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 수 없어도, 고향으로 돌아왔어도

- 상주 왕산 평화의 소녀상



발치에 운동화 한 켤레 또 한 켤레 놓였습니다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나라에서 태어나

꽃이 꽃으로 피지 못한 소녀의 발

그 아래 풀꽃이 놓였습니다

바람이 찬 계절에도 맨발인데

아직도 제대로 신을 신겨주지 못한 나라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나라

꽃이 꽃으로 피지 못한 나라에서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사람들은

꽃은 꽃으로 피어나는 나라이고 싶어

아픔을 녹여주고 싶은 사람이고 싶어

손발이 시리고 어깨가 시리고 심장이 시린 소녀에게

털모자와 양말과 알록달록 고운 무늬 담요와

포근한 목도리를 둘러줍니다

사방 꽃 피어나고 어느새 또다시 녹음이 푸릅니다

분수대 물은 높이높이 솟아오르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늦봄의 햇살 길게 내려와 비추는 공원 마당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을 기다리는

돌려받지 못한 꽃의 꿈을 꾸는 빈 의자 하나를 곁에 두고

의자에 앉아있는 맨발의 소녀

꽃이 꽃으로 필 수 없었던 고통과 분함이

두 주먹을 쥐고 앞을 바라보는 눈동자로

앙다문 입술에 서린 슬픔을 안고

여전히 소녀로 앉아있는 우리 할머니들의 의자

잘못을 잘못으로 깨달은 이들의

진심어린 사죄가 들리는 그날은 언제인지

어깨에 내려앉은 평화의 새

하늘을 훨훨 날아오르는 노래가 듣고 싶습니다



신순말/상주들문학.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시집 [단단한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