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20호...
   2020년 06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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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93376 2014-11-03
112 낙동강/박희용 file
편집자
4523 2011-04-01
11.04월 11호 시 낙동강 박희용 늙은 어미 자르고 깎고 막고 파 성형수술하면 무엇해 늙은 어미 빨갛게 노랗게 파랗게 분칠해 다시 시집가면 무엇해 늙은 어미 팔자에 없는 호강은 싫다 평생소원 하나 태백산맥 가장 높은 곳에서 시작 해 영남의 가장 낮은 곳까지 소리 소문 없이 흐르는 것 늙은 어미 토막 내어 시장에 내 놓는 자식들아 내 팔리거든 부디 잘 살아라 배반을 가슴에 보듬어 안으며 황지에서 부산까지 저절로 흐르는 것 봄에는 꽃잎을 싣고 가을에는 풀씨를 품고 하늘이 준 수수한 옷 차려입고 하염없이 흘러 천삼백리 길 알알이 열린 강변 생물들 잘사나 못사나 여울마다 몸 뒤척이며 물어보다 하얀 머릿수건 흔들며 남쪽바다 깊숙이 한 생애 묻는 것  
111 봄이 오는 소리 외1편/신구자 file
편집자
4902 2011-04-01
11.04월 11호 시 봄이 오는 소리 신구자 내려오기 위해서 올라가는 가파른 길, 대둔산 마천대처럼 홀로 우뚝 솟은 중지만한 고드름, 파아란 이끼이불 조심스레 펴놓고 봄과 은밀하게 체위를 바꾸고 있는 중이다 수줍은듯 발소리 낮추며 계곡물은 졸졸졸 길을 나서고 있다 명자꽃을 보며 신 구 자 불임의 딸 가진 어미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날마다 장독대 정안수 떠놓고 지켜본 너의 여린 몸속, 드디어 잉태의 씨앗 눈 뜨기 시작했구나 황사바람의 늪 속에서도 앙다문 인내 앞에선 불타던 빙벽도 무릎 꿇었구나 종달새 탄주하듯 눈부신 새 아침 약력 경북 칠곡군 약목 출생 1994년 [대구문학]과 1999년 [불교문예]신인상 시 당선으로 등단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불교문인협회, 대구여성문인협회, 칠곡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솔뫼시>와 <반짇고리> 동인으로 활동 시집 [낫골 가는 길] 출간  
110 퇴강 외1편/김숙자 file
편집자
5064 2011-04-01
11.04월 11호 시 퇴강 김숙자 매호골 부는 바람 퇴강의 나룻배여 어릴적 강심에서 달을 따던 소녀의 꿈 이제는 되돌아 앉아 퇴강 섶에 지켜 섰다 강건너 배띄우던 아버지 추억의 강 칠백리 백사벌에 물총새 고이 울고 물놀이 달리던 아이 옛친구는 어디로 갔다. 벼랑끝 버들가지 춤추는 강나루에 어풍대(御風臺) 홀로 앉아서 글을 읽던 조우인 선생 임호정(臨湖丁)그림자 안고 낙동강은 흘러갔다. 새마골* 가는 길 김숙자 운무 휘감긴 어풍대* 돌아서면 수양버들 머리 풀어 헤치고 멱감는 은비늘 곧추세우며 꿈틀대는 낙동강 벌개미취 뒤에 숨은 하늘 닿은 상풍교* 옛 나룻터 지키는 구멍가게 주인은 달바다 이고 춤추는 방랑자를 맞는다. 희망 보이지 않던 절망의 늪에서 수평선처럼 끝없이 펼쳐진 금모래 물총새 꽁지깃 흔들며 냉가슴을 보듬네 새마골:상주시 사벌면 퇴강리(새마) 상풍교:상주와 풍양을 잇는 다리 어풍대:관동속별곡과 매호별곡을 쓴 조우인 시인이 머물수 있는 곳을 찾다가 쉬던곳 조우인 시비 맞은편에 있는 (두평 정도되는 둥글 넓적한 큰바위) 아호:명헌(茗軒) 김숙자 드라마를 사랑하는모임 (작가) 3기수료 샘터인간승리상 수상 여성동아 체험수기공모 수상 전국독도사랑작품공모대회 안용복 장군상 수상 문학세계 시 등단 문학세계 신인문학상수상 나래시조 신인문학상수상 이육사 시낭송경연대회 수상 문학세계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상주문인협회 회원 상주아동문학회 회원 경북문화유적해설사 회원 경북 향토문화연구사 회원 경천대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 정기룡장군 추진위원회 회원 함창초등학교 논술강사 역임 문경글사냥문학회 사무국장 역임 상주 시민신문기자 역임 저서:날고싶은 제비(장편소설) 공저:아름다운사람들(1,2,3,4,5,6,7집) 내마음은 독도, 푸른잔디, 경북의 얼굴 시조시인 100인선집외 다수 현:상주문화유적해설사 회장 다사랑복지센터 논술강사 문경글사냥문학회 부회장 dkll2004@naver.com http://blog.daum.net/love2004-2004 http://cafe.daum.net/myeong2011(별빛언덕) 경북 상주시 함창읍 오사1리 211  
109 서정적 풍경 외1편/황명강 file
편집자
4636 2011-04-01
11.04월 11호 시 서정적 풍경 황명강 전봇대 서있는 풍경은 서정적이다 책가방 둘러메고 뛰던 유년의 공터에 박힌 따뜻한 위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나는 전봇대에 얼굴을 묻고 자주 술래가 되곤 했었다 눈을 뜨면 사방 어둠이 물들어 딱딱한 어둠에 눌려 혼자 울곤 했는데, 젖은 어깨 토닥여 주던 전봇대의 크고 기다란 손 누군가 지금도 서정을 말하라면 내 마음 훔쳐보던 전봇대를 떠올린다 단발머리 계집애 하나 감꽃처럼 쪼그리고 앉아 있는 촛불 황명강 어둠을 핥아대고 있는 저 널름거리는 혓바닥을 봐 비명 지르며 허공들은 불의 입속으로 삼켜지고 조금씩 어둠의 나라 정복하고 있는 저 짐승의 식욕을 봐 내 안에서 나를 핥아대고 있는 이 짐승 좀 보라지 내 오장육부를 삼키고 대뇌와 소뇌를 삼키고 마침내 나를 정복하고 마는 한 마리 광폭한 현재를 약력 황명강 경북 경주 출생 서정시학 시 등단 한국시협, 경북문협, 경주문협 회원 현, GBN경북방송(주) 대표이사  
108 별 외1편/서 하 file
편집자
4227 2011-04-01
11.04월 11호 시 별 서하 청송 쪽 35번 국도를 따라 흐르다 보면 하늘로 가는 길 열린다 천 길 낭떠러지가 길이었고 발부리 끝이 벼랑이었던 기억을 더듬어 별들이 길 내고 있는 보현산 천문대 소소리바람에도 시린 속내 들키는 시루봉 열어 살며 쪼이던 당신을 꺼낸다 아득히 멀어서 평생 말문 닫은 당신 차마 뱉을 수 없었던 말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데 주머니마다 꾹꾹 눌러 담은 그늘이 소복하다 비층구름이 겹으로 달려들어도 잎은 꽃이 되고 꽃은 별이 되는 곳 하늘말나리 뜨거운 이마위에 직녀별이 꾀꾀로 손 얹을 때 말라비틀어진 몸에도 물이 차올라 구불구불 당신 사랑한 날이 지붕에 푸른 박을 낳는다 새우 서하 힘들 때마다 아무도 찾지 못할 곳으로 잠수해버리겠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가 정말 사라졌다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일곱 식구가 새우처럼 옹기종기 잠들던 아랫목에 두근두근 피어나던 꽃, 민망하기만 한데 세상을 안으로만 껴안은 탓인가 해 저문 뒷산이 내려다보는 마을 앞길도 굽을 데가 아닌 곳에서 슬며시 굽는다 찬바람 굽은 채 마당으로 깔릴 때 사라진 새우 기다리며 파도는 꼬박 밤을 새운다 ♧서하(徐 河) 경북 영천 출생 1999년 계간시지『시안』신인상 수상 현재 한국시인협회, 시안시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주 작은 아침』시안 출판  
107 쿠바를 생각하다/강태규 file
편집자
2714 2011-04-01
(쿠바를 생각하다) 강태규 우리에게 지리적으로 가까운 북한보다 남미의 북단 카리브해 연안의 섬으로 있는 쿠바는 우리에게 멀리 있기도 하지마는, 이념적 자기검열만 극복할 수 있다면 균열조짐이 보이는 신자유주의 추종국가 보다는 역설적으로 더 나은, 지속가능하거나 예측 가능한 미래가 더 잘 보일 수 있다고도 생각된다. 이미 부자를 위한 의료정책으로 가는 미국이나 한국의 방향과는 달리 쿠바의 우수한 일차 진료체계는 우리들에게 이미 번역서(『또 하나의 혁명, 쿠바의 일차의료』화이트보드와 브랜치 공저)를 통해 자세하게 소개되기도 하였다. 더구나, 지난 달, 서울에서는 쿠바의 대표적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의 작품들이 성황리에 전시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자리 잡던 1959년, 쿠바 국민들은 쿠바혁명을 통하여 ‘라울 피델 카스트로’ 형제에 의해 오랜 통치를 지금까지 받고 있다. 그런 동안에 우리는 자유, 군정, 문민, 열린, 참여 등의 정치를 통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이념적으로 더 미국적으로 변하였으나, 쿠바는 오히려 반미국적으로 유지 또는 진화하여 왔다. 그러는 사이 다큐영화 '식코'에 의해 조롱받는 미국의료체계와는 달리 현재로서는 미래대안적인 쿠바식 일차 진료체계의 성공적 운용은 국가총생산량이니 인민(국민)의 행복지수를 제쳐두고서라도 최소한 신자유주의 자체의 균열이 분명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비록, 경제봉쇄와 생필품 부족은 있다손 치더라도 최강의 군사력, 외교력의 막강한 힘을 가진 미국을 곁에 두고 버티고 있는 저력은 놀랍기도 하다. 칼럼기고가겸 출판인 이규항의 표현대로, 인민이라는 좋은 단어가 공산주의 국가에서 더 많이 번역되어 사용된 탓으로 국민이라는 표현에 익숙한 우리에게 또 역설적으로 전체주의적 단어처럼 독해되기도 한다. 즉, 국 + 민, 또는 국 > 민, 으로 해독되기도 한다. 동무라는 좋은 단어가 친구로 대치되어버린 처지와도 같다. 작년 방북으로 ‘곰프’의 석방유도에 성공한 카터 전 대통령의 탁월한 중재력도, 이번 3월, 쿠바법원에 의해 국가전복혐의로 구금된 ‘그로스’를 석방시키지는 못했다. 도박판으로 비유하자면, 쿠바가 북한 보다는 맞대면하기에 어려운 상대로 읽혀지기도 한다. 21세기는 문화정치 또는 문화전쟁의 시대가 분명해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는 엄마친구 아들만 보아도 그 집안을 대략 가늠하며 상징적 기호에 규정짓기에 더욱 익숙해지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 아바나의 명물 말레콘, 센트로 아바나에 가득한 쿠바의 야구열광, 프라도 거리, 유기농산물이 넘치는 주말 장터, 헤밍웨이 박물관, 체 게바라 기념관 등으로 쿠바적인 문화적 기호가 넘친다. 또한, 쿠바혁명에 가담한 한인 2세, 임은조씨( 헤로니모 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946년 한인 최초로 아바나 법학대학에 입학하여 수학하던 중, 체 게바라,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에 선봉을 선 바 있으며, 혁명 성공후 식량사업부에서 30년간 일하며 차관까지 역임하였다고 한다. 쿠바를 생각하며 우리와 북한을 떠 올린다. 우리 문화의 기호들을 나열해 본다. 그 기호들에 우리 국민, 아니 인민들은 열광하고 동의하며 살고 있는가. 더 귀한 것들이 천대받고 있는 듯 하다. 큰 도시 중심가의 환자로 차고 넘치는 뻔뻔스러운 대형 병원건물과 간판들을 보노라면. 온갖 기교를 다 부리며 우아하게 쓰여진 영어 간판들을 보노라면.  
106 강동수의 <금발의 제니>
누미
4670 2011-03-13
내가 좋아하는 소설 나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금발의 제니였을까? 찬란했던 청춘의 날들에 누군가는 내 금발의 제니였을까? ‘제국익문사’의 작가 강동수의 두 번째 소설집 ‘금발의 제니’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집 안에 실린 ‘수도원 부근’을 읽으면서, ‘호반에서 만나다’를 읽으면서 쓸쓸하게, 적막하게 웃었다. 아마도 나 역시 누군가의 제니였을 거니까. 누군가는 나의 제니였고, 한때 제니였던 중년의 우리는 새벽녘 베란다에 서서 ‘금발의 제니’를 반추하는 작가 강동수처럼 청춘의 한 시절을 건너왔으니까. 촉촉한 윤기와 바스러짐, 그 쓸쓸함의 정체 몇 년 전 강동수 작가가 낀 여럿의 소주자리에서 풋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다들 <금발의 제니>에 등장하는 첫사랑쯤보다 더 어린 나이 귓볼 발개지는 연정 한 자락씩을 고백했던 것인데, 중년이 되어 우연한 재회를 가졌다는 이에게 강동수 작가가 건넸던 말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쓸쓸해서 어떻게 그 마른 만남을 가졌느냐고. 그 자리에서 들은 다른 이야기보다 이상하게 그 말의 여운이 오래 남더니, <금발의 제니>을 읽으면서 알 것 같았다. 신문사 논설위원이자 보수적인 가장의 체통을 겨울담요처럼 걸치고 있는 중년의 사내와 별을 노래하고픈 천진한 심성이 천성인 소년의 부조화 같은. 이런저런 술자리에서 곧잘 드러내던 그의 고백의 연장선으로 <금발의 제니>를 보더라도, 7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건 ‘촉촉한 윤기와 바스러짐’이다. 금발의 제니들은 청춘의 자체발광으로 찬란했으나 생의 너덜길을 건너오는 동안 아름다웠던 모습은 윤기 없이 바스러진다. 서로의 후줄근한 모습을 바라보며 ‘오래전 책갈피에 넣어둔 마른 야생화 같은 묵은 그리움이 살아나는 것’을 느끼지만, ‘담뱃불을 끄듯 마음속에서 솟아오른 격정을 눌러끄고 만다’. 세월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다. 욕망도 그리움도 회한의 여지도 남아있지 않은, 그래서 마른키스로밖에 만날 수 없는 과거와의 재회는, 어지간히 허망한데, 이 지점에서 작가는 무심한 어조로 별을 노래한다. 별을 노래하되, 물론 중년답게 말이다. 아름다웠던 금발의 제니에 대해 꺼져가는 불씨가 살아나듯 일어나는 욕망을 담뱃불 눌러 끄듯 꺼버리는 무기력한 중년은 삶의 덧없음과 함께 아름다움의 근원을 눈치채버린 자의 쓸쓸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쓸쓸함의 정체는 싱싱하고 팽팽했던 젊음이 물기 없이 바스러진 중년으로 되어가는 과정에서 사랑이 사라지고, 욕망과 기쁨과 분노가 사라져 간 시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 강동수가 풀어내는 쓸쓸함은 금발의 제니들이 살아온 시간 저편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 별을 그들이 잊지 않았다는 데서 기인한다. 별이 흐르듯 우주를 돌아가는 시간처럼 2010년 오영수문학상 수상작인 '수도원 부근'에서 작가는 청춘의 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중년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어릴 때 ‘나’와 같은 성당에 다녔던 안드레아와 체칠리아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수사가 되었고, 체칠리아는 수녀원에 가서 종신서원을 했다. 소설가로 나오는 ‘나’는 안드레아가 재벌의 레저단지 개발에 반대해 단식 투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안드레아로부터 체칠리아 소식을 듣는다. 체칠리아는 수녀원에서 나와 달동네에 사는 남자와 결혼해 그의 아이들을 돌보며 살고 있다. 두 친구가 살아온 내력이 펼쳐지는 것과 병행해 수도원 현장은 용역깡패들이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는 사태를 맞는다. 안드레아는 그들이 던진 돌에 이마를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그들과의 대치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안드레아도 알고 있지만(두 사람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체칠리아도 알고 있었으리라), 별이 흐르듯 우주를 돌아가는 시간처럼 스스로가 선택하는 모양새인 운명 또한 도무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번의 여행이 끝나도 길은 다시 시작되는 것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수도원을 떠난다. 그리고 국도 쪽으로 길을 잡는다(옆길로 잠깐 새자면, 소설집 <금발의 제니>는 독립적인 7편의 단편을 다루고 있지만 화자가 서성이는 배경에서 튀어나오는 키워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일테면 ‘수도원부근’ 마지막에서 ‘국도’ 쪽으로 길을 잡은 ‘나’의 발걸음은 아들의 사고소식을 듣고 ‘7번 국도’로 들어서는 중년남자의 막막한 길로 이어진다. 그리고 소설 마지막 문장, ‘갑자기 몰아닥친 한낮의 어둠에 나는 눈을 비볐다’는 ‘명왕성이란 이름에서 왜행성 132340으로 격하돼 아내의 궤도에서 퇴출당한 전직시인의 후줄근한 시간을 그린 ‘청조문학회 일본 방문기’에 겹쳐진다.) 구비를 돌자 수도원 뒷산이 보였다. 산자락에 걸린 호수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 옛날 체칠리아가 술에 취해 중얼거리던 말이 떠오른 것은. 아름다운 것은 멀리 있다. 그게 칸트의 말이었던가 아니었던가. 기억나지 않았다. 멀리 있지만, 그러나 역으로 분명한 것은 아름다운 것을 놓지 않는 한, 무력하게 지친 중년의 시간 속에서 잊지 않고 바라보는 한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해 있다는 것이다. 하고 보면 청춘이 중년보다 스스로 아름다운 건, 별이 얼마나 아득하고 멀리 있는지 몰랐기 때문은 아닐까. 결국 작가 강동수가 <금발의 제니>를 통해 일관되게 다루고 있는 것은 ‘별과의 거리’일진대, 현재의 시간을 단단히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결코 가능한 작업이 아니었을 성싶다. ‘아름다운 것은 멀리 있는’ 만큼, 한 번의 여행이 끝나도 길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리라. 여간해서 눈치 채기 어렵지만, 작가와 이런저런 일로 어울리며 감지한, 놀라울 정도의 자기애로 스스로의 삶에 몰두하여 급기야 스스로 별이 되기도 하는 천진함을 소설의 군불로 삼는 작가 강동수의 다음 여정이 자못 궁금하다.  
105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셨는가요?/한경희
편집자
3013 2011-03-01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셨는가요? 한경희 사랑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사랑은 청춘의 꽃처럼 상징화 되어 있지요. 늙은이들의 연애담은 코미디 정도일 뿐 대중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집안의 가장, 한 세대를 정리하고 새롭게 연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서 그럴까요. 아니면 늙음에 대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일까요. 농경사회에서 노장을 아주 지혜로운 인물로 권위를 부여했다면 오늘날은 어떤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화는 질병쯤으로 여겨지지요. 누구든 젊어보이고자 하는 열망을 돌아보세요. 그렇게 늙는 일이 다들 싫은가 봅니다. 그래도 늙지 않고 살 사람 하나 없지요. 사람이 늙는다고 연애와 사랑도 시들해질까요. 숙제입니다. 물론 이 영화의 주제는 사랑이죠. 그것도 노년의 사랑을 중심에 두죠. 세월의 파도를 함께 잘 넘어온 한 쌍의 노부부와 연애가 막 시작되는 할배, 할매 이야기가 중심을 이룹니다. 노부부야 좀 도덕적인 버전입니다. 부부이야기를 뺄 수 없어 넣어둔 건 아닐까요. 가족단위에서 부부를 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가족이 많지만 보편적인 가족을 무시할 수 없지요. 제가 봐서는 노년의 연애가 중심을 이룹니다. 이미 결혼 안에서 나누는 사랑은 개인의지 외 결속과 책임감이 강하게 작용하지만. 개인의 사랑만이 둘의 관계를 지속시키는 연애이야기가 좀더 박진감이 넘치죠. 영화에 등장하는 노부부의 이야기는 일상과는 좀 차이가 나죠. 치매를 앓는 아내에게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남편이 나옵니다. 주차장 관리인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남편은 아내를 봐줄 사람이 없어 늘 출근할 때마다 대문을 자물쇠로 잠금니다. 밥이며, 목욕이며, 일상에 필요한 모든 일을 남편이 대신하는 거죠. 만약, 이 구도를 바꿔 치매 걸린 남편과 희생하는 아내가 나오면 영화적인 맛이 살아지겠지요. 어떤 통계자료에 따르면 남편보다 부인이 병든 자신의 반려자를 위해 간호하는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하네요. 그 일상의 비율을 넘어선 것이 영화일까요. 아무튼. 영화에서 남편은 너무나 아내를 사랑하지요. 그러던 어느날, 고물상이 건네준 자명종 시계를 믿고 늦잠을 자고 정신없이 출근하면서 대문을 잠그지 못하죠. 그때부터 아내의 외출이 시작됩니다. 쌀쌀한 날씨에 맨발로 잠자던 차림 그대로 다니기 시작합니다. 치매는 사람을 여리고 순수한 세계로 안내하기도 하죠, 출근하는 남편 뒤에서 잘 다녀오라는 손짓까지 하지요. 그리고 자유로운 여행아닌 여행을 나서고 뒤늦게 남편은 아내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거지요. 이 치매든 아내가 다행히 약수터 가는 할배에게 포착되어 집을 찾아가게 되지요. 이 할배는 오토바이에 이 사람을 태우고 집을 찾아나서지만 좀처럼 쉽게 찾지를 못하지요. 동네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고불고불 이어지는 골목을 두루 돌아다니고, 오토바이 뒷자리 앉은 사람은 마냥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그저 자신의 남편으로 착각하고 딱 붙잡고 그 자유로운 공기를 마음껏 마시지요. 오토바이를 모는 할아버지는 혼자되신지 꽤 오래되지만 아들, 손녀, 며느리와 함께 사는 비교적 행복한 사람이죠. 늘 아침 일찍 우유배달을 다니지요. 오토바이로 동네 언덕을 오를 때면 리어카에 폐휴지를 모아서 끌고 힘겹게 오르는 할머니를 만나지만 무심결에 지나다닙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넘어지면서 리어카 끄는 일을 도와주다가 그만 마음이 할머니 쪽으로 옮겨갑니다. 할머니를 돕겠다고 빈 우유곽을 모아 갖다 주기도 합니다.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맞춰 골목에서 기다리기도 하고요. 그러다 데이트신청을 편지로 하는데, 글쎄 할머니는 글을 읽을 줄 몰라 주차관리하는 할아버지가 대독을 해 줍니다. 그러자니 시간이 너무 늦었지요. 그때까지 할아버지는 기다리고. 기다리지 않은 척을 하지만 배에서는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였지요. 이 둘의 사랑이 어쩌면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한때 부부로 살던 사람들이 자신의 반쪽과 사별하고 혼자 남아서 노년을 보낼 때 맞이하는 사랑을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요. 늙어서 하는 연애를 망측하게 바라보는 우리의 관념 때문이겠지요. 칠십대에 십대소녀를 좋아했던 괴테처럼 연애를 할 수야 없지만 서로의 형편을 너무나 잘 헤아리는 사람끼리 사랑하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요. 나이가 무슨 상관이나 있을까요. 자식들에게 얼굴이 안 서는 일일까요. 영화에서야 예쁜 손녀가 할아버지 연애의 상담사가 되지요. 사회복지사인 손녀에게 이름도 없는 송씨 할머니의 이름을 지어 매달 연금을 타게 하기도 하고, 덕분에 할머니 생일까지 알게 된 할아버지는 마음을 전할 기회를 잡지요. 할머니의 생일날 케잌에 촛불을 켜고 머리핀을 선물로 주면서 ‘그대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 전에 죽은 아내의 무덤을 찾아가 ‘그래도 괜찮은가’를 묻고 허락을 받았나 봅니다. ‘당신’은 먼저 간 아내만을 위한 호칭이라 ‘그대’라고 부른 것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제일 두려운 건 헤어지는 일인가 봅니다. 사랑의 다툼도 헤어지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일테고요. 사랑은 함께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럴까요. 치매아내를 수발하던 남편도 너무 늦게 발견한 아내의 암으로 동반자살을 합니다. 자식들에게 부담도 되기 싫고 암으로 아파하는 아내를 위해 마지막 결단을 내린거죠. 둘이 함께 가는 길은 외롭지 않을까요. 그것이 죽음이라도. 송씨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결별을 선언합니다. 죽음이 둘을 갈라놓는 일을 지켜볼 수 없어서죠. 첫 아이 출산하고 집나간 낭군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까지 죽었던 자신의 아픈 경험을 다시 체험하고 싶지 않아서일까요. 그리고 평생을 혼자살다 황천길이 멀지 않는 시간에 사랑을 느끼는 건 기쁨만큼 불안했던 거지요. 그 불안에 할아버지는 어쩌지 못해 화를 내고 할머니가 선물로 준 자랑스런 가죽장갑도 내팽개치지만 시골 고향까지 할머니를 데려다 줍니다. 복사꽃이 환한 고향에서 둘은 포옹을 하지요.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지요. 노년의 연애는 죽음이라는 두려운 시간 때문에 몹시 망설여지는 거 같아요.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훨씬 덜 외롭지 않았을까요. 그 죽음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할머니는 여전히 할아버지와 연애 중이겠지요. 영화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나라고 가면서 멈추죠. 노년에 만나는 연애가 청춘들의 연애보다 못할 게 뭐 있나요. 참 아름답고 감동적이죠, 그 솔직하고 진지하게 배려하는 마음씀씀이가 곱지요. 청춘들 보다 성숙해서 속도는 좀 느릿느릿하지만 마음이야 다를 게 하나 없지요. 노년의 연애담에 다들 눈물, 콧물 짠하게 흘리는 이유가 그런 것 아닌가요.  
104 (해양중편소설)쇄빙항해/이윤길 file
편집자
4412 2011-03-01
11.03월 10호 소설 해양 중편소설 쇄 빙 항 해 이 윤 길 300장 1 - 캡틴 박, 한 시간 후야. 아침 일찍 셔틀 비행기 편으로 세인트존스 항으로 나간 앙리의 전화였다. “알았네.” 나는 서둘렀다. 앙리의 요청이라면 더 물어볼 것도 없었다. 그는 화물선 두 척을 소유한 뉴잉글랜드 라인의 오너이고, 나는 그 중 하나인 폴라리스 호의 선장이기 때문이었다. 두 배는 대서양 연안의 북미 각 항구에서 이리 호의 하항인 몬트리올까지의 세인트로렌스 수로를 정기적으로 운항하고 있었다. 따라서 앙리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면서도 수익이 보장된 항로에 배를 투입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거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가령 1월부터 3월까지의 한겨울 철이면 강물은 두껍게 꽁꽁 얼어붙고, 거기에 딸린 만마저 그린란드로부터 떠내려 온 부빙으로 하얗게 뒤덮이면서 항로가 그만 제 기능을 잃고 만다는 점이었다. 그러면 배는 세인트존스 항에 닻을 놓을 수밖에 없고, 덕분에 나는 생피에르 섬으로 돌아가 해빙기가 올 때까지 가족과 함께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는 것이다. 사흘 전 나는 앙리와 함께 사냥에 나섰으나 겨우 토끼 두 마리를 잡는 데 그쳤다. 프랑스의 유일한 해외 자치령인 생피에르 섬은 사주(砂洲)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키 낮은 떨기나무만 띄엄띄엄할 뿐, 당초부터 풀 한 포기 자라나지 않는 황무지였다. 사정은 인근의 미크롱 섬도 마찬가지여서 그곳에는 세상을 등진 수도승이나 은둔자 몇 명만이 자신들의 인내심을 저울질하며 고독한 삶을 살고 있을 뿐, 주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버려진 땅이었다. 그러나 자연은 너무도 너그럽고 위대하기만 하여, 그 같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얼마든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 그 하나가 뉴펀들랜드 섬 너머의 그랜드뱅크인데, 만약 그곳에 대구나 청어 등 값진 어족이 회유하고 있지 않다면 아무 멋모르고 첫 발을 내딛은 이주민들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 하고 그곳을 떠났거나 아니면 굶어 죽고 말았을 것이다. 일찍이 신대륙 개척시대에 캐나다 동북부를 선점한 영국인들에게서 쫓겨난 피레네 산맥 출신의 바스크 인들이 지금까지 그곳에서 용케 살아남은 것은 인근 바다가 둘도 없는 천혜의 어장이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 어느 화주의 전화를 받은 앙리는 서둘러 셔틀 비행기를 탔다. 생피에르에서 외지로 나가려면 일주일에 두 번씩 뜨는 셔틀 수상비행기가 유일했다. 따라서 한 시간 후에 뜬다는 셔틀기는 순전히 나를 위해 앙리가 서둘러 마련한 특별기가 분명했다. “급한 화물이 있는 모양이지.” 출발에 앞서 앙리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하기는 제아무리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던 해운회사 오너라도 급한 화물이 있다는 데는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기왕이면 플로리다 쪽이 좋겠네. 오랜만에 따뜻한 바람이나 쐬게 말이다.” 내가 앙리의 어깨를 툭 치며 그렇게 농을 한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세인트로렌스 수로는 지금 단단히 결빙된 상태여서 어떤 항해도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항로는 틀림없이 세인트로렌스 수로가 아닌 다른 곳일 수밖에 없다. “그랬음 얼마나 좋겠나.” 앙리도 웃으며 나의 농을 받아 주었다. “플로리다라면 나도 동행하고 싶네.” 우리는 소리 내어 웃었다. 2 내가 계류장에 도착하였을 때 셔틀기는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기세에 있었다. “이거 날씨가 보통 아닌데요.” 청바지 차림의 뚱뚱이 조종사가 찰랑거리는 물결 위의 착수용(着水用) 플롯을 내려다보며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면서 조종사는, 잠깐 동안인데 이렇게 살얼음이 달라붙어버렸으니 말입니다, 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한낮에도 태양은 남쪽 지평선 한 뼘 위에 잠깐 걸쳐지는, 밤이 낮보다 네 배는 더 긴 북구의 한겨울 철이었다. 며칠 전부터 기온은 영하 30도 아래로 곤두박질친 가운데 하늘은 두터운 구름으로 뒤덮여 있어서 이러다가는 행여 아이스 스톰으로 발전하지나 않을까, 더럭 겁이 날 정도였다. 얼음 폭풍우라고나 해야 할 국지적 기상이변인 아이스 스톰은 몇 년 전 몬트리올 일대를 강타하여 빙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가옥은 물론 아름드리 거목이나 전신주가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면서 일주일 동안이나 정전 사태를 일으켜 세상을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었다. “잘 다녀오세요.” 아내 마들렌은 에스키모 여인들처럼 이제 일곱 달이 된 찰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이럴 땐 아빠 바이바이, 그러는 거야.” 마들렌이 앙증스러운 찰리의 손을 잡고 함께 흔들어 주었다. 마들렌을 만난 것은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운명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내는 신천지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바스크 인의 후예답게 시원시원한 면모를 갖고 있었다. 당시 나는 뉴펀들랜드 어장에 시험조업차 입어한 트롤선의 1등항해사였다. 수산계 고등학교를 나온 게 학력의 전부인 나는 그 때문에 번번이 선장 진급에서 탈락하는 비운의 처지였다. 그래서 선택한 게 그랜드뱅크에 투입된 시험조업선 승선이었다. 그만큼 그곳은 미지의 세계였고, 기상이 험악하기로 이름나 있었다. 따라서 만약 내가 그 모험적인 항해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그 성과만으로도 나의 선장 진급은 따 놓은 당상이라 해도 좋았다. 앞서 말한 대로 그랜드뱅크는 황금어장이어서 한 달 남짓이면 얼마든지 어창을 채워낼 수 있었다. 그렇게 만선을 이루면 배는 어획물의 양륙과 선원들의 휴식을 위해 세인트로렌스 만 어귀의 생피에르 섬으로 귀항하곤 하였다. 첫 항차를 마치고 기항하였을 때였다. 어획물 양륙은 시간을 다투는 일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어창을 비워낸 다음 서둘러 어장으로 달려 나가는 게 어부들이 할 일이었다. 그래서 짧은 해가 진 다음이면 부두는 작업등으로 휘황하게 밝혀지고, 대낮 같은 그 불빛 속에서 이슥한 밤 시각에 이르기까지 어부들은 어획물 양륙으로 눈코 뜰 새 없다. 그렇다고 거푸 사나흘을 계속하여 고기 푸는 일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다못해 시원한 한 잔 맥주로 목구멍을 걸러낸 다음이라야 무슨 일이든 엄두가 날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모처럼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내가 행여 부두에서 누가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서둘러 상륙을 나간 것은 밤 열 시도 가까워서였다. 목적지는 부두 정문 맞은편의 ‘로제’라는 이름의 자그만 바였다. 자정 가까운 시간인데도 홀은 술꾼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늦가을 어기가 끝난 참이라 그들 모두가 어장에서 돌아온 어부들이었다. 몇 달 동안 북대서양 그랜드뱅크의 거친 파도에 시달리기만 한 어부들인 것이다. 좋은 성과를 낸 치들은 기분이 좋아서 한 잔, 결과가 신통치 않은 치들은 기분이 나빠서 한 잔, 그렇게 밤을 새워가며 육지의 훈훈한 땅 냄새에 흠뻑 취하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 생선 가공공장의 노동자 얼굴도 몇몇 보였다. 그만큼 생피에르 섬은 세계에서도 이름난 수산업의 중심항이었다. 그곳에 여자들이 끼인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일이었다. 방금 어장에서 돌아온 남편과 함께든가, 아니면 영원히 귀항하지 못한 남편을 기다리기에 지쳐 한 잔 술로 고독을 달래려는 여인들이었다. 그 사이에 마들렌 양도 끼어 있었다. 붉은 색 풍성한 머리카락과 늘씬한 몸매가 그녀의 미모를 한결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첫눈에도 결코 어부로 보이지 않는 사내와 함께였는데, 마침 우리 일행과 테이블을 접하고 있어서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마주치면 스스럼없어지는 게 바닷사람들의 속성이자 강점이 아니던가. 그곳에서 언어 소통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몸짓 손짓 하나로도 얼마든지 의사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먼저 ‘어이, 프렌드!’ 하면, 상대방 역시 술잔을 높이 들고 ‘어이! 아미고!’ 라고 답하는 것으로 금세 막역한 사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바다라는 한자 ‘海’에는 어머니를 뜻하는 어미 ‘母’ 자가 뜻글자로 들어가 있다. 프랑스 말도 마찬가지다. 철자 하나만 다를 뿐 바다도 어머니도 다같이 ‘라 메르’ 또는 ‘엘 마르’라 부르는 게 그것이다. 결국 바다에 사는 뱃사람들은 누구나 없이 자상하고 따뜻한 어머니의 자식들인 것이다. 두 남녀는 태평양 너머로부터 원양어장을 찾아 나선 우리 동양인들을 아주 반갑게 대해 주었다. 그랜드뱅크는 연중조업이 가능할 만큼 어자원이 풍부한데다가, 낯선 동양인이 잡아온 어획물이라도 그것을 가공하여 팔면 경제도 윤택해진다는 게 그들의 소박한 생각인 것이다. “유, 저패니스?” 그녀가 나에게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아니, 꼬레안입니다.” 내가 고쳐 주었다. “와우! 레드 데블!” 그녀가 환성을 질렀다. 붉은악마의 응원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던지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한국이라면 2002년 서울에서 개최된 월드컵을 쉽게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반갑다며 몇 번이나 잔을 부딪쳐 왔다. “앙리예요.” 그녀가 함께 앉은 사내를 소개해 주었다. 그것으로 나는 훤칠한 몸매의 그 사내가 세인트로렌스 수로에서 화물선을 운항하고 있는 오너라는 것과 두 사람은 남매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혼은 했나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그런 경험은 가져본 적이 없다고 답해 주었다. 수줍어하는 나를 보고 그녀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한국의 풍습에 이어 나의 신상에 관해서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이를 물어봐도 될까요?” 그녀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갔다. “스물여덟입니다.” “아이! 나보다 세 살 많네요.” 우리 둘의 대화를 앙리는 웃으면서 듣고 있었다. 뮤직박스에서는 끝없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락이 끝나자 다음에는 블루스 차례였다. 로제 바에서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었다. 문이 열리고 술꾼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 맨 먼저 블루스 곡이 흘러나오고, 새벽 두 시가 되면 다시금 블루스 곡을 트는 게 그것이었다. 첫 번째 곡은 영업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멘트이고, 마지막 곡은 곧 문을 닫겠다는 클로징 시그널인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블루스 곡이 흘러나오면 순식간에 홀은 의자를 밀쳐내는 소리로 왁자해진다. 그녀가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한 곡 추실까요?” 사양할 일이 아니었다. “댕큐!” 그녀의 손에 이끌리어 홀 중앙으로 나간 나는 서투르게 스텝을 밟았다. 흑인영가와는 다른 낮은 톤의 잔잔한 블루스 곡이었는데, 스텝을 밟는 동안 나는 자꾸만 가슴이 설레어 재어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 이유를 나는 알고 있었다. 다른 항구와는 달리 생피에르 섬 여인들이 마지막 블루스 곡에 맞추어 스텝을 밟으면 그 상대 남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의사의 표시이고, 그런 다음 자리로 돌아와 남자의 점퍼를 엉덩이에 깔고 앉으면 ‘당신은 내 것이야!’라는 완강한 자기표현이라는 말을 들어서였다. 나는 기대에 부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의 소망을 이해했다. 곡이 끝나고 테이블로 돌아오자마자 앞장선 그녀가 의자 등받이에 걸쳐 두고 있던 나의 점퍼를 잡아채어서는 자신의 엉덩이에다 깔고 앉은 것이었다. 여동생의 그 모습을 본 앙리가 깔깔 웃었다. “아이구나! 당신을 좋아하는 것 같소.” “아니, 뭐라고요?” “마들렌이 당신에게 반했단 말이요.” 그러더니 앙리가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치는 저쪽 여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들렌은 저런 여자들과는 다릅니다. 아직도 처녀니까요. 게다가 당신도 미혼이라면서요?” 그게 마들렌과 인연을 맺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결국 그 같은 생피에르 섬 여인들의 기이한 관습 덕분에 나는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 셈이었고, 앙리는 자신이 소유한 선박의 운항을 도맡아 줄 멋진 항해사를 찾아낸 것이었다. 셔틀 비행기가 천천히 계류장을 벗어나자 나도 마들렌과 찰리를 향해 가만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3 셔틀기가 뉴펀들랜드 섬의 상공을 날고 있을 때 기어코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눈이 아니라 비였다. 하강하는 동안에는 물방울에 틀림없는데, 어디건 달라붙는 대로 결빙하는 아이스 스노우였다. 예사롭지 않은 기상의 조짐을 본 나는 셔틀기에 오르기 전 잠깐 떠올렸던 아이스 스톰을 되살려내고는 조금 불안한 마음이 되었다. 아이스 스노우는 와이퍼의 쉼 없는 작동에도 불구하고 금세 시야를 가로막을 만큼 비행기 앞 유리창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슬그머니 조종사의 눈치를 살폈으나, 그는 전혀 개의하는 기색이 없었다. 나의 불안은 점점 커져갔다. 그러나 셔틀기가 뉴펀들랜드의 구릉을 넘어선 다음 시야가 확 트이면서 광활한 대서양 바다를 내려다보게 되자 거짓말처럼 아이스 스노우가 그쳐 있었다. 아마도 망망대해로부터 불어온 바닷바람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의 우려는 사라졌다. 내가 중앙부두에 도착하였을 때 폴라리스 호에서는 벌써부터 화물의 선적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조심해! 조심하라고! 세인트존스를 불바다로 만들지 않으려면 말이다!” 헬멧을 쓴 사내 하나가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갑판에서 나를 본 앙리가 손을 흔들었다. 앙리는 나를 재빨리 발견했다. 그만큼 그는 눈 빠지게 나를 기다렸던 것이다. “이 화물을 몬트리올까지 운송해 주기로 했다.” “몬트리올?” 의외의 목적항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선장을 맡고 있는 화물선 폴라리스 호는 지금 결빙 상태에 있는 세인트로렌스 수로를 뚫고 나가야 한다는 말이 된다. “거긴 지금……결빙 상태 아닌가?” 나는 농담이려니 했다. 하지만 앙리는 진지했다. “그래서 화주가 최신 아이스브리커 한 척을 수배해 놓았다네.” “아이스브리커?” 아이스브리커가 무엇인지는 나도 안다. 얼음이 덮인 비해(氷海)를 앞장서서 빙반을 깨트리며 뒤 따르는 배의 길을 터주는 쇄빙선(碎氷船)이다. “블루스타라고, 미국 국적선이래. 최근에 취역한 1만3천 톤급 아이스브리커로, 디젤엔진과 가스터빈을 동시에 가동하는 트리플 프로펠러 시스템이래. 선폭도 25미터를 넘는 대형선이어서 우리 배를 유도하기에는 그저 그만이라는 거야.” 블루스타 호라면 나도 들어본 적 있다. 앙리가 말을 계속했다. “하긴 우리나라(캐나다)에도 아이스브리커가 없는 건 아니지. 원자력으로 추진되는 3만7천 톤급 아크티카 호가 있지 않나? 하지만 지금은 여기 없어. 한 달 전 시추선의 길을 터주기 위해 북극해에 나가 있다더군.” 앙리는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미리부터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애를 쓴 게 틀림없었다. “저 화물은 뭔데?” 당연히 화물 종류가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화물이기에 이처럼 법석인가 해서였다. “다이너마이트래.” “뭐? 다이너마이트?” 앙리의 설명은 이러했다. 어젯밤 오타와 인근의 한 원유 채굴장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워낙 불길이 거세어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도대체 진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현장을 확인한 전문가들은 수년 전 텍사스 유전에서 한 것처럼, 일시에 다량의 화약을 폭파시켜 유정을 폐공(閉孔)시키는 것만이 불길을 잡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제언했다는 것이다. 그 다량의 화약이 마침 세인트존스 항 인근에 보관되고 있었고, 그 운송을 폴라리스 호가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카고나 디트로이트에도 확인하였는데 충분한 양이 되지 못한대. 왜 안전관리법에도 있지 않나? 화약 보관은 인구밀집지역에서 멀리 떨어지라고! 마침 이웃 래브라도에는 주석과 보크사이트 광산이 많지? 그래서 세인트로렌스 인근에는 광산에 다이너마이트를 대주는 대규모 창고가 즐비한 거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제반 사정은 이미 폴라리스 호의 출항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그러자 앙리가 마지막으로 다잡았다. “꼭 운송료가 탐나서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진압하지 못 하면 환경적으로도 큰 재앙이 될 것 아닌가?” 동의하면서도 나는 배를 몰고 가야 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임을 분명히 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꽁꽁 언 빙반을 깨트리며 몬트리올까지 가려면 며칠이나 걸릴 텐데?” 앙리 역시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것도 이미 고려한 다음이야. 어쨌거나 현재로는 이 방법이 유일하다는 거야! 물량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마땅한 항공기도 구하지 못 해서래.” 4 나는 출항 준비를 끝낸 1등항해사 빌리로부터 승조원 현황을 보고받았다. “갑판장만 빠졌습니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한 갑판장은 모처럼의 휴가를 활용하여 가족과 함께 유럽을 여행 중에 있다는 것이다. “저 친구가 있지 않나?” 브리지까지 올라온 오너가 한창 카고 윈치 조종에 여념 없는 한 선원을 가리켰다. “꼬레안 헤드세일러 말인가?” 김갑준이라는 한국인 선원이었다. “그래.” 오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출신 헤드세일러인 김갑준의 캐나다 귀화 역시 나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몇 년 전 트롤선의 갑판원이었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다른 배편으로 급히 후송되었는데, 맹장염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다음 며칠간 입원을 하고 있는 동안 어느 간호사와 눈이 맞았다. 그런 일이야 뱃사람에게는 너무도 흔한 일이어서 그가 기항하는 동안이면 두 연인은 수시로 만나곤 하였는데, 몇 차례 출어와 귀항을 반복하는 사이에 그녀가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되면서 그는 그만 꼼짝없이 발이 묶이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가정이란 원래부터 일정한 수입이 있어야 유지되는 것 아닌가. 그가 갑판원으로 폴라리스 호에 승선하게 된 것은 그 같은 사유에서였다. 선장인 나로서도 나쁠 게 없었다. 마침 갑판원 자리가 하나 비어 있어서 승선의 기회를 주었던 것인데, 워낙 근면하고 성실한 성품인지라 그로부터 몇 달 후 그는 갑판장 다음 직책인 헤드세일러로 승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출항 준비는 끝났다. 그렇다고 나의 마음이 여유로웠던 건 아니었다. 쇄빙항해라니! 나는 문득 인듀런스 호로 남극탐험에 나섰다가 부빙에 갇히면서 영하 40도의 혹한을 이겨내고 무사 귀환한 영국 탐험가 섀클턴을 떠올렸다. 그는 눈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세 개의 마스트가 차례로 부러지고, 사방에서 죄어오는 얼음덩이의 압박으로 늑골재와 선미재까지 파손되면서 탐험선의 기능을 상실한 인듀런스 호를 떠나 눈보라와 혹한의 극한 상황으로 내몰렸으나 2년 가까운 긴 조난 상황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의 희생자도 내지 않은 채 무사 귀환함으로써 아문센이나 스콧보다도 더 위인으로 추앙되고 있는 불세출의 탐험가였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사진에서 본, 털실로 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조끼 차림으로 승마용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깊이 찔러 넣은 섀클턴의 늠름한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렇다면 이번 항해가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는 징조는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쇄빙선 블루스타 호 역시 진작부터 출항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두꺼운 얼음장을 차례차례 깨트리며 항로를 터나가는 게 본업인 블루스타 호는 아이슬란드의 트롤선처럼 몽톡하면서도 육중한 느낌을 주는 특이한 선체를 가진데다가 외판을 온통 빨간 페인트로 칠하고 있어서 일반선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쇄빙항해가 처음인 나는 출항하기 전 잠시 캡틴 윌리스와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가졌다. 전임 선장이 노령으로 은퇴하자 그 직을 이어받았다는 나와 비슷한 연배의 전문가였다. “꼬레안이라고요? 오너로부터 들었습니다.” 첫눈에도 캡틴 윌리스는 서글서글했다. “이 미녀는 우리 배 1등항해사 미스 모니카입니다.” 캡틴 윌리스가 먼저 동행한 여자 항해사를 소개해 주었다. 윌리스 말처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늘씬한 몸매에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나의 의례적인 인사를 경쾌하게 받으면서도 그녀는 연신 가슴에다 껴안은 강아지의 목덜미를 가볍게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수북이 자라난 새까만 털이 두 눈을 거의 가리다시피 한 요크셔테리어 종이었다. 캡틴 윌리스가 쇄빙항해의 요령을 설명했다. “아이스브리킹은 처음이라지요? 하지만 크게 걱정할 건 없습니다. 이래 뵈도 나는 평생을 아이스브리커만 탔습니다. 이번에도 온타리오(호)를 다녀왔습니다. 갈 때는 래브라도 산(産) 철광석을 실은 화물선을 유도했고, 올 때는 곡물을 싣고 유럽으로 가는 벌크선을 안내했습니다.” 그는 아주 자신이 만만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의 장담처럼 이번 항해가 아무 탈 없이 순탄하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장담할 수 없었다. 나는 난생 처음 경험하게 될 쇄빙항해를 앞두고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기묘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캡틴 윌리스의 주문은 딱 한가지였다. “항해하는 동안 우리 배(블루스타 호)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부단한 교신이 필수적입니다. 피차의 상황을 충분히 파악해야 하니까요. 그 일을 위해 우리 배 토키맨 한 명이 귀선으로 건너갈 겁니다. 이건 반드시 필요한 조치입니다. 그래야만 어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봉착하더라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 거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는 요크셔테리어를 안은 1등항해사가 나섰다. “중요한 건 두 배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일입니다. 너무 멀리 뒤쳐져도 안 되고, 너무 접근해서도 곤란합니다. 우리는 얼음을 깨기 위해 수없이 래밍을 되풀이해야 하거든요. 조금만 지체해도 강물은 금방 얼어버리지 않던가요?” 나는 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녀가 말하는 동안 요크셔테리어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자, 그럼 출항하실까요?” 두 배의 출항은 아이스브리커의 토키맨인 한센 씨가 폴라리스 호로 건너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토키맨은 먼저 워키토키의 성능을 체크하는 것으로 그의 임무를 시작했다. “여기는 폴라리스 호, 폴라리스 호! 감도 아주 좋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꽤 카랑카랑했다. 5 방파제를 벗어난 순간부터 나는 곳곳에 떠 있는 크고 작은 부빙부터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두 북극해의 그린란드로부터 떠내려 온 얼음덩어리였다. 지구온난화가 어쩌고 하지만, 북대서양의 뉴펀들랜드 해역은 지금 무수한 빙산으로 뒤덮인 동계의 절정기였다. 도처에 즐비한 부빙은 꼭 길들지 않은 야생마였다. 길을 터나가고 있는 쇄빙선의 공격적인 항진으로 얼음덩이는 가차 없이 밀려났지만 그것도 잠시, 야생마는 곧 그 여백을 채우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 결과 부빙과 스치기도 여러 번이었다. 낮은 속력이어서 큰 충격은 아닐지라도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선수로부터 잇달아 부빙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면 잠시 후 얼음덩이는 어김없이 뱃전을 훑고 지나가면서 야릇한 마찰음을 내곤 하였다. - 이러다가 배가 견뎌 내기나 할까. 그게 나의 걱정이었다. 보나마나 외판 곳곳은 벌써부터 길게 칠이 벗겨져 있을 것이다. 토키맨은 한시도 쉬지 않고 유도선인 아이스브리커와 교신했다. 지시는 시시각각 달랐다. 폴라리스 호로 하여금 속력을 올리라거나 내리라는 등의 조선상 주문이 대부분이었고, 때로는 엔진을 정지하라는 다급한 지시가 전해 올 때도 있었다. 그러면 토키맨은 지체하지 않고 이쪽 당직자에게 기관정지를 명했다. 두 배는 그렇게 한순간의 방심도 허락할 수 없는 극도로 긴장된 항해를 이어나갔다. 곧 바다에 어스름이 깔렸다. 그러자 수백 미터 앞의 유도선 모습이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저기 지시등을 똑바로 맞추세요.” 토키맨이 아이스브리커의 선미 불빛을 가리켰다. 그 시각 쇄빙선 선미에는 고촉광의 불빛이 후방으로 길게 뻗어나 있었다. 밤 동안 쇄빙선은 한시도 쉬지 않고 강력한 서치라이트 불빛을 이리저리 휘둘러댔다. 전방의 빙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동안 배는 어쨌거나 조금씩 전진했다. 말 그대로 살얼음을 딛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 같은 기이한 운항은 뉴펀들랜드 남단의 레이스 곶을 꺾어 돌아 세인트로렌스 만으로 진입하기까지 꼬박 사흘 동안 계속됐다. 만 어귀에 생피에르 섬이 있었다. 마을 불빛이 반딧불처럼 명멸하고 있었다. 나는 행여 찰리를 안은 마들렌이 손을 흔들고 있지나 않을까 하고 두리번거렸으나 뒤덮인 산자락만 아련할 뿐이었다. 생피에르 섬을 지난 다음 날 만으로 들어서자 부빙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육지로 둘러싸인 지형의 특성상 와류가 형성된 결과일 것이다. 항진은 마냥 조심스러웠고,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 두 배가 뉴펀들랜드와 노바스코샤 섬 사이를 뚫고 만 안으로 비집고 들어섰을 때는 빈틈이라곤 없는 말 그대로 끝 간 데 없는 빙반의 은세계였다. 그리고 사흘 째 오후, 배는 이윽고 만 깊숙한 세인트로렌스 강 어귀에 이르렀다. 그곳은 지금까지 보던 상황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사방이 온통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것은 바닷물보다 결빙이 용이한 담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동안 그쳐 있던 아이스 스노우가 비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처음에는 그저 흩날리는 보슬비 같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송이가 굵어지더니 이제는 강낭콩보다도 더 굵어져 있었다. 때문에 수백 미터 앞의 유도선 지시등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식별하기 좋아라고 선체를 붉은 페인트로 칠하고 있는데도 쌍안경으로 겨우 가물거릴 정도였다. 토키맨 한센 씨가 없다면 따라잡는 일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거 아주 굉장합니다.” 기관장 브론슨이었다. 그는 모항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 꼬박 이틀 동안 엔진룸을 지켰다. 자칫 엔진이 말썽을 부리기라도 하면 무슨 사고로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잠시 커피나 한 잔 하라는 나의 말을 듣고 조타실에 나타난 기관장은 점점 굵어지는 얼음비를 한참이나 응시했다. 아무래도 아이스 스톰으로 발전할 게 틀림없어 보였다. 아이스 스노우는 선상 어디라고 없이 내리는 대로 사정없이 달라붙어 결빙했다. 갑판 허공을 가로지른 데릭 붐은 금세 한 뼘이나 되는 얼음으로 뒤덮였고, 그 아래로 고드름이 대롱대롱 매달린 채 시시각각 키를 늘이고 있었다. 그 옛날 그랜드뱅크에서 강설을 동반한 허리케인을 만나기도 여러 번이었지만, 지금과 같은 광경은 비로소 처음이었다. 기상대로부터 경보가 발령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지형의 국지적 현상으로 어쩌면 아이스 스톰으로 발전할지 모르니 방송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그 경보를 듣고 기관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이거 큰일이군요.” 몬트리올 출신인 그는 수년 전 그 지역을 강타한 아이스 스톰을 직접 경험하였다고 한다. “말도 마세요. 전신주가 모두 넘어지는 바람에 꼬박 일주일 동안 정전이 되었단 말입니다. 다친 사람은 부지기순데, 병원에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으니 어떤 꼴이었겠습니까? 그 바람에 얼어 죽은 사람만도 수백 명이 넘었으니까요.” 그러면서 브론슨 기관장은 아메리카 중서부 지역이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토네이도로 쑥대밭이 되고 있다면, 북극 지방과 인접한 캐나다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드는 자연재앙은 뭐니 뭐니 해도 아이스 스톰이라고 단언했다. 그런데도 앞장선 블루스타 호는 여전히 얼음을 깨트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설마 그렇게까지야…….” 그게 그 순간의 나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앞장선 블루스타 호 역시 쉽지 않은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두꺼운 빙반을 깨트리기 위해 배는 쉬지 않고 래밍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출항하기 전 1등항해사인 미스 모니카가 말한 전진과 후퇴의 반복이었다. 두꺼운 빙반은 쇄빙선이 무작정 앞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쉽게 분쇄되는 게 아니었다. 처음 빙반을 밀어붙일 때의 쇄빙선 자세는 마치 투우사가 펼쳐들고 있는 카포테를 향해 무작정 돌진하는 황소와도 같았다. 경기를 앞두고 소는 며칠 동안이나 캄캄한 우리 속에 가두어져 있었다. 그렇잖아도 사나운 놈인데 더욱 성깔이 고약해져 자극적인 빨간 카포테를 보는 순간 더욱 흉포해진다. 쇄빙선에 의해 밀려난 빙괴가 꼭 그 꼴이었다. 웬만한 빙반은 쇄빙선 선체가 세차게 밀어붙이는 돌파력만으로도 쉽게 분쇄된다. 그러나 두께가 3미터를 넘게 되면 쇄빙선도 힘에 부쳐한다. 부득이 쇄빙선은 뒤로 물러난 다음 재차 돌진하는 래밍을 되풀이한다. 그래도 빙반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부득이 모험적인 방법을 추가할 수밖에 없다. 곧 빙반에 올라탄 채 선내의 탱크 물을 모두 선수 쪽으로 이동시키는 방법이다. 그제야 빙반은 더 이상 버텨내지 못 하고 우지직, 몇 조각으로 분쇄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전진이 늦어지지만 그 손실은 감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같은 선체의 운용은 자칫 쇄빙선으로 하여금 평형감각을 잃게 하는 지극히도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중심을 잃고 전복한 예도 비일비재하였다는 게 토키맨 한센 씨의 말이었다. - 전속 전진! - 전속 후진! - 좌현 바라스트, 우현 쪽으로! 워키토키에서는 연신 흘러나오는 캡틴 윌리스의 지시를 한센 씨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복창했다. 그럴 때면 쇄빙선 선체는 반드시 좌우를 번갈아가며 기우뚱거렸다. 깨트려진 얼음덩이도 문제였다. 잠시만 머뭇거려도 얼음덩이는 곧 선체에 달라붙는다. 그것을 막기 위해 쇄빙선은 선수부에 추가로 설치한 스크루인 바우 스러스트를 돌려 바닷물을 선미 쪽으로 강제 배출시키면서 동시에 양현으로는 쉬지 않고 뜨거운 수증기를 뿜어낸다. 그게 에어버블링이다. 쇄빙작업이란 결국 선체의 온갖 기능을 총동원한 두꺼운 얼음판과의 한 판 돌격전이며, 그렇게 한 걸음 후퇴하고 두 걸음 전진하는 끝없는 싸움의 되풀이인 것이었다. 워키토키를 통해 때때로 강아지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출항 임박하여 만났을 때 미스 모니카가 안고 있던 요크셔테리어가 틀림없었다. 그러자 토키맨이 나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저놈이 미스 모니카 보디가드예요.” 쉰 살도 넘은 그는 손질하지 않은 턱수염 때문에 까칠까칠한 인상을 주고 있었는데, 의외에도 천진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보디가드라니요?” 나는 부쩍 흥미를 느꼈다. 남자들만의 세계인 선내에서 여자 항해사의 존재는 어쩌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별스러운 사건이 발생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앞선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한센 씨의 말은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럼요! 보디가드지요! 녀석이 얼마나 앙칼스러운지, 여우 사냥에 나선 폭스하운드는 저리가라예요. 한 번은 초사(1등항해사) 방으로 들어섰다가 아주 혼쭐이 났으니 말입니다. 무심코 문을 연 순간 녀석이 풀쩍 뛰어오르더니 순식간에 장딴지를 물고 늘어졌으니까요. 바로 그 개새끼가 말입니다. 말도 마세요, 얼마나 아팠다고요! 바지를 걷어 올리고 보니 겨우 손톱만큼 한 이빨 자국이 나 있을 뿐인데, 찔끔 눈물이 쏟아질 만큼이었으니까요. 그만하면 보디가드로는 그만이지요.” 한센 씨가 허허 웃었다. 그 뒤로도 강아지 낑낑거리는 소리는 자주자주 들렸다. 미스 모니카는 자신의 당직근무 동안에도 새까만 털북숭이 녀석을 품에 꼭 껴안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6 이윽고 강폭이 좁아지면서 이제는 남쪽으로 아련하게 솟아오른 산언덕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험준하기로 이름난 노트르담 산맥의 한 자락이 분명했다. 그러나 세인트로렌스 수로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그곳 지형은 물론 눈에 익어 있었다. 구불구불한 강 언덕도, 그리고 여인의 허리 같은 먼 산등성이도 예전에 보던 그대로였다. 결빙기가 아닌 때면 폴라리스 호가 일상적으로 지나다니던 통항로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야가 온통 새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지금은 생소하기가 그지없어서 마치 난생 처음 발을 내딛은 비경(秘境)과도 같았다. 날씨가 쾌청하다면 아마도 북쪽 멀리로 퀘벡 주의 아련한 마을 불빛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세인트존스를 출항하고 벌써 나흘째를 맞고 있었다. 따지고 보니 그 동안 배는 시간당 겨우 3마일 남짓 전진한 셈이었다. 그런데도 쇄빙선 캡틴은 절대로 속도가 느린 편이 아니라고 우기고 있었다. 나는 자꾸만 시선이 캘린더로 향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식의 속력이라면 목적지까지는 열흘도 더 걸리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걸릴지도 모른다. 배가 곤궁에 처하여 는적거리고 있는 동안 제발 지하 원유가 바닥나면서 자연스럽게 화재가 진화되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알랭에게서 온 전화는 아직도 채굴장은 맹렬한 화염으로 뒤덮여 있으며, 그저 속수무책인 채로 폴라리스 호가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 화물 운송을 책임진 나로서는 결코 마음이 편할 까닭이 없었다. 세인트로렌스 수로의 관문인 퀘벡 항을 50여 마일 앞둔 로카티에레 삼각주(三角洲) 부근에 이르자 배의 전진이 멈추었다. 빙반이 배 이상으로 두꺼워진 데다가 아이스 스노우가 더욱 기승을 부려서였다. 강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폭설은 시야를 차단하고 있었다. 갑판의 빙설은 무릎 높이 이상으로 차올라 있었으며, 양묘기를 포함한 선수부는 이제 그 전체가 거대한 얼음언덕을 만들고 있었다. 영하 30도 아래로 곤두박질친 한파로 하강하는 족족 아이스 스노우가 얼음으로 변하면서 아무 데나 달라붙은 결과였다. 강풍으로 옆 사람의 말도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 무렵 기상대로부터 세인트로렌스 일대에 아이스 스톰이 내습하고 있다는 뒤늦은 경보발령이 전해졌다. - 갓뎀! 워키토키를 통해 블루스타 호 캡틴 윌리스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기상대 녀석들이 뒷북을 치고 있다고 소리쳤다. - 아주 죽일 작정인 거야! 우린 벌써 이틀 전부터 아이스 스톰 속에 갇혀 있는데 말이야! 폴라리스 호의 레이더가 기능을 상실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갑자기 레이더가 먹통이 되었다는 1등항해사의 보고를 받았다. 나는 그만 간담이 써늘해졌다. 스코프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스코프에는 흐릿한 빛만 번져날 뿐, 아무런 타깃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톱 브리지로 올라간 헤드세일러가 레이더 안테나를 받치고 있던 지주(支柱)가 부러져 있다는 보고를 받고서였다. 손바닥만 한 넓이의 가름대 위에 쌓인 얼음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한 지지대가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빙글빙글 돌며 온갖 물표의 방향과 거리를 정확하게 알려주던 레이더가 그만 무용지물이 되고 만 것이었다. 나는 또 눈앞이 캄캄해졌다. 헤드세일러가 서둘러 선원들을 갑판으로 내몰았다. 삽이나 곡괭이 등 모든 도구를 동원하여 연신 내려와 쌓이는 얼음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곧 갑판 여기저기에서 얼음 깨트리는 소리가 빙원의 정적을 깨트리기 시작했다. 얼음덩어리는 웬 만큼의 망치질로도 잘 깨트려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머나 곡괭이를 마구 내려찍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얼음이 달라붙어 혹한에 노출된 강판은 사소한 충격에도 파열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손의 부족을 탓했다. 모두해서 열 명뿐인 인원으로는 선체를 뒤덮은 눈덩이를 모두 제거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1등항해사가 조타실 왼쪽 도어를 열려다 비명을 내질렀다. “캡틴, 이거 좀 보세요! 문짝이 통째 얼어붙어버렸습니다요!” 아이스 스톰은 브리지 도어까지도 꽁꽁 결빙시켜버렸던 것이다. 얼음장은 조타실 출입문만 밀폐시킨 게 아니었다. 브리지 앞 유리창도, 기관실 천장인 스카이라이트도 마찬가지였다. 쉬지 않고 유리창의 얼음을 제거하는 갑판원의 방한모에는 주렁주렁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고, 눈썹에도 허옇게 서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쌍안경으로 쇄빙선의 상황을 살폈다. 그 시각, 블루스타 호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둔해졌다. 이쪽과 사정이 다를 까닭이 조금도 없었다. 쇄빙선은 항로를 막고 있는 빙괴만 공격할 줄 알았지, 선상으로 쌓이는 얼음을 제거하는 방안까지는 마련하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쇄빙선은 빙반을 공격할 때의 충격을 고려하여 일반선보다 두꺼운 강판을 사용한다. 특히 흘수선을 따라 선체 외판을 빙 둘러치고 있는 아이스벨트는 빙괴와의 부단한 접촉을 고려하여 영하 50도 이상의 초저온도 견뎌낼 만큼 두 배나 되는 두꺼운 강판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니 당초부터 자체 중량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기동이 무뎌질 건 당연한 일이다. 곧 워키토키로 전해진 말은 쇄빙선 역시 전 선원을 동원한 가운데 제빙작업이 한창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우려는 점점 커져갔다. 아이스 스톰이 그치지 않는 한 어떤 최악의 상황에 봉착할지 모른다. 이제 두 배는 전진을 멈춘 채 빙괴에 갇힌 처지가 되고 말았다. 두 배는 사방에서 욱죄어오는 압박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꼼짝없이 거대한 빙산의 한 부분이 되고 말았다. 다시 섀클턴의 인듀런스 호가 떠올랐다. “30피트입니다.” 1등항해사 빌리의 보고였다.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출항할 때의 드라프트는 20피트를 조금 넘고 있었다. 드라프트란 선체의 과부하 여부를 판단하는 흘수선 깊이를 말한다. 공선일 때는 배가 뜰 테고, 만재일 때는 물속 깊이 가라앉는다. 배라는 것은 공간이 있다고 해서 무한정 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래브라도 산 철광석을 만재하는 경우와 루이지애나 산 목화를 싣는 것은 전적으로 다르다. 황천 속에서 철광석을 만재한 배의 사고가 빈번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배에나 과적을 방지하기 위한 로드마크를 현측에다 표시해 두고 있는데, 그게 곧 드라프트다. 그런데 지금 폴라리스 호는 위험 수치인 30피트 이상의 드라프트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처럼 선체를 물속으로 가라앉힌 것은 전적으로 내려와 쌓인 엄청난 양의 적설 때문임이 분명했다. 선체 곳곳에서 강판이 뒤틀리는 야릇한 마찰음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불과 수 미터 깊이의 추진기마저 얼음덩이에 파묻히고 말 것이다. “그 쪽은 어때요?” 나는 쇄빙선 캡틴에게 이쪽 배가 항진을 멈추었다고 말한 다음 그렇게 물었다. - 우리라고 별 수 있나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처음의 충만해 있던 자신감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둘 사이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선원들이 휘두르는 망치 소리가 지축을 쿵쿵 울리고 있었다. 선체 곳곳에 달라붙은 얼음덩이는 망치로 내려치지 않으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겨우 한쪽을 제거하면 새로운 얼음눈이 곧 그 자리를 메우는 식이었다. 아이스 스톰은 여전히 기승을 부려대고 있었다. 7 재앙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재앙을 물고 온다던가. 정오 무렵, 끔찍한 사고 하나가 발생했다. 승조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갑판원 허드슨 군이 얼음에 미끄러지면서 몸의 중심을 잃고 뱃전 너머로 추락한 사고였다. “사람이 떨어졌다! 허드슨 군이다!” 비명 소리를 듣고 나는 상갑판으로 뛰어나갔다. 선원들이 주갑판 우현 쪽에 우르르 몰려 있었다. “사다리! 사다리를 갖고 와!” 헤드세일러가 소리쳤다. 두 선원이 로프 사다리를 타고 빙반으로 내려갔다. 허드슨 군은 빙반 위에 새우처럼 허리를 구부린 채 죽은 듯이 엎디어 있었다. 빙반까지는 세 길도 넘는 높이였다. 그 높이에서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음판으로 떨어졌으니 온전할 까닭이 없다. “조심해! 함부로 다루면 안 돼!” 갑판장이 두 선원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곧 카고 네트가 내려졌고, 허드슨 군은 화물처럼 인양되어 살롱으로 옮겨졌다. 두터운 방한복을 벗겨내고 보니 오른팔 전완골이 흐느적거렸다. 틀림없는 골절이었다. 빙반 위로 떨어지는 순간 팔을 먼저 짚은 탓이었다. 의사가 없는 배에서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었다. 골절 부위에 부목을 대고, 진통제 주사를 놓는 게 고작이었다. 허드슨 군은 계속 고통을 호소했다. 나는 곧 퀘벡 항의 코스트가드를 호출했다. “여기는 폴라리스 호, 위급한 환자가 있으니 곧 구조기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기대와 판이했다. 예기치 않은 아이스 스톰의 강습으로 진작부터 모든 비행이 금지된 상태에 있다는 것이었고, 얼마만큼 기상이 호전되어야 출동이 가능하겠다는 응답이었다. 아이스 스톰은 이미 캐나다 북서부 일대를 강타하면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교신하는 동안 리시버로 바람소리가 파고들 만큼 강풍이 기세를 떨치고 있었다. - 지금으로선 예측하기가 곤란하네요. 언제쯤 출동이 가능하겠느냐는 나의 물음에 코스트가드가 내놓은 대답이었다. 어리석은 질문이었고, 너무도 뻔한 답변이었다. 나는 구조기가 뜨지 못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다. 그렇군. 아이스 스톰이야. 나는 자연의 냉엄한 위력을 새삼 실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제발 부탁입니다. 환자가 너무 위독해서입니다.” 나는 이쪽의 상황을 재차 강조하였고, 퀘벡 코스트가드는 마지막으로 기상이 호전되는 즉시 우선적으로 구조기를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선원들의 표정도 조금씩 달라졌다. 시야 속으로 산자락을 빤히 바라다보고 있는 문명세계의 한복판에서 꼼짝없이 조난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난감함이었다. 곤궁에 처하기는 쇄빙선도 마찬가지였다. 금방이라도 전복할 듯이 중심을 잃고 좌현으로 10도나 기운 채 복원하지 않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전복을 막기 위해 온갖 장비를 갖추고 있는 쇄빙선이 맥없이 기울고 있다면 그건 결코 예삿일일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워키토키를 통해 캡틴 윌리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계속 전해졌다. 무슨 까닭으로 선체가 복원하지 않느냐는 닦달이었다. 곧 미스 모니카의 대답이 들려왔다. - 좌현 스케그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스케그가? 캡틴 윌리스의 반문이 이어졌다. 그가 스케그를 모를 까닭이 없다. 미끄러운 빙판 위에서도 얼마든지 중심을 잡아내는 물개의 두 앞발처럼 어떤 경우에도 선체의 평형을 유지하게끔 용골 앞쪽에 부착한 양 날개 같은 장치를 말한다. 목소리로 미루어 캡틴 윌리스는 결코 동의하고 싶지 않은 게 분명했다. 이렇게 되면 이제는 마음 놓고 빙반으로 돌진할 수도 없다. 빙반을 올라타는 순간 중심을 잃고 그대로 전복하고 만다.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망연한 마음이 되었다. 그렇다고 팔짱을 끼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두 배는 어차피 같은 항로를 뚫고 나가야 할 파트너인 것이다. 나는 캡틴 윌리스를 호출했다. 필경 넋을 놓고 있을 그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 미안합니다.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캡틴 윌리스의 풀 죽은 목소리가 먼저 들려나왔다. “용기를 내세요. 악화된 기상 탓이니까요. 대자연의 위력 앞에 우리는 나약해질 수밖에 없지요.” 그러자 캡틴 윌리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 모든 게 다 이놈의 아이스 스톰 때문이란 말입니다! “그건 그래요.” 나는 캡틴 윌리스를 위로한 다음 블루스타 호의 상황을 물었다. - 스케그에 문제가 있는 모양입니다만, 곧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캡틴 윌리스의 말처럼 그로부터 얼마 후 블루스타 호가 크게 요동을 치는 것 같더니 천천히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나는 그 동안 쇄빙선에서 일어난 일을 얼마만큼 추측할 수 있었다. 그것은 쇄빙작업의 중추적 보조도구인 스케그가 블루스타 호 항해 책임자들의 판단과는 달리 파손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아이스 스톰이 그쳐야 무슨 일이든 궁리가 나올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우선은 선상에 쌓인 얼음덩이를 제거하는 일밖에 없었다. 해머와 곡괭이 휘두르는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쿵쿵, 선체가 통째로 울리면서 얼음 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날았다. 수북이 쌓인 얼음 조각을 쉬지 않고 뱃전 너머로 내던지지만 잠깐 동안 쏟아진 얼음눈이 그 자리를 다시 채운다. 참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이었다. 뱃전 가장자리로 길게 내뻗은 동키 파이프도 완전히 얼음 속에 파묻혀 있었다. 망치질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혹한에 노출된 파이프는 조금의 충격에도 손상을 입고 만다. 나는 잠시 망연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하늘이었다. - 잘 다녀오세요. 어디선가 마들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 찰리, 아빠야! 아빠라고! 역시 마들렌의 목소리였다. 그래,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잠시 닻을 놓고 있을 뿐이거든. 닻을 끌어올리는 대로 우리는 다시 항해를 계속할 거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시야는 여전히 하강하는 빙설로 가로막혀 있었다.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한겨울 북반구의 낮은 짧다. 백야는 없고, 스무 시간 가까이 밤만 계속된다. 어둠은 또 하나의 장애물이었다. 어둠의 먹물만큼 공포감이 엄습하고 있었다. 대륙의 산자락을 빤히 바라다보는 곳에서 나는 고립무원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설마 죽기까지 하랴. 섀클턴은 구조되기까지 2년 가까이를 혹한 속에서 헤맸다지 않던가. 설령 고립무원의 상태라 할지라도 두 달만 견뎌내면 해빙기가 온다. 날씨가 풀리면서 얼음은 녹아내릴 것이고, 그러면 빙괴의 지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엄습하는 공포감을 털어내려고 나는 안간힘을 썼다. 트롤선을 타고 있을 때 허리케인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아네로이드 바늘은 920헥토파스칼을 가리키고 있었고, 초속 40미터를 넘는 강풍이 쉬지 않고 선체를 강타하고 있었다. 폭우로 갑판이 물바다가 된 가운데, 밤새도록 곤두선 파도 더미와 맞서 싸웠다. 한 차례 파도를 맞으면 배는 크게 경사한 채로 맥없이 떠밀렸다. 그 같은 횡파를 거푸 두 번만 뒤집어쓰면 배는 그대로 나자빠지고 만다. 그럴 때 살아남는 최선의 방법은 가로파도를 받지 않도록 키를 돌리는 것뿐이다. 부단히 추진력을 증감시키면서 파도와 마주서기 위한 전타를 쉼 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그럴 때의 배는 한 조각 나뭇잎이다. 사투는 꼬박 이틀 동안이나 계속됐었다. 겨우 바람이 숨을 죽인 다음 무심코 뱃전을 내려다본 나는 깜짝 놀랐다. 양현 외판 모두가 움푹움푹 패여 들어가 있었고, 앙상하게 늑골재가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파도의 끊임없는 후려치기 결과였다. 그렇다면 결빙 속의 선체는 어떻게 될까. 섀클턴의 인듀런스 호처럼 늑골재와 선미재가 동시에 파손되면서 한순간에 본래의 형체를 잃어버리고 말 것 아닌가. 아이스 스톰은 도무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8 다음 날 아침, 마들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 아무 일 없는 거지요? 마들렌은 떨고 있었다. “그래,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잠시 닻을 놓고 있을 뿐이야.” 나는 어제 아내의 얼굴을 그려보며 혼자 중얼거렸던 말을 그대로 재생했다. 굳이 아내에게까지 지금 처한 최악의 상황을 전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마들렌은 좀체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 했다. -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이틀 너머 계속되고 있는 아이스 스톰 때문에 마을 역시 눈 속에 파묻힌 채 완전 고립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눈은 처마 높이까지 쌓여 겨우겨우 현관 앞 쪽 길을 튼다고 해도 몇 발작 앞의 경사진 비탈길 도로에는 밑동 채 꺾여나간 거목들이 수십 그루나 널브러져 있어 심지어는 동네 마트로 나가는 일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 꼭 투모로우 영화 같아요. 마들렌의 말이었다. 나도 물론 그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는 수년 전 몬트리올을 강타한 아이스 스톰의 악몽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 마들렌은 어쩌면 곧 전기가 끊길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건너 마을에서는 이미 전기가 끊겨 자가 발전기로 겨우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제발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마들렌은 오히려 이쪽을 걱정했다. - 아빠! 그 때 나는 난생 처음으로 생소한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전혀 귀에 익지 않은 목소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재차 똑같은 소리가 들렸다. - 아빠! 찰리였다. 일곱 달이 된 찰리가 난생 처음으로 말문을 연 것이었다. 셔틀 비행기를 탈 때까지도 찰리는 말을 하지 못 했다. 그런데 집을 떠난 며칠 사이에 말문을 텄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웅얼거린 말이 아빠였다. - 찰리가 말을 하기 시작했네요! 놀랐지요? 나도 놀랐어요. 그런데 찰리는 당신을 먼저 찾는군요. 마들렌의 미소 짓는 얼굴이 떠올랐다. “찰리는 틀림없이 엄마를 더 좋아할 텐데.” - 아니에요. 당신이 출항한 다음 내내 아빠만 찾던 걸요. 휴가 동안 당신 얼굴을 익혀둔 게 틀림없어요. 마들렌의 그 말에 나는 위안을 얻었다. 결혼하고 3년이 지나도 임신의 기미가 나타나지 않았다. 마들렌은 예쁜 딸을 갖기를 원했다. - 당신 닮은 딸을 갖고 싶어요. 그게 마들렌의 소망이었다. 그런데 그 소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걱정은 마들렌 쪽이 더했다. 2년을 넘어서자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몇 차례 병원을 들락거리는 동안 나도 두 번이나 동행했다. - 두 분 다 정상입니다. 닥터가 웃으며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마들렌에게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런데 그 해 결빙휴가를 보내는 동안 반가운 소식을 날아들었다. - 사내아기래요. 마들렌이 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래, 당신은 나의 아내이고, 우리는 부부야. 그러니 아기를 갖는 건 너무도 당연하지.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찰리였다. - 앙리도 걱정을 많이 하고 있어요. 마들렌이 화제를 돌렸다. 물론 앙리와도 몇 차례나 통화했다. - 도대체 기상대 놈들이라니! 통화를 할 때마다 앙리는 그렇게 소리쳤다. - 진작 예보를 해 주었다면 이런 일은 없을 거 아닌가! 그게 앙리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배는 이미 항해에 돌입해 있었고, 그리고 지금은 아이스 스톰의 한복판으로 내몰린 상황이었다. - 기상대 녀석들이 그러는 거야. 이게 모두 기상이변 때문이라고! 그게 말이나 돼? 앙리의 불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 도대체 지구온난화란 게 뭐야! 하기는 지구온난화라는 말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 지도 오래 되었다. 글쎄, 지구는 더워진다는데 아이스 스톰이라니! 쉽게 납득할 수 없는 해괴한 논리였다. 앙리가 그걸 모를 까닭이 없다.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나 유기물의 부패로 발생한 메탄가스가 태양열을 차단하면서 결국 지구의 기온을 빙점 이하로 떨어트린다는 게 잘난 과학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증거의 하나가 바로 지금의 아이스 스톰인 것이다. - 암튼 조심하게나. 마들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앙리의 그 말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9 “스노모빌을 보내겠다는데요.” 1등항해사 빌리의 보고였다. 폭설로 헬기 출동이 불가능하자 퀘벡 코스트가드가 내놓은 궁여지책이었다. “빌어먹을! 차라리 개썰매를 보내라지! 그걸로 어떻게 환자를 후송하겠다는 거야!” 나는 불안하고 조급스럽기만 한 마음을 도무지 진정시킬 수 없었다. 전 같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다행히도 새벽녘에 아이스 스톰이 조금 기세를 꺾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동이 트면서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엄청난 얼음눈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노아의 홍수가 이러하였을까. 얼마나 많은 비가 쏟아졌던지, 물이 빠지는 데만 꼬박 1백50일이나 걸렸다는 것이다. 필경은 폭우였고, 그리하여 방주를 제외한 땅 위의 움직이는 모든 생물은 꼼짝없이 익사하고 말았다. 도대체 하루 이틀도 아니고, 40주야를 폭우가 퍼부어댔으니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까지 물이 차오를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 엄청난 바닷물이 지금 아이스 스톰으로 되살아났단 말인가. 북극여우를 본 것은 그 때였다. “라고푸스다!” 북위 80도 가까운 그린란드 최북단 마을의 에스키모 출신인 붉은 수염 에리크가 소리쳤다. 예순 살의 에스키모 출신은 원래 포경선의 작살꾼이었다. 그런데 작살을 던질 기회가 없어졌다. 상업 목적의 고래잡이가 금지된 때문이었다. 부득이 새 일자리를 찾아나설 수밖에 없었는데, 그곳이 세인트로렌스 수로를 왕래하는 폴라리스 호였다. “뭘 갖고 그러는 거야?” 선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붉은 수염 에리크를 따라갔다. 행여 광활한 빙원 어느 한 곳에 숨구멍 같은 것이라도 뚫려 있어서 그곳으로 일각고래의 뿔이라도 솟아올랐나 하였다. 하지만 눈발 희끗희끗한 빙원 어디에서도 시선을 사로잡을 무엇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무렵 아이스 스톰이 그치면서 북쪽 하늘로 오로라가 피어올랐다. 마치 새벽녘을 틈타 승천하는 여인의 금발 머리칼처럼 핑크색 스펙트럼을 허공 높이로 발산하고 있는 그것은 고대 신화에서의 여명의 여신 그대로였다. 배를 파묻다시피 극성을 부려댄 아이스 스톰은 그렇다면 오로라 탄생의 예고였던가. “저걸 보고 그러는 거야?” 한 선원의 물음에 에리크는 그러나 완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아니다! 오로라가 아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저놈 한 마리면 위스키 두 박스는 얻을 수 있다!” 에리크는 흥분하고 있었다. 좀체 않던 짓이었다. “위스키?” 한 선원의 귀가 번쩍 뜨였다. “맞다, 위스키다! 위스키, 좋은 술이다!” 붉은 수염 에리크는 당장이라도 달려갈 태세였다. 결코 실성한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하기는 에스키모 인들의 위스키에 대한 선호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베리아 툰드라 지대의 타타르 인들이 밤낮 없이 보드카 병을 옆구리에 끼고 있다면, 에스키모는 위스키라면 마누라도 저만치로 밀쳐낸다. 도대체 끝없이 펼쳐진 빙원을 응시하며 붉은 수염 에리크가 흥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여우 아냐?” 쌍안경으로 희끄무레한 빙원을 훑어보고 난 1등항해사 빌리가 알아맞히었다. 북극여우 한 마리가 빙괴 더미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이쪽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맞다! 여우다! 북극여우, 라고푸스다!” 붉은 수염 에리크는 손뼉까지 쳤다. “여름에는 잿빛 갈색이지만, 한겨울에는 지금처럼 청회색을 띤다. 털 색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저놈을 라고푸스라 부른다. 비싸다! 아주 비싸다!” 에리크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사방이 어두컴컴한데다가 에리크 말처럼 푸르스럼한 겨울털로 치장한 놈을 분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고래잡이배 작살꾼 출신은 아주 용케도 육안으로 최고급 목도리 재료를 찾아냈던 것이다. “아이스 스톰, 곧 그친다! 틀림없다!” 라고푸스를 본 에리크의 장담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라고푸스야말로 극지방의 혹한 속에서도 얼마든지 생존해낼 만큼 내한력이 월등한 ‘개’라는 것이었다. 워낙 영리하여 좀체 덫에도 걸려들지도 않을 뿐 아니라, 폭설이 내리거나 혹한이 내습할 기미라도 엿보이면 동굴 안에 틀어박힌 채 언제까지라도 버텨낼 만큼 지독한 인내심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폭설이 그치면 가장 손쉽게 먹이를 얻는 방법으로 마리띠무스(북극곰) 꽁무니를 살랑살랑 뒤쫓으며 먹다 남긴 물범이나 수염고래 살코기를 가로챈다는 것이다. 바로 그 라고푸스가 나타났으니 이제 폭설이 그치면서 기상이 회복될 게 틀림없다는 게 붉은 수염 에리크의 장담인 것이었다. 그 사이 날은 더욱 어두워졌고, 푸른여우도 어디로인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10 자정 무렵, 드디어 한쪽 하늘이 트이면서 한두 개씩 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붉은 수염 에리크의 예언 그대로였다. 꼬박 사흘 동안 기승을 부려댄 아이스 스톰이 그친 것이었다. 별은 나타났다가는 곧 사라졌다. 모처럼 얼굴을 내밀려니 수줍어서일 것이다. 아니면 구름 틈이 너무 작아서인가. 게다가 구름조차 발길이 바빴다. 별은 항해가들의 길동무다. 그것은 고대로부터 이어진 전통이자 유산이다. 나는 북극성부터 찾았다. 그것은 습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가장 찾아내기 쉬워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극성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북두칠성 일곱 별자리 가운데 하나인 ‘두베’가 구름 속의 북극성 존재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반가웠다. 모처럼 보는 별이어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발이 묶인 두 배의 상황이 호전된 것은 아니었다. 쇄빙선 블루스타 호는 다시 좌현으로 10도나 기울어진 채 조선불가 상태가 되어 있었다. 좌현 스케그의 파손이 틀림없었다. 그 결과로 쇄빙작업이 중단된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일이었다. 워키토키를 통해 캡틴 윌리스의 당황해 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소란은 반시간 가까이나 이어졌다. 저쪽 블루스타 호로서도 선체를 파묻다시피 한 얼음덩이를 제거하는 일이 급선무로 되어 있을 것이다. 선체 어디라고 없이 얼음덩이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 같은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기동력을 자랑하는 아이스브리커라도 기능을 잃을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가 블루스타 호는 기어코 최악의 상황과 맞닥뜨리고 만 모양이었다. - 키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1등항해사 모니카였다. - 이걸 보세요! 까딱도 하지 않아요! 그러나 곧 이어진 미스 모니카의 비명은 나를 절망 속으로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 아이스호른이 떨어져 나갔군요! 그 하나만으로 나는 쇄빙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배의 후진은 스크루를 역으로 회전시켜 꽁무니 쪽 바닷물을 빨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진다. 그 흡입류에 분쇄된 빙괴 조각이 함께 빨려들면서 스크루와 타에 손상을 입히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새가 빨려들면서 비행기 엔진이 파손되는 것과 이치다. 그걸 예방하기 위해 타 위 쪽에 나팔 모양의 덮개를 씌워두는데, 그게 곧 아팔 모양의 아이스호른이다. 결국 블루스타 호는 수없는 래밍의 반복 끝에 쇄빙선의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 가운데 하나인 아이스호른을 요절내고 만 것이었다. 그건 이제 전진도 후진도 불가능한 쇄빙선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였다는 절망적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패기 넘치고 자신만만한 캡틴 윌리스의 무리한 지휘가 그 같은 참담한 결과를 불러온 것이었다. - 엔진 스톱! 캡틴 윌리스의 외침이었다. 그 후로 쇄빙선은 다시 일어서지 못 했다. 좌현으로 10도가량 기울어진 그대로였다. 방금 손상을 입었다는 왼쪽 스케그와 아이스호른이 파손된 결과임이 분명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빙괴에 꼼짝없이 갇힌 처지에서 앞으로 닥쳐올 갖가지 최악의 사태가 눈앞에서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1등항해사 빌리에게 드라프트를 체크하라고 지시했다. “35피트입니다.” 빌리가 보고해왔다. 그 보고는 나를 더욱 절망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절망감은 폴라리스 호의 적하기준표(積荷基準表)를 검토한 다음 더욱 증대되었다. 방금 빌리가 보고한 그 수치는 1만 톤급 화물선인 폴라리스 호의 안전항해를 위해 반드시 확보하여야 할 적재량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었다. 결국 만 사흘 동안 퍼부어댄 얼음눈의 부하가 폴라리스 호의 예비부력을 완전히 잠식해버렸다는 결론인 것이었다. 드라프트가 가리키는 대로 선체는 이제 거의 눈 속에 파묻히다시피 하고 있었다. 얼음눈은 배에다만 야료를 부려댄 것이 아니라, 결빙한 세인트로렌스 강에도 마찬가지였다. 갑판이 높아진 만큼 수로의 빙반 높이도 함께 부풀어 올라 있었다. 멀리서 비행음이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나 지나서였다. 비행음은 선원들의 기운을 북돋우기에 충분했다. 지금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곳이 지구의 한 변경일 뿐이라는 일종의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구조기인가 했다. 선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어디서도 기체는 발견할 수 없었다. 비행음은 1만 피트도 더 높은 적란운 속에서 들려왔던 것이다. 구름 속의 비행 물체를 발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으로 비행 물체는 구조기가 아님이 확실해졌다. 틀림없이 북극노선을 채택하고 있는 어느 평화로운 여객기일 것이다. 비행음은 가까워지는 대신 점점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것은 여운과 함께 남쪽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세상은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다. 앙리가 다시 전화를 해왔다. - 이제 화재 현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목소리에 맥이 빠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앙리의 다음 말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 말도 말아. 그 동안 세상이 얼마나 시끄러웠나? 텔레비전이고 신문이고 없이 마치 지구 종말이라도 온 것처럼 야단법석이었다. 특히 지리적으로 인접한 보스턴타임스는 편서풍을 탄 매연이 오대호를 뒤덮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어댔고! 그게 모두 폴라리스 호 탓이라는 식이었으니 미칠 수밖에는! 결국 아메리카가 나섰는데, 플로리다 주 특수전부대인 포트 베닝 기지의 비상 화약을 대체 투입하기로 했다는 거야. 운반은 대형 군수송기가 맡기로 하고. “그럼 오타와 쪽은 아이스 스톰이 없었다는 거야?” - 그래서 하는 말이네. 세상은 참 요지경 속이라고. “…….” 나는 그만 입을 닫고 말았다. 지금 결빙된 세인트로렌스 강 인근은 난데없는 아이스 스톰으로 진저리를 치고 있는데, 이곳에서 겨우 500마일 남짓한 거리의 오타와 지역은 자연재앙과는 딴 세상이라는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 아메리카 군수송기가 나섰다고 해서 그걸 반갑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세인트존스를 출항한 이래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화재 현장의 처참한 모습을 떠올렸다. 원유 채굴장은 말할 것도 없고, 몰려나온 마을 주민들이 매연으로 고통 받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자신이 실화범(失火犯)이라도 된 양 안절부절 하지 못 했다. 세상사는 모두 결과로 말해진다. 그 책임을 꼭 자연재앙인 아이스 스톰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혹은 몇 가지 오판과 착오를 거듭한 쇄빙선 캡틴 윌리스에게로만 전가시킬 수 있을까. - 이제는 딱 한 가지다. 한시라도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것 말이다. 앙리의 그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 날이 밝는 대로 세인트존스 코스트가드도 구조기를 띄우겠대. 가능하다면 그 편으로 나도 그곳에 갈 생각이네. 앙리는 할 말이 많았다. - 허드슨 군뿐이지? 다른 일은 없는 거지? 제발 이제 더 이상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네. 통화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멍해 있었다. 11 - 폴라리스 호! 폴라리스 호! 감, 잡힙니까? 통신기가 웅웅 울었다. 날이 밝자마자 곧장 기지를 이륙한 구조기로부터 온 반가운 호출이었다. 남쪽 하늘이 희부옇게 트여올 때였다. “네, 여기는 CFFY, 세인트존스의 MS 폴라리스 호입니다.” 나는 이쪽 콜사인부터 밝혔다. - 여기는 퀘벡 코스트가드입니다. 캡틴과 교신하고 싶습니다. “네, 내가 캡틴 박입니다.” - 고생 많으시지요? 우리는 방금 기지를 이륙했습니다.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이자 체취였다. 그 하나만으로도 절망감이 떨쳐졌다. 나는 도착 예정 시각을 물었다. - 곧 도착할 겁니다. 환자는 한 사람 뿐이지요?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선박이 처한 상황을 물었다. 나는 이쪽의 상황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 아무래도 우리 소관은 아닌 것 같군요. 우리는 겨우 인명구조만 가능할 뿐입니다. 구조대원의 그 말이 틀리는 게 아니었다. 나는 환자 후송 하나만으로도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잠시 후 구조기가 남서쪽 방향에서 나타났다. 헤드세일러가 먼저 구조기를 발견했다. 폴라리스 호 상공에 도달한 구조기는 착륙할 마땅한 장소를 찾아내기 위해 몇 차례나 선회했다. 하지만 갑판 어디에도 내려앉을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얼어붙은 빙반 역시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로프를 내리겠소! 결국 호버링 상태에서 환자를 달아 올리겠다는 구조기의 최종판단이 전해졌다. “꼭 폴라리스 호로 다시 돌아와야 해.” 들것으로 옮겨지기 전 허드슨 군에게 내가 위로해 줄 말이라고는 그뿐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허드슨 군의 눈이 촉촉해 있었다. 가능하다면 그는 퀘벡 쪽보다는 고향인 세인트존스로 갔으면 하였다. 그래야 어머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미혼인 그에게 가족은 오직 홀어머니 하나뿐이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오래 전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쪽은 너무 멀어.” 나는 물론 허드슨 군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었다. “금방 완쾌될 거야.” 나는 허드슨 군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허드슨 군은 그렇게 배를 떠나갔다. 다시 앙리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퀘벡 코스트가드 소속 헬기가 출동했다는 말을 듣고 세인트존스 코스트가드는 출동 계획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처음부터 출동 자체가 무리라는 의견이 분분했다는 것이다. 세인트존스에서 로카티에레 삼각주까지는 1천 마일도 더 되는 먼 거리이기 때문이었다. 구조기 비행음이 잦아질 무렵 갑자기 통신기가 시끄러워졌다. 목소리는 아이스브리커 캡틴 윌리스의 것이었다. - 퀘벡! 퀘벡! 퀘벡 코스트가드! 곧 구조기에서 응답이 왔다. 그러자 캡틴 윌리스의 하소연이 장황하게 이어졌다. - 여기는 아이스브리커 블루스타 호입니다. 한 가지 긴급한 요청을 하려고 합니다. 구조대원이 무슨 요청이냐고 묻자 캡틴 윌리스는 ‘귀환하는 대로 아크티카 호에 전해 달라’고 말했다. - 부탁합니다. 아크티카 호가 꼭 와야 합니다. 우리는 그 배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긴급 상황입니다. 아크티카 호라면 지금 시추선의 길을 터주기 위해 베링 해로 나간 또 다른 아이스브리커가 아닌가. - 본선 좌현 쪽 스케그와 아이스호른이 모두 파손됐습니다. 때문에 지금 항해불능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이대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조난에 처했다고 해도 좋습니다. 상황이 그러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아크티카 호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 라저. 구조대원으로부터 그렇게 몇 차례나 알았다는 답변을 받고나서야 캡틴 윌리스는 겨우 통신기를 껐다. 나는 캡틴 윌리스의 심경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가 말한 조난 처지도 틀리는 게 아니었다. 선박이 자력(自力)으로 기동할 수 없는 처지라면 그게 곧 조난이 아닌가. 그래서 점점 절망적인 기분에 빠져든 것인지도 모른다. 도대체 여기서 베링 해가 어디냐는 것이었다. 당장 아크티카 호가 뱃머리를 돌린다고 하더라도 그 날짜가 얼마나 소요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두 배가 항진을 멈춘 지 나흘째가 되고 있었다. 그 동안 아이스브리커의 몸부림은 가히 필사적이었다. 달라붙은 얼음덩이를 털어내기 위해 에어버블링을 수차례나 시도하였으나 아무런 효과도 얻어내지 못 했다. 그럴 때마다 뱃전 주위로 수증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캡틴 윌리스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만 모양이었다. 오래 전 노르웨이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오슬로 교외의 한 박물관에 영구 정박한 난센의 프람 호를 떠올렸다. 프람 호는 선체를 우뚝 세운 채 지금이라도 당장 항해에 나설 것처럼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문센이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발을 디딘 모험가라면, 난센은 10수년도 더 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설계하고 건조한 떡갈나무의 프람 호를 타고 북위 87도 선에 도달함으로써 지금까지 허다한 탐험가들을 좌절시켰던 북극권 정복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북극해는 남극과 달리 연중 내내 만년빙으로 뒤덮여 있어서 선박에 의한 도전은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죽음의 개썰매라는 아이디타로드 식으로 하루 종일 달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개썰매의 최고 종이라는 알래스카의 말라유트나 시베리안 허스키도 며칠만 달려도 얼음 조각에 발바닥이 찢겨져 피투성이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개는 주저앉는 법 없이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끝없이 광활한 빙원을 달린다. 그렇게 죽어나간 개가 얼마라던가. 허다한 탐험가들의 북극탐험이 실패로 끝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 사정을 안 난센은 한 가지 기발한 착상을 떠올렸다. 북극해의 거대한 얼음은 한 자리에 못 박혀 있지 않고 해류를 따라 부단히 압류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해안에서 발원하여 북극을 향해 도도히 흘러가는 지류의 하나를 이용하기로 작정했다. 그는 탐험선을 아예 북극으로 떠밀려가는 빙반 위에다 걸치기로 작정하고, 거기에 적합하게 떡갈나무로 배를 만들었다. 마치 상륙정처럼, 배가 쉽게 얼음을 걸탈 수 있도록 밑바닥을 넓고 납작하게 설계한 희대의 착상이었다. 그 예측은 정확했다. 모항인 크리스티안샌드 항을 떠나 말 그대로 유빙항해를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프람 호는 북위 80도 선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였고, 동료인 요한센과 함께 나머지를 개썰매에 의지하여 20일 만에 북위 87도 선에 도달함으로써 당시로서는 인간이 이룩한 북극의 최고점을 정복했던 것이다. 떡갈나무와 강철-. 내가 망연하게 프람 호를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떡갈나무로 만든 프람 호는 건조되고 1백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원형 그대로를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게 떡갈나무라는 재질 덕분인가. 그렇다면 쇠로 만들어진 배는 어떨까. 하지만 자꾸만 고개가 내저어졌다. 해안 바위 틈서리에 좌초하여 비스듬히 드러누운 난파선은 불과 수년만 지나면 본디의 모습을 잃고 시뻘건 고철 덩어리로 변하고 말았지 않던가. 폴라리스 호 역시 결빙이 없는 계절만을 택하여 겨우 세인트로렌스 강을 오르내리던 볼품없는 선박에 불과하지 않은가. 게다가 건조되고 20년도 더 된 노후선이다. 나는 결빙으로 인한 항해불능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망연한 생각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 마음은 좀체 떨쳐지지 않았다. 배는 인적도 없는 적막한 변방으로 밀려나 있었다. 해빙기가 오기까지 배는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시야 속의 빙반이 무한히 광활하고 아마득하게만 느껴졌다. 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빙반이 지구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인 것이었다. 몇 날 며칠을 걸어가더라도 문명세계는 없고, 다만 눈보라 치는 하얀 은세계만 펼쳐져 있을 것이라는 괴이한 생각이 나의 영혼을 꽁꽁 묶여 놓고 있는 것이었다. “캡틴께서는 참 행복하시군요.” 토키맨 한센 씨였다. 브리지 윙에서 망연히 빙반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끝없이 펼쳐진 은세계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만 하루 동안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두 배의 항진이 멈추자 그의 할 일이 없어져버린 탓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지요?” 나는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캡틴께서 부인과 통화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내를 무척 사랑하고 계시더군요.” 나는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는가 싶었다. 먼 동양에서 온 나와 프랑스인 여자가 어떻게 만났느냐는 따위의 야릇한 질문을 하고 싶다면 대답을 하는 대신 뺨이 얼얼해지도록 주먹맛이나 야무지게 보여줄 작정이었다. 그래서 퉁명하게 찰리 이야기부터 꺼냈다. “찰리라고 아들놈도 있습니다. 그저께 처음으로 나를 아빠라고 부르더군요. 이제 일곱 달 됐습니다.” 그러자 순수 바이킹 후예가 분명한 토키맨 한센 씨가 그의 진심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럼요. 그래서 너무 너무 부럽습니다요.……”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얼른 마음을 고쳤다. 공연히 남을 의심한 내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물었다. “그런데……한센 씨에게도 가정이 있을 텐데요?” 토키맨이 살짝 웃었다. 그 웃음에 허망함이 깃들어 있었다. “네에……물론이지요. 있고말고요. 한데…….” “한데요?” “캡틴께서도 아시다시피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 속이 아닌가요?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세상은 자꾸만 엉뚱하게 돌아가니 말입니다. 가령 가족이라는 것이 말이지요.……” 나는 난간에서 몸을 돌려 천천히 한센 씨를 마주 바라보았다. “아, 아닙니다. 모두 쓸데없는 말입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듣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공연히…….” “그럼 내가 먼저 얘길 할게요. 나는 결혼하고 3년이나 지나 겨우 찰리란 놈을 얻었습니다. 무어랄까, 찰리는 부부 사이를 이어주는 끈 같은 것이더군요. 아니, 끈끈한 접착제 같다고나 할까, 요컨대 녀석 때문에 우리는 더욱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내가 만약 생피에르에서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여기 있지도 않을 겁니다. 고국으로 돌아갔거나, 아니면 다른 배를 타고 다른 바다로 나가 있거나……. 그런데 지금 이렇게 생피에르에 살면서 캐나다 국적의 이 배를 타고 세인트로렌스 수로를 운항하고 있습니다. 전혀 꿈도 꾸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더욱 행복한지 모릅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다고나 할까요?” “캡틴께서는 틀림없이……멋진 미래를 얻어낼 것입니다. 이래 뵈도 나는 사람을 좀 볼 줄 알거든요. 하지만…….” “하지만?” “네, 하지만입니다. 하지만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인생이란 게……” 한센 씨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어렵게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시작했다. “나에게도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노르웨이 수도인 오슬로가 고향이라는 한센 씨는 천생 뱃사람이었다. 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 누군가가 바이킹 무리 속의 한 사함일 게 틀림없다고까지 말한 그는 그래서 배를 타는 것만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의 전부라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 선택에 불만이 있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바다야말로 노력한 만큼 거짓 없는 보상을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도 한창 젊었을 때는 유럽의 여러 항구를 왕복하는 화물선을 탔다고 했다. 몇 달 동안의 항해를 끝내면 연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오곤 하였는데, 집 마당으로 들어설 적마다 몰라보게 아들이 부쩍부쩍 자라나 있곤 하여 그 한 가지 보람과 희망만으로도 인생은 재미를 붙이고 살 만한 값어치가 있더라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인생은 있는 것이지만, 지금 한센 씨가 말하는 그것과 나의 그것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한데 그 놈이 말이지요……무어랄까, 나를 그만 배반하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한센 씨는 벌써 세 개비 째의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는 지포라이터를 켜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엄지손가락으로 줄날바퀴를 돌렸으나 워낙 혹한이어서인지 잘 점화가 되지 않았다. “뭐랄까요? 세상은 참으로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이런 게 있지요. 사람 사는 곳이면 반드시 해코지를 하고 평화를 깨트리려는 악마가 기웃거리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사람은 물론 혼자 살 수 없지요. 이웃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마을 같은 것도 생기면서 나중에는 큰 도회로 발전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곳에 반드시 악마가 기웃거린단 말입니다. 그 악마란 것이……악마가……내 아들놈을 해코지하고 말았단 말입니다.” “…….” 한센 씨의 푸념은 이어졌다. 어느 날 귀항한 부두에서 그는 틀림없이 마중을 나와 손을 흔들고 있어야 아들 디크를 찾아 두리번거렸으나 끝내 실패했다. 그를 맞는 아내의 표정도 웬일인지 이전 같지 않았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디크는?” 참지 못한 한센 씨가 아내에게 물었다는 것이다. “수업이 있는가 봐요.” 아내의 대답이었지만, 얼버무리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더욱 의아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대학 진학을 앞둔 때라지만 이미 수업도 끝나 있을 시간이었다. 어쨌든 집으로 돌아가면 얼마든지 진실은 밝혀질 것이었다.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모처럼의 귀항인지라, 친구들과 어울려 한 잔 맥주로 목을 축인 다음 이슥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는데도 그 시각까지도 집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어떻게 된 거야?” 그는 아내에게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아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평소 차분한 성격이어서 아무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모르는 사이에 쉽게 발을 빼내기 어려운 함정에 빠져 있더라는 것이었다. 어느 때는 얼굴에다 멍 자국을 남기고도 있었고, 또 어느 때는 팔뚝이나 허벅지에 칼자국 같은 것을 내기도 하였다. 가슴이 철렁하였으나 그녀가 아들을 제어하기에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마약 따위에 손을 대면서 이권을 다투는 몹쓸 조직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있음을 안 것은 이미 모든 것이 회복 불가능한 한계를 넘어선 다음의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는 것이다. 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 디크가 조직에서 발을 빼려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결과는 너무도 처참했다. 어느 날 디크는 수산물 가공공장이 밀집한 주차장 옆 공터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때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모든 게 다 제 자리에 있는데, 그런데도 마치 남의 집 같더란 말입니다.” 한센 씨가 다시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가 담배 연기를 내뿜을 때마다 입김도 함께 번져났다. 며칠째 손질하지 않은 턱수염에는 서리가 하얗게 맺혀 있었다. “모든 게 다 제 잘못이었습니다. 제가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셈이니까요. 어쨌거나 아이에게는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더 요긴한가 싶습니다.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 뱃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모두 낙제생이 분명합니다. 이해하십시오. 저의 이 말은 꼭 찰리를 두고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이대로 오도가도 못 하는 빙반 위가 말이지요. 저는 조금도 조갑증이 나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차라리……이대로 얼음 속에 영원히 파묻혀 버렸으면……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새 그의 눈가가 축축해져 있었다. “……” 그 때문이었을까. 날이 밝기 전, 캡틴 윌리스로부터 토키맨 한센 씨를 보내달라는 전갈이 왔다. 선체를 뒤덮은 얼음 제거작업에 한 사람의 손도 아쉽다는 것이었다. 하기는 언제 다시 아이스 스톰이 덮칠지도 모른다. “항해 준비가 되는 대로 돌아올게요.” 빙반으로 내려서기 전 불행한 사내가 말했다. 그 동안 한 치는 더 자라났을 그의 수염에는 여전히 서리가 하얗게 맺혀 있었다. 그가 매달린 뱃전 로프 사다리에는 주먹만큼 한 얼음 덩어리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조심하세요.” 헤드세일러가 주의를 주었다. 갑판을 올려다보며 한 번 손을 흔들어 보인 다음 한센 씨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치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먼 나라로 떠나는 사람 같았다. 발을 옮겨 딛을 때마다 그의 부츠 밑에서 꽈리 소리가 들렸다. 쇄빙선까지는 3백 미터 남짓한 거리였다. 그 사이 어디엔가 크레바스가 똬리를 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지독한 혹한이라도 강 밑바닥까지 통째 결빙할 수는 없는 일이다. 틀림없이 하저(河低)로는 강물이 흐르고 있을 테고, 그러면 어디에든 숨구멍은 트여 있기 마련인 것이다. 나는 어쩐지 나의 면전에서 눈물을 보인 한센 씨를 앞으로는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괴이한 생각을 했다. 12 아크티카 호와 관련한 메시지가 온 것은 구조기가 기수를 돌린 지 두 시간도 더 지나서였다. 아크티카 호가 소속한 본사로부터였는데, 베링 해 작업이 조만간 종료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먼저 전해졌다. 그런데 날짜가 문제였다. 세인트로렌스 수로에 닿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한 달은 더 소요될 것이라는 지극히도 비관적인 말이었다. 베링 해로부터 세인트로렌스 수로까지는 두 가지 뱃길이 있는데, 하나는 알래스카와 북미대륙 서안을 거슬러내려 파나마 운하를 통항한 다음 다시 북대서양을 북상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독자적으로 쇄빙작업을 계속하며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방법인데, 두 뱃길 모두 비슷한 항해일수가 소요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진작 예측한 그대로였다. - 갓뎀! 캡틴 윌리스는 뱃전 난간을 잡고 흔들며 마구 욕설을 퍼부어댔다. - 아주 해빙기까지 기다리라는 거군! 그 말을 전해들은 나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해빙기 운운하던 반갑지 않은 말이 현실로 다가온 듯한 절망감이었다. 참다못한 캡틴 윌리스가 다시 본사에다 새로운 요청을 제의했다. 쇄빙선 본래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파손된 선체 밑바닥의 보조 장치를 수리할 지원팀을 파견해 달라는 게 그 요지였다. “스쿠버다이빙이 가능한 엔지니어라야 합니다.” 캡틴 윌리스가 악을 썼다. 손보아야 할 스케그와 아이스호른 모두 배 밑바닥에 장착된 것을 고려한 말이었다. 거기에다 선체를 둘러싸고 있는 얼음을 제거할 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본사 간부는 당연히 화를 냈다. 사람 구하기가 말처럼 쉬우냐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본사 간부는 캡틴 윌리스를 매우 나무라고 있었다. 이의 모든 책임이 적절하지 못한 캡틴의 운용술에 기인한다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배에서 끌어내리고 싶지만, 마땅한 후임자를 찾아내지 못해 참고 있다는 언급도 있었다. 곤궁에 처한 쪽이나 그렇지 않은 쪽이나 모두 마찬가지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 도대체 손해가 얼만 줄이나 알아? 꼼짝없이 클레임을 물어야 한단 말이다! 회사 간부는 지금까지 아마도 몇 번은 계산기를 두들겨댔을 것이다. - 그게 말이 됩니까? 도대체 보통 아이스 스톰이었냐고요! 캡틴 윌리스도 지지 않았다. 결국 회사 간부는 마지못해 조선소에다 인력을 수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날이 저물 때까지 반가운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 간부는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으므로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 갓뎀! 세상은 모두 무관심한 놈들뿐이라니까! 다른 사람이야 죽든 말든! 캡틴 윌리스의 푸념이 워키토키로 나에게까지 들려왔다. 나는 백설로 뒤덮인 끝없는 빙원을 바라보며 다시금 망연하면서도 처절한 마음이 되었다. 두 배는 필경 조난선 처지에 다름 아니었다. 두 배는 순식간에 빙괴에 둘러싸이면서 이제는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궁지에 처하고 말았다. 말 그대로 해빙기까지 겨울잠이나 자야 할 처지가 된 것이었다. 처음부터 무리한 항해였다. 아이스 스톰 예보를 게을리 한 기상대를 원망할 처지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토록 자신만만해 하던 캡틴 윌리스를 나무랄 일도 아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윌리스의 말처럼 남이야 죽든 말든 자신만 안전하고 편하면 그만인 뭇 세상 사람들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고개를 완강히 가로저었다. 이것은 운명이다. 대자연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신도 아닌 인간이 운명을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설령 최악의 경우에 처하더라도 죽는 일이야 없을 것 아닌가. 가령 배를 포기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구조기는 언제든 호출할 수 있다. 게다가 퀘벡까지는 겨우 50마일 남짓한 거리다. 아니 북쪽으로는 눈 더미에 파묻혀 있을 라말바이에라는 읍내도 있다. 도보로 행군하더라도 며칠 걸리지 않는 거리다. 그러자 나는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가 샘솟아났다. 스스로를 포기하는 행위야말로 가장 비겁하고 무책임한 일 아닌가. 이것은 필경 극복해야 할 시련이다. 시련은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삶의 귀중함을 깨우치며 결코 좌절하지 않겠다는 인간의 굳건한 도전정신이 필요할 때다. 나는 다시 캡틴 윌리스를 호출했다. 응답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빠져나가 있었다. “윌리스 씨, 우리는 지금 시련에 봉착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걸 극복해야 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 캡틴 윌리스가 짜증을 냈다. “우리에게는 의지가 있습니다. 그걸 확인하자는 겁니다.” “당신은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겁니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의지 말입니다.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힘을 합치자고요?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말입니까? 어찌되었든 우리는 지금까지 힘을 합쳐 왔습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이 났는데……가령 지원팀이 온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루? 이틀? 아니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지요. 당장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닌데, 어느 누구가 제 발로 얼음 구덩이로 뛰어들려 할까요? 당신 말처럼 세상은 온통 무관심한 녀석들뿐입니다. 처지를 바꾸어보면 더 분명해지지요. 그래서 우리는 더욱 뭔가를 해야 합니다.” “도대체…….” “아니 이제 확실해졌습니다. 이쪽 선원 모두를 그 쪽으로 건너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캡틴 윌리스가 슬그머니 억양을 낮추었다. “그래서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제 기상은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힘을 모아 선체에 달라붙은 얼음덩어리를 하나하나 제거하자는 겁니다.” “뭐라고요?” “무엇보다도 당신 배의 기능부터 살려내자는 겁니다. 지원팀은 언제든 도착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작업을 하려 해도 선체가 얼음 속에 파묻힌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힘을 합치자는 겁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자꾸 악화될 뿐이니까요.” “그건 그래요.” 나의 제의를 캡틴 윌리스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13 작업은 아이스브리커의 선수 우현 쪽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선체는 좌현으로 기울어진 그대로였다. 따라서 우현을 압박하고 있는 빙괴를 제거해야만 최소한의 평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작업은 곡괭이와 해머를 휘두르는 지극히도 원시적인 것이었다. 사방으로 얼음 조각이 튀어 올랐다. 얼음이 갈라지고 깨트려지는 소리가 빙원을 메아리치며 끝없이 퍼져나갔다. 작업은 더디기만 했고, 끝도 보이지 않았다. 1백 미터도 넘는 길이의 대형선 선체를 압박하고 있는 빙괴를 제거하는 일이니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선체는 빙반 깊숙이 박혀 있었다. 아이스 스톰 탓이었다. 작업은 수로 밑바닥의 강물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되어야 했다. “굉장한데요.” 캡틴 윌리스가 멋쩍게 웃었다. 선체를 파묻고 있는 빙반의 두께가 엄청나다는 이야기였다. “드라프트가 40피트를 넘으니까요.” 나도 맞장구를 쳤다. 무언가를 생각하던 눈치더니 캡틴 윌리스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나는 이 친구가 무슨 말을 하려는가 싶었다. “뭐랄까……말하자면 우리가 힘을 모아 무엇을 한다는 건……그건 확실히 용기를 준다는 사실 말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주 절망적이었습니다. 눈을 감아도 세상이 온통 눈밭처럼 하얗게만 보이더군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절망에 빠지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법인데 말입니다.” 이번에는 내가 그렇군요, 하고 동의했다. “그 동안 나는 틀림없이 누군가가 나를 골탕 먹이고 있다는 생각밖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틀림없이 누군가가!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았습니다. 모두가 다 내 잘못이라는 걸 말입니다.” 나는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미스 모니카가 보온병을 들고 다가왔다. 그녀는 벌써 몇 번째나 차를 끓어왔다.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나는 장갑 낀 손으로 컵을 받았다. 장갑은 나무 막대기처럼 꼿꼿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고마워요.” 미스 모니카의 미소는 아름다웠다. 아니 어느 여자라도 그럴 때는 아름다울 것이다. “보세요, 배에도 여자는 필요하답니다.” 멀리서 곡괭이를 휘두르는 작업원들에게 차를 나눠 주기 위해 저만치로 멀어져간 미스 모니카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캡틴 윌리스가 웃었다. “본인이 들으면 싫어할 텐데요?” “아니죠. 그건 내가 할 말입니다. 저놈 강아지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캡틴 윌리스는 짓궂은 데가 있었다. 마침 쇄빙선 블루스타 호 상갑판의 난간 사이로 요크셔테리어 종이 귀를 쫑긋 세운 채 머리통을 내보이며 뚫어져라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스 모니카를 따라잡고 있는 게 분명했다. “요컨대 개라는 건 말입니다……영악하다고나 할까, 좀 엉뚱한 데가 있어요. 가령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난 개가 그렇다는 얘깁니다.” 내가 흥미를 갖기 시작하자 그는 더욱 열을 올렸다. “그렇게 자라난 개는……자신이 개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어느 동물심리학자들이 떠들어댄 겁니다만, 가령 태어나면서부터 사람한테서 자라난 개는 자신을 돌보아 준 사람을 제 어미로 여긴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지금까지 자기를 돌보아 준 여자가 아기에게 젖꼭지를 물리기라도 하면 개새끼는 자신의 사랑이 도둑맞는다며 앙칼지게 대든다는 겁니다. 아기를 할퀴기도 하구요. 그게 도대체 말이 되기나 합니까?” “그건 좀 끔찍하군요.” 캡틴 윌리스가 다시 요크셔테리어 종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 좀 보세요. 저놈만 하더라도 미스 모니카를 어미로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단 말입니다.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거든요.” “당신은 분명 개를 좋아하지 않는군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난 개새끼라면 아주 질색입니다. 처음 미스 모니카가 배에 올라왔을 때도 그랬습니다. 처음 승선할 때부터 개새끼를 안고 있었으니까요. 그래 내가 물었지요. 그렇게 정을 주다간 출항하면 어떡할 거냐고요. 그러니까 뭐란 줄 아십니까? 얘도(강아지를 가리키며) 시맨카드(선원수첩) 쯤은 갖고 있다고요! 아이고, 그만 한 방 맞고 말았지요.” 우리는 웃었다. 그 시각 앙리는 세인트존스를 떠나 퀘벡에 도착해 있었다. “허드슨 군은 지금 수술실에 있다.” 그는 아이스 스톰이 그치자마자 다른 무엇도 제쳐두고 맨 먼저 퀘벡으로 넘어간 것이었다. “혼자 내버려둘 수야 없지 않나?” 그게 뉴잉글랜드 라인의 오너인 앙리의 말이었다. “허드슨 군 어머니는?” “사고 소식을 듣고 그만 몸져누워 버렸다네.” 그랬었구나. “아무튼 이쪽은 걱정할 거 없네. 퇴원하는 대로 곧장 휴가를 보낼 거니까.” 나는 앙리에게 이쪽의 사정을 알려 주었다. “지금 빙반을 깨고 있는 중이네. 지원팀이 도착할 때까지 말이다.” 앙리는 제발 몸조심하라고 신신 당부했다. 통화를 마치고 작업장으로 돌아가던 나는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쇄빙선 갑판으로부터 좌현 뱃전 너머로 길게 데릭 붐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끄트머리 리프팅 후크로는 앵커가 단단히 매달려 있는 광경이었다. 틀림없이 후갑판에 따로 보관되고 있던 예비 앵커였다. 그 광경을 보고 나는 그게 캡틴 윌리스의 의도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챘다. 곡괭이나 해머 따위의 도구로는 작업의 진척이 원활하지 않자 그는 그 같은 기발한 방안을 강구해낸 것이었다. “다들 멀찌감치 비켜서!” 캡틴 윌리스가 주의를 준 다음 수신호와 함께 소리쳤다. “다운 앵커!” 참으로 어느 항해용어에도 존재하지 말이었다. 순간 허공 높이 매달려 있던 육중한 앵커가 빙반을 향해 수직으로 낙하했다. 쿠웅! 300킬로그램의 육중한 앵커 크라운이 내리꽂히자 커다란 분화구가 만들어지면서 빙반이 몇 조각으로 갈라졌다. “와아!” 선원들의 함성이 터졌다. 그 효과는 대단했다. 곡괭이나 해머로 내려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갈라진 틈 사이에 지렛대를 박아 젖히면 빙반은 아주 쉽게 조각났다. “역시 쇄빙선 캡틴다워.” 나의 칭찬에 캡틴 윌리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모두 캡틴 박 덕분입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투정만 부리고 있었을 테니까요.” 갑자기 캡틴 윌리스가 사슴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벗더니 손을 쑥 내밀었다. “우리는 친구입니다.” 그의 손은 작고 차가웠다. 윈치 조작은 아무래도 헤드세일러 몫이었다. 그는 마스트 하우스에 올라앉아 능숙하게 윈치를 조작했다. 천천히 앵커를 허공 높이 감아올린 다음 브레이크를 풀면 쇠뭉치는 그대로 육중하게 수직으로 꼬나 박혔다. “조심해!” 캡틴 윌리스가 거푸 주의를 주었다. 자칫 앵커의 낙하지점이 어긋나기라도 하면 엉뚱하게도 선체 외판이 손상을 입고 만다. 반나절의 작업 끝에 드디어 선수 쪽 우현 뱃전으로 숨구멍이 트이면서 그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떼어낸 얼음 조각은 멀리 내던져졌으므로 다시 아이스 스톰이 퍼붓지 않는 한 숨구멍이 메워질 걱정은 없었다. 분쇄된 얼음 조각이 저만치에서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윌리스는 이제 선미 쪽 차례라고 말했다. 그 때는 아이스버블링 만으로도 얼마든지 배를 둘러싸고 있는 양현의 얼음을 제거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14 다음 날 아침, 블루스타 호 본사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캡틴 윌리스가 요청한 대로 지원팀을 헬기편으로 보내겠는 내용이었다. “댕큐!” 캡틴 윌리스는 본사 간부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 하나만으로도 궁지에 몰린 캡틴 윌리스가 그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도착은 언제인가요?” 그만큼 캡틴 윌리스의 마음은 바빠 있었다. “두어 시간 후면 도착할 거야.” “아이구,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캡틴 윌리스는 송수화기에다 대고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렸다. “곧 온답니다.” 통화를 끝낸 캡틴 윌리스가 나를 보고 말했다. “빌어먹을! 이제 고생도 끝입니다.” 입김을 뿜어내며 캡틴 윌리스는 연신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 기운들 내자고요! 솜씨 좋은 에이에스(A/S) 팀이 곧 온다니 말입니다!” 캡틴 윌리스가 쇄빙선 바깥 빙반 위로 죽 늘어선 선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시 앵커 크라운이 빙반을 내려찍는 작업이 재개되었다. 앵커 크라운이 찍어내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빙반이 갈라지는 소리가 빙원을 메아리쳤다. 열 시경, 드디어 반가운 비행음이 들렸다. 본사 간부와 통화를 끝낸 두어 시간 후였다. “헬기다! 지원팀이 온다!” 한 선원의 말에 캡틴 윌리스가 직접 쌍안경으로 남서쪽 하늘을 살폈다. “맞다! 지원팀이다!” 캡틴 윌리스가 확인했다. 그러나 상공으로 접근한 헬기를 본 캡틴 윌리스의 안색이 확 변했다. “아니, 저건 휴즈500 아냐?” 캡틴 윌리스가 단번에 기종을 알아맞히었다. 소형 기종인 휴즈500은 겨우 두 명만 탈 수 있으며, 오늘날에는 광활한 농장에서 겨우 농약이나 살포하는 정도의 용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틀 전 허드슨 군을 구조해 간 퀘벡 코스트가드 소속의, 열 명도 탈 수 있는 시코르스키 기종과 비교한다면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 하는 아주 소형기였다. “저 자식들, 무슨 시찰 나온 거야, 뭐야?” 캡틴 윌리스의 얼굴이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과연 그의 판단을 옳았다. 휴즈500은 쇄빙선 블루스타 호 가까이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 동안 얼음눈은 헬기가 내려앉아도 충분할 만큼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아직도 메인 로터가 맹렬하게 회전하는 가운데, 한쪽 문이 열리면서 안전모를 쓴 사내 하나가 빙반으로 내려섰다. “수고 많습니다.” 사내가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두 선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눈썰미가 있었던지, 사내는 첫눈에도 두 캡틴을 알아보았다. 캡틴 윌리스가 엉거주춤 내민 사내의 손을 맞잡았다. “내가 블루스타 호 캡틴이오.” 캡틴 윌리스는 퉁명했다. “저는 퀘벡 조선소 현장 감독관입니다.” “그래서요?” 억양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그로서는 당장 전문 수리 팀이 도착하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는데, 감독관 혼자 나타났으니 반감이 생길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감독관이라고요.”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 감독관을 요청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말하다 말고 캡틴 윌리스는 빙반 위에 꼼짝없이 결빙 상태에 들어가 있는 두 척 배를 손가락 끝으로 번갈아 가리켰다. “……무엇보다도 아이스브리커의 기능부터 살려내자는 겁니다. 그래야만 항해를 재개할 수 있을 것이니까요. 그런데…….” 캡틴 윌리스의 말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본사로부터 들었고, 우리가 일을 맡았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먼저 현장에 나온 것입니다. 얼마의 인력이 필요한지, 또 작업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일에는 다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이거 무슨 설교를 하시는 겁니까? 우리는 지금 한 시가 급한 상황에 있단 말입니다. 얼음덩이에 갇힌 지 벌써 나흘째란 말입니다. 이만하면 우리 사정을 이해하시겠지요?” 두 사람의 언쟁은 끝이 없었다. “자, 그만하면 됐습니다. 빨리 상황을 파악해 보시지요.” 내가 나서서 말리고 난 다음에야 두 사람은 겨우 언쟁을 그쳤다. “아이구나!” 감독관은 비명부터 질렀다. “세상에! 아이스브리커가 얼음에 갇히다니!” 감독관이 비아냥댔다. 다행히 캡틴 윌리스는 저만치서 담배를 빼내 무느라 그 소리를 듣지 못 했다. 만약 들었다면 큰 소동이 벌어졌을 것이다. 감독관은 한 시간도 넘게, 천천히 두 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다음 엄숙하게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힘들겠습니다.” 그 말을 캡틴 윌리스도 들었다. “아니, 뭐라고요?” 캡틴 윌리스가 악을 썼다. “이것 보세요. 배를 둘러싼 얼음 깊이가 10피트도 넘습니다. 도대체 이걸 무슨 재주로 제거합니까? 얼음부터 제거해야 고장 난 개소를 고칠 게 아닙니까?” 감독관은 느긋했다. “그래서 전문가를 부른 게 아닙니까?” 눈치가 빠른 캡틴 윌리스는 이미 일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이런 작업을 우리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나섰다. “무슨 기발한 방법이 있을 텐데요?” 그러나 감독관의 말은 기대 밖이었다. “해빙기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뭐라고요?”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이지만, 이처럼 얼음에 파묻힌 배를 끌어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드디어 캡틴 윌리스의 감정이 폭발했다. “당장 꺼져버려! 꺼져버리라고!” 뒷걸음을 치던 감독관이 헬기 쪽으로 몸을 돌리기에 앞서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그럼 모두……수고들 하세요.” 그렇게 휴즈500은 현장을 떠났다. “망할 녀석이라니!” 캡틴 윌리스는 한참이나 분을 참지 못 했다. 15 끝없이 펼쳐진 빙원으로 다시금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아니 빙원은 하루 종일 어스름 속이었다. 아마득한 빙원 끝자락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바람도 거세어졌다. 나는 이쯤으로 오늘의 작업을 중단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캡틴 윌리스도 동감이었다. 선원들이 작업 도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북극곰이 나타난 것은 그 때였다. “봐라! 마리띠무스다!” 붉은 수염 에리크가 소리쳤다. “뭐라고?” 선원들은 미처 에스키모의 말을 알아듣지 못 했다. “곰이다! 북극곰이다!” 붉은 수염 에리크가 재차 소리쳤다. 선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쪽으로 쏠렸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곰을 발견할 수 없었다. “어디야?” 사방을 살피며 헤드세일러가 물었다. “저쪽, 얼음 언덕이 있는 곳!” 붉은 수염 에리크가 손가락으로 빙원 한쪽을 가리켰다. “맞다! 북극곰이다!” 선원들도 소리쳤다. 두 배로부터 겨우 몇 백 미터 남짓한 거리로 집채보다도 큰 몇 개의 얼음 언덕이 보였고, 그 사이로 거대한 몸집의 북극곰 한 마리가 몸을 일으켜 세운 채 입으로 거품을 뿜어내고 있었다. 곰은 자신을 해치려고 하지 않는 한 좀체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 웅성거리는 사람 소리가 들리면 먼저 조용히 그 자리를 벗어난다. 예기치 않게 맞닥뜨린 경우에도 자신을 해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대로 조용히 몸을 돌린다. 그래서 죽은 듯이 엎디어 있는 것도 공격을 피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동물학자들은 조언한다. 반면 틀림없이 자신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는 확신이 서면 그 때는 돌변하여 어디까지든 추격해 온다. 그렇게 하여 어마어마한 앞발로 끝장을 낸다. 단 한 차례의 가격으로 웬만한 동물은 살점이 발겨지고 뼈가 으스러진다. 특히 새끼를 거느린 경우에는 상상 이상으로 포악해진다. 주변을 살폈으나 다행히도 새끼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미스 모니카가 안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앗! 미스 모니카, 위험해!” 먼저 비명을 지른 것은 나였다. 요크셔테리어 종을 품에 안은 1등항해사 모니카는 멋모르고 계속해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모니카! 조심해! 북극곰이다!” 나는 거듭 주의를 주었다. 그제야 눈치를 챈 미스 모니카가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천천히 북쪽으로 돌렸다. 꼭 슬로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다. 먹이를 좇을 때의 최고 속력이 50킬로미터를 넘는다니까 몇 백 미터 거리는 북극곰에게 한순간의 일이었다. 올림픽 단거리 선수도 따라잡기 불가능한 속력인 것이다. 북극곰은 어쩌면 미스 모니카가 안고 있는 요크셔테리어 냄새에 혹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순간 영원히 얼음 속에 갇혀도 좋다던 바이킹의 후예 한센 씨의 외침이 들렸다. “미스 모니카, 가만 계세요! 움직이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는 다짜고짜 곰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센 씨 안 돼!” 그건 의외에도 붉은 수염 에리크의 목소리였다. 누구보다도 라고푸스나 마르띠무스의 생태와 습성을 잘 알고 있는 작살꾼이었다. 소리친 붉은 수염 에리크가 한센 씨 쪽을 항해 곧장 내달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의 손에는 기다란 막대기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빙괴 조각을 젖혀내던 쇠 지렛대였다. “아니, 에리크가!” 나의 고함소리가 그의 등을 쫓아갔으나 아무 소용없었다. 붉은 수염 에리크가 한센 씨의 두어 걸음 뒤에서 우뚝 달리기를 멈추었다. 두 사람의 그 같은 행동은 북극곰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니 어쩌면 극 지대에서 가장 야성적이며 육식성 동물인 북극곰의 공격 본능을 자극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미스 모니카에게로 향하고 있던 북극곰의 시선을 두 사람에게로 돌려지는가 싶더니 곧 허연 거품을 문 윗입술을 더 격렬하게 떨어댔다. 사방으로 입김이 번져났다. 곧 두 길도 넘는 육중한 몸을 일으켜 세운 북극곰은 허연 거품을 문채 두 앞발로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뒤집어 올린 입술 아래로 상아 색깔의 커다란 송곳니가 드러났다. 송곳니는 상하 각각 두 개씩이었다. 들소의 질긴 가죽도 찢어발긴다는 무시무시한 이빨이었다. 커다란 송곳니를 내보인 채 푸르르 입술을 떨어대자 침방울이 고드름처럼 가슴팍으로 타 내렸다. 부릅뜬 두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몇 차례 거푸 가슴을 두들겨댔다. 상대에게 위협을 과시하는 몸짓이 틀림없었다. 그게 북극곰의 전형적인 공격 직전의 자세인 것이었다. “위험하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 동안 붉은 수염 에리크는 한센 씨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천천히 뒤로 끌어당겼다. 한센 씨는 뒤뚱뒤뚱 뒤로 물러났다. 이제 북극곰과 맞서게 된 붉은 수염 에리크는 천천히 쇠 지렛대를 움켜쥔 오른손을 어깨 위로 가져갔다. 그 옛날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포악하다는 말향고래의 등덜미에 작살을 내리꽂던 당당하면서도 우람한 자세 그대로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과 맹수 사이의 거리는 여남은 발자국으로 좁혀져 있었다. 선원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북극곰이 가슴 두들기기를 멈추는가 싶더니 시선을 뒤로 돌렸다. 두 마리 새끼 곰이 얼음 언덕 사이로 모습을 보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결국 자신의 가슴팍을 두들기고 입술을 뒤집어 보인 야수는 두 마리 새끼를 가진 어미곰이었던 것이다. 어미곰은 두 마리 새끼와 함께 부빙에 의지하여 그린란드로부터 뉴펀들랜드까지 떠밀려 온 게 분명했다. 그리고 먹이를 찾아 헤맨 나머지 엉뚱하게도 결빙한 세인트로렌스 강에 다달은 게 틀림없었다. 이윽고 어미 북극곰이 앞발로 빙반을 내려치듯 하더니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두 사람을 향해 재차 돌진을 시작했다. “앗!” 선원들 모두 비명을 질렀다. 16 폴라리스 호가 생피에르 섬으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 달도 더 지나서였다. 당초의 항해는 당연히 실패로 끝났다. 휴즈500 편으로 현장을 답사한 감독관은 지원팀 투입을 거부한 게 틀림없었다. 본사 간부는 그 결과를 전하면서 이제는 베링 해에 머물고 있는 아크티카 호를 기다릴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 결과 결빙한 세인트로렌스 강에 좌초되었던 두 배는 한 달이나 지나 현장에 도착한 캐나다 원자력 추진선 아크티카 호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겨우 귀항 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 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쇄빙선 블루스타 호의 캡틴 윌리스를 위로해 주었다. 그는 블루스타 호가 수리를 마치는 대로 북위 80도 선상의 퀸에리자베스 제도로 북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여기서는 할 일이 없으니까요.” 그 동안 결빙해 있던 세인트로렌스 만이 모두 풀렸다는 말이었다. “우리 언제 한 잔 하십시다.” 그의 우정 어린 제의였다. “그럽시다.” 맞잡은 두 손은 한참 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아이스 스톰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자연의 위력이 그만큼 위대하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이나 지나 나는 폴라리스 호가 정박하고 있는 세인트존스로 나갔다. 새 항해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때는 3월 중순, 항해에 나서기에는 더없는 봄날이었다. 그 날 나는 방금 퀘벡에서 돌아온 붉은 수염 에리크와 재회했다. 그는 꼬박 한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퇴원하자마자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폴라리스 호에 재승선하기 위해 때맞추어 모선을 찾아온 것이었다. 선원들 모두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앙칼진 요크셔테리어 보디가드를 안은 미스 모니카의 모습을 본 것도 그 때였다. 그녀는 얼음세계에서 풀려나자마자 곧 바로 퀘벡 병원으로 달려가 붉은 수염 에리크를 위로했던 것이다. 살롱에 마주 앉은 나는 붉은 수염 에리크가 그토록 즐겨하던 위스키를 손수 따러 주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네.” 그 동안 나는 무척 궁금해 있었다. “말씀 하시지요.” 아끼듯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 붉은 수염 에리크가 되물었다. “마르띠무스를 만났을 때 이야긴데……에리크 씨라면 그 때 얼마든지 먼저 북극곰을 해치울 수 있었지 않았나? 왜 머뭇거린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처럼 장기간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나는 그 이유가 지금도 궁금하다네.” 내가 다시 잔을 채워 주었다. “그건……새끼 곰 때문이었지요! 캡틴 박께서도 아시다시피 나는 얼마든지 놈의 목덜미에 작살을 명중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까부터 얼음 더미 뒤쪽에서 두 마리 새끼 곰이 꼼지락거리는 것을 보았단 말입니다. 어미를 죽이면 새끼는 어떻게 되나요? 내가 머뭇거린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 “만약 녀석이 공격해오지 않았다면 나는 끝까지 작살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구요. 그 때문에 한센 씨가 그만…….” 붉은 수염 에리크가 말을 멈추었다. 그랬었구나. 나는 가슴 속으로 찡한 감동을 받았다. 그 날, 붉은 수염 에리크는 돌진해 오는 어미 북극곰을 겨우 서너 발 앞에다 두고 쇠 지렛대를 날려 정통으로 가슴팍에 명중시켰다. 하지만 한센 씨는 무사하지 않았다. 작살을 맞은 채 돌진을 멈추지 않은 북극곰에 깔리면서 그는 북극곰이 마지막으로 휘두른 억센 발톱에 그만 회복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고 만 것이었다. “이제 마리띠무스를 만날 일도 없을 거야.” 나는 정겹게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길게 내뻗은 방파제 너머로 언제나 보던 대서양 바닷물이 망망하게,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찰리와 나란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랑하는 아내를 향해 천천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끝> 약력 주문진 출생 주문진수산고 강원도립대학 원양산업학과 졸업 과학기술부장관명의 해양학사 취득 한국해양대학교 국제대학 동아시아학과 석사과정 제 1회 <계간문예> 영목신인상〈시〉등단 제12회 바다의 날 해수부장관 표창 제11회 한국해양문학상 대상〈 해양시〉 제13회 한국해양문학상〈해양소설〉 제 4회 해양문학상 <해양소설> 해양시편〈진화하지 못한 물고기〉<대왕고래를 만나다> 해양중편〈쇄빙항해>〈바타비아로 가는 항로〉<남서대서양> 해양수필<바다 위에서> 어선1급, 상선1급, 동력레저 조종1급, 소형선박 항해사, 요트 조종자격, GOC (주)태영교역 선장 / (현) 북태평양 출어  
103 시인 이봉화-낙동강4/정 숙 file
편집자
4151 2011-03-01
11.03월 10호 수필 시인 이봉화 -낙동강 4 밤 내내 제 깃털에서 뽑아낸 실로 하늘울음 깁고 있을지언정 학은 함부로 울지 않는다는 어른 말씀을 이정표 삼아 일제강점기와 육이오 사변 그리고 가난, 시대적 급물살에 휩쓸리며 오직 내 가족을 살려야겠다는 지푸라기 한 올 잡고 흘러온 지금 아흔 여섯 세월의 강물에서 이봉화, 내 어머닌 울 여가 없었다 악다문 입 열 틈이 없어서 울 수도 없었다 '일제강점기, 외지에서 근무하는 네 아부지 삼년만에 찾아가니 이미 딴 여자가 있었지 어린 네 오빠 둘과 시동생까지 데리고 겨울바람 불면 냄비까지 날아가버리는 제실에서 끼니 걱정하며 사는데 어느 날 도저히 더 견디지 못해 떠나겠다는 내 눈물편지 한장 읽고 네 아부지 김월분이란 그 여자 정리하고 경산으로 흘러갔어 그 당시 식구 한 사람 당 쌀 한 주먹씩 주는데 쌀밥은 네 아부지 드리고 아아들은 우짜든지 점심 굶기려고 나락 이삭 주우러 다니면 그래도 제법 양식이 되었어 그래도 쌀 배급하는 사람은 우리집엔 쌀 한되씩 더 얹어주더군 그 시절 고향을 지키는 사람은 밥은 굶지 않았지' 바람든 지아비의 마음방향을 돌리고 고향 논두렁에서 시아버지를 펑펑 울린 며느리의, 아내의 그 애간장 끓이는 편지 한 장이 바로 사람을 감동시킨 명시 한편 아니겠는가 연애편지 한 장 쓰지 못한 난 언제 살 떨리는 문자로 누구의 가슴 저리도록 울려본 적 있는가?  
102 제3악장/김미지 file
편집자
4296 2011-03-01
11.03월 10호 시 제3악장 김미지 담양에서 순창으로 이어지는 메타세콰이어 숲길 노부부 한 쌍이 다정히 걸어간다 켜켜이 쟁인 시간의 그늘들 태양도 침범 못할 지붕을 이었다 꽃 핀 흔적들 우듬지 만큼이나 아득해 애써 두근거림의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잡은 손은 제 살 같이 무덤덤할 뿐이다 둥근 원을 그리며 자전거 한 대가 스쳐가고 빨간 자동차가 그 뒤를 재빠르게 달려갔다 투덜투덜 트럭이 멀어지는 길 끝에 희뿌연 햇살 한웅큼 쏟아져 내린다 어둠살 저문 흰 머리칼엔 소진된 열정 대신 아늑한 고요가 빛건반을 자꾸 옮기는지 푸른 천칭 속 아다지오의 선율 깊어진다 김미지 대구 출생 199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문』이 있음 대구광역시 miji3406@hanmail.net  
101 꽃받침 외1편/박경조 file
편집자
4228 2011-03-01
11.03월 10호 시 꽃받침 박경조 장롱 위 한복상자 내려야 하는데 글쎄 내 무게를 받치러 온 식탁의자 허공 깊어, 섣부른 나를 내팽개친 것 쩌-억 허공이 그어버린 오른쪽 손목 금이 간다는 건 부러진 틈보다 오래 간다는 것 오른쪽과 왼쪽 위와 아래 한 쪽이 아프면 나머지 한 쪽이 더 쓰라린 것 한 쪽이 베이고 나서야 알았다는 것을, 한 때 한 사람을 지극히 사랑했던 손 그 손으로 이별 또한 어루만져야 했던 가령, 양兩 손이 꽃의 일생이라면 거친 세상을 버무리고 치대던, 어미의 순한 손이 되기까지 팽팽하게 받쳐 준 꽃 받침 같은 내 손목, 이렇게 깊이 들여다본 적 없다 어느 봄 박경조 체위 변경을 해주며 요양원 밖 막 움트기 시작한 봄 소식, 수다로 옮겼더니 맨발로 소복소복 밑거름 다져 육남매 처처에 심던 문득 한 삶이 걸어온 어느 봄 내가 듣는다 활짝, 활짝 피워낸 여섯 꽃자리 저도 차츰 발길 뜸해진 봄, 봄 다시와도 좌측 편마비 양쪽 하지구축의 몸 되어 텅, 모래사막에 갇혀 - 봄날이 와 이래 지엽노* 일흔 아홉, 덧없는 사투리 내 실습일지의 마지막 한 줄, * 지루하다의 경상도 사투리 약력 : 경북 군위 출생, 2001년 계간『사람의 문학』등단 대구작가회의, 대구시인협회 회원, 시집『밥 한 봉지』  
100 길목에서 외3편/허명칠 file
편집자
3332 2011-03-01
11.03월 10호 시 길목에서 / 허명칠 세월을 끌고 범이 이사한다 소란스러운 이 세상 내키지 않나 보다 구름 같은 범띠 인생 범 이삿짐에 묻혀 해 저무는 가을을 거쳐 앙상한 겨울로 가고 있다 미련을 밟으니 지나온 길엔 울음과 웃음 널려 있다 그 웃음 자국마다 황홀한 그림자 스며 있고 그 울음 자국들엔 처진 어깨 드리워 있다 바람과 서리로 엮인 인생길 무겁기만 하다 앞길엔 안개 자욱한 데 산 토끼 빨간 눈 찬란하게 슬픈 추파 보내오고 있다 검둥이 범을 배웅하여 그믐달을 짖고 보름달을 재촉하여 토끼를 마중한다. * 경인년 섣달 그믐날 범해를 보내는 범띠의 감개 친구 만나 / 허명칠 고개 들면 보고 고개 숙이면 못 보는 먼지 깔린 고샅길에서 누군가와 어긋나 무슨 예감이 들었던지 뒤돌아보니 그이였다 10여 년 전 친구인 그이는 역경에 처한 내 가슴을 밟고 떠난 후 무소식이었다 그때로부터 내 가슴엔 배심의 돌담이 쌓이고 친구 잃어 울적한 나날을 보내었다 그는 나처럼 고개 숙이고 걸었을까? 아니면 보고도 못 본 체했을까? 10년 넘는 세월이 지나 얼음이 풀리고 새봄을 맞아 내 마음속의 돌담도 녹아버렸건만 그를 포용하지 않으리라 짐작해서일까? 나는 그이를 불렀다 흡사 기다렸다는 듯이 그이는 돌아서면서 다가왔다 나의 내민 손을 잡으며 아무 말 없이 눈시울만 축인다 용서하란 그 이기적인 말도 없이 그렇다, 우리 사이엔 용서가 필요 없다 차가운 손을 잡은 나 두 손으로 힘껏 흔들어주면서 "우린 아직도 친구야!" 한 발 헛디딘 친구를 부축하지 않으면 나는 그의 친구가 될 자격이 없지. 자연의 품으로 / 허명칠 여기엔, 눈을 잡는 건 많아도 마음에 가라앉는 건 적다 코를 찌르는 건 많아도 퀴퀴하게 묵은 것들뿐이다 귀를 당기는 건 많지만 여과된 건 적다 눈을 감고 숨죽여 들어도 풀빛 숲으로 가자 거기 가면 반기는 꽃들이 만발하여 눈을 잡고 놓질 않고 솔 향기 꿀 냄새 쪽빛 공기 가슴 적시고 풀벌레 교향악 귀를 당긴다 어서 가자 옹달샘 부르는 언덕으로 거기 가면 비린내 없는 샘물 맑은 냄새 목을 축이고 민들레꽃 노란 웃음으로 손짓해 가슴은 한 뙈기 꽃밭이 된다 어서 가자 산기슭 시냇가로 거기 가면 우거진 버들 숲 여울 물 졸졸 장단 맞춰 하늘하늘 춤추어 어깨도 덩달아 춤 나온다 어서 가자 종 내 싸움 없는 자연의 품으로. 장벽 / 허명칠 살아 있는 한 언젠가 만날 수 있으리라 안개 걷으면 무정한 세월 만나고 싶어도 안 되고 만날 수 있어도 안 되는 이 세상 만남의 기쁨 어찌하여 슬픔이 되어야 하나 기쁨이자 슬픔인 이 세상 뜨거운 찻잔 같은 만남의 기쁨 식어가는 찻잔처럼 쓸쓸하나니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슬픔 생기 넘치는 글로벌 시대 화강암처럼 땅땅한 주름 장벽 언제면 철들어 녹으리오. <html> <head> </head> <table width=100%><tr><td valign=to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길목에서&nbsp;<FONT face="Times New Roman">/&nbsp;</FONT><FONT face=Batang>허명칠</FONT></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세월을&nbsp;끌고</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범이&nbsp;이사한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소란스러운&nbsp;이&nbsp;세상</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내키지&nbsp;않나&nbsp;보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구름&nbsp;같은&nbsp;범띠&nbsp;인생</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범&nbsp;이삿짐에&nbsp;묻혀</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해&nbsp;저무는&nbsp;가을을&nbsp;거쳐&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앙상한&nbsp;겨울로&nbsp;가고&nbsp;있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미련을&nbsp;밟으니&nbsp;지나온&nbsp;길엔&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울음과&nbsp;웃음&nbsp;널려&nbsp;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그&nbsp;웃음&nbsp;자국마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황홀한&nbsp;그림자&nbsp;스며&nbsp;있고</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그&nbsp;울음&nbsp;자국들엔</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처진&nbsp;어깨&nbsp;드리워&nbsp;있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바람과&nbsp;서리로&nbsp;엮인&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인생길&nbsp;무겁기만&nbsp;하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앞길엔&nbsp;안개&nbsp;자욱한&nbsp;데</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산&nbsp;토끼&nbsp;빨간&nbsp;눈</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찬란하게&nbsp;슬픈&nbsp;추파</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보내오고&nbsp;있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검둥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nbsp;범을&nbsp;배웅하여</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그믐달을&nbsp;짖고&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보름달을&nbsp;재촉하여</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토끼를&nbsp;마중한다<FONT face="Times New Roman">.</FONT></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nbsp;<FONT face=Batang>경인년&nbsp;섣달&nbsp;그믐날&nbsp;범해를&nbsp;보내는&nbsp;범띠의&nbsp;감개</FONT></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친구&nbsp;만나&nbsp;<FONT face="Times New Roman">/&nbsp;</FONT><FONT face=Batang>허명칠</FONT></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고개&nbsp;들면&nbsp;보고</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고개&nbsp;숙이면&nbsp;못&nbsp;보는</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먼지&nbsp;깔린&nbsp;고샅길에서</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누군가와&nbsp;어긋나</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무슨&nbsp;예감이&nbsp;들었던지</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뒤돌아보니&nbsp;그이였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10<FONT face=Batang>여&nbsp;년&nbsp;전&nbsp;친구인&nbsp;그이는</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역경에&nbsp;처한&nbsp;내&nbsp;가슴을</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밟고&nbsp;떠난&nbsp;후&nbsp;무소식이었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그때로부터&nbsp;내&nbsp;가슴엔</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배심의&nbsp;돌담이&nbsp;쌓이고&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친구&nbsp;잃어&nbsp;울적한&nbsp;나날을&nbsp;보내었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그는&nbsp;나처럼&nbsp;고개&nbsp;숙이고&nbsp;걸었을까<FONT face="Times New Roman">?</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아니면&nbsp;보고도&nbsp;못&nbsp;본&nbsp;체했을까<FONT face="Times New Roman">?</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10<FONT face=Batang>년&nbsp;넘는&nbsp;세월이&nbsp;지나</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얼음이&nbsp;풀리고&nbsp;새봄을&nbsp;맞아</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내&nbsp;마음속의&nbsp;돌담도&nbsp;녹아버렸건만</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그를&nbsp;포용하지&nbsp;않으리라&nbsp;짐작해서일까<FONT face="Times New Roman">?</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나는&nbsp;그이를&nbsp;불렀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흡사&nbsp;기다렸다는&nbsp;듯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그이는&nbsp;돌아서면서&nbsp;다가왔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나의&nbsp;내민&nbsp;손을&nbsp;잡으며</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아무&nbsp;말&nbsp;없이&nbsp;눈시울만&nbsp;축인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용서하란&nbsp;그&nbsp;이기적인&nbsp;말도&nbsp;없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그렇다<FONT face="Times New Roman">,&nbsp;</FONT><FONT face=Batang>우리&nbsp;사이엔&nbsp;용서가&nbsp;필요&nbsp;없다</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차가운&nbsp;손을&nbsp;잡은&nbsp;나</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두&nbsp;손으로&nbsp;힘껏&nbsp;흔들어주면서</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FONT face=Batang>우린&nbsp;아직도&nbsp;친구야</FONT><FONT face="Times New Roman">!"</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한&nbsp;발&nbsp;헛디딘&nbsp;친구를&nbsp;부축하지&nbsp;않으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나는&nbsp;그의&nbsp;친구가&nbsp;될&nbsp;자격이&nbsp;없지<FONT face="Times New Roman">.</FONT></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255,0,0);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자연의</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nbsp;품으로&nbsp;<FONT face="Times New Roman">/&nbsp;</FONT><FONT face=Batang>허명칠</FONT></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여기엔<FONT face="Times New Roman">,&nbsp;</FONT><FONT face=Batang>눈을&nbsp;잡는&nbsp;건&nbsp;많아도</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마음에&nbsp;가라앉는&nbsp;건&nbsp;적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코를&nbsp;찌르는&nbsp;건&nbsp;많아도</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퀴퀴하게&nbsp;묵은&nbsp;것들뿐이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귀를&nbsp;당기는&nbsp;건&nbsp;많지만</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여과된&nbsp;건&nbsp;적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눈을&nbsp;감고&nbsp;숨죽여&nbsp;들어도</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풀빛&nbsp;숲으로&nbsp;가자</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거기&nbsp;가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반기는&nbsp;꽃들이&nbsp;만발하여&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눈을&nbsp;잡고&nbsp;놓질&nbsp;않고</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솔&nbsp;향기&nbsp;꿀&nbsp;냄새&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쪽빛&nbsp;공기&nbsp;가슴&nbsp;적시고</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풀벌레&nbsp;교향악&nbsp;귀를&nbsp;당긴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어서&nbsp;가자</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옹달샘&nbsp;부르는&nbsp;언덕으로</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거기&nbsp;가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비린내&nbsp;없는&nbsp;샘물&nbsp;맑은&nbsp;냄새</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목을&nbsp;축이고</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민들레꽃&nbsp;노란&nbsp;웃음으로&nbsp;손짓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가슴은&nbsp;한&nbsp;뙈기&nbsp;꽃밭이&nbsp;된다</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어서&nbsp;가자</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산기슭&nbsp;시냇가로</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거기&nbsp;가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우거진&nbsp;버들&nbsp;숲</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여울&nbsp;물&nbsp;졸졸&nbsp;장단&nbsp;맞춰</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하늘하늘&nbsp;춤추어</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어깨도&nbsp;덩달아&nbsp;춤&nbsp;나온다</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어서&nbsp;가자</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종&nbsp;내&nbsp;싸움&nbsp;없는&nbsp;자연의&nbsp;품으로<FONT face="Times New Roman">.</FONT></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장벽</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nbsp;/&nbsp;<FONT face=Batang>허명칠</FONT></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COLOR: rgb(0,0,255);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살아</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있는</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nbsp;한</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언젠가&nbsp;만날&nbsp;수&nbsp;있으리라</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안개&nbsp;걷으면</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무정한&nbsp;세월&nbsp;</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만나고&nbsp;싶어도&nbsp;안&nbsp;되고</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만날&nbsp;수&nbsp;있어도&nbsp;안&nbsp;되는&nbsp;이&nbsp;세상</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만남의</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nbsp;기쁨</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어찌하여&nbsp;슬픔이&nbsp;되어야&nbsp;하나</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기쁨이자&nbsp;슬픔인&nbsp;이&nbsp;세상</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뜨거운&nbsp;찻잔&nbsp;같은&nbsp;만남의&nbsp;기쁨</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식어가는&nbsp;찻잔처럼&nbsp;쓸쓸하나니</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언제&nbsp;다시&nbsp;만날지&nbsp;모르는&nbsp;슬픔</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nbsp;</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생기&nbsp;넘치는&nbsp;글로벌&nbsp;시대</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화강암처럼&nbsp;땅땅한&nbsp;주름&nbsp;장벽</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언제면&nbsp;철들어&nbsp;녹으리오<FONT face="Times New Roman">.</FONT></SPAN><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 <P style="MARGIN-TOP: 0pt; MARGIN-BOTTOM: 0pt" class=p0><SPAN style="FONT-FAMILY: 'Batang'; FONT-SIZE: 10.5pt; mso-spacerun: 'yes'"><o:p></o:p></SPAN></P><!--EndFragment--> </tr></td></table> </html>  
99 버스정류장 / 마루야마 겐지
주진
5064 2011-02-21
내가 좋아하는 소설 도시로 나가 돈을 버는 딸이 가난한 시골 집에 다니러 왔을 때의 분위기는 세계 어느 곳이든 비슷할 것이다. 이 소설속의 정경도 우리나라 70, 80년대를 거친 세대라면 무척이나 익숙한 얘기리라. 시골 사람들이 갖는 도시에 대한 환상은 도시 물 먹은 주인공을 통해 형상화되고 부풀려진다. 그러나 돈의 위력에 무릎을 꿇었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 사이 특히 부모 자식간의 정을 돈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을 게다. 어머니는 딸의 불안을 손수건으로 거둬주고 딸은 보답으로 돈을 줘야 편안하고... 그러나 그 딸이 만약 어머니가 된다면 똑같이 자기 딸의 눈물을 닦아줄 것이다. 그 딸의 딸은 똑같이 돈으로 보답할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누가 되든지 어머니일 수밖에 없다. 설령 딸이 던진 돈을 받아 주머니에 챙겨넣는다 하더라도. 버스정류장 마루야마 겐지 쉬지 않고 걸었더니 예상보다 빨리 정거장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숨 한번 돌리지 않았지만 난 매우 힘들었다. 폐는 마치 구멍이라도 뚫린 것 같은 소리를 내고 무릎관절 부위가 한없이 떨리는 것이 영락없는 환자 같았다. 게다가 당장이라도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땀이 범벅이 되었다. 버스가 올 때까지 앞으로 40분 정도 있어야 한다고 말해놓고도 어머니는 쉼 없이 현도(현에서 관리하는 도로) 저쪽 어두운 계곡 사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먼지가 뽀얗게 이는 꾸불꾸불한 길이 잡초나 논에 둘러싸여 있을 뿐, 버스는커녕 인적조차 없었다. 주위는 무덥고 눈이 부신데다 고요하기만 했다. 근처에 녹음이 없어 나는 거칠게 숨을 헐떡거려야 했다. 논과 수풀 지대에 서있는 것이라고는 그 버스 정거장의 표식이 유일했다. 양산이라도 가지고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헐떡거리는 숨이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단 2년 동안 내 몸의 상태는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졌다. 마을을 떠난 순간부터 엉망이 된 것이다. 약간 경사진 길이 나타나도 소리를 지르고 싶고 한 걸음 떼는 것이 정말이지 귀찮았다. 도시 생활로 나는 상당히 변했다. 그러나 고향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2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리어 깜짝 놀랐다. 놀란 나머지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기로 하였다. 이곳은 지루했다. 이런 땅에서 10여년 헛되이 보냈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얘기하고 싶은 것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 아버지나 어머니, 이웃 사람들은 거의 화제가 없었다. 고작 작년 가을에 일어난 산불 얘기가 화젯거리였다. 모두들 나를 보면 ‘촌티 벗었다’는 말을 연발하며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의심받지 않았다. 하나에서 열까지 곧이곧대로 믿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난 셀 수 없을 정도로 거짓말을 늘어놓게 되었다. 도시 생활에 대해 지어낸 얘기가 꽤 많았다. 얘기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용돈이라도 손에 쥐어주면 더더욱 날 믿어주었다. 내 얼굴을 보려 몰려드는 사람에게 일일이 돈을 주었던 것이다. 눈물까지 찔끔거리면서 즐거워했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사흘 연속해서 각각 5천 엔씩 드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나와 같이 생활하고 싶다 하시며 부상을 당해 읍내 병원에 누워 있는 동생을 홀대하는 듯한 말을 무심코 입 밖에 내고 말았다. 어머니마저 그런 표현을 이웃에 다니며 흘리고 다니셨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거짓말쟁이였다. 동생에게 집을 맡긴 후 나와 함께 도시에서 생활하기로 결정했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도시는 노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못된다, 라고. 돈은 드리지만 함께 생활할 수 없다고. 동생의 얼굴은 아직 보지 못했다. 만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자연스럽게 나을 수 있을 정도의 병으로 일부러 문병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모님이나 이웃사람들이 열심히 권유했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에 병원에 들를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정말 즐거운 휴일이었다. 2년 동안 겪었던 어떤 놀이보다도 재미있었다. 3일 동안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고 담배도 사람들 앞에서는 피우지 않았으며 남자들에게 기세 좋게 대들거나 하지 않고 매일같이 뒹굴거리고 있을 뿐이었지만 언제나 즐거운 기분이었다. 지루했지만 기분은 최상이었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내 입장은 완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풍선처럼 떠다니며 지낼 수 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웃사람들도 나를 우러러보며 한숨만 쉬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나도 피곤해졌다. 적당히 좋은 말만 지껄여대는 자신에게 정나미가 떨어질 대로 떨어져 마침내 내가 지갑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 여러 사람의 표정이 바뀌는 것이 느껴질 때 돌아가고 싶어졌다. 도시로 돌아가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여자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마음껏 떠들고 싶었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돌아간다는 말을 하자 아버지는 울먹이셨다. 하룻밤만 더 자고 가면 안 되겠니? 하고 말씀하셨다. 요 사흘 간 특별한 불만은 없었다. 단지 하나, 부모님이 중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던 일이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 누구나 내 직업에 대해 자세하게 물으려 하지 않았다. 2년 전의 백화점 판매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혹은 대강 짐작을 하고 있어서 일부러 묻지 않는 것이라면 더더욱 쓸모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의 대답 정도는 미리 준비해 두었는데 말이다. 이제 그런 일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로써 당분간 이곳에서의 일을 떠올리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였다. 나는 이곳 마을사람들이 아니다. 게다가 약간의 부자였다. 지금 나는 고향의 그 누구보다도 많은 현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산이나 밭의 의미가 아닌 그리고 저금액도 아닌 단지 지갑의 내용물을 서로 비교해본다면 틀림없이 내가 최고 부자일 것이다. 그만큼 호기 있게 선심을 썼지만 아직 내 지갑은 불룩하다. 그런 내가 머리에 손수건을 두르고 쨍쨍 내리쬐는 햇빛 아래 서있는 것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모습이라면 과거에 도시로 직장을 구하러 나가는 날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날은 참담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울었다. 이웃사람들도 손을 흔들어 주었고 반 친구들이나 학교 선생님, 동생, 그리고 나도 하염없이 울었었다. 내가 숲에서 풍기는 푹푹한 열기에 끊임없이 타격당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여전히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기분 좋은 듯 앉아 계셨다. 쨍쨍 내리쬐는 태양을 어머니는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다. 얼굴과 비슷하게 검게 그을린 손으로 내 가방을 소중한 듯 품에 안고 풀 위에 앉아 매우 즐거워보였다. 어머니가 가끔 현도 건너편을 바라보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버스가 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를, 돈 많은 딸을 분명 자랑스럽게 과시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나를 되도록 많은 고향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훌륭한 옷차림과 유행하는 머리모양, 잘 다듬은 얼굴모양, 비싼 핸드백 등을 전부 보여주고 싶었다. 근처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시골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읍에서 택시를 부리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버스 정거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두세 사람은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디에도 사람 그림자는 없고 주위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컴컴한 계곡 쪽에서 불어오는 썰렁한 바람만 아니었어도 나는 지쳐 주저앉아버렸을 것이다. 시원한 바람만이 의지였다. 달맞이꽃이 살짝 흔들리고 풀숲 깊숙한 곳에서 울던 벌레 소리가 뚝 끊기며 계곡 물로 식혀진 공기가 나를 감싸주었다. 순식간에 땀이 식으며 정수리 부분까지 시원해졌다. 우리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여는 일은 없고 나는 나대로 입을 열 힘조차 없었다. 가까운 읍에서 택시를 불러야 했었다. 그렇게 하면 열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로 땀투성이가 될 일은 없었고 지금쯤 벌써 고향 일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렸을 것이다. 냉방이 잘된 차 안에서 편안하게 쉬며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고 얼음으로 차게 식힌 캔 맥주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그래, 맥주를 마시자, 우선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자, 열차가 달리는 동안 쭈욱 마시자, 그러면 기분 좋을 정도로 취해 그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동거하고 있는 그 여자가 얼간이 같은 남자와 함께 있더라도 나는 아마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가방을 방 한가운데 휙 내던지고 알몸으로 서로 껴안은 채 뒹굴고 있을 두 사람을 내려보며 큰소리로 웃을 것이다. 그리고 위스키로 목을 축이며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큰소리로 밤이 밝을 때까지 시끌벅적하게 소동을 벌이자. 도시 동료들에게 술 없이 사흘 정도를 보냈다고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캔 맥주를 목구멍에 들이붓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목 언저리에 무더위 때문이 아닌 땀이 배어 나왔다. 그러나 맥주가 내 손에 오기까지는 앞으로 1시간 이상이나 걸릴 것이다. 버스가 오기까지 30분, 버스가 읍내 역 앞에 도착하기까지 적어도 40분. 버스가 아닌 몹시 낡은 승용차 한 대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일단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운전하고 있는 남자는 황색 헬멧에 작업복을 입고 있었는데 어머니와는 안면이 있는 듯했다. 어머니는 댐 공사에 와 있다며 좋은 사람이라는 사족을 붙였다. 그러나 난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한눈에 어떤 타입의 남자인지 알아보았다. 남자는 마음씨 좋은 웃음을 띤 채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읍내까지 가는 것이라면 태워준다고 했다. 어머니는 매우 기뻐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내가 근무하는 가게에 오는 손님 중에도 그와 같은 남자가 몇 명 있었다. 방심할 수 없는, 돈을 쓰지 않고 즐기려고만 하는 남자 부류에 드는 사내임이 분명했다. 읍내로 나가려면 인적이 드문 숲을 두 곳이나 지나가야 한다. 남자는 끈질기게 권유하였다. 이런 무더위에 있을 만한 곳이 아니라며 승용차라면 버스보다 훨씬 빠르다며 마침내는 차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어주기까지 했다. “타고 가려무나, 얘야.” 어머니도 쉼 없이 권하였다. 그러나 나는 버스가 멀미도 하지 않고 오랜만에 타고 싶다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자 얼굴은 기름칠을 한 것처럼 발갛게 빛나 마치 토마토 도깨비처럼 보였다. 그러나 추남은 아니었다. 어떤 일이든 태연하게 해치울 수 있는 그런 인상으로, 그 남자도 나를 간파하고 있는 낌새였다. 평범한 여자를 보는 눈초리가 아니었다. 도시에서 자랐거나 도시에 대해 도통한 남자가 아니라면 그런 눈으로 나를 볼 수 없을 터였다. “어?” 남자는 짐짓 연극을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어디선가 한번 만난 것 같은데?” 나는 순간적으로 꼬리를 내렸다. 좀더 말을 걸기 위한 구실임을 알지만 나도 모르게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남자는 하루에도 대여섯 명이나 되었다. 나는 일일이 기억하지 못해도 남자들은 잊어버리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남자는 차를 조금씩 움직였지만 출발하지는 않고 반대로 내 쪽으로 더 다가왔다. 차를 버스 정류장 옆에 정차한 후 엔진을 끄고 여전히 느글거리는 웃음을 띤 채였다. 작업복에는 땀자국이 여기저기에 나 있어 마치 무늬처럼 보였다. 남자는 어머니와 나 사이에 앉았다. 강렬한 암내가 코를 찌르는 통에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를 유혹하는 것을 포기했는지, 그는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공사가 예정보다 지체 되었다는 둥, 말을 늘어놓는 와중에 자신이 아직 독신으로 지내고 있다는 말을 슬쩍 흐린다. 이런 거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가정을 꾸릴 틈이 없다고 남자가 말한 순간 어머니의 눈이 갑자기 빛났다. 나는 더욱더 경계심이 일었다. 그 남자가 차에서 내린 그 순간부터 언제라도 몸을 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불안정한 눈초리로 연신 주위를 살피는 모양이 괴이했다. 나이 먹은 어머니를 해치우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것이다. 우람한 팔을 한번만 휘두르면 모든 상황은 끝난다. 그리고 그 다음 내가 당할 차례이다. 아니 그는 그 전에 좀더 조용하고 숙련된 방법으로 최선을 다 해볼 작정일 것이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우선 자신과 어머니가 얼마나 친밀한 사이인가 나에게 보여준 후 다시 나를 차에 태우려도 할 의도는 아닐까? 어떤 방법이든 그런 수에 걸려들 내가 아니었다. 겨드랑이 액취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남자의 목표는 나뿐이 아닐 수도 있다. 나와 내 가방속의 내용물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입을 다물고 계시던 어머니의 말문이 드디어 물 만난 고기처럼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말로 나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고 계셨다. 집안부터 시작해 내 지갑 속까지 좔좔 풀어 놓는다. 그리고 어머니는 남자의 팔과 다리를 만지며 엄지손가락에 슬쩍 힘을 줘보기도 한다. 그것은 죽은 할아버지가 농사용 말을 살 때 사용하시던 방법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모른 채 땀에 젖은 담배에 불을 붙여 멋쩍은 듯 뿜어댄다. 남자가 가끔 곁눈으로 이쪽을 보았지만 나는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착한 딸 이라우.” 라고 말한 순간 나는 가방을 열고 담배를 꺼내 들었다. 양절담배를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드린 후 입에 물고 마을 남자의 한 달분 수입보다도 비싼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의 표정은 경악 그 자체였다.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그런데 남자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그 장소에서 위스키 병으로 나발을 분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입고 있는 옷을 모조리 벗어버린다 해도……. 어머니는 끝까지 말이 없었다. 담배를 피우는 여자가 어떤 범주의 인간에 속하는지 진즉부터 어머니는 말씀하시던 터였다. 입을 다문 어머니는 어두운 계곡이 아닌 여름 햇살이 쨍쨍 내리 꽂고 있는 남쪽 계곡을 바라보았다. 그곳의 대기는 성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늦는 구먼요, 버스가.” 남자가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남자는 아예 상대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어쩌면 저 남자와 내가 정말 만난 적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가 자신만만해 하는 것은 그 당시의 일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까? 설령 그렇다고 치더라도 나는 전혀 상관없었다. 발뺌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첫째, 도시에는 나와 비슷하게 생긴 여자들이 수도 없이 널려있다. 내가 알고 있는 여자 중에서도 쌍둥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닮은 여자가 세 명이나 있다. 코와 눈 모양만 정돈하면 대개의 얼굴은 거기서 거기이다. 세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 붙일 틈도 내주지 않는 내게 데었는지 남자는 불안해했다. 그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대략 감이 왔다. 그러나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무서운 모의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때다. 그가 원하는 것을 남김없이 주고 목숨을 지키는 쪽이 영리한 판단일 것이다. 이윽고 남자는 묵묵히 일어섰다. 나는 갖고 있던 핸드백을 살짝 옆 덤불 속에 감추고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남자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 어깨에 손을 얻어 상냥한 말을 남긴 후 다시 뜨거운 목욕탕을 방불케 하는 차에 올라탔다. 그는 단념한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는 일을 그는 깨끗하게 포기해버린 것이다. 남자는 나를 향해 “조심하시게”라는 말을 던진 후 강렬한 액취를 풍기며 여름을 향해 사라져갔다. 날아오르던 흙먼지가 풀과 벼 위로 떨어지며 하얗게 물들였다. 잠시 후 벌레 소리가 또 들려왔다. 어두운 계곡에서 불어온 바람이 내 땀을 식혀주곤 이내 멀어져갔다. 피우던 담배를 개미집에 비벼 끄고 덤불 속에 감춰두었던 핸드백을 움켜쥐었다. 난 아직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남자가 정말 포기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게 보일 뿐 실은 다른 동료를 부르러 간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숲 속 어딘가에서 강제로 버스를 세워 타고 올 작정일 수도……. 안심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시간은 아직 있었다. 어머니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평소의 어머니로 돌아가 있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가끔 내 쪽을 쳐다보았지만 결국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마 담배 사건에 대해 묻고 싶었을 것이다. 언제부터 피우게 되었는지 묻고 되도록 피우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운운하고 싶었을 것이다. 댐 공사로 와 있던 그 남자가 갑자기 일어서서 돌아 가버린 것도 그 담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어머니가 실제로 그런 말을 한다 해도 변명하지 않을 작정이다. 담배 피우는 여자가 생각한 것처럼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잠자코 담배 연기를 뿜어 보여주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 보라색 연기가 몇 번 피어올랐다. “용돈 좀 드릴까요?” 갑자기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런 말을 할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혀가 제멋대로 움직여버렸다. “아버지한테는 비밀로 할게.”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어머니 주머니 속에 지폐 한 장을 찔러 넣었다. 그렇게 하면 어머니 머릿속의 떨떠름한 그 무엇이 단숨에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어머니의 눈빛이 더욱 반짝인 것 같았다. 막 받은 돈을 주머니에서 꺼내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것을 어디에 감출까 고민하는 것 같더니 양말 속 깊숙이 집어넣었다. 갑자기 어머니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어머니가 늙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아직 젊었을 적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금부터 십 년도 더 지난 일이다. 어머니는 바짝 마르셨다. 똑같은 생활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내오는 동안 겨울 건초처럼 지쳐버린 것이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생이다. 그것은 아버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살아갈 날이 많다. 아직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근래 2년 동안 내게는 무서운 것이 없었다. 도시, 남자, 세상, 결혼,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물론 언젠가는 나도 어머니처럼 말라비틀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도 좋다. 그래도 어머니의 10배는 살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는 이미 죽고 없는 존재일 수도 있다. 이미 몇 년 전에 자신도 모른 사이에 가까운 사람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은 나에게 용돈을 받을 때만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나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전에는 두 분 모두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신 적이 없었다. 컴컴한 계곡으로부터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이 뚝 끊겼다. 내 몸은 땀으로 젖어갔다. 후끈거리는 열기 속에서 2년 동안 일하다보니 땀에는 익숙해졌다. 그러나 태양열 아래 고스란히 몸을 드러낸 상태로는 참을 수 없었다. 눈을 반쯤 감고 있어도, 눈이 부셔 손수건을 뒤집어써도 효과가 없었다. 나는 일어섰다 앉았다를 몇 번인가 반복하여 어서 버스가 오지 않나 초조해하며 현도로 빠지는 길 건너편을 노려보다가, 태연자약하게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쑥 위에 앉아 손발을 움츠린 채 연신 눈을 깜빡거리며 엉뚱한 곳을 보고 계셨다. 그 모습은 나무통에 들어 앉혀놓은 모습과 흡사했고 또 새끼를 끌어안고 있는 엄마 원숭이와 닮기도 했다. 나는 드디어 폭발했다. “언제 버스가 오는 거야!” 마음속에서는 단지 버스가 늦는다고 중얼거렸을 뿐인데 막상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은 험악한 어조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아직 올 시간이 되지 않은 것이다. 계속 투덜거리며 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택시를 불렀으면 이런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둥, 집에서 좀더 기다리다 천천히 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둥 어머니에게 악을 쓰며 퍼부어댔다. 그랬다. 사흘 전 2년 만에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을 때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다. 이런 재미없는 곳에서 사흘간이나 지낸 것은 어머니에게 퍼부어댈 수 있는 꼬투리를 잡기 위함이었다. 아버지에게 퍼부어대고 싶었다. 이웃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살아갈 거냐고 큰소리로 말하고 싶었다. 쭈그리고 앉아 있는 어머니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나는 화를 냈다. 마을에 남아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모두, 다 멍청이들이야. 그러나 어머니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며 날 상대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게 아닐까. 그렇지만 나는 무시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시당했다고 강하게 느꼈다. 그것을 느낀 순간 외치고 말았다. “가, 돌아가, 이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외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어린애가 아니니까, 나 혼자 버스 같은 거 탈 수 있어!” 어머니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에게 등을 떠밀릴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억지로 어머니를 일으켜 세워 집 쪽으로 밀었다. 어머니는 잠시 한숨을 쉬며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질질 끄는 발걸음으로 비탈길을 내려갔다. 어머니가 멈춰서거나 뒤를 돌아볼 때마다 나는 심하게 흔들렸다. 이유 없이 화를 내거나 발아래 돌멩이를 걷어차기도 했다. 어머니의 모습이 둑 아래로 사라진 그 순간 만에라도 버스가 왔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차가운 캔 맥주를 시작으로 다시 새로운 생활로 돌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를 무시한 것이다. 버스는 오지 않았다. 도착 시간이 되었지만 주위는 조용하기만 했다.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곳의 버스가 늦는 일은 흔했으나 결국 나는 발끈하고 말았다. 갖고 있던 핸드백을 머리 위에서 마구 흔들어댔다. 핸드백을 붕붕 돌려대는 나에게 두 여자가 덤벼들었다. 머리를 풀어헤친 채 날카로운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막 닫은 가게 안에서 두 사람을 쫓아다녔다. 모두 재미있어 하며 날 제지하려 하지 않았다. 한 여자는 사투리를 흉내 내며 나를 놀려댔다. 그리고 다른 한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 얼굴로 이런 장사를 잘도 하겠구나, 라고. 지금은 사투리가 섞이지 않은 표준어를 구사할 수 있고 돈을 들인 덕분인지 얼굴도 한결 예뻐졌다. 그래도 동료 여자들과 늘상 싸움질을 해댔다. 손님이 적은 날에는 누구나 안절부절못했다. 그때마다 나는 핸드백을 돌려댔다. 핸드백 입구가 열려 화장품 도구가 쏟아지고 지갑 내용물들이 공중에서 춤을 추었다. 만약 돌풍이라도 불고 있었더라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다행히 바람은 없고 지폐는 내 주위에 떨어져 내렸을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쪽저쪽 부지런히 손발을 벌려 기듯 하며 돈을 주워 모았다. 몇 번인고 몇 번이고 세 보았다. 아무래도 한 장이 부족했다. 아까 어머니에게 용돈이라고 드렸던 것을 생각해내기 전까지 미친 듯이 풀숲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다. 돈을 지갑에 잘 집어넣은 후 핸드백 깊숙이 넣고서 핸드백을 꽉 안았다. 아기라도 껴안듯 가슴에 꼬옥 안았다. 아직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어머니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하고 싶지 않았지만 생각이 났다. 쫓아가고 싶었다. 다시 용돈을 드리고 싶었다. 곧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지폐 한 장을 주머니에 찔러주지 않으면 왠지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열차 안에서 차가운 캔 맥주를 마셔도 아무 느낌도 일지 않을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하룻밤 더 묵고 내일 다시 출발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청량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읍내 택시를 불러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잠깐 손을 흔들어주고 재빨리 헤어지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런데 결국 나는 버스 정류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담배를 피우며 작렬하는 태양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아직 버스가 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달맞이꽃 밑에서는 여전히 벌레가 울고 있었다. 어두운 계곡 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내 몸을 간질이고 지나갔다. 나는 떨고 있었다. 이런 무더운 날씨에 이렇게 떨어야 될 이유를 나도 알 수 없었다. 마치 고개를 끄덕거리는 인형처럼 연신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황금색 빛이 있을 뿐,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이곳이 만약 도시였다면 설령 한밤중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달맞이꽃 수만큼이나 많은 인간들로 득실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나 혼자였다. 무시하는 놈조차 없었다. 나는 계속 떨었다.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한여름의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심한 오한이 느껴졌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고 초조해할 기운조차 사라져 태양 아래 멍하게 앉아 있었다. 일사병에라도 걸린 것이 아닌가, 생각 될 정도였다. 알고 지내는 몇몇 여자들과 모여 술을 마시며 떠들썩하게 놀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 기분이었다. 고향을 떠나고 한동안 전철 안에서, 떨기도 했고 울기도 했다.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었을 당시에는 주위의 모든 것이 두려웠고, 차가웠고 공허했었다. 지금 왜, 더구나 이런 무더위 속에서 떨고 있어야 하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2년 전의 내가 아니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알고 돈도 갖고 있다. 그 순간 갑자기 생각났다. 댐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예의 그 남자가 혹시 다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 차가 다시 눈앞을 지나가는 일이 있다면 나는 손을 들어 정지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남자가 채 말을 걸기도 전에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탈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나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듯 하여 간헐적으로 몸을 떨었다. 오한이 이는데도 땀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땅 위에 떨어져 흡수되거나 지나가는 개미위에 떨어지기도 하였다. 문득 고개를 들자 그곳에 어머니가 서 있었다. 어머니가 다가오는 낌새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어머니는 어느 사이엔가 되돌아온 것이다. 그때의 어머니는 생기가 있어 보였다. 도리어 내가 참담한 모습을 한 채 늙어버린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무표정하게 일어서서 몸에 붙은 모래를 손으로 털기도 하고 핸드백을 만지작거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오른손이 천천히 다가오는가 싶더니 내 얼굴을 부드러운 헝겊으로 포근하게 감싼다. 어머니는 손수건 대신 항상 가지고 다니는 수건으로 내 얼굴의 땀을 닦아주려 한 것이다. 땀뿐만이 아니라 코까지 훔쳐 주려고 했다. 나의 떨림은 거짓말처럼 멈췄다. 나는 화장이 지워지는 것을 염려하여 어머니의 손을 살짝 제지하며 낮은 목소리로 “됐어”라고 했다. 어머니는 수건을 매우 소중한 물건인 듯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만약 그곳에 버스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그 어색한 시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당황했을 것이다. 버스는 예정보다 15분이나 늦게 어두운 계곡 사이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앞 유리창과 범퍼를 반짝반짝 빛내며 흙먼지를 날리면서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어머니는 현명하게 손을 흔들어 운전수에게 신호를 보냈다. 엔진열기를 훅 내뿜으며 타이어가 요란하게 땅 위에서 버티는 소리가 났다. 짐을 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어머니의 몇 번이고 운전수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은 ‘우리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어머니의 옛 버릇이었다. 내가 아직 어렸을 적 읍내 치과병원에 다닐 때 어머니는 자주 그렇게 나를 버스에 태워 보냈었다. 뒤따르는 승객이 없어 자리에 앉자마자 버스는 출발했다. 어머니는 이쪽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옛날 그대로였다. 나도 약간 손을 흔들었다. 그것도 옛날 그대로였다. 다른 점은 그 후였다. 나는 황급히 서둘러 지갑을 열고 지폐를 한 장 꺼내 들고 창밖으로 던졌다. 흙먼지와 함께 그 지폐는 어머니 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나는 두 번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창밖으로 던져진 돈이 무사히 어머니 손에 쥐어졌는지 알 수는 없었다. 돈을 던진 것을 안 어머니가 당황하여 부산을 떨며 그 돈을 주웠을 수도 있고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아직도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서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버스 정류장으로부터 멀어진 지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버스 안은 시원했다. 직사광선을 쬘 염려도 없고 바람도 끊임없이 불어왔다. 나는 코에 손을 대 보았다. 어머니도 아까 그곳을 만졌다. 그러나 모습을 바꾸기 위해 삽입한 플라스틱 때문에 코끝은 썰렁했다. 이미 나는 건강을 회복했다. 다시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 얼음 조각에 묻어둔 캔 맥주를 입에 가져갈 때의 느낌을 상상하자 목 주위가 싸아, 해졌다.  
98 몸의 진화, 정신의 진화 /박희용 imagefile
편집자
2750 2011-01-28
몸의 진화, 정신의 진화 양백산인 박 희 용 ‘進化’하면 누구나 몸의 ‘점진적 변화’를 생각하는데, 몸의 진화와 병행하는 게, 오히려 앞서는 게 ‘정신 진화’이다. 즉 몸의 진화를 이끄는 원동력은 정신이다. 몸의 진화 다음에 정신의 진화가 따라오는 게 아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정신이 꼭 고급의식 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微物의 단순감각도 정신의 일부분이다. 비록 저급하지만 말이다. 일단 통틀어서 정신이라고 정의 하는데, 그 정신의 속성은 감각, 의식, 생각, 의지 등이며 각각에는 관습적인 면과 창조적인 면이 혼재되어 있다. 생활상에서 경험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하는 기술적인 방법에 대한 욕구를 정신이 느끼면 그것이 아주 서서히 -물론 우주적 시간으로 보면 순식간인- 몸의 변형-변화를 초래한다. 사회적 진화란 관계의 진화 -그것이 다양한 인간 개체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도출해내는 적당한 관계-를 의미하며, 그것은 개체들의 정신작용에 의해 결정되고 조정된다. 그것은 群集社會가 갖는 기본적 특성이기도 하다. 그러한 특성이 저변에 흐르기 때문에 群集社會에서 小數의 권력 독과점은 항구적인 당위성을 갖지 못한다. 즉 무리를 구성하는 개체 수가 증가하면서 상호 이익과 손해를 조정하고, 권력에 대한 참여 욕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소수의 권력자들은 다수의 群集에 의해 차츰 거세되면서 참여 민주주의가 역사적 당위가 된다. 사실 인류사는 얼마나 야만스러운가. 인류 역사 곳곳에 동물성이 적나라하게 표출되어 있다. 원시시대는 두말할 나위 없고, 봉건왕조시대만 해도 왕과 극소수 기득권 계급은 국가권력이라는 포장으로 싼 무소불위의 동물성을 휘둘렀다. 그들에게 인류의 보편적 가치란 아예 생각 밖의 것이었다. 또, 전쟁은 어떠한가. 각 시대마다 뜻있는 현인들이 나서서 지성과 문화를 말했지만 야만은 어느 시대에나 펄펄 끓고 있었다. 영장류에서 分岐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분기 초기엔 他 영장류로부터 많은 여성 사피엔스들이 강간을 당했을 것이다. 왜냐면 사피엔스들의 정신력은 우수했을지 몰라도 육체적 힘은 영장류 짐승들보다 약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非 호모 사피엔스들의 DNA가 인류의 피에 일부 섞여들었을 것이다. 種의 분화가 오랜 시간 계속되어 異種 교배가 안 되고 여성 사피엔스들의 미적 감각력과 남성 선별력이 발달하면서, 他 영장류로부터의 DNA 혼류가 그치게 되었다. 이때부터 원시적 인류 문명이 태동하게 되었다. 수십만 년 동안의 태동기를 거쳐 ‘문명’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인류 문명이 발아한지 약 1만년, 인류 문명은 종점이 아니라 도중에 있다. 문명의 원동력은 ‘정신’인데, 그 ‘정신’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이 완성되지 않은 원인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野獸性’이다. 他 영장류와의 교배가 가능하던 수백만 년 전 시대에 호모 사피엔스의 DNA에 혼입된 非人類種들의 DNA가 갖는 ‘野獸性’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영장류 DNA 인류 DNA 700만년 전 1 C 21 C 30 C 40 C <시대별 지성도> 그 DNA는 차츰 소멸되고 있는 중이다. 짐승 DNA는 劣性이기 때문에 優性 DNA인 인류 DNA에 밀려 거세되고 있다. 물론 인간은 동물이다. 그래서 영장류 DNA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他 영장류와는 특이한 성질을 갖는 인류 DNA를 따로 진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몇 세기 후에는 짐승 DNA는 거의 소멸하고 건강한 인류 DNA가 인체의 전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野獸性 DNA'는 정도의 차이이지 인간 누구나 갖고 있다. 野獸性은 惡이고 인간성은 善인데, 인간은 누구나 악과 선을 공유하고 있다. 정신이 진화 도중에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간 심성은 악이 점유하는 부분보다 선이 점유하는 부분이 훨씬 넓다. 그러나 악의 부분이 훨씬 많은 인간 -살육이나 폭력을 저지르거나, 전쟁을 일으키거나, 지배자가 되어 국민을 노예로 취급하며 권력을 광포하게 휘두르거나, 보편적인 국민 여론을 무시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강간하거나, 방화하는 -들을 세상에서 아직 볼 수 있는데, 그들은 '野獸性 DNA'가 충만한 자들이다. 그러나 善과 평화를 애호하는 인류 정신사의 큰 흐름 속에서 그들의 DNA도 멀잖아 소멸하고 말 것이다. 문제는, 정신적 DNA의 淨化進化는 바람직하지만, 자칫하면 육체적 DNA가 퇴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정신을 고도로 사용하되 육체도 알맞게 사용해야 한다. 육체 없는 정신은 없다. 정신적 진화에만 치중하다 육체가 퇴화되어, 결국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種 의 멸종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정신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정신과 육체, 야수성과 인간성’, 이런 말은 상대적 개념이다. 상대적 개념이란 절대적 개념 위에 존재할 수 있다. 그럼 절대적 개념이란 무엇인가? 바로 자연이다. 자연이 있기 때문에 생물이 존재하고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문명은 자연이라는 절대적 개념을 아주 무시하고 있다. 자연의 한 부분임이 분명한 인간이, 자연을 종속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다. 편리한 생활을 위하여 자연 자원을 무작정 채취할 뿐만 아니라, 자연을 변형, 파괴, 오염, 왜곡, 수몰, 제거시키는, 절대적 개념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다. 제 한 몸과 가족의 생활 편리를 위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쌓고 자연을 남용, 파괴, 오염시키는 행위란, 먹이와 번식을 위해선 저돌적인 야수성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어느 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서, 자연을 함부로 변형, 파괴하는 행위는 ‘선과 악’의 차원이 아니라 생물 존재론적 차원에서 삼가고 삼가야 할 일이다. 현대 문명은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갖는데, 부정적인 면을 사상하고 긍정적인 면을 키워나가는 것이 바로 ‘진화하는 정신’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다. ‘야수성’을 묽게 하고 ‘인간성’을 진하게 하는 것이 생각하는 갈대인 인류의 ‘진화의 올바른 방향’이 아닐까 한다. ‘야수성’의 본질과 ‘인간성’의 진화 과정을 정확하게 투시함으로서 나라 안과 밖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각종 난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분자생물학. 미셀 모랑쥬. 몸과 마음. 2002> <진화론의 유혹. 데이비드 슬론 윌슨. 북스토리. 2009> <화담집> <퇴계집> <율곡집>  
97 말/ 정의선 file
편집자
3818 2011-01-28
11. 02월 9호 수필 말. 말. 말. 말의 성찬이요. 지옥이요. 천국인 세상이다. 말이란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는데 사람을 음해하고 매도하기위해 던지는 말은 살인미수와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글도 별반 다름없을 것이다. 교언성색의 미사여구로 꾸민 글을 보노라면 글의 아름다움이 퇴색하다 못해 그 글을 읽는 자신이 부끄럽고 초라해질 때도 있을 정도이니 말과 글의 치부가 한껏 회자되는 세상인 모양이다. 이러함에 일찍 삶과 말, 글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상주 출신 학자인 息山이만부(李萬敷·1664-1732)의 ‘息山先生文集卷之十一 雜著’에 “脩恥贈學者 (부끄러움을 닦는 법)”을 남겼나보다. 부끄러움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없어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있다. 때문에 부끄러운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능히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면 능히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부끄러운 일에 부끄러워함이 있는 사람은 그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운 일에 부끄러워함이 없는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음을 가지고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까닭에 부끄러움이 없게 되려고 생각하게 되고, 부끄러움이 없음을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까닭에 부끄러움이 있으려 생각하게 된다. 부끄러운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능히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면 능히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이것을 일러 부끄러움을 닦는다고 한다. 요컨대 이를 닦아 힘써 행할 뿐이다. 有恥可恥。無恥亦可恥。有恥者。必無恥。無恥者。 必有恥。故恥無恥。則能有恥。恥有恥。 則能無恥。恥有恥者。以恥爲恥也。恥無恥者。 以無恥爲恥也。以恥爲恥。故思無恥。 以無恥爲恥。故思有恥。恥無恥而能有恥。 恥有恥而能無恥。則是謂脩恥。要脩之力行而已。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천국에서 보내는 첫 번째 유언’ 이란 글로 비하하고 글을 퇴색시킨 한 언론인의 사설에 분노하여 쓴 패러디 댓글이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천국에서 보내는 첫 번째 유언’이 아닐까하여 쓴 그 유명한(?) 언론인 역시 죽어 이런 글을 남기지 않았을까 추론하며 물론 역시 똑같은 말과 글의 추함이 더해졌겠지만 치미는 화를 삭이지 못해 쓴 글이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설은 반대로 읽으면 되겠기에 지면 관계상 생략.) “歲月(세월)이 끝났다. 그리고 그도 떠났다. 그의 혼령이 있다면 단 한 사람의 국민도 자신의 죽음을 슬퍼해주지 않는 모습을 보고 어떤 감회에 젖었을까? 어쩌면 하늘나라에서 남은 우리에게 첫 번째 유언처럼 당부의 말을 쓴다면 이렇게 써 보냈을지 모른다. 국민 여러분, 못난 저를 위해 그간 힘들게 읽어준 글들에 연민과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언론인 노릇도 부족했고 修身齊家(수신제가)도 제대로 못 하고, 나라와 국민 여러분께 번듯하게 남겨 드린 것도 없는 저에게 언론인이라는 과분한 명예 주신 점 또한 고맙습니다. 요 며칠 새 저는 구정물이 난무하는 천국(川國)에서 만난 많은 분들의 말씀과 위로를 들으며 문득문득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깨우치게도 됩니다. 민주주의를 깨고 독재를 위해 애썼다는 칭찬도 들었습니다. 패밀리신문들이 고맙게도 저의 모자란 모습들을 좋은 모습으로 비쳐 보여주신 건 감사하지만 저는 천국(天國) 옆 동네 천국(川國)에서 제 자신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사이비 기자도 못됩니다. 저의 죽음은 민주광장에서 최루탄에 맞은 열사의 죽음도 아니고 광주의 아픔 속에서 희생된 뜨거운 魂들의 죽음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토록 슬픈 척 애도한 사랑, 가슴 아리도록 고마울 뿐입니다. 방송이나 인터넷은 더 이상 저를 마치 독재를 수호하다 희생당한 영웅인 양 그리지 말아 주십시오. 겸손이 아닙니다. 저는 저를 사랑한 패밀리신문과 아끼고 믿어준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에서 당부하고 싶습니다. 많은 언론인과 나의 옛 동료에게도 당부합니다. 나 같은 친구를 언론인으로 내세웠음이 내가 부끄럽다’고…. 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임에도 시민광장을 봉쇄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치는 분들, 그리고 ‘배후를 발본색원하겠다.’며 촛불을 든 유모차 어머니들을 소환하고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마저 패대기치며 의경의 작은 실수로 돌리는 공권력과 언론인 후배들에게도 저는 충고하고 싶습니다. 이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고 법치와 공권력을 지키기 위해 현 대통령이었던 측근까지 의혹이 있나 없나 수사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별로 구속할 사안이 없어 구속영장이 기각되었지만 그런 용기와 원칙적 자세는 칭찬하면 했지 탓할 일이 아닙니다. 본분을 다한 공직자에게 무슨 ‘책임’을 묻겠다는 겁니까? 살아서 이런 글을 올린 스스로가 부끄럽고 다시는 나 같은 언론인이 없기를 충고하며 당부하고 싶습니다. 저와 가족을 위해 울어주신 신문사 사장님께도 한 말씀 드립니다. 저의 반쪽이라시면서 ‘나도 똑같이 했을(곡필) 것이다’고 하신 것은 큰 언론사 대표가 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천국(川國)에 와 보니 그런 말씀은 저에겐 결코 위로가 아닌 화합을 깨고 분열을 부추기는 선동이란 생각이 들 뿐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딸아, 신문사 사장님이 내 처지를 감안해 행여 퇴직 연금을 중단하더라도 이 아비 너희 모르게 미국 땅에 아파트 숨겨둔 게 정말 있으니 끝까지 항의하거나 원망하지 말거라. 그것이 우리 집안과 이 아버지의 남은 자존심을 지켜주는 길이다. 그리고 엄마랑 함께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을 찾아가 나 대신 위로와 사죄를 전하거라. 그게 사람 사는 도리였다. 그리고 친 독재, 반언론, 자네들은 喪主(상주)도 아니면서 골방에서 참회하며 기도나 하고 있지 나를 위한 애도 기간 신청은 왜 해서 TV 앞에 얼굴을 치 들고 다녔나? 자네들을 부추긴 신문사 사주도 고맙거나 인자하다는 생각보다는 겁먹은 것 같은 유약함과 법 정신의 원칙을 허무는 것 같아 앞날이 걱정스럽네. 신문사 사장이 배짱 하나는 죽은 나에게 배워야겠다는 생각마저 드네. 일부 보수층 여러분도 이젠 국민에게로 돌아가십시오. 민심이 흉흉한 이때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세상 교육이나 더 시켜주십시오. 극 보수, 타도 진보 여러분도 힘들지만 참으십시오. 경제가 난리인 이때 여러분의 손에는 아직 공권력이나 철거 대신 民主(민주)와 휴먼빅딜들이 쥐어져야 합니다. 오늘의 양보와 희생은 언젠가 나라와 국민이 모아서 갚아주실 것이고 또 그렇게 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들이 저를 사랑하신다면 천국에서 보내는 저의 첫 번째 유언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국민 여러분 고맙고 미안합니다. “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글도 이런 댓글도 사라져야할 글의 폭력이다. 수십 년째 말의 폭력과 난동에 지친 몸으로 새해에는 당부하고 싶다. 이십년 전부터 ‘이사 갔다.’ ‘파산했다.’ ‘이혼했다.’ ‘돈을 횡령해 고발당했다.’ 했지만 신묘년 올해까지 이사 가지 않고, 파산하지 않고, 이혼하지 않고, 고발당한 일 없으니 소설 같은 말은 더 각색을 첨가하여 그럴듯한 말을 해주면 좋겠다. ‘이효리 같은 미인과 데이트를 하더라.’ 이런 군침 나는 이야기는 절대로 사양하지 않고 거짓말투성이인 그대들을 칭찬하며 우리 말, 우리글의 아름다움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한해를 보내련만……. 초대받지 못한 땅 때로는 절규(絶叫) 때로는 묵언(黙言) 구비마다 채색 달리하며 유유히 흘러가는 저 洛江 보며 상념에 잠기지 말자. 거기 담긴 나의 영혼 혼돈이란 이름으로 외면하고 있다. 물 어린 시시껄렁한 모습일랑 추억조차 남기지 말고 그저 물 흐르듯 세월의 뒤안길 흘려버리자. 버리자 지워 버리자. 손잡은 인연도 손 놓은 악연 모두 나의 몫이다. 백화산 모퉁이 저승문 열고 저승골 닫고 남은 흔적도 없이 바람 저리 부는데 섶다리 외로운 자태로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미친 하늘 너머 숨죽인 세상 부르고 있다. http://www.podoo.com 나는 농부이로소이다.  
96 소녀의 손거울 속 소년/윤이주 file
편집자
3571 2011-01-28
11.02월 9호 소설 소녀의 손거울 속 소년 윤이주 심야 영화가 끝난 극장 복도를 터벅터벅 걷는다. 관객의 발자국이 사라진지 오래다. 복도는 텅 비어 있다. 저주받은 마술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모텔 노트르담으로 향한다. 생의 마지막 몇 시간을 위해 노트르담으로 향하던 수많은 발자국에 쌓이던 달빛을 나 역시 맞이하고 있다. 아직 누구도 비껴가지 못한 곳으로 목숨을 넘겨주러 이 밤을 내가 걷는다. 요절이란 얼마나 매혹적인 사건인가. 마지막 한 호흡은 짧고 단호해야 한다. 도대체 이게 무엇일까. 모양이 꼭 초승달인 이것은 황소의 뿔과도 흡사하다. 그것이 빠져나간 양 옆구리에서 뭉텅뭉텅 솟구치는 피를 막기 위해 나는 숨을 참는다. 극장에서 모텔까지는 무수한 생략이 매복되어 있다. 노트르담에 이르는 길은 언제나 끊겨 있다. 하지만 나는 곧 모텔입구에 이르는 길을 찾는다. 내가 낸 길을 찾지 못한다면 나는 요절을 앞둔 천재가 아니라 바보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바보가 아니다. 나의 길이 이리 저리로 거미줄처럼 만난다. 대체로 나는 미로에 빠진 쥐처럼 길을 찾지 못해 오랫동안 한자리를 맴돌곤 했으나 최근에 내가 낸 지름길을 성공적으로 이을 수 있었다. 길은 이제 더 이상 장애가 아니다. 스르륵 스르륵. 입체감이라고는 없는 얇은 막이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끊임없이 움직인다. 노트르담은 수직 절벽 저 너머에 있다. 절벽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노트르담의 이 절벽은 하나의 공포다. 아니, 흑마술처럼 보일 것이다. 이 절벽을 힘들게 기어오를 필요는 없지만 당당히 걸어 들어가야 한다. 어려서부터 나는 기어다니는 놈들에 대해 턱없는 공포와 경멸을 품고 자란 까닭에 이 절벽을 통과하는 일이 노트르담 입성의 가장 어려운 지점이지만 이 모텔 이용자 모두가 그러하니 불평할 수는 없다. 절벽이 거대한 파충류란 사실을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판판한 얇은 저 막이 실은 사십오 분을 걸어가야 하는 파충류의 표피라는 것까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실내는 적당히 은은하다. 몇 개의 실내조명 아래서 매니저 김이 나를 맞이한다. 그는 절대로 손님을 맞기 위해 일어서는 법이 없다. 그저 눈을 내리깔고 열쇠 함에서 열쇠를 꺼낼 뿐이다. 또한 그는 단 한 번도 웃은 일이 없다. 여기서는 결코 나에게 말을 붙여온 적도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호기심을 보인 적도 당연히 없다. 그저 빈틈없이 한결같은 동작으로 싸구려 티를 벗지 못한 분홍색 사각 플라스틱 접시를 내 쪽으로 내밀 뿐이다. 그 안엔 306이란 나무 표찰을 가진 열쇠가 들어있다. 그 열쇠를 볼 때마다 나는 빨리 객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발작처럼 터져나오곤 한다. 플라스틱 접시에서 열쇠를 거머쥐자 투명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지하 층 없이 지상 위에 세워진 3층짜리 건물을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는 사방이 투명한 유리벽이다. 땅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다시 땅으로 전류가 흐른다. 굳이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접시에서 열쇠를 거머쥐는 순간 언제나 문은 저절로 열린다. 이런 게 바로 마술이다. 마술이……, 오늘은 유려하지가 않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지 않는다. 프런트에 앉은 김이 오늘따라 유심히 엘리베이터 내부를 주시한다. 하지만 나 역시 그에 대해 어떤 의문도 품지 않는다. 내가 김을 처음으로 만난 건 작년 크리스마스 밤이었다. 그 날은 바로 모나미 극장에서 막 새 영화 몇 편을 동시에 개봉하던 날이었다. 그날은 또 모텔 노트르담이 개업 60주년을 맞은 날이기도 했다. 물론 내가 그 사실을 안 건 매니저인 김을 통해서였다. 영화가 끝나고 텅 빈 객석에 남아 영화의 뒷감당을 하며 쭐쭐 눈물까지 흘리고 있던 나에게 유난히 키가 작다싶은 사내가 다가왔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사내가 성이 난 얼굴을 감추듯 숙이며 가벼운 인사를 해왔던 것인데 나도 얼떨결에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받고 말았다. 그는 대뜸, 호주머니 안쪽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작은 손거울 하나를 꺼내는 것이었다. 손잡이와 둥근 테두리가 상아로 둘러진 고급스러운 손거울이었다. 이제는 내 호주머니 안쪽에 들어와 버린 이 작은 거울에 대해 몇 마디를 미리 얘기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아마 모두가 믿기 어려운 얘기일 것이다. 하더라도 나는 이 작은 손거울의 비밀을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손거울을 지닌 자의 처절한 운명이다. 두려워하면서도 얘기를 꺼내고 싶은, 혼자 간직하기엔 숨가쁜 그런 유혹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김의 눈이 나에게서 데스크로 옮겨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문 역시 투명하므로 매니저 김을 나는 각도를 달리해서 좇는다. 그는 고개를 들면 나와 눈이 마주칠까봐 아주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느라 애쓰는 중이다. 엘리베이터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김의 짓이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늘 제 곁에 세워두어야 안심이 되는 놈이다. 자주빛 융단을 밟아온 발의 감촉이 현관 대리석을 구별해낸다. 나쁘지 않다. 늘 그렇듯 방문은 열려있다. 상아로 만들어진 이 거울이 어찌하여 노트르담의 김에게까지 전달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김의 말처럼 어느 달 밝은 가을밤 노트르담을 에워싸고 있던 바다 어디쯤에서 불쑥 솟아난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몽롱한 어조만 아니었다면 나는 그것을 사실로 믿을 만큼 김의 얘기에 도취되어 있었다. 내 모든 감각을 불태워버린 영화 뒤끝에 이어진 만남이었던 탓일 것이다. “형씨, 그때 말이오, 광활한 우주 같은 소녀가 나타나더란 말이오. 광활한 우주, 그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같다는 말이 그때야 실감으로 다가옵디다. 소녀의 용모를 표현할 재주가 있다면 난 아까 그 영화의 곱추처럼, 참, 그이의 모델은 로트렉이 분명해 보이오, 그이처럼 좋은 화가가 되고도 남았을 거요. 이것 봐요, 난 이미 곱추는 되었으니 말이오, 히히. 허나 난 그림을 그릴 재주는 가지지 못했으니 그저 막연하게 소녀를 얘기할 수밖에 없소. 노트르담 앞마당으로 들어오는 그 소녀는 푸른빛이 도는 보라색이었지요.” 김과 만난 그 날은 겨울비치고 꽤나 굵은 비가 밤 내내 극장 뒷골목위로 떨어져 내렸다. 김의 그 소녀 얘기보다 야식집 앞에 쌓이는 빗소리가 내 맘 가득 차지하고 있었지만 가끔은 그 광활한 우주 같다는 소녀를 영화 속의 여배우와 대비시킨 것도 같다. 그러나 본 것과 볼 수 없는 것과의 차이만큼 즉흥적이고 주관적인 대비였음을 인정한다. 그 날 김의 얘기 중에 빗소리를 멀찍이 밀어내고 내 맘으로 들어온 게 바로 이 작은 손거울 얘기였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젠 내 호주머니 안쪽을 차지하고 있는 이 거울 말이다. 김의 말을 대략 종합해 보면 이 거울에 대해 소녀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소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김은 불룩 솟은 등을 다 가리는, 풍성한 제 머리칼만큼 기름진 음성으로 얘길 꺼냈다. 야식집안의 축축한 습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김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으나 울림이 컸다. 나는 그가 꺼낸 말머리가 소녀가 한 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화법으로만 받아들였으나 그게 거울 이야기의 독특한 형식이란 걸 곧 알게 되었다. 거울에 대한 직접․간접의 모든 표현 앞에 붙는 일종의 여음인 이 말을 여기서는 한 번만 쓰겠지만 거울 얘기의 형식이 ‘소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는 일종의 서사시였다는 걸 밝혀둔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 형식을 완전히 동일하게 따를 수는 없다. 나의 기억 능력엔 분명한 한계가 있고 시대 탓을 하기는 뭐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식대로만 얘기를 옮길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충분하고도 뼈아프게 깨닫고 말았으니까. 이제 우리는 모두 누구나 자기식대로만 말하면 된다. 어쩌면 벌써 이 거울의 비밀에 다가가기 시작한 독자도 있을 것이다. 기억력과 직관이 모두 떨어지는 사람들을 위해 부언을 하자면 ‘소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여음이 바로 거울의 비밀을 푸는 열쇠란 사실을 지금 내가 지나치게 친절하다 싶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부터의 내 동작을 상상해보기 바란다. 지금 내가 호주머니 속으로 손을 가져간다. 상아로 만든 작은 손거울을 꺼내 들고 내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퍽이나 아름답긴 하지만 딱 손바닥 만한 평범한 손거울일 뿐이다, 아직은. 지금 여기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그 자체로써 아름다운 것은 없는 법이다. 아름답게 보인 것은 그 작은 거울이 내 동작과 표정을 읽어내는 보통의 거울이란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조개가 아름다운 것은 그 조개를 다른 여느 조개들과 비교할 수 있는 조개다운 유사성이 있은 뒤에야 가능한 것이다. 그리하여 조개 중에 어떤 것이 특별히 아름다운 것은 누군가가 그것을 기억하면서부터일 테니까. 하물며 누군가의 정교한 손길로 만들어 진 이 작은 거울을 보고 내가 어찌 아름다움을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아름답다고 느낀 이 순간, 바로 이 순간에 거울은 마술을 부리기 시작한다. 마술 역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수만 가지 모습으로 저를 드러내지만 적어도 몇 사람이 마술이라고 느끼려면 공감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저것으로 변할 수 있지? 하는 강한 의문을 동반하는 변화가 그 장소에 함께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드러나야 한다. 이 거울의 마술을 누구나 볼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문(呪文)은 입을 동글게 말고 목구멍에서 궁글린 목소리로 노래하듯 이렇게 시작된다. “소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거울을 보며 나는 주문을 왼다. 그리고 프런트에 앉아있을 매니저 김을 떠올린다. 놀라운 일이다. 생각만 하면 여기 이 거울이 상을 드러낸다. 해상도가 아주 높은 그림이 나타난다. 그는 지금 프런트를 나와 계단을 오른다. 계단은 언제나 가벼운 왁스냄새와 함께 정갈하게 반들거린다. 계단을 올라오는 그의 발이 보이고 내 방 호수가 거울에 나타난다. 306. 그가 지금 내 방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거울엔 복도에 깔린 흑자주색 융단이 보인다. 그가 융단을 밟아오고 있다. 나의 방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거울엔 이미 뒷산이 보인다. 그가 이미 뒷산을 마주보고 서 있다면 오른쪽 제일 끝 방인 내 방 앞에 이미 도달했다는 얘기다. 다시 김의 신발이 보인다. 그는 흰색 바탕에 빨간 줄이 들어간 볼링화를 신고 있다. 또다시 붉은 융단이 보이고 거울엔 비상구를 표시하는 초록색 등이 보이고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김이 드러난다. 그는 늘 이렇게 나를 주시해오고 있다. 이 거울을 통해 나는 무수히 많은 것과 자유자재로 만나왔다. 그러나 내 마지막 몇 시간이 거울의 상에 뺏기는 걸 나는 원하지 않는다. 남은 시간을 최대한 자유롭게 보내고 싶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분명하다. 내 상념을 내 신체에 묶어놓는 일이다. 잠을 자겠다는 뜻이다. 대리석으로 바닥을 깐 욕실로 들어가 면도를 시작한다. 샤워시간은 5분이 넘지 않는다. 깨끗이 세탁된 하얀 가운을 입기 전에 내가 가장 아끼는 향수 ‘소녀의 향기’ 한 방울을 귓불과 손목에 바른다. 기분을 바꾸기에 ‘소녀의 향기’만한 향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이제 나는 편안한 잠 속으로 빠지기 위해 이 방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등(藤)으로 만든 흔들의자에 기댄다. 서툴지만 정성을 많이 쏟은 탓에 앉고 싶다는 강한 매혹을 불러일으키는 데까지 성공한 이 의자는 지난 여름, 근 한 달을 이곳에 눌러 살며 만든 내 작품이다.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등가구 제작은 나에게 대단한 활력을 찾게 해준 일이었다. 김이 만들어준 화덕 위에 가마솥을 얹고 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양옆에 설치한 길다란 나무 기둥에 장대를 매달고 등을 걸쳐놓고 가마솥에 불을 땐다. 물이 끓으면 가마솥 뚜껑을 열고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로 등을 쪄낸다.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몇번 실신을 하기도 했다. 더운 여름날 조그만 창고 안은 후끈거리는 열기로 모든 게 흐물거렸다. 잘 쪄서 말린 등나무 줄기를 한 올 한 올 매어가는 작업은 그야말로 신선놀음처럼 즐거웠지만 말이다. 흔들의자의 형태가 잡혀진 뒤에 나는 니스칠까지 곱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균형감을 찾지 못해 의자는 보기보다 불편하다. 노트르담을 감싸고 있는 습기는 등나무 의자에 치명적이다. 야자과의 덩굴 식물로 내가 뭔가 만들어냈다는 은근한 자부심으로 견디고 있지만 말이다. 꽃무늬 사각 쟁반에 놓인 컵 모양이 퍽 인상적이다. 상반신의 푸른 여체. 나는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있다. 잠이 쉽게 들지 않는 날은 유리창 전면을 초록으로 뒤덮은 커다란 측백나무와 잠시 얘기를 나눈 후,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 같은 침대 시트를 젖히고 들어가면 좋지만 오늘밤의 달빛은 너무 밝다. 김이 등나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지금 그는 빽빽이 들어선 측백나무 숲으로 들어서려고 한다. 저곳은 노트르담의 차고다. 바람이 부는지 그가 고개를 떨구고 오랫동안 뺨에 양손을 대고 서 있다. 차고는 사방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지상으로부터 3층이나 올라온 곳에서도 둥그렇게 빈 부분만 보일 뿐 주차장 마당은 보이지 않는다. 손님이 있었던가. 김을 따라 하얀 양산 하나가 측백나무 숲을 빠져 나와 뒷마당을 가로지른다. 오랜만에 내 맘이 뜨거워지고 있다. 저 아래서 바람과 춤을 추던 강아지풀을 모두 밀어내고 대리석을 깔아버린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이 궁금하다. 김의 두서너 발짝 뒤에 서서 머뭇거리던 하얀 양산이 멈춘다. 김이 하얀 양산에게로 다가가면 그때서야 양산은 멈칫거리며 움직인다. 가까스레 현관 앞까지 당도한 두 사람은 마당을 지나올 때보다 더 오랫동안 멈춰 서 있다. 아셨겠지만 이곳은 앞마당이 없다. 현관은 뒷산 쪽으로 나 있다. 혹, 저 하얀 양산이 이 거울의 주인은 아닐까. 때마침 이곳에 든 손님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갑자기 바빠진다. 그러나 거울의 주인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을 나는 아직 모른다. 이제까지의 노력이 실패해서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아직 남은 몇 시간이 있다는 사실은 새삼 즐거움을 준다. 사실 지난 일 년이 즐겁지 않았다면 나는 진작 수면제를 털어넣고 쉽게 마술에서 풀려났을 것이다. 마술은 풀렸겠지만 그걸 내가 볼 수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나는 오늘까지 유예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몇 시간의 깊은 수면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다. 일이 잘 되면 새로운 밤을 맞아 오랜만에 숙면할 것이고 일이 잘못된다 하더라도 깨지도 않을 고요한 잠 속에 더 깊이 들어가면 그만이다. 인터넷 채팅방에 아무데나 불쑥 들어가서 거기 누구 없어요, 이런 사람 없어요, 혹시 광활한 우주 같은 소녀를 만난 적 없어요, 하는 건 여간 황당한 방법이 아니다. 내가 차라리 죽고 마는 게 낫지 아무에게나 불쑥 이런 사람 좀 만나게 해주, 하기는 죽기보다 싫다. 내가 왜 이렇게 죽는 타령을 하는지 어쩌면 나는 그걸 먼저 얘기했어야 옳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여간 독자를 짜증스럽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당신들, 특히 내 고정 독자들은 나의 스타일을 이미 파악한 분들이 아닌가. 죽는 마당에 스타일까지 바꿔가며 애쓰고 싶지 않은 내 맘을 조금은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저 내 식대로 무식하게 나아갈 테니 너무 나무라지는 말라. 어쨌거나 지금은 오늘 자정 무렵에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수만 가지 이유 중 생각나는 한두 가지만이라도 밝혀야 옳겠다는 걸 인정한다. 달빛 환한 밤에 하얀 양산을 쓰고 이곳에 나타난 이는 잠시 잊기로 한다. 우선, 내가 오늘 자정 안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 중 가장 매혹적인 것은 내가 요절이란 말을 내 전 영혼을 바칠 만큼 사랑한다는 것이다. 내 스스로 정한 요절의 조건은 서른 살이다. 오늘이 내 서른 살의 마지막 날이라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까? 또 한 이유는 바로 이 작은 손거울인데, 이 손거울의 주술에 빠지고 일 년을 버틴 사람은 없다. 그러한 손거울의 내력 또한 내 죽음의 커다란 이유가 될 것이다. 내가 이 손거울을 김으로부터 받은 게 꼭 일 년 전 자정 무렵이었으니 어쨌거나 별다른 수를 찾지 못하면 자정 무렵 나는 다른 세상으로 들어갈 것이다. 미흡하나마 이 정도가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이 거울과 내 목숨을 함께 넘겨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더라도 도대체 김으로부터 왜 내가 손거울을 넘겨받았냐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데, 내가 벌써 수백 차례 품어 본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나도 모른다. 그날 김은 아주 절박해 보였다. 극장 입구에서부터 야식집으로 향하는 내내 그는 어두운 골목을 훑는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골목 여기저기에 쏘아붙이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가 주기에 나는 이걸 받았다. 내가 아는 이유는 이것 이상은 없다. 이 요상한 거울의 마술을 미리 알았다면 결단코 난 손거울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급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유연애 사상을 가진 내가 마법을 풀어주는 광활한 우주 같은 소녀, 그 한 소녀를 찾아 나설 이유는 그때도 지금도 없다. 나는 누군가를 찾아 단 한 걸음도 서성거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소녀, 소녀…. 제길 어디까지가 소녀란 말인지. 또 광활한 우주는 뭐고, 자기가 그 소녀를 봤다면 저 스스로 찾을 것이지 나한테 왜 넘긴 거야, 망할놈의 곱사등이 같으니라구! “형씨, 생각해보슈. 난 몸도 불편하고 무엇보다도 하루 종일 안내책상에 붙박여 있어야 하는 직업으로 먹고 산다오. 그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 모텔에 누가 오겠소. 길을 내지 않은 곳이고, 가까이 배 한 척이 자나간다 해도 눈길 하나 줄 수 없는 측백나무만 빽빽이 둘러쳐진 섬일뿐더러, 내 좀 있다 한번 데리고 갈 테니 잘 봐보오, 거긴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라오. 다람쥐나 산토끼를 손님으로 받는 날은 그나마 고놈들 귀여운 짓에 맘이라도 푸근해지지만 멧돼지나 살모사 같은 놈들이 고개를 디밀어봐요. 아이쿠야 비명이 절로 나온다오. 형씨, 내 사정이 이런데 내일이면 내가 이 손거울을 받은 지 꼭 1년이 된단 말이오. 제발 나 좀 도와줘요. 이 거울을 제발 좀 받아주오.” 그날 밤, 김은 광활한 우주 같은 소녀는 고사하고 뺑덕이네 같은 여편네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인상을 흠씬 풍겨대긴 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저 역시 별 뾰족한 수도 없는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뭔 수가 있다고 이걸 넙죽 받아 버렸는지, 생각할 때마다 가슴엔 수많은 의문부호만 쌓일 뿐이다. 그래 솔직히 인정하자. 거울의 마술에 두 달은 정신없이 빠져 있었다. 두 달은 룸펜을 벗어나 명망 있는 몽상가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꿈꾸던 요절의 필수 조건인 그럴듯한 작품도 하나 나오는가 싶었고, 늘 표 한 장 끊어 갖고 들어가 하루 종일 뒹굴던 영화관 생활도 슬슬 물리기 시작했던 때여서 거울의 마술이 묘하게 내 맘을 끌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더라도 좀 더 면밀히 따지고 예측해서 1년이 지난 후에는 어찌 될 건지에 대한 한두 가지의 방안은 세웠어야 옳았다. 아니다. 결국 우리는 죽음이라는 뻔히 보이는 끝을 향해 줄달음치지 않는가. 우리 중 누구도 부드러운 흐름을 견뎌내지 못한다. 딱딱한 껍질을 둘러치기 위해 음악을 듣고 회랑을 걸으며 그림을 본다. 머리에 집이 그려지면 그 안에 무수히 잡다한 가구를 채우고 싶어한다. 그것도 모자라 다시 머리를 흔들며 연필을 준비하여 종이에 머릿속을 정리해보는 어리석은 짓까지 한다. 나의 느낌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만용으로 좀 더 반듯하고 그럴듯하게 선을 긋는다. 논리적이도록 스스로를 부추기는 것이다. 내가 작은 손거울을 만나기 전까지 내 삶은 그랬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 틀에 매이지 않은 헐렁한 룸펜이었을지 몰라도 나는 안다. 룸펜이야말로 수많은 눈들 아래서 스스로의 공간을 구획하고 스스로 분규하며 스스로 더 촘촘해진 사람이란 걸 나는 안다. 현실은 절대로 유연하지 않다. 이런 제길, <산타클로스의 흰 수염>이 그렇게 공전의 히트만 치지 않았어도 난 좀 더 인간적으로 고민이란 걸 했을 거다. 게다가 두 번째 작품 <소녀의 향기>로 나는 대중들과 화려한 결별을 이미 계획해 두고 있었단 말이다. <소녀의 향기>를 쓰며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철학적 고뇌와 감각적 문체가 절묘하게 만난, 정말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이라는 말들이 조심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또 대다수의 냉혹한 평이 이어지리라 예감했다. 그걸 굳게 이겨내며 초탈한 도인처럼 어느 먼 곳으로 사라지는 나의 시나리오도 완성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나리오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책이 출간된 지 보름 만에 출판계에 밀리언셀러로 등록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져 나는 사실 그때부터 더욱 황폐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이해불가다. 사오십 대 아줌마들이 그 책을 그렇게나 사서 뭐에 썼을라나? 소녀들은 그렇다 쳐도 떠듬거리며 글을 읽는 유치원생 여아들에게마저 <소녀의 향기>는 어마어마하게 팔려나갔다. 난 돈벼락을 맞고 말았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S향수회사에서 ‘소녀의 향기’ 이름값으로 백만 불을 책정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덕에 나는 남아공 월드컵도 귀빈석에서 관람했다. 아프리카 전역을 누비다가 돌아왔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엄밀히 말하면 <소녀의 향기>는 99퍼센트가 표절인데 말이다. 물론 형식의 표절을 의미한다. 나도 한 사람의 작가로써 심각한 내용의 표절이었다면 진즉 작가직함을 버렸겠지만, “소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를 후렴구로 반복했다는 것 외에 사실 내용이야 독창적인 내 것이다. 그러나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로 고칠 수 없는 그 이상한 뉘앙스를 내가 100퍼센트 빌어쓴 건 사실이다. “소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차임벨 소리가 숨죽인 교정을 흔들어 깨워요. 나는 성난 파도처럼 교문을 부수고 도로를 점령하여 앞으로 앞으로 흘러나갑니다.”와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차임벨 소리가 교정을 흔들어 깨운다. 나는 성난 파도처럼 교문을 부수고 도로를 점령하여 앞으로 앞으로 흘러나간다.”는 그야말로 천양지차가 아닌가. 이런 구절 때문에 학생들이 열광했을 거라고 나름대로 진단하지만 그래도 나는 씁쓸하다. 뿐만 아니라 “소녀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혼란과 동요를 기억하게 해준 당신에게 감사해요. 아무 것도 몰랐어도 예감이 먼저 왔지요. 당신을 만난 그날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어요.” 지랄. 이런 부분은 중장년층과 아줌마들에게 상당한 어필을 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이런 믿기지 않는 판매부수보다는 지겨운 하품을 원했다. 나는 대중이 아니라 소수의 마니아가 내 세계를 탐닉해 들어올 줄 알았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컬트 작가의 꿈을 키워왔던 것이니. 중학생으로써 마지막 겨울을 나던 열여섯의 난 남들처럼 얼굴에 여드름이라도 나면 좋았겠지만 계집애처럼 뽀얀 얼굴이 창피스러워 그룹 미팅이 있을 때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어두운 극장 안으로 도망 다니곤 했다. 마침 우리동네 모나미 극장이 수리 끝에 개봉관으로 오픈을 했다. 극장은 지린내를 풍기지도 않았고 플라스틱 의자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시멘트 바닥에 아무렇게나 침을 뱉는 사람도 없는 세련되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입구부터 예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넓고 낮은 계단을 따라 지린내가 풍겨나는 입구가 아니라 거울처럼 빛나는 질감의 좁은 계단을 출입하면서 나는 계단에 비치는 내 얼굴을 사뭇 감탄하며 바라보곤 했다. 아름다웠다. 미래는 아마도 매끄럽고 반질거리는 것들이 득세할거라는 예감도 얻었던 것 같다. 극장 내부는 또 어땠는가. 매표소 직원들의 산뜻한 유니폼과 정갈한 말투, 해사한 눈웃음에 나는 오랫동안 정신을 놓고 모나미 극장을 드나들었다. 부드러운 융단이 깔려있는 극장 안은 아홉 개 열 개의 칸으로 나뉘어져 적당히 작았고, 푹신한 소파는 언제나 날 흥분시켰다. 영화가 상영되기 전부터 나는 충분히 흥분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달빛에서 햇빛까지>란 영화가 내 인생에 들어왔다. 그 영화를 보고 내가 받은 충격을 다시 술회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가 보는 현실이 바로 그 현실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건 말할 수 있다. 그날 난 모나미 극장에 드나든 이래 처음으로 부드러운 소파가 주는 이질감 때문에 울었다. 울다가 잠이 들었다. 저기 나보다 먼저 거울을 손에 넣어 점점 작아지며 등에 커다란 짐을 지고 있는 김이 보인다. 오늘 김은 나를 대하는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뒷마당을 서성이고 있다. 김에 대해서 내가 뭘 잘못알고 있는 걸까? 하얀 양산의 여자―나는 하얀 양산을 쓰고 이곳에 온 이가 확실치는 않으나 여자라고 생각된다―가 내가 묵고 있는 3층이나 2층에 방을 배정받았다면 그이도 자주빛 융단을 밟아갔을 테고 객실이 두 개뿐인 1층에 들었다면 그는 자잘한 조약돌을 맨발로 밟아가 방문을 열었을 것이다. 어쨌든 어느 방이든 그이가 현관 오른쪽 벽에 붙은 열쇠함에 이미 열쇠를 꽂았다면 그이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전등불 아래 망연히 서 있는 자신만 보게 될 것이다. 나는 그이에게로 향하는 호기심을 서둘러 막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거울을 이용한 지름길을 택하진 않겠다. 거울 속에 비춘 상이 사실 그대로라고 장담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나는 작은 손거울로 세상을 관찰해왔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이제 어쩌면 나는 모텔 매니저 김에게 다가가 내 목소리로 뭔가를 물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아주 오랜만에 의문이 목소리를 타고 하늘을 날지도 모른다. 빗자루를 탄 마법사처럼. 등으로 만든 이 의자는 앉고 싶다는 유혹에 걸맞지 않게 불편하다. 삐거덕거리며 한 쪽으로 기울기 때문에 내 왼발은 늘 굳게 방바닥을 지지하고 있어야 한다. 현관으로 들어가려던 김이 걸음을 돌려 노트르담을 끼고 사라지고 있다. 내가 이곳에서는 볼 수 없는 앞쪽으로 그가 걸음을 옮기고 있다. 노트르담 전면은 건물과 측백나무 사이의 오솔길이 있을 뿐이다. 아니 넓은 해자(垓字)가 있다. 그렇다. 여긴 사실 섬일 리가 없다. 아무도 함께 살지 않는 건 분명하나 섬은 아니다. 제법 넓은 해자를 가진 성(城)일 따름이다. 건너편에서 누군가 손을 흔들기만 한다면 김은 간단한 조작으로 부교를 만들어 내는 지도 모른다. 그가 지그시 밟으면 땅 속 깊이 들어가 다리를 만드는 사각의 돌이 어디에 있는지도 나는 알 것 같다. 김이 다시 모텔 현관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내가 아래층으로 내려갈 차례다. 전깃불이 이제는 햇빛에게 제 임무를 서서히 이전해도 좋은 시간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살아 있다. 방을 나온 나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아직은 어둠이 채 빠져나가지 못한 비상계단을 택한다. 2층 계단을 돌자 바람의 군사들이 돌진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쏴아 쏴아 솟구쳤다 낙하하는 물소리. 프런트 앞 작은 연못에 분수가 작동하는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인 모양이다. 융단 끝에 매달린 황금색 수술이 마지막 층계 끝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웬만한 청년 앉은키만한 바위들과 물가식물을 알맞게 배치한 일반객실 크기의 인공연못가 평평한 바위 위에 앉은 사람은 내 예감대로 여자다. 긴 머리에 맑은 피부를 지녔다. 그 옆에 있는 이는 방금 현관으로 들어온 김이다. 김이 나를 보며 손짓을 한다. 절대로 노트르담에서 있을 수 없는 파격적인 행동이다. 나는 김을 바라보고 그런 나를 김의 옆에 있는 여자가 바라본다. 원망과 두려움을 담고 있는 눈이다. 여자는 다시 김에게 고개를 돌린다. 무언가 말을 건넨다. 여자는 쉬지도 않고 말을 하고 있다. 김은 탐스러운 머리칼을 흔들며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 멈추기 힘든 사람이 있다. 이 여자가 바로 그런 부류인 모양이다. 가끔 내 쪽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쉽게 연민하고 또 쉽게 배신한다. 현실에 너무 주눅이 들었거나 그 반대일 가능성이 많은 유형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끊고 들어가 그들과 어울리기보다 계단에 앉아있는 게 내겐 더욱 편하다. 다시금 분수가 세차게 작동하기 시작하고 물소리에 섞여 두 사람이 나누는 말은 분명하게 들리지 않는다. 분명히 하얀 양산을 받고 들어온 이가 있다. 바로 저 여자다. 저 여자가 궁금하다. 주머니 속 거울을 만지작거리는 손에 땀이 밴다. 아직 시간은 많다. 소녀는 딱딱한 간이의자에 앉아 습관적으로 의자 팔걸이를 찾았다.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려놓는 흉내를 내곤 했다. 그 자세로 묶은 머리를 다시 풀어 손으로 빗질을 했고 천천히 다시 묶었다. 초조한 듯 잘근잘근 입술을 씹고 있는 소녀가 그래도 푸근한 눈빛을 주는 것은 커다란 유리창이었다. 소녀의 왼편에 놓인 야자수 잎이 불타오르는 석양빛을 가려주고 있었다. 소녀가 반쯤 그늘에 들어가 있을 때 짧은 머리를 한 소년이 장구 모양으로 생긴 컵에 물을 따랐다. 소년은 서향인 창을 탓하며 블라인드를 쳤다. 소녀가 땀을 송송 흘리며 어설픈 배려를 감행하던 소년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물속에 잠긴 오리발처럼 모텔 뒤꼍을 뒤덮은 강아지풀이 부산스럽게 요동치고 있었다. 소년은 집착과 책임 사이에서 점점 더 석고상처럼 굳어갔다. ‘흔들의자가 있으면 좋겠어.’ 소녀는 딱딱한 간이 의자에 앉아 강아지풀에 그림자를 드리우던 등나무의 둥근 터널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얘, 일어나. 물에 흠뻑 젖겠어.” 무엇인가가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있다. 나는 놀라 벌떡 일어난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작은 분수대 옆이다. 소년은 두리번거리다가 저를 건드린 소녀를 발견한다. 김과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노트르담이 아니고 모나미극장이다. 저만치로 멀어지는 사람들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극장 관리인 최씨 아저씨가 열쇠 꾸러미를 쩔렁거리며 다가오고 있다. 소년을 보고는 켁켁 쉰 소릴 낸다. “명우야, 오늘은 집에 가서 자라. 청소는 내일 하자꾸나. 대신 내일은 공휴일이니까 아침부터 나오너라. 1관에서 9관까지 죄 청소를 해야 돼. 내일 지배인이 오는 날이잖니. 오늘은 꼭 집에 가야한다. 어머니가 좀 나아지셨는지 모르겠네. 너 정말 학교는 안 다닐꺼야? 중학교는 나와야지.”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투명한 눈빛으로 소년을 바라보고 있다. 최씨 아저씨가 불룩한 배를 더욱 앞으로 내밀며 어기적거리고 돌아가자 소녀도 극장 안을 두리번거리며 출입구를 찾는다. 소년이 일하는 모나미 극장은 엘리베이터가 네 대나 되고 비상계단도 세 군데나 있다. 그러나 그 일곱 곳을 찾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좁은 통로를 따라가면 어김없이 출구를 만날 수 있겠지만 중간에 길을 잃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에겐 은빛 알루미늄으로 마감한 극장의 복도는 공포스럽다. 소녀의 까만 학생구두가 어느 쪽으로 나가야 하는지 몰라 당황하는 것 같다. 들려진 오른발앞머리가 이리저리 방향을 탐지하고 있다. “그쪽 아니야. 날 따라와.” 저도 모르게 튀어나간 말에 소년이 놀란다.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고 챙모자를 깊숙이 눌러쓰는 소년의 눈에 바닥에 떨어진 작은 물체가 들어온다. 무언가를 떨어뜨리고도 소녀는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자박자박 소년을 향해 걸어온다. 다가오는 소녀를 외면한 채 소년은 그 아이가 떨어뜨린 것을 향해 걷는다. 소녀가 황망한 걸음으로 되돌아가 제가 떨어뜨린 걸 주워들 때까지 소년은 걸음을 멈추고 아무 말 없이 소녀가 주워드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상아로 테를 두른 손거울이었다. “지금 여름이니?” 소년은 소녀의 반팔 원피스와 제 겨울 잠바를 번갈아보며 중얼거린다. 어째 그것도 몰라?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푸른빛이 도는 보라색 웃음을 퍼뜨린다. 소녀가 상아로 만들어진 손거울을 작은 가방에 넣는다. 저것이 먼 훗날 어찌어찌하여 저에게 와서 저를 죽음으로 몰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더이상 하지 않기로 한다. 소년은 극장 밖을 나서며 챙모자를 더욱 깊게 눌러쓴다. 비가 온다. 소녀의 하얀 원피스가 다 젖을 것이다. 도로에 떨어지는 빗방울 수를 세어가던 소년의 눈에 하얀 색 바탕에 빨간 줄무늬가 그려진 볼링화가 들어온다. 소년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든다. 뒤에서 따라오던 소녀가 그 남자를 향해 달려가 안긴다. 안기는 게 아니라 안아준다. 아담한 소녀의 키보다 그 남자의 키는 반뼘쯤 더 작다. 부녀지간인지 연인사인인지 모르겠지만 둘은 다정해 보인다. 걸음을 돌리는 소년의 등에 비의 장벽을 뚫고 온 소리 한자락이 닿는다. “오랜만이야.” 소녀의 그 남자가 소년에게 웃음을 날리고는 소녀와 맞잡은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걸어간다. 불룩 솟은 그의 등에다 소년이 비열한 웃음을 흘린다. 소녀가 무언가를 길바닥에 떨어뜨린다. 세계가 구부러지고 엉키더니 산산조각난다. 조각난 세계 위로 방울방울 빗방울이 흐른다.  
95 가을, 누가 지나갔다 외 1편/ 진 란 file
편집자
4487 2011-01-28
11.02월 9호 시 가을, 누가 지나갔다 진란 숲을 열고 들어간다 숲을 밀고 걸어간다 숲을 흔들며 서있는 바람 숲의 가슴에는 온전히 숨이다 숨을 내쉬었다가 들이키니 나뭇잎의 숨이 향긋하다 익숙한 냄새, 킁킁거리며 한참 누구였을까 생각하였다 그대 품에서 나던 나뭇잎 냄새가 금세도 이 숲에 스며들었었구나 개똥지빠귀 한마리 찌이익 울며 숲 위로 하늘을 물고 날아갔다 어떤 손이 저리도 뜨겁게 흔드는지 숲이 메어 출렁, 목울대를 밀고 들어섰다 거미줄을 가르며, 누군가 지나갔다 붉은 것들이 함성을 지르며 화르륵 번졌다 숲을 밀고 누군가, 누가 지나갔다 지상에서의 하루 바람과 함께 하늘을 걸어가는 너랑 구름과 함께 바람을 걸어가는 나랑 지상에서 단 하루, 뜨겁게 피어날 수 있었다면 나중에, 아주 나중에 슬픔도 없을까 아주아주 오랜 후에 후회도 없을까 꽃은 자주 피어나고 숫한* 꽃잎들 뛰어내리는데 떨리는 마음, 내 무덤에 숨겨두고 그리운 마음, 하늘에 흔들리면서 내가 가고 없는 조등에 무어라고, 나의 무엇이여라고 쓸 수 있을까 그때에야 네 이름 석자 쓰면서 이슬받이 기울여 추억한다고 하면 기쁠까 저 풀잎, 쉼을 얻지 못하고 저 바람, 멈춤을 구하지 않고 가슴에 묻어버린 네 눈동자와 네 숨소리와 너의 따스한 손과 어깨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한번 피었다 지는 저 가을꽃도 제 설움에 겨워 다시 꽃으로 피지 않으리라고 꽃으로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고 흐린 세상에 그런 말 남기고 싶어질까 *숫한:숫하다:(형)순박하고 어수룩하다 진란 2002년 시전문계간《주변인과詩》로 작품활동 《주변인과詩》편집장 역임 현재 월간《우리시》교정위원 이메일 : ranigy21@hanmail.net  
94 어두워지면 외 1편 / 권순자 file
편집자
5104 2011-01-28
11.02월 9호 시 어두워지면 권순자 염전에 소금이 쏟아져 내렸다 오랜 동안의 그리움이 알알이 맺혀 허공에 가늘게 떨며 빛나다가 어둠이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시간이면 어제의 기억들이 하얗게 쏟아졌다 허기진 노래처럼 울림 깊은 소리로 온몸으로 피었다 비우고 다시 비운 뒤에 찾아온 현기증 나는 달빛 타는 속내 파동으로 읽어내는 몸짓 잠결 같은 물소리는 바래고 바래서 하얗다 여위는 파도소리 오랜 호흡도 우려내면 저렇게 투명해지는가 핏빛 울음도 붉어지던 눈자위도 기다림의 시간을 달이고 달이면 꽃보다 환한 빛으로 태어나는가 섬 일몰이 황홀하게 살벌한 시간의 체를 거치고 상처를 거부하는 울음이 수면으로 가라앉는 밤 병원 침대에 누워 구름냄새를 맡는구나 삶의 그을음이 온통 뼛속에 침전물로 남아서 바람처럼 스치는 달빛을 받네 고운 꽃 쏟아내던 때가 언제였던가 싸늘한 고양이 울음이 잉크처럼 번지는 밤 외로운 어둠의 강 위에 몸 둥둥 떠가네 차라리 헤엄쳐 갈까 저 하늘로 저 바다로 바람소리 창틈으로 물 새듯 쏟아들고 몽환처럼 서성이는 달빛이 서러워 내 몸을 핥아대는 먹먹한 그리움이 아파서 욱신거리는 온몸을 질질 끌고 내 영혼은 한 점 섬으로 떠도네 슬프고 다정한 눈동자를 보라 추락하지 않는 노래는 귀전에 출렁거리고 내 신음은 중얼거리며 날아오르네 울렁거리는 울음을 물고 밤새 뒤척이는 눈동자를 보라 허공에 바람을 물고 질척이는 섬을 보라 권순자 경주 출생. 2003년 《심상》등단. 시집『우목횟집』,『검은 늪』 포항문학회원.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시인협회회원. 이메일 skjm70@empas.com  
93 여름 밤 외 1편 /임영석 file
편집자
4329 2011-01-28
11.02월 9호 시 여름 밤 임영석 내가 잠든 척해도 스며드는 꽃향기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오는 하늘의 수많은 발자국 나는 결코 잊지 않겠다. 내 몸의 바퀴 내 목구멍은 늘 불안한 외발 자전거다. 임영석: 1961년 충남 금산출생, 1985년 현대시조 봄호에 2회천료, 200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지발표 우수작 선정,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받음, 시집으로 『이중 창문을 굳게 닫고 』,1987년 『사랑엽서』, 1990년 『나는 빈 항아리를 보면 소금을 담아 놓고 싶다』, 1992년 『어둠을 묶어야 별이 뜬다』, 2006년 『배경』, 2008년 『고래 발자국』, 2009년이 있음. 스토리문학 부주간 등 활동 주소: 220-797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1850 건영아파트 105동 11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