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식당        

 

 

                                          *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폭이 좁은 뒷길을 차지하고 있었다. 장건영, 그가 한 걸음씩 앞으로 옮길 때마다 구질구질한 잡동사니들이 그의 발길에 차였다. 식당 바깥벽으로 잡다한 짐들이 높게 쌓여 있었다. 짐들 틈에서 무엇을 찾는지 지저분한 구석에다 새끼 고양이는 자꾸 코를 박았다. 새끼 고양이의 가느다란 털빛은 때가 탄 고양이의 얼굴을 더 슬퍼 보이게 했다.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새끼 고양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미 잃은 고양이의 얼굴을 보며 아들 동희가 생각나 마음이 절절해졌다.

  식당 문 앞에서 잠시 기웃거리던 그는 어깨에 멘 가방을 내리며 비닐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대신 비닐로 감싼 문은 어딘가 어설펐다. 식당의 일부는 거리 쪽으로 확장한 가건물이었다. 식당 안은 굵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천장을 받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백 년은 넘었을까. 거친 나무껍질 위로 숨구멍이라곤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생명이 사라진 굵은 나무 둥치는 원래 은행나무였다는 흔적만 엿볼 수 있었다. 은행나무는 판자대기로 만든 지붕보다 키가 더 높았다. 나무가 지붕을 뚫고 지나간 게 아니라, 지붕이 나무기둥에 맞춰서 제작되었다. 식당 안의 모든 것은 나무를 중심으로 배열되었다. 싸구려 탁자와 의자 일색인데도 불구하고 식당 안은 그런대로 운치가 있었다.

  쉰은 넘었을까. 햇볕에 그을린 듯, 피부가 까맣고, 얼굴의 주름이 깊은 여자가 물컵과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그는 소주 한 병과 적당한 안주를 알아서 달라고 했다. 여자는 그의 말에 낙지와 아침에 캐온 조개가 싱싱하다고 말했다. 그는 낙지를 달라고 했다. 여자가 주문을 받고 있는 사이에 또 다른 여자가 주방 쪽에서 포항댁, 포항댁, 하며 숨 가쁘게 여자를 연신 불러댔다. 서른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는 얼굴이 말라서, 실제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들어 보일 듯했다. 그렇다면 기껏해야 서른 중반 정도 될 것이다. 자기보다 한참 나이든 사람을 그렇게 앞뒤의 말을 다 빼고 만만하게 부르는 경우는 그들의 사이가 종속의 관계가 아니라면 보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는 포항댁으로 불리는 늙은 여자가 이 식당의 주인은 아닌 듯싶었다.

 

  포항댁이 다시 와서 소주잔을 앞의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몸에서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났다. 그는 자신이 바다에 온 걸 잊고 있던 사람처럼 흠칫 놀랐다. 그것은 언젠가 아내에게서 맡은 적이 있던 체취였다. 섬뜩했다. 포항댁이 주방으로 돌아가고 건영은 빈소주잔을 서둘러 한 잔 채워 목으로 넘겼다. 가슴이 덜렁거릴 정도로 꺼림칙했던 기분이 약간 사라졌다. 알코올은 몸 안의 혈관을 따라 흐르며 체내 구석구석을 진정시키는 작용을 했을 것이다. 필요악이라고 하던가. 그는 알코올 또한 그런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는 성당에서 성체성사를 드릴 때, 신부님께 받아먹던 빵이 생각났다. 그리스도의 몸인 누룩을 넣지 않은 밀떡과 그리스도의 피인 설탕을 넣지 않은 포도주를 먹으면 주님과 하나가 된다. 그리고 구원을 얻는다. 자신이 소주 한 잔을 입술에 묻혀 괴로움을 잠시 잊는 것도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한 번씩 몸이 고꾸라질 때까지 술을 마시면, 온몸의 혈관뿐만 아니라 심지어 뇌 속까지 알코올이 스며들어 구석구석 정화시켜줄 거라고 그는 믿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고통이라곤 없지 않겠냐고, 남편의 말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아내는 술을 거부했다. 술을 먹는 남편도 거부했다. 하지만 아내는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창밖의 해안을 바라봤다. 목선 하나가 반쯤 바닷물에 잠긴 채 떠 있었다. 무도란 섬이다. 하지만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바다를 건너온 느낌이 들지 않았다. 빼곡한 회색건물들 틈을 새벽에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직행버스를 탔다. 버스가 영종 공항도로를 지나는가 싶더니 어느덧 이 곳, 섬에 왔다. 섬과 육지가 연결되는 긴 다리가 있었다. 중간에 갈아탄 버스로 갈매기 떼가 내려앉아 있는 포구를 지나서 차가 활처럼 굽은 해변을 지나 올 때는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기도 했다. 섬에 가까이 올수록 안개는 더 짙었고, 바람이 간간이 안개의 농도를 흐트러뜨렸다. 안개가 가실 때쯤 섬 끝자락에 도착했다. 발길 닿는 대로 섬 주변을 몇 시간 동안 빙빙 돌아다니다가 들어선 이 곳, 서해식당이라고 했던가. 여기에 들어오기 전에 입구에 내걸린 간판을 봤다.

  그는 안주가 오기 전에 소주를 연신 따라 마셨다. 눈을 뱀눈처럼 한껏 찌푸려서 가늘게 뜨고는 햇빛이 안개처럼 넘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는 섬을 그저 마음속에 담고만 있었다. 그는 도시를 오랫동안 떠나지 못했다. 아내는 일 년 사이에 낯선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머리가 무거워 고개를 흔들어보았다. 바다, 바다가 여전히 창밖으로 멀리 부옇게 보였다. 햇빛이 바닷물 위에 스며들어 더 그렇게 보이게 했다. 그는 꿈인 듯싶었다.

 

                                          *

 

  포항댁은 낙지 한 마리를 산 채로 도마 위에 올렸다. 낙지의 몸빛은 은회색이다. 나무도마 위에서 낙지는 몸을 크게 꿈틀거렸다. 칼로 낙지를 다리 끝부터 잘랐다. 빨판이 붙어있는 낙지의 발은 칼로 잘리고 나서 더 많이 꿈틀거렸다. 살려고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듯 했다. 그라지 말아라. 살라 하믄 더 죽는 것이다. 아니다. 네가 요처럼 꼼지락거려야 싱싱한 네 살이 소주와 어울리제. 죽는 게 죽는 게 아니다. 포항댁은 혼자서 중얼거리며 왼손으로 잡고 있던 머리 끝부분도 칼로 몇 번 내리쳐서 잘랐다. 중년의 남자 혼자서 섬에 찾아든 것을 그녀는 기꺼워 할 수가 없었다. 그 남자에게서 풍기는 쓸쓸한 기운이 그녀의 피부에 와 닿았다.

  아들이 집을 나간 지 일 년이 넘었다. 지금쯤 아들도 저 남자처럼 어딘가 낯선 곳을 헤매고 다니지나 않을까. 포항댁은 아들 현이 잠깐 방황하다가 꼭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하나 있는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뱃사람이 되어 여기서 썩을까봐, 중학교 때부터 육지로 유학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신림동 고시원에서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갑자기 저 세상으로 떠난 남편의 49제를 지내자마자, 어머니 곁에서 공부하고 싶다면서, 아들이 짐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고시원에서 이 년 동안, 그냥 허송세월한 지난 시간을 이제 마지막 도전을 해서 어머니께 꼭 보상해드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시험도 보기 전에 아들이 집을 나간 것이다. 집을 나간 지, 한 달이 넘어가고, 두 달이 넘어가고, 일 년이 넘어갔다. 그녀는 아들이 실종된 거라고 확신했다. 경찰에 늦게야 실종 신고를 하고, 아들 소식을 혹여 들을까, 서울 친구네로, 시골 고향으로 한 바퀴 돌며 여기저기 있을만한데 찾아보고, 전단지도 뿌리고 왔다. 경찰에서 혹 연락이 올까싶어 휴대전화를 꼭 목에 걸고 다니며 소식을 기다리지만 아직 감감소식이었다. 포항댁은 아들을 진작 찾아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서른이나 먹은, 다 큰 자식이 설마 집을 나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시험 때문일까. 이번에도 떨어질 것 같아, 이 어미에게 면목이 없어 피한 것일까. 미안한 마음에 잠시 집을 피해 자신이 졸업한 대학이 있는 서울에 가서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일자리라도 부탁하러 간 건가. 아니면 제대를 앞두고 헤어졌다던 첫사랑 여자를 다시 만난 것은 아닐까. 집으로 연락하지 못할 일은 무언가. 아들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말없이 집을 나간 이유를 암만해도 찾을 수 없었다.

  주인여자가 사기대접에 수제비를 담고 있었다. 일꾼들 준다고 주인여자가 펄펄 끓는 국물에 직접 수제비를 뜯어 넣은 것이다. 주인여자가 그렇게 기다리던 진씨와 달리 같이 온 남자는 행색이 초라했다. 진씨와 동갑이거나, 아니면 한두 살이나 더 먹었을까. 실제론 진씨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진씨에게 남자가 꼬박꼬박 존대를 하는 것을 보니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진씨는 해병대 출신이라지만 예전의 건장했던 군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워낙 하는 일이 햇볕 속에서 하는 일이라 그의 얼굴은 마른 낙엽 같았다. 더군다나 이마와 눈가의 굵은 주름이 그의 피부를 더 거칠게 보이게 했다.

  주인여자가 건들거리며 걷는 폼이 무거운 쟁반을 떨어뜨릴 것 같아 포항댁은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수제비를 담아낸 사기대접이 여간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일꾼들 줄 거라고 두 그릇이나 가득 담아냈다. 다른 때 같으면 힘쓰는 일은 포항댁 차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급히 서두르며 나가다가 여자의 슬리퍼가 주방 문지방에 채어 벗겨졌다. 여자는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고 포항댁에게 신발을 달라고 했다.

  “이그, 뭘 그렇게 급히 갈려고 하누.

   포항댁은 물일 하던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고, 뒤집어엎어진 슬리퍼를 집어 여자의 왼쪽 발 앞에 갖다놓았다. 주인여자를 평소에 식당에 드나드는 남자들이 여간 넘보는 게 아니었다. 활어나 백합, 조개류를 식당에 대 주는 거래처 남자도 가만히 보면 주인여자에게 흑심이 있어 보였다. 주인 여자는 쟁반을 받친 팔을 움직이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슬리퍼에 발을 끼고는 밖으로 나갔다. 하얀 꽃무늬를 수놓은 여자의 검정치마가 바람에 휘날렸다. 그런 여자의 뒷모습이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꽃잎 같이 위태로워 보였다. 포항댁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

 

  김철은 이미 꽁초로 변한 담배를 마지막으로 한 모금 더 태웠다. 꽁초를 끄지 않은 채로 모래밭에 내던졌다. 담배꽁초는 모래 위에 반쯤 박힌 채 간당간당 다시 피어오를 것처럼 한 줄기 연기를 쒜, 하고 태우며 요동을 쳤다. 젖은 모래는 담배꽁초를 금방 잠재웠다. 갈매기 한 마리가 무리에서 벗어나와 하늘 꼭대기에서 하얗게 날고 있었다.

 ‘해가 긴 것 같아도 금방 사그라질 테지. 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본 적이 있었던가.

  여기 낙조는 한 폭의 수채화와 다름없을 것 같았다. 그는 목에 두른 때 탄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았다. 조금 있으면 썰물 때가 될 것이다. 주인여자가 새참으로 수제비를 뜬 조개탕을 내왔다.

  “막걸리는 없소?

  진씨가 지붕 위에서 주인여자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본격적인 피서 철이 한 달여 쯤 남아 있었다. 미리 전기선이니 간판이니, 창문틀이니 지붕 망가진 것을 전체적으로 손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김철은 진씨를 따라다니며 그의 일을 보조하는 막일을 했다. 요즘은 이런 일마저도 구하기가 힘들었다. 오늘따라 서쪽 바다를 보며 일을 하니 고향생각이 절로 났다. 그러면서 다리가 자꾸 풀리는 것이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싶었다. 김철도 술 한 잔이 생각나던 터였다. 주인여자는 진씨를 흘겨보며 일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술타령이냐면서 지청구를 주지만 진씨의 투정질이 그리 싫지 않은 눈치였다. 주인여자는 가운데 가르마를 탄 생머리를 쪽을 치듯이 하나로 묶었다. 입술에 바른 빨간색 립스틱은 반 쯤 지워져 있었다.

  여자가 식당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새참이 나왔는데도 진씨는 하던 일을 계속하며,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김철은 담배를 한 대 더 피워 물었다. 일을 시작하면 조금의 틈도 없이 몰아치는 진씨의 호흡을 어떤 땐 따라가기 힘들었다. 멀리 두 여자와 함께 덩치 큰 남자가 해변을 걷고 있었다.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는 애기처럼 마냥 웃고 있고, 조금 뒤쳐져서 걷고 있는, 금박이 박힌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차려입은 한 여자는 영 불만스런 태도로 그들의 뒤를 느릿느릿 따라가고 있었다.

  연변의 어머니, 어머니는 지금 하늘에서 무얼 하고 계실까? 그리 원했던 노총각 아들의 결혼을 어머니는 살아서 기어이 보지 못하고 가셨다. 어머니 살아생전에 어서 돈을 벌어 고향에서 집도 사고, 해변의 처자들처럼 젊고 예쁜 각시와 결혼해서 손자 낳고 오순도순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빨리 가실 줄을 몰랐다. 그는 오랫동안 고향에 갈 수 없었다. 산업연수기간이 끝나고, 돈을 더 벌 욕심에 불법체류신분으로 안산 공장에서 이 년을 더 고생했다. 그렇게 고생해서 모은 돈을 같은 방을 쓰던 동료에게 사기 당했다. 귀향 준비를 하고 있던 와중에 동료의 사기행각을 알게 되어, 쌌던 짐을 다시 풀었다. 그 동안 고생한 것이 너무 허무했다. 김철은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고향의 가족을 위해서 이를 꽉 물고 견뎠다. 귀향을 미뤘다. 그 사이 지병이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젠 남은 동생들이 마음에 걸렸다. 울 수도 없었다. 더 버틸 방법밖엔 도리가 없었다.

  김철은 종교라곤 가져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입에 올렸다. 내가 내세를 믿는 걸까. 그는 흠칫 놀랐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신을 찾는 걸까. 아니, 인간의 신이었다. 기독교의 하나님도 아니고, 불교의 불타도 아니고, 마호메트의 알라신도 아닌 그냥 인간의 신. 그들은 무조건 어떤 존재를 믿으라고 한다. 그러면 축복과 구원이 돌아올 거라고 하지만 그는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연변엔 무신론자들도 많지만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로 종교 활동이 자유로워져 종교인들이 늘어났다. 그 중에서 기독교의 확장이 눈에 제일 많이 띄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불법체류자 처지가 되면서, 시시각각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지금처럼 무엇인가에 의지하려는 것을 보면 자신도 완전한 무신론자는 아닌 모양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 순간 그의 가슴 속으로 어머니가 새처럼 날개짓을 하며 파고들어 오는 듯했다. 그는 깊은 호흡을 내쉬었다.  

 

                                          *

 

  장건영은 빈속에 소주가 벌써 세 병째였다. 위 끝이 싸하니 아려왔다. 어제 오후에 그는 용산에 일터가 있는 아내를 불러냈다. 마지막으로 꼭 할 얘기가 있다고 전화했다. 여보세요. 무엇을 원해요. 난 이제 지쳤어요. 아내는 여전히 그와 만나기를 꺼려했다. 아내는 냄새를 풍겼다. 일 년 이상 떨어져 있어도 그의 골방으로 자주 아내에게서 나는 화냥의 냄새가 풍겨오곤 했다. 그럴 때 그는 보풀이 인 나일론 이불을 쥐어뜯으며 찬 방바닥에 등을 대고 몸부림을 쳤다. 어떤 때 아내의 냄새는 복사꽃향기가 되어 그에게 찾아들었다. 그럴 때 그의 눈가로 눈물이 질금 흘러나왔다. 자기감정에 빠진 사춘기 소년처럼 소리 내어 울어보기도 하였다.

  그저께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동희를 두고 외출 중이었다. 아빠의 목소리인 걸 알고, 비록 전화 너머지만 동희가 애타게 아빠를 불렀다.

  “아빠! 일요일 날 꼭 와요! 엄마 없어요! 여기 없어요!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있어요.

  혀 짧은 소리로 5살 난 아들 녀석은 말했다. 길을 떠날 때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그의 핏줄. 그는 피부 밑으로 뜨거운 혈류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괴로울 줄 알았으면 전화를 하지 말 것을 그랬지. 아들 얼굴은 못 봐도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던 그는 한동안 아들에게 전화를 할 수 없었다. 동희에게 아빠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의 전화는 아들을 감질나게만 만들 뿐 혼란을 오히려 줄 것이었다. 아들은 일 년 동안 키도 많이 자랐을 것이다. 참고 버틴 김에 더 참을 걸 그랬다. 그는 바로 후회했다.

  “건영씨, 더 이상은 안 되겠어. 각자 갈 길 갑시다.

  달콤했던 신혼 생활이 동희를 낳고 삼 년 육 개월 만에 깨지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하는 일마다 실패를 했다. 그의 가족이 그나마 웅숭크리고 살던 작은 아파트마저 날리게 됐다. 헤어지자는 아내와 일단 별거 형식을 빌기로 했다. 그 또한 서로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아내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고통을 잠시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 사이, 내가 정신 차리고, 재취업을 위해 노력할게. 그 때 다시 합치자.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합의를 미뤘다.

  “아빠!

  아내 미선이 동희를 데리고 떠난 날, 그는 그들보다 먼저 뒤돌아서야 했다.

  “아빠! 못 들었나봐. 엄마, 우리 아빠는 왜 저기로 가지?

  동희가 아내에게 칭얼거리며 묻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아들의 우는 얼굴을 등짝에다 아프게 찍으며 한 발짝씩 옮기는 발이 천근이었다.  

  그만의 공간 단칸방으로 돌아온 그는 잠을 자려고 했다. 잠은 고통을 잊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잠이 들지 않았다. 이럴 바엔 일어나 알코올 기운이라도 빌어야 할까. 뒤척이던 몸을 한참 만에 일으켜 창문 쪽을 응시했다. 다세대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창밖은 어두운 벽만이 보일 뿐이다. 불 꺼진 방안의 창문은 오히려 푸른빛이 돌았다. 바다 밑 검은 해초처럼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어둠 사이로 비쳐졌다. 그날 그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오래도록 혼자서 헤매게 될 것을 미리 알고 그랬던 것일까.

  안정성이 보장되고, 각종 과분한 복지 혜택까지 있는 S공사 같은 직장에 남편이 들어가는 것이 소원이었던 아내였다. 아내가 바라던 신이 내린 직장은 아니지만 어렵게 작은 회사에 취직한 그는 아내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다시 합치자고 할 판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와 만나기를 거부했다.

  “이혼서류나 어서 깨끗이 마무리하자.”  

  아내는 재차 이혼을 요구할 뿐이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인가, 그때 다시 합치자는 소리를 잊은 것인가.

  “그래 현실은 나를 너무 오래 방황하게 했어. 당신도 지쳤겠지. 하지만 이제 괜찮을 거야. 작지만 탄탄한 회사야.

  그는 아내의 태도에 당황했다. 아내가 그리 나오리라곤 예상하지 못한 그는 자책하기 바빴다. 아내말대로 현실감각이 없는 걸까. 그는 충주 본가에 그들의 별거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명절 때도 혼자 가기 멋쩍어 핑계를 대어 가지 않았다. 이혼이라니. 남자가 되어가지고 가정 하나 제대로 꾸리지 못한 압박감이 언제부턴가 그를 지배했다. 그때 생각이 나니, 그의 손은 술잔 안의 술이 출렁거릴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포항댁이 다시 왔다. 삐져나온 굵은 반백의 머리카락이 그녀를 고집스럽게 보이게 했다. 포항댁은 젖은 손으로 산낙지 접시를 내려놓았다. 초고추장과 꽃소금을 넣은 기름장도 산낙지 접시 옆에 두었다. 어느새 상 위는 하얀 플라스틱 접시들로 가득 찼다. 오이, 당근 썬 것, 풀 죽은 상추, 삶은 메추리알과 소금, 볶은 미역줄기 따위가 하얀 접시 바닥에 딱 붙어있었다. 포항댁이 빈 쟁반을 들고 허리를 펴며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단 몇 초간이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깊고, 투명했다. 나이 든 여자의 눈 치고는 맑았다. 꼭 바다색 같았다. 살면서 죄라곤 짓지 않고 살았음직한 눈이다. 순간 그는 포항댁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딴 데로 돌렸다.

 

                                          *

 

  낙지 접시를 남자에게 갖다 주고, 포항댁은 상추를 마저 씻기 위해 개수대 앞에 섰다. 소쿠리에 상추를 건져놓고, 오이와 당근, 풋고추, 마늘을 모두 물속에 넣은 채 설렁설렁 흔들어 씻어 건졌다. 바다에서 끌어온 물을 받아 해물과 조개의 물도 갈아 주었다. 깨진 조개껍질에 손가락이 긁혔다. 포항댁은 남편이 갑자기 이 세상을 등졌을 때, 홀로 된 어머니 곁으로 와 준 아들이 고마웠다. 그런 아들이 실종된 것이다. 그녀는 모두 자신이 저지른 죄의 업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포항댁은 자신에게 닥친 것을 이제는 순리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포항댁은 행주에다 손을 문질렀다. 행주에 묻은 소금기 때문에 상처가 따가웠다. 허연 행주에 핏자국이 벌겋게 번졌다. 그녀는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물일을 했다. 그래서 손이 멀쩡할 날이 없었다. 포항댁은 고무장갑을 끼고 일을 하면 답답증이 났다. 한겨울에도 맨손으로 일했다. 석화나 조개를 캐서 살면서 바닷바람에 시달려 포항댁은 얼굴의 피부도 푸석하게 변했다. 포구였던 이 근처 곳곳이 해수욕장으로 개발이 되면서, 모여드는 사람들을 따라 횟집이나 식당이 많이 생겼다. 예전보다 굴을 쪼는 사람들도 드물고, 굴도 적게 나왔다. 다행히 식당에 일할 거리가 새로 생겼다.

  허 순경이 오늘쯤 주인여자를 보러 오지 않을까. 포항댁은 오늘은 꼭 허 순경이 아들 소식을 들고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주방의 열린 창문으로 내밀었다. 고개를 들어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언제보아도 자신을 닮은 갯바위가 오늘따라 가까이 보였다. 한번 깊이 심호흡하고 코를 킁킁거리자 비릿한 갯냄새가 맡아졌다. 한겨울에도 갯벌 곳곳에서는 쉴 새 없이 뒤척이며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내뿜는 체취다. 아들은 비린내 나는 이곳의 체취를 싫어했다. 어느 날 보니까 아들은 채식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채식주의자가 생선까지 먹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어릴 때 아들은 고기를 잘 먹었다. 대학 다닐 때 아들은 어떤 종교 서클에 가입해서 활동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의 채식습관은 그때부터 생긴 거였다.

  주인여자가 들어오더니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일꾼들이 술 한 잔 달라네요. 그런데 같이 온 남자 있죠? 아무래도 이상해요. 포항댁은 못 느꼈어요. 한국사람 같지 않아요. 말투가 연변에서 온 조선족이 분명해요.

   주인여자는 쟁반에다 잔을 두 개 얹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뒤돌아 나가는 주인여자의 뒷모습은 마치 바다 위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는 부표처럼 몸이 중심을 잃고 허공에 떠있는 듯했다.

   

                                      *

 

  김철은 주인여자가 막걸리를 대신해서 가져온 소주 한 병을 진씨와 나눠 마셨다. 가슴 속이 뜨끈해 오는 게 힘이 빠졌던 다리근육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아까 오다가 보지 않았나? 요 옆 영무도에 새로 생긴 해수피아 말이야. 지금 사람들이 꽤 오는 모양이야. 아는 후배가 그거를 맡아 했지. 그 때 나에게 연락이 한 번 왔었다구. 내가 다른 일 맡은 게 있어서 못해줬지만.

  김철이 안주 삼아 수제비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울 동안, 진씨는 얘기하며 먹느라고 아직 반도 못했다. 그릇에서 숟가락만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진씨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무도는 아직 옛 섬마을 정취가 살아 있어. 하지만 이곳도 머지않을 거야. 지금은 개발예정지역으로 묶였지만 개발이 시작되면 무도도 다른 데처럼 변할 거라고. 옛날 같이 소박한 정취를 기대할 순 없겠지. 제일 먼저 호텔, 레스토랑 같은 상업지구가 생길 거야. 거기다 콘도, 놀이공원 등 대형리조트시설까지 들어설 수도 있고. 우리가 할 일이 많이 있을지도 몰라. 이 쪽 사람들을 내가 좀 알거든. 근데 서둘러야겠어. 오늘 군대 간 막내가 첫 휴가를 나온다고 해서... 바쁘게 생겼어.

  오늘 여기 일을 끝내고 내일은 용인 아파트 현장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김철은 진씨를 따라다니는 일이 그 전에 안산 공장에서 일할 때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원래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그가 가죽냄새랑 섬유와 약품냄새로 가득 찬 공장에 틀어박혀 일하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김철이 진씨를 처음 만나게 된 곳도 아파트 공사현장이었다. 강북의 재개발 아파트였는데 김철은 한참 마무리 공사가 진행될 때 투입되었다. 돈을 떼어먹고 도망간 친구를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찾아 헤매다가, 병을 얻어서 열흘 동안 안산의 단칸방에서 몸을 꼼짝 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병사(病死) 소식을 듣고서야 그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노모의 죽음 앞에서 일어나야 되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동생들이 있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죽음 앞에는 생이 있다는 것을. 끝에 다다르면 다시 출발선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김철은 몸을 겨우 추스르고 무작정 옆방 사람을 따라다니며 재개발 현장에서 막일을 했다. 일을 하러 간 첫 날, 저녁때가 되어 잔업을 한 두 시간 남겨 두고 라면집으로 새참을 먹으러 갔다. 김철은 진씨를 라면집에서 처음 대면했다. 라면을 한 그릇 씩 주문하더니 진씨가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내 스테인리스 물컵에다 한 잔 씩 따랐다.

  “자 한 잔 씩 마시자구. 이렇게 알코올이 한 잔 들어가야 일을 하지.

  라면집엔 소주를 팔지 않았다.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요기도 하면서 술을 한 잔 해야 힘이 나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주인 몰래 가져 온 술을 그들은 함께 나눠 마셨다.  

  “형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슈?

  “오십은 아직 넘지 않았어요. 뭘 다 알려고 그래요?

  김철은 처음 본 사람에게 나이를 밟히는 것이 꺼려져서 대충 얼버무렸다.

  진씨는 처음 본 김철의 그간 행적을 궁금해 했다. 이 나라를, 진씨를 같은 민족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단지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하면서 그의 정체성을 확인 하고 싶어 했다. 김철은 대답하지 않고 딴청을 부렸다. 그것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국에 와 보니, 조선족들은 독하다느니, 다 믿으면 안 된다느니, 조선족들은 한국 사람들을 같은 민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느니, 하면서 조선족에게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여기에 있으면서 그런 오해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경우를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었다. 두 달 전인가는 어떤 사람과 말다툼을 시작해서 육박전으로 갈 뻔했던 경험도 있었다. 그런 관계로 그는 단순히 호기심 차원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는 평소에 말조심을 했다.

  “선배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슈?

  집요하게 캐묻는 것이 불만스러운지 옆방 남자가 진씨의 말을 막으며 반말 비슷하게 물어보았다.

  “나? ……환갑은 넘었수.

  진씨는 옆방 남자를 흘낏 쳐다보며 말했다. 옆방 남자는 무슨 언감생심이냐며, 환갑이 넘었다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진씨는 옆방 남자의 말을 아예 무시하고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김철은 처음에 껄끄러웠던 진씨가 왠지 남 같지 않았다. 나이도 고향 삼촌뻘쯤 되었다. 김철의 그간 사정을 알게 된 진씨는 그에게 자기만 쫓아다니라고 했다. 일거리가 있으면 그를 잘 챙겨주었다. 지난겨울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요즘은 예전처럼 일이 계속 이어지질 않았고, 비 오는 날이나 너무 더운 날, 혹은 아주 추운 날은 일거리가 없었다. 평소에도 진씨가 술병이 나는 바람에 있는 일거리를 놓쳐, 공치는 날도 많았다. 한 때 진씨는 알콜중독으로 입원까지 한 적이 있었다는데 아직 술을 못 끊고 있었다.

 

  김철은 진씨가 오늘처럼 아들 얘기 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가족 얘기는 원래 하질 않았기 때문이다. 진씨가 빈 그릇을 얹은 쟁반을 김철에게 건네주었다. 굳이 주방에 직접 갖다 주라는 것이다. 서둘러 일을 마쳐야겠다며 그를 재촉했다. 김철은 휘청거리며 쟁반을 받쳐 들었다. 주방문으로 막 들어가려는데 앞쪽으로 정복을 입은 남자 한 명이 식당 안으로 먼저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 자세히 보니 경찰이 분명했다. 김철은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왠지 모를 두려움으로 쟁반을 든 채 식당 밖에서 주춤거렸다. 거처에서도 그런 심정을 느낄 때가 있었다. 집에 아무도 올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초인종이 느닷없이 아무 때나 울릴 때가 있었다. 그 때 느꼈던 것과 똑같은 감정이 찾아왔다. 초인종 소리가 울리면 집 안의 벽시계가 갑자기 멈춰서는 듯했다. 긴장된 눈은 시계를 쳐다볼 수도 없었고, 근육 사이의 혈관이 빠른 속도로 수축되는 느낌을 받았다. 석연치 않은 진동이 한 바퀴 머릿속을 지나가고 나서야 진정이 되면서 자신이 두려워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실체를 깨닫게 되었다. 불법체류자인 그는 안팎에서 모두 죄인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

 

  안녕하십니까. 식당 안으로 누군가 씩씩하게 들어와 주방을 향해서 인사를 했다. 경찰복을 입은 남자였다. 경찰복장을 했다면 경찰이 맞을 것이다. 아직 양볼에 젖살이 있어 보일 정도로 풋풋한 느낌을 주는 젊은 사내였다. 젊은 사내는 식당 안을 빠르게 한 번 휘 둘러 보는 것이었다. 건영은 경찰을 얼른 외면하고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아직 손도 되지 않은 산낙지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산낙지는 이제 꿈틀거리지 않았다. 꿈틀거리다가 죽은 낙지 살들을 보니, 자신의 손을 쥐어뜯다가 축 늘어진 아내의 손이 떠올랐다. 그의 분노가 순간 살기충전 했던 건, 아내의 손가락에 끼어진 낯선 반지 때문이었다. 커플링처럼 다이아몬드가 가운데 납작하게 박힌 백금반지였다. 아내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을 때, 반지하방의 창문으로 스며든 한낮의 햇빛이 다이아몬드에 반사되어 그의 눈을 잘 뜨지 못하게 했다. 그 눈부심이 무엇보다 강렬하게 지금 그의 머리를 차지했다.

  “우리 사이에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다고.

  법원으로 바로 가자는 아내를 끌고 그의 골방으로 데리고 왔다. 당신이 정 원한다면, 마지막인데…… 그래 어디 한 번 가보자, 하면서 아내는 그의 뒤를 따라왔다.

  “그래, 어서 얘기 해 봐.

  그는 아내의 재촉에도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난, 일 년 전에 다 끝난 걸로 알고 있는데. 남자가 치사하게 이럴 거야?

  “남자? 당신! 그렇게 이혼에 목숨을 거는 거 보면 어디 좋은 남자가 벌써 생겼나 보지?

  그가 한 마디 내뱉은, 격앙된 말에 아내는 억울하다는 듯이 대들었다. 그는 물론 진심으로 한 소리가 아니었다. 기껏 아내와 화해를 할 요량으로 이런 시간을 만들어놓고, 자기도 모르게 아내의 가슴을 할퀴는 소리를 한 것 같아 순간 그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신!  맨 정신에 그게 할 말이야? 그래, 기껏 하는 말이 그거지? 우리는 이미 일 년 전에 끝난 관계야. 왜 이해를 못해? 우리가 그때 왜 헤어졌는지 잊었어?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이 답답해. 당신의 몸이, 당신의 정신이…… 왜 끝난 걸 인정하지 못해? 정말 질렸어. 그래 맘대로 해, 원하는 게 이거야? , 해 봐.

  하지만 아내는 그 소리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민감하게 반응을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옷을 훌렁, 훌렁 벗기 시작했다. 그에게 어떻게 맘대로, 원하는 대로 해보라고 자기의 몸을 들이대고 덤비는 것이었다. 그가 원한 건 진짜 이게 아니었다. 그는 예전처럼 아내와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아내는 급했다. 서류정리가 왜 그렇게 급한 것일까. 왜 저리 몸서리를 치도록 원하는 걸까. 거기다 아내는 술을 먹기엔 이른 시간인데도 어디서 이미 술을 먹고 왔다. 얼굴은 멀쩡했지만 말할 때 혀가 약간 돌아가는 걸 보니 취한 상태였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골방으로 풍겨오던 아내의 냄새가 바로 눈앞에서 술 냄새와 함께 그의 코를 간지럽게 했다. 아내는 갑자기 아랫도리만 놔두고 다 벗었다. 아내의 가슴은 허옇게 다 드러났다. 아랫배에 살집이 좀 생겼고 젖무덤은 부풀어 오른 듯 팽팽했다. 그는 팽창되는 몸을 느꼈다. 아내를 진정시키기 위해 바닥에 흐트러진 옷을 입으라고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앉은 자세로 다가오더니 그의 옷자락을 잡고 흔들었다. 이혼을 해달라고 애원을 하는 것이다. 그는 아내가, 그의 어깨를, 그의 팔을, 흔드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내는 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바닥에 똑바로 누웠다. 힘이 빠진 모양이었다. 아내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기도라도 하는 듯 했다. 갑자기 측은한 감정 같은 것이 슬쩍 그의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그는 잠시 뒤, 아내 옆에 따라 누웠다. 그가 옆에 눕는데도 아내는 그냥 꼿꼿하게 누운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나를 원하는 걸까. 아내도 내가 가끔은 그리웠던 것일까. 그는 처음 만났을 때, 둘의 찬란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두 몸뚱어리에서 뿜어진 방안 가득 더운 공기가 그의 몸을 점점 달아오르게 했다. 인내의 시간이 얼마간 지나간 후, 그는 아내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그녀의 몸 위에서 움직이는 대로 아내는 내버려 두었다. 그는 팽창된 몸이 가라앉기 전에 서둘러 아내의 몸에 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곧 주저앉았다. 아내는 갑자기 우는 듯 웃기 시작했다. 이거였다. 아내는 그에게 모멸감을 주려했다. 가끔씩 찾아오곤 했던 임포텐스로 인해 비뇨기과도 다녀보고, 신경성이라고 진단한 의사의 권고로 정신과 상담도 두어 번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생각에 이르자 그의 몸은 부르르 떨렸다. 그는 웃는 아내의 얼굴을 자기도 모르게 한 대 때렸다. 아내가 발악을 했다. 그는 아내가 지르는 소리에 당황하여 아내의 얼굴을 한 대 더 때렸다. 그러나 아내는 더욱 더 발악을 했다. 그가 보고 싶어 했던 아내의 모습이 아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여자였다. 바로 악녀의 모습이었다. 그는 여자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내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내의 몸은 여전히 복숭아 빛 살결이었다. 그 사이에 핏빛이 뿜어 나왔다. 아내의 붉은 입술선이 잠시 움직였다. 흐트러진 머리칼이 함께 흔들렸다. 그러나 곧 잠잠해졌다.

 

  그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세 병째인 소주병도 벌써 바닥이 다 드러났다. 칼로 썬 지 한참 된 산낙지에서 물이 생겨 접시 안이 질척거렸다. 야채도 그새 풀이 죽어 있었다. 경찰은 아직 주인여자와 얘기가 끝나지 않았다. 술 때문인지, 흐른 시간 때문인지 긴장이 풀린 그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을 나와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화장실 문 앞에 아까 본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두 마리 중의 한 마리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다가서는데도 고양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느린 걸음으로 한 발짝씩 옮겨놓으니 어떻게 하나 지켜보려는 모양 같았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자세를 숙여 고양이를 마주 바라보았다. 고양이는 흐린 구슬 같은 눈동자를 뜨고 있었다. 그의 방에서 새어나온 시취가 앞집까지 진동해, 후각이 예민한 반지하방 사람 중의 누군가는 몸살로 곧 앓아누울지도 모른다.


임수랑/2006월간문학에서 단편소설 꽃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에는 단편소설끝나지 않는, 녹슨으로 5.18문학상을 수상했고, 교보 <퍼플>에서 장편소설지하철 아이, 소설집 끝나지 않는, 녹슨 , 로라의 게시판, 배달구역》을 비롯하여, 장편 <흰꼬리 깃발1> <엄마의 달>, 제 1시집 <늪의 방식>과 함께 십여 권의 시집을 전자책으로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