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피어난 꽃



 

봄은 왔건만 틔우지 못한 싹들은

흙위에서 스러지고

여린 고사리는 짖밟히었다.


차마 꿈조차 꾸어 보지도 못한

꽃봉오리 소녀는

들개의 더러운 굴속에 물려가

검은뱀과 붉은뱀에게 무명 저고리속의

파릇한 젖가슴을 유린당하고

영혼의 자유마저도 구속당했다.


피우지도 못하고 시들은 꽃망울

멈추어버린 기억은

고향집의 뒤뜰

복사꽃 나무 가지위에 걸쳐두고

참으로 먼길을

피고름 흘리며 생채기로 떠돌았다.


돌팔매를 맞아도 아픈 줄 모르고

원망조차도 모르고

검은뱀과 붉은뱀들이 흘려놓은 비린 정액은

그렇게 스미어

모진 세월 살아갈

이유도 모를 원죄로 잉태되었다.


손가락질 받아도 미움조차 모르고

풀뿌리 나무뿌리

닥치는대로 먹으면서도

모진 생명의 끈을 결코 놓을 수는 없었다 .


검은 씨앗이 푸르게 자라나

마음껏 꽃피우며 살아갈

내일을 위하여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살아도 사는 줄 몰랐다.


서쪽하늘이 뉘엿거리는 이제사

양귀비꽃처럼 피어난

고사리 소녀는

세상의 작은관심이

미웁고 서러워 통곡을한다.


꽃잎들은 하나 둘 떨어지고

얼마 남지 않은 황혼녘

차마 다 말할 수 없었던

그날의 얘기들

치욕스런 그 만행들을..


늦었지만 진하디 진한 향기로

세상에 전한

가슴이 저린 이야기들

가슴을 쥐어뜯는 통한의 역사를

세상이 잊을까 두려워 눈을 감을수 없다.



김창현/삶으로 쓰는 시 대표 전통한옥 목수 전 한국미소문학 인천지회장 참교육 장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