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4호...
   2019년 12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 오늘방문자 : 
    547
  • 어제방문자 : 
    486
  • 전체방문자 : 
    460,833

지난호 보기

분류에서 보고싶은 호를 선택한후 GO 를 누르세요.

번호 닉네임 조회 등록일
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82769 2014-11-03
606 한겨울에 산에 오르다 외1편/정선호 file
편집자
1507 2017-12-01
한겨울에 산에 오르다 국내 휴가를 받아 고국에 가서 산에 올랐네 한겨울에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산은 막아 시내에 들어가지 않게 했네 모든 생물은 지상과 지하에서 동면을 했네 사계절 구분이 없는 적도 지방에는 겨울 또한 없네 거의 모든 산에는 밀림이 있으며 사나운 짐승이 많아 아무도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네 12월에도 온 산과 들녘은 파란 물결로 넘실댔으며 내 피도 온통 녹색으로 바뀌었네 산에 이국에서 만들어진 내 푸른 피를 흩뿌리자 몇 개의 개나리와 진달래 줄기에 꽃 피었네 산을 내려오다 산사로 향했네 내 푸른 혈관을 따라 가야만 그곳에 도착할 수 있네 석가모니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수도를 끝낼 즈음엔 몸속의 피가 푸른색으로 바뀌었다는 일화가 있었네 산사는 여러 채의 신축 건물이 이미 들어섰으며 다시 얼마나 더 건물이 지어질지 모를 일이었네 목어를 때리는 바람은 등뼈가 시려 울어댔으며 부처에게 절하는 신도들의 기도는 하늘로 올랐네 내 혈관에선 푸른색 피가 붉은색으로 바뀌어갔고 수빅시 해변을 달리다. 휴일 저녁에 수빅시 해변을 달렸네 해변을 달린다는 것은 바다 위를 달린다는 것, 일년내내 열리는 야자수 나무를 따라 노을을 바라보며 식사하는 사람들 지나고 호텔 수영장에서의 사람들 지나 달렸네 해변을 달린다는 것은 우주를 항해하는 것, 무수한 별들을 지나고 우주의 길을 달린 후 지구에 돌아 온 내 나이는 지금과 같았네 아내는 이미 고향의 별로 돌아갔으며 아이들은 노인 되어 바닷가를 걸었네 다시 달리던 내가 백발인 아들을 지나쳤으나 쳐다보지 않고 자식들과 야외식당으로 들어갔네 머리를 검게 염색했지만 주름이 많은 딸은 달리는 나를 한참 바라보다 눈물을 훔치고는 자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며 걸었네 해변을 달린다는 것은 철저하게 고독하다는 것, 이국에서 혼자이며 우주에서는 미아가 된 내가 습관적으로 매주 해변을 달렸네 바다 위 달리며 섬들을 곳곳에 만들었고 사라지질 않을 땀을 길 위에 뿌려놓았다  
605 반문하는 존재 외1편/허남기 file
편집자
1794 2017-12-01
반문하는 존재 늘 구석진 곳에서 습관적으로 구겨진 존재 길들여진 버릇을 버리고 억겁의 두께를 벗기자 시답잖은 이력의 서술로 불쑥 솟아오른 나의 존재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면 허기진 존재를 볼 수 있을까 늘 한 방향으로 보이는 두 모습의 허상으로는 존재감을 읽을 수 없어 두문불출한 옥탑방엔 팬트하우스로 살아온 저문날의 기억들이 비상을 준비하고 있겠지 좀 보채지 않았으면 좋겠어 곧 배를 띄울거야 이미 깍지 낀 소원의 기도를 올렸어 저 넓은 세상으로 청출해야지 물음의 격식을 잠재울 틈새가 없는 것으로 말이야 고독은 지금 내 영혼의 맑음을 초대한 응어리진 고독 속으로 깊숙이 얼굴을 묻는다 외로움이 엄습한 불면의 구석진 방 깊은 상흔의 나이테엔 그루터기 옹이 하나 웅크린 채 잠을 청한다 금새 토라져 돌아앉은 외로운 아집들이 줄지어 심지에 불을 당기면 고독의 경로를 탐색하던 침묵의 물꼬들이 꽁꽁 언 가슴을 녹인다 삭풍 한 모금 깊숙이 들이킨 숨비의 파열음이 찌든 구석을 씻어 내리고 하얀 새벽을 가로질러 지금 고독은 해독 중이다 허남기;경북 영천 출생/ 2014<문장21>등단/ <문학광장>신인상 한국문협 경북지회 회원/영천문협회원/시에문학회 회원 시객의 뜰 문학회 회원/94'월간사진 추대작가 --------------------------------------------------- 이메일 hurdang62@daum.net  
604 종이꽃 외1편/김수화 file
편집자
1855 2017-12-01
종이꽃 김수화 칡덩굴처럼 얽히고설킨 허공을 떠도는 마음 모아 어머니, 나무로 지은 작은 집에 87년의 삶, 몸의 기억을 모아 종이꽃을 심어드렸다. 꽃이 진들 이제는 씨앗 받을 수 없는 절연의 꽃으로 봄, 구부러지다 김수화 유모차에 끌려가는 노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문득, 달빛에 떠오른 기억을 더듬어 불러본다. 살얼음 밑 물결 따라 피어나는 풍경 그 그림자 닮은 환한 달빛 아래 피우지 못한 꽃봉오리 어둠을 틈타 향기를 품는다. 골목을 누빈 걸음의 깊이보다 얕디얕은 지폐의 무게 휘어진 골목길 집으로 향한 발걸음이 귀우뚱, 구부러진다. 자유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북여성문학회 회장, 김천문인협회 사무국장, 김천예술총연합회 감사, 논술 토론 교사. 제3회 경북여성문학상 수상, 시집 ‘햇살에 갇히다’ sohie4280@hanmail.net  
603 한 票의 생각 / 李 洋 燮 file
편집자
1472 2017-11-01
한 票의 생각 연일 계속된 황사를 씻어주려는 듯 단비가 내리는 5월 9일 오후, 청담동 제 3 투표소로 간다. 강대국의 외압이 황사처럼 밀려오고, 열망에 찬 국민들의 바람이 양 갈래로 몰아치고, 종내 대통령이 탄핵되고 보궐선거를 하는 이 봄도 지나가고 있다. 이 안타까운 시국을 도움닫기 발판으로 삼아 애국의 마음들 모아 기어이 되살려야 할 우리나라, 주권자의 한 표를 행사하러 가며 상념에 잠긴다. 200년 전에 태어나 30세에 「시민의 불복종」을 실천하고 저술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가 생각났고, '지고의 정치는 왕이 누구인지 모르는 정치'를 말한 노자(老子)의 말도 생각났다. 아, 생각을 하자니 한 편의 시가 아련히 떠올랐다. 북한산 시인 임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발표한 시 ‘우리들의 대통령’을 읽은 기억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골목길을 오르내리는…, 정의로운 사람들에게는 양처럼 부드럽고 불의의 정상배들에겐 범처럼 무서운…, 야당의 무리들마저 당수보다 당신을 더 흠모하고, 모든 종파의 신앙인들도 그들의 교주보다 당신을 더 받드는…, 다스리지 않음으로 다스리는/ 자연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그리고 아, 동강난 이 땅의 비원을 사랑으로 성취할/ 그러한 우리들의 대통령/ 당신은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가? 작금의 현실에서 정치란 무엇이고 국가와 국민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일제강점기의 두 배가 넘어가는 70년 세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면서, 그 남쪽에서마저 국론이, 지역이, 세대가, 노사가 분열되고 다투는 이 나라 대한민국! 민족상잔의 비극 후 짧은 기간에 기적처럼 이룬 경제발전과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갈등과 반목과 대립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중도(中道) 혹은 중용(中庸)이 사라져버린, 아니 드러나지 않는, 아니 스스로 중도라 표현한들 우(右)에서 보면 ‘좌’라 하고 좌(左)에서 보면 ‘우’라고 하는 판국이니 중도의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다. 좌우는 극명하게 자기만 옳다하며 상대를 물어뜯고 자기편이 아니면 배신자나 매국노로 몰아세운다. 맑고 선했던 국민들은 허구한 날 매스컴을 통해 그 모습을 보아오면서 자기도 모르게 점점 거기에 적셔지고, 괜히 날이 서고, 분개하면서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여하튼 그 속 어디에 있어야할 듯하니 자신을 어느 편에 세우지 않을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선한 백성들의 마음마저 멍들게 한 원류는 말할 것도 없이 하나같이 애국자연하는 정치모리배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아니겠는가! 국민들의 똑똑함이나 성실성은 어느 민족 보다 우월하고, 여러 분야에서 세계 제일을 차지하는 자랑스러운 나라이고 민족인데, 왜 국내에서 체감하는 대다수 국민의 행복감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고 불평불만이 산적해 갈까? 이는 정치(제도) 또는 위정자의 덕은 보지 못하고 외려 해악을 입고 있는 까닭은 아닐까..? 헌신하고 봉사하는 공복(公僕)이 아니라 군림하고 챙기려는 야욕에 찬 정치인들의 아전인수(我田引水), 이합집산(離合集散)의 행태와, 국가 백년대계나 국민 안위와 복리 보다 자신의 출세욕과 이권에 급급한 파렴치한들 때문이고, 그들에게 겹겹이 실망하는 백성들의 원성과 분노가 팽배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 사회, 문화, 생활수준은 나날이 향상되고 있는데, 정치만이 선진화되어가는 국민들보다 뒤처지는 꼴이니 누가 누구를 어찌 믿겠는가? 객관의 가치와 공익의 기준을 세울 수 없는 이 상황에서 과연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만이 옳을까? 그 믿음은 변하지 않을 것인가? 또 어떤 변수가 일어날까…? 선거벽보에 이름 올린 15명의 후보들은 참 대단한 열정과 소명의식을 가진 애국자들이다. 이들은 어느 편의 세를 불려 등에 업고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비익조(比翼鳥)는 결코 한쪽 날개로 날 수 없듯이 이 나라도 좌우의 날개가 마땅히 있어야 하고, 그 몸통은 대다수가 소통을 통해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화합의 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들의 유세와 구호를 보면 당장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한 말의 성찬과 편 가르고 헐뜯기에 급급한 모양이다. 하여도 우리는 이들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어느 면은 적극 동조하지만 어느 면은 마뜩찮은 후보들, 이들의 장점만 뽑아 섞은 완전한 사람을 ‘우리들의 대통령’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으니, 이제 이들 중에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처럼 최고 권력의 파행을 목격한 뼈아픈 경험은 이 선거에 한층 더 신중을 기하게 한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정당이나 이념이나, 필요에 의해 줄을 섰던 편을 넘어서서 보다 객관적인 생각을 갖고 선거에 임했으면 좋겠다. 설령 미워했을지라도 최다 득표를 한 사람이 가장 적임자임을 다 같이 인정하고 환영하면 좋겠다. 또한 다수의 선택을 받았다 해도 대통령은 결코 전지전능한 사람이 아니며, 단박 세상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질서를 지켜야 하고, 다수의 선택과 그에 따른 행보에 긍정과 믿음의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새 지도자로 인한 변화와 함께 새로운 희망이 움트는 이 시기는 아직은 우리가 다 같이 조금 더 고통을 분담하여 참고 이겨나가야 할 때이다. 바람직한 변화를 기대하며 말을 하다 보니 대다수 국민들은 이미 그런 정도의 소양과 기다림이 될 것 같은데, 다시 또 문제가 되고 염려가 되는 부류는 아무래도 정치인들이다. 그들에게만 이런 소시민의 소박한 바람마저 마이동풍(馬耳東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참 답답하고 안타깝다. 본디 그리 나쁜 사람들은 아닐 텐데 왜 그 판에만 들어가면 사람들이 그렇게 달라질까? 그들을 따로 교육하는 장치나 기구를 만들 수는 없을까…. 아울러 당선자에게 한 표(票)의 생각으로 바람이 있다면, 가장 먼저 국민들에게 간절한 당부의 말로 국정을 열면 좋겠다. 이제 제발 서로의 입장차이, 생각차이를 접고, 조금씩 양보하고, 이견을 무릅쓰고, 우리 배달민족, 한민족이 하나로 어우러지자고! 난제가 산적한 지금 그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백성 앞에 큰절하며 읍소라도 하면 좋겠다. 대번에 그리 되지는 않을지라도, 제일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이 정치인들일지라도 대통령은 부단히 진심으로 너와 내가 하나 되는 민족의 대통합을 위해 제도와 장치를 강구하며 앞장서서 노력하길 바란다. 부디 논공행상으로 직책을 나눠주지 말고 적재적소에 맞는 사람을 여야 가리지 말고 중용하여 국민 대다수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인사를 하면 참 좋겠다. 바쁜 일정에서도 잠시 짬을 내어 우리 아이들의 학교에 가서 환하게 웃으며 꿈과 희망을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아이들이 다양한 꿈을 꾸고 실현할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해주면 좋겠다. 우체부 아저씨나 대통령이나 자기 직분을 다하는 같은 공무원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뭐라고 할까…, 그리하여 오래 묵은 배타적 국민정서와 토양이 서서히 본래의 맑고 선한 모습으로 바뀌어준다면 우리 국민의 능력과 성취는 이 난관을 뚫고 한층 배가될 것이 분명하다. * * * 투표하는 소회와 바람을 휴대폰으로 간단히 적어두려다 바람이 엉긴 말들이 늘어져 채 완성을 못하고, 투표 후의 저녁 약속과 다음날의 일정에 쫓겨 글 완성이 늦어져버렸다. 그저 혼자 구시렁거리듯 끼적인 바람일 뿐이었지만, 그 사이 문재인 후보는 41.1% 득표율로 2위 홍준표 24%와 17.1%의 큰 득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미 임기가 시작되었다. 삽시간에 들끓던 정국이 가라앉았고 그는 전임자들과 사뭇 다른 행보를 시작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그의 당선과 취임을 축하하며, 대다수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고, 우리나라와 국민을 위한 최선의 정치가 펼쳐지고 이어져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많은 문제들을 슬기롭게 타개하고, 국론의 바른 방향을 선도하고, 국민 모두를 아우르며 지역과 세대와 노사가 소통하고 화합하여 어깨춤을 출 수 있도록 이끌어주면 참 좋겠다. 이태 전 어느 봄날, 북한산 등산로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일국의 야당 총수가 수행원도 없이 홀로 산행을 한다는 자체가 좀 놀라웠다. 또한 봉하 마을과 정토원(나의 조부(李晋馹)가 봉화산에 창건한 절인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시 공부를 한 곳이고, 생을 마친 부엉이바위 인근이다)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눴는데, 그때 느낌으로는 얄궂은 정치판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맑고 선량한 선비 같았다. 헤어질 때 큰 짐을 진 듯한 뒷모습을 보며 필부가 짐작도 못할 중차대한 생각들을 정리하려 혼자 북한산에 올랐으려니 했는데, 그의 고심이 익고 익었을까! 오늘날, 많은 민초들의 기대와 성원 속에 드디어 대통령이 되었다. 초록이 무성해지는 이 봄바람을 타고 나의 작은 바람도 그에게 선한 기운으로 전해지면 좋겠다.  
602 가을 노을빛, 욕망 /고창근 file
편집자
1399 2017-11-01
가을 노을빛, 욕망 내가 여기 왜 왔지? 춘식은 자리에 앉으며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누군가 자신이 잠 잘 때 번쩍 들어 이곳에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올 생각도 오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식당에 있었다. 주방 쪽으로 눈길이 슬며시 돌아갔다.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춘식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보았다. 아니 보았다기보다는 생각을 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는데 맞은편에 있는 텔레비전이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가야 한다는 생각과 달리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용건이 있다고. 춘식은 텔레비전에 머문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미 옛날이었는데. 이제 와서 무슨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 나와 함께 할 것이요 구원될 것이니 항상 하느님을 믿고 따라야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곳 천당에 갈 수 있습니다. 춘식은 천당이라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계속 시선을 두었지만 사실 텔레비전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터였다. 하얀 가운에 보라색 비로드를 부착한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목사 뒤에는 삐쩍 마른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형상이 보였다.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천당이라. 춘식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어 고개를 숙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가야지, 아무도 없을 때 가야지. 춘식은 또다시 슬그머니 주방 쪽으로 눈길을 돌리려다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굳게 다물며 일어서려는데 한 사내가 물컵을 들고 앞에 서있는 게 보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사내가 뚝 떨어진 것 같았다. 사내는 물컵을 탁자에 놓았다. “요 앞에 쓰레기 버리려 가느라 자리를 비웠네요. 뭘 드릴까요?” 50대를 갓 넘겼을까, 머리숱이 별로 없고 그나마 대머리인 사내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그러니까.” 춘식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애초부터 오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고 또한 나가려던 참인지라 말까지 더듬었다. “그럼 천천히 주문하세요.” 사내는 공손히 말하곤 홀 중앙에 있는 난로가로 갔다. 그제야 춘식은 식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허름하지만 꽤나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탁자는 여섯 개가 있었고 벽에 걸린 메뉴판에는 씨레기 해장국부터 순대국까지 열 가지가 넘는 메뉴가 적혀 있었다. 메뉴판 옆에는 속옷만 입은 여자가 소주병을 들고 있는 달력이 바람이 없는 데도 가늘게 펄럭이는 것 같았다. 바닥은 시멘트 바닥인데 깨끗하게 물청소되어 있었다.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저녁 시간이면 손님이 있을 법도 한데 하나도 없으니 오히려 춘식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랄. 자신의 그런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는 다 지난 간 일이다. 춘식은 신발로 바닥에다 가로로 세로로 줄을 그었다. 어쩌자고 왔는가. 생각할수록 기이했고 울화통이 올랐다. 형님, 어제 형수님 봤습니데이. 한 달 전 아니, 두 달 전인가 직장 동료이자 고향 후배인 박씨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다가와 속삭이듯 한 말이었다. 그때 춘식은 아침부터 무슨 지랄 같은 말이라는 듯 박씨를 바라보았다. 분명하다카께요.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카께요. 박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긍께 어제 야근하고 집에 가다 해장이나 한잔할까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씨레기 해장국 판다는 가게가 있질 않겠소. 그래 들어갔더니 글쎄, 분명하다카께요. 20년도 더 지난 여편네였다. 춘식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나마 죽지 않고, 식당이라도 하니 병들지도 않고 살아있는 것으로 되었다. 하지만 박씨가 그곳이 어디라고 뒤따라오며 말했을 때에도 귓전으로 흘러들었다. 당연히 다 잊었다. 아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술만 들어가면 박씨가 가르쳐준 식당이 마치 단골집이라도 되는 듯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자신이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 앞으로 몇 번 지나가기도 했었다. 식당 옆 전파사가 있고 그 옆에 미장원이 있고 그 옆엔 철물점이 있고⋯⋯ 환장할 일이었다. 가보지도 않았는데 그 주위의 풍경이 눈에 자세히 그려졌다. 야당은 유례없는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양산 그리고 많은 자영업자들의 몰락 노인들과 빈곤층의 자살 증가 등 민생을 파탄시키고 경제도 파탄시킨 책임을 묻는 선거가 ⋯⋯ 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 노인들의 기초연금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주인 사내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린 모양이었다. 선거철이라 그런지 텔레비전만 켜면 정치 얘기였다. 춘식은 메뉴판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땅히 먹고 싶은 게 없었다. 그렇다고 소주만 마실 수는 없었다. “여기 소주 하나 하고 술국 하나 주세요.” 춘식의 말에 사내는 주방을 향해 말했다. “술국 하나.” 그러자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수돗물 소리가 났다. 주방 옆에 골방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우선 드시고 계시면 빨리 가져오겠습니다.” 사내는 소주와 잔 깍두기를 내놓았다. 춘식은 아무 말 없이 잔에 소주를 따라 단숨에 입에 털어넣었다. 주방으로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과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갈등을 일으켰다. 허! 두 잔을 연거푸 입에 털어넣고나니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20여 년 전에 집을 나간 마누라년이 보고 싶었단 말인가. 죽음을 앞두니까 마음이 약해졌다는 말인가. 허! 또다시 헛웃음이 터져나와 황급히 잔에 술을 따라 입에 털어넣었다. 반은 흘러 소매를 적시고 가슴께로 흘러내렸다. 내가 죽고나면 사람들은 무어라 말할까. 죽기 전에 누구나 죽음을 암시하는 행동이나 글을 남긴다는데. 춘식이라는 사람은 죽기 하루 전 어느 식당에 들렸는데 그 이유를 파악 중입니다. 이렇게 떠들까. 그러면 후배 박씨가 나서서 그 식당 여주인이 전처였다고, 매일이다시피 개 패듯 마누라를 팼다고, 그래서 이혼 당했다고, 그렇게 말할까. “이것 좀 드세요.” 주인 사내가 오이무침을 담은 접시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아마도 안주는 먹지 않고 술만 마시고 있는 걸 지켜본 것 같았다. “행복하시오?” 춘식은 말을 해놓고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을 할 작정이 아니었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주 한 병만 마시고 나갈 참이었다. 그런데 행복하다고 묻다니. 술기운일까. 춘식은 스스로 민망함에 다시 술을 따라 단번에 입에 털어넣었다. “사는 게 뭐 그렇지요.” 사내는 두 손을 만지며 머뭇거리다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사는 게 행복하냐구요.” 술기운일까. 자꾸만 말이 의도와 다르게 나왔다. “그냥 뭐. 사는 거지요.” 사내는 제대로 답을 못해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엉거주춤 서 있었다. 술국 나왔어요. 주방에서 가늘면서도 약간 쉰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춘식은 자기도 모르게 주방으로 고개를 돌리려다 다시 애꿎은 소주병을 들었다. 맞다. 저 놈의 목소리. 쉰 듯한. 살아오면서 한 번도 큰소리를 내지 않았던 것 같은 목소리. 사내는 주방으로 가서 김이 솟아오르는 뚝배기를 들고 왔다. “우선 안주 좀 드시면서.” 주인 사내는 여전히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술국은 양이 많았다. 순대국에 머리고기를 많이 넣었다. “한 잔 하시겠소?” 춘식은 주인 사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시지요, 손님도 없는데.” 사내는 주방으로 가서 소주 한 병과 소주잔을 들고 왔다. 주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가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사내는 자리에 앉자마자 두 손으로 춘식의 잔에 술을 따랐다. 자신의 잔에도 따려는 걸 춘식은 소주병을 재빨리 낚아채어 사내의 잔에 따랐다. “안주 좀 드시고.” 사내는 술국에 청량고추와 새우젓 다재기를 넣고 숟가락으로 휘저었다. 우유 같은 국이 뻘겋게 물들어갔다. 사내는 숟가락을 춘식 쪽으로 놓았다. “한 잔 합시다.” 춘식이 잔을 들자 사내도 덩달아 두 손으로 술잔을 들었다. 춘식은 단숨에 마셨고 사내는 반만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안주 좀 드시고. 빈속에 마시면 속 베릴 텐데요.” 안주를 먹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말했다. 허, 또다시 춘식의 입에서 가벼운 헛웃음이 나왔다. 길어도 하루, 짧으면 몇 시간 후 자신의 몸은 주검으로 발견될 터였다. 그런데 빈속에 술을 마시면 속 버린다고 걱정하다니. 허, 또다시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사내는 그런 춘식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말을 잘못했나 싶어 손을 잡고 사과라도 할 듯한 표정을 지었다. 춘식은 사내의 그런 표정에 아랑곳 않고 사내의 잔에 술을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행복하시오?” 춘식은 또다시 불쑥 튀어나온 자신의 말에 놀랐고 사내는 말없이 자신의 잔을 들었다. “누군들 행복하겠냐마는요. 그래도 삼시세끼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요.” 사내의 말에 춘식은 질문도 그렇지만 답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행복하다는 말? 살기 힘들다는 말? 여편네는? 그러니까 당신 말고 여편네가 행복하냐고 물었던가. “그렇지요. 삼시세끼 밥 먹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요.” 춘식의 체념한 듯한 말투에 사내가 물었다. “퇴근하시는 중인가 보죠? 일성 반도체?” 춘식의 놀라는 표정에 사내는 처음으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저도 한 20여 년 물장사 밥장사하다보니 대충 사람 볼 줄 압니다. 허허.” 사내의 말에 춘식은 대꾸도 않고 술을 들었다. 술국은 식어서 위에 기름기가 끼기 시작했다. “아직 원인을 모르지요?” 춘식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회사 내 사람들보다 바깥사람들이 언론이나 소문을 통해 더 많이 알 터였다. “내일은 누가 죽으려나.” 사내는 한숨 섞인 말을 하곤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나요. 나라면 믿을 수 있겠소? 춘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양쪽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일이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반도체의 한 회사의 사원들이 매일 한 사람씩 죽어 가는데. 사원이 수만 명이 된다해도 매일 사원이 원인도 다양하게 죽어 가는데 대해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보건기구와 UN에서도 전문가가 파견되어 조사를 벌이는 중이었다. 죽은 사람을 보면 직업병이랄 수도 없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 산에 가다 추락사한 사람, 잠자다 죽은 사람, 평소에 질병을 앓던 사람⋯⋯. 하지만 한두 명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같은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매일 한 명씩 죽으니 이상한 소문만 돌 뿐 대책도 없었다. “근데 죽는 사람은 안다면서요?” 사내가 무심히 물었다. 이미 몇 년 동안 계속 죽어왔고 이젠 텔레비전에서도 거의 다루지 않으니 오히려 별 얘깃거리가 되지 못했다. 차라리 키우던 개를 학대해 구속된 사람이 화제가 되었다. “이유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소.” 춘식은 말해 놓고 자신의 말에 놀랐다. 이렇게 멋있는 말을 하다니. 사실 그 문제에 대해선 이미 일반 사람들처럼 회사 내에서도 별 얘깃거리가 되지 못했다. 명확하게 백혈병처럼 겉으로 회사의 문제가 드러났다면 모르지만 표면상으론 회사와 아무런 관련 없는 죽음이었다. “그래도 죽은 사람은 꼭 흔적을 남기니 말이요.” 사내의 말에 춘식은 대꾸를 않고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그랬다. 죽은 사람은 예감을 했는지 평소에 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부모의 집을 찾는다든지, 평소엔 자식에게 데면하게 굴던 사람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 건강하라든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데 취직하라든지, 몇 년째 연락을 안 하던 친구한테 전화를 한다든지. 며칠 전 춘식이 아는 사람은 죽기 하루 전 키우던 개의 목사리를 풀어주었다. 춘식과 자주 술을 마시던 사이였는데 죽기 전까지는 어떠한 징후도 없었다. 쾌활했고 회사에서도 평소와 같이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퇴근해 저녁을 먹고 난 뒤 바람 좀 쐬고 온다더니 집 앞 길에서 뺑소니차에 치였다. 나중에 조사를 해보니 산책을 하기 전 키우던 개의 목사리를 풀어주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실 별게 아닌데도 죽고 나니 그것이 마치 죽음의 징후가 되었다. 맞는 말이다. 춘식은 사내가 따라놓은 잔을 들어 입에 털어넣었다. 죽는 사람은 예감이 온다고 소문만 무성하더니 맞았다. 자신이 그랬다. 내가 죽는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다니. 며칠 전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땐 핏, 웃어 넘겼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죽는다는 것이 자명하게 느껴졌다. 결국 내 차례구나.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억울했고 그래서 부정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죽음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니. 물론 억울하기도 하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야 아직 남아있지만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와 비교해 그렇다는 얘기다. “허, 국이 식었네요. 데워오겠습니다.” 사내는 뚝배기를 들고 주방으로 갔다. 춘식은 자신도 모르게 주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가슴 한 켠에 서늘한 바람 한 점이 들이닥쳤다. 대통령께서는 경제를 살리려고 얼마나 걱정을 하시는데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 그런 거 아닙니까. 이번 선거에서 야당을 심판해야 합니다. 야당은 노동법을 통과시키지 말자는 입장이 아닙니다. 독소조항인 해고를 쉽게 하는 법과 파견법을 개선하면 충분히 통과시킬 수 있는 입장입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 두 명이 나와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아이고 늦었네요.” 사내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종종 걸어와 뚝배기를 탁자에 놓았다. 뜨거운 김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춘식은 숟가락으로 국물을 조금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식당에서 직접 꼬았는지 국물이 진하게 우러났다. “고기 좀 드시고.” 처음엔 먹을 마음이 없었는데 막상 국물을 떠먹고 보니 맛이 입에 감겼다. 그러다보니 자꾸 국물만 떠먹는 형국이 되었다. 역시 음식 솜씨는 좋은 여편네였다. 그렇게 자신한테 맞고도 아침이면 시원하고 얼큰한 해장국을 끓여놓았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런 해장국을 먹어보지 못했다. 춘식은 사내 앞으로 뚝배기를 밀었다. “같이 좀 드시지요.” 춘식은 사내 쪽으로 밀어놓고 머리고기를 숟가락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고기도 알맞게 익어 쫄깃했다. 처음엔 시장기를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국물이랑 고기를 떠먹다 보니 오히려 시장기를 느꼈다. 몇 번 떠먹는 동안 사내는 춘식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순식간에 술국이 절반이하로 줄었다. 후. 춘식은 입김을 길게 내뿜으며 상체를 들어올렸다.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속에 뜨거운 것이 들어가니 한결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손님도 없는데 담배 피우셔도 됩니다.” 춘식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만지작거리자 사내가 재빨리 말했다. “아, 아닙니다.” 춘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마침 오줌도 마려운 터였다. 허! 화장실에 들어오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들이마셨다. 또다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몇 시간 후면 죽을 몸이 따끈한 술국 한 그릇에 이렇게 황홀해하는 것이 가소로웠다. 바지를 내리고 쪼그라든 성기를 꺼내 변기를 향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오줌이 잘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담배를 연거푸 빨았다. 순간 20여 년 전 여편네지만 얼굴이라도 봐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기운인가. 죽기 전 무슨 말인가 해야 할 것 같았다. 무슨 말? 없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굴도 안 보고 말도 붙여보지 못하고 그냥 나가면, 죽어버리면 저승에 가서도 후회될 것 같았다. 근데 어떻게 말을 붙여? 혹 나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지는 않을까. 20여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춘식은 한 손은 쪼그라든 성기를 잡고 한 손으로 담배를 든 채 생각했다. 담배를 한 대 다 피울 동안 오줌은 나올 기미가 없었다. 춘식은 피우던 담배를 변기에 던졌다. 픽, 소리가 나더니 담배는 불빛을 잃고 오줌에 젖어갔다. 성기를 잡은 손으로 담배를 꺼내니 성기는 팬티 속으로 들어갔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다시 성기를 꺼내 변기를 향해 정조준했다. 힘을 주었지만 여전히 오줌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담배연기를 길게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뿜었다. 남편이란 작자가 없으면 주방으로 가면 될 텐데 남편이 있으니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았다. 남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놔? 내가 저 년의 옛 남편이었다고. 죽을 때가 되었는지 나도 모르게 왔다고. 그렇다고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니라고. 나도 모르게 왔다고. 몸은 흔들거렸고 중심을 잡으며 연거푸 담배를 빨았다. 허! 생각을 할수록 자신의 행동이 어이가 없었다. 필터까지 타 들어온 담배를 변기에 던졌다. 다시 한 번 아랫도리에 힘을 주었지만 오줌은 나올 기미가 없었다. 성기를 안으로 집어넣고 팬티와 바지를 올렸다. 변기에 침을 찍, 뱉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춘식은 주방으로 눈길을 주지 않은 채 곧장 자리로 왔다. 사내는 왜이리 늦었느냐는 듯 걱정스런 표정으로 춘식을 바라보았다. “자, 한잔 하시오.” 춘식은 사내의 잔에 술을 따랐다. 사내 또한 춘식에게서 소주병을 빼앗아 잔에 두 손으로 술을 따랐다. “건배!” 춘식은 사내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고 사내 또한 건배, 를 외쳤다. “근데 평소에도 이렇게 손님이 없는 거요?” 춘식은 빈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고 사내는 춘식의 잔에 술을 따랐다. “있을 땐 있고 없을 땐 통 없는데 요즘엔 더 그러네요. 경기가 나쁘다카더니만.” “그래도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야.” 춘식은 자신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의도와 다르게 말은 거미줄처럼 술술 풀려나왔다. “그래도 밥 먹고 사는 것만 해도 얼마입니까. 마누라가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렇지.” 사내는 술잔을 입을 가져가 반만 마시곤 잔을 내려놓았다. “국을 좀 데워와야겠네요.” 사내는 취기가 오르는지 약간 비틀거렸다. 춘식은 두 손으로 뚝배기를 들고 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사내는 다리를 많이 절었다. 그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처음엔 술에 취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오른쪽으로 다리를 많이 절었다. 바보 같은 년. 제대로 고르든지. 춘식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어떻게 해서 저런 놈을 만났을까. 나하고 헤어지고 곧장 만났을까. 행복하기는 하는 걸까. 아까 아프다고 그랬는데. 춘식은 주방으로 곁눈길을 했지만 여편네는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였다. 취기가 올랐다. 오늘만은 술을 마시지 않으려 했는데. 저승길만은 술에 취하지 않고 제대로 가려고 했는데. 따지고 보면 하루라도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어떻게 죽게 될까. 아는 동료처럼 뺑소니한테 치여 죽을까. 아니면 술에 취해 길을 가다 쓰러져 그대로 죽을까. 그렇지 길에서 죽는 게 그나마 폼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진 것도 없고 마누라도 자식도 없는데 뭐가 아쉬우랴. 춘식은 고개를 숙인 채 잠깐 졸았다.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사내의 말에 춘식은 눈을 떴다. 계란찜이 춘식 앞에 놓여 있었다. 순간 입에 침이 고였다. 계란찜은 춘식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여편네와 살 때 한 끼라도 계란찜이 없을 때가 없었다. “드셔보세요. 집사람이 건강이 안 좋아 이것저것 못해서리.” 사내는 또다시 송구스런 표정을 지었다. 춘식은 숟가락으로 계란찜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역시 그 맛이었다. 매콤하면서도 비릿한 맛. 청량 고추와 파를 총총 썰어 넣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맵습니까? 나한테 줄 땐 청량고추를 안 넣는데 손님 드실 거라고 넣었나?” 사내는 숟가락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앗따 시기 맵네요.” 사내는 입을 오므리고 호호 숨을 토해냈다. 춘식은 그런 사내의 모습에 아랑곳 않고 연거푸 숟가락으로 떠서 먹었다. 목구멍이 뜨거워오면서 얼굴 전체가 화끈거렸다. 그러면서 정신은 명징해졌다. 예전에도 그랬다.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청량고추를 듬뿍 넣어 계란찜을 해 먹으면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그러고 나면 기분이 개운해졌다. 꼭 그때의 맛이었다. 몇 번 떠먹지 않았는데도 이마에서 땀이 볼로 흘러내렸다. “참, 아까 어디 아프다고 하더니만요.” 춘식은 손등으로 이마와 볼의 땀을 닦으며 주방을 흘깃거렸다. “옛날부터 아프던 것이라.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한가봐요.” “어디 다치기라도 했는가요?” 휴지로 코를 풀면서 춘식이 물었다. “허 참, 이거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내는 술잔을 들어 한 입에 다 털어넣더니 스스로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춘식은 아무 말도 없이 그런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옛날에 말이요. 그러니까 나를 만나기 전이니까 20년 저쪽 이쪽쯤 될 거 같은데. 어떤 나쁜 놈을 만났는가 봅니다. 남편이란 작자가 자기 마누라를 얼마나 팼는지 지금도 몸이 성한 데가 없다오.” 사내는 또다시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 춘식은 아무 말도 않고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 나쁜 놈이 누구겠는가. 간신히 속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그, 그래서 지금도 몸이 안 좋다는 말인지.” “그때 속병 겉병 다 들었는가 봅니다. 한때는 우울증에 걸려 물에도 뛰어들었고. 왼쪽 팔은 지금도 잘 못 쓰고. 아마도 천벌을 받을 게요, 천벌을.” 그때 춘식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긴장하거나 화나는 일이 있으면 다리가 덜덜 떨렸다.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는 좀 많이 나았나 싶었는데 그 증상이 또 나타났다. 춘식은 고개를 숙이고 떠는 다리를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이한 일이었다. 때리는 게 일이었다. 이유라면 회사에서 동료나 상사에게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거나 하다못해 퇴근하다 기분 나쁜 일이 일이 있었다거나. 이유는 무한정 많았다. 퇴근하면 우선 여편네를 두들겨패곤 옷을 갈아입었다. 마치 여편네를 때리기 위해 하루를 산 것처럼 말이다. 하얀 방진복을 입고 클린룸에 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부품을 만지노라면 자신이 사람이 아닌 회사의 기계부품인 것처럼 느껴졌다. 주위를 돌아보면 수백 명의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만히 서서 손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휴식 시간을 알리는 벨소리를 못 들을 때도 있었다. 씨발 닭이 된 기분이야 언젠가 휴게실에서 믹스 커피를 마시며 동료가 말했다. 양계장의 닭들이 꼼짝 않고 알만 낳듯이 자신들도 매일 선 채로 부품을 낳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이 느껴졌다. 그 왜 있잖아. 알도 낳지 못하고 빌빌거리면 주인이 와서 냉큼 집어내 손수레에 싣고 가 개장수한테 팔아버리잖아. 개장수는 산 채로 개집에 던져주고. 우리가 그 꼴이 아닐까. 몇 년째 매일 직원들이 죽어나가니까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눈 얘기였다. 양계장의 닭이 된 느낌. 그러니까 여편네를 두들겨 패는 이유가 하루 종일 말도 없이 서서 부품만 만지다 집에 와서 근질거리는 몸을 푸는 식이었다. 근데 이상한 것은 여편네가 반항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엔 반항도 하고 집을 나가기도 했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는 여편네가 도망가 보았자 옆 동네 찜질방이었다. 나중엔 아예 반항도 가출도 하지 않았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때리고 나서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가면 정갈하게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춘식이 좋아하는 청량고추가 듬뿍 들어간 계란찜이 있었고 씨레기 무침이 있었다. 한 끼도 고기가 없는 날이 없었다. 하다못해 생선토막이라도 올려져 있었다. 다리가 부러지고 갈비뼈가 부러져도 밥상을 차려놓았다. 병원을 갈 때는 잠자리에 들 무렵이었다. 이렇게 미련스런 사람이 다 있나 싶게 팔이 부러졌는데도 그때까지 참았다. 지금 팔을 잘 못쓴다는 게 아마도 그 때의 구타 때문인 것 같았다. 춘식 자신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 못해 직장을 옮길까 생각했지만 중졸 학력에 기술도 없는 자신이 갈만 한 데는 없었다. 국내의 최고 기업인 일성기업의 반도체 공장에 들어간 것도 먼 친척의 도움 때문이었다. “왜요? 다리가 안 좋은 가요?” 춘식이 다리를 계속 떨자 사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보죠.” 춘식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직업병 아닌가요? 반도체에서 일하는 사람들 매일 서서 하느라 다리나 허리 안 좋은 사람들 많던데요.” “뭘, 이 정도로.” 춘식이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려 하자 사내가 재빨리 병을 빼앗아 춘식의 잔에 따랐다. “언제부터 식당을 했소?” 춘식의 말에 사내는 30여 년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그럼⋯⋯.” 춘식이 주방을 바라보며 말을 하자 사내는 잠시 춘식의 얼굴과 주방을 번갈아 보았다. “아, 저 혼자 하다가. 제 마누라가 암에 걸려 죽는 바람에 혼자 하다가 지금 마누라를 만났지요. 음식 솜씨가 좋아 주방일 맡기다보니 정이 들어서. 허허.” 사내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한 잔 하슈.” 춘식은 사내의 잔에 술잔을 부딪쳤다.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밥 먹고 사는 걸 보니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죽을 때 땅을 치며 후회해도 할 수 없었다. 지금 가는 게 그나마 여편네에게 도리인 것 같았다. 만약에 자신에게 도리란 게 있다면 말이다. 다행이라면 자신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가졌으나 춘식의 폭행으로 유산이 되었을 때 이혼을 했다. 그 뒤로 춘식은 혼자 살아왔다. “여기 얼마요?” 춘식이 일어서는데 몸이 휘청거렸다. 사내가 팔을 내밀어 춘식의 팔을 잡았다. “괜찮소.” 사내의 말에 춘식은 바지 주머니에서 오만 원을 꺼내 탁자에 놓고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자꾸만 주방 쪽으로 돌아가는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싶은 걸 참으며 겨우 출입문을 열었다. “잔돈 여기 있습니다.” 사내가 뒤따라와 바지 주머니에 잔돈을 넣었다. “뭘, 안 줘도 되는데.” 춘식은 말을 하면서 흘끗 출입문에 붙인 선팅 너머로 눈길을 돌렸다. 보였는가. 주방 쪽에서 희미하게 어른거리던 것이 여편네였나. 갑자기 가슴 중앙이 아려왔다. 언뜻 여편네를 본 듯했기에 그것이면 됐다 싶었다. “조심해서 가시오.” 사내의 말에 춘식은 비틀거리는 몸을 다잡다 어? 하며 식당 쪽을 바라보았다. “이게 똑바로 서 있어야 손님이 오지.” 춘식은 식당 앞으로 걸어가 각종 메뉴판이 적힌 입간판이 넘어진 것을 똑바로 세웠다. “아이고, 제가 하면 되는데요.” 사내는 춘식에게 다가오더니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하, 됐네. 이제 손님들 많이 올 거요.” 춘식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입을 벌려 우물거리다 한 마디 했다. “그 머시야, 행, 행복하시오.” 뒤돌아섰다.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느낌이 와락 몰려 왔다. 다음날 주인 사내는 텔레비전을 보다 어? 어? 하며 신음소리를 냈다. 주방에 있던 여자가 홀로 걸어 나와 텔레비전 앞으로 갔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야산의 한 산소에 있는 하얀 천을 비춰주고 있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는 원 안에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늙은이의 얼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자의 몸이 움찔거렸다. 오늘 저녁 일성 반도체의 이천오백일흔두 번째 사망자가 발견되었습니다. 오십 오세 지모씨로 자신의 어머니 산소 앞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저, 저 양반 어제 저녁 그 손님 아냐?” 사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여자는 잠자코 텔레비전에 눈길을 박고 있었다. 사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옆에 소주 한 병이 있고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으며 곧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예정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지모씨가 사망한 산소는 친어머니가 묻힌 곳으로 지모씨가 어릴 때 바람이 나 집을 나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지모씨는 어린 시절 술주정이 심한 아버지와 단 둘이 살며 불우한 생활을 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지모씨는 술만 취하면 친어머니를 찾아 죽이겠다고 행패를 부린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맞지? 당신 못 봤어? 우째 이런 일이.” 사내는 거듭 여자에게 물으며 탄식했고 여자는 말없이 주방으로 걸어갔다. 이날 따라 더욱 심하게 왼쪽 팔이 흔들거렸다. 고창근/경북 상주 출생 오월문학상 소설집『소도(蘇塗)』『아버지의 알리바이』『나는 날마다 칼을 품고 산다』장편소설『누드모델』『존재의 이유』『신윤복, 욕망을 욕망하다』  
601 三月의 山河 /권늘
편집자
1493 2017-11-01
三月의 山河 검정치마 흰 저고리가 성의(聖衣)되어 남겨진 3월의 기억 소녀들의 당찬 울림이 시대를 때린 그해의 기억들 독립이라는 사명 이전에 그들은 아직 피우지 못한 대한의 딸이었소 서대문 형무소의 남겨진 잔해가 살을 에는 공포로 다가올 때 ​ 임은 그 자리에서 독립의 염원을 ​ 온몸으로 맞고 있었소 온통 푸름으로 덮히는 三月의 山河가 유독 아름다운 건 ​ 그시절 님의 나라사랑이 가슴으로 전해옴이 아닌가 하오 권늘/본명 권일영 등단 문학광장 (시부분) 인천광역시 서구 예술인회 회원 문학광장 사무국장 청라문학회원  
600 소녀상 6 /권순자
편집자
1663 2017-11-01
소녀상 6 -기억하라 당신은 지옥에 가 보았는가 남자들은 전쟁터가 지옥이었다고 전했다 소녀들은 지옥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갔다 소녀들은 친구 집에 가다가 납치당했다 어머니와 장에서 생선 팔다가 강제연행되었다 공장에 취직시켜준다고 속여서 데려갔다 소녀는 어린 여자아이였다 초경도 치르지 않은 소녀였다 얼굴에 솜털이 보송한 어린아이였다 열세 살, 열네 살 여자 아동들이었다. 소녀상을 치우라고? 왜? 너희들이 저지른 범죄가 떠오르는가 소녀상을 볼 때마다 군위안소가 떠오르는가 전쟁터마다 위안소를 설치하고 조선의 딸들 소녀들을 끌고 간 기억이 떠오르는가? 소녀상을 치우라고? 초경도 치르지 못한 소녀들을 잡아다가 지옥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하루에도 수십 번 고통에 처 녛은 일본군. 역사를 지우고 싶다고 역사가 지워지는건가? 보아라! 이 나라 방방곡곡에 여자들이 태어나고 남자의 딸들이 태어나고 남자의 손녀들이 태어나는데 어찌 역사를 지울 수 있으리 거리마다 노랑노랑 소녀들이 걸어가고 초록초록 소녀들이 뛰노는데 감출수록 냄새나는 너희들의 범죄를 어찌 지울 수 있으리. 얼음보다 차가운 사실을, 먹물보다 선명한 역사적 사실을 어찌 지울 수 있으리 위안소의 성범죄는 너무나 명백하여 가릴 수 없으리라 기억하라 나를 기억하라 기억하라 어린 소녀들을 기억하라 지옥보다 더 고통스런 위안소의 어리고 어린 소녀들의 비명을 기억하라 노랑 소녀들을 기억하라 초록빛 열네 살 소녀들이 겪은 폭력을 기억하라 권순자/경주출생.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와 국민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학과 졸업. 1986년 <포항문학>에 「사루비아」외 2편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우목횟집』『검은 늪』』『낭만적인 악수』『붉은 꽃에 대한 명상』『순례자』『천개의 눈물』『Mother's Dawn』(『검은 늪』의 영역시집) 등이 있음.  
599 여인의 눈물 /김가현
편집자
1540 2017-11-01
여인의 눈물 -위안부 할머니들께 바치는 시 아름드리 빨간 꽃망울은 활짝 피우기만 기다리다 불길로 들이닥친 악몽에 검게 그을려 박제가 되었다 찢기고 갈라지고 얻어맞은 상처보다 보호받지 못하고 버려졌다는 사실에 피우다 만 꽃들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픔은 현재도 진행형 살아도 산 것이 아니며 죽어도 죽지 못하는 절절한 한이 구천에 사무처 자꾸만 너울거린다. 불한당의 습격으로 갈가리 찢긴 가슴 엎드려 사죄하는 그 날까지 훌훌 털고 편히 쉴 수 있는 순간까지 따뜻하게 품어 그 눈물 닦아주리라 김가현/문학광장 시부분 등단 문학광장 문인협회 회원 인천 서구예술인회 회원 인천문인협회주관, ‘570돌한글날기념백일장’ 차하(운문)수상  
598 늙어 피어난 꽃 /김창현
편집자
1558 2017-11-01
늙어 피어난 꽃 봄은 왔건만 틔우지 못한 싹들은 흙위에서 스러지고 여린 고사리는 짖밟히었다. 차마 꿈조차 꾸어 보지도 못한 꽃봉오리 소녀는 들개의 더러운 굴속에 물려가 검은뱀과 붉은뱀에게 무명 저고리속의 파릇한 젖가슴을 유린당하고 영혼의 자유마저도 구속당했다. 피우지도 못하고 시들은 꽃망울 멈추어버린 기억은 고향집의 뒤뜰 복사꽃 나무 가지위에 걸쳐두고 참으로 먼길을 피고름 흘리며 생채기로 떠돌았다. 돌팔매를 맞아도 아픈 줄 모르고 원망조차도 모르고 검은뱀과 붉은뱀들이 흘려놓은 비린 정액은 그렇게 스미어 모진 세월 살아갈 이유도 모를 원죄로 잉태되었다. 손가락질 받아도 미움조차 모르고 풀뿌리 나무뿌리 닥치는대로 먹으면서도 모진 생명의 끈을 결코 놓을 수는 없었다 . 검은 씨앗이 푸르게 자라나 마음껏 꽃피우며 살아갈 내일을 위하여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살아도 사는 줄 몰랐다. 서쪽하늘이 뉘엿거리는 이제사 양귀비꽃처럼 피어난 고사리 소녀는 세상의 작은관심이 미웁고 서러워 통곡을한다. 꽃잎들은 하나 둘 떨어지고 얼마 남지 않은 황혼녘 차마 다 말할 수 없었던 그날의 얘기들 치욕스런 그 만행들을.. 늦었지만 진하디 진한 향기로 세상에 전한 가슴이 저린 이야기들 가슴을 쥐어뜯는 통한의 역사를 세상이 잊을까 두려워 눈을 감을수 없다. 김창현/삶으로 쓰는 시 대표 전통한옥 목수 전 한국미소문학 인천지회장 참교육 장학회 이사  
597 환생/나병서
편집자
1387 2017-11-01
환생 길게 늘어선 벌거벗은 우리는 가을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무도 눈앞의 가스실 입구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품에 안긴 한 살 아기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인간은 진화하여 짐승이 되어가고 죽여도 되는 호모 사케르 길게 늘어선 우리의 이름은 오늘도 침묵으로 영광스런 행진곡 위를 걸어가고 있다 하늘은 여전히 같은 하늘일 것이고 그리고 가을 하늘일 것이다 예언처럼 단지 그것 뿐이었다 나병서/ 한양대 시인  
596 이백 살은 살아서/박찬선
편집자
1456 2017-11-01
이백 살은 살아서 시민의 정성을 모아 평화의 소녀상을 왕산역사공원에 세우던 날 아흔 넘어 먼 길 오신 이 용수 할머니 열네 살에 강제로 끌려가서 …… 전기고문을 당한 것이 지금도 몸이 저리시단다 상해에서 중국과 나란히 소녀상을 세우던 날 억수로 쏟아지는 소나기를 희생당한 소녀들의 눈물이라던 할머니 뉘우치는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했으니 이 백 살은 살아서 받아낼 때까지 여러분도 같이 이 백 살은 살아서…… 그만 가슴이 뭉클하여 단상에 계신 할머니를 바라보지 못하고 물드는 잎들만 바라보았다 새 날아와 어께에 앉고 하얀 나비 꿈꾸는 먼저 간 영혼들이 함께하여 기뻐하시리라는 울먹이시는 이용수 할머니 소녀상의 얼굴을 맞대어 비비고 감싸 안으신다 목으로 파고드는 슬픈 어제의 찬바람을 막아주는 촘촘하게 손으로 짠 노란 목도리와 모자 다시 꽃으로 피어 지지 않는 향기로 남아 이 땅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지니 이백 살은 살아서  
595 순백꽃/신미옥
편집자
1517 2017-11-01
순백꽃 화려한 꽃의 향연 4월이라지만 오늘 만큼은 슬퍼합니다 차가운 어둠과 공포 속에서 재앙 앞에서 당신과 어린 영혼들은 제단의 꽃으로 바치어졌습니다 꿈이 가라앉고 소망이 침식되어질 때 당신과 어린 영혼들은 눈을 뜬 채 부유물로 흐르는 세상의 욕망들을 보았을 테죠 그 순간 소통할 수 없었던 암흑의 진공 상태를 용서하세요 우리는 바보같이 순백꽃으로 사라진 향기 앞에 눈물만 지었습니다 온갖 탐욕과 오욕이 넘실대는 세상이라지만 대속죄로 희생된 당신과 어린 영혼들의 순백꽃만은 기억하며 살겠노라 다짐해 봅니다 신미옥/문학광장 시부문 등단 문학광장 문인협회 회원  
594 돌아올 수 없어도, 고향으로 돌아왔어도/신순말
편집자
1629 2017-11-01
돌아올 수 없어도, 고향으로 돌아왔어도 - 상주 왕산 평화의 소녀상 발치에 운동화 한 켤레 또 한 켤레 놓였습니다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나라에서 태어나 꽃이 꽃으로 피지 못한 소녀의 발 그 아래 풀꽃이 놓였습니다 바람이 찬 계절에도 맨발인데 아직도 제대로 신을 신겨주지 못한 나라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나라 꽃이 꽃으로 피지 못한 나라에서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사람들은 꽃은 꽃으로 피어나는 나라이고 싶어 아픔을 녹여주고 싶은 사람이고 싶어 손발이 시리고 어깨가 시리고 심장이 시린 소녀에게 털모자와 양말과 알록달록 고운 무늬 담요와 포근한 목도리를 둘러줍니다 사방 꽃 피어나고 어느새 또다시 녹음이 푸릅니다 분수대 물은 높이높이 솟아오르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늦봄의 햇살 길게 내려와 비추는 공원 마당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을 기다리는 돌려받지 못한 꽃의 꿈을 꾸는 빈 의자 하나를 곁에 두고 의자에 앉아있는 맨발의 소녀 꽃이 꽃으로 필 수 없었던 고통과 분함이 두 주먹을 쥐고 앞을 바라보는 눈동자로 앙다문 입술에 서린 슬픔을 안고 여전히 소녀로 앉아있는 우리 할머니들의 의자 잘못을 잘못으로 깨달은 이들의 진심어린 사죄가 들리는 그날은 언제인지 어깨에 내려앉은 평화의 새 하늘을 훨훨 날아오르는 노래가 듣고 싶습니다 신순말/상주들문학.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시집 [단단한 슬픔]  
593 그녀 희망을 쓰다 /이선정
편집자
1455 2017-11-01
그녀 희망을 쓰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간이역은 마치 그녀와 닮았다 분주히 오고간 흔적들 숱한 발자욱들이 거기 남았어도, 새벽을 지키는 쓸쓸함은 정작 혼자의 몫이다 밤새 조물락거리며 꿈을 빚고, 여명을 뚫고 달려올 희망이라는 기차를 목빼고 기다리는 것도 정작 혼자의 몫이듯 눈발 날리는 한겨울에도 그녀는 그 간이역에서 성냥 한알에 한기를 녹이며, 입김으로 후후 불어 유리창에 희망을 썼으리라 흐르는 눈물 한 방울 빠드득 얼어갈지라도 그 간이역, 온기로 채우려는 꿈만큼은 잊지 않았으리 마침내 겨울이 지나고, 봄꽃 만발한 거기 서서 천천히 다가올 희망이라는 기차를 햇살보다 환한 웃음으로 기필코 맞아야 했기에 이선정/ 문학광장 등단 문학광장 문인협회 회원 문학광장 강원지부장  
592 죽은 나무의 노래 /임소형
편집자
1558 2017-11-01
죽은 나무의 노래 통분의 칼을 갈아 민중의 노래 불렀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영원으로 흐르는 자유을 향한 거센 몸부림 보라 붉은 깃발 펄럭이며 거꾸로 솟구쳐 흐르던 피끓는 힘찬 이념의 외침 자유를 부르짖다 쓰러져 간 소리없는 흐느낌 도륙당해 감지 못하고 부릅 뜬 두 눈 핏기로 이글거리다 실 핏줄 터져 하늘에 걸려있다 보아라 핏빛 고독 끌어안고 파르르 떨고 있는 저 소리 없는 나무의 저항 누굴 위한 피 흘림이었는가를 무엇을 향한 처절한 고독이었는 가를 청향 임소형/ 경북 상주출생 전북대 사범대학 졸업. 전)상주여중 교사황금찬 시맥회 문학광장 등단. 문학광장 문인협회 회원. 문학광장 홍보위원장. 문학광장 통권 61호 이달의 시인. 공저. 한국문학 대표시선 3. 4 현 (주)핸디데이타 디앤씨 대표 garam8686 @hanmail.net  
591 그 길을 걸어가며 외1편/문해청 file
편집자
1951 2017-10-01
그 길을 걸어가며 그대가 힘 들 때면 가끔 한 번씩 푸른하늘 하아얀 구름 그 길을 걸어가며 자기 마음을 사색하고 성찰하라 그대가 평화라면 자주 민주통일 백두대간 가시밭 산행 그 길을 걸어가며 인간 자연 이웃사랑을 실천하라 소통과 공감 사회적 공감은 인간을 존엄 존귀한 존재로 상호 인정하는 형평원리관점에서 시작이다 사회적 공감은 대중적 공감을 통한 희망을 우리 삶에 실천하고 구체화 할 때 그 공감의 큰 힘은 민중의 힘이 될 것이다 이제 그런 세상의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대의명분이 바로 서고 자주 평화 통일 평등세상 참 된 세상을 반드시 만들어 가야 할 시점이다 문해청 1960년 대구 봉덕동 출생 이메일 : jajudoli@hanmail.net 1991년 전국노동자문학회 공동시집 『너를 만나고 싶다』(도서출판 개마고원) 1991년 『우리들 맞잡은 손』대구노동자문학회 “글바다” 1992년 계간 『실천문학』가을호 [길 따라 돌아간다] 특선으로 등단 2012년 개인시집 『긴 바늘은 6에 있고 짧은 바늘은 12에』(도서출판 두엄) 2014년 분단과 통일시동인시집 『미8군 민들레』(분단과 통일時) 2017년 분단과 통일시동인시집 『붉은 안경을 벗어라』(분단과 통일時) 1988년~1990년 대구노동자문학회 “글바다” 회장 역임 현재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지회 회원  
590 조는 아이에게 외1편/김재순 file
편집자
1680 2017-10-01
조는 아이에게 오후 6시 버스 안에서 늘 끄덕끄덕 졸더니 오늘은 완전 퍼져 좌석 밖으로 팔다리를 칡뿌리처럼 막 뻗었구나 그래, 오늘 얼마나 힘들었느냐 창밖은 온통 사월인데 유리창을 깨부수고 뛰쳐나가라고 너를 들쑤시며 버글버글 끓고 있는 네 마음을 차갑게 식히며 교실에 앉았느라 얼마나 기진맥진 했느냐 누명을 쓴 사람이 유배지에 위리안치 되듯 이른 아침 구불구불 버스를 타고 변방의 작은 학교 좁은 교실에 청춘이 수감되어 숨쉬기 힘들어도 어디다 고함 한번 지를 수 있었겠느냐 사람은 왜 배우고 익혀야 할까 참다운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 나는 어리석어 반생을 살고서야 깨달았단다 수습하다 잡동사니들과 서랍 속에 삼년을 방기했던 분꽃씨 한 줌 붉은 꿈들로 꽉 찼던 알알들은 녹슨 커터 칼이 깎아 먹고 낡은 펜촉이 찍어 먹고 구겨진 낙서장이 흡입해서 한 점 뼛조각만 남았다 오늘 촉촉한 솜뭉치에 그 뼈 한 점 싸 두었다가 볕 잘 들고 윤택한 흙에 심는다 울타리를 자갈로 둥글게 치고 문패처럼 노란리본 꽂는다 김재순: 경북 상주출생 시집⌜복숭아 꽃밭은 어디 있을까⌟  
589 마른 것들 외1편 / 김설희 file
편집자
1599 2017-10-01
마른 것들 마른 벌레집 마른 영지버섯 마른 국화 몇 송이 구멍 뚫린 낙엽 한 장 나갔다 올 때마다 들고 온 것들 문을 여닫을 때마다 바삭거린다 긴 언덕 풀잎 뒤에서 가만히 노래 부르던 것들 갈라지는 골목어귀 가로등 아래였던 것들 뙤약볕 속에 한 잎 그늘이었던 것들 동네 어귀 동수나무였던 것들 어디선가 문 여는 소리 들린다 요양병원 1104호에 햇빛이 한정 없이 밀려든다 사이 소나무 한쪽 어깨를 콕콕 찍어대는 소리 산이 술렁이는데 증거를 남겨야 하는데 사진을 찍으려고 가방에서 전화기를 꺼내려는데 새가 날아갈지도 몰라 새의 몸짓을 눈길로 붙잡고 전화기를 잡는데 쉽게 빠지질 않아 새는 지금 나무의 겨드랑이를 집중공략하고 있는데 도둑질에 여념이 없는데 얼른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부랴부랴 끄집어내야하는데 꽁지를 들고 새는 날아가 버렸어 부리의 뾰족한 시간과 전화기의 시간의 거리가 너무 멀었어 새가 보이지 않아 바람이 나무에 이마 찍는 소리에 나뭇잎이 흔들릴 뿐 오늘은 증거불충분이야 ****** 약력 김설희 2014년 리토피아 등단 시집 <산이 건너오다> 메일 주소 seal0308@hanmail,net  
588 매미 울음 긴 기다림의 끝에 서서 외1편/ 청향 임소형 file
편집자
1848 2017-10-01
매미 울음 긴 기다림의 끝에 서서 연일 발령하는 폭염 경보 발톱을 세운 불볕더위만큼 절정에 달한 매미의 울음이 찌렁찌렁 지축을 흔든다 얼마나 울어 젖혔는지 울대가 맹맹하다 울다 울다 지치기도 했겠다 스르르 스르르 코맹맹이 소리로 변하는 울대 다섯 번의 허물을 벗고나서 환골탈퇴까지 인내심을 장착하고 숨죽인 암묵의 세월 매미의 생은 참으로 위대하다 한 번의 사랑을 위하여 죽음을 불사하는 숭고한 생 4포* 세대의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하면 분명 의식을 새롭게 깨우쳐야 할 경종의 뭉치이다 불완전 변태를 반복하는 동안 뿌리에 기생하여 정갈한 수액만을 흡착하는 흡혈 성충의 군집 제 살점을 희생하는 나무 덕에 성충은 비상의 날개를 펼치고 훗날 녹음을 누리며 신나게 휘파람을 부는 것이리라 리비도의 본능적 욕망은 암컷을 부르는 수컷의 끝없는 구애 짜릿한 쾌감이 절정에 달하면 이윽고 완성하는 사랑 울어서 실현되고 침묵으로 완성하는 종족보존의 업적은 누구도 근접 못 할 매미만의 빛나는 행적이다 그러니 짧은 생! 가엾다 여기지 말자 짧고 굵게 살다가는 뜨거운 생애 누군가는 동경의 눈을 치켜뜨리라 쟁쟁거리는 매미의 울음이 잦아지고 짧아진 치마 길이 만큼 탱탱하던 여름의 함성이 짧아지면 쟁 쟁 쟁 징 소리로 박히는 매미의 마지막 합창 반쯤 열어놓은 유리창 너머 쪽빛하늘은 떡갈나무 잎사귀를 흔들며 뒷모습이 아름다운 노을 빛을 데려와 밤별과 도란도란 가을을 교섭중 *연애,결혼, 출산 포기의 3포에서 인간 관계까지 포기하는 현 세대 고인돌 탯줄 끊고 한 생을 살다간 웅장한 족적 선사에서부터 영원으로 암각을 따라 흐른다 풍우에도 흔들림 없이 지축 흔들어 깨우는 째깍째깍 수 억 만년 이어온 장구한 태엽 소리 고고한 달빛의 유연함 잉태하고 낭랑한 의식으로 합장한 영생으로의 염원 승천하여 안식하는 불멸의 굄돌이 되었다. ************************* 청향 임소형 프로필 경북 상주출생 전북대 사범대학 졸업. 중등교사 역임 전)상주여중 교사 황금찬 시맥회 문학광장 55기 등단. 문학광장 문인협회 회원. 문학광장 홍보위원장. 문학광장 통권 61호 이달의 시인. 공저. 한국문학 대표시선 3. 4 현 (주)핸디데이타 디앤씨 대표  
587 미안해서 어쩐담 외1편/ 권숙월 file
편집자
1642 2017-10-01
미안해서 어쩐담 기억장치 나사 하나가 풀어진 걸까 반갑게 인사하는 여성과 웃음까지 주고받았지만 누구인지 도무지 기억에 없다 초로의 그녀가 공무원인지 예술가인지 한 시간 넘게 기억을 더듬어도 깜깜하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일로 헤맸지 나보다 한참 아래로 보이는 남성과 악수까지 했지만 기억나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지 직업상 많은 이를 만난 탓일까 명함을 받아도 그때뿐 그 얼굴 언제나 까마득하다 연골의 오버랩 무릎 수술을 받았다 관절 사이에 인공 연골을 넣은 것이다 한 시간 남짓 수술 후 중환자로 누운 내게 엄지를 들어 보이는 의사선생님, 애태우던 아내와 딸이 드디어 맞장구를 친다 무릎, 꿇어야 할 자리에서 꿇고 펴야 할 자리에서 펴야 정상이지 문상 가서 무릎 꿇지 못하여 두리번거리기 몇 번이던가 바닥에서 일어설 때도 손힘이 아니면 어림없었지 사라진 연골과 새로 넣은 연골이 오버랩될 때 절룩이지 않던 청춘의 시간이 눈에 선하다 약력/ 1945년 김천시 감문면에서 출생. 1979년 『시문학』통해 문단 등단.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장, 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장 등 역임. 현재 한국문인협회 이사. 김천신문 편집국장. 시집 『하늘 입』『가둔 말』『새로 읽은 달』 등 12권 발간. 시문학상, 경상북도문화상, 경북예술상, 김천시문화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