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2호...
   2019년 10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 오늘방문자 : 
    525
  • 어제방문자 : 
    619
  • 전체방문자 : 
    432,404

지난호 보기

분류에서 보고싶은 호를 선택한후 GO 를 누르세요.

번호 닉네임 조회 등록일
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79754 2014-11-03
598 늙어 피어난 꽃 /김창현
편집자
1508 2017-11-01
늙어 피어난 꽃 봄은 왔건만 틔우지 못한 싹들은 흙위에서 스러지고 여린 고사리는 짖밟히었다. 차마 꿈조차 꾸어 보지도 못한 꽃봉오리 소녀는 들개의 더러운 굴속에 물려가 검은뱀과 붉은뱀에게 무명 저고리속의 파릇한 젖가슴을 유린당하고 영혼의 자유마저도 구속당했다. 피우지도 못하고 시들은 꽃망울 멈추어버린 기억은 고향집의 뒤뜰 복사꽃 나무 가지위에 걸쳐두고 참으로 먼길을 피고름 흘리며 생채기로 떠돌았다. 돌팔매를 맞아도 아픈 줄 모르고 원망조차도 모르고 검은뱀과 붉은뱀들이 흘려놓은 비린 정액은 그렇게 스미어 모진 세월 살아갈 이유도 모를 원죄로 잉태되었다. 손가락질 받아도 미움조차 모르고 풀뿌리 나무뿌리 닥치는대로 먹으면서도 모진 생명의 끈을 결코 놓을 수는 없었다 . 검은 씨앗이 푸르게 자라나 마음껏 꽃피우며 살아갈 내일을 위하여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살아도 사는 줄 몰랐다. 서쪽하늘이 뉘엿거리는 이제사 양귀비꽃처럼 피어난 고사리 소녀는 세상의 작은관심이 미웁고 서러워 통곡을한다. 꽃잎들은 하나 둘 떨어지고 얼마 남지 않은 황혼녘 차마 다 말할 수 없었던 그날의 얘기들 치욕스런 그 만행들을.. 늦었지만 진하디 진한 향기로 세상에 전한 가슴이 저린 이야기들 가슴을 쥐어뜯는 통한의 역사를 세상이 잊을까 두려워 눈을 감을수 없다. 김창현/삶으로 쓰는 시 대표 전통한옥 목수 전 한국미소문학 인천지회장 참교육 장학회 이사  
597 환생/나병서
편집자
1334 2017-11-01
환생 길게 늘어선 벌거벗은 우리는 가을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무도 눈앞의 가스실 입구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품에 안긴 한 살 아기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인간은 진화하여 짐승이 되어가고 죽여도 되는 호모 사케르 길게 늘어선 우리의 이름은 오늘도 침묵으로 영광스런 행진곡 위를 걸어가고 있다 하늘은 여전히 같은 하늘일 것이고 그리고 가을 하늘일 것이다 예언처럼 단지 그것 뿐이었다 나병서/ 한양대 시인  
596 이백 살은 살아서/박찬선
편집자
1394 2017-11-01
이백 살은 살아서 시민의 정성을 모아 평화의 소녀상을 왕산역사공원에 세우던 날 아흔 넘어 먼 길 오신 이 용수 할머니 열네 살에 강제로 끌려가서 …… 전기고문을 당한 것이 지금도 몸이 저리시단다 상해에서 중국과 나란히 소녀상을 세우던 날 억수로 쏟아지는 소나기를 희생당한 소녀들의 눈물이라던 할머니 뉘우치는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했으니 이 백 살은 살아서 받아낼 때까지 여러분도 같이 이 백 살은 살아서…… 그만 가슴이 뭉클하여 단상에 계신 할머니를 바라보지 못하고 물드는 잎들만 바라보았다 새 날아와 어께에 앉고 하얀 나비 꿈꾸는 먼저 간 영혼들이 함께하여 기뻐하시리라는 울먹이시는 이용수 할머니 소녀상의 얼굴을 맞대어 비비고 감싸 안으신다 목으로 파고드는 슬픈 어제의 찬바람을 막아주는 촘촘하게 손으로 짠 노란 목도리와 모자 다시 꽃으로 피어 지지 않는 향기로 남아 이 땅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지니 이백 살은 살아서  
595 순백꽃/신미옥
편집자
1474 2017-11-01
순백꽃 화려한 꽃의 향연 4월이라지만 오늘 만큼은 슬퍼합니다 차가운 어둠과 공포 속에서 재앙 앞에서 당신과 어린 영혼들은 제단의 꽃으로 바치어졌습니다 꿈이 가라앉고 소망이 침식되어질 때 당신과 어린 영혼들은 눈을 뜬 채 부유물로 흐르는 세상의 욕망들을 보았을 테죠 그 순간 소통할 수 없었던 암흑의 진공 상태를 용서하세요 우리는 바보같이 순백꽃으로 사라진 향기 앞에 눈물만 지었습니다 온갖 탐욕과 오욕이 넘실대는 세상이라지만 대속죄로 희생된 당신과 어린 영혼들의 순백꽃만은 기억하며 살겠노라 다짐해 봅니다 신미옥/문학광장 시부문 등단 문학광장 문인협회 회원  
594 돌아올 수 없어도, 고향으로 돌아왔어도/신순말
편집자
1569 2017-11-01
돌아올 수 없어도, 고향으로 돌아왔어도 - 상주 왕산 평화의 소녀상 발치에 운동화 한 켤레 또 한 켤레 놓였습니다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나라에서 태어나 꽃이 꽃으로 피지 못한 소녀의 발 그 아래 풀꽃이 놓였습니다 바람이 찬 계절에도 맨발인데 아직도 제대로 신을 신겨주지 못한 나라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나라 꽃이 꽃으로 피지 못한 나라에서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사람들은 꽃은 꽃으로 피어나는 나라이고 싶어 아픔을 녹여주고 싶은 사람이고 싶어 손발이 시리고 어깨가 시리고 심장이 시린 소녀에게 털모자와 양말과 알록달록 고운 무늬 담요와 포근한 목도리를 둘러줍니다 사방 꽃 피어나고 어느새 또다시 녹음이 푸릅니다 분수대 물은 높이높이 솟아오르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늦봄의 햇살 길게 내려와 비추는 공원 마당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을 기다리는 돌려받지 못한 꽃의 꿈을 꾸는 빈 의자 하나를 곁에 두고 의자에 앉아있는 맨발의 소녀 꽃이 꽃으로 필 수 없었던 고통과 분함이 두 주먹을 쥐고 앞을 바라보는 눈동자로 앙다문 입술에 서린 슬픔을 안고 여전히 소녀로 앉아있는 우리 할머니들의 의자 잘못을 잘못으로 깨달은 이들의 진심어린 사죄가 들리는 그날은 언제인지 어깨에 내려앉은 평화의 새 하늘을 훨훨 날아오르는 노래가 듣고 싶습니다 신순말/상주들문학.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시집 [단단한 슬픔]  
593 그녀 희망을 쓰다 /이선정
편집자
1411 2017-11-01
그녀 희망을 쓰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간이역은 마치 그녀와 닮았다 분주히 오고간 흔적들 숱한 발자욱들이 거기 남았어도, 새벽을 지키는 쓸쓸함은 정작 혼자의 몫이다 밤새 조물락거리며 꿈을 빚고, 여명을 뚫고 달려올 희망이라는 기차를 목빼고 기다리는 것도 정작 혼자의 몫이듯 눈발 날리는 한겨울에도 그녀는 그 간이역에서 성냥 한알에 한기를 녹이며, 입김으로 후후 불어 유리창에 희망을 썼으리라 흐르는 눈물 한 방울 빠드득 얼어갈지라도 그 간이역, 온기로 채우려는 꿈만큼은 잊지 않았으리 마침내 겨울이 지나고, 봄꽃 만발한 거기 서서 천천히 다가올 희망이라는 기차를 햇살보다 환한 웃음으로 기필코 맞아야 했기에 이선정/ 문학광장 등단 문학광장 문인협회 회원 문학광장 강원지부장  
592 죽은 나무의 노래 /임소형
편집자
1500 2017-11-01
죽은 나무의 노래 통분의 칼을 갈아 민중의 노래 불렀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영원으로 흐르는 자유을 향한 거센 몸부림 보라 붉은 깃발 펄럭이며 거꾸로 솟구쳐 흐르던 피끓는 힘찬 이념의 외침 자유를 부르짖다 쓰러져 간 소리없는 흐느낌 도륙당해 감지 못하고 부릅 뜬 두 눈 핏기로 이글거리다 실 핏줄 터져 하늘에 걸려있다 보아라 핏빛 고독 끌어안고 파르르 떨고 있는 저 소리 없는 나무의 저항 누굴 위한 피 흘림이었는가를 무엇을 향한 처절한 고독이었는 가를 청향 임소형/ 경북 상주출생 전북대 사범대학 졸업. 전)상주여중 교사황금찬 시맥회 문학광장 등단. 문학광장 문인협회 회원. 문학광장 홍보위원장. 문학광장 통권 61호 이달의 시인. 공저. 한국문학 대표시선 3. 4 현 (주)핸디데이타 디앤씨 대표 garam8686 @hanmail.net  
591 그 길을 걸어가며 외1편/문해청 file
편집자
1897 2017-10-01
그 길을 걸어가며 그대가 힘 들 때면 가끔 한 번씩 푸른하늘 하아얀 구름 그 길을 걸어가며 자기 마음을 사색하고 성찰하라 그대가 평화라면 자주 민주통일 백두대간 가시밭 산행 그 길을 걸어가며 인간 자연 이웃사랑을 실천하라 소통과 공감 사회적 공감은 인간을 존엄 존귀한 존재로 상호 인정하는 형평원리관점에서 시작이다 사회적 공감은 대중적 공감을 통한 희망을 우리 삶에 실천하고 구체화 할 때 그 공감의 큰 힘은 민중의 힘이 될 것이다 이제 그런 세상의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대의명분이 바로 서고 자주 평화 통일 평등세상 참 된 세상을 반드시 만들어 가야 할 시점이다 문해청 1960년 대구 봉덕동 출생 이메일 : jajudoli@hanmail.net 1991년 전국노동자문학회 공동시집 『너를 만나고 싶다』(도서출판 개마고원) 1991년 『우리들 맞잡은 손』대구노동자문학회 “글바다” 1992년 계간 『실천문학』가을호 [길 따라 돌아간다] 특선으로 등단 2012년 개인시집 『긴 바늘은 6에 있고 짧은 바늘은 12에』(도서출판 두엄) 2014년 분단과 통일시동인시집 『미8군 민들레』(분단과 통일時) 2017년 분단과 통일시동인시집 『붉은 안경을 벗어라』(분단과 통일時) 1988년~1990년 대구노동자문학회 “글바다” 회장 역임 현재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지회 회원  
590 조는 아이에게 외1편/김재순 file
편집자
1628 2017-10-01
조는 아이에게 오후 6시 버스 안에서 늘 끄덕끄덕 졸더니 오늘은 완전 퍼져 좌석 밖으로 팔다리를 칡뿌리처럼 막 뻗었구나 그래, 오늘 얼마나 힘들었느냐 창밖은 온통 사월인데 유리창을 깨부수고 뛰쳐나가라고 너를 들쑤시며 버글버글 끓고 있는 네 마음을 차갑게 식히며 교실에 앉았느라 얼마나 기진맥진 했느냐 누명을 쓴 사람이 유배지에 위리안치 되듯 이른 아침 구불구불 버스를 타고 변방의 작은 학교 좁은 교실에 청춘이 수감되어 숨쉬기 힘들어도 어디다 고함 한번 지를 수 있었겠느냐 사람은 왜 배우고 익혀야 할까 참다운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 나는 어리석어 반생을 살고서야 깨달았단다 수습하다 잡동사니들과 서랍 속에 삼년을 방기했던 분꽃씨 한 줌 붉은 꿈들로 꽉 찼던 알알들은 녹슨 커터 칼이 깎아 먹고 낡은 펜촉이 찍어 먹고 구겨진 낙서장이 흡입해서 한 점 뼛조각만 남았다 오늘 촉촉한 솜뭉치에 그 뼈 한 점 싸 두었다가 볕 잘 들고 윤택한 흙에 심는다 울타리를 자갈로 둥글게 치고 문패처럼 노란리본 꽂는다 김재순: 경북 상주출생 시집⌜복숭아 꽃밭은 어디 있을까⌟  
589 마른 것들 외1편 / 김설희 file
편집자
1544 2017-10-01
마른 것들 마른 벌레집 마른 영지버섯 마른 국화 몇 송이 구멍 뚫린 낙엽 한 장 나갔다 올 때마다 들고 온 것들 문을 여닫을 때마다 바삭거린다 긴 언덕 풀잎 뒤에서 가만히 노래 부르던 것들 갈라지는 골목어귀 가로등 아래였던 것들 뙤약볕 속에 한 잎 그늘이었던 것들 동네 어귀 동수나무였던 것들 어디선가 문 여는 소리 들린다 요양병원 1104호에 햇빛이 한정 없이 밀려든다 사이 소나무 한쪽 어깨를 콕콕 찍어대는 소리 산이 술렁이는데 증거를 남겨야 하는데 사진을 찍으려고 가방에서 전화기를 꺼내려는데 새가 날아갈지도 몰라 새의 몸짓을 눈길로 붙잡고 전화기를 잡는데 쉽게 빠지질 않아 새는 지금 나무의 겨드랑이를 집중공략하고 있는데 도둑질에 여념이 없는데 얼른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부랴부랴 끄집어내야하는데 꽁지를 들고 새는 날아가 버렸어 부리의 뾰족한 시간과 전화기의 시간의 거리가 너무 멀었어 새가 보이지 않아 바람이 나무에 이마 찍는 소리에 나뭇잎이 흔들릴 뿐 오늘은 증거불충분이야 ****** 약력 김설희 2014년 리토피아 등단 시집 <산이 건너오다> 메일 주소 seal0308@hanmail,net  
588 매미 울음 긴 기다림의 끝에 서서 외1편/ 청향 임소형 file
편집자
1791 2017-10-01
매미 울음 긴 기다림의 끝에 서서 연일 발령하는 폭염 경보 발톱을 세운 불볕더위만큼 절정에 달한 매미의 울음이 찌렁찌렁 지축을 흔든다 얼마나 울어 젖혔는지 울대가 맹맹하다 울다 울다 지치기도 했겠다 스르르 스르르 코맹맹이 소리로 변하는 울대 다섯 번의 허물을 벗고나서 환골탈퇴까지 인내심을 장착하고 숨죽인 암묵의 세월 매미의 생은 참으로 위대하다 한 번의 사랑을 위하여 죽음을 불사하는 숭고한 생 4포* 세대의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하면 분명 의식을 새롭게 깨우쳐야 할 경종의 뭉치이다 불완전 변태를 반복하는 동안 뿌리에 기생하여 정갈한 수액만을 흡착하는 흡혈 성충의 군집 제 살점을 희생하는 나무 덕에 성충은 비상의 날개를 펼치고 훗날 녹음을 누리며 신나게 휘파람을 부는 것이리라 리비도의 본능적 욕망은 암컷을 부르는 수컷의 끝없는 구애 짜릿한 쾌감이 절정에 달하면 이윽고 완성하는 사랑 울어서 실현되고 침묵으로 완성하는 종족보존의 업적은 누구도 근접 못 할 매미만의 빛나는 행적이다 그러니 짧은 생! 가엾다 여기지 말자 짧고 굵게 살다가는 뜨거운 생애 누군가는 동경의 눈을 치켜뜨리라 쟁쟁거리는 매미의 울음이 잦아지고 짧아진 치마 길이 만큼 탱탱하던 여름의 함성이 짧아지면 쟁 쟁 쟁 징 소리로 박히는 매미의 마지막 합창 반쯤 열어놓은 유리창 너머 쪽빛하늘은 떡갈나무 잎사귀를 흔들며 뒷모습이 아름다운 노을 빛을 데려와 밤별과 도란도란 가을을 교섭중 *연애,결혼, 출산 포기의 3포에서 인간 관계까지 포기하는 현 세대 고인돌 탯줄 끊고 한 생을 살다간 웅장한 족적 선사에서부터 영원으로 암각을 따라 흐른다 풍우에도 흔들림 없이 지축 흔들어 깨우는 째깍째깍 수 억 만년 이어온 장구한 태엽 소리 고고한 달빛의 유연함 잉태하고 낭랑한 의식으로 합장한 영생으로의 염원 승천하여 안식하는 불멸의 굄돌이 되었다. ************************* 청향 임소형 프로필 경북 상주출생 전북대 사범대학 졸업. 중등교사 역임 전)상주여중 교사 황금찬 시맥회 문학광장 55기 등단. 문학광장 문인협회 회원. 문학광장 홍보위원장. 문학광장 통권 61호 이달의 시인. 공저. 한국문학 대표시선 3. 4 현 (주)핸디데이타 디앤씨 대표  
587 미안해서 어쩐담 외1편/ 권숙월 file
편집자
1583 2017-10-01
미안해서 어쩐담 기억장치 나사 하나가 풀어진 걸까 반갑게 인사하는 여성과 웃음까지 주고받았지만 누구인지 도무지 기억에 없다 초로의 그녀가 공무원인지 예술가인지 한 시간 넘게 기억을 더듬어도 깜깜하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일로 헤맸지 나보다 한참 아래로 보이는 남성과 악수까지 했지만 기억나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지 직업상 많은 이를 만난 탓일까 명함을 받아도 그때뿐 그 얼굴 언제나 까마득하다 연골의 오버랩 무릎 수술을 받았다 관절 사이에 인공 연골을 넣은 것이다 한 시간 남짓 수술 후 중환자로 누운 내게 엄지를 들어 보이는 의사선생님, 애태우던 아내와 딸이 드디어 맞장구를 친다 무릎, 꿇어야 할 자리에서 꿇고 펴야 할 자리에서 펴야 정상이지 문상 가서 무릎 꿇지 못하여 두리번거리기 몇 번이던가 바닥에서 일어설 때도 손힘이 아니면 어림없었지 사라진 연골과 새로 넣은 연골이 오버랩될 때 절룩이지 않던 청춘의 시간이 눈에 선하다 약력/ 1945년 김천시 감문면에서 출생. 1979년 『시문학』통해 문단 등단.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장, 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장 등 역임. 현재 한국문인협회 이사. 김천신문 편집국장. 시집 『하늘 입』『가둔 말』『새로 읽은 달』 등 12권 발간. 시문학상, 경상북도문화상, 경북예술상, 김천시문화상 등 수상.  
586 삶 외1편/채형복 file
편집자
1737 2017-10-01
삶 제 아무리 검붉은 눈물에 깊숙이 젖어든 삶이어도 사는 것은 잘박한 물로 지은 거칠고 된 고두밥이다 효모덩어리의 누룩을 섞고 부어도 발효되지 못한 삶은 부걱부걱 끓으며 괴지 않으니 얼큰한 술로 익지 못한 죽음은 늘 삶 이후의 삶이다 죽음에 술 취하지 않는 삶은 혼절하리라는 마법의 주문에 걸려 삶은 죽음의 공포에 술 취하여 비틀거리고 죽음은 영원히 죽지 못하고 까무러지며 산다 아무리 먹어도 현실이 배고픈 아이들은 술지게미를 먹으며 욕망에 허기진 위장을 채우고 죽음이 성급한 어른들은 채 익지도 않은 삶의 술독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삶을 사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위로하면서, 때로는 불행일지도 모른다 불안해하면서 바람 바람의 집은 어디일까 나는 아직도 쿰쿰한 곰팡내 나는 의문에 답하지 못하였다 푸른 청춘의 시간을 연비燃臂로 불태우고도 텅 빈 가슴을 헤집고 지나는 허무를 잡지 못하고 투명유리로 가린 하늘의 신을 두드리고 패고 가시덤불에 온 몸 던져 뒹굴고 절규하며 기도했지만 바람의 출생 비밀은 풀지 못하고 바람의 고향도 알아내지 못하였다 봄바람이 코끝을 스치며 유혹하지 않았다면 봄꽃에 쉬 다가서지 못하는 중력 잃은 나비의 날개 짓을 보지 않았다면 나는 헤매지 않았을 것이다 아파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행복했을 것이다 사시사철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없고 나비의 행방도 찾지 못한 나는 오늘도 헤매고 아파하고 조금은 행복하고도 싶고 ****************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경작가회의 회의. 펴낸 시집으로 <바람이 시의 목을 베고>(2017년 상반기 세종도서 문학나눔 시부문 선정)를 비롯 여러 권이 있다.  
585 마음을 비우라 하네 외1편/박규해 file
편집자
1582 2017-10-01
마음을 비우라 하네 마음을 비우면 편안한 마음인가 욕심 없는 마음이면 좋겠지만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 작은 것에 만족해하면 큰 욕심이 없어지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욕심을 부리고 싶을 때 있지만 자신이 인내하면서 후회하지 않으면 좋은 삶이 되리라 마음 비우면 정말 편안한 마음일 것 같다 가을이 되니 그 여름의 무덥던 날 이글거리던 태양도 이제는 한 풀 꺾였는지 선선한 바람만 불고 서 있는 해바라기는 고개 숙이고 빙그레 웃고 서 있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벼 이삭은 익어가고 미소 짓는 농부의 마음이 푸근해 지는 가 보다 스레트 지붕에는 하얀 박들이 열려 시골의 풍경을 보고 있다 ㅇ 아호 : 취송(翠松) ㅇ 고향 : 경북 상주 ㅇ 현 거주지 인천 ㅇ 단국대학교 국어국문과 졸 ㅇ 함창중고등학교 근무 정년퇴임(2002년) ㅇ 62년도 김용호 시인님의 추천 됨(4.19 3주년 기념 시) ㅇ 사랑․ 소설계사 기자 근무 ㅇ 현대시조 “바램”으로 천료(97) ㅇ 97 ~새 시대시조(계간) 출품 외 9곳 문예지 출품 ㅇ 시조집 : 희망의 횃불. 찔레꽃이 피면. 풋풋한 삶을 살자. 삶의 자락에서 ㅇ 녹조근정 훈장 외 각종 표창장 15 ㅇ 수상 : 시와 수상문학 특별상(2010) ㅇ 현대시조 이달의 작가상(97년도) ㅇ 한울문학 이달의 작가상(2000년 5월호) ㅇ 동인지: 시인파라다이스 외 55권 외 ㅇ 현재 : 한국 문인 협회 경북 지회 회원. 현대시조 인단 회원. 한울문학 회원. 파라문예회원. 시와 수상문학. 국보문학 회원. 한비문학 회원. 시와 늪 문학 회원. 시와 글 사랑 회원. 지필문학 회원. 문학광장 회원. 스토리문학 회원. 한국미소 문학 회원 ㅇ주소 : 인천광역시 남구 용정 공원로 33 인천 sk sky view 123동 704호  
584 전사의 눈물 외1편/고경하 file
편집자
1794 2017-10-01
전사의 눈물 우르르 쾅 쾅 쾅 천둥번개 소리와 함께 거센 바람을 휘몰아 북에서 남으로 북에서 남으로 굵은 소낙비는 임진강물처럼 흘러간다 전사의 눈물 해방 전사의 한 맺힌 사연일까? 보고픈 고향 땅 가고픈 북녘 땅 폭풍우속의 빗방울아 내 누이에게 남녘땅 민중의 삶을 전해 주렴 우리 하나 되는 마음으로 부디 잘 살아가야한다 우리 이제 끝까지 살아남아 우리 다시 만나야한다 한 맺힌 빗방울 소리는 내 마음 깊숙이 파고들지만 전사의 눈물 빗방울처럼 유리창에 흘러내리고 새벽을 기다리며 자주 평화 통일을 노래한다 능소화의 삶 - 고경하 - 어느 날 앞산 자락 길 따라 사계절 푸른 사철나무 알록달록 단풍나무 타고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능소화야 꽃은 피웠건만 혼자 일어 설 수 없어 사철나무나 단풍나무나 고목에 붙어 살 수밖에 없는 능소화야 너를 바라보는 우리 삶도 우리 스스로 일어 설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의 72년 세월 능소화로 피고 지며 살고 있구나 언제부터 미국이라는 대국 달콤한 사대주의에 빠져 50개주 연방국가 틈새시장 장돌뱅이로 문간 방 더부살이 삶이 되었나? 최근 북한이 함경북도 풍계리 6차 핵실험을 통해 미국과 전쟁도 불사한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자국을 지키겠다는 협박성 폭탄선언으로 북미대결 주변국과 한반도는 전쟁분위기로 내몰렸다 한 민족민중으로 살아왔던 이 땅에 선전포고란 공포분위기에 따라 북한 도발을 대응한다는 이유로 공격용 전투성 사드를 배치하고 미 제국주의 무기를 팔아주며 미국의 마당쇠로 살아가는 능소화야 자기 삶의 주인주체가 아닌 몸종처럼 살아가는 그런 능소화만 그냥 내가 바라보고 살아가기에는 왠지 불쾌하고 불편한 세상살이 “사드를 가지고 미국은 떠나 가거라.” 평화집회하며 목청 터져라 외쳤지만 매판매국 친일친미처럼 버젓이 잘 살아가는 너희는 능소화 한반도평화협정체결을 위한 북 미 중 한 4자 평화합의 실행은 가을 하늘 뜬 구름이 되고 제국에 기생하는 능소화의 삶처럼 우리네 한반도 북남민중의 삶은 어디에 살 든 무엇이 다를 수 있으리오 ****************** 1965년 10월 3일 광주출생 이메일 : rhrudgk79@hanmail.net 주소 : 대구광역시 남구 안지시장1길 6-4(대명동) 직업 : 햇살재가요양센터 시설장 1984년~1988년 (주)기림(봉제공장노동) 1988년~1992년 무등기업(주) (자동차봉제노동) 1998년~2002년 열매어린이선교원 원장 2003년~2016년 덴마크어린이집 교사  
583 동촌 강물을 바라보며 외1편/김희자 file
편집자
1529 2017-10-01
동촌 강물을 바라보며 대구 동촌 강물은 흐르는가? 어디에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어느 날에는 남으로 흐르고 어느 날에는 북으로 흘러간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가는 강물 한 곳으로 물길을 열지 못하는 것은 우리네 남과 북 마음만 같은 것인가?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강물은 거꾸로 흘러가며 몸부림치는데 어디로 흘러가다 휘돌아 오면 잔잔하게 흘러가는 그날을 위해 강물에 삶의 마음만 담는 그리움에 사무치는 유구한 세월 통일을 갈망하던 사람은 오가며 강물 따라 바르게 흘러가라하고 찬바람만 강물을 휘돌아 감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다 대구 동촌 강물은 내일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오늘도 가을햇살로 강물을 거칠게 후려치고 있다 갓 바위 뒷길 갓 바위 뒷길에는 들국화가 피었을까? 아이들을 데리고 산 마실을 간다 남편도 바쁜 시간 틈내서 말없이 같이 와 준다 아이들은 신기한 도시의 저쪽 하늘가 빨간 흙들이 산 속에 묻혀 진달래 개나리 피어난 자리에 작은 벌레 신기 한 듯 잡아들고 그 옆자리에는 보랏빛 맑은 들국화가 주인을 기다리듯 피어 있다 그 곳에 내 이름 석자 있는가? 아들은 철이 없고 딸은 이유 없이 예쁘기만 하다 남편은 그 자리에 피어난 아직은 새하얀 철부지 사랑을 지키느라 진땀을 빼고있다 하늘가 햇살이 정오를 넘어가고 아들은 벌레 잡고 딸은 국화 꽃 한 송이 따들고 기뻐한다 아빠는 가자고 은근히 길을 재촉하고 그저께 산 아이들 새 하얀 운동화에 빨간 진흙이 묻어 있다 하늘가에 떠 있던 하늘도 웃고 있고 나도 따라 길을 떠난다 ***************** 김희자 /1961년생 4월 8일 김천출생 1979년 김천 성의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1982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9년~1992년 제일모직주식회사 사무경리로 근무  
582 전사의 보고 외1편/김대용 imagefile
편집자
1456 2017-10-01
ㅡ추모시ㅡ 전사의 보고 조국분단 18년째 되던 1963년 5월 어느 따스한 봄날 칠흑같은 어둠을 헤치고 잘리워진 조국의 허리를 기여히 잇겠다고 갈구리 같은 두손 불도저 같은 두발로 사선을 넘었다가 결국 철조망에 찣기고만 붉은심장 펄덕이던 젊디 젊은 이준원 전사 날개꺽인 감옥, 황무지땅 남녁에서도 전사는 밭을 일구고 집을짓고 동지들을 묶어 내었습니다. 허리를 다쳐 지팡이에 의지한 노구를 이끌고도 2차 송환 기자 회견에, 미선효순 추모 촛불에, 광우병 촛불에, 탄핵에, 디뚱 디뚱 가장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장기수 선생들 모을려면 이준원선생에게 연락하면 됩니다" "동네 아파트 하수구가 막혔으면 이씨에게 부탁하면됩니다" 처녀 총각 중매도, 홀로 사는 동지들 살림살이도, 한반도 정세분석도, 젊은 일꾼 교육도, 먼저간 동지들 추도사도 이준원선생에게 부탁하면 다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조선인민군 이준원 전사의 땡크같은 두발 두손이 지나가면 "괜찮아 괜찮아" 하며 "허허" 한번 웃으면 다 됩니다. 통일의 그날 전사 이준원 보고합니다. ☆<남한에선 군인을 병사라고 하지만 북한에선 전사라고 부른다고 이준원선생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종놈의 세상 친북을 종북으로 부르고 싶으면 친일도 종일로 불러야 하고 친미도 종미로 불러야 공정하다 왜냐하면 멀정한 국회의원도 “종북보다 종미가 문제다” 라고 했다가 9년이나 징역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친박은 종박으로 친이는 종이로 친노는 종노로 친문은 종문으로 친구는 종구로 이놈의 나라는 종놈의 나라다 **** 김대용 1965년 출생 대구거주 전) 상신브레이크노조위원장 전) 금속노조대구지부장 전) 민주노총대구본부 통일위원장 현) 상신브레이크 현장으로 복직 함  
581 반추점(反芻點)/채선후 imagefile
편집자
1557 2017-08-30
반추점(反芻點) 다가오는 시간은 ‘지금’ 위에 얹어진다. 몇 번이었던가 세는 것조차 귀찮아지면 ‘지금’은 묵은 시간이 된다. 기억이 가물거리기 시작하면 묵은 시간에도 한 번쯤 점(點)을 찍어줘야 한다. 그렇게 찍은 점은 반추점이 된다. 반추점(反芻點)은 ‘다시’를 위한 점이다. 여여(如如)히 오던 길을 되돌아보게 하는 점. 그래서 다시 걸을 때 힘겹지 않게 하는 그런 점 말이다. 점(點) 찍기가 업(業)인 사람에게 깨알만 한 점 하나가 바윗덩이보다 더 큰 고심덩어리일 수 있다. 나는 문장에 점을 찍는 사람이다. 이제껏 수없이 많은 점을 찍었다. 그랬어도 점 찍기는 쉽지 않다. 문장 끄트머리 점은 다음 문장을 만나기 위해 놓인 징검다리와 같다. 징검다리로 점 하나 던져 놓고 다음 문장을 위해 호흡을 가다듬으며 쉰다. 호흡은 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거칠어진다. 어떤 때는 긴 한 숨을 내뱉기도 한다. 가슴 깊이 들어 찬 고심(苦心)을 호흡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반점을 찍고 몇 단어를 이어 쓸 것인지, 온점으로 마무리할지 밤새 고심한다. 고심도 몇날 며칠 계속되다 보면 번민이 된다. 점 하나로 문장이, 문단이, 전체 작품이 번민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 고심 끝에 점을 찍고 다음 문장을 만나게 되면 어찌나 반갑고 고마운지 모른다. 내게 점(點)은 문장에서 그런 것이다. 마침표는 문장의 마침을 알리는 점이다. 점 찍기가 업(業)이 되어버린 나는 마침표를 아끼고 사랑한다. 느낌을 문장으로 뼈대를 세운 후, 못질을 하듯 점을 찍는다. 이때 못질을 잘못하면 집이 무너질 수 있듯이 글에서도 문장 끝에 점을 잘못 찍으면 글 전체 느낌이 흐트러진다. 그래서 마침표를 찍을 때는 문장을 쓸 때보다 더 집중한다. 차분히 한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고 나서 신중히 점을 찍는다. 그런데 요즘 점 하나 찍는데 망설임이 많아지고 있다. 못질이 약해진 것이다. 몸이 늙어져서 일 것이다. 기억력도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가령 약봉지를 들고 있는데도 어디 있는지 찾고 있을 때가 있다. 방금 불렀던 이름도 가물거리고 있다. 이럴 때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이런 내게 단단해지도록 다시 한 번 못질이 필요한 때가 된 거 같다. 이쯤에서 나는 마침표를 반추점이라 하고 싶다. 문장에서는 글을 음미하고 되새기는 점을 못으로 여기고자 하는 뜻에서다. 그래서 내가 정의내린 반추점(反芻點)은 못질과 같다. 다음 문장을 더욱 반갑게 맞이할 수 있도록 잠시 쉬면서 기다리고 있는 점, 문장의 의미가 헛되지 않도록 매무새를 다시 고치면서 찍은 점이 더 단단해지도록 못을 박기 위함이다. 요즘은 반추점을 찍는 곳이 한 곳 더 있다. 밤하늘이다. 별은 내 스스로가 빈틈을 보일 때면 찍는 점이다. 이곳 진도는 유난히 별빛이 초롱초롱하다. 밤이면 하늘을 자주 올려다본다. 까만 하늘에 총총히 떠있는 별들이 반추점이 되어 흩어지려는 기억을 반짝이고 있다. 나는 별빛이 찍어 놓은 반추점 하나를 따서 가슴 속에 다시 묻는다. 나는 별을 보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반추하며 점을 찍었다. 지금 아버지는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내심 고집을 피운다. ‘사는 것이 다 그렇다’며 옅어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세월 탓으로 넘어가기에 아버지가 주신 것이 너무 크다. 아버지는 내게 몸을 낳아 주셨다. 그리고 매서운 회초리 자국을 주셨다. 아버지가 내리치는 회초리는 힘들 때마다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는데 어찌 없다 하겠는가! 그런 아버지 얼굴이 희미해지고 있어 슬프다. 아직도 내 가슴에는 하지 못했던 말이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아버지는 내게서 진작 마침표를 찍게 했다. 죽음은 큰 마침표다. 아버지의 죽음 역시, 이 세상의 빛을 보게 해준 생의 마침표가 되었지만 그 점은 종지부가 아니다.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 빛 하나가 내 눈에만 보이지 않는 것뿐이다. 나는 내 스스로가 쥐고 있는 펜대가 얼마나 누추한지 알고 있다. 그래도 그 펜대를 쥐고, 밤하늘 별빛을 보면서 묵은 기억들을 받아썼다. 아버지의 낡은 사진과 함께 지나 온 시간들을 들추어 보면서 행복했다. 코흘리개 시절 내 모습과 젊었던 아버지 목소리를 받아쓴 문장 끄트머리에 점을 찍을 때면 묵은 때가 벗겨지듯 개운했다. 기억의 반추는 가슴 속에 박힌 못을 빼내는 것과 같이 시원하다. 밤하늘을 서성이는 동안 욕심으로 번민하고, 어리석음으로 찌그러진 문장을 펴게 해 주었고,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움을 씻게 한 반추의 시간이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벌써 봄이 가려하고 있다. 보내는 것에도 익숙한 나이가 되었는데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얼마 전까지 달빛에 눈꽃처럼 피어난 벚꽃을 바라보았었다. 그 아름다움이 눈에서 미처 가시지 않았는데 벌써 아카시아 향이 바닷바람을 타고 코끝으로 날려 오고 있다. 나는 눈을 감고 아카시아 향을 깊게 들이마셔 본다. 이 향기도 때를 놓치면 맡기 힘들 것이다. 무엇이든지 때를 놓쳐서는 제 맛이 나지 않는 법이니까. 봄날이 아까워서 연일 엉망으로 취했는데 / 惜春連日醉昏昏 깨고 보니 옷자락에 술자국이 범벅일세 / 醒後衣裳見酒痕 가녀린 풀꽃 시냇물로 둥둥 떠 흘러가고 / 細草浮花歸別澗 비 머금은 조각구름 외로운 마을 들어오네 / 斷雲含雨入孤村 (신흠, 상촌선생집 제 58권, 남강 作, 춘진(春盡) 중에서) 봄을 아껴 날마다 취했더니, 깨고 보니 옷자락엔 술자락이 남았다고 음미한 옛 선비의 시구처럼 아껴두고 싶은 하얀 아카시아 꽃이 떨어지면 길가는 떨어진 봄으로 범벅이 될 것이다. 아버지 기억이 밤하늘에 범벅인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 당신을 가슴 깊이 사랑합니다. 저는 이 말을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아껴둔 말들이 밤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나는 이즈음에서 살아생전 아버지의 기억만을 헤아리고 싶지 않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삶의 찌꺼기를 걸러내고 싶은 것이다. 이제껏 쓴 글들은 걸러낸 찌꺼기들의 마침표가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내리고 싶은 반추의 의미다. 먹빛으로 범벅이 된 밤. 하얀 별빛이 내 가슴 속에 파고 들어온다. 오늘 찍은 기억의 반추점은 참으로 하얗다. 수필가 채선후 : 충북 음성에서 나서 여주 남한강변에서 자랐다. 동산불교대학원과 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현재 국립목포대학원 국어국문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저서: 『십오 년 막걸리』 『문답 대지도론』 『머뭄이 없는 가르침』 『마음 비행기』 『기억의 틀』 영문판 Mind Glider』 『Waiting For The First Snow』 메일주소 : champ5263@hanmail.net  
580 서해식당 /임수랑 file
편집자
1767 2017-08-30
서해식당 *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폭이 좁은 뒷길을 차지하고 있었다. 장건영, 그가 한 걸음씩 앞으로 옮길 때마다 구질구질한 잡동사니들이 그의 발길에 차였다. 식당 바깥벽으로 잡다한 짐들이 높게 쌓여 있었다. 짐들 틈에서 무엇을 찾는지 지저분한 구석에다 새끼 고양이는 자꾸 코를 박았다. 새끼 고양이의 가느다란 털빛은 때가 탄 고양이의 얼굴을 더 슬퍼 보이게 했다.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새끼 고양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미 잃은 고양이의 얼굴을 보며 아들 동희가 생각나 마음이 절절해졌다. 식당 문 앞에서 잠시 기웃거리던 그는 어깨에 멘 가방을 내리며 비닐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대신 비닐로 감싼 문은 어딘가 어설펐다. 식당의 일부는 거리 쪽으로 확장한 가건물이었다. 식당 안은 굵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천장을 받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백 년은 넘었을까. 거친 나무껍질 위로 숨구멍이라곤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생명이 사라진 굵은 나무 둥치는 원래 은행나무였다는 흔적만 엿볼 수 있었다. 은행나무는 판자대기로 만든 지붕보다 키가 더 높았다. 나무가 지붕을 뚫고 지나간 게 아니라, 지붕이 나무기둥에 맞춰서 제작되었다. 식당 안의 모든 것은 나무를 중심으로 배열되었다. 싸구려 탁자와 의자 일색인데도 불구하고 식당 안은 그런대로 운치가 있었다. 쉰은 넘었을까. 햇볕에 그을린 듯, 피부가 까맣고, 얼굴의 주름이 깊은 여자가 물컵과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그는 소주 한 병과 적당한 안주를 알아서 달라고 했다. 여자는 그의 말에 낙지와 아침에 캐온 조개가 싱싱하다고 말했다. 그는 낙지를 달라고 했다. 여자가 주문을 받고 있는 사이에 또 다른 여자가 주방 쪽에서 포항댁, 포항댁, 하며 숨 가쁘게 여자를 연신 불러댔다. 서른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는 얼굴이 말라서, 실제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들어 보일 듯했다. 그렇다면 기껏해야 서른 중반 정도 될 것이다. 자기보다 한참 나이든 사람을 그렇게 앞뒤의 말을 다 빼고 만만하게 부르는 경우는 그들의 사이가 종속의 관계가 아니라면 보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는 포항댁으로 불리는 늙은 여자가 이 식당의 주인은 아닌 듯싶었다. 포항댁이 다시 와서 소주잔을 앞의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몸에서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났다. 그는 자신이 바다에 온 걸 잊고 있던 사람처럼 흠칫 놀랐다. 그것은 언젠가 아내에게서 맡은 적이 있던 체취였다. 섬뜩했다. 포항댁이 주방으로 돌아가고 건영은 빈소주잔을 서둘러 한 잔 채워 목으로 넘겼다. 가슴이 덜렁거릴 정도로 꺼림칙했던 기분이 약간 사라졌다. 알코올은 몸 안의 혈관을 따라 흐르며 체내 구석구석을 진정시키는 작용을 했을 것이다. 필요악이라고 하던가. 그는 알코올 또한 그런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는 성당에서 성체성사를 드릴 때, 신부님께 받아먹던 빵이 생각났다. 그리스도의 몸인 누룩을 넣지 않은 밀떡과 그리스도의 피인 설탕을 넣지 않은 포도주를 먹으면 주님과 하나가 된다. 그리고 구원을 얻는다. 자신이 소주 한 잔을 입술에 묻혀 괴로움을 잠시 잊는 것도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한 번씩 몸이 고꾸라질 때까지 술을 마시면, 온몸의 혈관뿐만 아니라 심지어 뇌 속까지 알코올이 스며들어 구석구석 정화시켜줄 거라고 그는 믿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고통이라곤 없지 않겠냐고, 남편의 말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아내는 술을 거부했다. 술을 먹는 남편도 거부했다. 하지만 아내는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창밖의 해안을 바라봤다. 목선 하나가 반쯤 바닷물에 잠긴 채 떠 있었다. 무도란 섬이다. 하지만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바다를 건너온 느낌이 들지 않았다. 빼곡한 회색건물들 틈을 새벽에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직행버스를 탔다. 버스가 영종 공항도로를 지나는가 싶더니 어느덧 이 곳, 섬에 왔다. 섬과 육지가 연결되는 긴 다리가 있었다. 중간에 갈아탄 버스로 갈매기 떼가 내려앉아 있는 포구를 지나서 차가 활처럼 굽은 해변을 지나 올 때는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기도 했다. 섬에 가까이 올수록 안개는 더 짙었고, 바람이 간간이 안개의 농도를 흐트러뜨렸다. 안개가 가실 때쯤 섬 끝자락에 도착했다. 발길 닿는 대로 섬 주변을 몇 시간 동안 빙빙 돌아다니다가 들어선 이 곳, 서해식당이라고 했던가. 여기에 들어오기 전에 입구에 내걸린 간판을 봤다. 그는 안주가 오기 전에 소주를 연신 따라 마셨다. 눈을 뱀눈처럼 한껏 찌푸려서 가늘게 뜨고는 햇빛이 안개처럼 넘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는 섬을 그저 마음속에 담고만 있었다. 그는 도시를 오랫동안 떠나지 못했다. 아내는 일 년 사이에 낯선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머리가 무거워 고개를 흔들어보았다. 바다, 바다가 여전히 창밖으로 멀리 부옇게 보였다. 햇빛이 바닷물 위에 스며들어 더 그렇게 보이게 했다. 그는 꿈인 듯싶었다. * 포항댁은 낙지 한 마리를 산 채로 도마 위에 올렸다. 낙지의 몸빛은 은회색이다. 나무도마 위에서 낙지는 몸을 크게 꿈틀거렸다. 칼로 낙지를 다리 끝부터 잘랐다. 빨판이 붙어있는 낙지의 발은 칼로 잘리고 나서 더 많이 꿈틀거렸다. 살려고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듯 했다. 그라지 말아라. 살라 하믄 더 죽는 것이다. 아니다. 네가 요처럼 꼼지락거려야 싱싱한 네 살이 소주와 어울리제. 죽는 게 죽는 게 아니다. 포항댁은 혼자서 중얼거리며 왼손으로 잡고 있던 머리 끝부분도 칼로 몇 번 내리쳐서 잘랐다. 중년의 남자 혼자서 섬에 찾아든 것을 그녀는 기꺼워 할 수가 없었다. 그 남자에게서 풍기는 쓸쓸한 기운이 그녀의 피부에 와 닿았다. 아들이 집을 나간 지 일 년이 넘었다. 지금쯤 아들도 저 남자처럼 어딘가 낯선 곳을 헤매고 다니지나 않을까. 포항댁은 아들 현이 잠깐 방황하다가 꼭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하나 있는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뱃사람이 되어 여기서 썩을까봐, 중학교 때부터 육지로 유학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신림동 고시원에서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갑자기 저 세상으로 떠난 남편의 49제를 지내자마자, 어머니 곁에서 공부하고 싶다면서, 아들이 짐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고시원에서 이 년 동안, 그냥 허송세월한 지난 시간을 이제 마지막 도전을 해서 어머니께 꼭 보상해드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시험도 보기 전에 아들이 집을 나간 것이다. 집을 나간 지, 한 달이 넘어가고, 두 달이 넘어가고, 일 년이 넘어갔다. 그녀는 아들이 실종된 거라고 확신했다. 경찰에 늦게야 실종 신고를 하고, 아들 소식을 혹여 들을까, 서울 친구네로, 시골 고향으로 한 바퀴 돌며 여기저기 있을만한데 찾아보고, 전단지도 뿌리고 왔다. 경찰에서 혹 연락이 올까싶어 휴대전화를 꼭 목에 걸고 다니며 소식을 기다리지만 아직 감감소식이었다. 포항댁은 아들을 진작 찾아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서른이나 먹은, 다 큰 자식이 설마 집을 나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시험 때문일까. 이번에도 떨어질 것 같아, 이 어미에게 면목이 없어 피한 것일까. 미안한 마음에 잠시 집을 피해 자신이 졸업한 대학이 있는 서울에 가서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일자리라도 부탁하러 간 건가. 아니면 제대를 앞두고 헤어졌다던 첫사랑 여자를 다시 만난 것은 아닐까. 집으로 연락하지 못할 일은 무언가. 아들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말없이 집을 나간 이유를 암만해도 찾을 수 없었다. 주인여자가 사기대접에 수제비를 담고 있었다. 일꾼들 준다고 주인여자가 펄펄 끓는 국물에 직접 수제비를 뜯어 넣은 것이다. 주인여자가 그렇게 기다리던 진씨와 달리 같이 온 남자는 행색이 초라했다. 진씨와 동갑이거나, 아니면 한두 살이나 더 먹었을까. 실제론 진씨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진씨에게 남자가 꼬박꼬박 존대를 하는 것을 보니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진씨는 해병대 출신이라지만 예전의 건장했던 군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워낙 하는 일이 햇볕 속에서 하는 일이라 그의 얼굴은 마른 낙엽 같았다. 더군다나 이마와 눈가의 굵은 주름이 그의 피부를 더 거칠게 보이게 했다. 주인여자가 건들거리며 걷는 폼이 무거운 쟁반을 떨어뜨릴 것 같아 포항댁은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수제비를 담아낸 사기대접이 여간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일꾼들 줄 거라고 두 그릇이나 가득 담아냈다. 다른 때 같으면 힘쓰는 일은 포항댁 차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급히 서두르며 나가다가 여자의 슬리퍼가 주방 문지방에 채어 벗겨졌다. 여자는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고 포항댁에게 신발을 달라고 했다. “이그, 뭘 그렇게 급히 갈려고 하누.” 포항댁은 물일 하던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고, 뒤집어엎어진 슬리퍼를 집어 여자의 왼쪽 발 앞에 갖다놓았다. 주인여자를 평소에 식당에 드나드는 남자들이 여간 넘보는 게 아니었다. 활어나 백합, 조개류를 식당에 대 주는 거래처 남자도 가만히 보면 주인여자에게 흑심이 있어 보였다. 주인 여자는 쟁반을 받친 팔을 움직이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슬리퍼에 발을 끼고는 밖으로 나갔다. 하얀 꽃무늬를 수놓은 여자의 검정치마가 바람에 휘날렸다. 그런 여자의 뒷모습이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꽃잎 같이 위태로워 보였다. 포항댁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 김철은 이미 꽁초로 변한 담배를 마지막으로 한 모금 더 태웠다. 꽁초를 끄지 않은 채로 모래밭에 내던졌다. 담배꽁초는 모래 위에 반쯤 박힌 채 간당간당 다시 피어오를 것처럼 한 줄기 연기를 쒜, 하고 태우며 요동을 쳤다. 젖은 모래는 담배꽁초를 금방 잠재웠다. 갈매기 한 마리가 무리에서 벗어나와 하늘 꼭대기에서 하얗게 날고 있었다. ‘해가 긴 것 같아도 금방 사그라질 테지. 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본 적이 있었던가.’ 여기 낙조는 한 폭의 수채화와 다름없을 것 같았다. 그는 목에 두른 때 탄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았다. 조금 있으면 썰물 때가 될 것이다. 주인여자가 새참으로 수제비를 뜬 조개탕을 내왔다. “막걸리는 없소?” 진씨가 지붕 위에서 주인여자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본격적인 피서 철이 한 달여 쯤 남아 있었다. 미리 전기선이니 간판이니, 창문틀이니 지붕 망가진 것을 전체적으로 손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김철은 진씨를 따라다니며 그의 일을 보조하는 막일을 했다. 요즘은 이런 일마저도 구하기가 힘들었다. 오늘따라 서쪽 바다를 보며 일을 하니 고향생각이 절로 났다. 그러면서 다리가 자꾸 풀리는 것이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싶었다. 김철도 술 한 잔이 생각나던 터였다. 주인여자는 진씨를 흘겨보며 일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술타령이냐면서 지청구를 주지만 진씨의 투정질이 그리 싫지 않은 눈치였다. 주인여자는 가운데 가르마를 탄 생머리를 쪽을 치듯이 하나로 묶었다. 입술에 바른 빨간색 립스틱은 반 쯤 지워져 있었다. 여자가 식당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새참이 나왔는데도 진씨는 하던 일을 계속하며,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김철은 담배를 한 대 더 피워 물었다. 일을 시작하면 조금의 틈도 없이 몰아치는 진씨의 호흡을 어떤 땐 따라가기 힘들었다. 멀리 두 여자와 함께 덩치 큰 남자가 해변을 걷고 있었다.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는 애기처럼 마냥 웃고 있고, 조금 뒤쳐져서 걷고 있는, 금박이 박힌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차려입은 한 여자는 영 불만스런 태도로 그들의 뒤를 느릿느릿 따라가고 있었다. 연변의 어머니, 어머니는 지금 하늘에서 무얼 하고 계실까? 그리 원했던 노총각 아들의 결혼을 어머니는 살아서 기어이 보지 못하고 가셨다. 어머니 살아생전에 어서 돈을 벌어 고향에서 집도 사고, 해변의 처자들처럼 젊고 예쁜 각시와 결혼해서 손자 낳고 오순도순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빨리 가실 줄을 몰랐다. 그는 오랫동안 고향에 갈 수 없었다. 산업연수기간이 끝나고, 돈을 더 벌 욕심에 불법체류신분으로 안산 공장에서 이 년을 더 고생했다. 그렇게 고생해서 모은 돈을 같은 방을 쓰던 동료에게 사기 당했다. 귀향 준비를 하고 있던 와중에 동료의 사기행각을 알게 되어, 쌌던 짐을 다시 풀었다. 그 동안 고생한 것이 너무 허무했다. 김철은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고향의 가족을 위해서 이를 꽉 물고 견뎠다. 귀향을 미뤘다. 그 사이 지병이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젠 남은 동생들이 마음에 걸렸다. 울 수도 없었다. 더 버틸 방법밖엔 도리가 없었다. 김철은 종교라곤 가져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입에 올렸다. 내가 내세를 믿는 걸까. 그는 흠칫 놀랐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신을 찾는 걸까. 아니, 인간의 신이었다. 기독교의 하나님도 아니고, 불교의 불타도 아니고, 마호메트의 알라신도 아닌 그냥 인간의 신. 그들은 무조건 어떤 존재를 믿으라고 한다. 그러면 축복과 구원이 돌아올 거라고 하지만 그는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연변엔 무신론자들도 많지만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로 종교 활동이 자유로워져 종교인들이 늘어났다. 그 중에서 기독교의 확장이 눈에 제일 많이 띄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불법체류자 처지가 되면서, 시시각각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지금처럼 무엇인가에 의지하려는 것을 보면 자신도 완전한 무신론자는 아닌 모양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 순간 그의 가슴 속으로 어머니가 새처럼 날개짓을 하며 파고들어 오는 듯했다. 그는 깊은 호흡을 내쉬었다. * 장건영은 빈속에 소주가 벌써 세 병째였다. 위 끝이 싸하니 아려왔다. 어제 오후에 그는 용산에 일터가 있는 아내를 불러냈다. 마지막으로 꼭 할 얘기가 있다고 전화했다. 여보세요. 무엇을 원해요. 난 이제 지쳤어요. 아내는 여전히 그와 만나기를 꺼려했다. 아내는 냄새를 풍겼다. 일 년 이상 떨어져 있어도 그의 골방으로 자주 아내에게서 나는 화냥의 냄새가 풍겨오곤 했다. 그럴 때 그는 보풀이 인 나일론 이불을 쥐어뜯으며 찬 방바닥에 등을 대고 몸부림을 쳤다. 어떤 때 아내의 냄새는 복사꽃향기가 되어 그에게 찾아들었다. 그럴 때 그의 눈가로 눈물이 질금 흘러나왔다. 자기감정에 빠진 사춘기 소년처럼 소리 내어 울어보기도 하였다. 그저께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동희를 두고 외출 중이었다. 아빠의 목소리인 걸 알고, 비록 전화 너머지만 동희가 애타게 아빠를 불렀다. “아빠! 일요일 날 꼭 와요! 엄마 없어요! 여기 없어요!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있어요.” 혀 짧은 소리로 5살 난 아들 녀석은 말했다. 길을 떠날 때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그의 핏줄. 그는 피부 밑으로 뜨거운 혈류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괴로울 줄 알았으면 전화를 하지 말 것을 그랬지. 아들 얼굴은 못 봐도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던 그는 한동안 아들에게 전화를 할 수 없었다. 동희에게 아빠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의 전화는 아들을 감질나게만 만들 뿐 혼란을 오히려 줄 것이었다. 아들은 일 년 동안 키도 많이 자랐을 것이다. 참고 버틴 김에 더 참을 걸 그랬다. 그는 바로 후회했다. “건영씨, 더 이상은 안 되겠어. 각자 갈 길 갑시다.” 달콤했던 신혼 생활이 동희를 낳고 삼 년 육 개월 만에 깨지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하는 일마다 실패를 했다. 그의 가족이 그나마 웅숭크리고 살던 작은 아파트마저 날리게 됐다. 헤어지자는 아내와 일단 별거 형식을 빌기로 했다. 그 또한 서로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아내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고통을 잠시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 사이, 내가 정신 차리고, 재취업을 위해 노력할게. 그 때 다시 합치자.”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합의를 미뤘다. “아빠!” 아내 미선이 동희를 데리고 떠난 날, 그는 그들보다 먼저 뒤돌아서야 했다. “아빠! 못 들었나봐. 엄마, 우리 아빠는 왜 저기로 가지?” 동희가 아내에게 칭얼거리며 묻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아들의 우는 얼굴을 등짝에다 아프게 찍으며 한 발짝씩 옮기는 발이 천근이었다. 그만의 공간 단칸방으로 돌아온 그는 잠을 자려고 했다. 잠은 고통을 잊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잠이 들지 않았다. 이럴 바엔 일어나 알코올 기운이라도 빌어야 할까. 뒤척이던 몸을 한참 만에 일으켜 창문 쪽을 응시했다. 다세대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창밖은 어두운 벽만이 보일 뿐이다. 불 꺼진 방안의 창문은 오히려 푸른빛이 돌았다. 바다 밑 검은 해초처럼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어둠 사이로 비쳐졌다. 그날 그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오래도록 혼자서 헤매게 될 것을 미리 알고 그랬던 것일까. 안정성이 보장되고, 각종 과분한 복지 혜택까지 있는 S공사 같은 직장에 남편이 들어가는 것이 소원이었던 아내였다. 아내가 바라던 신이 내린 직장은 아니지만 어렵게 작은 회사에 취직한 그는 아내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다시 합치자고 할 판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와 만나기를 거부했다. “이혼서류나 어서 깨끗이 마무리하자.” 아내는 재차 이혼을 요구할 뿐이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인가, 그때 다시 합치자는 소리를 잊은 것인가. “그래 현실은 나를 너무 오래 방황하게 했어. 당신도 지쳤겠지. 하지만 이제 괜찮을 거야. 작지만 탄탄한 회사야.” 그는 아내의 태도에 당황했다. 아내가 그리 나오리라곤 예상하지 못한 그는 자책하기 바빴다. 아내말대로 현실감각이 없는 걸까. 그는 충주 본가에 그들의 별거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명절 때도 혼자 가기 멋쩍어 핑계를 대어 가지 않았다. 이혼이라니. 남자가 되어가지고 가정 하나 제대로 꾸리지 못한 압박감이 언제부턴가 그를 지배했다. 그때 생각이 나니, 그의 손은 술잔 안의 술이 출렁거릴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포항댁이 다시 왔다. 삐져나온 굵은 반백의 머리카락이 그녀를 고집스럽게 보이게 했다. 포항댁은 젖은 손으로 산낙지 접시를 내려놓았다. 초고추장과 꽃소금을 넣은 기름장도 산낙지 접시 옆에 두었다. 어느새 상 위는 하얀 플라스틱 접시들로 가득 찼다. 오이, 당근 썬 것, 풀 죽은 상추, 삶은 메추리알과 소금, 볶은 미역줄기 따위가 하얀 접시 바닥에 딱 붙어있었다. 포항댁이 빈 쟁반을 들고 허리를 펴며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단 몇 초간이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깊고, 투명했다. 나이 든 여자의 눈 치고는 맑았다. 꼭 바다색 같았다. 살면서 죄라곤 짓지 않고 살았음직한 눈이다. 순간 그는 포항댁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딴 데로 돌렸다. * 낙지 접시를 남자에게 갖다 주고, 포항댁은 상추를 마저 씻기 위해 개수대 앞에 섰다. 소쿠리에 상추를 건져놓고, 오이와 당근, 풋고추, 마늘을 모두 물속에 넣은 채 설렁설렁 흔들어 씻어 건졌다. 바다에서 끌어온 물을 받아 해물과 조개의 물도 갈아 주었다. 깨진 조개껍질에 손가락이 긁혔다. 포항댁은 남편이 갑자기 이 세상을 등졌을 때, 홀로 된 어머니 곁으로 와 준 아들이 고마웠다. 그런 아들이 실종된 것이다. 그녀는 모두 자신이 저지른 죄의 업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포항댁은 자신에게 닥친 것을 이제는 순리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포항댁은 행주에다 손을 문질렀다. 행주에 묻은 소금기 때문에 상처가 따가웠다. 허연 행주에 핏자국이 벌겋게 번졌다. 그녀는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물일을 했다. 그래서 손이 멀쩡할 날이 없었다. 포항댁은 고무장갑을 끼고 일을 하면 답답증이 났다. 한겨울에도 맨손으로 일했다. 석화나 조개를 캐서 살면서 바닷바람에 시달려 포항댁은 얼굴의 피부도 푸석하게 변했다. 포구였던 이 근처 곳곳이 해수욕장으로 개발이 되면서, 모여드는 사람들을 따라 횟집이나 식당이 많이 생겼다. 예전보다 굴을 쪼는 사람들도 드물고, 굴도 적게 나왔다. 다행히 식당에 일할 거리가 새로 생겼다. 허 순경이 오늘쯤 주인여자를 보러 오지 않을까. 포항댁은 오늘은 꼭 허 순경이 아들 소식을 들고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주방의 열린 창문으로 내밀었다. 고개를 들어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언제보아도 자신을 닮은 갯바위가 오늘따라 가까이 보였다. 한번 깊이 심호흡하고 코를 킁킁거리자 비릿한 갯냄새가 맡아졌다. 한겨울에도 갯벌 곳곳에서는 쉴 새 없이 뒤척이며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내뿜는 체취다. 아들은 비린내 나는 이곳의 체취를 싫어했다. 어느 날 보니까 아들은 채식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채식주의자가 생선까지 먹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어릴 때 아들은 고기를 잘 먹었다. 대학 다닐 때 아들은 어떤 종교 서클에 가입해서 활동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의 채식습관은 그때부터 생긴 거였다. 주인여자가 들어오더니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일꾼들이 술 한 잔 달라네요. 그런데 같이 온 남자 있죠? 아무래도 이상해요. 포항댁은 못 느꼈어요. 한국사람 같지 않아요. 말투가 연변에서 온 조선족이 분명해요.” 주인여자는 쟁반에다 잔을 두 개 얹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뒤돌아 나가는 주인여자의 뒷모습은 마치 바다 위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는 부표처럼 몸이 중심을 잃고 허공에 떠있는 듯했다. * 김철은 주인여자가 막걸리를 대신해서 가져온 소주 한 병을 진씨와 나눠 마셨다. 가슴 속이 뜨끈해 오는 게 힘이 빠졌던 다리근육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아까 오다가 보지 않았나? 요 옆 영무도에 새로 생긴 해수피아 말이야. 지금 사람들이 꽤 오는 모양이야. 아는 후배가 그거를 맡아 했지. 그 때 나에게 연락이 한 번 왔었다구. 내가 다른 일 맡은 게 있어서 못해줬지만.” 김철이 안주 삼아 수제비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울 동안, 진씨는 얘기하며 먹느라고 아직 반도 못했다. 그릇에서 숟가락만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진씨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무도는 아직 옛 섬마을 정취가 살아 있어. 하지만 이곳도 머지않을 거야. 지금은 개발예정지역으로 묶였지만 개발이 시작되면 무도도 다른 데처럼 변할 거라고. 옛날 같이 소박한 정취를 기대할 순 없겠지. 제일 먼저 호텔, 레스토랑 같은 상업지구가 생길 거야. 거기다 콘도, 놀이공원 등 대형리조트시설까지 들어설 수도 있고. 우리가 할 일이 많이 있을지도 몰라. 이 쪽 사람들을 내가 좀 알거든. 근데 서둘러야겠어. 오늘 군대 간 막내가 첫 휴가를 나온다고 해서... 바쁘게 생겼어.” 오늘 여기 일을 끝내고 내일은 용인 아파트 현장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김철은 진씨를 따라다니는 일이 그 전에 안산 공장에서 일할 때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원래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그가 가죽냄새랑 섬유와 약품냄새로 가득 찬 공장에 틀어박혀 일하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김철이 진씨를 처음 만나게 된 곳도 아파트 공사현장이었다. 강북의 재개발 아파트였는데 김철은 한참 마무리 공사가 진행될 때 투입되었다. 돈을 떼어먹고 도망간 친구를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찾아 헤매다가, 병을 얻어서 열흘 동안 안산의 단칸방에서 몸을 꼼짝 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병사(病死) 소식을 듣고서야 그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노모의 죽음 앞에서 일어나야 되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동생들이 있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죽음 앞에는 생이 있다는 것을. 끝에 다다르면 다시 출발선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김철은 몸을 겨우 추스르고 무작정 옆방 사람을 따라다니며 재개발 현장에서 막일을 했다. 일을 하러 간 첫 날, 저녁때가 되어 잔업을 한 두 시간 남겨 두고 라면집으로 새참을 먹으러 갔다. 김철은 진씨를 라면집에서 처음 대면했다. 라면을 한 그릇 씩 주문하더니 진씨가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내 스테인리스 물컵에다 한 잔 씩 따랐다. “자 한 잔 씩 마시자구. 이렇게 알코올이 한 잔 들어가야 일을 하지.” 라면집엔 소주를 팔지 않았다.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요기도 하면서 술을 한 잔 해야 힘이 나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주인 몰래 가져 온 술을 그들은 함께 나눠 마셨다. “형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슈?” “오십은 아직 넘지 않았어요. 뭘 다 알려고 그래요?” 김철은 처음 본 사람에게 나이를 밟히는 것이 꺼려져서 대충 얼버무렸다. 진씨는 처음 본 김철의 그간 행적을 궁금해 했다. 이 나라를, 진씨를 같은 민족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단지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하면서 그의 정체성을 확인 하고 싶어 했다. 김철은 대답하지 않고 딴청을 부렸다. 그것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국에 와 보니, 조선족들은 독하다느니, 다 믿으면 안 된다느니, 조선족들은 한국 사람들을 같은 민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느니, 하면서 조선족에게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여기에 있으면서 그런 오해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경우를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었다. 두 달 전인가는 어떤 사람과 말다툼을 시작해서 육박전으로 갈 뻔했던 경험도 있었다. 그런 관계로 그는 단순히 호기심 차원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는 평소에 말조심을 했다. “선배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슈?” 집요하게 캐묻는 것이 불만스러운지 옆방 남자가 진씨의 말을 막으며 반말 비슷하게 물어보았다. “나? ……환갑은 넘었수.” 진씨는 옆방 남자를 흘낏 쳐다보며 말했다. 옆방 남자는 무슨 언감생심이냐며, 환갑이 넘었다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진씨는 옆방 남자의 말을 아예 무시하고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김철은 처음에 껄끄러웠던 진씨가 왠지 남 같지 않았다. 나이도 고향 삼촌뻘쯤 되었다. 김철의 그간 사정을 알게 된 진씨는 그에게 자기만 쫓아다니라고 했다. 일거리가 있으면 그를 잘 챙겨주었다. 지난겨울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요즘은 예전처럼 일이 계속 이어지질 않았고, 비 오는 날이나 너무 더운 날, 혹은 아주 추운 날은 일거리가 없었다. 평소에도 진씨가 술병이 나는 바람에 있는 일거리를 놓쳐, 공치는 날도 많았다. 한 때 진씨는 알콜중독으로 입원까지 한 적이 있었다는데 아직 술을 못 끊고 있었다. 김철은 진씨가 오늘처럼 아들 얘기 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가족 얘기는 원래 하질 않았기 때문이다. 진씨가 빈 그릇을 얹은 쟁반을 김철에게 건네주었다. 굳이 주방에 직접 갖다 주라는 것이다. 서둘러 일을 마쳐야겠다며 그를 재촉했다. 김철은 휘청거리며 쟁반을 받쳐 들었다. 주방문으로 막 들어가려는데 앞쪽으로 정복을 입은 남자 한 명이 식당 안으로 먼저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 자세히 보니 경찰이 분명했다. 김철은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왠지 모를 두려움으로 쟁반을 든 채 식당 밖에서 주춤거렸다. 거처에서도 그런 심정을 느낄 때가 있었다. 집에 아무도 올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초인종이 느닷없이 아무 때나 울릴 때가 있었다. 그 때 느꼈던 것과 똑같은 감정이 찾아왔다. 초인종 소리가 울리면 집 안의 벽시계가 갑자기 멈춰서는 듯했다. 긴장된 눈은 시계를 쳐다볼 수도 없었고, 근육 사이의 혈관이 빠른 속도로 수축되는 느낌을 받았다. 석연치 않은 진동이 한 바퀴 머릿속을 지나가고 나서야 진정이 되면서 자신이 두려워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실체를 깨닫게 되었다. 불법체류자인 그는 안팎에서 모두 죄인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 안녕하십니까. 식당 안으로 누군가 씩씩하게 들어와 주방을 향해서 인사를 했다. 경찰복을 입은 남자였다. 경찰복장을 했다면 경찰이 맞을 것이다. 아직 양볼에 젖살이 있어 보일 정도로 풋풋한 느낌을 주는 젊은 사내였다. 젊은 사내는 식당 안을 빠르게 한 번 휘 둘러 보는 것이었다. 건영은 경찰을 얼른 외면하고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아직 손도 되지 않은 산낙지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산낙지는 이제 꿈틀거리지 않았다. 꿈틀거리다가 죽은 낙지 살들을 보니, 자신의 손을 쥐어뜯다가 축 늘어진 아내의 손이 떠올랐다. 그의 분노가 순간 살기충전 했던 건, 아내의 손가락에 끼어진 낯선 반지 때문이었다. 커플링처럼 다이아몬드가 가운데 납작하게 박힌 백금반지였다. 아내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을 때, 반지하방의 창문으로 스며든 한낮의 햇빛이 다이아몬드에 반사되어 그의 눈을 잘 뜨지 못하게 했다. 그 눈부심이 무엇보다 강렬하게 지금 그의 머리를 차지했다. “우리 사이에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다고.” 법원으로 바로 가자는 아내를 끌고 그의 골방으로 데리고 왔다. 당신이 정 원한다면, 마지막인데…… 그래 어디 한 번 가보자, 하면서 아내는 그의 뒤를 따라왔다. “그래, 어서 얘기 해 봐.” 그는 아내의 재촉에도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난, 일 년 전에 다 끝난 걸로 알고 있는데. 남자가 치사하게 이럴 거야?” “남자? 당신! 그렇게 이혼에 목숨을 거는 거 보면 어디 좋은 남자가 벌써 생겼나 보지?” 그가 한 마디 내뱉은, 격앙된 말에 아내는 억울하다는 듯이 대들었다. 그는 물론 진심으로 한 소리가 아니었다. 기껏 아내와 화해를 할 요량으로 이런 시간을 만들어놓고, 자기도 모르게 아내의 가슴을 할퀴는 소리를 한 것 같아 순간 그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신! 맨 정신에 그게 할 말이야? 그래, 기껏 하는 말이 그거지? 우리는 이미 일 년 전에 끝난 관계야. 왜 이해를 못해? 우리가 그때 왜 헤어졌는지 잊었어?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이 답답해. 당신의 몸이, 당신의 정신이…… 왜 끝난 걸 인정하지 못해? 정말 질렸어. 그래 맘대로 해, 원하는 게 이거야? 자, 해 봐.” 하지만 아내는 그 소리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민감하게 반응을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옷을 훌렁, 훌렁 벗기 시작했다. 그에게 어떻게 맘대로, 원하는 대로 해보라고 자기의 몸을 들이대고 덤비는 것이었다. 그가 원한 건 진짜 이게 아니었다. 그는 예전처럼 아내와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아내는 급했다. 서류정리가 왜 그렇게 급한 것일까. 왜 저리 몸서리를 치도록 원하는 걸까. 거기다 아내는 술을 먹기엔 이른 시간인데도 어디서 이미 술을 먹고 왔다. 얼굴은 멀쩡했지만 말할 때 혀가 약간 돌아가는 걸 보니 취한 상태였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골방으로 풍겨오던 아내의 냄새가 바로 눈앞에서 술 냄새와 함께 그의 코를 간지럽게 했다. 아내는 갑자기 아랫도리만 놔두고 다 벗었다. 아내의 가슴은 허옇게 다 드러났다. 아랫배에 살집이 좀 생겼고 젖무덤은 부풀어 오른 듯 팽팽했다. 그는 팽창되는 몸을 느꼈다. 아내를 진정시키기 위해 바닥에 흐트러진 옷을 입으라고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앉은 자세로 다가오더니 그의 옷자락을 잡고 흔들었다. 이혼을 해달라고 애원을 하는 것이다. 그는 아내가, 그의 어깨를, 그의 팔을, 흔드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내는 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바닥에 똑바로 누웠다. 힘이 빠진 모양이었다. 아내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기도라도 하는 듯 했다. 갑자기 측은한 감정 같은 것이 슬쩍 그의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그는 잠시 뒤, 아내 옆에 따라 누웠다. 그가 옆에 눕는데도 아내는 그냥 꼿꼿하게 누운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나를 원하는 걸까. 아내도 내가 가끔은 그리웠던 것일까. 그는 처음 만났을 때, 둘의 찬란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두 몸뚱어리에서 뿜어진 방안 가득 더운 공기가 그의 몸을 점점 달아오르게 했다. 인내의 시간이 얼마간 지나간 후, 그는 아내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그녀의 몸 위에서 움직이는 대로 아내는 내버려 두었다. 그는 팽창된 몸이 가라앉기 전에 서둘러 아내의 몸에 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곧 주저앉았다. 아내는 갑자기 우는 듯 웃기 시작했다. 이거였다. 아내는 그에게 모멸감을 주려했다. 가끔씩 찾아오곤 했던 임포텐스로 인해 비뇨기과도 다녀보고, 신경성이라고 진단한 의사의 권고로 정신과 상담도 두어 번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생각에 이르자 그의 몸은 부르르 떨렸다. 그는 웃는 아내의 얼굴을 자기도 모르게 한 대 때렸다. 아내가 발악을 했다. 그는 아내가 지르는 소리에 당황하여 아내의 얼굴을 한 대 더 때렸다. 그러나 아내는 더욱 더 발악을 했다. 그가 보고 싶어 했던 아내의 모습이 아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여자였다. 바로 악녀의 모습이었다. 그는 여자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내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내의 몸은 여전히 복숭아 빛 살결이었다. 그 사이에 핏빛이 뿜어 나왔다. 아내의 붉은 입술선이 잠시 움직였다. 흐트러진 머리칼이 함께 흔들렸다. 그러나 곧 잠잠해졌다. 그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세 병째인 소주병도 벌써 바닥이 다 드러났다. 칼로 썬 지 한참 된 산낙지에서 물이 생겨 접시 안이 질척거렸다. 야채도 그새 풀이 죽어 있었다. 경찰은 아직 주인여자와 얘기가 끝나지 않았다. 술 때문인지, 흐른 시간 때문인지 긴장이 풀린 그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을 나와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화장실 문 앞에 아까 본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두 마리 중의 한 마리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다가서는데도 고양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느린 걸음으로 한 발짝씩 옮겨놓으니 어떻게 하나 지켜보려는 모양 같았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자세를 숙여 고양이를 마주 바라보았다. 고양이는 흐린 구슬 같은 눈동자를 뜨고 있었다. 그의 방에서 새어나온 시취가 앞집까지 진동해, 후각이 예민한 반지하방 사람 중의 누군가는 몸살로 곧 앓아누울지도 모른다. 임수랑/2006년《월간문학》에서 단편소설 「 꽃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에는 단편소설「끝나지 않는, 녹슨」으로 5.18문학상을 수상했고, 교보 <퍼플>에서 장편소설《지하철 아이》, 소설집 《끝나지 않는, 녹슨》과 《재》, 《로라의 게시판》, 《배달구역》을 비롯하여, 장편 <흰꼬리 깃발1> <엄마의 달>, 제 1시집 <늪의 방식>과 함께 십여 권의 시집을 전자책으로 냈다.  
579 바다는 오지 않는다 외 1편/박승민 file
편집자
1329 2017-08-30
바다는 오지 않는다 땅의 환부가 심부에서부터 끓어오른다. 뭉개진 콜타르가 갱엿처럼 바퀴를 움켜쥐고 1시간째 요지부동이다. 먼 동쪽바다, 머나 먼 해양풍(海洋風). 휴가철 문막휴게소 부근은 열의 노천탕, 열의 발전소. 지체와 정체를 반복하는 배기통들이 땀을 삘, 삘 흘리면서 일제히 뒷사람의 면상을 향해 부릉, 부르릉 떤다. 방울토마토처럼 매달려 벌겋게 달구어지는 얼굴들. 떼를 지어 늘어선 망초 사이에서 석유원단 타는 냄새가 났다. 가드레일을 친 열섬까지 쪽빛 동해는 들어오지 않고 자신이 보낸 열을 고스란히 뱃살로 되돌려 받으며 주행선에 퍼질러 앉은 일가족. 냉방병에 지친 엄마를 손가락으로 감으며 아이들이 물오징어처럼 검은 콧물을 훌쩍거린다.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뽀얀 수은구름이 불 끄러 온 소방헬기처럼 간간히 고속도로 상공을 배회하다 별일 아니라는 듯 사라진다. 10달러 스타벅스 커피 한 잔과 던힐 담배 한 값 양곤 외곽, 연립주택공사현장에서 바짝 말린 메기 등 같은 잡부가 흙바닥을 곡괭이로 내리치고 있다. 쇠가 돌에 부딪칠 때마다 손마디에서 불꽃이 튀고 수은주(水銀柱)는 40도를 치솟는다. 오후 들어 옴폭 들어간 눈이 쥐눈이콩보다 더 까매지면서 곡괭이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그림자가 담벼락에 무성영화처럼 끝없이 반복된다. 마침내 타오르던 불덩어리가 양곤강 밑으로 푸쉬쉬 대가리 처박자, 덜덜 떨리는 손에 종이 한 장 쥐어진다. 박승민/ 경북 영주출생.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 활동. 시집으로 『지붕의 등뼈』 『슬픔을 말리다』가 있음. 제2회 <박영근작품상> 제19회 <가톨릭문학상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