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09호...
   2019년 07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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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73482 2014-11-03
694 중원에서의 해후 외1편/김학천 file
편집자
636 2018-10-01
중원에서의 해후 초나라와 한나라가 천하를 다투던 기반(棋盤) 중원(中原)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 거창한 초하(楚河)와 한계(漢界)를 사이두고 우리는 기약없이 만난다 당신은 대안(對岸)에 서있는데 바람에 나붓기는 긴 머리카락 사이로 형양(滎陽)의 수많은 이야기가 나름대로 넘나들면서 력사의 어느 한 단락의 사랑을 려과해낸다 리상은(李商隱)의 너무나 많은 재간을 이어받았고 류우석(劉禹錫)의 천고에 전해지는 시구를 터득하였거늘 담담한 눈길에는 당송(唐宋)의 완약한 운치가 비껴있어 전통과 현대가 융합된 경전적인 예쁨이 반짝인다 나는 오로지 묵묵히 그대를 지켜보면서 오랜 옛적의 순진함이 9월의 하늘로 탈바꿈하여 제멋대로 진주같이 령롱한 비방울을 뿌려준다고 생각해본다 맑은 렌즈는 서서히 초점을 맞추면서 경치의 깊은 배경에 따라 머나먼 창상(滄桑)을 그려보고 생긋이 웃는 한 찰나 심장이 세차게 고동치는 정경을 마음속깊이 새겨넣는다 혼 해빛아래 아득하게 보이는 먼산은 흰색으로 찬연하다 푸르른 하늘아래 성스러운 광환속에 천년의 적설은 흰빛으로 눈부시다 반만년의 고로한 전설이 반만년 한개 민족의 정신이 고스란이 하아얀 빛으로 번뜩인다 원시림속의 봇나무숲 수많은 인간속의 백의민족 티없이 깨끗한 흰색에 자아를 알게된다 봄날의 아지랑이와 여름날의 안개속에서 그리고 가을의 찬비와 겨울의 칼바람에서 보이지 않는 힘을 느껴본다 金學泉간력 중국 연변작가협회 주석 역임. 한글과 중문 시집 <봇나무숲 情結> 등 다수 출판. 제4기, 제7기 중국소수민족문학상 수상. 제 4기 한국 한민족글마당문학상 수상. 현임 중국작가협회소수민족문학위원회 위원, 중국시가학회 이사. 중국길림성연길시 거주. 메일:hakchenkim@hanmail.net  
693 백이라는 숫자 외 1편/권이영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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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 2018-10-01
백이라는 숫자 백이라는 숫자는 얼마나 좋은 숫자이냐 그만큼 이루었고 넉넉한 여정 아흔 아홉 번의 고개를 넘으며 때로는 막막한 일 있었다 해도 때로는 뒷걸음질 쳤었다 해도 이제는 모두 지난 일로 떨쳐 버리고 백 하나, 백 둘, 백 셋, 백 넷...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숫자이다 백이라는 숫자는 돌아서 돌아서 다시 돌아온 새해 첫날같은 숫자이다 새해 첫날에 펼쳐진 순백의 눈밭이다 모든 것 다 지워버리고 얼마든지 큰 꿈 새로 펼쳐도 되는 광대무변의 눈밭이다 백이라는 숫자는 얼마나 자랑스러운 숫자이냐 얼마나 가슴 벅찬 숫자이냐. 껌처럼 향내 난다 우리들의 꿈 감미롭다 그러나 아무리 씹어도 먹을 수 없는 꿈 도저히 밥이 될 수 없지만 그래도 자꾸만 씹게 되는 꿈 늘이면 늘일수록 늘어나서 실낱같이 자꾸만 가늘어져도 끊어지지 않는 꿈 바람을 불어넣으면 자꾸만 픙선같이 부푸는 꿈 겁없이 커지는 꿈 터지는 꿈 볼품없이 찌부러져도 다시 살아나 계속 달라붙는 우리들의 질긴 꿈 함부로 버리자 말자. ------------------------------------------------------------ 권이영 1991년 월간 <심상>으로 등단. 시집 <천천히 걷는 자유>(나남)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교류위원장 역임)  
692 역사의 종소리 외1편/강상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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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 2018-10-01
역사의 종소리 깨우침의 역사 속에 통일을 외치는 저 종소리 자유와 평화를 목 놓아 외친다 분단의 그늘에 가려 어둡게 살아 온 아픔이 화해와 신뢰를 위해 종을 울린다 동포여! 겨레여! 피로 물든 조국의 슬픈 장벽을 허물고 저 조상의 넋이 깃든 광활한 요동벌을 향해 이 땅에 한빛으로 거듭 나시라 꽃도 새도 날지 못하던 전설 같은 기억을 감추고 하얀 밤 어둠을 털고 일어나 평화의 기슭을 찾아가는 아리랑 민족의 노래마다 울려라! 역사의 종소리를...... 가슴 열었노라 온몸이 싸늘해지는 순간 평화의 가슴을 열었노라 통일의 청사진을 펴들고 칠천만 우리의 염원 담긴 그 따뜻한 가슴을 열었노라 반세기가 넘도록 굳어버린 심장 녹이는 산이 일어서는 소리 하늘이 외치는 소리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 막힌 혈관을 뚫고 길을 찾아 암벽을 허무는 물꼬 터진 판문점 길목에서 캄캄한 청자빛 하늘을 이고 화해와 대화의 가슴을 열었노라 길은 멀어도 혼돈의 밤을 지나 평화와 통일로 가는 한민족의 간절한 기원이 뜨거운 가슴을 열었노라. - 1984년 시집 『북소리 들리는 아침』발간 - 전 공군보라매 수련원 강사 - 경상북도 문학상 수상 - 주소 : 문경시 중앙로 50-9(모전동)  
691 봄날은 간다 외1편/최영 file
편집자
521 2018-10-01
봄날은 간다. 장사익이 자제요양 병원에서 무료 공연을 합니다 무대에 오르기전 와상 환자들이 있는 병실에 왔습니다. 환자마다 악수를 하더니 의식이 혼미한 환자의 귀에다 대고 <봄날은 간다>를 부릅니다. 노래를 들은 환자가 눈을 떳습니다. 그리고 미소를 짓습니다 장사익이 웃습니다. 모두가 행복합니다 장사익이 이렇게 외칩니다. "여러분 노래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기쁘게 하는 줄 몰랐습니다. 우리 다같이 불러요. 가래가 그렁그렁한 목소리로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빛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마음으로만 부르는 환자도 있습니다. 봄날이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202 호실의 죽비 스물 다섯에 혼자 되어 70년 동안 수절했지만 마지막까지 여자이고 싶어 안개꽃 무늬 부라우스 입고, 스카프 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이 죽비가 되어 내 가슴을 탁 친다. 이십년 동안 아들의 아들들을 키우다 뇌출혈로 쓰러져 말문이 닫힌 모습도 죽비다. 살아온 날들을 더듬더듬 털어놓을 때 네, 네 그러셨어요, 로 답해주면 잇몸을 환히 드러내며 합죽하게 웃는 죽비 돌이켜보니 죽비 아닌 게 없다. 최영/ 1958년 전라북도 무주 출생 97년 신라문학 대상 대구 경북작가회 회원 현불문 회원  
690 일상의 행복 외1편/고경하 file
편집자
570 2018-10-01
일상의 행복 아침에 눈을 뜨면 부시시한 나를 보며 미소짓는 당신 모습에 행복을 느낍니다 구수한 된장국에 반찬 몇 가지 놓고 밥을 먹으며 오가는 말 속에 잔잔한 행복을 느낍니다 출근하는 당신 구두를 닦으며 잘 갔다 올게 가벼운 입 맛춤을 하고 현관문을 나서는 당신을 보며 행복을 느낍니다 아이는 학교에 가고 가족의 남아있는 흔적을 정리하며 행복을 느낍니다 저녁에는 무슨 반찬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줄까? 고민하는 나를 보며 일상의 행복을 느낍니다 가을향기 잠자리 날개 짓 하며 날아오를 때 코스모스 한들한들 정답게 이야기할 때 당신과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려본다 불면 날아갈까 놓으면 넘어질까 갈대처럼 여리고 약하다며 든든한 기둥이 되어야 한다고 부족한 나를 사랑으로 채워주는 당신은 나에겐 가을의 향기입니다 고경하/ 1965년 11월4일 광주출생 2017년 상주동학문학제 상주동학농민혁명기념문집 [우리는 하나] 특별상 [해풍에 피어나는 동백꽃이여]. 시월문학제. 웹진 문학마실. 민족작가연합 평화통일공동시집 [도보다리에서 울다 웃다] 창작詩 출품, 민족작가연합 회원.  
689 전사의 보고 외1편/김대용 file
편집자
625 2018-10-01
전사의 보고 -추모시- 조국분단 18년째 되던 1963년 5월 어느 따스한 봄날,동구밖 새색시 배웅을 뒤로하며 칠흑같은 어둠을 헤치고 잘리워진 조국의 허리를 기여히 잇겠다고 갈구리 같은 두손 불도저 같은 두발로 전선을 넘었다가 결국 철조망에 찣기고만 붉은심장 펄덕이던 젊디 젊은 이준원 전사 날개꺽인 감옥, 뒤이어 사선을 넘어온 옆방 동지에게 아기 출산 소식을 듣고 다시 두주먹 불끈쥐며 황무지땅 남녁에서 전사는 밭을 일구고 집을짓고 동지들을 묶어 내었습니다. 허리를 다쳐 지팡이에 의지한 노구를 이끌고도 2차 송환 기자 회견에 미선,효순 추모 촛불에 광우병 촛불에 탄핵에 디뚱 디뚱 가장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장기수 선생들 모을려면 이준원선생에게 연락하면 됩니다" "동네 아파트 하수구가 막혔으면 이씨에게 부탁하면됩니다" 처녀 총각 중매도, 홀로 사는 동지들 살림살이도, 한반도 정세분석도, 젊은 일꾼 교육도, 먼저간 동지들 추도사도 이준원선생에게 부탁하면 다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조선인민군 이준원 전사의 땡크같은 두발 두손이 지나가면 "괜찮아 괜찮아" 하며 "허허" 한번 웃으면 다 됩니다. 통일의 그날 전사 이준원 보고합니다. 종놈들의 세상 친북을 종북으로 부르고 싶으면 친일도 종일로 불러야 하고 친미도 종미로 불러야 마땅하다 멀정한 국회의원도 "종북보다 종미가 문제다"라고 했다가 9년이나 감옥살이를 하는 나라 친박은 종박으로 친이는 종이로 친노는 종노로 친문은 종문으로 친척은 종척이 되고 친구는 종구가 되고야 마는 식민지 분단조국 이놈의 나라는 종놈들의 세상이다. 김대용 민주노총 대구본부 전통일위원장 wlqrnjs21@hanmail.net  
688 가시 /김철순 file
편집자
1020 2018-08-31
가시 가을의 끝자락에 다시 나선 길이었습니다. 나이아가라 강물이 흐르는 기슭을 따라 걷다가 한여름 녹음에 가려서 보지 못했던 가시가 무성한 나무를 만났습니다. 나무의 팔뚝에 매달려 깃발처럼 나부끼는 노란 단풍잎 사이로 흉물스러운 가시가 드러났습니다. 나무의 두루뭉술한 허리에서 가슴까지 사방으로 뻗어 나온 무성한 가시를 보는 순간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가슴을 적시고야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치매로 고생한 어머니를 병시중하면서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몹쓸 병 때문에 점점 더 쇠약해져 가는 어머니의 몸이 안방 구들을 지키기 시작할 때는 자식에게조차 짐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식의 생각을 먼저 읽기라도 한 것처럼 어머니를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를 병구완하는 것은 평생 당신을 위해 고생한 아내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라고요. 아버지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칠 년 반을 살다가 어머니는 이승을 떠났습니다. 고향 뒷산 양지바른 언덕 중턱에 어머니를 묻고 내려올 때도 당신은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아픈 아내와 함께 하는 동안 눈물은 이미 가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당신은 아내를 찾았습니다. 경부선 철도와 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고 사방으로 뻗어 나간 국도와 지방도가 보이는 그곳에 당신의 아내를 묻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쁘게 사는 자식이 달리는 차 안에서도 어머니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깊은 배려였습니다. 아내를 묻고 돌아와 여생을 혼자 살겠다며 자식의 근심을 덜어주던 아버지에겐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이 시간이 갈수록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십여 년이 넘는 세월을 외로움과 서러움 속에서 살다가 기력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어느 날 새벽, 산책길에 나서다가 집 앞에서 넘어졌습니다. 수술 후, 조금씩 거동이 불편해지자 어느 자식도 선뜻 당신을 떠안을 수 없었습니다. 서울에서의 생활이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허구한 날 빈집을 지키기 일쑤였고, 공원을 찾아다니며 만난 노인들과 친구가 되어 온종일 밖에 있어야 했습니다. 팔십 중반의 노구를 이끌고 해거름 무렵에야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자식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자식이라는 달콤하면서도 쓴 열매 앞에서 가슴이 아팠을 당신은 오히려 따뜻하고 자상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이 우선인 당신의 가슴엔 얼마나 많은 상처를 품고 있었을까요. 아들과 딸 사이의 미묘한 차별에서 오는 서운함만 늘어놓던 내가 결혼 후, 신혼여행을 마치고 친정집에 들어섰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아버지의 얼굴이 그렇게 환한 적이 있었을까요. 당신 앞에 나란히 앉은 딸과 사위를 지긋한 눈길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말없이 사위의 손을 잡더니, 셋째 딸인 ‘나’를 데려가 줘서 고맙다며 사위의 손등을 토닥였습니다. 골칫덩어리였던 과년한 딸을 혼사 시킨 안도감과 시집을 보내고도 불안한 당신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시댁에 가려고 막차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습니다. 어느새 부쩍 야윈 당신의 등은 그날따라 더 측은했습니다. 역 대기실을 빠져나왔습니다. 플랫폼엔 기차가 막 들어섰습니다. 기차에 올라타기 전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개찰구에 돌기둥처럼 서 있던 아버지가 옷소매로 눈물을 연신 찍어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당신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저 역시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두 언니와 두 오빠를 혼사 시키면서도 활짝 웃던 당신이었으니까요. 말썽꾸러기인 셋째 딸을 떠나보내는 후련함과 미덥지 못한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아버지라는 엄청난 생의 무게로 허망한 세월 앞에서 잠시 흔들렸을까요. 세월이 흘러 이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나이가 훌쩍 넘었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나 또한 가슴에 박히는 가시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속수무책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식은 행복이며 아픔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자식과의 추억을 반추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자식은 가슴에 묻고픈 애틋함이기도 했습니다. 바람이 한바탕 울음을 토해냈습니다. 밤새워 비가 왔습니다. 아직도 단풍 몇 잎 붙잡고 저리도 아파하는, 가시가 무성한 나무를 뒤에 두고 떠나올 때야 알았습니다. 셋째 딸인 나는 당신이 눈을 감는 그 날까지, 평생 당신의 가슴에 품어야 하는 가시라는 것을. 아직도 사는 게 힘들면 한국에 나와 같이 살자, 하는 구순의 아버지 생각에 돌아오는 내내 목이 메었습니다. ******************* 약력 2004년 캐나다 한국일보 신춘 문예 당선 2018년 미주 한국일보 신춘 문예 당선 현재 토론토 한인 문인협회 회원 <추천의 말> 토론토에서 활동하는 김철순씨와 이현숙씨를 한국의 '문학마실'에 추천, 소개합니다. 그동안 지켜본 결과 두 사람 다 글쓰기에 대한 진지함과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았기에 토론토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코자 함입니다. 김철순씨의 수필쓰기의 능력은 이미 공인된 바도 있지만, 작품의 진지성과 육화된 체험의 글쓰기로 읽는 이에게 공감을 불러내기에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꾸준한 노력으로 정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이제 한국에 이름을 알리고자 합니다. 이현숙씨의 역시 이곳에서 이미 인증된 바 있습니다. 그동안 무게 있는 수필을 써 왔으나 근래에 시를 창작하는데 열의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매우 조심성 있는 태도와 사려 깊은 감성으로 글쓰기에 접근하고 있음이 돋보이며, 앞으로 나올 시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2018년 8월 31일 권 천 학 (시인 ․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687 나의 그림은 아직도 / 이 현 숙 file
편집자
1021 2018-08-31
나의 그림은 아직도 적당하게 낀 안개가 편안한 아침이다. 가시거리가 길지 않아 제한속도보다 천천히 가야 한다. 운전대를 잡고 가는 길이 여유롭다.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부분적으로 정전되었는지 몇 군데 신호등이 점멸되어 있다. 사거리에 길게 줄을 지어 너도 한 번, 나도 한 번, 하면서 교대로 지나간다. 약속 시각은 이미 지나가고 있다. 뿌연 안개 속에 온몸이 젖어 들 것 같다. 기계적이고 허둥대는 일상적인 삶에서 오늘만큼은 풀어지고 싶다. 저 안개처럼... . 약속 장소가 가까워질수록 설렘이 일어나고 있다. 그 ‘언제 한 번’이 바로 지금이다. 토론토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 하나, 그리고 그 반대편인 서쪽에 사는 나와 가운데 사는 다른 친구, 비슷한 시기에 이민 와서 만난 셋이다. 사는 거리도 거리이지만 각자 생업에 매달리다 보니 서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다 하는 전화기 속의 마지막 말은 늘 ‘언제 한번 보자’는 막연한 기약이었다. 몇 번의 번복 끝에 드디어 날을 잡았다. 이른 아침에 만나 그림도 보며 지난 이야기도 하자고 했다. 는개가 내리고 있다. 미술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준비해 온 두 종류 겉옷 중에 두터운 것을 걸친다. 봄을 느끼고 싶었는데 바람이 아직 차다. 몸이 마음을 이기지 못한다. 표 파는 곳 앞에 두 여인의 모습이 어슴푸레 보인다. 창을 바라보며 도란거리는 둘의 대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두어 발자국 뒤에서 머물 듯 서 있다. ‘늦어서 미안하다.’ ‘괜찮다.., . ’이런 인사는 우리에게 필요 없다. 가슴 저 밑에 있던 반가움이 얼굴로 올라와 있으니까. 카페에서 차 한 잔부터 하자며 자리를 옮겨 숲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는다. 숲은 아직 잔설이 남아있다. 그 기슭에 비스듬히 서 있는 비쩍 마른 나무들이 우리의 이야기가 궁금한가 보다. 모두 몸을 꼬아 창 쪽으로 가지를 바짝 기대고 있다. 그 가지에 눈웃음을 보낸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기 삶의 한 토막을 연다. 다른 친구도 보여 준다. 나의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이민의 강 가운데는 망각의 늪이 있었는가 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 아득하게 잊고 있다. 새롭고 낯선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삶만을 유지하고 있다. 늘 눈앞에 보이고 밀려오는 것들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지난날들의 마디가 하나씩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였던 ‘내’가 살아가면서 주위의 환경과 상황에 따라 작아지고 희석되고 어우러져 가고 있다. 그런 얼기설기한 나의 모습이 가끔은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서글퍼지기도 한다. 저 멀리 있던 어린 날의 한 자락도 꺼내 본다. 한여름, 만삭의 몸으로 가정방문을 왔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이름을 기억해 낸다. 가파른 북선동 산허리 길을 올라오시느라 힘이 들었는지, 뒷목에서 성글 성글 맺히던 땀방울에 무안하고 어색했던 일. 개량 한복이 잘 어울리던 그분의 연세를 헤아려 본다. 중학교 가정 과목의 숙제였던 뜨개질을 늘 내 것까지 해 주었던 단짝 ‘희야’도 가슴을 치고 올라온다. 웃으면 양쪽으로 덧니가 보이던 친구, 학년이 올라가 다른 반이 되었을 때도 방과 후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기다려 주던 친구, 보고 싶다! 주위에 가득한 안개 덕분에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다. 셋 중 누구도 그 흔한 스마트 폰조차 보는 이가 없다. 숲은 우리가 처음 앉았던 그 시간이나 지금이나 옅은 안개로 싸여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희미한 기억들을 이야기하면서, 뭉클하게 가슴 적시는 삶의 토막토막들을 쌓아 올리고 있다. ‘아 - , 살고 있었지. 그렇게 소중하게 나도 살아왔었지... .’ 과거는 흘러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연결하고 지탱하게 해 주는 길고 긴 다리였다. 산다는 것, 추억이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내가 있다는 것은 잔잔한 감동이다. 창밖에 휘청거리며 얽혀 있던 나무들이 조금씩 허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안개가 위로 올라가는 모양이다. 처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미술관 직원이 이제 문을 닫을 시간이란다. 그림 구경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작품 감상을 못 한 것을 아쉬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의 그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직 그려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언젠가 그리워 할 이 순간을 충실하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려나가야 한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그림을 보러 언제 한 번 다시 와야겠다고 셋이 입을 모았다 미술관을 뒤로하고 내려오다가 남겨 놓은 우리의 이야기가 못 잊혀서 뒤를 돌아다 본다. 조금 전 미술관에서 같이했던 안개가 산봉우리 중턱을 단단히 둘러싸고 있다. 우리의 마치지 못한 그림들을 잘 보관해 줄 모양이다. '언제 한 번'이 다음에 다시 올 때까지. 이현숙/토론토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2014년) <추천의 말> 토론토에서 활동하는 김철순씨와 이현숙씨를 한국의 '문학마실'에 추천, 소개합니다. 그동안 지켜본 결과 두 사람 다 글쓰기에 대한 진지함과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았기에 토론토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코자 함입니다. 김철순씨의 수필쓰기의 능력은 이미 공인된 바도 있지만, 작품의 진지성과 육화된 체험의 글쓰기로 읽는 이에게 공감을 불러내기에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꾸준한 노력으로 정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이제 한국에 이름을 알리고자 합니다. 이현숙씨의 역시 이곳에서 이미 인증된 바 있습니다. 그동안 무게 있는 수필을 써 왔으나 근래에 시를 창작하는데 열의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매우 조심성 있는 태도와 사려 깊은 감성으로 글쓰기에 접근하고 있음이 돋보이며, 앞으로 나올 시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2018년 8월 31일 권 천 학 (시인 ․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686 사랑이란 외1편/차영호 file
편집자
1109 2018-08-31
사랑이란 샌들을 신고 엄지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 그리하여 무꽁댕이 같은 발가락부터 노닥노닥 세상을 죄다 바람 들게 하는 것 감나무님 말ᄊᆞᆷ 나 같은 늠들도 살기 팍팍하면 속을 먹같이 썩혀서라도 탱글탱글 내 새끼들 영글리는 거 모르나? 정말 모르나? 사람 탈을 쓴 짐승님들아 차영호 (車榮浩) 1986년 《내륙문학》으로 작품 활동. (사)한국작가회의 회원. (사)우리시회원. 시집 『어제 내린 비를 오늘 맞는다』, 『애기앉은부채』, 『바람과 똥』 등  
685 과학할까요 외1편/조재학 file
편집자
1062 2018-08-31
과학할까요 그대 입술이 내 입술을 더듬으면 마치 초콜릿을 녹이듯 혀의 감각이 살아나요 대뇌피질에서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이 앤드로핀이 분비 되요 입술의 감각이 더 예민해져요 그대 입술의 움직임을 내 몸으로 따라가요 말할 수 없는 쾌감에 젖어들어요 계속 하고 싶은 충동에 몸이 떨려요 온 몸이 나른해져요 온 감각이 한 곳에 모여요 심장의 박동수는 130까지 올라가죠 혀가 혀를 애무하는 동안 침 속의 그대 호르몬 테스통스테론은 나에게로 옮겨지죠 9mg수분과 0.18mg의 수용성물질이 교환 되죠 0.7mg의 지방과 0.45mg의 미네랄이 교환 되죠 박테리아 수백만 마리가 교환 되죠 나의 면역력이 높아지죠 뜨거운 키스는 한번에 12Kcal를 소모시켜요 키스가 길어질수록 그대 좀더 키스를 잘 할 수 있도록 내 입주변의 키스근육은 모양을 잡아주죠 그대의 흡입력에 내 몸이 빨려들고 나는 눈을 감고 그대 혀의 움직임을 음미하고 뭉크 씨는 아직도 절규하고 있다 함께 과학 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환승 후배의 부친 문상을 다녀오다가 그 때의 호수에 가 보았네 작은 보트 한 척이 묶여서 흔들리는 기슭을 지나고 바람이 드나드는 소나무 울타리를 지나 굵은 줄기들이 제 몸을 비틀고 있는 등나무를 지나 그때 꽃이 흐드러졌던 그 나무 밑에 서네 흰 오리 서너 마리와 계절을 잊은 듯한 청둥오리 몇 마리가 호수에서 자맥질을 하고 있네 구름 몇 조각이 천천히 흘러가네 예순일곱 살의 내가 건너편에 앉은 스무 살을 물끄러미 보네 가버린 것은 보이지 않네 사라진 시간 사라진 해 사라진 바람 사라진 천둥 겨울 호수를 한 바퀴 도네 침침해진 눈을 자꾸 껌뻑거리며  
684 아버지의 흔적 외1편/권천학 file
편집자
1808 2018-08-31
아버지의 흔적 무적함대였던 등판과 막강했던 어깨가 아버지였다 힘없는 두 다리 사이, 습하고 냄새나는 아버지의 부자지를 주물럭거려가며 내가 태어난 DNA의 통로가 되어준 흔적과 씨앗주머니의 주름 사이사이를 닦는다 퀴퀴한 역사의 어두운 길을 더듬어 들어간다 초점 없는 시선으로 그윽하게 나를 들여다보시는 아버지, 부끄러움도 없다 어쩌면 아버지는 지금 생명의 시원을 찾아 바이칼 어디쯤을 고비사막의 모래언덕 어디쯤을 찾아 헤매며 원시 이전의 시간이 고여 있는 웅덩이를 응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회로의 어디쯤에서 우린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돌아오세요! 5, 아버지의 DNA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아버지, 살면서 그 성깔 못버리겠어요 아버지의 그 충고 때문에 헤깔리며 살았잖아요 그리고 아버지도 그리 사셨잖아요 아버지나 아버지의 딸인 나나 일급수 물고기로 사는 게 편하잖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아버지 살다보니 일급수에 사는 물고기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아버지 가신 곳 거기, 틀림없이 햇빛이 눈부시게 찰랑대는 일급수 바다, 맞지요?  
683 폭설暴雪 전前에 외1편/구재기 file
편집자
1191 2018-08-31
폭설暴雪 전前에 바람이 일고 한 잎, 낙엽이 진다 두 잎, 진다, 그리고 또 한 잎… 그 위에 어른하는 눈발 지나온 길 점점 묻혀가면서 보깰 틈도 없이 낙엽 한 잎, 한 잎… 진다 다시 바람 일고 낙엽 쌓일 틈도 없이 떨쳐 드날리는 눈발 *어른하다: 얼핏 한 번 나타났다가 없어지다. *보깨다: 무슨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자꾸만 쓰이어 불편하다. 시詩란 무엇인가 시詩란 무엇인가 누가 그렇게 말했던가 詩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詩를 말하고 있는 것일 뿐 詩를 생각하는 순간의 일일 뿐 詩를 詩처럼 詩를 詩같은 삶이라고 얼마나 거짓으로 살아왔는가 그러나 이런 말들은 이미 내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詩앞에서는 말[言]이 없다 말이 필요 없다 다만 詩앞에서는 말을 잃을 뿐 단 한 편의 詩를 앞에 두고 전혀 말하지 않고 있음은 詩 앞에서 詩를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 부끄러워하라, 다만 詩 앞에서 詩를 말한다는 것은 자유로운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행동이, 표정이 부드러워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詩를 말할 수 있는 말[言]을 멸滅할 수 있는 가장 체계적이고 완벽한 존재의 위장술僞裝術 < 구재기 약력 > • 충남 서천 출생 •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 시집『휘어진 가지』와 시선집『구름은 무게를 버리며 간다』등 다수 • 충남도문화상, 시예술상본상, 충남시협본상 등 수상. • 충남문인협회 회장과 충남시인협회 회장 역임 • 현재 40여년의 교직에서 물러나 <산애재蒜艾齋>에서 야생화를 가꾸며 살고 있음  
682 꽃의 무게 외1편/박경조 file
편집자
1050 2018-08-31
꽃의 무게 서른 살도 더 먹은 우리 집 목련나무 꽃샘바람도 저 혼자 받아내나 싶더니 금세 허공이다 개화와 낙화, 찰나의 무게를 담장아래 내려놓았다 겨우 봄 한철 앓다 사라진 여든 여섯 어머니, 지극한 생애인 듯 휑하다 이 느낌은 목련의 낙화만은 아니다 대를 이어 꽃 피워내느라 낡고 허술해진 여자의 일생 그 완결을 본 때문일 것, 바람에 쏠려 떨어진 저 고목의 봄날을 비질하며 종량제 봉투 가득 채워 드는 생각 피워내고 지워지면 또 다시 꽃눈 틔워 생명을 기르는 모든 본래는 어머니라는 이름, 그 무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수상한 연분홍 청량산 오르막길이 허락한 색깔일까 발길과 눈길 확 잡아당기는 저 연분홍 눈부시게 화려 하다고, 아니 수상하다고, 저 색(色)이라면 한번 수작 걸어 보고 싶다고 한 마디씩 말(言)탑을 쌓으며 오르다보니 청량사 법당이다 속된 마음 꿇어 108배도 잠깐 이상하지, 자꾸만 내 마음 끌고 가는 저 색을 두고 누굴 닮아 맹물 같다고 아니, 저리 섹시한 민낯도 있냐고 이 여자 저 남자 참견하지만 예까지 끌고 온 불온한 세상 위로하듯 작년 그 자리 다시 온 걸까, 연분홍 첩첩 내리막길 뛰던 봄바람 연달래 그 꽃잎 하르르 스치며 하는 말 누군가의 본색(本色)찿는 일이란 참 어렵더라고, 맞다, 박경조;경북 군위출생 2001년 『사람의 문학』등단, 『사람의 문학』편집위원 시집 《밥 한 봉지》 《별자리》출간  
681 노을 속으로 외1편/이승호 file
편집자
1091 2018-08-31
노을 속으로 저 연꽃밭! 우리에게 누락된 장(章장)을 세기의 장인들이 놓쳤을 리가 없다 대성당이 내게 열어 보여준 그 충만한 색깔과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일렁임까지 어제의 메아리들이 돌아오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몹시 지쳤으나 내심 우리의 눈빛이 생에게 말하려는 것들 노을 속으로 세월의 저 망연자실에게로 태양과 암흑의 왕들이여 나와서 보라. 하늘 아래 어느 해인가, 그 마을에 여자 거지가 아이 하나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들은 뽕나무 아래서 맴을 돌다 허겁지겁 오디 열매를 따먹기 시작했다 이 가지 저 가지를 휘어 당겨 고픈 배를 달래고 이따금 어린 거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어진 이가 있어 다음 해도 그 다음 해에도 뽕나무는 그들 차지였다 오디를 먹으면 거지가 된다더라 하늘은 이미 그 뜻을 알고도 남았다 주린 자의 양식을 빼앗지 말며 가난한 자의 좌판을 발로 걷어차지 말며. 이승호 춘천 출생. 2003년 《창작21》로 등단. 시집 《행복에게 바친 숱한 거짓말》외.  
680 오메가 외1편/안민 file
편집자
904 2018-08-31
오메가 야훼시여, 아브라함께서 이복누이를 아내로 맞은 것[창세20:12]은 거룩한 오류입니까. 내밀한 법칙입니까. 근친과 본향의 경계는 석양 물드는 사막 능선 구간 같은 것. 아내를 매도賣渡하여 목숨을 구하고 재물을 얻은[창세12:16-19, 20;2] 유인원의 심장 쪽으로 다이아몬드 비가 내립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께서는 두 딸을 잉태[창세19:36]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초승달의 기운과 혼미한 기도가 은밀한 구원을 잉태케 한 것이지요. 지금도 소돔과 고모라는 눈물 속에서 불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아들 이삭께서도 어머니 장례식 때 질녀를 장막에 들였습니다. [창세24:67] 리비도와 안식은 어떤 애곡哀哭보다 상위의 관습법. 취한 새들이 흐린 창공을 향해 비상합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께선 외삼촌의 두 딸을 취하였고[창세29:28] 야곱의 아들 유다께옵서는 며느리 다말과 관계했습니다. [창세29:25] 믿음은 신화의 완성입니다. 아방가르드는 관계적 예술의 복원입니다. 할렐루야. 위대한 왕 다윗께서는 밧세바를 범한 뒤 그 남편을 사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지만, 죄의 결실이 지혜의 왕 솔로몬[사무엘하12:10]이시니 손금마다 젖과 꿀이 흘러야 합니다. 만인의 영도자인 모세께서 구스 여자를 탐한 것[민수기12:1]은 거룩한 기도이며 계시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는 언약궤 위로 야생화가 피어납니다. 그리하여 야훼시여, 당신의 말씀이 그리스에서는 철학이 되고 아메리카에선 기업이 되고 동방의 공화국에서는 찬란한 대기업이 되고 황홀한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동방의 공화국 목자들은 참으로 물질을 사랑합니다. 음지를 사모합니다. 그들은 아버지들의 아버지보다 더 빛납니다. 각본이 성서만큼 무결하고 완전합니다. 병인病因은 세계世系의 유전입니까. 구약의 언약입니까. 묵찌빠 전면전을 선포했다 아름다운 네가 돌아오면서 무엇도 하지 않을 권리를 외치며 무엇도 할 수 있는 권리를 외치며 피할 수 없는 전쟁, 공격이 개시되었다 어떤 연민도 없이 갈등도 딜레마도 없는 너 갈등도 딜레마도 많은 너 그렇다 너는 애초에 번역될 문장이 아니었다 어떤 문양이든 지문이 흘러나왔다 나는 포위되었고 * 유리는 깨어지기 위해 만들어지고 손은 무너지기 위해 태어난다 백동전은 딱 하나 너는 오빠들의 백동전을 훔쳐 피아노를 장만했다 피아노 위를 횡단했던 건 손가락이 아니라 주먹이었다 주먹이었다 쾅- 쾅- 쾅- 소리에 놀란 너 음률이 악보 뒤편으로 넘어가듯 너는 사춘기로 사춘기의 문양으로 그 성격으로 여기에 왔다 * 네가 묻는다 산산이 부서진다는 게 뭐죠? 웃자란 네 애인들이 대답한다 피아노의 손을 찾아봐 나무의 손금을 찾아봐 귀 잃은 악사의 손바닥을 들여다봐 닮았다는 건 곧 몰락 닮았다는 건 곧 침몰 늙은 네 오빠들이 도끼로 피아노를 내리찍는다 피아노의 내장들이 이빨을 들어내 놓고 웃는다 가위를 든 네가 또 묻는다 그럼 너희들의 어제는 뭐지 손목을 덜렁거리며 잘린 손목을 이어붙이며 네 애인들이 대답한다 손목 없는 바위지 몸을 버린 우직한 주먹…… 손바닥을 펴라 손금이 깨어져 버려라 손금이 깨어져 버려라 * 전쟁에 속하지 않으려는 손들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 그사이 패배와 승리가 밀물과 썰물처럼 드나든다 또다시 저녁은 오고 긴 평화가 시작되고 있다 숨이 막힌다 전쟁은 전쟁이 끝난 뒤 시작되는 법 규칙대로 네 애인들이 죽는다 잎사귀들도 차례대로 죽는다 죽은 네 애인들이 내 몸을 정탐한다 귀퉁이에서 패배의 눈물을 마신다 어둠의 보자기를 펼치면 그 사이로 가위 같은 비가 내린다 비는 누가 버린 눈물입니까? * 간첩은 밖에도 안에도 거주한다 자주 갈등한다 자주 망설인다 그리움도 유통 기한이 있습니까 가위바위보를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은 사상이 다른 지대입니다 그럼 난 누가 버린 폐기물입니까 영혼을 꺼내 말려야 한다고 간첩이 자주 속삭인다 정말이지 세상은 네 손처럼 의아하고 다수이며 나는 한 번도 다수에 속하지 않았다 룰을 배운다는 건 자기를 지우는 여정이라며 네 애인들이 울먹거린다 화분 잎사귀에서도 안개가 흐르고 서랍 속엔 길 잃은 손들이 그득하다 프로필 . 본명 안병호, 경남 김해 출생 .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 2018년 부산문화재단 지역문화특성화지원사업 수혜 .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 현재 부산작가회의 회원  
679 둘이 모여 하나 외1편/박일아 file
편집자
1007 2018-08-31
둘이 모여 하나 하얀 눈사람 동글 둥글 둘이 모여 하나가 된 눈사람 겉과 속이 모두 하얀 항상 변함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닌 하나가 되는 세상 살고 싶다 벼꽃 바람만 스쳐도 간지럼 타는 벼꽃 바람이 전해준 사랑에 부끄러워 나날이 고개 더 숙인 벼 약력 ; 2009년『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하루치의 무게』 대구 경북 작가회의 회원  
678 아버지의 등뼈 외1편/신성철 file
편집자
985 2018-08-31
아버지의 등뼈 아버지 등뼈는 바퀴를 닮았다. 구르는 언덕이 가 파른 만큼 숨도 가쁘다. 한숨 돌리려할 때마다 등 떠미는 것들 모퉁이를 돌때면 휘어짐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성한 것 옹골진 것 마다하고 하필이면 이울어진 것들만 한가득 이젠 내려 놓으세요.. 아버지. 오늘도 아버지의 등뼈는 비탈길을 구른다. 허수아비 빈 들판이었다. 가을걷이 막 끝난 늦가을 저녁 무렵 노을 속 아버지는 야윈 하루의 뒷자락을 잡고 있었다. 거적인 듯 짚단인 듯 바람에 넝마는 너덜거리고 지고 온 세월만큼이나 무거운 표정으로 들옄 끝을 보고계셨다. 서리 내리는 가을마다 제자리걸음인 추곡수매 값으로 쌓이는 볏단만큼 깊은 시름에 휘청이는 허리 한숨인 듯 울음인 듯 이야기 듣다보면 고봉밥을 먹어도 배가 고팠다. 말뚝인 양 붙박히신 아버지 죽 한 그릇도 많다시며 덜어주시던 기억이 떠오른다. 볍씨, 호박씨, 상추씨, 씨 라는 것들은 모르는 게 없으시지만 글씨만은 심어 본 적 없으신 당신 지금은 땅에서 무엇을 읽으시는지 다가가 보니 추위에 떨고 있는 아버지 옷을 걸친 허수아비였다. 200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대상 2010년 열린시학 2013년 지필문학 2014년 문장21 신인상 2011년 백교문학상 수상 2010년 시집 3천원짜리봄 출간  
677 오사쯔 외1편/박은숙 file
편집자
1058 2018-08-31
오사쯔 많이 사주 세요 해태제과 식이섬유가 함유된 고구마스낵입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질소보다 과자가 빵빵하게 들어 있어 둘이 먹어도 셋이 먹어도 마음과 손이 즐겁습니다 싸울 일 없습니다 착한봉지 대열에 떡 올려 봅니다 그렇다고 해태제과 사장님께 이상한 거 받은 적 없습니다 7월의 태양빛은, 열기는,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을 위협하고 있다 저기 밭고랑 고구마 잎들도 시들시들 우리는 양동이에 물을 퍼 나르자 8월을 베고 누워 입추가 왔다 어제, 내 몸은 아직 7월의 열기로 뜨겁다 아~~~~ 후~~~~ 뿜어내지만 식지 않은 열기여, 8월을 세로로 두고 나를 가로로 놓는다 너와 나의 맞댄 솔기에서 푸른 바람의 빛깔을 호흡한다 둥글게 둥글게 몸을 굴려 나는, 푸른 고치 속 애벌래 건드리지 마세요 64년 전북무주출생 동인지, 그리움의 힘으로 소멸되는 것들로 작품활동 대경작가회원  
676 나의 푸른 꿈 외 1편/조성순 file
편집자
1089 2018-08-31
나의 푸른 꿈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어느 동물보다 가족과 집단생활을 하면서 화장실을 구분한다. 새끼들을 분만할 때는 보금자리를 찾아 멀리는 1.5Km 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천부적으로 흙을 밟고 살아야 할, 흙을 먹으면서 살아야 할, 나는 모태에서 나와 싸늘한 철망에 갇혀 몸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사육틀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운명! 혼자서 6~70마리를 인공수정으로 가능한 것은 강인한 체력, 다량 번식의 특징은 1년에 두 번 새끼는 많으면 12마리까지 출산하는 우리들의 고통을 아는가? 우리는 개처럼 옷과, 침실에서 같이 생활은 못할망정, 최소한의 활동공간을 준다면 목욕은 생각지도 못하고 불행과 고통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사실을 안다면, 동물사랑에 최소한의 생존환경을 바랄뿐이다. 인간들은 인격에 상처나 명예의 훼손에, 돼지취급을 한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권리주장을 하면서, 우리들의 현실을 생명의 존엄성을 변호할 생각은 없는가? 우리들에게 장난감도 마련하는 덴마크의 자연방목장을 보라! 얼마나 즐겁게 뛰어 놀고 초원에서, 춥거나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가고 좁은 공간에서 군집생활의 스트레스가 없어 질병도 없다. 운송하는 자격증 운송거리 속도 통제 관리자는 내 좋아하는 녹색 옷을 입고, 간이계류장 온도는 15℃ 도축은 이산화탄소로 안락사는 얼마나 평안한 죽음인가? 우리의 복지 항생제사용금지, 수의사 처방에 의거 사용, 스트레스 대응 호르몬이 높은 기계식 밀집사육 틀을 철거, 사람들과의 공존이 우리들의 마지막 푸른 꿈이 이루어질 날은 언제일까. 원고지 옛날엔 암각화, 파피루스에 해독이 어려운 문자를 오늘은 딱나무 한지 개발 나무의 회생 노동 기술의 결정체 지금은 텅 빈 화면 연필 Insert 과 지우개 Delete 의 기능을 다양한 언어조합체로 탄생한 문자에 매달린 약속에서 세계는 국가는 직능조직으로 구성 때론 부와 권력 국가의 존립 목숨까지 내 놓아야 할 내용들 무섭고 위엄 있는 운명이 결정되는 틀에 갇혀 나의 지식은 빛바랜 파지조각 상식은 보통사람들이 동의하는 공유물 창작이라는 빌미로 원고지에 그 위험한 문자를 그 위험한 문자를. 약력 현 : 국제PEN한국본부 ․ 한국현대시협 ․ 부산문협이사 한국문인협회 해양문학 연구위원. 역임 : 토지문학제 추진위원 고운 최치원문학상 본상 외 2. 『금정산 그리고 중앙동』외 8권  
675 커피잔 이야기/美山정경해 file
편집자
1024 2018-08-01
커피잔 이야기 이번 북유럽 여행에서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의 눈은 오직 한 곳에 머물렀다. 매장 진열대에는 갖가지 종류의 화려한 물건이 관광객의 눈길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건성으로 바라보았다. 그저 진열된 커피잔에 발길을 고정시킨 채 몇 번이고 반복해서 훑었다. 일행 중 한 명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녀는 나의 귓전에 대고 또 커피잔 살 것이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미소의 의미를 그녀가 모를 리 없다. 그녀만이 아니다. 단 한 번이라도 나와 함께 여행을 했던 사람이라면 저절로 알게 되는 사실이다. 나는 커피잔 모으는 취미를 갖고 있다. 어디에 가든 커피잔을 산다.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잔을 모으는 것이 아니다. 대상이 어떤 것이든 그것이 상징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것은 지역의 축제를 알리는 것이기도 하고, 뮤지컬 공연을 기념하는 것일 때도 있다. 박물관이나 기념관에 가서도 그 나름의 특색을 드러낸 커피잔을 사 온다. 나는 커피잔에 새겨진 디자인에 의미를 둔다. 그렇다보니 다양한 의미를 지닌 잔을 꽤 많이 모았다. 그 중에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 받은 잔도 있다.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고 나오면서 받아온 잔도 있다. 표면에는 그 학교 로고가 새겨져 있다. 커피잔 모으는 취미가 있다는 나의 말에 선뜻 내 준 것들이다. 커피잔에 나름의 의미를 붙이기도 한다. 친정에서 가져 온 것으로 소싯적에 산 나뭇잎 커피잔이 있다. 작은어머니와 막내이모가 쓰시던 커피잔도 있다. 그것에는 흔히 볼 수 있는 꽃 그림이나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지만 유달리 애착이 간다. 그 커피잔에 커피를 마시면 그들과 함께 했던 시절이 떠올라 감미롭다. 새로운 커피 잔에 대한 기대로 설레기도 한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해외문학기행을 앞두고 있을 때다. 나는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챙기기도 전에 미리 모아놓은 포장지(일명 뽁뽁이)부터 가방에 넣는다. 포장지가 하나 둘 줄어들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커피잔이 채워지면 말할 수 없이 뿌듯하다. 커피잔을 모으기 시작한지 십년 정도 되었다. 2008년 2월에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했다. 서유럽을 여행하던 그때,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이리저리 따라다녔다. 바쁜 일정 탓에 끌리는 것이 있어서 좀 더 보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주어진 시간이 후딱 지나가기 일쑤였다. 비스듬히 기울어져 유명한 피사의 사탑 주변을 돌아볼 때였다. 그 사탑 모양을 닮은 커피잔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사진을 찍느라 바빴고, 주어진 시간을 다 썼다. 가족들은 시간이 없다며 커피잔은 일행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가서 사자고 했다. 하지만 우리들 모습이 보이자 일행은 기다렸다는 듯 재빠르게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 커피잔은 끝내 손에 쥘 수 없었다. 독특했던 그 커피잔을 사지 못해서 속이 쓰렸다. 그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 마음이 커피잔에 대한 집착을 만들었던 것일까. 그 이후로는 가는 곳마다 눈에 들어오는 커피잔을 손에 넣기 시작했다. 한번 여행을 떠날 때마다 십여 개의 커피잔이 귀가하는 나를 따라왔다. 여행지에서 돌아오면 며칠에 걸쳐 그 커피잔에 맛을 본다. 커피잔마다 맛은 다르다. 유난히 커피 맛이 좋은 잔이 있고, 뭔가 모르게 씁쓸한 잔도 있다. 어떤 잔은 쌉쌀하기도 하다. 또 어떤 잔은 유난히 감미로워서 연거푸 마시기도 한다. 그렇게 맛을 본 커피잔은 여행지의 추억과 함께 장식장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모은 커피 잔이 삼백여개다. 커피잔에는 수많은 추억이 담겨 있다. 그 나라의 모습이 있고, 그곳의 거리를 거닐던 기억이 있다. 거닐다가 만난 사람들의 모습도 있다. 커피잔을 구입할 때의 다채로운 모습도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점원에게 사정하던 순간의 안타까움이 있다. 고개만 가로젓는 점원의 모습에 당황하여 통역이 가능한 일행에게 다급히 도움을 청하던 기억도 한편에 저장되어 있다. 그런 과정조차 기쁨이었다. 커피잔은 내 삶의 엔도르핀이다. 삶이 버거운 날에는 푸쉬킨을 음미하고, 마음이 답답할 땐 헤르만 해세를 마주하며 알을 깨고 나오는 한 마리 새를 떠올린다. 프로이드와 마주하면 그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동영상과 그것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외국인들의 애틋한 마음을 생각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죄와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가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의 숫자를 세며 걷던 순간과 무릎을 꿇고 대지에 입맞춤하는 장면으로 가슴이 저리다. 기분 좋은 날은 모차르트를, 우울한 날은 유난히 짙은 눈썹에 우수어린 동그란 눈을 가진 카프카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 속으로 빠져든다. 때로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바라보며 신비로운 어딘가로 한없이 달린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나는 좋아하는 커피와 함께 수많은 추억을 매일 마신다. 그것을 음미하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커피잔 추억을 갖게 될 것인가. 그 추억으로 인해 나의 삶은 또 얼마나 설렐까. 매장 진열대에 진열된 수많은 커피잔 중에서 헨릭 입센에게 눈길이 간다. 나는 그의 모습이 담긴 커피잔을 손에 들고 미소를 짓는다. * 美山정경해 * 경기 안성 출생 * 수필집 『같은 빛깔로 물들어 간다는 것은』2008 『까치발 딛고』2011 『내 마음의 덧신』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