부에서 30년간 일하며 차관까지 역임하였다고 한다. 쿠바를 생각하며 우리와 북한을 떠 올린다. 우리 문화의 기호들을 나열해 본다. 그 기호들에 우리 국민, 아니 인민들은 열광하고 동의하며 살고 있는가. 더 귀한 것들이 천대받고 있는 듯 하다. 큰 도시 중심가의 환자로 차고 넘치는 뻔뻔스러운 대형 병원건물과 간판들을 보노라면. 온갖 기교를 다 부리며 우아하게 쓰여진 영어 간판들을 보노라면.  
106 강동수의 <금발의 제니>
누미
4536 2011-03-13
내가 좋아하는 소설 나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금발의 제니였을까? 찬란했던 청춘의 날들에 누군가는 내 금발의 제니였을까? ‘제국익문사’의 작가 강동수의 두 번째 소설집 ‘금발의 제니’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집 안에 실린 ‘수도원 부근’을 읽으면서, ‘호반에서 만나다’를 읽으면서 쓸쓸하게, 적막하게 웃었다. 아마도 나 역시 누군가의 제니였을 거니까. 누군가는 나의 제니였고, 한때 제니였던 중년의 우리는 새벽녘 베란다에 서서 ‘금발의 제니’를 반추하는 작가 강동수처럼 청춘의 한 시절을 건너왔으니까. 촉촉한 윤기와 바스러짐, 그 쓸쓸함의 정체 몇 년 전 강동수 작가가 낀 여럿의 소주자리에서 풋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다들 <금발의 제니>에 등장하는 첫사랑쯤보다 더 어린 나이 귓볼 발개지는 연정 한 자락씩을 고백했던 것인데, 중년이 되어 우연한 재회를 가졌다는 이에게 강동수 작가가 건넸던 말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쓸쓸해서 어떻게 그 마른 만남을 가졌느냐고. 그 자리에서 들은 다른 이야기보다 이상하게 그 말의 여운이 오래 남더니, <금발의 제니>을 읽으면서 알 것 같았다. 신문사 논설위원이자 보수적인 가장의 체통을 겨울담요처럼 걸치고 있는 중년의 사내와 별을 노래하고픈 천진한 심성이 천성인 소년의 부조화 같은. 이런저런 술자리에서 곧잘 드러내던 그의 고백의 연장선으로 <금발의 제니>를 보더라도, 7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건 ‘촉촉한 윤기와 바스러짐’이다. 금발의 제니들은 청춘의 자체발광으로 찬란했으나 생의 너덜길을 건너오는 동안 아름다웠던 모습은 윤기 없이 바스러진다. 서로의 후줄근한 모습을 바라보며 ‘오래전 책갈피에 넣어둔 마른 야생화 같은 묵은 그리움이 살아나는 것’을 느끼지만, ‘담뱃불을 끄듯 마음속에서 솟아오른 격정을 눌러끄고 만다’. 세월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다. 욕망도 그리움도 회한의 여지도 남아있지 않은, 그래서 마른키스로밖에 만날 수 없는 과거와의 재회는, 어지간히 허망한데, 이 지점에서 작가는 무심한 어조로 별을 노래한다. 별을 노래하되, 물론 중년답게 말이다. 아름다웠던 금발의 제니에 대해 꺼져가는 불씨가 살아나듯 일어나는 욕망을 담뱃불 눌러 끄듯 꺼버리는 무기력한 중년은 삶의 덧없음과 함께 아름다움의 근원을 눈치채버린 자의 쓸쓸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쓸쓸함의 정체는 싱싱하고 팽팽했던 젊음이 물기 없이 바스러진 중년으로 되어가는 과정에서 사랑이 사라지고, 욕망과 기쁨과 분노가 사라져 간 시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 강동수가 풀어내는 쓸쓸함은 금발의 제니들이 살아온 시간 저편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 별을 그들이 잊지 않았다는 데서 기인한다. 별이 흐르듯 우주를 돌아가는 시간처럼 2010년 오영수문학상 수상작인 '수도원 부근'에서 작가는 청춘의 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중년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어릴 때 ‘나’와 같은 성당에 다녔던 안드레아와 체칠리아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수사가 되었고, 체칠리아는 수녀원에 가서 종신서원을 했다. 소설가로 나오는 ‘나’는 안드레아가 재벌의 레저단지 개발에 반대해 단식 투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안드레아로부터 체칠리아 소식을 듣는다. 체칠리아는 수녀원에서 나와 달동네에 사는 남자와 결혼해 그의 아이들을 돌보며 살고 있다. 두 친구가 살아온 내력이 펼쳐지는 것과 병행해 수도원 현장은 용역깡패들이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는 사태를 맞는다. 안드레아는 그들이 던진 돌에 이마를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그들과의 대치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안드레아도 알고 있지만(두 사람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체칠리아도 알고 있었으리라), 별이 흐르듯 우주를 돌아가는 시간처럼 스스로가 선택하는 모양새인 운명 또한 도무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번의 여행이 끝나도 길은 다시 시작되는 것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수도원을 떠난다. 그리고 국도 쪽으로 길을 잡는다(옆길로 잠깐 새자면, 소설집 <금발의 제니>는 독립적인 7편의 단편을 다루고 있지만 화자가 서성이는 배경에서 튀어나오는 키워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일테면 ‘수도원부근’ 마지막에서 ‘국도’ 쪽으로 길을 잡은 ‘나’의 발걸음은 아들의 사고소식을 듣고 ‘7번 국도’로 들어서는 중년남자의 막막한 길로 이어진다. 그리고 소설 마지막 문장, ‘갑자기 몰아닥친 한낮의 어둠에 나는 눈을 비볐다’는 ‘명왕성이란 이름에서 왜행성 132340으로 격하돼 아내의 궤도에서 퇴출당한 전직시인의 후줄근한 시간을 그린 ‘청조문학회 일본 방문기’에 겹쳐진다.) 구비를 돌자 수도원 뒷산이 보였다. 산자락에 걸린 호수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 옛날 체칠리아가 술에 취해 중얼거리던 말이 떠오른 것은. 아름다운 것은 멀리 있다. 그게 칸트의 말이었던가 아니었던가. 기억나지 않았다. 멀리 있지만, 그러나 역으로 분명한 것은 아름다운 것을 놓지 않는 한, 무력하게 지친 중년의 시간 속에서 잊지 않고 바라보는 한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해 있다는 것이다. 하고 보면 청춘이 중년보다 스스로 아름다운 건, 별이 얼마나 아득하고 멀리 있는지 몰랐기 때문은 아닐까. 결국 작가 강동수가 <금발의 제니>를 통해 일관되게 다루고 있는 것은 ‘별과의 거리’일진대, 현재의 시간을 단단히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결코 가능한 작업이 아니었을 성싶다. ‘아름다운 것은 멀리 있는’ 만큼, 한 번의 여행이 끝나도 길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리라. 여간해서 눈치 채기 어렵지만, 작가와 이런저런 일로 어울리며 감지한, 놀라울 정도의 자기애로 스스로의 삶에 몰두하여 급기야 스스로 별이 되기도 하는 천진함을 소설의 군불로 삼는 작가 강동수의 다음 여정이 자못 궁금하다.  
105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셨는가요?/한경희
편집자
2918 2011-03-01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셨는가요? 한경희 사랑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사랑은 청춘의 꽃처럼 상징화 되어 있지요. 늙은이들의 연애담은 코미디 정도일 뿐 대중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집안의 가장, 한 세대를 정리하고 새롭게 연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서 그럴까요. 아니면 늙음에 대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일까요. 농경사회에서 노장을 아주 지혜로운 인물로 권위를 부여했다면 오늘날은 어떤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화는 질병쯤으로 여겨지지요. 누구든 젊어보이고자 하는 열망을 돌아보세요. 그렇게 늙는 일이 다들 싫은가 봅니다. 그래도 늙지 않고 살 사람 하나 없지요. 사람이 늙는다고 연애와 사랑도 시들해질까요. 숙제입니다. 물론 이 영화의 주제는 사랑이죠. 그것도 노년의 사랑을 중심에 두죠. 세월의 파도를 함께 잘 넘어온 한 쌍의 노부부와 연애가 막 시작되는 할배, 할매 이야기가 중심을 이룹니다. 노부부야 좀 도덕적인 버전입니다. 부부이야기를 뺄 수 없어 넣어둔 건 아닐까요. 가족단위에서 부부를 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가족이 많지만 보편적인 가족을 무시할 수 없지요. 제가 봐서는 노년의 연애가 중심을 이룹니다. 이미 결혼 안에서 나누는 사랑은 개인의지 외 결속과 책임감이 강하게 작용하지만. 개인의 사랑만이 둘의 관계를 지속시키는 연애이야기가 좀더 박진감이 넘치죠. 영화에 등장하는 노부부의 이야기는 일상과는 좀 차이가 나죠. 치매를 앓는 아내에게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남편이 나옵니다. 주차장 관리인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남편은 아내를 봐줄 사람이 없어 늘 출근할 때마다 대문을 자물쇠로 잠금니다. 밥이며, 목욕이며, 일상에 필요한 모든 일을 남편이 대신하는 거죠. 만약, 이 구도를 바꿔 치매 걸린 남편과 희생하는 아내가 나오면 영화적인 맛이 살아지겠지요. 어떤 통계자료에 따르면 남편보다 부인이 병든 자신의 반려자를 위해 간호하는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하네요. 그 일상의 비율을 넘어선 것이 영화일까요. 아무튼. 영화에서 남편은 너무나 아내를 사랑하지요. 그러던 어느날, 고물상이 건네준 자명종 시계를 믿고 늦잠을 자고 정신없이 출근하면서 대문을 잠그지 못하죠. 그때부터 아내의 외출이 시작됩니다. 쌀쌀한 날씨에 맨발로 잠자던 차림 그대로 다니기 시작합니다. 치매는 사람을 여리고 순수한 세계로 안내하기도 하죠, 출근하는 남편 뒤에서 잘 다녀오라는 손짓까지 하지요. 그리고 자유로운 여행아닌 여행을 나서고 뒤늦게 남편은 아내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거지요. 이 치매든 아내가 다행히 약수터 가는 할배에게 포착되어 집을 찾아가게 되지요. 이 할배는 오토바이에 이 사람을 태우고 집을 찾아나서지만 좀처럼 쉽게 찾지를 못하지요. 동네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고불고불 이어지는 골목을 두루 돌아다니고, 오토바이 뒷자리 앉은 사람은 마냥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그저 자신의 남편으로 착각하고 딱 붙잡고 그 자유로운 공기를 마음껏 마시지요. 오토바이를 모는 할아버지는 혼자되신지 꽤 오래되지만 아들, 손녀, 며느리와 함께 사는 비교적 행복한 사람이죠. 늘 아침 일찍 우유배달을 다니지요. 오토바이로 동네 언덕을 오를 때면 리어카에 폐휴지를 모아서 끌고 힘겹게 오르는 할머니를 만나지만 무심결에 지나다닙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넘어지면서 리어카 끄는 일을 도와주다가 그만 마음이 할머니 쪽으로 옮겨갑니다. 할머니를 돕겠다고 빈 우유곽을 모아 갖다 주기도 합니다.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맞춰 골목에서 기다리기도 하고요. 그러다 데이트신청을 편지로 하는데, 글쎄 할머니는 글을 읽을 줄 몰라 주차관리하는 할아버지가 대독을 해 줍니다. 그러자니 시간이 너무 늦었지요. 그때까지 할아버지는 기다리고. 기다리지 않은 척을 하지만 배에서는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였지요. 이 둘의 사랑이 어쩌면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한때 부부로 살던 사람들이 자신의 반쪽과 사별하고 혼자 남아서 노년을 보낼 때 맞이하는 사랑을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요. 늙어서 하는 연애를 망측하게 바라보는 우리의 관념 때문이겠지요. 칠십대에 십대소녀를 좋아했던 괴테처럼 연애를 할 수야 없지만 서로의 형편을 너무나 잘 헤아리는 사람끼리 사랑하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요. 나이가 무슨 상관이나 있을까요. 자식들에게 얼굴이 안 서는 일일까요. 영화에서야 예쁜 손녀가 할아버지 연애의 상담사가 되지요. 사회복지사인 손녀에게 이름도 없는 송씨 할머니의 이름을 지어 매달 연금을 타게 하기도 하고, 덕분에 할머니 생일까지 알게 된 할아버지는 마음을 전할 기회를 잡지요. 할머니의 생일날 케잌에 촛불을 켜고 머리핀을 선물로 주면서 ‘그대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 전에 죽은 아내의 무덤을 찾아가 ‘그래도 괜찮은가’를 묻고 허락을 받았나 봅니다. ‘당신’은 먼저 간 아내만을 위한 호칭이라 ‘그대’라고 부른 것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제일 두려운 건 헤어지는 일인가 봅니다. 사랑의 다툼도 헤어지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일테고요. 사랑은 함께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럴까요. 치매아내를 수발하던 남편도 너무 늦게 발견한 아내의 암으로 동반자살을 합니다. 자식들에게 부담도 되기 싫고 암으로 아파하는 아내를 위해 마지막 결단을 내린거죠. 둘이 함께 가는 길은 외롭지 않을까요. 그것이 죽음이라도. 송씨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결별을 선언합니다. 죽음이 둘을 갈라놓는 일을 지켜볼 수 없어서죠. 첫 아이 출산하고 집나간 낭군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까지 죽었던 자신의 아픈 경험을 다시 체험하고 싶지 않아서일까요. 그리고 평생을 혼자살다 황천길이 멀지 않는 시간에 사랑을 느끼는 건 기쁨만큼 불안했던 거지요. 그 불안에 할아버지는 어쩌지 못해 화를 내고 할머니가 선물로 준 자랑스런 가죽장갑도 내팽개치지만 시골 고향까지 할머니를 데려다 줍니다. 복사꽃이 환한 고향에서 둘은 포옹을 하지요.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지요. 노년의 연애는 죽음이라는 두려운 시간 때문에 몹시 망설여지는 거 같아요.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훨씬 덜 외롭지 않았을까요. 그 죽음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할머니는 여전히 할아버지와 연애 중이겠지요. 영화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나라고 가면서 멈추죠. 노년에 만나는 연애가 청춘들의 연애보다 못할 게 뭐 있나요. 참 아름답고 감동적이죠, 그 솔직하고 진지하게 배려하는 마음씀씀이가 곱지요. 청춘들 보다 성숙해서 속도는 좀 느릿느릿하지만 마음이야 다를 게 하나 없지요. 노년의 연애담에 다들 눈물, 콧물 짠하게 흘리는 이유가 그런 것 아닌가요.  
104 (해양중편소설)쇄빙항해/이윤길 file
편집자
4308 2011-03-01
11.03월 10호 소설 해양 중편소설 쇄 빙 항 해 이 윤 길 300장 1 - 캡틴 박, 한 시간 후야. 아침 일찍 셔틀 비행기 편으로 세인트존스 항으로 나간 앙리의 전화였다. “알았네.” 나는 서둘렀다. 앙리의 요청이라면 더 물어볼 것도 없었다. 그는 화물선 두 척을 소유한 뉴잉글랜드 라인의 오너이고, 나는 그 중 하나인 폴라리스 호의 선장이기 때문이었다. 두 배는 대서양 연안의 북미 각 항구에서 이리 호의 하항인 몬트리올까지의 세인트로렌스 수로를 정기적으로 운항하고 있었다. 따라서 앙리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면서도 수익이 보장된 항로에 배를 투입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거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가령 1월부터 3월까지의 한겨울 철이면 강물은 두껍게 꽁꽁 얼어붙고, 거기에 딸린 만마저 그린란드로부터 떠내려 온 부빙으로 하얗게 뒤덮이면서 항로가 그만 제 기능을 잃고 만다는 점이었다. 그러면 배는 세인트존스 항에 닻을 놓을 수밖에 없고, 덕분에 나는 생피에르 섬으로 돌아가 해빙기가 올 때까지 가족과 함께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는 것이다. 사흘 전 나는 앙리와 함께 사냥에 나섰으나 겨우 토끼 두 마리를 잡는 데 그쳤다. 프랑스의 유일한 해외 자치령인 생피에르 섬은 사주(砂洲)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키 낮은 떨기나무만 띄엄띄엄할 뿐, 당초부터 풀 한 포기 자라나지 않는 황무지였다. 사정은 인근의 미크롱 섬도 마찬가지여서 그곳에는 세상을 등진 수도승이나 은둔자 몇 명만이 자신들의 인내심을 저울질하며 고독한 삶을 살고 있을 뿐, 주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버려진 땅이었다. 그러나 자연은 너무도 너그럽고 위대하기만 하여, 그 같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얼마든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 그 하나가 뉴펀들랜드 섬 너머의 그랜드뱅크인데, 만약 그곳에 대구나 청어 등 값진 어족이 회유하고 있지 않다면 아무 멋모르고 첫 발을 내딛은 이주민들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 하고 그곳을 떠났거나 아니면 굶어 죽고 말았을 것이다. 일찍이 신대륙 개척시대에 캐나다 동북부를 선점한 영국인들에게서 쫓겨난 피레네 산맥 출신의 바스크 인들이 지금까지 그곳에서 용케 살아남은 것은 인근 바다가 둘도 없는 천혜의 어장이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 어느 화주의 전화를 받은 앙리는 서둘러 셔틀 비행기를 탔다. 생피에르에서 외지로 나가려면 일주일에 두 번씩 뜨는 셔틀 수상비행기가 유일했다. 따라서 한 시간 후에 뜬다는 셔틀기는 순전히 나를 위해 앙리가 서둘러 마련한 특별기가 분명했다. “급한 화물이 있는 모양이지.” 출발에 앞서 앙리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하기는 제아무리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던 해운회사 오너라도 급한 화물이 있다는 데는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기왕이면 플로리다 쪽이 좋겠네. 오랜만에 따뜻한 바람이나 쐬게 말이다.” 내가 앙리의 어깨를 툭 치며 그렇게 농을 한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세인트로렌스 수로는 지금 단단히 결빙된 상태여서 어떤 항해도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항로는 틀림없이 세인트로렌스 수로가 아닌 다른 곳일 수밖에 없다. “그랬음 얼마나 좋겠나.” 앙리도 웃으며 나의 농을 받아 주었다. “플로리다라면 나도 동행하고 싶네.” 우리는 소리 내어 웃었다. 2 내가 계류장에 도착하였을 때 셔틀기는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기세에 있었다. “이거 날씨가 보통 아닌데요.” 청바지 차림의 뚱뚱이 조종사가 찰랑거리는 물결 위의 착수용(着水用) 플롯을 내려다보며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면서 조종사는, 잠깐 동안인데 이렇게 살얼음이 달라붙어버렸으니 말입니다, 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한낮에도 태양은 남쪽 지평선 한 뼘 위에 잠깐 걸쳐지는, 밤이 낮보다 네 배는 더 긴 북구의 한겨울 철이었다. 며칠 전부터 기온은 영하 30도 아래로 곤두박질친 가운데 하늘은 두터운 구름으로 뒤덮여 있어서 이러다가는 행여 아이스 스톰으로 발전하지나 않을까, 더럭 겁이 날 정도였다. 얼음 폭풍우라고나 해야 할 국지적 기상이변인 아이스 스톰은 몇 년 전 몬트리올 일대를 강타하여 빙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가옥은 물론 아름드리 거목이나 전신주가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면서 일주일 동안이나 정전 사태를 일으켜 세상을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었다. “잘 다녀오세요.” 아내 마들렌은 에스키모 여인들처럼 이제 일곱 달이 된 찰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이럴 땐 아빠 바이바이, 그러는 거야.” 마들렌이 앙증스러운 찰리의 손을 잡고 함께 흔들어 주었다. 마들렌을 만난 것은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운명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내는 신천지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바스크 인의 후예답게 시원시원한 면모를 갖고 있었다. 당시 나는 뉴펀들랜드 어장에 시험조업차 입어한 트롤선의 1등항해사였다. 수산계 고등학교를 나온 게 학력의 전부인 나는 그 때문에 번번이 선장 진급에서 탈락하는 비운의 처지였다. 그래서 선택한 게 그랜드뱅크에 투입된 시험조업선 승선이었다. 그만큼 그곳은 미지의 세계였고, 기상이 험악하기로 이름나 있었다. 따라서 만약 내가 그 모험적인 항해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그 성과만으로도 나의 선장 진급은 따 놓은 당상이라 해도 좋았다. 앞서 말한 대로 그랜드뱅크는 황금어장이어서 한 달 남짓이면 얼마든지 어창을 채워낼 수 있었다. 그렇게 만선을 이루면 배는 어획물의 양륙과 선원들의 휴식을 위해 세인트로렌스 만 어귀의 생피에르 섬으로 귀항하곤 하였다. 첫 항차를 마치고 기항하였을 때였다. 어획물 양륙은 시간을 다투는 일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어창을 비워낸 다음 서둘러 어장으로 달려 나가는 게 어부들이 할 일이었다. 그래서 짧은 해가 진 다음이면 부두는 작업등으로 휘황하게 밝혀지고, 대낮 같은 그 불빛 속에서 이슥한 밤 시각에 이르기까지 어부들은 어획물 양륙으로 눈코 뜰 새 없다. 그렇다고 거푸 사나흘을 계속하여 고기 푸는 일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다못해 시원한 한 잔 맥주로 목구멍을 걸러낸 다음이라야 무슨 일이든 엄두가 날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모처럼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내가 행여 부두에서 누가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서둘러 상륙을 나간 것은 밤 열 시도 가까워서였다. 목적지는 부두 정문 맞은편의 ‘로제’라는 이름의 자그만 바였다. 자정 가까운 시간인데도 홀은 술꾼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늦가을 어기가 끝난 참이라 그들 모두가 어장에서 돌아온 어부들이었다. 몇 달 동안 북대서양 그랜드뱅크의 거친 파도에 시달리기만 한 어부들인 것이다. 좋은 성과를 낸 치들은 기분이 좋아서 한 잔, 결과가 신통치 않은 치들은 기분이 나빠서 한 잔, 그렇게 밤을 새워가며 육지의 훈훈한 땅 냄새에 흠뻑 취하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 생선 가공공장의 노동자 얼굴도 몇몇 보였다. 그만큼 생피에르 섬은 세계에서도 이름난 수산업의 중심항이었다. 그곳에 여자들이 끼인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일이었다. 방금 어장에서 돌아온 남편과 함께든가, 아니면 영원히 귀항하지 못한 남편을 기다리기에 지쳐 한 잔 술로 고독을 달래려는 여인들이었다. 그 사이에 마들렌 양도 끼어 있었다. 붉은 색 풍성한 머리카락과 늘씬한 몸매가 그녀의 미모를 한결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첫눈에도 결코 어부로 보이지 않는 사내와 함께였는데, 마침 우리 일행과 테이블을 접하고 있어서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마주치면 스스럼없어지는 게 바닷사람들의 속성이자 강점이 아니던가. 그곳에서 언어 소통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몸짓 손짓 하나로도 얼마든지 의사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먼저 ‘어이, 프렌드!’ 하면, 상대방 역시 술잔을 높이 들고 ‘어이! 아미고!’ 라고 답하는 것으로 금세 막역한 사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바다라는 한자 ‘海’에는 어머니를 뜻하는 어미 ‘母’ 자가 뜻글자로 들어가 있다. 프랑스 말도 마찬가지다. 철자 하나만 다를 뿐 바다도 어머니도 다같이 ‘라 메르’ 또는 ‘엘 마르’라 부르는 게 그것이다. 결국 바다에 사는 뱃사람들은 누구나 없이 자상하고 따뜻한 어머니의 자식들인 것이다. 두 남녀는 태평양 너머로부터 원양어장을 찾아 나선 우리 동양인들을 아주 반갑게 대해 주었다. 그랜드뱅크는 연중조업이 가능할 만큼 어자원이 풍부한데다가, 낯선 동양인이 잡아온 어획물이라도 그것을 가공하여 팔면 경제도 윤택해진다는 게 그들의 소박한 생각인 것이다. “유, 저패니스?” 그녀가 나에게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아니, 꼬레안입니다.” 내가 고쳐 주었다. “와우! 레드 데블!” 그녀가 환성을 질렀다. 붉은악마의 응원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던지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한국이라면 2002년 서울에서 개최된 월드컵을 쉽게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반갑다며 몇 번이나 잔을 부딪쳐 왔다. “앙리예요.” 그녀가 함께 앉은 사내를 소개해 주었다. 그것으로 나는 훤칠한 몸매의 그 사내가 세인트로렌스 수로에서 화물선을 운항하고 있는 오너라는 것과 두 사람은 남매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혼은 했나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그런 경험은 가져본 적이 없다고 답해 주었다. 수줍어하는 나를 보고 그녀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한국의 풍습에 이어 나의 신상에 관해서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이를 물어봐도 될까요?” 그녀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갔다. “스물여덟입니다.” “아이! 나보다 세 살 많네요.” 우리 둘의 대화를 앙리는 웃으면서 듣고 있었다. 뮤직박스에서는 끝없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락이 끝나자 다음에는 블루스 차례였다. 로제 바에서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었다. 문이 열리고 술꾼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 맨 먼저 블루스 곡이 흘러나오고, 새벽 두 시가 되면 다시금 블루스 곡을 트는 게 그것이었다. 첫 번째 곡은 영업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멘트이고, 마지막 곡은 곧 문을 닫겠다는 클로징 시그널인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블루스 곡이 흘러나오면 순식간에 홀은 의자를 밀쳐내는 소리로 왁자해진다. 그녀가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한 곡 추실까요?” 사양할 일이 아니었다. “댕큐!” 그녀의 손에 이끌리어 홀 중앙으로 나간 나는 서투르게 스텝을 밟았다. 흑인영가와는 다른 낮은 톤의 잔잔한 블루스 곡이었는데, 스텝을 밟는 동안 나는 자꾸만 가슴이 설레어 재어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 이유를 나는 알고 있었다. 다른 항구와는 달리 생피에르 섬 여인들이 마지막 블루스 곡에 맞추어 스텝을 밟으면 그 상대 남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의사의 표시이고, 그런 다음 자리로 돌아와 남자의 점퍼를 엉덩이에 깔고 앉으면 ‘당신은 내 것이야!’라는 완강한 자기표현이라는 말을 들어서였다. 나는 기대에 부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의 소망을 이해했다. 곡이 끝나고 테이블로 돌아오자마자 앞장선 그녀가 의자 등받이에 걸쳐 두고 있던 나의 점퍼를 잡아채어서는 자신의 엉덩이에다 깔고 앉은 것이었다. 여동생의 그 모습을 본 앙리가 깔깔 웃었다. “아이구나! 당신을 좋아하는 것 같소.” “아니, 뭐라고요?” “마들렌이 당신에게 반했단 말이요.” 그러더니 앙리가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치는 저쪽 여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들렌은 저런 여자들과는 다릅니다. 아직도 처녀니까요. 게다가 당신도 미혼이라면서요?” 그게 마들렌과 인연을 맺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결국 그 같은 생피에르 섬 여인들의 기이한 관습 덕분에 나는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 셈이었고, 앙리는 자신이 소유한 선박의 운항을 도맡아 줄 멋진 항해사를 찾아낸 것이었다. 셔틀 비행기가 천천히 계류장을 벗어나자 나도 마들렌과 찰리를 향해 가만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3 셔틀기가 뉴펀들랜드 섬의 상공을 날고 있을 때 기어코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눈이 아니라 비였다. 하강하는 동안에는 물방울에 틀림없는데, 어디건 달라붙는 대로 결빙하는 아이스 스노우였다. 예사롭지 않은 기상의 조짐을 본 나는 셔틀기에 오르기 전 잠깐 떠올렸던 아이스 스톰을 되살려내고는 조금 불안한 마음이 되었다. 아이스 스노우는 와이퍼의 쉼 없는 작동에도 불구하고 금세 시야를 가로막을 만큼 비행기 앞 유리창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슬그머니 조종사의 눈치를 살폈으나, 그는 전혀 개의하는 기색이 없었다. 나의 불안은 점점 커져갔다. 그러나 셔틀기가 뉴펀들랜드의 구릉을 넘어선 다음 시야가 확 트이면서 광활한 대서양 바다를 내려다보게 되자 거짓말처럼 아이스 스노우가 그쳐 있었다. 아마도 망망대해로부터 불어온 바닷바람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의 우려는 사라졌다. 내가 중앙부두에 도착하였을 때 폴라리스 호에서는 벌써부터 화물의 선적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조심해! 조심하라고! 세인트존스를 불바다로 만들지 않으려면 말이다!” 헬멧을 쓴 사내 하나가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갑판에서 나를 본 앙리가 손을 흔들었다. 앙리는 나를 재빨리 발견했다. 그만큼 그는 눈 빠지게 나를 기다렸던 것이다. “이 화물을 몬트리올까지 운송해 주기로 했다.” “몬트리올?” 의외의 목적항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선장을 맡고 있는 화물선 폴라리스 호는 지금 결빙 상태에 있는 세인트로렌스 수로를 뚫고 나가야 한다는 말이 된다. “거긴 지금……결빙 상태 아닌가?” 나는 농담이려니 했다. 하지만 앙리는 진지했다. “그래서 화주가 최신 아이스브리커 한 척을 수배해 놓았다네.” “아이스브리커?” 아이스브리커가 무엇인지는 나도 안다. 얼음이 덮인 비해(氷海)를 앞장서서 빙반을 깨트리며 뒤 따르는 배의 길을 터주는 쇄빙선(碎氷船)이다. “블루스타라고, 미국 국적선이래. 최근에 취역한 1만3천 톤급 아이스브리커로, 디젤엔진과 가스터빈을 동시에 가동하는 트리플 프로펠러 시스템이래. 선폭도 25미터를 넘는 대형선이어서 우리 배를 유도하기에는 그저 그만이라는 거야.” 블루스타 호라면 나도 들어본 적 있다. 앙리가 말을 계속했다. “하긴 우리나라(캐나다)에도 아이스브리커가 없는 건 아니지. 원자력으로 추진되는 3만7천 톤급 아크티카 호가 있지 않나? 하지만 지금은 여기 없어. 한 달 전 시추선의 길을 터주기 위해 북극해에 나가 있다더군.” 앙리는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미리부터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애를 쓴 게 틀림없었다. “저 화물은 뭔데?” 당연히 화물 종류가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화물이기에 이처럼 법석인가 해서였다. “다이너마이트래.” “뭐? 다이너마이트?” 앙리의 설명은 이러했다. 어젯밤 오타와 인근의 한 원유 채굴장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워낙 불길이 거세어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도대체 진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현장을 확인한 전문가들은 수년 전 텍사스 유전에서 한 것처럼, 일시에 다량의 화약을 폭파시켜 유정을 폐공(閉孔)시키는 것만이 불길을 잡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제언했다는 것이다. 그 다량의 화약이 마침 세인트존스 항 인근에 보관되고 있었고, 그 운송을 폴라리스 호가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카고나 디트로이트에도 확인하였는데 충분한 양이 되지 못한대. 왜 안전관리법에도 있지 않나? 화약 보관은 인구밀집지역에서 멀리 떨어지라고! 마침 이웃 래브라도에는 주석과 보크사이트 광산이 많지? 그래서 세인트로렌스 인근에는 광산에 다이너마이트를 대주는 대규모 창고가 즐비한 거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제반 사정은 이미 폴라리스 호의 출항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그러자 앙리가 마지막으로 다잡았다. “꼭 운송료가 탐나서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진압하지 못 하면 환경적으로도 큰 재앙이 될 것 아닌가?” 동의하면서도 나는 배를 몰고 가야 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임을 분명히 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꽁꽁 언 빙반을 깨트리며 몬트리올까지 가려면 며칠이나 걸릴 텐데?” 앙리 역시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것도 이미 고려한 다음이야. 어쨌거나 현재로는 이 방법이 유일하다는 거야! 물량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마땅한 항공기도 구하지 못 해서래.” 4 나는 출항 준비를 끝낸 1등항해사 빌리로부터 승조원 현황을 보고받았다. “갑판장만 빠졌습니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한 갑판장은 모처럼의 휴가를 활용하여 가족과 함께 유럽을 여행 중에 있다는 것이다. “저 친구가 있지 않나?” 브리지까지 올라온 오너가 한창 카고 윈치 조종에 여념 없는 한 선원을 가리켰다. “꼬레안 헤드세일러 말인가?” 김갑준이라는 한국인 선원이었다. “그래.” 오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출신 헤드세일러인 김갑준의 캐나다 귀화 역시 나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몇 년 전 트롤선의 갑판원이었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다른 배편으로 급히 후송되었는데, 맹장염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다음 며칠간 입원을 하고 있는 동안 어느 간호사와 눈이 맞았다. 그런 일이야 뱃사람에게는 너무도 흔한 일이어서 그가 기항하는 동안이면 두 연인은 수시로 만나곤 하였는데, 몇 차례 출어와 귀항을 반복하는 사이에 그녀가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되면서 그는 그만 꼼짝없이 발이 묶이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가정이란 원래부터 일정한 수입이 있어야 유지되는 것 아닌가. 그가 갑판원으로 폴라리스 호에 승선하게 된 것은 그 같은 사유에서였다. 선장인 나로서도 나쁠 게 없었다. 마침 갑판원 자리가 하나 비어 있어서 승선의 기회를 주었던 것인데, 워낙 근면하고 성실한 성품인지라 그로부터 몇 달 후 그는 갑판장 다음 직책인 헤드세일러로 승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출항 준비는 끝났다. 그렇다고 나의 마음이 여유로웠던 건 아니었다. 쇄빙항해라니! 나는 문득 인듀런스 호로 남극탐험에 나섰다가 부빙에 갇히면서 영하 40도의 혹한을 이겨내고 무사 귀환한 영국 탐험가 섀클턴을 떠올렸다. 그는 눈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세 개의 마스트가 차례로 부러지고, 사방에서 죄어오는 얼음덩이의 압박으로 늑골재와 선미재까지 파손되면서 탐험선의 기능을 상실한 인듀런스 호를 떠나 눈보라와 혹한의 극한 상황으로 내몰렸으나 2년 가까운 긴 조난 상황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의 희생자도 내지 않은 채 무사 귀환함으로써 아문센이나 스콧보다도 더 위인으로 추앙되고 있는 불세출의 탐험가였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사진에서 본, 털실로 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조끼 차림으로 승마용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깊이 찔러 넣은 섀클턴의 늠름한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렇다면 이번 항해가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는 징조는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쇄빙선 블루스타 호 역시 진작부터 출항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두꺼운 얼음장을 차례차례 깨트리며 항로를 터나가는 게 본업인 블루스타 호는 아이슬란드의 트롤선처럼 몽톡하면서도 육중한 느낌을 주는 특이한 선체를 가진데다가 외판을 온통 빨간 페인트로 칠하고 있어서 일반선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쇄빙항해가 처음인 나는 출항하기 전 잠시 캡틴 윌리스와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가졌다. 전임 선장이 노령으로 은퇴하자 그 직을 이어받았다는 나와 비슷한 연배의 전문가였다. “꼬레안이라고요? 오너로부터 들었습니다.” 첫눈에도 캡틴 윌리스는 서글서글했다. “이 미녀는 우리 배 1등항해사 미스 모니카입니다.” 캡틴 윌리스가 먼저 동행한 여자 항해사를 소개해 주었다. 윌리스 말처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늘씬한 몸매에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나의 의례적인 인사를 경쾌하게 받으면서도 그녀는 연신 가슴에다 껴안은 강아지의 목덜미를 가볍게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수북이 자라난 새까만 털이 두 눈을 거의 가리다시피 한 요크셔테리어 종이었다. 캡틴 윌리스가 쇄빙항해의 요령을 설명했다. “아이스브리킹은 처음이라지요? 하지만 크게 걱정할 건 없습니다. 이래 뵈도 나는 평생을 아이스브리커만 탔습니다. 이번에도 온타리오(호)를 다녀왔습니다. 갈 때는 래브라도 산(産) 철광석을 실은 화물선을 유도했고, 올 때는 곡물을 싣고 유럽으로 가는 벌크선을 안내했습니다.” 그는 아주 자신이 만만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의 장담처럼 이번 항해가 아무 탈 없이 순탄하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장담할 수 없었다. 나는 난생 처음 경험하게 될 쇄빙항해를 앞두고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기묘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캡틴 윌리스의 주문은 딱 한가지였다. “항해하는 동안 우리 배(블루스타 호)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부단한 교신이 필수적입니다. 피차의 상황을 충분히 파악해야 하니까요. 그 일을 위해 우리 배 토키맨 한 명이 귀선으로 건너갈 겁니다. 이건 반드시 필요한 조치입니다. 그래야만 어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봉착하더라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 거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는 요크셔테리어를 안은 1등항해사가 나섰다. “중요한 건 두 배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일입니다. 너무 멀리 뒤쳐져도 안 되고, 너무 접근해서도 곤란합니다. 우리는 얼음을 깨기 위해 수없이 래밍을 되풀이해야 하거든요. 조금만 지체해도 강물은 금방 얼어버리지 않던가요?” 나는 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녀가 말하는 동안 요크셔테리어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자, 그럼 출항하실까요?” 두 배의 출항은 아이스브리커의 토키맨인 한센 씨가 폴라리스 호로 건너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토키맨은 먼저 워키토키의 성능을 체크하는 것으로 그의 임무를 시작했다. “여기는 폴라리스 호, 폴라리스 호! 감도 아주 좋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꽤 카랑카랑했다. 5 방파제를 벗어난 순간부터 나는 곳곳에 떠 있는 크고 작은 부빙부터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두 북극해의 그린란드로부터 떠내려 온 얼음덩어리였다. 지구온난화가 어쩌고 하지만, 북대서양의 뉴펀들랜드 해역은 지금 무수한 빙산으로 뒤덮인 동계의 절정기였다. 도처에 즐비한 부빙은 꼭 길들지 않은 야생마였다. 길을 터나가고 있는 쇄빙선의 공격적인 항진으로 얼음덩이는 가차 없이 밀려났지만 그것도 잠시, 야생마는 곧 그 여백을 채우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 결과 부빙과 스치기도 여러 번이었다. 낮은 속력이어서 큰 충격은 아닐지라도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선수로부터 잇달아 부빙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면 잠시 후 얼음덩이는 어김없이 뱃전을 훑고 지나가면서 야릇한 마찰음을 내곤 하였다. - 이러다가 배가 견뎌 내기나 할까. 그게 나의 걱정이었다. 보나마나 외판 곳곳은 벌써부터 길게 칠이 벗겨져 있을 것이다. 토키맨은 한시도 쉬지 않고 유도선인 아이스브리커와 교신했다. 지시는 시시각각 달랐다. 폴라리스 호로 하여금 속력을 올리라거나 내리라는 등의 조선상 주문이 대부분이었고, 때로는 엔진을 정지하라는 다급한 지시가 전해 올 때도 있었다. 그러면 토키맨은 지체하지 않고 이쪽 당직자에게 기관정지를 명했다. 두 배는 그렇게 한순간의 방심도 허락할 수 없는 극도로 긴장된 항해를 이어나갔다. 곧 바다에 어스름이 깔렸다. 그러자 수백 미터 앞의 유도선 모습이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저기 지시등을 똑바로 맞추세요.” 토키맨이 아이스브리커의 선미 불빛을 가리켰다. 그 시각 쇄빙선 선미에는 고촉광의 불빛이 후방으로 길게 뻗어나 있었다. 밤 동안 쇄빙선은 한시도 쉬지 않고 강력한 서치라이트 불빛을 이리저리 휘둘러댔다. 전방의 빙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동안 배는 어쨌거나 조금씩 전진했다. 말 그대로 살얼음을 딛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 같은 기이한 운항은 뉴펀들랜드 남단의 레이스 곶을 꺾어 돌아 세인트로렌스 만으로 진입하기까지 꼬박 사흘 동안 계속됐다. 만 어귀에 생피에르 섬이 있었다. 마을 불빛이 반딧불처럼 명멸하고 있었다. 나는 행여 찰리를 안은 마들렌이 손을 흔들고 있지나 않을까 하고 두리번거렸으나 뒤덮인 산자락만 아련할 뿐이었다. 생피에르 섬을 지난 다음 날 만으로 들어서자 부빙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육지로 둘러싸인 지형의 특성상 와류가 형성된 결과일 것이다. 항진은 마냥 조심스러웠고,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 두 배가 뉴펀들랜드와 노바스코샤 섬 사이를 뚫고 만 안으로 비집고 들어섰을 때는 빈틈이라곤 없는 말 그대로 끝 간 데 없는 빙반의 은세계였다. 그리고 사흘 째 오후, 배는 이윽고 만 깊숙한 세인트로렌스 강 어귀에 이르렀다. 그곳은 지금까지 보던 상황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사방이 온통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것은 바닷물보다 결빙이 용이한 담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동안 그쳐 있던 아이스 스노우가 비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처음에는 그저 흩날리는 보슬비 같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송이가 굵어지더니 이제는 강낭콩보다도 더 굵어져 있었다. 때문에 수백 미터 앞의 유도선 지시등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식별하기 좋아라고 선체를 붉은 페인트로 칠하고 있는데도 쌍안경으로 겨우 가물거릴 정도였다. 토키맨 한센 씨가 없다면 따라잡는 일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거 아주 굉장합니다.” 기관장 브론슨이었다. 그는 모항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 꼬박 이틀 동안 엔진룸을 지켰다. 자칫 엔진이 말썽을 부리기라도 하면 무슨 사고로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잠시 커피나 한 잔 하라는 나의 말을 듣고 조타실에 나타난 기관장은 점점 굵어지는 얼음비를 한참이나 응시했다. 아무래도 아이스 스톰으로 발전할 게 틀림없어 보였다. 아이스 스노우는 선상 어디라고 없이 내리는 대로 사정없이 달라붙어 결빙했다. 갑판 허공을 가로지른 데릭 붐은 금세 한 뼘이나 되는 얼음으로 뒤덮였고, 그 아래로 고드름이 대롱대롱 매달린 채 시시각각 키를 늘이고 있었다. 그 옛날 그랜드뱅크에서 강설을 동반한 허리케인을 만나기도 여러 번이었지만, 지금과 같은 광경은 비로소 처음이었다. 기상대로부터 경보가 발령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지형의 국지적 현상으로 어쩌면 아이스 스톰으로 발전할지 모르니 방송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그 경보를 듣고 기관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이거 큰일이군요.” 몬트리올 출신인 그는 수년 전 그 지역을 강타한 아이스 스톰을 직접 경험하였다고 한다. “말도 마세요. 전신주가 모두 넘어지는 바람에 꼬박 일주일 동안 정전이 되었단 말입니다. 다친 사람은 부지기순데, 병원에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으니 어떤 꼴이었겠습니까? 그 바람에 얼어 죽은 사람만도 수백 명이 넘었으니까요.” 그러면서 브론슨 기관장은 아메리카 중서부 지역이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토네이도로 쑥대밭이 되고 있다면, 북극 지방과 인접한 캐나다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드는 자연재앙은 뭐니 뭐니 해도 아이스 스톰이라고 단언했다. 그런데도 앞장선 블루스타 호는 여전히 얼음을 깨트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설마 그렇게까지야…….” 그게 그 순간의 나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앞장선 블루스타 호 역시 쉽지 않은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두꺼운 빙반을 깨트리기 위해 배는 쉬지 않고 래밍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출항하기 전 1등항해사인 미스 모니카가 말한 전진과 후퇴의 반복이었다. 두꺼운 빙반은 쇄빙선이 무작정 앞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쉽게 분쇄되는 게 아니었다. 처음 빙반을 밀어붙일 때의 쇄빙선 자세는 마치 투우사가 펼쳐들고 있는 카포테를 향해 무작정 돌진하는 황소와도 같았다. 경기를 앞두고 소는 며칠 동안이나 캄캄한 우리 속에 가두어져 있었다. 그렇잖아도 사나운 놈인데 더욱 성깔이 고약해져 자극적인 빨간 카포테를 보는 순간 더욱 흉포해진다. 쇄빙선에 의해 밀려난 빙괴가 꼭 그 꼴이었다. 웬만한 빙반은 쇄빙선 선체가 세차게 밀어붙이는 돌파력만으로도 쉽게 분쇄된다. 그러나 두께가 3미터를 넘게 되면 쇄빙선도 힘에 부쳐한다. 부득이 쇄빙선은 뒤로 물러난 다음 재차 돌진하는 래밍을 되풀이한다. 그래도 빙반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부득이 모험적인 방법을 추가할 수밖에 없다. 곧 빙반에 올라탄 채 선내의 탱크 물을 모두 선수 쪽으로 이동시키는 방법이다. 그제야 빙반은 더 이상 버텨내지 못 하고 우지직, 몇 조각으로 분쇄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전진이 늦어지지만 그 손실은 감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같은 선체의 운용은 자칫 쇄빙선으로 하여금 평형감각을 잃게 하는 지극히도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중심을 잃고 전복한 예도 비일비재하였다는 게 토키맨 한센 씨의 말이었다. - 전속 전진! - 전속 후진! - 좌현 바라스트, 우현 쪽으로! 워키토키에서는 연신 흘러나오는 캡틴 윌리스의 지시를 한센 씨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복창했다. 그럴 때면 쇄빙선 선체는 반드시 좌우를 번갈아가며 기우뚱거렸다. 깨트려진 얼음덩이도 문제였다. 잠시만 머뭇거려도 얼음덩이는 곧 선체에 달라붙는다. 그것을 막기 위해 쇄빙선은 선수부에 추가로 설치한 스크루인 바우 스러스트를 돌려 바닷물을 선미 쪽으로 강제 배출시키면서 동시에 양현으로는 쉬지 않고 뜨거운 수증기를 뿜어낸다. 그게 에어버블링이다. 쇄빙작업이란 결국 선체의 온갖 기능을 총동원한 두꺼운 얼음판과의 한 판 돌격전이며, 그렇게 한 걸음 후퇴하고 두 걸음 전진하는 끝없는 싸움의 되풀이인 것이었다. 워키토키를 통해 때때로 강아지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출항 임박하여 만났을 때 미스 모니카가 안고 있던 요크셔테리어가 틀림없었다. 그러자 토키맨이 나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저놈이 미스 모니카 보디가드예요.” 쉰 살도 넘은 그는 손질하지 않은 턱수염 때문에 까칠까칠한 인상을 주고 있었는데, 의외에도 천진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보디가드라니요?” 나는 부쩍 흥미를 느꼈다. 남자들만의 세계인 선내에서 여자 항해사의 존재는 어쩌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별스러운 사건이 발생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앞선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한센 씨의 말은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럼요! 보디가드지요! 녀석이 얼마나 앙칼스러운지, 여우 사냥에 나선 폭스하운드는 저리가라예요. 한 번은 초사(1등항해사) 방으로 들어섰다가 아주 혼쭐이 났으니 말입니다. 무심코 문을 연 순간 녀석이 풀쩍 뛰어오르더니 순식간에 장딴지를 물고 늘어졌으니까요. 바로 그 개새끼가 말입니다. 말도 마세요, 얼마나 아팠다고요! 바지를 걷어 올리고 보니 겨우 손톱만큼 한 이빨 자국이 나 있을 뿐인데, 찔끔 눈물이 쏟아질 만큼이었으니까요. 그만하면 보디가드로는 그만이지요.” 한센 씨가 허허 웃었다. 그 뒤로도 강아지 낑낑거리는 소리는 자주자주 들렸다. 미스 모니카는 자신의 당직근무 동안에도 새까만 털북숭이 녀석을 품에 꼭 껴안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6 이윽고 강폭이 좁아지면서 이제는 남쪽으로 아련하게 솟아오른 산언덕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험준하기로 이름난 노트르담 산맥의 한 자락이 분명했다. 그러나 세인트로렌스 수로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그곳 지형은 물론 눈에 익어 있었다. 구불구불한 강 언덕도, 그리고 여인의 허리 같은 먼 산등성이도 예전에 보던 그대로였다. 결빙기가 아닌 때면 폴라리스 호가 일상적으로 지나다니던 통항로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야가 온통 새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지금은 생소하기가 그지없어서 마치 난생 처음 발을 내딛은 비경(秘境)과도 같았다. 날씨가 쾌청하다면 아마도 북쪽 멀리로 퀘벡 주의 아련한 마을 불빛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세인트존스를 출항하고 벌써 나흘째를 맞고 있었다. 따지고 보니 그 동안 배는 시간당 겨우 3마일 남짓 전진한 셈이었다. 그런데도 쇄빙선 캡틴은 절대로 속도가 느린 편이 아니라고 우기고 있었다. 나는 자꾸만 시선이 캘린더로 향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식의 속력이라면 목적지까지는 열흘도 더 걸리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걸릴지도 모른다. 배가 곤궁에 처하여 는적거리고 있는 동안 제발 지하 원유가 바닥나면서 자연스럽게 화재가 진화되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알랭에게서 온 전화는 아직도 채굴장은 맹렬한 화염으로 뒤덮여 있으며, 그저 속수무책인 채로 폴라리스 호가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 화물 운송을 책임진 나로서는 결코 마음이 편할 까닭이 없었다. 세인트로렌스 수로의 관문인 퀘벡 항을 50여 마일 앞둔 로카티에레 삼각주(三角洲) 부근에 이르자 배의 전진이 멈추었다. 빙반이 배 이상으로 두꺼워진 데다가 아이스 스노우가 더욱 기승을 부려서였다. 강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폭설은 시야를 차단하고 있었다. 갑판의 빙설은 무릎 높이 이상으로 차올라 있었으며, 양묘기를 포함한 선수부는 이제 그 전체가 거대한 얼음언덕을 만들고 있었다. 영하 30도 아래로 곤두박질친 한파로 하강하는 족족 아이스 스노우가 얼음으로 변하면서 아무 데나 달라붙은 결과였다. 강풍으로 옆 사람의 말도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 무렵 기상대로부터 세인트로렌스 일대에 아이스 스톰이 내습하고 있다는 뒤늦은 경보발령이 전해졌다. - 갓뎀! 워키토키를 통해 블루스타 호 캡틴 윌리스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기상대 녀석들이 뒷북을 치고 있다고 소리쳤다. - 아주 죽일 작정인 거야! 우린 벌써 이틀 전부터 아이스 스톰 속에 갇혀 있는데 말이야! 폴라리스 호의 레이더가 기능을 상실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갑자기 레이더가 먹통이 되었다는 1등항해사의 보고를 받았다. 나는 그만 간담이 써늘해졌다. 스코프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스코프에는 흐릿한 빛만 번져날 뿐, 아무런 타깃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톱 브리지로 올라간 헤드세일러가 레이더 안테나를 받치고 있던 지주(支柱)가 부러져 있다는 보고를 받고서였다. 손바닥만 한 넓이의 가름대 위에 쌓인 얼음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한 지지대가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빙글빙글 돌며 온갖 물표의 방향과 거리를 정확하게 알려주던 레이더가 그만 무용지물이 되고 만 것이었다. 나는 또 눈앞이 캄캄해졌다. 헤드세일러가 서둘러 선원들을 갑판으로 내몰았다. 삽이나 곡괭이 등 모든 도구를 동원하여 연신 내려와 쌓이는 얼음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곧 갑판 여기저기에서 얼음 깨트리는 소리가 빙원의 정적을 깨트리기 시작했다. 얼음덩어리는 웬 만큼의 망치질로도 잘 깨트려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머나 곡괭이를 마구 내려찍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얼음이 달라붙어 혹한에 노출된 강판은 사소한 충격에도 파열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손의 부족을 탓했다. 모두해서 열 명뿐인 인원으로는 선체를 뒤덮은 눈덩이를 모두 제거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1등항해사가 조타실 왼쪽 도어를 열려다 비명을 내질렀다. “캡틴, 이거 좀 보세요! 문짝이 통째 얼어붙어버렸습니다요!” 아이스 스톰은 브리지 도어까지도 꽁꽁 결빙시켜버렸던 것이다. 얼음장은 조타실 출입문만 밀폐시킨 게 아니었다. 브리지 앞 유리창도, 기관실 천장인 스카이라이트도 마찬가지였다. 쉬지 않고 유리창의 얼음을 제거하는 갑판원의 방한모에는 주렁주렁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고, 눈썹에도 허옇게 서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쌍안경으로 쇄빙선의 상황을 살폈다. 그 시각, 블루스타 호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둔해졌다. 이쪽과 사정이 다를 까닭이 조금도 없었다. 쇄빙선은 항로를 막고 있는 빙괴만 공격할 줄 알았지, 선상으로 쌓이는 얼음을 제거하는 방안까지는 마련하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쇄빙선은 빙반을 공격할 때의 충격을 고려하여 일반선보다 두꺼운 강판을 사용한다. 특히 흘수선을 따라 선체 외판을 빙 둘러치고 있는 아이스벨트는 빙괴와의 부단한 접촉을 고려하여 영하 50도 이상의 초저온도 견뎌낼 만큼 두 배나 되는 두꺼운 강판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니 당초부터 자체 중량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기동이 무뎌질 건 당연한 일이다. 곧 워키토키로 전해진 말은 쇄빙선 역시 전 선원을 동원한 가운데 제빙작업이 한창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우려는 점점 커져갔다. 아이스 스톰이 그치지 않는 한 어떤 최악의 상황에 봉착할지 모른다. 이제 두 배는 전진을 멈춘 채 빙괴에 갇힌 처지가 되고 말았다. 두 배는 사방에서 욱죄어오는 압박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꼼짝없이 거대한 빙산의 한 부분이 되고 말았다. 다시 섀클턴의 인듀런스 호가 떠올랐다. “30피트입니다.” 1등항해사 빌리의 보고였다.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출항할 때의 드라프트는 20피트를 조금 넘고 있었다. 드라프트란 선체의 과부하 여부를 판단하는 흘수선 깊이를 말한다. 공선일 때는 배가 뜰 테고, 만재일 때는 물속 깊이 가라앉는다. 배라는 것은 공간이 있다고 해서 무한정 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래브라도 산 철광석을 만재하는 경우와 루이지애나 산 목화를 싣는 것은 전적으로 다르다. 황천 속에서 철광석을 만재한 배의 사고가 빈번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배에나 과적을 방지하기 위한 로드마크를 현측에다 표시해 두고 있는데, 그게 곧 드라프트다. 그런데 지금 폴라리스 호는 위험 수치인 30피트 이상의 드라프트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처럼 선체를 물속으로 가라앉힌 것은 전적으로 내려와 쌓인 엄청난 양의 적설 때문임이 분명했다. 선체 곳곳에서 강판이 뒤틀리는 야릇한 마찰음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불과 수 미터 깊이의 추진기마저 얼음덩이에 파묻히고 말 것이다. “그 쪽은 어때요?” 나는 쇄빙선 캡틴에게 이쪽 배가 항진을 멈추었다고 말한 다음 그렇게 물었다. - 우리라고 별 수 있나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처음의 충만해 있던 자신감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둘 사이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선원들이 휘두르는 망치 소리가 지축을 쿵쿵 울리고 있었다. 선체 곳곳에 달라붙은 얼음덩이는 망치로 내려치지 않으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겨우 한쪽을 제거하면 새로운 얼음눈이 곧 그 자리를 메우는 식이었다. 아이스 스톰은 여전히 기승을 부려대고 있었다. 7 재앙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재앙을 물고 온다던가. 정오 무렵, 끔찍한 사고 하나가 발생했다. 승조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갑판원 허드슨 군이 얼음에 미끄러지면서 몸의 중심을 잃고 뱃전 너머로 추락한 사고였다. “사람이 떨어졌다! 허드슨 군이다!” 비명 소리를 듣고 나는 상갑판으로 뛰어나갔다. 선원들이 주갑판 우현 쪽에 우르르 몰려 있었다. “사다리! 사다리를 갖고 와!” 헤드세일러가 소리쳤다. 두 선원이 로프 사다리를 타고 빙반으로 내려갔다. 허드슨 군은 빙반 위에 새우처럼 허리를 구부린 채 죽은 듯이 엎디어 있었다. 빙반까지는 세 길도 넘는 높이였다. 그 높이에서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음판으로 떨어졌으니 온전할 까닭이 없다. “조심해! 함부로 다루면 안 돼!” 갑판장이 두 선원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곧 카고 네트가 내려졌고, 허드슨 군은 화물처럼 인양되어 살롱으로 옮겨졌다. 두터운 방한복을 벗겨내고 보니 오른팔 전완골이 흐느적거렸다. 틀림없는 골절이었다. 빙반 위로 떨어지는 순간 팔을 먼저 짚은 탓이었다. 의사가 없는 배에서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었다. 골절 부위에 부목을 대고, 진통제 주사를 놓는 게 고작이었다. 허드슨 군은 계속 고통을 호소했다. 나는 곧 퀘벡 항의 코스트가드를 호출했다. “여기는 폴라리스 호, 위급한 환자가 있으니 곧 구조기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기대와 판이했다. 예기치 않은 아이스 스톰의 강습으로 진작부터 모든 비행이 금지된 상태에 있다는 것이었고, 얼마만큼 기상이 호전되어야 출동이 가능하겠다는 응답이었다. 아이스 스톰은 이미 캐나다 북서부 일대를 강타하면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교신하는 동안 리시버로 바람소리가 파고들 만큼 강풍이 기세를 떨치고 있었다. - 지금으로선 예측하기가 곤란하네요. 언제쯤 출동이 가능하겠느냐는 나의 물음에 코스트가드가 내놓은 대답이었다. 어리석은 질문이었고, 너무도 뻔한 답변이었다. 나는 구조기가 뜨지 못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다. 그렇군. 아이스 스톰이야. 나는 자연의 냉엄한 위력을 새삼 실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제발 부탁입니다. 환자가 너무 위독해서입니다.” 나는 이쪽의 상황을 재차 강조하였고, 퀘벡 코스트가드는 마지막으로 기상이 호전되는 즉시 우선적으로 구조기를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선원들의 표정도 조금씩 달라졌다. 시야 속으로 산자락을 빤히 바라다보고 있는 문명세계의 한복판에서 꼼짝없이 조난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난감함이었다. 곤궁에 처하기는 쇄빙선도 마찬가지였다. 금방이라도 전복할 듯이 중심을 잃고 좌현으로 10도나 기운 채 복원하지 않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전복을 막기 위해 온갖 장비를 갖추고 있는 쇄빙선이 맥없이 기울고 있다면 그건 결코 예삿일일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워키토키를 통해 캡틴 윌리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계속 전해졌다. 무슨 까닭으로 선체가 복원하지 않느냐는 닦달이었다. 곧 미스 모니카의 대답이 들려왔다. - 좌현 스케그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스케그가? 캡틴 윌리스의 반문이 이어졌다. 그가 스케그를 모를 까닭이 없다. 미끄러운 빙판 위에서도 얼마든지 중심을 잡아내는 물개의 두 앞발처럼 어떤 경우에도 선체의 평형을 유지하게끔 용골 앞쪽에 부착한 양 날개 같은 장치를 말한다. 목소리로 미루어 캡틴 윌리스는 결코 동의하고 싶지 않은 게 분명했다. 이렇게 되면 이제는 마음 놓고 빙반으로 돌진할 수도 없다. 빙반을 올라타는 순간 중심을 잃고 그대로 전복하고 만다.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망연한 마음이 되었다. 그렇다고 팔짱을 끼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두 배는 어차피 같은 항로를 뚫고 나가야 할 파트너인 것이다. 나는 캡틴 윌리스를 호출했다. 필경 넋을 놓고 있을 그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 미안합니다.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캡틴 윌리스의 풀 죽은 목소리가 먼저 들려나왔다. “용기를 내세요. 악화된 기상 탓이니까요. 대자연의 위력 앞에 우리는 나약해질 수밖에 없지요.” 그러자 캡틴 윌리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 모든 게 다 이놈의 아이스 스톰 때문이란 말입니다! “그건 그래요.” 나는 캡틴 윌리스를 위로한 다음 블루스타 호의 상황을 물었다. - 스케그에 문제가 있는 모양입니다만, 곧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캡틴 윌리스의 말처럼 그로부터 얼마 후 블루스타 호가 크게 요동을 치는 것 같더니 천천히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나는 그 동안 쇄빙선에서 일어난 일을 얼마만큼 추측할 수 있었다. 그것은 쇄빙작업의 중추적 보조도구인 스케그가 블루스타 호 항해 책임자들의 판단과는 달리 파손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아이스 스톰이 그쳐야 무슨 일이든 궁리가 나올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우선은 선상에 쌓인 얼음덩이를 제거하는 일밖에 없었다. 해머와 곡괭이 휘두르는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쿵쿵, 선체가 통째로 울리면서 얼음 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날았다. 수북이 쌓인 얼음 조각을 쉬지 않고 뱃전 너머로 내던지지만 잠깐 동안 쏟아진 얼음눈이 그 자리를 다시 채운다. 참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이었다. 뱃전 가장자리로 길게 내뻗은 동키 파이프도 완전히 얼음 속에 파묻혀 있었다. 망치질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혹한에 노출된 파이프는 조금의 충격에도 손상을 입고 만다. 나는 잠시 망연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하늘이었다. - 잘 다녀오세요. 어디선가 마들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 찰리, 아빠야! 아빠라고! 역시 마들렌의 목소리였다. 그래,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잠시 닻을 놓고 있을 뿐이거든. 닻을 끌어올리는 대로 우리는 다시 항해를 계속할 거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시야는 여전히 하강하는 빙설로 가로막혀 있었다.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한겨울 북반구의 낮은 짧다. 백야는 없고, 스무 시간 가까이 밤만 계속된다. 어둠은 또 하나의 장애물이었다. 어둠의 먹물만큼 공포감이 엄습하고 있었다. 대륙의 산자락을 빤히 바라다보는 곳에서 나는 고립무원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설마 죽기까지 하랴. 섀클턴은 구조되기까지 2년 가까이를 혹한 속에서 헤맸다지 않던가. 설령 고립무원의 상태라 할지라도 두 달만 견뎌내면 해빙기가 온다. 날씨가 풀리면서 얼음은 녹아내릴 것이고, 그러면 빙괴의 지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엄습하는 공포감을 털어내려고 나는 안간힘을 썼다. 트롤선을 타고 있을 때 허리케인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아네로이드 바늘은 920헥토파스칼을 가리키고 있었고, 초속 40미터를 넘는 강풍이 쉬지 않고 선체를 강타하고 있었다. 폭우로 갑판이 물바다가 된 가운데, 밤새도록 곤두선 파도 더미와 맞서 싸웠다. 한 차례 파도를 맞으면 배는 크게 경사한 채로 맥없이 떠밀렸다. 그 같은 횡파를 거푸 두 번만 뒤집어쓰면 배는 그대로 나자빠지고 만다. 그럴 때 살아남는 최선의 방법은 가로파도를 받지 않도록 키를 돌리는 것뿐이다. 부단히 추진력을 증감시키면서 파도와 마주서기 위한 전타를 쉼 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그럴 때의 배는 한 조각 나뭇잎이다. 사투는 꼬박 이틀 동안이나 계속됐었다. 겨우 바람이 숨을 죽인 다음 무심코 뱃전을 내려다본 나는 깜짝 놀랐다. 양현 외판 모두가 움푹움푹 패여 들어가 있었고, 앙상하게 늑골재가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파도의 끊임없는 후려치기 결과였다. 그렇다면 결빙 속의 선체는 어떻게 될까. 섀클턴의 인듀런스 호처럼 늑골재와 선미재가 동시에 파손되면서 한순간에 본래의 형체를 잃어버리고 말 것 아닌가. 아이스 스톰은 도무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8 다음 날 아침, 마들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 아무 일 없는 거지요? 마들렌은 떨고 있었다. “그래,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잠시 닻을 놓고 있을 뿐이야.” 나는 어제 아내의 얼굴을 그려보며 혼자 중얼거렸던 말을 그대로 재생했다. 굳이 아내에게까지 지금 처한 최악의 상황을 전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마들렌은 좀체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 했다. -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이틀 너머 계속되고 있는 아이스 스톰 때문에 마을 역시 눈 속에 파묻힌 채 완전 고립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눈은 처마 높이까지 쌓여 겨우겨우 현관 앞 쪽 길을 튼다고 해도 몇 발작 앞의 경사진 비탈길 도로에는 밑동 채 꺾여나간 거목들이 수십 그루나 널브러져 있어 심지어는 동네 마트로 나가는 일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 꼭 투모로우 영화 같아요. 마들렌의 말이었다. 나도 물론 그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는 수년 전 몬트리올을 강타한 아이스 스톰의 악몽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 마들렌은 어쩌면 곧 전기가 끊길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건너 마을에서는 이미 전기가 끊겨 자가 발전기로 겨우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제발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마들렌은 오히려 이쪽을 걱정했다. - 아빠! 그 때 나는 난생 처음으로 생소한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전혀 귀에 익지 않은 목소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재차 똑같은 소리가 들렸다. - 아빠! 찰리였다. 일곱 달이 된 찰리가 난생 처음으로 말문을 연 것이었다. 셔틀 비행기를 탈 때까지도 찰리는 말을 하지 못 했다. 그런데 집을 떠난 며칠 사이에 말문을 텄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웅얼거린 말이 아빠였다. - 찰리가 말을 하기 시작했네요! 놀랐지요? 나도 놀랐어요. 그런데 찰리는 당신을 먼저 찾는군요. 마들렌의 미소 짓는 얼굴이 떠올랐다. “찰리는 틀림없이 엄마를 더 좋아할 텐데.” - 아니에요. 당신이 출항한 다음 내내 아빠만 찾던 걸요. 휴가 동안 당신 얼굴을 익혀둔 게 틀림없어요. 마들렌의 그 말에 나는 위안을 얻었다. 결혼하고 3년이 지나도 임신의 기미가 나타나지 않았다. 마들렌은 예쁜 딸을 갖기를 원했다. - 당신 닮은 딸을 갖고 싶어요. 그게 마들렌의 소망이었다. 그런데 그 소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걱정은 마들렌 쪽이 더했다. 2년을 넘어서자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몇 차례 병원을 들락거리는 동안 나도 두 번이나 동행했다. - 두 분 다 정상입니다. 닥터가 웃으며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마들렌에게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런데 그 해 결빙휴가를 보내는 동안 반가운 소식을 날아들었다. - 사내아기래요. 마들렌이 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래, 당신은 나의 아내이고, 우리는 부부야. 그러니 아기를 갖는 건 너무도 당연하지.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찰리였다. - 앙리도 걱정을 많이 하고 있어요. 마들렌이 화제를 돌렸다. 물론 앙리와도 몇 차례나 통화했다. - 도대체 기상대 놈들이라니! 통화를 할 때마다 앙리는 그렇게 소리쳤다. - 진작 예보를 해 주었다면 이런 일은 없을 거 아닌가! 그게 앙리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배는 이미 항해에 돌입해 있었고, 그리고 지금은 아이스 스톰의 한복판으로 내몰린 상황이었다. - 기상대 녀석들이 그러는 거야. 이게 모두 기상이변 때문이라고! 그게 말이나 돼? 앙리의 불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 도대체 지구온난화란 게 뭐야! 하기는 지구온난화라는 말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 지도 오래 되었다. 글쎄, 지구는 더워진다는데 아이스 스톰이라니! 쉽게 납득할 수 없는 해괴한 논리였다. 앙리가 그걸 모를 까닭이 없다.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나 유기물의 부패로 발생한 메탄가스가 태양열을 차단하면서 결국 지구의 기온을 빙점 이하로 떨어트린다는 게 잘난 과학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증거의 하나가 바로 지금의 아이스 스톰인 것이다. - 암튼 조심하게나. 마들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앙리의 그 말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9 “스노모빌을 보내겠다는데요.” 1등항해사 빌리의 보고였다. 폭설로 헬기 출동이 불가능하자 퀘벡 코스트가드가 내놓은 궁여지책이었다. “빌어먹을! 차라리 개썰매를 보내라지! 그걸로 어떻게 환자를 후송하겠다는 거야!” 나는 불안하고 조급스럽기만 한 마음을 도무지 진정시킬 수 없었다. 전 같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다행히도 새벽녘에 아이스 스톰이 조금 기세를 꺾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동이 트면서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엄청난 얼음눈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노아의 홍수가 이러하였을까. 얼마나 많은 비가 쏟아졌던지, 물이 빠지는 데만 꼬박 1백50일이나 걸렸다는 것이다. 필경은 폭우였고, 그리하여 방주를 제외한 땅 위의 움직이는 모든 생물은 꼼짝없이 익사하고 말았다. 도대체 하루 이틀도 아니고, 40주야를 폭우가 퍼부어댔으니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까지 물이 차오를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 엄청난 바닷물이 지금 아이스 스톰으로 되살아났단 말인가. 북극여우를 본 것은 그 때였다. “라고푸스다!” 북위 80도 가까운 그린란드 최북단 마을의 에스키모 출신인 붉은 수염 에리크가 소리쳤다. 예순 살의 에스키모 출신은 원래 포경선의 작살꾼이었다. 그런데 작살을 던질 기회가 없어졌다. 상업 목적의 고래잡이가 금지된 때문이었다. 부득이 새 일자리를 찾아나설 수밖에 없었는데, 그곳이 세인트로렌스 수로를 왕래하는 폴라리스 호였다. “뭘 갖고 그러는 거야?” 선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붉은 수염 에리크를 따라갔다. 행여 광활한 빙원 어느 한 곳에 숨구멍 같은 것이라도 뚫려 있어서 그곳으로 일각고래의 뿔이라도 솟아올랐나 하였다. 하지만 눈발 희끗희끗한 빙원 어디에서도 시선을 사로잡을 무엇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무렵 아이스 스톰이 그치면서 북쪽 하늘로 오로라가 피어올랐다. 마치 새벽녘을 틈타 승천하는 여인의 금발 머리칼처럼 핑크색 스펙트럼을 허공 높이로 발산하고 있는 그것은 고대 신화에서의 여명의 여신 그대로였다. 배를 파묻다시피 극성을 부려댄 아이스 스톰은 그렇다면 오로라 탄생의 예고였던가. “저걸 보고 그러는 거야?” 한 선원의 물음에 에리크는 그러나 완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아니다! 오로라가 아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저놈 한 마리면 위스키 두 박스는 얻을 수 있다!” 에리크는 흥분하고 있었다. 좀체 않던 짓이었다. “위스키?” 한 선원의 귀가 번쩍 뜨였다. “맞다, 위스키다! 위스키, 좋은 술이다!” 붉은 수염 에리크는 당장이라도 달려갈 태세였다. 결코 실성한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하기는 에스키모 인들의 위스키에 대한 선호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베리아 툰드라 지대의 타타르 인들이 밤낮 없이 보드카 병을 옆구리에 끼고 있다면, 에스키모는 위스키라면 마누라도 저만치로 밀쳐낸다. 도대체 끝없이 펼쳐진 빙원을 응시하며 붉은 수염 에리크가 흥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여우 아냐?” 쌍안경으로 희끄무레한 빙원을 훑어보고 난 1등항해사 빌리가 알아맞히었다. 북극여우 한 마리가 빙괴 더미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이쪽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맞다! 여우다! 북극여우, 라고푸스다!” 붉은 수염 에리크는 손뼉까지 쳤다. “여름에는 잿빛 갈색이지만, 한겨울에는 지금처럼 청회색을 띤다. 털 색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저놈을 라고푸스라 부른다. 비싸다! 아주 비싸다!” 에리크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사방이 어두컴컴한데다가 에리크 말처럼 푸르스럼한 겨울털로 치장한 놈을 분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고래잡이배 작살꾼 출신은 아주 용케도 육안으로 최고급 목도리 재료를 찾아냈던 것이다. “아이스 스톰, 곧 그친다! 틀림없다!” 라고푸스를 본 에리크의 장담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라고푸스야말로 극지방의 혹한 속에서도 얼마든지 생존해낼 만큼 내한력이 월등한 ‘개’라는 것이었다. 워낙 영리하여 좀체 덫에도 걸려들지도 않을 뿐 아니라, 폭설이 내리거나 혹한이 내습할 기미라도 엿보이면 동굴 안에 틀어박힌 채 언제까지라도 버텨낼 만큼 지독한 인내심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폭설이 그치면 가장 손쉽게 먹이를 얻는 방법으로 마리띠무스(북극곰) 꽁무니를 살랑살랑 뒤쫓으며 먹다 남긴 물범이나 수염고래 살코기를 가로챈다는 것이다. 바로 그 라고푸스가 나타났으니 이제 폭설이 그치면서 기상이 회복될 게 틀림없다는 게 붉은 수염 에리크의 장담인 것이었다. 그 사이 날은 더욱 어두워졌고, 푸른여우도 어디로인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10 자정 무렵, 드디어 한쪽 하늘이 트이면서 한두 개씩 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붉은 수염 에리크의 예언 그대로였다. 꼬박 사흘 동안 기승을 부려댄 아이스 스톰이 그친 것이었다. 별은 나타났다가는 곧 사라졌다. 모처럼 얼굴을 내밀려니 수줍어서일 것이다. 아니면 구름 틈이 너무 작아서인가. 게다가 구름조차 발길이 바빴다. 별은 항해가들의 길동무다. 그것은 고대로부터 이어진 전통이자 유산이다. 나는 북극성부터 찾았다. 그것은 습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가장 찾아내기 쉬워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극성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북두칠성 일곱 별자리 가운데 하나인 ‘두베’가 구름 속의 북극성 존재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반가웠다. 모처럼 보는 별이어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발이 묶인 두 배의 상황이 호전된 것은 아니었다. 쇄빙선 블루스타 호는 다시 좌현으로 10도나 기울어진 채 조선불가 상태가 되어 있었다. 좌현 스케그의 파손이 틀림없었다. 그 결과로 쇄빙작업이 중단된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일이었다. 워키토키를 통해 캡틴 윌리스의 당황해 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소란은 반시간 가까이나 이어졌다. 저쪽 블루스타 호로서도 선체를 파묻다시피 한 얼음덩이를 제거하는 일이 급선무로 되어 있을 것이다. 선체 어디라고 없이 얼음덩이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 같은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기동력을 자랑하는 아이스브리커라도 기능을 잃을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가 블루스타 호는 기어코 최악의 상황과 맞닥뜨리고 만 모양이었다. - 키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1등항해사 모니카였다. - 이걸 보세요! 까딱도 하지 않아요! 그러나 곧 이어진 미스 모니카의 비명은 나를 절망 속으로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 아이스호른이 떨어져 나갔군요! 그 하나만으로 나는 쇄빙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배의 후진은 스크루를 역으로 회전시켜 꽁무니 쪽 바닷물을 빨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진다. 그 흡입류에 분쇄된 빙괴 조각이 함께 빨려들면서 스크루와 타에 손상을 입히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새가 빨려들면서 비행기 엔진이 파손되는 것과 이치다. 그걸 예방하기 위해 타 위 쪽에 나팔 모양의 덮개를 씌워두는데, 그게 곧 아팔 모양의 아이스호른이다. 결국 블루스타 호는 수없는 래밍의 반복 끝에 쇄빙선의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 가운데 하나인 아이스호른을 요절내고 만 것이었다. 그건 이제 전진도 후진도 불가능한 쇄빙선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였다는 절망적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패기 넘치고 자신만만한 캡틴 윌리스의 무리한 지휘가 그 같은 참담한 결과를 불러온 것이었다. - 엔진 스톱! 캡틴 윌리스의 외침이었다. 그 후로 쇄빙선은 다시 일어서지 못 했다. 좌현으로 10도가량 기울어진 그대로였다. 방금 손상을 입었다는 왼쪽 스케그와 아이스호른이 파손된 결과임이 분명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빙괴에 꼼짝없이 갇힌 처지에서 앞으로 닥쳐올 갖가지 최악의 사태가 눈앞에서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1등항해사 빌리에게 드라프트를 체크하라고 지시했다. “35피트입니다.” 빌리가 보고해왔다. 그 보고는 나를 더욱 절망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절망감은 폴라리스 호의 적하기준표(積荷基準表)를 검토한 다음 더욱 증대되었다. 방금 빌리가 보고한 그 수치는 1만 톤급 화물선인 폴라리스 호의 안전항해를 위해 반드시 확보하여야 할 적재량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었다. 결국 만 사흘 동안 퍼부어댄 얼음눈의 부하가 폴라리스 호의 예비부력을 완전히 잠식해버렸다는 결론인 것이었다. 드라프트가 가리키는 대로 선체는 이제 거의 눈 속에 파묻히다시피 하고 있었다. 얼음눈은 배에다만 야료를 부려댄 것이 아니라, 결빙한 세인트로렌스 강에도 마찬가지였다. 갑판이 높아진 만큼 수로의 빙반 높이도 함께 부풀어 올라 있었다. 멀리서 비행음이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나 지나서였다. 비행음은 선원들의 기운을 북돋우기에 충분했다. 지금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곳이 지구의 한 변경일 뿐이라는 일종의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구조기인가 했다. 선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어디서도 기체는 발견할 수 없었다. 비행음은 1만 피트도 더 높은 적란운 속에서 들려왔던 것이다. 구름 속의 비행 물체를 발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으로 비행 물체는 구조기가 아님이 확실해졌다. 틀림없이 북극노선을 채택하고 있는 어느 평화로운 여객기일 것이다. 비행음은 가까워지는 대신 점점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것은 여운과 함께 남쪽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세상은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다. 앙리가 다시 전화를 해왔다. - 이제 화재 현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목소리에 맥이 빠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앙리의 다음 말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 말도 말아. 그 동안 세상이 얼마나 시끄러웠나? 텔레비전이고 신문이고 없이 마치 지구 종말이라도 온 것처럼 야단법석이었다. 특히 지리적으로 인접한 보스턴타임스는 편서풍을 탄 매연이 오대호를 뒤덮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어댔고! 그게 모두 폴라리스 호 탓이라는 식이었으니 미칠 수밖에는! 결국 아메리카가 나섰는데, 플로리다 주 특수전부대인 포트 베닝 기지의 비상 화약을 대체 투입하기로 했다는 거야. 운반은 대형 군수송기가 맡기로 하고. “그럼 오타와 쪽은 아이스 스톰이 없었다는 거야?” - 그래서 하는 말이네. 세상은 참 요지경 속이라고. “…….” 나는 그만 입을 닫고 말았다. 지금 결빙된 세인트로렌스 강 인근은 난데없는 아이스 스톰으로 진저리를 치고 있는데, 이곳에서 겨우 500마일 남짓한 거리의 오타와 지역은 자연재앙과는 딴 세상이라는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 아메리카 군수송기가 나섰다고 해서 그걸 반갑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세인트존스를 출항한 이래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화재 현장의 처참한 모습을 떠올렸다. 원유 채굴장은 말할 것도 없고, 몰려나온 마을 주민들이 매연으로 고통 받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자신이 실화범(失火犯)이라도 된 양 안절부절 하지 못 했다. 세상사는 모두 결과로 말해진다. 그 책임을 꼭 자연재앙인 아이스 스톰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혹은 몇 가지 오판과 착오를 거듭한 쇄빙선 캡틴 윌리스에게로만 전가시킬 수 있을까. - 이제는 딱 한 가지다. 한시라도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것 말이다. 앙리의 그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 날이 밝는 대로 세인트존스 코스트가드도 구조기를 띄우겠대. 가능하다면 그 편으로 나도 그곳에 갈 생각이네. 앙리는 할 말이 많았다. - 허드슨 군뿐이지? 다른 일은 없는 거지? 제발 이제 더 이상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네. 통화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멍해 있었다. 11 - 폴라리스 호! 폴라리스 호! 감, 잡힙니까? 통신기가 웅웅 울었다. 날이 밝자마자 곧장 기지를 이륙한 구조기로부터 온 반가운 호출이었다. 남쪽 하늘이 희부옇게 트여올 때였다. “네, 여기는 CFFY, 세인트존스의 MS 폴라리스 호입니다.” 나는 이쪽 콜사인부터 밝혔다. - 여기는 퀘벡 코스트가드입니다. 캡틴과 교신하고 싶습니다. “네, 내가 캡틴 박입니다.” - 고생 많으시지요? 우리는 방금 기지를 이륙했습니다.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이자 체취였다. 그 하나만으로도 절망감이 떨쳐졌다. 나는 도착 예정 시각을 물었다. - 곧 도착할 겁니다. 환자는 한 사람 뿐이지요?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선박이 처한 상황을 물었다. 나는 이쪽의 상황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 아무래도 우리 소관은 아닌 것 같군요. 우리는 겨우 인명구조만 가능할 뿐입니다. 구조대원의 그 말이 틀리는 게 아니었다. 나는 환자 후송 하나만으로도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잠시 후 구조기가 남서쪽 방향에서 나타났다. 헤드세일러가 먼저 구조기를 발견했다. 폴라리스 호 상공에 도달한 구조기는 착륙할 마땅한 장소를 찾아내기 위해 몇 차례나 선회했다. 하지만 갑판 어디에도 내려앉을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얼어붙은 빙반 역시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로프를 내리겠소! 결국 호버링 상태에서 환자를 달아 올리겠다는 구조기의 최종판단이 전해졌다. “꼭 폴라리스 호로 다시 돌아와야 해.” 들것으로 옮겨지기 전 허드슨 군에게 내가 위로해 줄 말이라고는 그뿐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허드슨 군의 눈이 촉촉해 있었다. 가능하다면 그는 퀘벡 쪽보다는 고향인 세인트존스로 갔으면 하였다. 그래야 어머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미혼인 그에게 가족은 오직 홀어머니 하나뿐이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오래 전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쪽은 너무 멀어.” 나는 물론 허드슨 군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었다. “금방 완쾌될 거야.” 나는 허드슨 군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허드슨 군은 그렇게 배를 떠나갔다. 다시 앙리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퀘벡 코스트가드 소속 헬기가 출동했다는 말을 듣고 세인트존스 코스트가드는 출동 계획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처음부터 출동 자체가 무리라는 의견이 분분했다는 것이다. 세인트존스에서 로카티에레 삼각주까지는 1천 마일도 더 되는 먼 거리이기 때문이었다. 구조기 비행음이 잦아질 무렵 갑자기 통신기가 시끄러워졌다. 목소리는 아이스브리커 캡틴 윌리스의 것이었다. - 퀘벡! 퀘벡! 퀘벡 코스트가드! 곧 구조기에서 응답이 왔다. 그러자 캡틴 윌리스의 하소연이 장황하게 이어졌다. - 여기는 아이스브리커 블루스타 호입니다. 한 가지 긴급한 요청을 하려고 합니다. 구조대원이 무슨 요청이냐고 묻자 캡틴 윌리스는 ‘귀환하는 대로 아크티카 호에 전해 달라’고 말했다. - 부탁합니다. 아크티카 호가 꼭 와야 합니다. 우리는 그 배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긴급 상황입니다. 아크티카 호라면 지금 시추선의 길을 터주기 위해 베링 해로 나간 또 다른 아이스브리커가 아닌가. - 본선 좌현 쪽 스케그와 아이스호른이 모두 파손됐습니다. 때문에 지금 항해불능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이대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조난에 처했다고 해도 좋습니다. 상황이 그러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아크티카 호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 라저. 구조대원으로부터 그렇게 몇 차례나 알았다는 답변을 받고나서야 캡틴 윌리스는 겨우 통신기를 껐다. 나는 캡틴 윌리스의 심경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가 말한 조난 처지도 틀리는 게 아니었다. 선박이 자력(自力)으로 기동할 수 없는 처지라면 그게 곧 조난이 아닌가. 그래서 점점 절망적인 기분에 빠져든 것인지도 모른다. 도대체 여기서 베링 해가 어디냐는 것이었다. 당장 아크티카 호가 뱃머리를 돌린다고 하더라도 그 날짜가 얼마나 소요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두 배가 항진을 멈춘 지 나흘째가 되고 있었다. 그 동안 아이스브리커의 몸부림은 가히 필사적이었다. 달라붙은 얼음덩이를 털어내기 위해 에어버블링을 수차례나 시도하였으나 아무런 효과도 얻어내지 못 했다. 그럴 때마다 뱃전 주위로 수증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캡틴 윌리스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만 모양이었다. 오래 전 노르웨이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오슬로 교외의 한 박물관에 영구 정박한 난센의 프람 호를 떠올렸다. 프람 호는 선체를 우뚝 세운 채 지금이라도 당장 항해에 나설 것처럼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문센이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발을 디딘 모험가라면, 난센은 10수년도 더 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설계하고 건조한 떡갈나무의 프람 호를 타고 북위 87도 선에 도달함으로써 지금까지 허다한 탐험가들을 좌절시켰던 북극권 정복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북극해는 남극과 달리 연중 내내 만년빙으로 뒤덮여 있어서 선박에 의한 도전은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죽음의 개썰매라는 아이디타로드 식으로 하루 종일 달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개썰매의 최고 종이라는 알래스카의 말라유트나 시베리안 허스키도 며칠만 달려도 얼음 조각에 발바닥이 찢겨져 피투성이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개는 주저앉는 법 없이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끝없이 광활한 빙원을 달린다. 그렇게 죽어나간 개가 얼마라던가. 허다한 탐험가들의 북극탐험이 실패로 끝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 사정을 안 난센은 한 가지 기발한 착상을 떠올렸다. 북극해의 거대한 얼음은 한 자리에 못 박혀 있지 않고 해류를 따라 부단히 압류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해안에서 발원하여 북극을 향해 도도히 흘러가는 지류의 하나를 이용하기로 작정했다. 그는 탐험선을 아예 북극으로 떠밀려가는 빙반 위에다 걸치기로 작정하고, 거기에 적합하게 떡갈나무로 배를 만들었다. 마치 상륙정처럼, 배가 쉽게 얼음을 걸탈 수 있도록 밑바닥을 넓고 납작하게 설계한 희대의 착상이었다. 그 예측은 정확했다. 모항인 크리스티안샌드 항을 떠나 말 그대로 유빙항해를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프람 호는 북위 80도 선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였고, 동료인 요한센과 함께 나머지를 개썰매에 의지하여 20일 만에 북위 87도 선에 도달함으로써 당시로서는 인간이 이룩한 북극의 최고점을 정복했던 것이다. 떡갈나무와 강철-. 내가 망연하게 프람 호를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떡갈나무로 만든 프람 호는 건조되고 1백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원형 그대로를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게 떡갈나무라는 재질 덕분인가. 그렇다면 쇠로 만들어진 배는 어떨까. 하지만 자꾸만 고개가 내저어졌다. 해안 바위 틈서리에 좌초하여 비스듬히 드러누운 난파선은 불과 수년만 지나면 본디의 모습을 잃고 시뻘건 고철 덩어리로 변하고 말았지 않던가. 폴라리스 호 역시 결빙이 없는 계절만을 택하여 겨우 세인트로렌스 강을 오르내리던 볼품없는 선박에 불과하지 않은가. 게다가 건조되고 20년도 더 된 노후선이다. 나는 결빙으로 인한 항해불능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망연한 생각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 마음은 좀체 떨쳐지지 않았다. 배는 인적도 없는 적막한 변방으로 밀려나 있었다. 해빙기가 오기까지 배는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시야 속의 빙반이 무한히 광활하고 아마득하게만 느껴졌다. 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빙반이 지구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인 것이었다. 몇 날 며칠을 걸어가더라도 문명세계는 없고, 다만 눈보라 치는 하얀 은세계만 펼쳐져 있을 것이라는 괴이한 생각이 나의 영혼을 꽁꽁 묶여 놓고 있는 것이었다. “캡틴께서는 참 행복하시군요.” 토키맨 한센 씨였다. 브리지 윙에서 망연히 빙반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끝없이 펼쳐진 은세계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만 하루 동안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두 배의 항진이 멈추자 그의 할 일이 없어져버린 탓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지요?” 나는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캡틴께서 부인과 통화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내를 무척 사랑하고 계시더군요.” 나는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는가 싶었다. 먼 동양에서 온 나와 프랑스인 여자가 어떻게 만났느냐는 따위의 야릇한 질문을 하고 싶다면 대답을 하는 대신 뺨이 얼얼해지도록 주먹맛이나 야무지게 보여줄 작정이었다. 그래서 퉁명하게 찰리 이야기부터 꺼냈다. “찰리라고 아들놈도 있습니다. 그저께 처음으로 나를 아빠라고 부르더군요. 이제 일곱 달 됐습니다.” 그러자 순수 바이킹 후예가 분명한 토키맨 한센 씨가 그의 진심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럼요. 그래서 너무 너무 부럽습니다요.……”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얼른 마음을 고쳤다. 공연히 남을 의심한 내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물었다. “그런데……한센 씨에게도 가정이 있을 텐데요?” 토키맨이 살짝 웃었다. 그 웃음에 허망함이 깃들어 있었다. “네에……물론이지요. 있고말고요. 한데…….” “한데요?” “캡틴께서도 아시다시피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 속이 아닌가요?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세상은 자꾸만 엉뚱하게 돌아가니 말입니다. 가령 가족이라는 것이 말이지요.……” 나는 난간에서 몸을 돌려 천천히 한센 씨를 마주 바라보았다. “아, 아닙니다. 모두 쓸데없는 말입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듣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공연히…….” “그럼 내가 먼저 얘길 할게요. 나는 결혼하고 3년이나 지나 겨우 찰리란 놈을 얻었습니다. 무어랄까, 찰리는 부부 사이를 이어주는 끈 같은 것이더군요. 아니, 끈끈한 접착제 같다고나 할까, 요컨대 녀석 때문에 우리는 더욱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내가 만약 생피에르에서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여기 있지도 않을 겁니다. 고국으로 돌아갔거나, 아니면 다른 배를 타고 다른 바다로 나가 있거나……. 그런데 지금 이렇게 생피에르에 살면서 캐나다 국적의 이 배를 타고 세인트로렌스 수로를 운항하고 있습니다. 전혀 꿈도 꾸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더욱 행복한지 모릅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다고나 할까요?” “캡틴께서는 틀림없이……멋진 미래를 얻어낼 것입니다. 이래 뵈도 나는 사람을 좀 볼 줄 알거든요. 하지만…….” “하지만?” “네, 하지만입니다. 하지만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인생이란 게……” 한센 씨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어렵게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시작했다. “나에게도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노르웨이 수도인 오슬로가 고향이라는 한센 씨는 천생 뱃사람이었다. 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 누군가가 바이킹 무리 속의 한 사함일 게 틀림없다고까지 말한 그는 그래서 배를 타는 것만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의 전부라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 선택에 불만이 있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바다야말로 노력한 만큼 거짓 없는 보상을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도 한창 젊었을 때는 유럽의 여러 항구를 왕복하는 화물선을 탔다고 했다. 몇 달 동안의 항해를 끝내면 연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오곤 하였는데, 집 마당으로 들어설 적마다 몰라보게 아들이 부쩍부쩍 자라나 있곤 하여 그 한 가지 보람과 희망만으로도 인생은 재미를 붙이고 살 만한 값어치가 있더라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인생은 있는 것이지만, 지금 한센 씨가 말하는 그것과 나의 그것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한데 그 놈이 말이지요……무어랄까, 나를 그만 배반하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한센 씨는 벌써 세 개비 째의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는 지포라이터를 켜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엄지손가락으로 줄날바퀴를 돌렸으나 워낙 혹한이어서인지 잘 점화가 되지 않았다. “뭐랄까요? 세상은 참으로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이런 게 있지요. 사람 사는 곳이면 반드시 해코지를 하고 평화를 깨트리려는 악마가 기웃거리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사람은 물론 혼자 살 수 없지요. 이웃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마을 같은 것도 생기면서 나중에는 큰 도회로 발전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곳에 반드시 악마가 기웃거린단 말입니다. 그 악마란 것이……악마가……내 아들놈을 해코지하고 말았단 말입니다.” “…….” 한센 씨의 푸념은 이어졌다. 어느 날 귀항한 부두에서 그는 틀림없이 마중을 나와 손을 흔들고 있어야 아들 디크를 찾아 두리번거렸으나 끝내 실패했다. 그를 맞는 아내의 표정도 웬일인지 이전 같지 않았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디크는?” 참지 못한 한센 씨가 아내에게 물었다는 것이다. “수업이 있는가 봐요.” 아내의 대답이었지만, 얼버무리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더욱 의아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대학 진학을 앞둔 때라지만 이미 수업도 끝나 있을 시간이었다. 어쨌든 집으로 돌아가면 얼마든지 진실은 밝혀질 것이었다.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모처럼의 귀항인지라, 친구들과 어울려 한 잔 맥주로 목을 축인 다음 이슥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는데도 그 시각까지도 집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어떻게 된 거야?” 그는 아내에게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아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평소 차분한 성격이어서 아무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모르는 사이에 쉽게 발을 빼내기 어려운 함정에 빠져 있더라는 것이었다. 어느 때는 얼굴에다 멍 자국을 남기고도 있었고, 또 어느 때는 팔뚝이나 허벅지에 칼자국 같은 것을 내기도 하였다. 가슴이 철렁하였으나 그녀가 아들을 제어하기에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마약 따위에 손을 대면서 이권을 다투는 몹쓸 조직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있음을 안 것은 이미 모든 것이 회복 불가능한 한계를 넘어선 다음의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는 것이다. 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 디크가 조직에서 발을 빼려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결과는 너무도 처참했다. 어느 날 디크는 수산물 가공공장이 밀집한 주차장 옆 공터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때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모든 게 다 제 자리에 있는데, 그런데도 마치 남의 집 같더란 말입니다.” 한센 씨가 다시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가 담배 연기를 내뿜을 때마다 입김도 함께 번져났다. 며칠째 손질하지 않은 턱수염에는 서리가 하얗게 맺혀 있었다. “모든 게 다 제 잘못이었습니다. 제가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셈이니까요. 어쨌거나 아이에게는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더 요긴한가 싶습니다.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 뱃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모두 낙제생이 분명합니다. 이해하십시오. 저의 이 말은 꼭 찰리를 두고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이대로 오도가도 못 하는 빙반 위가 말이지요. 저는 조금도 조갑증이 나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차라리……이대로 얼음 속에 영원히 파묻혀 버렸으면……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새 그의 눈가가 축축해져 있었다. “……” 그 때문이었을까. 날이 밝기 전, 캡틴 윌리스로부터 토키맨 한센 씨를 보내달라는 전갈이 왔다. 선체를 뒤덮은 얼음 제거작업에 한 사람의 손도 아쉽다는 것이었다. 하기는 언제 다시 아이스 스톰이 덮칠지도 모른다. “항해 준비가 되는 대로 돌아올게요.” 빙반으로 내려서기 전 불행한 사내가 말했다. 그 동안 한 치는 더 자라났을 그의 수염에는 여전히 서리가 하얗게 맺혀 있었다. 그가 매달린 뱃전 로프 사다리에는 주먹만큼 한 얼음 덩어리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조심하세요.” 헤드세일러가 주의를 주었다. 갑판을 올려다보며 한 번 손을 흔들어 보인 다음 한센 씨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치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먼 나라로 떠나는 사람 같았다. 발을 옮겨 딛을 때마다 그의 부츠 밑에서 꽈리 소리가 들렸다. 쇄빙선까지는 3백 미터 남짓한 거리였다. 그 사이 어디엔가 크레바스가 똬리를 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지독한 혹한이라도 강 밑바닥까지 통째 결빙할 수는 없는 일이다. 틀림없이 하저(河低)로는 강물이 흐르고 있을 테고, 그러면 어디에든 숨구멍은 트여 있기 마련인 것이다. 나는 어쩐지 나의 면전에서 눈물을 보인 한센 씨를 앞으로는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괴이한 생각을 했다. 12 아크티카 호와 관련한 메시지가 온 것은 구조기가 기수를 돌린 지 두 시간도 더 지나서였다. 아크티카 호가 소속한 본사로부터였는데, 베링 해 작업이 조만간 종료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먼저 전해졌다. 그런데 날짜가 문제였다. 세인트로렌스 수로에 닿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한 달은 더 소요될 것이라는 지극히도 비관적인 말이었다. 베링 해로부터 세인트로렌스 수로까지는 두 가지 뱃길이 있는데, 하나는 알래스카와 북미대륙 서안을 거슬러내려 파나마 운하를 통항한 다음 다시 북대서양을 북상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독자적으로 쇄빙작업을 계속하며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방법인데, 두 뱃길 모두 비슷한 항해일수가 소요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진작 예측한 그대로였다. - 갓뎀! 캡틴 윌리스는 뱃전 난간을 잡고 흔들며 마구 욕설을 퍼부어댔다. - 아주 해빙기까지 기다리라는 거군! 그 말을 전해들은 나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해빙기 운운하던 반갑지 않은 말이 현실로 다가온 듯한 절망감이었다. 참다못한 캡틴 윌리스가 다시 본사에다 새로운 요청을 제의했다. 쇄빙선 본래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파손된 선체 밑바닥의 보조 장치를 수리할 지원팀을 파견해 달라는 게 그 요지였다. “스쿠버다이빙이 가능한 엔지니어라야 합니다.” 캡틴 윌리스가 악을 썼다. 손보아야 할 스케그와 아이스호른 모두 배 밑바닥에 장착된 것을 고려한 말이었다. 거기에다 선체를 둘러싸고 있는 얼음을 제거할 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본사 간부는 당연히 화를 냈다. 사람 구하기가 말처럼 쉬우냐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본사 간부는 캡틴 윌리스를 매우 나무라고 있었다. 이의 모든 책임이 적절하지 못한 캡틴의 운용술에 기인한다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배에서 끌어내리고 싶지만, 마땅한 후임자를 찾아내지 못해 참고 있다는 언급도 있었다. 곤궁에 처한 쪽이나 그렇지 않은 쪽이나 모두 마찬가지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 도대체 손해가 얼만 줄이나 알아? 꼼짝없이 클레임을 물어야 한단 말이다! 회사 간부는 지금까지 아마도 몇 번은 계산기를 두들겨댔을 것이다. - 그게 말이 됩니까? 도대체 보통 아이스 스톰이었냐고요! 캡틴 윌리스도 지지 않았다. 결국 회사 간부는 마지못해 조선소에다 인력을 수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날이 저물 때까지 반가운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 간부는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으므로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 갓뎀! 세상은 모두 무관심한 놈들뿐이라니까! 다른 사람이야 죽든 말든! 캡틴 윌리스의 푸념이 워키토키로 나에게까지 들려왔다. 나는 백설로 뒤덮인 끝없는 빙원을 바라보며 다시금 망연하면서도 처절한 마음이 되었다. 두 배는 필경 조난선 처지에 다름 아니었다. 두 배는 순식간에 빙괴에 둘러싸이면서 이제는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궁지에 처하고 말았다. 말 그대로 해빙기까지 겨울잠이나 자야 할 처지가 된 것이었다. 처음부터 무리한 항해였다. 아이스 스톰 예보를 게을리 한 기상대를 원망할 처지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토록 자신만만해 하던 캡틴 윌리스를 나무랄 일도 아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윌리스의 말처럼 남이야 죽든 말든 자신만 안전하고 편하면 그만인 뭇 세상 사람들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고개를 완강히 가로저었다. 이것은 운명이다. 대자연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신도 아닌 인간이 운명을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설령 최악의 경우에 처하더라도 죽는 일이야 없을 것 아닌가. 가령 배를 포기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구조기는 언제든 호출할 수 있다. 게다가 퀘벡까지는 겨우 50마일 남짓한 거리다. 아니 북쪽으로는 눈 더미에 파묻혀 있을 라말바이에라는 읍내도 있다. 도보로 행군하더라도 며칠 걸리지 않는 거리다. 그러자 나는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가 샘솟아났다. 스스로를 포기하는 행위야말로 가장 비겁하고 무책임한 일 아닌가. 이것은 필경 극복해야 할 시련이다. 시련은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삶의 귀중함을 깨우치며 결코 좌절하지 않겠다는 인간의 굳건한 도전정신이 필요할 때다. 나는 다시 캡틴 윌리스를 호출했다. 응답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빠져나가 있었다. “윌리스 씨, 우리는 지금 시련에 봉착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걸 극복해야 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 캡틴 윌리스가 짜증을 냈다. “우리에게는 의지가 있습니다. 그걸 확인하자는 겁니다.” “당신은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겁니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의지 말입니다.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힘을 합치자고요?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말입니까? 어찌되었든 우리는 지금까지 힘을 합쳐 왔습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이 났는데……가령 지원팀이 온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루? 이틀? 아니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지요. 당장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닌데, 어느 누구가 제 발로 얼음 구덩이로 뛰어들려 할까요? 당신 말처럼 세상은 온통 무관심한 녀석들뿐입니다. 처지를 바꾸어보면 더 분명해지지요. 그래서 우리는 더욱 뭔가를 해야 합니다.” “도대체…….” “아니 이제 확실해졌습니다. 이쪽 선원 모두를 그 쪽으로 건너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캡틴 윌리스가 슬그머니 억양을 낮추었다. “그래서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제 기상은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힘을 모아 선체에 달라붙은 얼음덩어리를 하나하나 제거하자는 겁니다.” “뭐라고요?” “무엇보다도 당신 배의 기능부터 살려내자는 겁니다. 지원팀은 언제든 도착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작업을 하려 해도 선체가 얼음 속에 파묻힌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힘을 합치자는 겁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자꾸 악화될 뿐이니까요.” “그건 그래요.” 나의 제의를 캡틴 윌리스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13 작업은 아이스브리커의 선수 우현 쪽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선체는 좌현으로 기울어진 그대로였다. 따라서 우현을 압박하고 있는 빙괴를 제거해야만 최소한의 평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작업은 곡괭이와 해머를 휘두르는 지극히도 원시적인 것이었다. 사방으로 얼음 조각이 튀어 올랐다. 얼음이 갈라지고 깨트려지는 소리가 빙원을 메아리치며 끝없이 퍼져나갔다. 작업은 더디기만 했고, 끝도 보이지 않았다. 1백 미터도 넘는 길이의 대형선 선체를 압박하고 있는 빙괴를 제거하는 일이니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선체는 빙반 깊숙이 박혀 있었다. 아이스 스톰 탓이었다. 작업은 수로 밑바닥의 강물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되어야 했다. “굉장한데요.” 캡틴 윌리스가 멋쩍게 웃었다. 선체를 파묻고 있는 빙반의 두께가 엄청나다는 이야기였다. “드라프트가 40피트를 넘으니까요.” 나도 맞장구를 쳤다. 무언가를 생각하던 눈치더니 캡틴 윌리스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나는 이 친구가 무슨 말을 하려는가 싶었다. “뭐랄까……말하자면 우리가 힘을 모아 무엇을 한다는 건……그건 확실히 용기를 준다는 사실 말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주 절망적이었습니다. 눈을 감아도 세상이 온통 눈밭처럼 하얗게만 보이더군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절망에 빠지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법인데 말입니다.” 이번에는 내가 그렇군요, 하고 동의했다. “그 동안 나는 틀림없이 누군가가 나를 골탕 먹이고 있다는 생각밖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틀림없이 누군가가!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았습니다. 모두가 다 내 잘못이라는 걸 말입니다.” 나는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미스 모니카가 보온병을 들고 다가왔다. 그녀는 벌써 몇 번째나 차를 끓어왔다.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나는 장갑 낀 손으로 컵을 받았다. 장갑은 나무 막대기처럼 꼿꼿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고마워요.” 미스 모니카의 미소는 아름다웠다. 아니 어느 여자라도 그럴 때는 아름다울 것이다. “보세요, 배에도 여자는 필요하답니다.” 멀리서 곡괭이를 휘두르는 작업원들에게 차를 나눠 주기 위해 저만치로 멀어져간 미스 모니카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캡틴 윌리스가 웃었다. “본인이 들으면 싫어할 텐데요?” “아니죠. 그건 내가 할 말입니다. 저놈 강아지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캡틴 윌리스는 짓궂은 데가 있었다. 마침 쇄빙선 블루스타 호 상갑판의 난간 사이로 요크셔테리어 종이 귀를 쫑긋 세운 채 머리통을 내보이며 뚫어져라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스 모니카를 따라잡고 있는 게 분명했다. “요컨대 개라는 건 말입니다……영악하다고나 할까, 좀 엉뚱한 데가 있어요. 가령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난 개가 그렇다는 얘깁니다.” 내가 흥미를 갖기 시작하자 그는 더욱 열을 올렸다. “그렇게 자라난 개는……자신이 개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어느 동물심리학자들이 떠들어댄 겁니다만, 가령 태어나면서부터 사람한테서 자라난 개는 자신을 돌보아 준 사람을 제 어미로 여긴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지금까지 자기를 돌보아 준 여자가 아기에게 젖꼭지를 물리기라도 하면 개새끼는 자신의 사랑이 도둑맞는다며 앙칼지게 대든다는 겁니다. 아기를 할퀴기도 하구요. 그게 도대체 말이 되기나 합니까?” “그건 좀 끔찍하군요.” 캡틴 윌리스가 다시 요크셔테리어 종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 좀 보세요. 저놈만 하더라도 미스 모니카를 어미로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단 말입니다.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거든요.” “당신은 분명 개를 좋아하지 않는군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난 개새끼라면 아주 질색입니다. 처음 미스 모니카가 배에 올라왔을 때도 그랬습니다. 처음 승선할 때부터 개새끼를 안고 있었으니까요. 그래 내가 물었지요. 그렇게 정을 주다간 출항하면 어떡할 거냐고요. 그러니까 뭐란 줄 아십니까? 얘도(강아지를 가리키며) 시맨카드(선원수첩) 쯤은 갖고 있다고요! 아이고, 그만 한 방 맞고 말았지요.” 우리는 웃었다. 그 시각 앙리는 세인트존스를 떠나 퀘벡에 도착해 있었다. “허드슨 군은 지금 수술실에 있다.” 그는 아이스 스톰이 그치자마자 다른 무엇도 제쳐두고 맨 먼저 퀘벡으로 넘어간 것이었다. “혼자 내버려둘 수야 없지 않나?” 그게 뉴잉글랜드 라인의 오너인 앙리의 말이었다. “허드슨 군 어머니는?” “사고 소식을 듣고 그만 몸져누워 버렸다네.” 그랬었구나. “아무튼 이쪽은 걱정할 거 없네. 퇴원하는 대로 곧장 휴가를 보낼 거니까.” 나는 앙리에게 이쪽의 사정을 알려 주었다. “지금 빙반을 깨고 있는 중이네. 지원팀이 도착할 때까지 말이다.” 앙리는 제발 몸조심하라고 신신 당부했다. 통화를 마치고 작업장으로 돌아가던 나는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쇄빙선 갑판으로부터 좌현 뱃전 너머로 길게 데릭 붐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끄트머리 리프팅 후크로는 앵커가 단단히 매달려 있는 광경이었다. 틀림없이 후갑판에 따로 보관되고 있던 예비 앵커였다. 그 광경을 보고 나는 그게 캡틴 윌리스의 의도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챘다. 곡괭이나 해머 따위의 도구로는 작업의 진척이 원활하지 않자 그는 그 같은 기발한 방안을 강구해낸 것이었다. “다들 멀찌감치 비켜서!” 캡틴 윌리스가 주의를 준 다음 수신호와 함께 소리쳤다. “다운 앵커!” 참으로 어느 항해용어에도 존재하지 말이었다. 순간 허공 높이 매달려 있던 육중한 앵커가 빙반을 향해 수직으로 낙하했다. 쿠웅! 300킬로그램의 육중한 앵커 크라운이 내리꽂히자 커다란 분화구가 만들어지면서 빙반이 몇 조각으로 갈라졌다. “와아!” 선원들의 함성이 터졌다. 그 효과는 대단했다. 곡괭이나 해머로 내려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갈라진 틈 사이에 지렛대를 박아 젖히면 빙반은 아주 쉽게 조각났다. “역시 쇄빙선 캡틴다워.” 나의 칭찬에 캡틴 윌리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모두 캡틴 박 덕분입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투정만 부리고 있었을 테니까요.” 갑자기 캡틴 윌리스가 사슴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벗더니 손을 쑥 내밀었다. “우리는 친구입니다.” 그의 손은 작고 차가웠다. 윈치 조작은 아무래도 헤드세일러 몫이었다. 그는 마스트 하우스에 올라앉아 능숙하게 윈치를 조작했다. 천천히 앵커를 허공 높이 감아올린 다음 브레이크를 풀면 쇠뭉치는 그대로 육중하게 수직으로 꼬나 박혔다. “조심해!” 캡틴 윌리스가 거푸 주의를 주었다. 자칫 앵커의 낙하지점이 어긋나기라도 하면 엉뚱하게도 선체 외판이 손상을 입고 만다. 반나절의 작업 끝에 드디어 선수 쪽 우현 뱃전으로 숨구멍이 트이면서 그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떼어낸 얼음 조각은 멀리 내던져졌으므로 다시 아이스 스톰이 퍼붓지 않는 한 숨구멍이 메워질 걱정은 없었다. 분쇄된 얼음 조각이 저만치에서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윌리스는 이제 선미 쪽 차례라고 말했다. 그 때는 아이스버블링 만으로도 얼마든지 배를 둘러싸고 있는 양현의 얼음을 제거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14 다음 날 아침, 블루스타 호 본사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캡틴 윌리스가 요청한 대로 지원팀을 헬기편으로 보내겠는 내용이었다. “댕큐!” 캡틴 윌리스는 본사 간부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 하나만으로도 궁지에 몰린 캡틴 윌리스가 그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도착은 언제인가요?” 그만큼 캡틴 윌리스의 마음은 바빠 있었다. “두어 시간 후면 도착할 거야.” “아이구,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캡틴 윌리스는 송수화기에다 대고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렸다. “곧 온답니다.” 통화를 끝낸 캡틴 윌리스가 나를 보고 말했다. “빌어먹을! 이제 고생도 끝입니다.” 입김을 뿜어내며 캡틴 윌리스는 연신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 기운들 내자고요! 솜씨 좋은 에이에스(A/S) 팀이 곧 온다니 말입니다!” 캡틴 윌리스가 쇄빙선 바깥 빙반 위로 죽 늘어선 선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시 앵커 크라운이 빙반을 내려찍는 작업이 재개되었다. 앵커 크라운이 찍어내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빙반이 갈라지는 소리가 빙원을 메아리쳤다. 열 시경, 드디어 반가운 비행음이 들렸다. 본사 간부와 통화를 끝낸 두어 시간 후였다. “헬기다! 지원팀이 온다!” 한 선원의 말에 캡틴 윌리스가 직접 쌍안경으로 남서쪽 하늘을 살폈다. “맞다! 지원팀이다!” 캡틴 윌리스가 확인했다. 그러나 상공으로 접근한 헬기를 본 캡틴 윌리스의 안색이 확 변했다. “아니, 저건 휴즈500 아냐?” 캡틴 윌리스가 단번에 기종을 알아맞히었다. 소형 기종인 휴즈500은 겨우 두 명만 탈 수 있으며, 오늘날에는 광활한 농장에서 겨우 농약이나 살포하는 정도의 용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틀 전 허드슨 군을 구조해 간 퀘벡 코스트가드 소속의, 열 명도 탈 수 있는 시코르스키 기종과 비교한다면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 하는 아주 소형기였다. “저 자식들, 무슨 시찰 나온 거야, 뭐야?” 캡틴 윌리스의 얼굴이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과연 그의 판단을 옳았다. 휴즈500은 쇄빙선 블루스타 호 가까이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 동안 얼음눈은 헬기가 내려앉아도 충분할 만큼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아직도 메인 로터가 맹렬하게 회전하는 가운데, 한쪽 문이 열리면서 안전모를 쓴 사내 하나가 빙반으로 내려섰다. “수고 많습니다.” 사내가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두 선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눈썰미가 있었던지, 사내는 첫눈에도 두 캡틴을 알아보았다. 캡틴 윌리스가 엉거주춤 내민 사내의 손을 맞잡았다. “내가 블루스타 호 캡틴이오.” 캡틴 윌리스는 퉁명했다. “저는 퀘벡 조선소 현장 감독관입니다.” “그래서요?” 억양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그로서는 당장 전문 수리 팀이 도착하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는데, 감독관 혼자 나타났으니 반감이 생길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감독관이라고요.”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 감독관을 요청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말하다 말고 캡틴 윌리스는 빙반 위에 꼼짝없이 결빙 상태에 들어가 있는 두 척 배를 손가락 끝으로 번갈아 가리켰다. “……무엇보다도 아이스브리커의 기능부터 살려내자는 겁니다. 그래야만 항해를 재개할 수 있을 것이니까요. 그런데…….” 캡틴 윌리스의 말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본사로부터 들었고, 우리가 일을 맡았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먼저 현장에 나온 것입니다. 얼마의 인력이 필요한지, 또 작업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일에는 다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이거 무슨 설교를 하시는 겁니까? 우리는 지금 한 시가 급한 상황에 있단 말입니다. 얼음덩이에 갇힌 지 벌써 나흘째란 말입니다. 이만하면 우리 사정을 이해하시겠지요?” 두 사람의 언쟁은 끝이 없었다. “자, 그만하면 됐습니다. 빨리 상황을 파악해 보시지요.” 내가 나서서 말리고 난 다음에야 두 사람은 겨우 언쟁을 그쳤다. “아이구나!” 감독관은 비명부터 질렀다. “세상에! 아이스브리커가 얼음에 갇히다니!” 감독관이 비아냥댔다. 다행히 캡틴 윌리스는 저만치서 담배를 빼내 무느라 그 소리를 듣지 못 했다. 만약 들었다면 큰 소동이 벌어졌을 것이다. 감독관은 한 시간도 넘게, 천천히 두 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다음 엄숙하게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힘들겠습니다.” 그 말을 캡틴 윌리스도 들었다. “아니, 뭐라고요?” 캡틴 윌리스가 악을 썼다. “이것 보세요. 배를 둘러싼 얼음 깊이가 10피트도 넘습니다. 도대체 이걸 무슨 재주로 제거합니까? 얼음부터 제거해야 고장 난 개소를 고칠 게 아닙니까?” 감독관은 느긋했다. “그래서 전문가를 부른 게 아닙니까?” 눈치가 빠른 캡틴 윌리스는 이미 일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이런 작업을 우리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나섰다. “무슨 기발한 방법이 있을 텐데요?” 그러나 감독관의 말은 기대 밖이었다. “해빙기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뭐라고요?”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이지만, 이처럼 얼음에 파묻힌 배를 끌어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드디어 캡틴 윌리스의 감정이 폭발했다. “당장 꺼져버려! 꺼져버리라고!” 뒷걸음을 치던 감독관이 헬기 쪽으로 몸을 돌리기에 앞서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그럼 모두……수고들 하세요.” 그렇게 휴즈500은 현장을 떠났다. “망할 녀석이라니!” 캡틴 윌리스는 한참이나 분을 참지 못 했다. 15 끝없이 펼쳐진 빙원으로 다시금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아니 빙원은 하루 종일 어스름 속이었다. 아마득한 빙원 끝자락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바람도 거세어졌다. 나는 이쯤으로 오늘의 작업을 중단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캡틴 윌리스도 동감이었다. 선원들이 작업 도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북극곰이 나타난 것은 그 때였다. “봐라! 마리띠무스다!” 붉은 수염 에리크가 소리쳤다. “뭐라고?” 선원들은 미처 에스키모의 말을 알아듣지 못 했다. “곰이다! 북극곰이다!” 붉은 수염 에리크가 재차 소리쳤다. 선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쪽으로 쏠렸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곰을 발견할 수 없었다. “어디야?” 사방을 살피며 헤드세일러가 물었다. “저쪽, 얼음 언덕이 있는 곳!” 붉은 수염 에리크가 손가락으로 빙원 한쪽을 가리켰다. “맞다! 북극곰이다!” 선원들도 소리쳤다. 두 배로부터 겨우 몇 백 미터 남짓한 거리로 집채보다도 큰 몇 개의 얼음 언덕이 보였고, 그 사이로 거대한 몸집의 북극곰 한 마리가 몸을 일으켜 세운 채 입으로 거품을 뿜어내고 있었다. 곰은 자신을 해치려고 하지 않는 한 좀체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 웅성거리는 사람 소리가 들리면 먼저 조용히 그 자리를 벗어난다. 예기치 않게 맞닥뜨린 경우에도 자신을 해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대로 조용히 몸을 돌린다. 그래서 죽은 듯이 엎디어 있는 것도 공격을 피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동물학자들은 조언한다. 반면 틀림없이 자신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는 확신이 서면 그 때는 돌변하여 어디까지든 추격해 온다. 그렇게 하여 어마어마한 앞발로 끝장을 낸다. 단 한 차례의 가격으로 웬만한 동물은 살점이 발겨지고 뼈가 으스러진다. 특히 새끼를 거느린 경우에는 상상 이상으로 포악해진다. 주변을 살폈으나 다행히도 새끼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미스 모니카가 안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앗! 미스 모니카, 위험해!” 먼저 비명을 지른 것은 나였다. 요크셔테리어 종을 품에 안은 1등항해사 모니카는 멋모르고 계속해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모니카! 조심해! 북극곰이다!” 나는 거듭 주의를 주었다. 그제야 눈치를 챈 미스 모니카가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천천히 북쪽으로 돌렸다. 꼭 슬로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다. 먹이를 좇을 때의 최고 속력이 50킬로미터를 넘는다니까 몇 백 미터 거리는 북극곰에게 한순간의 일이었다. 올림픽 단거리 선수도 따라잡기 불가능한 속력인 것이다. 북극곰은 어쩌면 미스 모니카가 안고 있는 요크셔테리어 냄새에 혹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순간 영원히 얼음 속에 갇혀도 좋다던 바이킹의 후예 한센 씨의 외침이 들렸다. “미스 모니카, 가만 계세요! 움직이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는 다짜고짜 곰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센 씨 안 돼!” 그건 의외에도 붉은 수염 에리크의 목소리였다. 누구보다도 라고푸스나 마르띠무스의 생태와 습성을 잘 알고 있는 작살꾼이었다. 소리친 붉은 수염 에리크가 한센 씨 쪽을 항해 곧장 내달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의 손에는 기다란 막대기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빙괴 조각을 젖혀내던 쇠 지렛대였다. “아니, 에리크가!” 나의 고함소리가 그의 등을 쫓아갔으나 아무 소용없었다. 붉은 수염 에리크가 한센 씨의 두어 걸음 뒤에서 우뚝 달리기를 멈추었다. 두 사람의 그 같은 행동은 북극곰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니 어쩌면 극 지대에서 가장 야성적이며 육식성 동물인 북극곰의 공격 본능을 자극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미스 모니카에게로 향하고 있던 북극곰의 시선을 두 사람에게로 돌려지는가 싶더니 곧 허연 거품을 문 윗입술을 더 격렬하게 떨어댔다. 사방으로 입김이 번져났다. 곧 두 길도 넘는 육중한 몸을 일으켜 세운 북극곰은 허연 거품을 문채 두 앞발로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뒤집어 올린 입술 아래로 상아 색깔의 커다란 송곳니가 드러났다. 송곳니는 상하 각각 두 개씩이었다. 들소의 질긴 가죽도 찢어발긴다는 무시무시한 이빨이었다. 커다란 송곳니를 내보인 채 푸르르 입술을 떨어대자 침방울이 고드름처럼 가슴팍으로 타 내렸다. 부릅뜬 두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몇 차례 거푸 가슴을 두들겨댔다. 상대에게 위협을 과시하는 몸짓이 틀림없었다. 그게 북극곰의 전형적인 공격 직전의 자세인 것이었다. “위험하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 동안 붉은 수염 에리크는 한센 씨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천천히 뒤로 끌어당겼다. 한센 씨는 뒤뚱뒤뚱 뒤로 물러났다. 이제 북극곰과 맞서게 된 붉은 수염 에리크는 천천히 쇠 지렛대를 움켜쥔 오른손을 어깨 위로 가져갔다. 그 옛날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포악하다는 말향고래의 등덜미에 작살을 내리꽂던 당당하면서도 우람한 자세 그대로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과 맹수 사이의 거리는 여남은 발자국으로 좁혀져 있었다. 선원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북극곰이 가슴 두들기기를 멈추는가 싶더니 시선을 뒤로 돌렸다. 두 마리 새끼 곰이 얼음 언덕 사이로 모습을 보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결국 자신의 가슴팍을 두들기고 입술을 뒤집어 보인 야수는 두 마리 새끼를 가진 어미곰이었던 것이다. 어미곰은 두 마리 새끼와 함께 부빙에 의지하여 그린란드로부터 뉴펀들랜드까지 떠밀려 온 게 분명했다. 그리고 먹이를 찾아 헤맨 나머지 엉뚱하게도 결빙한 세인트로렌스 강에 다달은 게 틀림없었다. 이윽고 어미 북극곰이 앞발로 빙반을 내려치듯 하더니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두 사람을 향해 재차 돌진을 시작했다. “앗!” 선원들 모두 비명을 질렀다. 16 폴라리스 호가 생피에르 섬으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 달도 더 지나서였다. 당초의 항해는 당연히 실패로 끝났다. 휴즈500 편으로 현장을 답사한 감독관은 지원팀 투입을 거부한 게 틀림없었다. 본사 간부는 그 결과를 전하면서 이제는 베링 해에 머물고 있는 아크티카 호를 기다릴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 결과 결빙한 세인트로렌스 강에 좌초되었던 두 배는 한 달이나 지나 현장에 도착한 캐나다 원자력 추진선 아크티카 호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겨우 귀항 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 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쇄빙선 블루스타 호의 캡틴 윌리스를 위로해 주었다. 그는 블루스타 호가 수리를 마치는 대로 북위 80도 선상의 퀸에리자베스 제도로 북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여기서는 할 일이 없으니까요.” 그 동안 결빙해 있던 세인트로렌스 만이 모두 풀렸다는 말이었다. “우리 언제 한 잔 하십시다.” 그의 우정 어린 제의였다. “그럽시다.” 맞잡은 두 손은 한참 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아이스 스톰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자연의 위력이 그만큼 위대하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이나 지나 나는 폴라리스 호가 정박하고 있는 세인트존스로 나갔다. 새 항해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때는 3월 중순, 항해에 나서기에는 더없는 봄날이었다. 그 날 나는 방금 퀘벡에서 돌아온 붉은 수염 에리크와 재회했다. 그는 꼬박 한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퇴원하자마자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폴라리스 호에 재승선하기 위해 때맞추어 모선을 찾아온 것이었다. 선원들 모두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앙칼진 요크셔테리어 보디가드를 안은 미스 모니카의 모습을 본 것도 그 때였다. 그녀는 얼음세계에서 풀려나자마자 곧 바로 퀘벡 병원으로 달려가 붉은 수염 에리크를 위로했던 것이다. 살롱에 마주 앉은 나는 붉은 수염 에리크가 그토록 즐겨하던 위스키를 손수 따러 주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네.” 그 동안 나는 무척 궁금해 있었다. “말씀 하시지요.” 아끼듯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 붉은 수염 에리크가 되물었다. “마르띠무스를 만났을 때 이야긴데……에리크 씨라면 그 때 얼마든지 먼저 북극곰을 해치울 수 있었지 않았나? 왜 머뭇거린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처럼 장기간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나는 그 이유가 지금도 궁금하다네.” 내가 다시 잔을 채워 주었다. “그건……새끼 곰 때문이었지요! 캡틴 박께서도 아시다시피 나는 얼마든지 놈의 목덜미에 작살을 명중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까부터 얼음 더미 뒤쪽에서 두 마리 새끼 곰이 꼼지락거리는 것을 보았단 말입니다. 어미를 죽이면 새끼는 어떻게 되나요? 내가 머뭇거린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 “만약 녀석이 공격해오지 않았다면 나는 끝까지 작살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구요. 그 때문에 한센 씨가 그만…….” 붉은 수염 에리크가 말을 멈추었다. 그랬었구나. 나는 가슴 속으로 찡한 감동을 받았다. 그 날, 붉은 수염 에리크는 돌진해 오는 어미 북극곰을 겨우 서너 발 앞에다 두고 쇠 지렛대를 날려 정통으로 가슴팍에 명중시켰다. 하지만 한센 씨는 무사하지 않았다. 작살을 맞은 채 돌진을 멈추지 않은 북극곰에 깔리면서 그는 북극곰이 마지막으로 휘두른 억센 발톱에 그만 회복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고 만 것이었다. “이제 마리띠무스를 만날 일도 없을 거야.” 나는 정겹게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길게 내뻗은 방파제 너머로 언제나 보던 대서양 바닷물이 망망하게,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찰리와 나란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랑하는 아내를 향해 천천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끝> 약력 주문진 출생 주문진수산고 강원도립대학 원양산업학과 졸업 과학기술부장관명의 해양학사 취득 한국해양대학교 국제대학 동아시아학과 석사과정 제 1회 <계간문예> 영목신인상〈시〉등단 제12회 바다의 날 해수부장관 표창 제11회 한국해양문학상 대상〈 해양시〉 제13회 한국해양문학상〈해양소설〉 제 4회 해양문학상 <해양소설> 해양시편〈진화하지 못한 물고기〉<대왕고래를 만나다> 해양중편〈쇄빙항해>〈바타비아로 가는 항로〉<남서대서양> 해양수필<바다 위에서> 어선1급, 상선1급, 동력레저 조종1급, 소형선박 항해사, 요트 조종자격, GOC (주)태영교역 선장 / (현) 북태평양 출어  
103 시인 이봉화-낙동강4/정 숙 file
편집자
4064 2011-03-01
11.03월 10호 수필 시인 이봉화 -낙동강 4 밤 내내 제 깃털에서 뽑아낸 실로 하늘울음 깁고 있을지언정 학은 함부로 울지 않는다는 어른 말씀을 이정표 삼아 일제강점기와 육이오 사변 그리고 가난, 시대적 급물살에 휩쓸리며 오직 내 가족을 살려야겠다는 지푸라기 한 올 잡고 흘러온 지금 아흔 여섯 세월의 강물에서 이봉화, 내 어머닌 울 여가 없었다 악다문 입 열 틈이 없어서 울 수도 없었다 '일제강점기, 외지에서 근무하는 네 아부지 삼년만에 찾아가니 이미 딴 여자가 있었지 어린 네 오빠 둘과 시동생까지 데리고 겨울바람 불면 냄비까지 날아가버리는 제실에서 끼니 걱정하며 사는데 어느 날 도저히 더 견디지 못해 떠나겠다는 내 눈물편지 한장 읽고 네 아부지 김월분이란 그 여자 정리하고 경산으로 흘러갔어 그 당시 식구 한 사람 당 쌀 한 주먹씩 주는데 쌀밥은 네 아부지 드리고 아아들은 우짜든지 점심 굶기려고 나락 이삭 주우러 다니면 그래도 제법 양식이 되었어 그래도 쌀 배급하는 사람은 우리집엔 쌀 한되씩 더 얹어주더군 그 시절 고향을 지키는 사람은 밥은 굶지 않았지' 바람든 지아비의 마음방향을 돌리고 고향 논두렁에서 시아버지를 펑펑 울린 며느리의, 아내의 그 애간장 끓이는 편지 한 장이 바로 사람을 감동시킨 명시 한편 아니겠는가 연애편지 한 장 쓰지 못한 난 언제 살 떨리는 문자로 누구의 가슴 저리도록 울려본 적 있는가?  
102 제3악장/김미지 file
편집자
4200 2011-03-01
11.03월 10호 시 제3악장 김미지 담양에서 순창으로 이어지는 메타세콰이어 숲길 노부부 한 쌍이 다정히 걸어간다 켜켜이 쟁인 시간의 그늘들 태양도 침범 못할 지붕을 이었다 꽃 핀 흔적들 우듬지 만큼이나 아득해 애써 두근거림의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잡은 손은 제 살 같이 무덤덤할 뿐이다 둥근 원을 그리며 자전거 한 대가 스쳐가고 빨간 자동차가 그 뒤를 재빠르게 달려갔다 투덜투덜 트럭이 멀어지는 길 끝에 희뿌연 햇살 한웅큼 쏟아져 내린다 어둠살 저문 흰 머리칼엔 소진된 열정 대신 아늑한 고요가 빛건반을 자꾸 옮기는지 푸른 천칭 속 아다지오의 선율 깊어진다 김미지 대구 출생 199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문』이 있음 대구광역시 miji3406@hanmail.net  
101 꽃받침 외1편/박경조 file
편집자
4127 2011-03-01
11.03월 10호 시 꽃받침 박경조 장롱 위 한복상자 내려야 하는데 글쎄 내 무게를 받치러 온 식탁의자 허공 깊어, 섣부른 나를 내팽개친 것 쩌-억 허공이 그어버린 오른쪽 손목 금이 간다는 건 부러진 틈보다 오래 간다는 것 오른쪽과 왼쪽 위와 아래 한 쪽이 아프면 나머지 한 쪽이 더 쓰라린 것 한 쪽이 베이고 나서야 알았다는 것을, 한 때 한 사람을 지극히 사랑했던 손 그 손으로 이별 또한 어루만져야 했던 가령, 양兩 손이 꽃의 일생이라면 거친 세상을 버무리고 치대던, 어미의 순한 손이 되기까지 팽팽하게 받쳐 준 꽃 받침 같은 내 손목, 이렇게 깊이 들여다본 적 없다 어느 봄 박경조 체위 변경을 해주며 요양원 밖 막 움트기 시작한 봄 소식, 수다로 옮겼더니 맨발로 소복소복 밑거름 다져 육남매 처처에 심던 문득 한 삶이 걸어온 어느 봄 내가 듣는다 활짝, 활짝 피워낸 여섯 꽃자리 저도 차츰 발길 뜸해진 봄, 봄 다시와도 좌측 편마비 양쪽 하지구축의 몸 되어 텅, 모래사막에 갇혀 - 봄날이 와 이래 지엽노* 일흔 아홉, 덧없는 사투리 내 실습일지의 마지막 한 줄, * 지루하다의 경상도 사투리 약력 : 경북 군위 출생, 2001년 계간『사람의 문학』등단 대구작가회의, 대구시인협회 회원, 시집『밥 한 봉지』  
100 길목에서 외3편/허명칠 file
편집자
3230 2011-03-01
11.03월 10호 시 길목에서 / 허명칠 세월을 끌고 범이 이사한다 소란스러운 이 세상 내키지 않나 보다 구름 같은 범띠 인생 범 이삿짐에 묻혀 해 저무는 가을을 거쳐 앙상한 겨울로 가고 있다 미련을 밟으니 지나온 길엔 울음과 웃음 널려 있다 그 웃음 자국마다 황홀한 그림자 스며 있고 그 울음 자국들엔 처진 어깨 드리워 있다 바람과 서리로 엮인 인생길 무겁기만 하다 앞길엔 안개 자욱한 데 산 토끼 빨간 눈 찬란하게 슬픈 추파 보내오고 있다 검둥이 범을 배웅하여 그믐달을 짖고 보름달을 재촉하여 토끼를 마중한다. * 경인년 섣달 그믐날 범해를 보내는 범띠의 감개 친구 만나 / 허명칠 고개 들면 보고 고개 숙이면 못 보는 먼지 깔린 고샅길에서 누군가와 어긋나 무슨 예감이 들었던지 뒤돌아보니 그이였다 10여 년 전 친구인 그이는 역경에 처한 내 가슴을 밟고 떠난 후 무소식이었다 그때로부터 내 가슴엔 배심의 돌담이 쌓이고 친구 잃어 울적한 나날을 보내었다 그는 나처럼 고개 숙이고 걸었을까? 아니면 보고도 못 본 체했을까? 10년 넘는 세월이 지나 얼음이 풀리고 새봄을 맞아 내 마음속의 돌담도 녹아버렸건만 그를 포용하지 않으리라 짐작해서일까? 나는 그이를 불렀다 흡사 기다렸다는 듯이 그이는 돌아서면서 다가왔다 나의 내민 손을 잡으며 아무 말 없이 눈시울만 축인다 용서하란 그 이기적인 말도 없이 그렇다, 우리 사이엔 용서가 필요 없다 차가운 손을 잡은 나 두 손으로 힘껏 흔들어주면서 "우린 아직도 친구야!" 한 발 헛디딘 친구를 부축하지 않으면 나는 그의 친구가 될 자격이 없지. 자연의 품으로 / 허명칠 여기엔, 눈을 잡는 건 많아도 마음에 가라앉는 건 적다 코를 찌르는 건 많아도 퀴퀴하게 묵은 것들뿐이다 귀를 당기는 건 많지만 여과된 건 적다 눈을 감고 숨죽여 들어도 풀빛 숲으로 가자 거기 가면 반기는 꽃들이 만발하여 눈을 잡고 놓질 않고 솔 향기 꿀 냄새 쪽빛 공기 가슴 적시고 풀벌레 교향악 귀를 당긴다 어서 가자 옹달샘 부르는 언덕으로 거기 가면 비린내 없는 샘물 맑은 냄새 목을 축이고 민들레꽃 노란 웃음으로 손짓해 가슴은 한 뙈기 꽃밭이 된다 어서 가자 산기슭 시냇가로 거기 가면 우거진 버들 숲 여울 물 졸졸 장단 맞춰 하늘하늘 춤추어 어깨도 덩달아 춤 나온다 어서 가자 종 내 싸움 없는 자연의 품으로. 장벽 / 허명칠 살아 있는 한 언젠가 만날 수 있으리라 안개 걷으면 무정한 세월 만나고 싶어도 안 되고 만날 수 있어도 안 되는 이 세상 만남의 기쁨 어찌하여 슬픔이 되어야 하나 기쁨이자 슬픔인 이 세상 뜨거운 찻잔 같은 만남의 기쁨 식어가는 찻잔처럼 쓸쓸하나니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슬픔 생기 넘치는 글로벌 시대 화강암처럼 땅땅한 주름 장벽 언제면 철들어 녹으리오. <html> <head> </head> <table width=100%><tr><td valign=to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길목에서&nbsp;<FONT face="Times New Roman">/&nbsp;</FONT><FONT face=Batang>허명칠</FONT></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세월을&nbsp;끌고</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범이&nbsp;이사한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소란스러운&nbsp;이&nbsp;세상</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내키지&nbsp;않나&nbsp;보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구름&nbsp;같은&nbsp;범띠&nbsp;인생</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범&nbsp;이삿짐에&nbsp;묻혀</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해&nbsp;저무는&nbsp;가을을&nbsp;거쳐&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앙상한&nbsp;겨울로&nbsp;가고&nbsp;있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미련을&nbsp;밟으니&nbsp;지나온&nbsp;길엔&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울음과&nbsp;웃음&nbsp;널려&nbsp;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그&nbsp;웃음&nbsp;자국마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황홀한&nbsp;그림자&nbsp;스며&nbsp;있고</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그&nbsp;울음&nbsp;자국들엔</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처진&nbsp;어깨&nbsp;드리워&nbsp;있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바람과&nbsp;서리로&nbsp;엮인&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인생길&nbsp;무겁기만&nbsp;하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앞길엔&nbsp;안개&nbsp;자욱한&nbsp;데</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산&nbsp;토끼&nbsp;빨간&nbsp;눈</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찬란하게&nbsp;슬픈&nbsp;추파</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보내오고&nbsp;있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검둥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nbsp;범을&nbsp;배웅하여</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그믐달을&nbsp;짖고&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보름달을&nbsp;재촉하여</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토끼를&nbsp;마중한다<FONT face="Times New Roman">.</FONT></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nbsp;<FONT face=Batang>경인년&nbsp;섣달&nbsp;그믐날&nbsp;범해를&nbsp;보내는&nbsp;범띠의&nbsp;감개</FONT></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친구&nbsp;만나&nbsp;<FONT face="Times New Roman">/&nbsp;</FONT><FONT face=Batang>허명칠</FONT></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고개&nbsp;들면&nbsp;보고</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고개&nbsp;숙이면&nbsp;못&nbsp;보는</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먼지&nbsp;깔린&nbsp;고샅길에서</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누군가와&nbsp;어긋나</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무슨&nbsp;예감이&nbsp;들었던지</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뒤돌아보니&nbsp;그이였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10<FONT face=Batang>여&nbsp;년&nbsp;전&nbsp;친구인&nbsp;그이는</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역경에&nbsp;처한&nbsp;내&nbsp;가슴을</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밟고&nbsp;떠난&nbsp;후&nbsp;무소식이었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그때로부터&nbsp;내&nbsp;가슴엔</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배심의&nbsp;돌담이&nbsp;쌓이고&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친구&nbsp;잃어&nbsp;울적한&nbsp;나날을&nbsp;보내었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그는&nbsp;나처럼&nbsp;고개&nbsp;숙이고&nbsp;걸었을까<FONT face="Times New Roman">?</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아니면&nbsp;보고도&nbsp;못&nbsp;본&nbsp;체했을까<FONT face="Times New Roman">?</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10<FONT face=Batang>년&nbsp;넘는&nbsp;세월이&nbsp;지나</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얼음이&nbsp;풀리고&nbsp;새봄을&nbsp;맞아</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내&nbsp;마음속의&nbsp;돌담도&nbsp;녹아버렸건만</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그를&nbsp;포용하지&nbsp;않으리라&nbsp;짐작해서일까<FONT face="Times New Roman">?</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나는&nbsp;그이를&nbsp;불렀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흡사&nbsp;기다렸다는&nbsp;듯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그이는&nbsp;돌아서면서&nbsp;다가왔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나의&nbsp;내민&nbsp;손을&nbsp;잡으며</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아무&nbsp;말&nbsp;없이&nbsp;눈시울만&nbsp;축인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용서하란&nbsp;그&nbsp;이기적인&nbsp;말도&nbsp;없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그렇다<FONT face="Times New Roman">,&nbsp;</FONT><FONT face=Batang>우리&nbsp;사이엔&nbsp;용서가&nbsp;필요&nbsp;없다</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차가운&nbsp;손을&nbsp;잡은&nbsp;나</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두&nbsp;손으로&nbsp;힘껏&nbsp;흔들어주면서</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FONT face=Batang>우린&nbsp;아직도&nbsp;친구야</FONT><FONT face="Times New Roman">!"</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한&nbsp;발&nbsp;헛디딘&nbsp;친구를&nbsp;부축하지&nbsp;않으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나는&nbsp;그의&nbsp;친구가&nbsp;될&nbsp;자격이&nbsp;없지<FONT face="Times New Roman">.</FONT></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자연의</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nbsp;품으로&nbsp;<FONT face="Times New Roman">/&nbsp;</FONT><FONT face=Batang>허명칠</FONT></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여기엔<FONT face="Times New Roman">,&nbsp;</FONT><FONT face=Batang>눈을&nbsp;잡는&nbsp;건&nbsp;많아도</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마음에&nbsp;가라앉는&nbsp;건&nbsp;적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코를&nbsp;찌르는&nbsp;건&nbsp;많아도</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퀴퀴하게&nbsp;묵은&nbsp;것들뿐이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귀를&nbsp;당기는&nbsp;건&nbsp;많지만</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여과된&nbsp;건&nbsp;적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눈을&nbsp;감고&nbsp;숨죽여&nbsp;들어도</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풀빛&nbsp;숲으로&nbsp;가자</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거기&nbsp;가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반기는&nbsp;꽃들이&nbsp;만발하여&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눈을&nbsp;잡고&nbsp;놓질&nbsp;않고</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솔&nbsp;향기&nbsp;꿀&nbsp;냄새&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쪽빛&nbsp;공기&nbsp;가슴&nbsp;적시고</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풀벌레&nbsp;교향악&nbsp;귀를&nbsp;당긴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어서&nbsp;가자</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옹달샘&nbsp;부르는&nbsp;언덕으로</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거기&nbsp;가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비린내&nbsp;없는&nbsp;샘물&nbsp;맑은&nbsp;냄새</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목을&nbsp;축이고</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민들레꽃&nbsp;노란&nbsp;웃음으로&nbsp;손짓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가슴은&nbsp;한&nbsp;뙈기&nbsp;꽃밭이&nbsp;된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어서&nbsp;가자</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산기슭&nbsp;시냇가로</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거기&nbsp;가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우거진&nbsp;버들&nbsp;숲</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여울&nbsp;물&nbsp;졸졸&nbsp;장단&nbsp;맞춰</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하늘하늘&nbsp;춤추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어깨도&nbsp;덩달아&nbsp;춤&nbsp;나온다</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어서&nbsp;가자</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종&nbsp;내&nbsp;싸움&nbsp;없는&nbsp;자연의&nbsp;품으로<FONT face="Times New Roman">.</FONT></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장벽</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nbsp;/&nbsp;<FONT face=Batang>허명칠</FONT></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살아</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있는</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nbsp;한</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언젠가&nbsp;만날&nbsp;수&nbsp;있으리라</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안개&nbsp;걷으면</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무정한&nbsp;세월&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만나고&nbsp;싶어도&nbsp;안&nbsp;되고</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만날&nbsp;수&nbsp;있어도&nbsp;안&nbsp;되는&nbsp;이&nbsp;세상</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만남의</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nbsp;기쁨</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어찌하여&nbsp;슬픔이&nbsp;되어야&nbsp;하나</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기쁨이자&nbsp;슬픔인&nbsp;이&nbsp;세상</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뜨거운&nbsp;찻잔&nbsp;같은&nbsp;만남의&nbsp;기쁨</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식어가는&nbsp;찻잔처럼&nbsp;쓸쓸하나니</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언제&nbsp;다시&nbsp;만날지&nbsp;모르는&nbsp;슬픔</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생기&nbsp;넘치는&nbsp;글로벌&nbsp;시대</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화강암처럼&nbsp;땅땅한&nbsp;주름&nbsp;장벽</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언제면&nbsp;철들어&nbsp;녹으리오<FONT face="Times New Roman">.</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EndFragment--> </tr></td></table> </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