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무리 검붉은 눈물에 깊숙이 젖어든 삶이어도

사는 것은

잘박한 물로 지은 거칠고 된 고두밥이다

 

효모덩어리의 누룩을 섞고 부어도

발효되지 못한 삶은 부걱부걱 끓으며 괴지 않으니

얼큰한 술로 익지 못한 죽음은 늘 삶 이후의 삶이다

 

죽음에 술 취하지 않는 삶은 혼절하리라는

마법의 주문에 걸려

 

삶은 죽음의 공포에 술 취하여 비틀거리고

죽음은 영원히 죽지 못하고 까무러지며 산다

 

아무리 먹어도 현실이 배고픈 아이들은

술지게미를 먹으며 욕망에 허기진 위장을 채우고  

 

죽음이 성급한 어른들은

채 익지도 않은 삶의 술독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삶을 사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위로하면서, 때로는

 

불행일지도 모른다 불안해하면서  




바람

 

바람의 집은 어디일까

 

나는 아직도 쿰쿰한 곰팡내 나는

의문에 답하지 못하였다

 

푸른 청춘의 시간을 연비燃臂로 불태우고도

텅 빈 가슴을 헤집고 지나는 허무를 잡지 못하고

 

투명유리로 가린 하늘의 신을 두드리고 패고

가시덤불에 온 몸 던져 뒹굴고 절규하며 기도했지만

 

바람의 출생 비밀은 풀지 못하고

바람의 고향도 알아내지 못하였다  

 

봄바람이 코끝을 스치며 유혹하지 않았다면

봄꽃에 쉬 다가서지 못하는

중력 잃은 나비의 날개 짓을 보지 않았다면  

 

나는 헤매지 않았을 것이다

아파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행복했을 것이다

 

사시사철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없고

나비의 행방도 찾지 못한 나는

 

오늘도 헤매고 아파하고

조금은 행복하고도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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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경작가회의 회의.

펴낸 시집으로 <바람이 시의 목을 베고>(2017년 상반기 세종도서 문학나눔 시부문 선정)를 비롯

여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