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1호...
   2019년 09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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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77479 2014-11-03
611 디딤돌 외1편/ 김가현 file
편집자
1535 2018-01-01
디딤돌 조심히 건너뛰라고 띄엄띄엄 놓인 돌들 붙여 놓으면 게을러질까 봐 태만 부리다 헛디딜까 봐 넘어져 여울물에 젖지 말고 조심히 등 밟고 가라 한다 마음 놓고 건너갈 징검다리 나도 누군가를 위해 만들 수 있을까 어제 못 본 저 디딤돌 거센 물살을 버티며 서 있다 부채 강한 돌풍은 성난 이의 함성이다 여름내 쉼 없이 언성을 높였다가 고함을 쳤다가 수 없는 반복에도 부채는 굳은 의지와 절개로 의리와 원칙을 지키며 시련을 이겨낸 고풍을 감싼다 대오리가 오금을 펼 때 부챗살의 우아함에 세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소용돌이도 안색을 낮춘다 겸허한 손이 온화한 꽃바람을 일으키고 교만한 손이 거센 댑바람을 만들 듯 한 번의 부채질에도 청량한 바람이 일도록 정성을 다해야겠다 한들거리는 춤사위 살랑 부는 미풍에 햇살도 처마 밑 그늘에 나직이 쉬어간다 2017 문학광장 제10회 시제경진대회 장원 수상작  
610 서로 통하는 사이/김인기 file
편집자
1319 2017-12-05
서로 통하는 사이 김인기 순대는 나도 가끔 먹는 음식인데, 근래에야 겨우 거뭇한 색의 비밀을 알았다. 그간 여기에 돼지의 피가 들어간 줄 몰랐다. 관심이 없었으니까. 몰라도 그만이었으니까. 하아, 이건 좀 심했다! 이렇게 한탄하던 중 문득 엉뚱한 질문이 떠올랐다. 작년 12월 초순이었다. 누가 거리에서 사람들이 뭐라고 외치는 걸 들었던가 보다. 이 친구가 인터넷 어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박근혜와 태진아가 무슨 관계에요? 아까 광화문에서 보니까, 사람들이 ‘박근혜는 태진아랑…….’ 그러던데.” 당시에는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을 당하기 전이었다. 도대체 이분이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 태진아 씨랑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냐? 나도 궁금했는데, 바로 아래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아마도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잘못 들으신 듯…….” 시위대들이 손에 든 팻말이나 전단만 해도 그 얼마냐. ‘박근혜 퇴진’이라 적힌 깃발도 수두룩했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퇴진하라’를 ‘태진아랑’으로 듣는 그 말귀도 놀랍지만, 이렇게 엉뚱한 질문에도 ‘태진아랑’이 ‘퇴진하라’인 줄 아는 그 감각도 놀랍다. 질문자의 정체야 뭐 그리 중요할까? 저마다 나름대로 추측은 할 수 있다. 혹시 중학생이 아닐까? 이것도 확실치 않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물정 모르는 어른들도 많다. “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까?” 이런 개탄에 근거가 있다. ‘이 시대의 한 시민으로서 소양이나 관심이 부족했던가 보다.’ 이런 의심도 드니까. 그러나 이것도 얼마쯤은 꼰대들의 횡포이다. 각자가 누군가에게 ‘시민’이라느니 ‘국민’이라는 둥으로 불리다가 금방 버려지기도 하니까. 이런 처지에서 누가 ‘시민의 소양과 관심’을 들먹이나. 나는 거리에서 행인이고, 서점에서 손님이다. 날마다 밥을 먹고, 밤마다 잠을 잔다. 농담도 한다. 글도 쓴다. 하품도 한다. 이런 일거일동이 곳곳에 미미하나마 영향을 미친다. 만물이 나와 상응한다. 나 때문에 파리나 모기마저도 몇몇은 행로를 바꾸지 않는가. 우리들은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일상사를 이루어낸다. 그런데 이런 걸 하찮다며 무시하고 난데없는 이념이나 사명을 법률로 강제하면 어떻게 되나? 그게 아무리 고귀하고 절실하더라도 상대방의 동의가 없이는 공염불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외부에서 누가 기어이 나서려나. 이게 또 민심을 어지럽힌다. 민의 없는 법치의 폐단은 심대하다. 법의 존엄도 난망하다. 독재자들이 으레 그렇듯이 자기들 멋대로 법률을 압제의 도구로 악용하면 준법은 명예가 아니라 바로 굴욕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들이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법원에 가서 해결하자.’는 게 악담이다. 도리어 현행법을 무시하고 권력자에 저항하는 게 자랑이 되고. 과거 내력과 현재 상황을 보면 주권재민의 원칙도 의미심장하다. “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부자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저것들이 작당해서 내 재산을 빼앗아가지나 않을까?’ 이치가 그렇잖아. 그러나 이건 공연한 걱정이다. 누가 너그러워서가 아니다. 빈민들 역시 차후에 부자가 될 수 있는데, 자기 재산이 남들한테 넘어가기를 바라랴. 부자들이 이걸 납득하고서야 비로소 안도했다. 이 논리에는 전제가 있다. 빈자도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래야 극빈자도 기꺼이 대부호의 재산권을 옹호한다. 이게 어디 재물에만 이럴까? 특히나 개천에서 난 용은 너도나도 환대한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으니까. 악전고투에도 꿋꿋이 견딘다. 더러는 비리에도 너그럽다. ‘그렇더라도 웬만하면 야박하게 굴지 말자.’ 여론이 이러니까, 그 죄를 두둔할 구실도 수두룩하다. 심지어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마저도 종종 망각한다. 이게 이런 만큼이나 그 역도 진실이다. 정의도 없고 희망도 없는 사회에서는 무장괴한이 관공서를 습격해도 시민들이 통쾌하게 여긴다. 부자가 거리에서 맞아죽어도 그러려니 한다. “과연 하늘이 무심치가 않았구나.” 혹자는 하늘을 들먹인다. “쯧쯧쯧……. 어쩌면 저렇게나 끝까지 흉하나!” 더러는 혀를 찬다. “사필귀정이지, 사필귀정이야.” 아무도 망자를 편들지 않는다. 오늘도 지구촌 구석구석에는 총성이 울린다. 말이 좋아 공권력이다. 군인이나 경찰도 나빠. 공익의 수호자여야 할 것들이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이들 사이에도 갖가지 불화가 생기더니 더러는 외세와 결탁한다. 급기야 내전이 벌어진다. 재화도 불안하니까 바라는 것이다. 온통 미쳤다, 아주 미쳤어. 이게 어느 정도 있어야 충분한가? 불안하지 않을 만큼! 그러나 불안에는 끝이 없다. 어렵다, 어려워. 하물며 제 손으로 이력서 한 장 써본 적 없으면서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이들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급기야 상속자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찬다. 사람은 감정이 있어서 수시로 흔들린다. 그러니 피차 남의 인격을 모독하지 말자. 너나없이 실수할 권리도 있고 분통을 터뜨릴 권리도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지. 그 자리가 별나서 ‘유명세’야 치르더라도 생트집을 잡을 것까지야 있나. 누가 아무리 못마땅해도 모두 나서서 침을 뱉을 거야 있나. 저마다 감수성이나 상상력도 제각각이다. 착각마저도 환경과 체험에 뿌리가 닿아있다. 그런 만큼 유유한 태도가 화근일 수 있다. 인간들이라고 다 그렇게 순박하지가 않아. 더러는 남들의 침묵이나 관용을 무죄의 근거로 삼는다. 이들이 바로 잠시 납작 엎드린 자들이다.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이 역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후인들이 어쩌면 무관심으로 일관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이런 몰상식의 극치가 잠시나마 통했다는 이 시대가 이들한테는 흥미롭지 않을까? 여러모로 교훈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날이 언제쯤일까? 지금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건 오로지 그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경험은 함정이 있는 자산이다. 너무 참혹한 기억은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 이게 오로지 한쪽에만 집착하는 외눈박이로 만든다. 이들한테는 아무도 말리지 못할 고집이 있다. 더러는 여기에 제 존재의 의의를 두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발언만이 아니라 기억마저도 제대로 하려면 우선 당사자가 용감해야 한다. 휴전 이후 60여년이 지났으나 공포는 여전하다. 다시 전쟁이 터진다면 주위가 온통 불바다가 될 것이다. 이렇게는 통일이 되지도 않는다. 결국은 주변국들의 이해타산에 따라 어정쩡하게 봉합이 되겠지. 상황이 이런데도 망언을 떠벌리는 자들이 있다. 이들이 무지몽매하거나 흉악무도하다. 이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따위 소리가 이리도 쉬이 나오나. 더러는 이런 짓거리가 통하나 보다. 세월이 흐른 만큼 인식도 좀 명징해야지. 아직까지도 자기들의 행태에 비난여론이 쏟아지자 난데없이 ‘인민재판이냐?’ 떠드는 자들이 있다. 말하자면 인민군들이 엉터리 재판을 열어 민간인들을 마구 죽였다는 것이다. 이게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국군들이 늘 선량했더냐? 여기는 그런 형식마저 없었다. 누구는 저쪽의 손에 죽어서 부당하고, 누구는 이쪽의 손에 죽어서 합당한가? 이럴 수는 없다. 민간인들이 양측 군인들의 오인사격에 죽기도 했다. 더러는 유탄에 맞았고, 더러는 불길에 휩싸였다. 그러나 작전지역에서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도 숱하게 저질러졌다. 희생자들은 지천으로 널렸어도 가해자들은 몽땅 사라졌다. 이게 이상하지도 않나. 비열한 자들! 아무도 말하려 들지는 않지만, 자기들끼리도 총질을 했다. 진실은 왕왕 사람들을 참담하게 한다. ‘눈을 감자. 살자면 이럴 수밖에 없어!’ 이게 체질이 되었다. 이러고도 어떻게 화해와 치유의 길로 나아가랴. 어림도 없다. 철부지들의 무지야 그렇다 하자. 그러나 글깨나 읽었다는 어른들이 고비마다 나타나 추태를 부리는 꼬락서니는 봐주기 어렵다. ‘싫다. 정말 싫다!’ 진절머리가 난다. ‘저들을 제발 안 볼 수는 없나?’ 여기에도 주의해야 할 구석이 있다. 무엇에 질려 영영 관심조차 놓아버리는 게 나쁜 선택일 수 있다. ‘어쩌다가 내가 이러나…….’ 때때로 회의도 든다. 혹자는 후닥닥 물러났다. 누가 누굴 탓할 건 없다. 우리들은 어차피 한계를 지닌 채로 산다. 사람은 각자의 역량과 성품대로 살아야지. 누가 영웅호걸이 되라고 했나. 이른바 팔자라는 것도 있다. 그러므로 어느 술꾼의 이런 소망마저도 존중해야 한다. ‘세상 모든 종류의 술을 다 마셔봤으면…….’ 누구는 돌덩이를 만지작거리고, 누구는 애완견을 데리고 외출한다. 누구는 산에 간다. 누구는 노래를 부르고, 누구는 춤을 춘다. 누구는 립스틱 수집광이다. 날이면 날마다 저기 저 양반은 저렇게 바닥에 앉아 뜨개질을 하네. 그러나 누가 알랴. 내게는 다만 무의미할 뿐인 저런 일들로 해서 저들이 미치지 않았을지. 어떤 질문에는 정답이 아예 없거나 너무나 많다. 어떤 질문에는 끝끝내 답하지 말아야 한다. 약간의 훈수가 필요할 때도 있고, 그저 바람잡이 노릇에 그쳐야 할 때도 있다. 나는 대체로 정답보다 질문이 더 소중하다고 여긴다. 영원히 정답을 내지 못해도 좋다. 질문은 가능성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런 눈길을 던진다. ‘봐라, 모모인이 이십여 년 또는 삼십여 년 동안을 알고 지냈다. 직장동료로서 어울려 즐겁게 지낸 날들도 많았다. 이랬으면 이들이 설령 퇴직을 하거나 이직을 하더라도 모두 귀한 존재로 남아야 한다. 비록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그 마음은 한결같아야지.’ 이게 거의 기적에 가깝다. 마치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선배들의 현재가 곧 후배들의 미래이다. 그래도 당장은 자신이 이런 직장이나마 다녀서 다행이다. 자리에서 떠나자 연락도 끊긴다. “그래, 마침 잘 됐네. 짜장면이라도 같이 먹자.” 누가 반갑게 이러지도 않는다니까. 어제까지도 너나들이했던 녀석들이 전화조차 받지 않아. 속이 쓰리다. ‘저런 잡것들을 친구로 알았다니…….’ 이런다고 풀릴 속도 아니다. ‘여태 그걸 몰랐어요?’ 도리어 이런 눈총이나 면하면 다행이다. 이런 곤경이 자업자득이다. 팔자소관이기도 해. 그러나 이런 체념으로 활로를 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럴 가치도 없는 것들에 너무 몰두했구나.’ 때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내가 이 체제의 포로였구나.’ 그래도 이렇게 자위한다. ‘나는 잘못이 없었어. 나는 나름대로 성실했다!’ 가정사도 불안하다. 너무나 많은 부부들이 서로를 외면하다 끝내 파경에 이른다. 누가 누굴 덜 사랑해서가 아니다. 누가 딱히 멍청해서도 아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불화가 있다. 아무나 붙들고 물어봐라. 이들 가운데 자기가 바보라 하는 이들이 몇 명이나 있나. 나날의 삶이 이러면서 도대체 누가 누굴 비웃나. 이러니 ‘퇴진하라’를 ‘태진아랑’으로 듣는 거야 별것도 아니지. 누가 내내 이래도 무방하다. 그래도 본인이 딴에는 똑똑하다며 기세가 등등했다. 그래, 그렇다니까! ‘나도 한때는 억장이 막혔고, 더러는 잘못도 저질렀다. 그러므로 자신이 늘 위대했다고는 주장하지 않겠다. 그렇더라도 이건 아니잖아.’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어. 이건 심각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들이 평소에는 한심하다며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존재들에도 주목한다. 언제나 버려진 것들은 싸구려로 보인다. 모두 알몸으로 있는데 나 홀로 성장이라거나, 모두가 성장인데 나 홀로 알몸이라거나. 이러나저러나 어색하다. 그러나 이런 외양의 차이도 때로는 거리낌이 없다. 바로 이들이 서로 통하는 사이일 때이다. ‘아아, 나는 통하고 싶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횡설수설하는 중일 것이다. 열망은 있으나 길을 찾지 못했다. 누군가는 중언부언하는 중일 것이다. 상대가 나를 믿어주기를 바라나, 여기에 자신이 없다. 그런가 하면 더러는 거짓말로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분투하는 중이다. “어휴, 저 머저리!” 그러므로 이런 막말도 더러는 칭송이다. 사람들은 자기 몸의 췌장이나 맹장마저도 탈나기 전에는 어디에 붙은 장기들인지 모른다. 가뭄이 들어야 하늘도 원망을 하지. 뒷담화도 복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걸 홀로 할 수는 없으니까. 바로 열흘 전이었다. 모임에 나갔다. 서로 인연을 맺은 지도 20년이 넘은 분들도 여러 명이다. 이러면 누구누구를 두고 회원이나 문우라 하기는 뭔가 아쉽고 도반이라 하는 게 더 어울린다. 나는 별반 아는 게 없었으므로 조용히 남들의 의견을 들었다. 한편으로는 미안했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본디 작가들은 글을 읽고 쓰는 걸로도 행복한 자들인데, 더러는 이런저런 잡사들을 마지못해 떠맡았다. 그 자리에서 나온 의견이라는 것들의 내력이 대개 이랬다. 그러니 난들 어찌 무심할 수 있으랴. 그래서 나는 잠시나마 풍경이 되고자 했다. ‘딱히 별난 것도 없어 보이고, 그저 곁에 앉아 밥이나 먹는데도, 그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재수가 좋다.’ 어쩌면 문학도 이렇게 존재하는 게 아닐까? 이런 선순환이 좋다. 실지로 주위에는 이런 분들도 있다. 나는 이것이 오로지 행운이라고만 여기지도 않는다. 이것도 이럴 만하니까 이런 것이다. 여기서 잠깐 순대 이야기를 더 해 보자. 만약에 내가 갈색의 정체를 예전부터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내 감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이건 으레 이런 거니까. 그러나 뒤늦게 이런 줄 아니까 어째 마음이 편치가 않다. ‘지독하다. 이렇게 피까지 먹을 게 뭐 있나?’ 나는 족발도 신나게 뜯어먹는다. 언젠가는 돼지껍데기도 맛있다며 먹은 적 있다. 이런 처지에 무슨 보살이라고! 그렇잖아. 순대에 피가 들었다며 까탈을 부려? 이게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문득 궁금하다. 마침내 ‘태진아랑’이 ‘퇴진하라’인 줄 알게 된 미지의 그 사람은 그새 변했을까? 그가 잠시 손바닥으로 이마를 몇 번 탁탁 치고 말았을 수도 있다. 사람이 변하기는 어려우니까. 그러나 몇 달 사이에 이 사회 분위기는 참 많이도 달라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딴은 그렇긴 해. 어떻게 ‘퇴진하라’를 ‘태진아랑’으로 듣나. 심하다, 심해! 내가 오지랖을 더 펼치자 익명의 그 인간이 아주 별종으로 보인다. 내 주위에 이런 인물은 한 명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보다 더 행복하다거나 훌륭하다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발표작 [2017.6.16.] 김인기 1962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났다. 1991년《월간에세이》로 등단한 이후 수필집으로 『함께 가는 우리들』과『참 좋은 날』을 내었다. 현재 대구경북작가회의와 대구수필가협회 회원으로 있다. 전자우편: gagozigo@hanmail.net  
609 청게/안지숙
편집자
1201 2017-12-01
청게 덩어리 언니, 엄마가 병원 데려다준다고 빨리 나오래. 방문 밖에서 미니가 소리를 질렀다. 잠은, 아까부터 깨어있었다. 나는 몸을 뒤집어 방바닥에 엎드렸다. 묵직한 몸이 배를 눌렀다. 잠시 그대로 있다가 팔과 다리를 번쩍 들어 버르적거렸다. 한번 그래보고 싶었다. 팔꿈치와 무릎이 헐렁한 느낌이었다. 한바탕 버르적거리고 일어나 거울 앞으로 갔다. 오른쪽 목에 검푸른 멍이 보였다. 살이 쪄서 둥그스름한 어깻부들기에도 붉은 멍이 선명했다. 어제 차가 한 바퀴 돌 때 부딪친 자리였다. 어제 아침, 내가 오피스텔을 계약했다고 하자 지니는 집들이선물을 사주겠다고 했다. 지니는 나를 끌고 집을 나섰다. 잠깐만 있어봐, 아빠한테 차키 얻어올게. 지니가 길모퉁이에 있는 기장활어횟집으로 달려갔다. 카운터에 삼촌이 앉아있는 게 보였다. 나는 머플러로 얼굴을 가리고 큰길로 내려갔다. 여기까지 오는 데 지니의 도움이 컸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면접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내게 지니가 대학선배를 소개했다. 사람들이 몰라봐서 그렇지, 얘 진짜 실력 괜찮아요. 지니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나를 소개했다. 지니의 대학선배는 초짜인 내게 사보 일러스트와 인디자인 작업을 맡겨주었다. 일이 손에 익으면서 몇 군데 다른 출판사와도 연결이 됐다. 나는 누끼 따는 작업도 마다않고 하루 열네 시간씩 일했다. 오피스텔 전세금을 마련하는 데 4년이 걸렸다. 내가 오피스텔 전세금을 모으는 동안 지니는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지니는 한 달 전 임용고시에 최종합격을 했다. 그날 지니는 나를 붙잡고 펄쩍펄쩍 뛰다가 친구들을 만난다며 나갔다. 지니가 외출을 하고 혼자 남게 되자 마음이 심란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마감이 급한 쇼핑몰 밑그림을 그리다 말고 태블릿 펜을 던져버렸다. 결국 나는 의자를 뒤로 물리고 일어섰다. 내 방이 부엌방이어서 문을 열면 바로 주방이었다. 방문 옆에 냉장고가 있었다.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있는 대로 꺼냈다. 배가 고픈 건 아니었다. 어쩌면 고픈 것도 같았다. 주걱으로 밥통에 남은 밥을 양푼에 퍼담았다. 나이 들면서 많이 나아졌는데, 마음이 불안할 때면 예전 버릇이 나왔다. 임용고시 축하선물로 사두었던 장지갑은 아직 내 책상서랍에 들어있었다. 지니가 횟집 뒤편에서 차를 몰아 내려왔다. 나는 운전석에 앉은 지니를 보며 헤벌쭉 웃었다. 임용고시 합격 파티는 친구들과 했지만, 지니 곁에 앉는 사람은 나였다. 고장이 났는지 뻑뻑한 안전벨트를 당겨서 채우자 불룩한 뱃살이 눌려 숨쉬기가 불편했다. 매고 있는 시늉만 해. 지니가 차를 출발시키면서 말했다. 나는 벨트를 풀고 창을 내렸다. 지니가 라디오를 켰다. 이것 봐. 나는 휴대폰에 담아놓은 오피스텔 사진을 지니에게 내밀었다. 거실이 방처럼 분리돼 있어서 두 사람이 쓰기에 좋은 구조야. 방은 너 혼자 써. 난 거실에서 작업하고 잠도 소파에서 자면 돼. 음악소리가 시끄러워 나는 고함을 질러댔다. 지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지니가 웃으면서 차를 사차선 도로로 올리는데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거 왜 이래. 지니가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는 순간 쾅, 소리와 함께 차체가 튀었다. 빛줄기가 눈을 때렸고 앞이 캄캄해졌다. 클랙슨이 사방에서 울렸다. 이봐요.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괜찮아요? 움직일 수 있겠어요? 누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주변이 흐릿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차가 부딪치면서 충격으로 문이 열렸던지, 내 몸이 차 밖으로 널브러지듯 나와 있었다. 나는 눈을 끔벅이며 정신을 수습했다. 부서진 공중전화 부스에 차 앞 범퍼가 들어가 있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가자 마루에 앉아있던 숙모가 달려왔다. 어디 안 다쳤니? 의사는 뭐라던? 지니는 숙모에게 자동차 키를 넘겼다. 차가 한쪽으로 좀 쏠렸어. 새침하게 말하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지니는 제 방으로 들어갔다. 지니가 들어가고 딸깍, 문 잠그는 소리가 났다. 저럴 때 나는 서운했다. 내가 삼촌 집에 처음 왔을 때부터 그랬다. 지니는 스케치북이며 데생연필 같은 것을 챙겨주며 살갑게 굴다가 기분이 틀어지면 쌩하고 돌아섰다. 지니가 쌩하고 돌아서면 나는 마치 그 자리에 없는 사람 같았다. 자신이 매정하게 굴고 있다는 것을 몰랐으므로, 내가 상처받는 것을 몰랐으므로, 지니의 매정함은 무심함에 가까웠다. 그 무심함이 밉고, 부러웠다. 무심하다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알고 있었다. 바다에 나갔다 오는 아버지의 배에는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청게의 발이 흩어져 있었다. 아버지가 갑판을 정리하고 그물을 거두어 내린 뒤에도 청게의 끊어진 발이 갑판 위에서 벌벌 움직였다. 그물망태기에서 용케 빠져나온 청게들은 벌벌 움직이는 발들을 타넘으며 뱃전으로 기어올랐다. 무심하다는 것은 그런 거였다. 저 독뫼 끄트머리하고 낙동강 하구가 이 마을 앞에서 바다하고 만난다. 그래서 여기를 독뫼마을이라고 안하나. 이삿짐을 싣고 달리는 용달차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아버지 무릎에 앉아 있었다. 저거는 수심신호대다. 자리를 잘못 찾아 꽂아놓은 신호등처럼 바다 한가운데 서있는 기둥을 가리키며 아버지가 계속해서 말했다. 기둥 옆에 작대기들이 튀어나온 거 보이나? 저 작대기 개수로 물때를 짚는다. 야광페인트를 칠해놔서 밤에는 등대 역할도 한다. 아버지는 기분이 좋고 홀가분해 보였다. 옆에 앉은 엄마는 창밖으로 눈길을 둔 채 조용했다. 용달차에 탄 뒤로 엄마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낙동강 하구에 내리쬐는 땡볕으로 갯둑과 포구가 달궈진 여름 한낮이었다. 아버지는 기장 청강리에 식당을 차렸다가 망했다. 식당을 차린 지 얼마 안 돼 주변에 있던 노후아파트가 철거되면서 동네주민이 빠져나갔다. 군청 직원들은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해결했고, 퇴근 후에는 자가용과 부산행 직행버스를 타고 사라졌다. 아버지는 식당을 정리하고, 청게를 대주던 아저씨한테서 배를 샀다. 청게잡이가 그렇게 좋으면 자기가 하지, 당신한테 배를 팔까. 엄마가 목소리를 높이면 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독뫼마을에서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엄마는 선착장에서 회와 소주를 팔다가 기장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엄마가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장사를 하던 선착장에서 놀았다. 선착장에서 놀고 있으면 회와 소주를 파는 좌판 이모들이 멍게꼭다리를 손에 쥐여 주었다. 나는 멍게꼭다리를 씹으며 공기받기를 하다가 선착장 끝으로 달려가곤 했다. 선착장에서는 수문과 배수 펌프장과 독뫼가 한눈에 보였다. 어부아저씨들이 내던진 전어와 웅어 새끼를 차지하려고 날아다니는 갈매기들도 보였다. 푸른빛이 군데군데 섞인 주황 노을이 독뫼산 물그림자에 스며들 즈음, 마을의 배들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수심신호대에 붙은 작대기가 세 개가 되면 배를 타고 나가 그물을 던졌다. 작대기가 다섯 개쯤 보일 때 다시 배를 타고 나가 청게가 걸려든 그물을 끌어올렸다. 새벽 물때에 바다로 나가 그물을 던지던 아버지가 죽고, 몇 년째 소식을 끊었던 엄마가 집으로 왔다. 엄마는 장례를 치르고 수협 아저씨들을 만나면서 바쁘게 보냈다. 사흘 뒤 엄마는 나를 외할머니한테 맡기고 다시 떠났다. 나는 엄마가 사놓고 간 새 옷을 입고 새 운동화를 신고 외할머니와 함께 기차를 탔다. 내가 안고 있는 가방에는 엄마가 사준 24색 크레파스가 들어있었다. 삼촌집에 가면 시키는 대로 해라.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교도 보내줄 거다. 열차를 타고 오면서 외할머니는 열 번쯤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심하게 멀미를 했고, 삼촌집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토했다. 삼촌과 숙모, 내 또래 여자애 둘이 마루에 앉아 있었다. 나는 토사물을 내려다보며 비죽비죽 울었다. 괜찮아. 울지 마. 두 여자 아이 가운데 머리를 길게 기른 아이가 마당으로 내려왔다. 나는 지니야. 너랑 같은 5학년. 나는 입가에 묻은 것을 닦고 지니를 보았다. 지니가 생긋 웃으며 내 손목을 잡았다. 나는 지니를 따라 마루로 올라갔다. 삼촌집으로 온 다음날 숙모가 전학수속을 했다. 교무실에서 만난 선생님을 따라 5학년 7반 교실로 갔다. 교실 안에 지니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인사를 하자 아이들이 경상도 억양을 흉내 내며 떠들었다. 종례가 끝난 뒤 아이들이 나를 불렀다. 나는 아이들을 따라 운동장을 가로질러 갔다. 타라. 우리가 돌려줄게. 원판 가장자리를 따라 쇠막대를 드문드문 박아놓은 뺑뺑이 앞에서 아이들이 말했다. 타고 싶지 않았다. 웃는 표정들이 수상했다. 어서 타라니까. 아이들 중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원판에 올라서자 아이들이 쇠막대를 나눠 잡고 돌리기 시작했다. 금세 속도가 붙었다. 어지러웠다. 멀미가 났다. 내 몸이 쇠막대 사이로 튀어나가 담장에 패대기쳐지는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만해! 비명을 지르다 왼손을 놓쳤다. 동시에 왼발이 미끄러지면서 몸이 붕 떴다. 시소와 늑목과 철봉과 장미넝쿨이 휙휙 지나가더니 시커먼 벽이 눈앞을 덮쳤다. 죽었나 살았나. 아이들이 둘러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도 안 나는데 엄살 떨지 마. 누군가 겁먹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땅바닥에 누운 채 꼼짝하지 않았다. 일어나. 땅바닥에 누운 채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죽었는데……. 꿈인가. 아닌데. 분명 아버지 목소린데, 생각하며 눈을 떴다. 나는 방파제에 누워있었다. 얼른 일어나거라. 그러다 청게한테 물린다. 아버지가 말했다. 청게는 여기 들어있는데 내가 와 물리노. 나는 그물망태기를 발로 차는 시늉을 했다. 어디 보자. 아버지가 손질하던 그물을 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아저씨들한테 가서 당근을 얻어왔다. 봐라. 아버지가 그물망태기를 툭툭 건드렸다. 어, 하는 사이, 그물망태기 새로 집게발이 나와서 당근 끄트머리를 싹둑 잘랐다. 나는 움찔 손가락을 오므렸다. 니 아나. 아버지가 물었다. 뭐를? 나는 아버지가 구멍 난 그물을 손질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청게가 니같이 쪼맨한 아이를 붙잡으면 바다로 끌고 가는 거. 나는 벌떡 일어나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말도 안 된다. 내 말을 못들은 척 무연히 바다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말했다. 청게가 깊은 바다로 가는 길인데, 만약에 니가 청게한테 붙잡히면 어떻게 되겠노. 나는 입을 벌린 채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해를 등지고 선 채 아버지는 그늘 같은 주름을 접으며 웃었다. 오늘은 바람이 없어서 청게가 바다로 내려가지는 않겠다.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그해 청게잡이 철이 끝날 무렵 죽었다. 그물코에 걸려 넘어지면서 뱃전에 머리를 부딪쳤고, 바다로 떨어졌다. 허참, 사람이 우째 어이없이 죽노. 아버지의 죽음을 놓고 동네 사람들이 혀를 찼다. 아버지처럼, 나도 운동장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 죽고 싶었다. 아니, 아버지처럼 나도 바다로 가고 싶었다. 아버지는 사실은 죽은 게 아니라 청게를 따라 바다로 갔다. 마을에서 어린 청게들을 방류하면 깊은 바다에서 자란 뒤에 낙동강 하구로 돌아온다고 아버지가 가르쳐주었다. 낙동강 하구에서 짝짓기를 하고, 개펄과 모랫바닥에서 살이 단단해진 청게들은 다시 수심신호대를 지나 바다로 돌아간다고 했다. 뺑뺑이판에서 떨어졌던 날 저녁, 피아노 레슨을 마치고 온 지니가 내 방으로 왔다. 다친 데가 어디야? 많이 아파? 잠깐만 있어봐. 지니가 도로 나가더니 약상자를 들고 왔다. 아프겠다. 지니는 살이 벗겨져 불긋불긋한 무릎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오른쪽 뺨과 손목에도 피딱지가 앉아있었다. 약을 적신 면봉을 갖다 대자 땅바닥에 쓸린 상처가 따가웠다. 길게 기른 머리를 귀 뒤로 야무지게 넘기고 입김을 호호 불던 지니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었다. 이제 안 아프지? 나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왔다. 지니가 두 팔을 벌려 내 어깨를 안아주었다. 네가 와서 너무 좋아. 어디 가지 말고 우리집에서 같이 사는 거다. 지니의 입김에 귀가 간질간질했다. 나는 눈물을 훔치면서 웃었다. 지니는 아침부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숙모와 함께 병원에 갔다. 어제 갔던 병원이었다. 딱히 아픈 데는 없었다. 멀미를 할 때처럼 속이 메슥거렸고, 몸과 마음이 붕 떠서 뭔가 못 견디겠다는 느낌이었다. 의사는 목과 어깨, 등으로 번져있는 멍을 꼼꼼히 살폈다. 멍이라는 게 피가 죽어서 그런 것인데 색이 노래지다가 없어질 것이라고, 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다.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숙모가 얼굴을 폈다. 지니는 밤이 다 되어 내 방으로 왔다. 병원에 같이 가줘야 되는데, 미안해. 나는 등을 돌려 누웠다. 그동안 내가 임용 되려고 고생한 거 너도 알잖아. 어제 사고로 문제라도 생길까봐 걱정돼서 한숨도 못 잤어. 나는 손가락을 구부려 이 사이에 물었다. 지그시 힘을 주자 손가락 끝에서부터 팔꿈치로 파닥파닥 통증이 올라왔다. 여기가 파랗다. 지니가 내 등 뒤에 누워 어깨를 쓰다듬었다. 멍은 금방 없어지잖아. 며칠 있으면 표도 안 날거야. 지니한테서 술 냄새가 났다. 지니한테서 나는 술 냄새는 삼촌한테서 나는 술 냄새처럼 역하지 않았다. 지니가 내 등에 글자를 썼다. 미.안.해. 파닥거리던 통증이 차차 가라앉았다. 나는 잇새에 물고 있던 손가락을 빼고 돌아누웠다. 다음 주에 오피스텔 잔금 치를 거야. 나랑 같이 가. 지니가 내 어깨를 짚고 일어나 앉았다. 어쩌지, 내일 동유럽으로 여행 가는데. 임용 합격되면 배낭여행 가자고 친구랑 약속 했거든. 너한테 말했는데 기억 안나? 지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우리 둘이서 여행을 가자고 한 적은 있었다. 오래 전이었다. 지니는 세계여행이 꿈이라고 했다. 공부하다가 졸리면 내 방으로 쫓아와서 베르사유궁전과 오로라와 갠지스강과 마추픽추에 대해 인터넷에서 긁어온 내용으로 수다를 떨었다. 나중에 우리 같이 살면서 세계 여러 나라를 다 가보자. 둘이서만 살면 되게 재밌을 거야. 지니의 말에 나는 벌쭉벌쭉 웃었다. 나는 지니에게 어리숙하고 천진하게 보이는 데 온 에너지를 썼다. 우리 순둥이. 지니는 그럴 때마다 곰 인형을 안 듯 나를 껴안았다. 지니가 안아줄 때면 부끄럽고, 슬프고, 외롭고, 고마웠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종종 소공원을 갔다 오곤 했다.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비탈길을 10분쯤 걸어 오르면 운동기구가 놓인 소공원이 있었다. 우리는 냉장고에서 꺼내온 캔맥주와 새우깡을 놓고 벤치에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마을은 오징어 배들이 불 밝힌 밤바다 같았다. 불빛이 어두워지는 마을 저편으로 홍제천이 흘렀다. 저건 수심신호대 같다. 수심신호대는 바다에 서있는 기둥인데 수심도 알려주고 등대 역할도 해. 나는 마을 한가운데 솟은 교회 탑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울에서는 바다 보려면 인천이나 강릉까지 가야 돼. 우리 외갓집이 강릉에 있잖아. 알지? 지니가 말했다. 그럼, 알지. 강릉인 거. 방학 때마다 숙모랑 미니랑 같이 거기 가잖아. 탓하는 것처럼 들릴까봐 나는 속으로 말했다. 지니는 외갓집으로 가면 사나흘쯤 지나서 돌아왔다. 삼촌은 식당 때문에 같이 가지 않았다. 나는 혼자 집을 지켰다. 저녁 먹은 설거지를 끝내고 부엌과 마루에 불을 끄고 나면 그때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대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얼굴이 차가워지면서 몸이 뻣뻣해졌다. 악몽을 꿀까 봐 잠드는 게 무서웠다. 잠이 들려고 하면 차갑고 비린내를 풍기는 손이 들어왔다. 옆구리에, 가슴에, 다리에 꾸무럭거리는 손이 달라붙었다. 씨발, 싫다고! 비명이 튀어나오는 입을 내 손으로 틀어막았다. 닥닥닥 사정없이 떨리는 잇새에 손가락을 넣고 콱 깨물었다. 이빨에 찍힌 통증이 비명을 막았다. 악몽에 갇혀 죽는 것보다 비명을 질러 악몽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더 무서웠다. 내가 왜 손톱과 손마디를 물어뜯는지, 피멍이 들도록 손목을 꾹꾹 무는지 지니는 몰랐다. 지니는 아무것도 몰랐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내 손목에 새겨진 피멍이 지니에게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일까, 서운해지는 마음도 꿀꺽 삼키면 그만이었다. 지니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원수업을 받느라 늘 지쳐 있었다. 식탁에서 지니가 말을 걸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먹는 데 집중했다. 밥과 국을 먹고, 생선토막과 소시지와 김치를 먹고, 마늘장아찌 같은 밑반찬까지 긁어먹었다. 말이 하고 싶을 때도 먹었고, 말이 하고 싶지 않을 때도 먹었다. 먹는 만큼 살이 쪘고, 살이 찌는 만큼 마음이 무뎌졌다. 삼촌은 먹을 걸 입안에 밀어 넣는 내 모습을 못 봐주겠는지 눈길을 돌렸다. 살 것 같았다. 나는 더 많이, 뭐든지 삼킬 수 있었다. 저러다 우리까지 먹어 치우겠다. 숙모의 농담에 지니와 미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를 두고 던지는 농담에 지니가 웃을 때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마음이 쓰렸다. 마음이 쓰릴 때마다 뱃속에 똬리를 튼 덩어리가 딴딴해졌다. 뱃속에서 딴딴하고 묵직해진 덩어리는 청게의 집게발처럼 날카로운 모서리로 나를 찔렀다. 지니와 함께 소공원 벤치에 앉아 서로의 꿈을 나눌 때 나는 청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청게를 잡다가 바다로 내려간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뱃속에 뭉쳐져 있는 덩어리가 말랑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아버지는 청게를 따라 간 거지. 어린 청게를 방류하면 바다로 내려가거든. 깊고 멀고 너른 심해바다로 간대. 내 말에 지니가 까르르 웃었다. 청게가 어떻게 심해바다까지 내려가니. 헤엄을 치지도 못하는데.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진짜야. 내가 봤어. 지니가 맥주캔을 비우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어떡해. 우리 너무 오래 있었다. 빨리 가서 공부하자. 지니가 내 팔을 잡아 일으켰다. 그때처럼,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못했는데, 등 뒤에 누워있던 지니가 일어나 앉았다. 다음엔 우리 둘이서 가자. 동유럽에도 가고 파리에도 가자. 그럼 되잖아. 지니가 내 볼살을 가볍게 잡았다가 놓았다. 내일 못보고 갈지 몰라. 새벽 일찍 공항 가야 하거든. 나는 일어서는 지니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 놀래라. 지니가 손목을 잡힌 채 약간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나는 지니의 손목을 잡은 채 몸을 일으켜 앉았다. 다음에 언제? 우리 둘이서 언제 동유럽에 가고 언제 파리에 가? 내 목에서 뻑뻑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지니에게 그런 식으로 물은 적이 전에는 없었다. 따지듯 묻고 나자 분하고 서러운 어떤 감정이 물꼬를 튼 듯 솟구쳤다. 그런 표정 좀 짓지 마. 이거 놓고. 지니가 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힘을 주어 풀었다. 몸통에서 떨어진 청게의 발처럼 손이 무릎 위로 떨어졌다. 올 때 선물 사올게. 미술관 책자 같은 거 괜찮지? 나는 팔을 늘어뜨린 채 말했다. 이사는, 네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하자.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쇳가루를 삼킨 듯 목이 갑갑했다. 지니가 나가고, 나는 거울 앞으로 가서 입을 벌렸다. 불빛의 각도에 맞춰 고개를 한쪽으로 꺾은 채 목구멍을 살폈다. 목젖 뒤로 퍼런 녹 같은 게 끼어있었다. 보름쯤 지나자 온몸에 퍼런 멍이 번졌다. 의사는 골수검사니 뭐니 몇 가지 검사를 하고는 혈소판감소증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사소한 자극에도 멍이 새로 들 수 있으니 되도록 움직이지 말고, 햇볕에 나가는 것도 삼가라고 했다. 햇볕이 피부조직을 손상시켜 멍이 잘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행히 내 경우 혈소판감소증이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생긴 것 같으니 휴식만 잘 취하면 차차 나아질 거라고 했다. 의사의 처방대로 나는 바깥출입을 삼가고 종일 방에서 누워 지냈다. 저 언니 보면 이상하게 기분 나빠. 오피스텔 구했다면서 왜 이사 안 가. 방에 누워있으면 주방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식탁 치우는 소리가 나고, 숙모가 식반을 들고 왔다. 내가 식탁에서 자꾸 국을 엎고 그릇을 떨어트리자 숙모가 식반에 밥을 차려 갖다 주었다. 어째 멍이 없어지질 않냐. 차차 나아질 거라더니. 내가 몸을 일으키자 숙모가 등을 받쳐주었다. 나는 식반을 잡았다가 도로 밀쳐놓았다. 얼마 전부터 나는 눈앞에 먹을 것이 있어도 입에 집어넣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았다. 입맛 없어도 먹어. 식당도 바쁜데 내가 떠먹여줘야겠니. 요즘 같아서는 손이 열이라도 모자란다. 나는 숙모의 말을 자르고 물었다. 지니는요? 아직 아무 연락이 없어요? 이미 수십 번쯤 나는 지니에 대해 물었다. 물으면서, 혹시 전화가 왔는데 나한테 알려주지 않는 건지 숙모의 표정을 살폈다. 올 때 되면 알아서 오겠지. 지니는 놔두고 네 몸이나 신경 써라. 숙모가 내 턱밑으로 식반을 밀어놓고 일어섰다. 나는 주의를 기울여 식반에 놓인 젓가락을 잡았다. 방안에서만 지내서 그런가, 갈수록 몸을 움직이는 게 부자연스러웠다. 움직일 때마다 관절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났고, 손과 발이 따로 놀았다. 팔다리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게 아니라 힘 조절이 안 됐다. 거기다 엄지손가락의 관절이 부어오르면서 쇠공처럼 두툼해지는 바람에 젓가락질 같은 섬세한 동작을 하는 데 애를 먹었다. 녹이 쓴 것처럼 온몸이 퍼레지고, 관절이 덜거덕거리는 것 말고도 내 몸에 일어난 변화는 또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살이 붙기 시작해 80킬로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던 몸에서 비곗살이 빠져나갔다. 세 겹 네 겹으로 접히던 뱃살과 옆구리와 어깨에 시루떡처럼 얹혀있던 살집이 사라졌다. 질긴 살가죽이 뼈를 감싸면서 팔다리와 등과 어깨가 막대아교처럼 딴딴해졌다. 뱃속에서 쿡쿡 쑤셔대던 덩어리가 물렁살을 뚫고 나와 전신을 덮어쓴 것 같았다. 살갗이 아교처럼 딴딴하고 끈끈해진 탓인지 날씨가 더워지면서 몸 구석구석이 가려웠다. 한 번 가렵기 시작하면 어깻죽지와 등이, 손목 발목이, 잇몸이 다 미치게 가렵고 근질근질했다. 엄지손가락의 관절이 두툼해지면서 집게발처럼 변한 팔을 반대쪽 겨드랑이 밑으로 넣으면 옆구리와 등의 절반을 긁을 수 있었다. 긁다 보면 딱딱한 피부에서 뭔가 오톨도톨한 것이 만져졌다. 돌기를 긁어낼 만큼 손가락에 힘을 주어 박박 긁어도 가려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근질거림은 살갗이 아니라 몸 안쪽에서 돋아나오는 것 같았다. 몸통 속의 근질거림끼리 부딪치게 하면 시원해질까 싶어 나는 발작하듯 몸을 꿈틀꿈틀 움직였다. 으으, 보기 흉해. 몸을 뒤집어가며 꿈틀거리는데 미니가 토하는 시늉을 했다. 좀 전까지 식탁에서 쩝쩝거리던 삼촌과 숙모, 미니가 문간에 서있었다. 삼촌과 숙모는 질린 표정이었다. 숙모가 방문을 닫았다. 흉한가. 보기에. 내가. 말들이 두서없이 머릿속에서 흩어졌다. 끈적끈적한 땀이 목으로 흘러내렸다. 더운 숨을 내쉬면서도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갑갑해도 닫아놓는 게 마음이 편했다.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아 방안에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종일 이부자리 위에 엎드려 있었다. 등이 딱딱해지면서 누워있는 것보다 엎드려 있는 자세가 편했다. 온몸을 긁고 뒤집느라 잠을 설쳤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가려운 데도 없고, 기분이 한결 상쾌했다. 관절이 제자리를 잡았는지 덜거덕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는 거울 앞으로 기어갔다. 벽에 기대어 둔 거울 속에서 청동색의 껍데기를 등에 진 청게가 쇠망치 같은 집게발로 자세를 잡고 있었다. 냄새가 나서 못살겠다. 너도 우리 눈치 보느라 갇혀 지내는 것보다 혼자 문간방을 쓰는 게 편할 거다. 숙모가 마당에 서서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나는 마루에 엎드려 숙모의 말을 들었다. 마당에서 반사되는 여름햇살에 몹시 눈이 부셨다. 식당에서 갖고 온 밀차를 마루 밑에 대놓고 삼촌과 숙모가 양쪽에서 내 등껍데기를 붙잡았다. 청동색의 등껍데기는 며칠새 더 두껍고 더 단단해져 웬만한 충격에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혼자 걸어가겠다고 했는데, 숙모가 밀차를 고집했다. 휘뚝휘뚝 걷다 자빠지면 뒷감당을 누가 하느냐고 짜증을 냈다. 굳이 밀차를 못 탈 것도 없어 다리를 마루 밑으로 하나씩 내렸다. 밀차에 집게발을 걸치고 올라서는 순간, 바퀴가 미끄러지면서 다른 쪽 집게발을 쳤다. 불에 덴 듯 화끈한 통증이 덮쳐왔다. 그 바람에 중심을 잡으려고 버르적거리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밀차의 상판 귀퉁이에 가슴을 처박았다. 아이고, 괜찮으냐? 조심을 하지. 숙모가 우는 소리를 냈다. 나는 수선을 떨기 싫어 밀차에 얌전히 엎드렸다. 밀차가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마당을 가로질렀다. 비어있던 문간방으로 옮겨온 뒤로 나는 좀 시무룩해지긴 했지만 더 슬프거나 비참하지는 않았다. 몸에 붙어있던 비곗덩어리가 떨어져 나가면서 감정의 거품도 꺼졌는지 웬만해서는 분하거나 서운한 감정이 일지 않았다. 몸의 고통마저 사소하게 느껴졌다. 오른쪽 집게발이 목각인형의 다리처럼 흔들거리고, 밀차 귀퉁이에 다친 가슴에서 푸르스름한 진액이 흘러나왔지만 내버려두었다. 문간방에서 지낸 지 두어 달쯤 지났을 무렵, 지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닫이문을 열자 쌀쌀한 바람이 들어왔다. 마당 건너 집안에서 지니와 숙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니는 발령을 받았고,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구해 따로 나가서 살고 싶어 했다. 말소리가 다 들리는 건 아닌데, 집안에서 오가는 어떤 대화는 거의 감지할 수 있었다. 식당공사를 하는 바람에 여유가 없다는 숙모에게 지니는 내가 모아놓은 전세금을 들먹였다. 가서 말해 봐요. 나중에 은행이자보다 높게 쳐서 돌려준다고 하면 되잖아. 숙모가 지니에게 직접 가서 말하라고, 졸음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가면 또 들러붙을 거란 말이야. 나, 쟤 좀 그래. 스토커 같다니까. 지니의 목소리에는 배낭을 메고 먼 곳을 여행하고 온 피로의 냄새가 배어있지 않았다. 나는 지니에 대해 예전처럼 오래 생각하지는 않았다. 가끔 지니가 마당을 건너와 쪽마루에 식반을 내려놓고 갔다. 나는 지니를 부르지 않았다. 지니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하루 중 대부분을 귀퉁이가 떠들린 장판과 구석구석 죽어있는 벌레들을 보며 엎드려 있거나 잠을 잤다. 몸을 뒤척이던 잠결에 흔들거리던 집게발이 떨어져 나갔다. 진액으로 짓무른 가슴께에서는 고름 냄새가 나고 구더기가 슬었다. 구더기는 살을 뚫고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종종 사지를 뒤틀리게 하는 이물감과 무슨 비애 같은 것이 뱃속을 관통했다. 통증으로 정신이 아득해질 때면 선박엔진이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웽, 하는 소리의 진동이 방바닥과 벽을 타고 다리로, 배로, 가슴으로 전해졌다. 사람들 말소리, 웃음소리가 엔진소리에 섞여 날아들었다. 곰팡이로 얼룩진 벽이 물때가 바뀔 때의 바다처럼 일렁거렸다. 바다 위로 발갛게 해가 떠올랐다. 부신 눈을 찌푸리자 수심신호대를 지나가는 청게 떼가 보였다. 바다에서 자란 뒤 강 하구로 돌아와 개펄과 모랫바닥에서 살을 찌운 청게들이 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있는 거였다. 청게의 기억 속으로 어떤 사람이 들어섰다. 방파제에서 엉킨 그물을 풀고, 바다에서 걸려 나온 찌꺼기를 빼내던 남자, 저렇게 손질한 그물을 던지다 발이 걸린 남자가 있었지. 뱃전에 머리를 부딪치고 바다로 떨어진 남자는 청게 떼를 따라갔어. 청게 떼를 따라 가는 남자를 떠올리자 마음이 붉고 서글퍼졌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벽을 쳐다보다가 그쪽으로 몸을 옮겨갔다. 톱니 같은 게 솟아난 왼쪽 집게다리를 들어 아래쪽 벽을 쳤다. 틈이 벌어져 있던 아래쪽에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겼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벽 아래쪽에 생긴 구멍으로 골목을 내다보며 오후를 보냈다. 여자애들 몇이 골목을 들락거렸다. 담배를 피우며 떠들던 여자애들이 몰려가고, 헌옷 수거함 뒤에서 작은 머리통이 삐져나왔다. 갈색 고양이였다. 쓰레기봉투를 노리고 살금살금 다가가는 고양이를 보자 꾸르륵 허기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파지를 모으는 늙은 여자는 매일 저녁 가로등이 들어오는 시간에 나타났다. 밤이 깊어지면 여자애들이 담배를 피우던 자리에 누군가 오줌을 누고 갔다. 술 냄새와 오줌 지린내가 벽의 구멍을 통해 새어 들어왔다. 취객들의 발걸음 소리가 지나가고, 깜박 잠이 들렸는데 문이 열렸다. 방안의 어둠 속에서 삼촌이 옆구리를 더듬었다. 차갑고 비릿한 손이 달라붙은 살가죽이 길게 벌어졌다. 목구멍에서 녹을 긁는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뭐라는 거냐. 엉, 뭐라는 거냐. 삼촌이 헐떡였다. 눈과 귀와 입으로 비린내를 흘려 넣으며 삼촌의 몸이 반쯤 들어왔을 때 길게 벌어졌던 상처가 꽃봉오리처럼 오므라졌다. 아교풀처럼 끈끈한 살가죽이 오므라들면서 삼촌을 눌렀다. 조금씩, 더 단단히 눌러 마침내 삼촌이 뭉텅 잘렸다. 피가 퍽, 쏟아졌다. 잘리고 남은 몸통이 힘줄에 달린 채 덜렁거렸다. 방안의 날벌레들이 들러붙기 전에 피칠갑된 상처 주둥이가 덜렁거리는 몸을 훌떡 삼켰다. 삼촌을 삼켜 없애는 동안 집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것처럼 조용했다. 오래 전 청게의 몸이 되어 미니를 삼키고, 숙모마저 삼켜 없앴던 건지 기억이 흐릿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지니가 마당을 가로질러 다박다박 걸어왔던 것도 같았다. 지니는 선물을 내밀며 삐친 내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그게 뭐였더라. 미술관 책자였나. 지니가 책자를 안고 서있던 모습이 기억 속에서 돋아났다. 내가 지니를 향해 말을 걸었다. 보기에 좀 그렇지? 놀라지 말고, 들어와. 방문을 열고 머뭇거리던 지니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나는 진심이었다. 지니가 내 얼굴을 뜯어보고 나서 말했다. 그동안 일이 좀 있었어. 프라하에서 아는 선배를 만났는데 몇 달만 가게 일을 도우면서 있어 달라더라. 그 선배, 선물가게를 했거든. 발령 날 때까지 외국에서 살아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은 거야. 네가 이런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돌아오는 건데. 마음이 너무 안 좋다. 많이 힘들지? 지니는 말을 쏟아내면서도 나하고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처음엔 불편했는데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아. 이제 너도 왔고. 지니가 내 등껍데기에 손을 얹었다. 저번에 얻으려고 했던 오피스텔 있잖아. 그 근처에 비슷한 오피스텔이 나왔더라. 네 공인인증서 비번 그대로던데, 그 돈으로 계약하자. 네 이름으로 할게. 괜찮지? 나는 지니를 보려고 턱을 들었다. 지니가 내 등껍데기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생김새가 이상하게 변해버린 애완동물을 보듯 지니는 나를 골똘히 봤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나를 애완동물로 보든, 스토커로 보든, 오천만 원짜리 통장으로 보든 상관없었다. 나는 집게발을 들어 지니의 손목을 붙잡았다. 왜 이래. 이거 놔. 소리를 지르며 일어서던 지니가 손목을 잡힌 채 방바닥에 넘어졌다. 버둥거리는 지니한테서 달큼한 냄새가 났다. 나를 안아준 말랑한 팔을, 내 상처에 약을 발라준 다정한 손을, 둘이 살면서 여행을 같이 다니자고 말할 때 생긋거리던 얼굴을 삼켰다. 다정하다가 매정하고 매정하다가 다정한 엄마처럼, 내게서 등을 돌렸던 몸통을 온전히 삼키고 나서 지니에게 대답했다. 그럼, 괜찮아. 나는 늘 괜찮다고 했잖아. 나는 괜찮았다. 미니를 삼키고, 숙모를 삼키고, 삼촌을 토막 내어 삼키는 건, 역겹지만 치러야 할 일이었다. 지니를 삼킬 때는 이제 겨우 한 몸이 되어 살겠구나, 생각했다. 뱃속에서 영양소로 변해갈 지니의 몸을 생각하면 웃음이 삐져나왔다. 흥분이 가라앉고 나자 속이 좀 메스꺼웠다. 근육과 뼈와 힘줄이 새로 맞물린 데다 집어삼킬 수 있는 건 다 집어넣은 뱃속이 곤죽이 된 모양이었다. 마당은 비어있고, 집안에 인기척이 없는데 웽,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방안으로 흘러들었다. 나는 가로등 불빛이 흘러드는 벽의 구멍을 지켜보다가 남은 집게발로 중심을 잡고 일어섰다. 몸은, 시멘트를 발라놓은 듯 단단하고 묵직했다. 벽 쪽으로 등을 돌리고 서서 뱃전에서 뛰어내리듯 몸을 내던졌다. 방패 같은 등껍데기가 벽을 칠 때마다 선착장에 묶어놓은 선외기 보트들이 맞부딪칠 때처럼 턱턱 소리가 났다. 금이 가있던 벽에서 흙부스러기가 쏟아지고 굴이 뚫리듯 큰 구멍이 생겼다. 웽, 하는 소리가 사라졌다. 밤의 정적을 가르며 고양이 울음소리가 날아왔다. 흙먼지가 가라앉고, 골목 끝 저만치 수심신호대가 보였다. 갯비린내 나는 바닷바람이 먼저 불어왔다. 네가 있어서 너무 좋아. 속살거리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따라왔다. 잠시,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 서있던 나는 골목으로 터덕터덕 걸어 들어갔다. 한쪽 집게발이 떨어져 나가긴 했어도 걸을 만했다. 야광페인트를 칠한 수심신호대의 빛이 바다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방패처럼 껴입었던 등껍데기와 몸통에서 떨어진 집게발은 방안에 남겨져 죽은 벌레들과 함께 바스러졌다.  
608 체크무늬 외1편/김만수 file
편집자
1587 2017-12-01
체크무늬 평생 그 속에 갇혀 있었다 잔잔한 떨림으로 번져오던 칸 칸 이어지는 직선 무늬를 타고 계단들이 자라 올랐고 그 직선을 타고 떠나왔다 때로는 찌그러지는 체크무늬를 만들고 껴입기도 하면서 세상의 빈칸에 파고들곤 했다 따스하기도 하고 꽉 찬 칸에서 튕겨나 세상의 끝자리에 매달려 대롱거리기도 하면서 젖은 현수막으로 걸려있기도 했다 늑골에 소복한 보푸라기들을 찌르며 마분지 같은 칸들이 밀려와 매달렸다 저녁 새들이 물고 오던 칸들이 있었다 구름 경전이 칸 가득 쌓이기도 하고 다시 그 질긴 교직交織에 갇히고 풀리기도 하면서 헐거덩거리며 왔다 정물 혹은 자화상 자주 창 안에 걸려 있었다 설핏 남은 햇살이 펴는 길을 가고 싶었다 턱을 조금 당기고 걷다가 멈춰 선다 오래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조금씩 끌어당기는 거라 생각하며 나를 당겨본다 창 안이다 주전자는 늘 왼쪽에 있고 오른쪽 치마 단이 좀 더 길게 주름져 내린 여자가 주전자와 나란히 앉아 있다 가끔 사랑하는 일의 힘겨움으로 하여 그 의자에서 내려앉기도 하지만 격렬한 고요 속 그냥 갇혀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아침 치자꽃잎이 고양이를 보고 있는 동안 아무도 창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는 의자와 종소리와 덮어놓은 경전이 여전히 창 안에 있고 가만히 입 다물고 걸린 벽 문틈 기어드는 바람의 끝이 잠시 곁에 머물다 지난다 약력) 김만수: 포항생. 1987년 실천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한국작가회의 회원. 포항문학회원 해양문학상. 장시 <송정리의 봄> 시집<소리내기>.<햇빛은 굴절되어도 따뜻하다>.<오래 휘어진 기억>.<종이눈썹> <산내통신>.<메아리 학교>.<바닷가 부족들>.<풀의 사원>  
607 가장 넓은 귀 외1편/최순섭 file
편집자
1535 2017-12-01
가장 넓은 귀 모두가 죽어가는 들판에서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꽃들이 수런거리는 가을이다 슬픔보다 어둠이 깊어 새벽은 더 멀리 물러나 뉘를 사랑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사는 게 저리 힘들어… 시시콜콜 꽃들이 던지는 말 혀 꼬리 돌돌 말려 흐려질 때 지상의 주파수만큼 간절한 귀들이 울고 있다 하늘은 파랗고 드넓은 접시안테나 천지에 없는 귀 있는 귀 다 열고 가만가만 들어주고 있다 호프집 소소한 저녁 서둘러 레이더를 수리하는 거미 한 마리 찬거리 마련하려고 푸른 나뭇잎 사이로 내려와 가게 문을 열고 있다 비를 뿌리며 다가오는 덩치 큰 먹잇감 먹구름이 무사히 통과했다 회오리도 한입에 삼키는 바람 집 끈적거리는 여름밤 내 발에 감지되는 몇 사람 거미줄에 걸려 허둥거린다. 최순섭 시인. 1978년<시밭>동인으로 작품 활동. 환경신문 에코데일리 문화부장, 한국가톨릭독서아카데미 상임위원, 동국대 경기대 평생교육원 출강, 시집 『말똥,말똥』 등이 있다.  
606 한겨울에 산에 오르다 외1편/정선호 file
편집자
1398 2017-12-01
한겨울에 산에 오르다 국내 휴가를 받아 고국에 가서 산에 올랐네 한겨울에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산은 막아 시내에 들어가지 않게 했네 모든 생물은 지상과 지하에서 동면을 했네 사계절 구분이 없는 적도 지방에는 겨울 또한 없네 거의 모든 산에는 밀림이 있으며 사나운 짐승이 많아 아무도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네 12월에도 온 산과 들녘은 파란 물결로 넘실댔으며 내 피도 온통 녹색으로 바뀌었네 산에 이국에서 만들어진 내 푸른 피를 흩뿌리자 몇 개의 개나리와 진달래 줄기에 꽃 피었네 산을 내려오다 산사로 향했네 내 푸른 혈관을 따라 가야만 그곳에 도착할 수 있네 석가모니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수도를 끝낼 즈음엔 몸속의 피가 푸른색으로 바뀌었다는 일화가 있었네 산사는 여러 채의 신축 건물이 이미 들어섰으며 다시 얼마나 더 건물이 지어질지 모를 일이었네 목어를 때리는 바람은 등뼈가 시려 울어댔으며 부처에게 절하는 신도들의 기도는 하늘로 올랐네 내 혈관에선 푸른색 피가 붉은색으로 바뀌어갔고 수빅시 해변을 달리다. 휴일 저녁에 수빅시 해변을 달렸네 해변을 달린다는 것은 바다 위를 달린다는 것, 일년내내 열리는 야자수 나무를 따라 노을을 바라보며 식사하는 사람들 지나고 호텔 수영장에서의 사람들 지나 달렸네 해변을 달린다는 것은 우주를 항해하는 것, 무수한 별들을 지나고 우주의 길을 달린 후 지구에 돌아 온 내 나이는 지금과 같았네 아내는 이미 고향의 별로 돌아갔으며 아이들은 노인 되어 바닷가를 걸었네 다시 달리던 내가 백발인 아들을 지나쳤으나 쳐다보지 않고 자식들과 야외식당으로 들어갔네 머리를 검게 염색했지만 주름이 많은 딸은 달리는 나를 한참 바라보다 눈물을 훔치고는 자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며 걸었네 해변을 달린다는 것은 철저하게 고독하다는 것, 이국에서 혼자이며 우주에서는 미아가 된 내가 습관적으로 매주 해변을 달렸네 바다 위 달리며 섬들을 곳곳에 만들었고 사라지질 않을 땀을 길 위에 뿌려놓았다  
605 반문하는 존재 외1편/허남기 file
편집자
1657 2017-12-01
반문하는 존재 늘 구석진 곳에서 습관적으로 구겨진 존재 길들여진 버릇을 버리고 억겁의 두께를 벗기자 시답잖은 이력의 서술로 불쑥 솟아오른 나의 존재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면 허기진 존재를 볼 수 있을까 늘 한 방향으로 보이는 두 모습의 허상으로는 존재감을 읽을 수 없어 두문불출한 옥탑방엔 팬트하우스로 살아온 저문날의 기억들이 비상을 준비하고 있겠지 좀 보채지 않았으면 좋겠어 곧 배를 띄울거야 이미 깍지 낀 소원의 기도를 올렸어 저 넓은 세상으로 청출해야지 물음의 격식을 잠재울 틈새가 없는 것으로 말이야 고독은 지금 내 영혼의 맑음을 초대한 응어리진 고독 속으로 깊숙이 얼굴을 묻는다 외로움이 엄습한 불면의 구석진 방 깊은 상흔의 나이테엔 그루터기 옹이 하나 웅크린 채 잠을 청한다 금새 토라져 돌아앉은 외로운 아집들이 줄지어 심지에 불을 당기면 고독의 경로를 탐색하던 침묵의 물꼬들이 꽁꽁 언 가슴을 녹인다 삭풍 한 모금 깊숙이 들이킨 숨비의 파열음이 찌든 구석을 씻어 내리고 하얀 새벽을 가로질러 지금 고독은 해독 중이다 허남기;경북 영천 출생/ 2014<문장21>등단/ <문학광장>신인상 한국문협 경북지회 회원/영천문협회원/시에문학회 회원 시객의 뜰 문학회 회원/94'월간사진 추대작가 --------------------------------------------------- 이메일 hurdang62@daum.net  
604 종이꽃 외1편/김수화 file
편집자
1754 2017-12-01
종이꽃 김수화 칡덩굴처럼 얽히고설킨 허공을 떠도는 마음 모아 어머니, 나무로 지은 작은 집에 87년의 삶, 몸의 기억을 모아 종이꽃을 심어드렸다. 꽃이 진들 이제는 씨앗 받을 수 없는 절연의 꽃으로 봄, 구부러지다 김수화 유모차에 끌려가는 노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문득, 달빛에 떠오른 기억을 더듬어 불러본다. 살얼음 밑 물결 따라 피어나는 풍경 그 그림자 닮은 환한 달빛 아래 피우지 못한 꽃봉오리 어둠을 틈타 향기를 품는다. 골목을 누빈 걸음의 깊이보다 얕디얕은 지폐의 무게 휘어진 골목길 집으로 향한 발걸음이 귀우뚱, 구부러진다. 자유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북여성문학회 회장, 김천문인협회 사무국장, 김천예술총연합회 감사, 논술 토론 교사. 제3회 경북여성문학상 수상, 시집 ‘햇살에 갇히다’ sohie4280@hanmail.net  
603 한 票의 생각 / 李 洋 燮 file
편집자
1399 2017-11-01
한 票의 생각 연일 계속된 황사를 씻어주려는 듯 단비가 내리는 5월 9일 오후, 청담동 제 3 투표소로 간다. 강대국의 외압이 황사처럼 밀려오고, 열망에 찬 국민들의 바람이 양 갈래로 몰아치고, 종내 대통령이 탄핵되고 보궐선거를 하는 이 봄도 지나가고 있다. 이 안타까운 시국을 도움닫기 발판으로 삼아 애국의 마음들 모아 기어이 되살려야 할 우리나라, 주권자의 한 표를 행사하러 가며 상념에 잠긴다. 200년 전에 태어나 30세에 「시민의 불복종」을 실천하고 저술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가 생각났고, '지고의 정치는 왕이 누구인지 모르는 정치'를 말한 노자(老子)의 말도 생각났다. 아, 생각을 하자니 한 편의 시가 아련히 떠올랐다. 북한산 시인 임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발표한 시 ‘우리들의 대통령’을 읽은 기억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골목길을 오르내리는…, 정의로운 사람들에게는 양처럼 부드럽고 불의의 정상배들에겐 범처럼 무서운…, 야당의 무리들마저 당수보다 당신을 더 흠모하고, 모든 종파의 신앙인들도 그들의 교주보다 당신을 더 받드는…, 다스리지 않음으로 다스리는/ 자연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그리고 아, 동강난 이 땅의 비원을 사랑으로 성취할/ 그러한 우리들의 대통령/ 당신은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가? 작금의 현실에서 정치란 무엇이고 국가와 국민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일제강점기의 두 배가 넘어가는 70년 세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면서, 그 남쪽에서마저 국론이, 지역이, 세대가, 노사가 분열되고 다투는 이 나라 대한민국! 민족상잔의 비극 후 짧은 기간에 기적처럼 이룬 경제발전과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갈등과 반목과 대립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중도(中道) 혹은 중용(中庸)이 사라져버린, 아니 드러나지 않는, 아니 스스로 중도라 표현한들 우(右)에서 보면 ‘좌’라 하고 좌(左)에서 보면 ‘우’라고 하는 판국이니 중도의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다. 좌우는 극명하게 자기만 옳다하며 상대를 물어뜯고 자기편이 아니면 배신자나 매국노로 몰아세운다. 맑고 선했던 국민들은 허구한 날 매스컴을 통해 그 모습을 보아오면서 자기도 모르게 점점 거기에 적셔지고, 괜히 날이 서고, 분개하면서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여하튼 그 속 어디에 있어야할 듯하니 자신을 어느 편에 세우지 않을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선한 백성들의 마음마저 멍들게 한 원류는 말할 것도 없이 하나같이 애국자연하는 정치모리배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아니겠는가! 국민들의 똑똑함이나 성실성은 어느 민족 보다 우월하고, 여러 분야에서 세계 제일을 차지하는 자랑스러운 나라이고 민족인데, 왜 국내에서 체감하는 대다수 국민의 행복감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고 불평불만이 산적해 갈까? 이는 정치(제도) 또는 위정자의 덕은 보지 못하고 외려 해악을 입고 있는 까닭은 아닐까..? 헌신하고 봉사하는 공복(公僕)이 아니라 군림하고 챙기려는 야욕에 찬 정치인들의 아전인수(我田引水), 이합집산(離合集散)의 행태와, 국가 백년대계나 국민 안위와 복리 보다 자신의 출세욕과 이권에 급급한 파렴치한들 때문이고, 그들에게 겹겹이 실망하는 백성들의 원성과 분노가 팽배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 사회, 문화, 생활수준은 나날이 향상되고 있는데, 정치만이 선진화되어가는 국민들보다 뒤처지는 꼴이니 누가 누구를 어찌 믿겠는가? 객관의 가치와 공익의 기준을 세울 수 없는 이 상황에서 과연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만이 옳을까? 그 믿음은 변하지 않을 것인가? 또 어떤 변수가 일어날까…? 선거벽보에 이름 올린 15명의 후보들은 참 대단한 열정과 소명의식을 가진 애국자들이다. 이들은 어느 편의 세를 불려 등에 업고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비익조(比翼鳥)는 결코 한쪽 날개로 날 수 없듯이 이 나라도 좌우의 날개가 마땅히 있어야 하고, 그 몸통은 대다수가 소통을 통해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화합의 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들의 유세와 구호를 보면 당장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한 말의 성찬과 편 가르고 헐뜯기에 급급한 모양이다. 하여도 우리는 이들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어느 면은 적극 동조하지만 어느 면은 마뜩찮은 후보들, 이들의 장점만 뽑아 섞은 완전한 사람을 ‘우리들의 대통령’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으니, 이제 이들 중에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처럼 최고 권력의 파행을 목격한 뼈아픈 경험은 이 선거에 한층 더 신중을 기하게 한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정당이나 이념이나, 필요에 의해 줄을 섰던 편을 넘어서서 보다 객관적인 생각을 갖고 선거에 임했으면 좋겠다. 설령 미워했을지라도 최다 득표를 한 사람이 가장 적임자임을 다 같이 인정하고 환영하면 좋겠다. 또한 다수의 선택을 받았다 해도 대통령은 결코 전지전능한 사람이 아니며, 단박 세상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질서를 지켜야 하고, 다수의 선택과 그에 따른 행보에 긍정과 믿음의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새 지도자로 인한 변화와 함께 새로운 희망이 움트는 이 시기는 아직은 우리가 다 같이 조금 더 고통을 분담하여 참고 이겨나가야 할 때이다. 바람직한 변화를 기대하며 말을 하다 보니 대다수 국민들은 이미 그런 정도의 소양과 기다림이 될 것 같은데, 다시 또 문제가 되고 염려가 되는 부류는 아무래도 정치인들이다. 그들에게만 이런 소시민의 소박한 바람마저 마이동풍(馬耳東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참 답답하고 안타깝다. 본디 그리 나쁜 사람들은 아닐 텐데 왜 그 판에만 들어가면 사람들이 그렇게 달라질까? 그들을 따로 교육하는 장치나 기구를 만들 수는 없을까…. 아울러 당선자에게 한 표(票)의 생각으로 바람이 있다면, 가장 먼저 국민들에게 간절한 당부의 말로 국정을 열면 좋겠다. 이제 제발 서로의 입장차이, 생각차이를 접고, 조금씩 양보하고, 이견을 무릅쓰고, 우리 배달민족, 한민족이 하나로 어우러지자고! 난제가 산적한 지금 그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백성 앞에 큰절하며 읍소라도 하면 좋겠다. 대번에 그리 되지는 않을지라도, 제일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이 정치인들일지라도 대통령은 부단히 진심으로 너와 내가 하나 되는 민족의 대통합을 위해 제도와 장치를 강구하며 앞장서서 노력하길 바란다. 부디 논공행상으로 직책을 나눠주지 말고 적재적소에 맞는 사람을 여야 가리지 말고 중용하여 국민 대다수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인사를 하면 참 좋겠다. 바쁜 일정에서도 잠시 짬을 내어 우리 아이들의 학교에 가서 환하게 웃으며 꿈과 희망을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아이들이 다양한 꿈을 꾸고 실현할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해주면 좋겠다. 우체부 아저씨나 대통령이나 자기 직분을 다하는 같은 공무원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뭐라고 할까…, 그리하여 오래 묵은 배타적 국민정서와 토양이 서서히 본래의 맑고 선한 모습으로 바뀌어준다면 우리 국민의 능력과 성취는 이 난관을 뚫고 한층 배가될 것이 분명하다. * * * 투표하는 소회와 바람을 휴대폰으로 간단히 적어두려다 바람이 엉긴 말들이 늘어져 채 완성을 못하고, 투표 후의 저녁 약속과 다음날의 일정에 쫓겨 글 완성이 늦어져버렸다. 그저 혼자 구시렁거리듯 끼적인 바람일 뿐이었지만, 그 사이 문재인 후보는 41.1% 득표율로 2위 홍준표 24%와 17.1%의 큰 득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미 임기가 시작되었다. 삽시간에 들끓던 정국이 가라앉았고 그는 전임자들과 사뭇 다른 행보를 시작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그의 당선과 취임을 축하하며, 대다수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고, 우리나라와 국민을 위한 최선의 정치가 펼쳐지고 이어져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많은 문제들을 슬기롭게 타개하고, 국론의 바른 방향을 선도하고, 국민 모두를 아우르며 지역과 세대와 노사가 소통하고 화합하여 어깨춤을 출 수 있도록 이끌어주면 참 좋겠다. 이태 전 어느 봄날, 북한산 등산로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일국의 야당 총수가 수행원도 없이 홀로 산행을 한다는 자체가 좀 놀라웠다. 또한 봉하 마을과 정토원(나의 조부(李晋馹)가 봉화산에 창건한 절인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시 공부를 한 곳이고, 생을 마친 부엉이바위 인근이다)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눴는데, 그때 느낌으로는 얄궂은 정치판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맑고 선량한 선비 같았다. 헤어질 때 큰 짐을 진 듯한 뒷모습을 보며 필부가 짐작도 못할 중차대한 생각들을 정리하려 혼자 북한산에 올랐으려니 했는데, 그의 고심이 익고 익었을까! 오늘날, 많은 민초들의 기대와 성원 속에 드디어 대통령이 되었다. 초록이 무성해지는 이 봄바람을 타고 나의 작은 바람도 그에게 선한 기운으로 전해지면 좋겠다.  
602 가을 노을빛, 욕망 /고창근 file
편집자
1330 2017-11-01
가을 노을빛, 욕망 내가 여기 왜 왔지? 춘식은 자리에 앉으며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누군가 자신이 잠 잘 때 번쩍 들어 이곳에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올 생각도 오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식당에 있었다. 주방 쪽으로 눈길이 슬며시 돌아갔다.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춘식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보았다. 아니 보았다기보다는 생각을 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는데 맞은편에 있는 텔레비전이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가야 한다는 생각과 달리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용건이 있다고. 춘식은 텔레비전에 머문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미 옛날이었는데. 이제 와서 무슨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 나와 함께 할 것이요 구원될 것이니 항상 하느님을 믿고 따라야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곳 천당에 갈 수 있습니다. 춘식은 천당이라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계속 시선을 두었지만 사실 텔레비전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터였다. 하얀 가운에 보라색 비로드를 부착한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목사 뒤에는 삐쩍 마른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형상이 보였다.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천당이라. 춘식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어 고개를 숙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가야지, 아무도 없을 때 가야지. 춘식은 또다시 슬그머니 주방 쪽으로 눈길을 돌리려다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굳게 다물며 일어서려는데 한 사내가 물컵을 들고 앞에 서있는 게 보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사내가 뚝 떨어진 것 같았다. 사내는 물컵을 탁자에 놓았다. “요 앞에 쓰레기 버리려 가느라 자리를 비웠네요. 뭘 드릴까요?” 50대를 갓 넘겼을까, 머리숱이 별로 없고 그나마 대머리인 사내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그러니까.” 춘식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애초부터 오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고 또한 나가려던 참인지라 말까지 더듬었다. “그럼 천천히 주문하세요.” 사내는 공손히 말하곤 홀 중앙에 있는 난로가로 갔다. 그제야 춘식은 식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허름하지만 꽤나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탁자는 여섯 개가 있었고 벽에 걸린 메뉴판에는 씨레기 해장국부터 순대국까지 열 가지가 넘는 메뉴가 적혀 있었다. 메뉴판 옆에는 속옷만 입은 여자가 소주병을 들고 있는 달력이 바람이 없는 데도 가늘게 펄럭이는 것 같았다. 바닥은 시멘트 바닥인데 깨끗하게 물청소되어 있었다.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저녁 시간이면 손님이 있을 법도 한데 하나도 없으니 오히려 춘식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랄. 자신의 그런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는 다 지난 간 일이다. 춘식은 신발로 바닥에다 가로로 세로로 줄을 그었다. 어쩌자고 왔는가. 생각할수록 기이했고 울화통이 올랐다. 형님, 어제 형수님 봤습니데이. 한 달 전 아니, 두 달 전인가 직장 동료이자 고향 후배인 박씨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다가와 속삭이듯 한 말이었다. 그때 춘식은 아침부터 무슨 지랄 같은 말이라는 듯 박씨를 바라보았다. 분명하다카께요.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카께요. 박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긍께 어제 야근하고 집에 가다 해장이나 한잔할까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씨레기 해장국 판다는 가게가 있질 않겠소. 그래 들어갔더니 글쎄, 분명하다카께요. 20년도 더 지난 여편네였다. 춘식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나마 죽지 않고, 식당이라도 하니 병들지도 않고 살아있는 것으로 되었다. 하지만 박씨가 그곳이 어디라고 뒤따라오며 말했을 때에도 귓전으로 흘러들었다. 당연히 다 잊었다. 아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술만 들어가면 박씨가 가르쳐준 식당이 마치 단골집이라도 되는 듯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자신이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 앞으로 몇 번 지나가기도 했었다. 식당 옆 전파사가 있고 그 옆에 미장원이 있고 그 옆엔 철물점이 있고⋯⋯ 환장할 일이었다. 가보지도 않았는데 그 주위의 풍경이 눈에 자세히 그려졌다. 야당은 유례없는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양산 그리고 많은 자영업자들의 몰락 노인들과 빈곤층의 자살 증가 등 민생을 파탄시키고 경제도 파탄시킨 책임을 묻는 선거가 ⋯⋯ 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 노인들의 기초연금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주인 사내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린 모양이었다. 선거철이라 그런지 텔레비전만 켜면 정치 얘기였다. 춘식은 메뉴판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땅히 먹고 싶은 게 없었다. 그렇다고 소주만 마실 수는 없었다. “여기 소주 하나 하고 술국 하나 주세요.” 춘식의 말에 사내는 주방을 향해 말했다. “술국 하나.” 그러자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수돗물 소리가 났다. 주방 옆에 골방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우선 드시고 계시면 빨리 가져오겠습니다.” 사내는 소주와 잔 깍두기를 내놓았다. 춘식은 아무 말 없이 잔에 소주를 따라 단숨에 입에 털어넣었다. 주방으로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과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갈등을 일으켰다. 허! 두 잔을 연거푸 입에 털어넣고나니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20여 년 전에 집을 나간 마누라년이 보고 싶었단 말인가. 죽음을 앞두니까 마음이 약해졌다는 말인가. 허! 또다시 헛웃음이 터져나와 황급히 잔에 술을 따라 입에 털어넣었다. 반은 흘러 소매를 적시고 가슴께로 흘러내렸다. 내가 죽고나면 사람들은 무어라 말할까. 죽기 전에 누구나 죽음을 암시하는 행동이나 글을 남긴다는데. 춘식이라는 사람은 죽기 하루 전 어느 식당에 들렸는데 그 이유를 파악 중입니다. 이렇게 떠들까. 그러면 후배 박씨가 나서서 그 식당 여주인이 전처였다고, 매일이다시피 개 패듯 마누라를 팼다고, 그래서 이혼 당했다고, 그렇게 말할까. “이것 좀 드세요.” 주인 사내가 오이무침을 담은 접시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아마도 안주는 먹지 않고 술만 마시고 있는 걸 지켜본 것 같았다. “행복하시오?” 춘식은 말을 해놓고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을 할 작정이 아니었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주 한 병만 마시고 나갈 참이었다. 그런데 행복하다고 묻다니. 술기운일까. 춘식은 스스로 민망함에 다시 술을 따라 단번에 입에 털어넣었다. “사는 게 뭐 그렇지요.” 사내는 두 손을 만지며 머뭇거리다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사는 게 행복하냐구요.” 술기운일까. 자꾸만 말이 의도와 다르게 나왔다. “그냥 뭐. 사는 거지요.” 사내는 제대로 답을 못해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엉거주춤 서 있었다. 술국 나왔어요. 주방에서 가늘면서도 약간 쉰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춘식은 자기도 모르게 주방으로 고개를 돌리려다 다시 애꿎은 소주병을 들었다. 맞다. 저 놈의 목소리. 쉰 듯한. 살아오면서 한 번도 큰소리를 내지 않았던 것 같은 목소리. 사내는 주방으로 가서 김이 솟아오르는 뚝배기를 들고 왔다. “우선 안주 좀 드시면서.” 주인 사내는 여전히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술국은 양이 많았다. 순대국에 머리고기를 많이 넣었다. “한 잔 하시겠소?” 춘식은 주인 사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시지요, 손님도 없는데.” 사내는 주방으로 가서 소주 한 병과 소주잔을 들고 왔다. 주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가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사내는 자리에 앉자마자 두 손으로 춘식의 잔에 술을 따랐다. 자신의 잔에도 따려는 걸 춘식은 소주병을 재빨리 낚아채어 사내의 잔에 따랐다. “안주 좀 드시고.” 사내는 술국에 청량고추와 새우젓 다재기를 넣고 숟가락으로 휘저었다. 우유 같은 국이 뻘겋게 물들어갔다. 사내는 숟가락을 춘식 쪽으로 놓았다. “한 잔 합시다.” 춘식이 잔을 들자 사내도 덩달아 두 손으로 술잔을 들었다. 춘식은 단숨에 마셨고 사내는 반만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안주 좀 드시고. 빈속에 마시면 속 베릴 텐데요.” 안주를 먹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말했다. 허, 또다시 춘식의 입에서 가벼운 헛웃음이 나왔다. 길어도 하루, 짧으면 몇 시간 후 자신의 몸은 주검으로 발견될 터였다. 그런데 빈속에 술을 마시면 속 버린다고 걱정하다니. 허, 또다시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사내는 그런 춘식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말을 잘못했나 싶어 손을 잡고 사과라도 할 듯한 표정을 지었다. 춘식은 사내의 그런 표정에 아랑곳 않고 사내의 잔에 술을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행복하시오?” 춘식은 또다시 불쑥 튀어나온 자신의 말에 놀랐고 사내는 말없이 자신의 잔을 들었다. “누군들 행복하겠냐마는요. 그래도 삼시세끼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요.” 사내의 말에 춘식은 질문도 그렇지만 답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행복하다는 말? 살기 힘들다는 말? 여편네는? 그러니까 당신 말고 여편네가 행복하냐고 물었던가. “그렇지요. 삼시세끼 밥 먹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요.” 춘식의 체념한 듯한 말투에 사내가 물었다. “퇴근하시는 중인가 보죠? 일성 반도체?” 춘식의 놀라는 표정에 사내는 처음으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저도 한 20여 년 물장사 밥장사하다보니 대충 사람 볼 줄 압니다. 허허.” 사내의 말에 춘식은 대꾸도 않고 술을 들었다. 술국은 식어서 위에 기름기가 끼기 시작했다. “아직 원인을 모르지요?” 춘식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회사 내 사람들보다 바깥사람들이 언론이나 소문을 통해 더 많이 알 터였다. “내일은 누가 죽으려나.” 사내는 한숨 섞인 말을 하곤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나요. 나라면 믿을 수 있겠소? 춘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양쪽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일이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반도체의 한 회사의 사원들이 매일 한 사람씩 죽어 가는데. 사원이 수만 명이 된다해도 매일 사원이 원인도 다양하게 죽어 가는데 대해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보건기구와 UN에서도 전문가가 파견되어 조사를 벌이는 중이었다. 죽은 사람을 보면 직업병이랄 수도 없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 산에 가다 추락사한 사람, 잠자다 죽은 사람, 평소에 질병을 앓던 사람⋯⋯. 하지만 한두 명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같은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매일 한 명씩 죽으니 이상한 소문만 돌 뿐 대책도 없었다. “근데 죽는 사람은 안다면서요?” 사내가 무심히 물었다. 이미 몇 년 동안 계속 죽어왔고 이젠 텔레비전에서도 거의 다루지 않으니 오히려 별 얘깃거리가 되지 못했다. 차라리 키우던 개를 학대해 구속된 사람이 화제가 되었다. “이유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소.” 춘식은 말해 놓고 자신의 말에 놀랐다. 이렇게 멋있는 말을 하다니. 사실 그 문제에 대해선 이미 일반 사람들처럼 회사 내에서도 별 얘깃거리가 되지 못했다. 명확하게 백혈병처럼 겉으로 회사의 문제가 드러났다면 모르지만 표면상으론 회사와 아무런 관련 없는 죽음이었다. “그래도 죽은 사람은 꼭 흔적을 남기니 말이요.” 사내의 말에 춘식은 대꾸를 않고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그랬다. 죽은 사람은 예감을 했는지 평소에 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부모의 집을 찾는다든지, 평소엔 자식에게 데면하게 굴던 사람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 건강하라든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데 취직하라든지, 몇 년째 연락을 안 하던 친구한테 전화를 한다든지. 며칠 전 춘식이 아는 사람은 죽기 하루 전 키우던 개의 목사리를 풀어주었다. 춘식과 자주 술을 마시던 사이였는데 죽기 전까지는 어떠한 징후도 없었다. 쾌활했고 회사에서도 평소와 같이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퇴근해 저녁을 먹고 난 뒤 바람 좀 쐬고 온다더니 집 앞 길에서 뺑소니차에 치였다. 나중에 조사를 해보니 산책을 하기 전 키우던 개의 목사리를 풀어주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실 별게 아닌데도 죽고 나니 그것이 마치 죽음의 징후가 되었다. 맞는 말이다. 춘식은 사내가 따라놓은 잔을 들어 입에 털어넣었다. 죽는 사람은 예감이 온다고 소문만 무성하더니 맞았다. 자신이 그랬다. 내가 죽는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다니. 며칠 전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땐 핏, 웃어 넘겼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죽는다는 것이 자명하게 느껴졌다. 결국 내 차례구나.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억울했고 그래서 부정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죽음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니. 물론 억울하기도 하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야 아직 남아있지만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와 비교해 그렇다는 얘기다. “허, 국이 식었네요. 데워오겠습니다.” 사내는 뚝배기를 들고 주방으로 갔다. 춘식은 자신도 모르게 주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가슴 한 켠에 서늘한 바람 한 점이 들이닥쳤다. 대통령께서는 경제를 살리려고 얼마나 걱정을 하시는데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 그런 거 아닙니까. 이번 선거에서 야당을 심판해야 합니다. 야당은 노동법을 통과시키지 말자는 입장이 아닙니다. 독소조항인 해고를 쉽게 하는 법과 파견법을 개선하면 충분히 통과시킬 수 있는 입장입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 두 명이 나와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아이고 늦었네요.” 사내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종종 걸어와 뚝배기를 탁자에 놓았다. 뜨거운 김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춘식은 숟가락으로 국물을 조금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식당에서 직접 꼬았는지 국물이 진하게 우러났다. “고기 좀 드시고.” 처음엔 먹을 마음이 없었는데 막상 국물을 떠먹고 보니 맛이 입에 감겼다. 그러다보니 자꾸 국물만 떠먹는 형국이 되었다. 역시 음식 솜씨는 좋은 여편네였다. 그렇게 자신한테 맞고도 아침이면 시원하고 얼큰한 해장국을 끓여놓았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런 해장국을 먹어보지 못했다. 춘식은 사내 앞으로 뚝배기를 밀었다. “같이 좀 드시지요.” 춘식은 사내 쪽으로 밀어놓고 머리고기를 숟가락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고기도 알맞게 익어 쫄깃했다. 처음엔 시장기를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국물이랑 고기를 떠먹다 보니 오히려 시장기를 느꼈다. 몇 번 떠먹는 동안 사내는 춘식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순식간에 술국이 절반이하로 줄었다. 후. 춘식은 입김을 길게 내뿜으며 상체를 들어올렸다.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속에 뜨거운 것이 들어가니 한결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손님도 없는데 담배 피우셔도 됩니다.” 춘식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만지작거리자 사내가 재빨리 말했다. “아, 아닙니다.” 춘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마침 오줌도 마려운 터였다. 허! 화장실에 들어오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들이마셨다. 또다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몇 시간 후면 죽을 몸이 따끈한 술국 한 그릇에 이렇게 황홀해하는 것이 가소로웠다. 바지를 내리고 쪼그라든 성기를 꺼내 변기를 향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오줌이 잘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담배를 연거푸 빨았다. 순간 20여 년 전 여편네지만 얼굴이라도 봐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기운인가. 죽기 전 무슨 말인가 해야 할 것 같았다. 무슨 말? 없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굴도 안 보고 말도 붙여보지 못하고 그냥 나가면, 죽어버리면 저승에 가서도 후회될 것 같았다. 근데 어떻게 말을 붙여? 혹 나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지는 않을까. 20여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춘식은 한 손은 쪼그라든 성기를 잡고 한 손으로 담배를 든 채 생각했다. 담배를 한 대 다 피울 동안 오줌은 나올 기미가 없었다. 춘식은 피우던 담배를 변기에 던졌다. 픽, 소리가 나더니 담배는 불빛을 잃고 오줌에 젖어갔다. 성기를 잡은 손으로 담배를 꺼내니 성기는 팬티 속으로 들어갔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다시 성기를 꺼내 변기를 향해 정조준했다. 힘을 주었지만 여전히 오줌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담배연기를 길게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뿜었다. 남편이란 작자가 없으면 주방으로 가면 될 텐데 남편이 있으니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았다. 남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놔? 내가 저 년의 옛 남편이었다고. 죽을 때가 되었는지 나도 모르게 왔다고. 그렇다고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니라고. 나도 모르게 왔다고. 몸은 흔들거렸고 중심을 잡으며 연거푸 담배를 빨았다. 허! 생각을 할수록 자신의 행동이 어이가 없었다. 필터까지 타 들어온 담배를 변기에 던졌다. 다시 한 번 아랫도리에 힘을 주었지만 오줌은 나올 기미가 없었다. 성기를 안으로 집어넣고 팬티와 바지를 올렸다. 변기에 침을 찍, 뱉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춘식은 주방으로 눈길을 주지 않은 채 곧장 자리로 왔다. 사내는 왜이리 늦었느냐는 듯 걱정스런 표정으로 춘식을 바라보았다. “자, 한잔 하시오.” 춘식은 사내의 잔에 술을 따랐다. 사내 또한 춘식에게서 소주병을 빼앗아 잔에 두 손으로 술을 따랐다. “건배!” 춘식은 사내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고 사내 또한 건배, 를 외쳤다. “근데 평소에도 이렇게 손님이 없는 거요?” 춘식은 빈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고 사내는 춘식의 잔에 술을 따랐다. “있을 땐 있고 없을 땐 통 없는데 요즘엔 더 그러네요. 경기가 나쁘다카더니만.” “그래도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야.” 춘식은 자신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의도와 다르게 말은 거미줄처럼 술술 풀려나왔다. “그래도 밥 먹고 사는 것만 해도 얼마입니까. 마누라가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렇지.” 사내는 술잔을 입을 가져가 반만 마시곤 잔을 내려놓았다. “국을 좀 데워와야겠네요.” 사내는 취기가 오르는지 약간 비틀거렸다. 춘식은 두 손으로 뚝배기를 들고 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사내는 다리를 많이 절었다. 그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처음엔 술에 취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오른쪽으로 다리를 많이 절었다. 바보 같은 년. 제대로 고르든지. 춘식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어떻게 해서 저런 놈을 만났을까. 나하고 헤어지고 곧장 만났을까. 행복하기는 하는 걸까. 아까 아프다고 그랬는데. 춘식은 주방으로 곁눈길을 했지만 여편네는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였다. 취기가 올랐다. 오늘만은 술을 마시지 않으려 했는데. 저승길만은 술에 취하지 않고 제대로 가려고 했는데. 따지고 보면 하루라도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어떻게 죽게 될까. 아는 동료처럼 뺑소니한테 치여 죽을까. 아니면 술에 취해 길을 가다 쓰러져 그대로 죽을까. 그렇지 길에서 죽는 게 그나마 폼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진 것도 없고 마누라도 자식도 없는데 뭐가 아쉬우랴. 춘식은 고개를 숙인 채 잠깐 졸았다.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사내의 말에 춘식은 눈을 떴다. 계란찜이 춘식 앞에 놓여 있었다. 순간 입에 침이 고였다. 계란찜은 춘식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여편네와 살 때 한 끼라도 계란찜이 없을 때가 없었다. “드셔보세요. 집사람이 건강이 안 좋아 이것저것 못해서리.” 사내는 또다시 송구스런 표정을 지었다. 춘식은 숟가락으로 계란찜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역시 그 맛이었다. 매콤하면서도 비릿한 맛. 청량 고추와 파를 총총 썰어 넣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맵습니까? 나한테 줄 땐 청량고추를 안 넣는데 손님 드실 거라고 넣었나?” 사내는 숟가락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앗따 시기 맵네요.” 사내는 입을 오므리고 호호 숨을 토해냈다. 춘식은 그런 사내의 모습에 아랑곳 않고 연거푸 숟가락으로 떠서 먹었다. 목구멍이 뜨거워오면서 얼굴 전체가 화끈거렸다. 그러면서 정신은 명징해졌다. 예전에도 그랬다.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청량고추를 듬뿍 넣어 계란찜을 해 먹으면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그러고 나면 기분이 개운해졌다. 꼭 그때의 맛이었다. 몇 번 떠먹지 않았는데도 이마에서 땀이 볼로 흘러내렸다. “참, 아까 어디 아프다고 하더니만요.” 춘식은 손등으로 이마와 볼의 땀을 닦으며 주방을 흘깃거렸다. “옛날부터 아프던 것이라.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한가봐요.” “어디 다치기라도 했는가요?” 휴지로 코를 풀면서 춘식이 물었다. “허 참, 이거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내는 술잔을 들어 한 입에 다 털어넣더니 스스로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춘식은 아무 말도 없이 그런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옛날에 말이요. 그러니까 나를 만나기 전이니까 20년 저쪽 이쪽쯤 될 거 같은데. 어떤 나쁜 놈을 만났는가 봅니다. 남편이란 작자가 자기 마누라를 얼마나 팼는지 지금도 몸이 성한 데가 없다오.” 사내는 또다시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 춘식은 아무 말도 않고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 나쁜 놈이 누구겠는가. 간신히 속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그, 그래서 지금도 몸이 안 좋다는 말인지.” “그때 속병 겉병 다 들었는가 봅니다. 한때는 우울증에 걸려 물에도 뛰어들었고. 왼쪽 팔은 지금도 잘 못 쓰고. 아마도 천벌을 받을 게요, 천벌을.” 그때 춘식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긴장하거나 화나는 일이 있으면 다리가 덜덜 떨렸다.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는 좀 많이 나았나 싶었는데 그 증상이 또 나타났다. 춘식은 고개를 숙이고 떠는 다리를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이한 일이었다. 때리는 게 일이었다. 이유라면 회사에서 동료나 상사에게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거나 하다못해 퇴근하다 기분 나쁜 일이 일이 있었다거나. 이유는 무한정 많았다. 퇴근하면 우선 여편네를 두들겨패곤 옷을 갈아입었다. 마치 여편네를 때리기 위해 하루를 산 것처럼 말이다. 하얀 방진복을 입고 클린룸에 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부품을 만지노라면 자신이 사람이 아닌 회사의 기계부품인 것처럼 느껴졌다. 주위를 돌아보면 수백 명의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만히 서서 손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휴식 시간을 알리는 벨소리를 못 들을 때도 있었다. 씨발 닭이 된 기분이야 언젠가 휴게실에서 믹스 커피를 마시며 동료가 말했다. 양계장의 닭들이 꼼짝 않고 알만 낳듯이 자신들도 매일 선 채로 부품을 낳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이 느껴졌다. 그 왜 있잖아. 알도 낳지 못하고 빌빌거리면 주인이 와서 냉큼 집어내 손수레에 싣고 가 개장수한테 팔아버리잖아. 개장수는 산 채로 개집에 던져주고. 우리가 그 꼴이 아닐까. 몇 년째 매일 직원들이 죽어나가니까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눈 얘기였다. 양계장의 닭이 된 느낌. 그러니까 여편네를 두들겨 패는 이유가 하루 종일 말도 없이 서서 부품만 만지다 집에 와서 근질거리는 몸을 푸는 식이었다. 근데 이상한 것은 여편네가 반항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엔 반항도 하고 집을 나가기도 했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는 여편네가 도망가 보았자 옆 동네 찜질방이었다. 나중엔 아예 반항도 가출도 하지 않았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때리고 나서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가면 정갈하게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춘식이 좋아하는 청량고추가 듬뿍 들어간 계란찜이 있었고 씨레기 무침이 있었다. 한 끼도 고기가 없는 날이 없었다. 하다못해 생선토막이라도 올려져 있었다. 다리가 부러지고 갈비뼈가 부러져도 밥상을 차려놓았다. 병원을 갈 때는 잠자리에 들 무렵이었다. 이렇게 미련스런 사람이 다 있나 싶게 팔이 부러졌는데도 그때까지 참았다. 지금 팔을 잘 못쓴다는 게 아마도 그 때의 구타 때문인 것 같았다. 춘식 자신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 못해 직장을 옮길까 생각했지만 중졸 학력에 기술도 없는 자신이 갈만 한 데는 없었다. 국내의 최고 기업인 일성기업의 반도체 공장에 들어간 것도 먼 친척의 도움 때문이었다. “왜요? 다리가 안 좋은 가요?” 춘식이 다리를 계속 떨자 사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보죠.” 춘식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직업병 아닌가요? 반도체에서 일하는 사람들 매일 서서 하느라 다리나 허리 안 좋은 사람들 많던데요.” “뭘, 이 정도로.” 춘식이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려 하자 사내가 재빨리 병을 빼앗아 춘식의 잔에 따랐다. “언제부터 식당을 했소?” 춘식의 말에 사내는 30여 년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그럼⋯⋯.” 춘식이 주방을 바라보며 말을 하자 사내는 잠시 춘식의 얼굴과 주방을 번갈아 보았다. “아, 저 혼자 하다가. 제 마누라가 암에 걸려 죽는 바람에 혼자 하다가 지금 마누라를 만났지요. 음식 솜씨가 좋아 주방일 맡기다보니 정이 들어서. 허허.” 사내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한 잔 하슈.” 춘식은 사내의 잔에 술잔을 부딪쳤다.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밥 먹고 사는 걸 보니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죽을 때 땅을 치며 후회해도 할 수 없었다. 지금 가는 게 그나마 여편네에게 도리인 것 같았다. 만약에 자신에게 도리란 게 있다면 말이다. 다행이라면 자신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가졌으나 춘식의 폭행으로 유산이 되었을 때 이혼을 했다. 그 뒤로 춘식은 혼자 살아왔다. “여기 얼마요?” 춘식이 일어서는데 몸이 휘청거렸다. 사내가 팔을 내밀어 춘식의 팔을 잡았다. “괜찮소.” 사내의 말에 춘식은 바지 주머니에서 오만 원을 꺼내 탁자에 놓고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자꾸만 주방 쪽으로 돌아가는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싶은 걸 참으며 겨우 출입문을 열었다. “잔돈 여기 있습니다.” 사내가 뒤따라와 바지 주머니에 잔돈을 넣었다. “뭘, 안 줘도 되는데.” 춘식은 말을 하면서 흘끗 출입문에 붙인 선팅 너머로 눈길을 돌렸다. 보였는가. 주방 쪽에서 희미하게 어른거리던 것이 여편네였나. 갑자기 가슴 중앙이 아려왔다. 언뜻 여편네를 본 듯했기에 그것이면 됐다 싶었다. “조심해서 가시오.” 사내의 말에 춘식은 비틀거리는 몸을 다잡다 어? 하며 식당 쪽을 바라보았다. “이게 똑바로 서 있어야 손님이 오지.” 춘식은 식당 앞으로 걸어가 각종 메뉴판이 적힌 입간판이 넘어진 것을 똑바로 세웠다. “아이고, 제가 하면 되는데요.” 사내는 춘식에게 다가오더니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하, 됐네. 이제 손님들 많이 올 거요.” 춘식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입을 벌려 우물거리다 한 마디 했다. “그 머시야, 행, 행복하시오.” 뒤돌아섰다.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느낌이 와락 몰려 왔다. 다음날 주인 사내는 텔레비전을 보다 어? 어? 하며 신음소리를 냈다. 주방에 있던 여자가 홀로 걸어 나와 텔레비전 앞으로 갔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야산의 한 산소에 있는 하얀 천을 비춰주고 있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는 원 안에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늙은이의 얼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자의 몸이 움찔거렸다. 오늘 저녁 일성 반도체의 이천오백일흔두 번째 사망자가 발견되었습니다. 오십 오세 지모씨로 자신의 어머니 산소 앞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저, 저 양반 어제 저녁 그 손님 아냐?” 사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여자는 잠자코 텔레비전에 눈길을 박고 있었다. 사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옆에 소주 한 병이 있고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으며 곧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예정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지모씨가 사망한 산소는 친어머니가 묻힌 곳으로 지모씨가 어릴 때 바람이 나 집을 나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지모씨는 어린 시절 술주정이 심한 아버지와 단 둘이 살며 불우한 생활을 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지모씨는 술만 취하면 친어머니를 찾아 죽이겠다고 행패를 부린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맞지? 당신 못 봤어? 우째 이런 일이.” 사내는 거듭 여자에게 물으며 탄식했고 여자는 말없이 주방으로 걸어갔다. 이날 따라 더욱 심하게 왼쪽 팔이 흔들거렸다. 고창근/경북 상주 출생 오월문학상 소설집『소도(蘇塗)』『아버지의 알리바이』『나는 날마다 칼을 품고 산다』장편소설『누드모델』『존재의 이유』『신윤복, 욕망을 욕망하다』  
601 三月의 山河 /권늘
편집자
1415 2017-11-01
三月의 山河 검정치마 흰 저고리가 성의(聖衣)되어 남겨진 3월의 기억 소녀들의 당찬 울림이 시대를 때린 그해의 기억들 독립이라는 사명 이전에 그들은 아직 피우지 못한 대한의 딸이었소 서대문 형무소의 남겨진 잔해가 살을 에는 공포로 다가올 때 ​ 임은 그 자리에서 독립의 염원을 ​ 온몸으로 맞고 있었소 온통 푸름으로 덮히는 三月의 山河가 유독 아름다운 건 ​ 그시절 님의 나라사랑이 가슴으로 전해옴이 아닌가 하오 권늘/본명 권일영 등단 문학광장 (시부분) 인천광역시 서구 예술인회 회원 문학광장 사무국장 청라문학회원  
600 소녀상 6 /권순자
편집자
1594 2017-11-01
소녀상 6 -기억하라 당신은 지옥에 가 보았는가 남자들은 전쟁터가 지옥이었다고 전했다 소녀들은 지옥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갔다 소녀들은 친구 집에 가다가 납치당했다 어머니와 장에서 생선 팔다가 강제연행되었다 공장에 취직시켜준다고 속여서 데려갔다 소녀는 어린 여자아이였다 초경도 치르지 않은 소녀였다 얼굴에 솜털이 보송한 어린아이였다 열세 살, 열네 살 여자 아동들이었다. 소녀상을 치우라고? 왜? 너희들이 저지른 범죄가 떠오르는가 소녀상을 볼 때마다 군위안소가 떠오르는가 전쟁터마다 위안소를 설치하고 조선의 딸들 소녀들을 끌고 간 기억이 떠오르는가? 소녀상을 치우라고? 초경도 치르지 못한 소녀들을 잡아다가 지옥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하루에도 수십 번 고통에 처 녛은 일본군. 역사를 지우고 싶다고 역사가 지워지는건가? 보아라! 이 나라 방방곡곡에 여자들이 태어나고 남자의 딸들이 태어나고 남자의 손녀들이 태어나는데 어찌 역사를 지울 수 있으리 거리마다 노랑노랑 소녀들이 걸어가고 초록초록 소녀들이 뛰노는데 감출수록 냄새나는 너희들의 범죄를 어찌 지울 수 있으리. 얼음보다 차가운 사실을, 먹물보다 선명한 역사적 사실을 어찌 지울 수 있으리 위안소의 성범죄는 너무나 명백하여 가릴 수 없으리라 기억하라 나를 기억하라 기억하라 어린 소녀들을 기억하라 지옥보다 더 고통스런 위안소의 어리고 어린 소녀들의 비명을 기억하라 노랑 소녀들을 기억하라 초록빛 열네 살 소녀들이 겪은 폭력을 기억하라 권순자/경주출생.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와 국민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학과 졸업. 1986년 <포항문학>에 「사루비아」외 2편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우목횟집』『검은 늪』』『낭만적인 악수』『붉은 꽃에 대한 명상』『순례자』『천개의 눈물』『Mother's Dawn』(『검은 늪』의 영역시집) 등이 있음.  
599 여인의 눈물 /김가현
편집자
1410 2017-11-01
여인의 눈물 -위안부 할머니들께 바치는 시 아름드리 빨간 꽃망울은 활짝 피우기만 기다리다 불길로 들이닥친 악몽에 검게 그을려 박제가 되었다 찢기고 갈라지고 얻어맞은 상처보다 보호받지 못하고 버려졌다는 사실에 피우다 만 꽃들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픔은 현재도 진행형 살아도 산 것이 아니며 죽어도 죽지 못하는 절절한 한이 구천에 사무처 자꾸만 너울거린다. 불한당의 습격으로 갈가리 찢긴 가슴 엎드려 사죄하는 그 날까지 훌훌 털고 편히 쉴 수 있는 순간까지 따뜻하게 품어 그 눈물 닦아주리라 김가현/문학광장 시부분 등단 문학광장 문인협회 회원 인천 서구예술인회 회원 인천문인협회주관, ‘570돌한글날기념백일장’ 차하(운문)수상  
598 늙어 피어난 꽃 /김창현
편집자
1449 2017-11-01
늙어 피어난 꽃 봄은 왔건만 틔우지 못한 싹들은 흙위에서 스러지고 여린 고사리는 짖밟히었다. 차마 꿈조차 꾸어 보지도 못한 꽃봉오리 소녀는 들개의 더러운 굴속에 물려가 검은뱀과 붉은뱀에게 무명 저고리속의 파릇한 젖가슴을 유린당하고 영혼의 자유마저도 구속당했다. 피우지도 못하고 시들은 꽃망울 멈추어버린 기억은 고향집의 뒤뜰 복사꽃 나무 가지위에 걸쳐두고 참으로 먼길을 피고름 흘리며 생채기로 떠돌았다. 돌팔매를 맞아도 아픈 줄 모르고 원망조차도 모르고 검은뱀과 붉은뱀들이 흘려놓은 비린 정액은 그렇게 스미어 모진 세월 살아갈 이유도 모를 원죄로 잉태되었다. 손가락질 받아도 미움조차 모르고 풀뿌리 나무뿌리 닥치는대로 먹으면서도 모진 생명의 끈을 결코 놓을 수는 없었다 . 검은 씨앗이 푸르게 자라나 마음껏 꽃피우며 살아갈 내일을 위하여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살아도 사는 줄 몰랐다. 서쪽하늘이 뉘엿거리는 이제사 양귀비꽃처럼 피어난 고사리 소녀는 세상의 작은관심이 미웁고 서러워 통곡을한다. 꽃잎들은 하나 둘 떨어지고 얼마 남지 않은 황혼녘 차마 다 말할 수 없었던 그날의 얘기들 치욕스런 그 만행들을.. 늦었지만 진하디 진한 향기로 세상에 전한 가슴이 저린 이야기들 가슴을 쥐어뜯는 통한의 역사를 세상이 잊을까 두려워 눈을 감을수 없다. 김창현/삶으로 쓰는 시 대표 전통한옥 목수 전 한국미소문학 인천지회장 참교육 장학회 이사  
597 환생/나병서
편집자
1278 2017-11-01
환생 길게 늘어선 벌거벗은 우리는 가을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무도 눈앞의 가스실 입구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품에 안긴 한 살 아기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인간은 진화하여 짐승이 되어가고 죽여도 되는 호모 사케르 길게 늘어선 우리의 이름은 오늘도 침묵으로 영광스런 행진곡 위를 걸어가고 있다 하늘은 여전히 같은 하늘일 것이고 그리고 가을 하늘일 것이다 예언처럼 단지 그것 뿐이었다 나병서/ 한양대 시인  
596 이백 살은 살아서/박찬선
편집자
1351 2017-11-01
이백 살은 살아서 시민의 정성을 모아 평화의 소녀상을 왕산역사공원에 세우던 날 아흔 넘어 먼 길 오신 이 용수 할머니 열네 살에 강제로 끌려가서 …… 전기고문을 당한 것이 지금도 몸이 저리시단다 상해에서 중국과 나란히 소녀상을 세우던 날 억수로 쏟아지는 소나기를 희생당한 소녀들의 눈물이라던 할머니 뉘우치는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했으니 이 백 살은 살아서 받아낼 때까지 여러분도 같이 이 백 살은 살아서…… 그만 가슴이 뭉클하여 단상에 계신 할머니를 바라보지 못하고 물드는 잎들만 바라보았다 새 날아와 어께에 앉고 하얀 나비 꿈꾸는 먼저 간 영혼들이 함께하여 기뻐하시리라는 울먹이시는 이용수 할머니 소녀상의 얼굴을 맞대어 비비고 감싸 안으신다 목으로 파고드는 슬픈 어제의 찬바람을 막아주는 촘촘하게 손으로 짠 노란 목도리와 모자 다시 꽃으로 피어 지지 않는 향기로 남아 이 땅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지니 이백 살은 살아서  
595 순백꽃/신미옥
편집자
1416 2017-11-01
순백꽃 화려한 꽃의 향연 4월이라지만 오늘 만큼은 슬퍼합니다 차가운 어둠과 공포 속에서 재앙 앞에서 당신과 어린 영혼들은 제단의 꽃으로 바치어졌습니다 꿈이 가라앉고 소망이 침식되어질 때 당신과 어린 영혼들은 눈을 뜬 채 부유물로 흐르는 세상의 욕망들을 보았을 테죠 그 순간 소통할 수 없었던 암흑의 진공 상태를 용서하세요 우리는 바보같이 순백꽃으로 사라진 향기 앞에 눈물만 지었습니다 온갖 탐욕과 오욕이 넘실대는 세상이라지만 대속죄로 희생된 당신과 어린 영혼들의 순백꽃만은 기억하며 살겠노라 다짐해 봅니다 신미옥/문학광장 시부문 등단 문학광장 문인협회 회원  
594 돌아올 수 없어도, 고향으로 돌아왔어도/신순말
편집자
1522 2017-11-01
돌아올 수 없어도, 고향으로 돌아왔어도 - 상주 왕산 평화의 소녀상 발치에 운동화 한 켤레 또 한 켤레 놓였습니다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나라에서 태어나 꽃이 꽃으로 피지 못한 소녀의 발 그 아래 풀꽃이 놓였습니다 바람이 찬 계절에도 맨발인데 아직도 제대로 신을 신겨주지 못한 나라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나라 꽃이 꽃으로 피지 못한 나라에서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사람들은 꽃은 꽃으로 피어나는 나라이고 싶어 아픔을 녹여주고 싶은 사람이고 싶어 손발이 시리고 어깨가 시리고 심장이 시린 소녀에게 털모자와 양말과 알록달록 고운 무늬 담요와 포근한 목도리를 둘러줍니다 사방 꽃 피어나고 어느새 또다시 녹음이 푸릅니다 분수대 물은 높이높이 솟아오르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늦봄의 햇살 길게 내려와 비추는 공원 마당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을 기다리는 돌려받지 못한 꽃의 꿈을 꾸는 빈 의자 하나를 곁에 두고 의자에 앉아있는 맨발의 소녀 꽃이 꽃으로 필 수 없었던 고통과 분함이 두 주먹을 쥐고 앞을 바라보는 눈동자로 앙다문 입술에 서린 슬픔을 안고 여전히 소녀로 앉아있는 우리 할머니들의 의자 잘못을 잘못으로 깨달은 이들의 진심어린 사죄가 들리는 그날은 언제인지 어깨에 내려앉은 평화의 새 하늘을 훨훨 날아오르는 노래가 듣고 싶습니다 신순말/상주들문학.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시집 [단단한 슬픔]  
593 그녀 희망을 쓰다 /이선정
편집자
1365 2017-11-01
그녀 희망을 쓰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간이역은 마치 그녀와 닮았다 분주히 오고간 흔적들 숱한 발자욱들이 거기 남았어도, 새벽을 지키는 쓸쓸함은 정작 혼자의 몫이다 밤새 조물락거리며 꿈을 빚고, 여명을 뚫고 달려올 희망이라는 기차를 목빼고 기다리는 것도 정작 혼자의 몫이듯 눈발 날리는 한겨울에도 그녀는 그 간이역에서 성냥 한알에 한기를 녹이며, 입김으로 후후 불어 유리창에 희망을 썼으리라 흐르는 눈물 한 방울 빠드득 얼어갈지라도 그 간이역, 온기로 채우려는 꿈만큼은 잊지 않았으리 마침내 겨울이 지나고, 봄꽃 만발한 거기 서서 천천히 다가올 희망이라는 기차를 햇살보다 환한 웃음으로 기필코 맞아야 했기에 이선정/ 문학광장 등단 문학광장 문인협회 회원 문학광장 강원지부장  
592 죽은 나무의 노래 /임소형
편집자
1458 2017-11-01
죽은 나무의 노래 통분의 칼을 갈아 민중의 노래 불렀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영원으로 흐르는 자유을 향한 거센 몸부림 보라 붉은 깃발 펄럭이며 거꾸로 솟구쳐 흐르던 피끓는 힘찬 이념의 외침 자유를 부르짖다 쓰러져 간 소리없는 흐느낌 도륙당해 감지 못하고 부릅 뜬 두 눈 핏기로 이글거리다 실 핏줄 터져 하늘에 걸려있다 보아라 핏빛 고독 끌어안고 파르르 떨고 있는 저 소리 없는 나무의 저항 누굴 위한 피 흘림이었는가를 무엇을 향한 처절한 고독이었는 가를 청향 임소형/ 경북 상주출생 전북대 사범대학 졸업. 전)상주여중 교사황금찬 시맥회 문학광장 등단. 문학광장 문인협회 회원. 문학광장 홍보위원장. 문학광장 통권 61호 이달의 시인. 공저. 한국문학 대표시선 3. 4 현 (주)핸디데이타 디앤씨 대표 garam8686 @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