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못     

 

 

그 날 밤 그 못 가의 숲을 나와

한하늘은 더 깊은 숲으로 갔다.

 

다 주겠다고 했던가, 다 주었다고 했던가,

토해내던 신음 끝에

갔다가 다시 온다고 했던가.

못에 연꽃이 피기에는 이른 철이었다.

꽃도 달도 없는 밤 숲에서

한하늘은 온 몸으로 꽃대를 받아 안았다.

 

사내는 반 잠을 잤다.

깨어서는 반 잠, 자면서는 반 깸.

탕 속에 빠진 듯 사내는 낮밤 없이 젖었다.

꿈속에서 한하늘은 육중한 몸을 벗고

자주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날도 반 잠의 꿈속이었던가.

갑작스레 몰려와 한하늘과 엉키는 한 떼의 구름이

웅크린 사내 위로 삽시간에 소나기를 퍼부었다.

구름을 터뜨리는 총성을 들었던 듯도 하고……,

사내는 해일처럼 일어나 반 잠을 꿈을 밀었다.

 

그 해 여름이 다가도록

그 못에는 연꽃이 피지 않았다.

숲을 이룬 너른 잎들은

바람결에 파도처럼 일렁거렸지만

한하늘의 소식은 실어 오지 않았다.

 

십 수 년 후 사내가 다시 그 못을 찾았을 때

그 못에는 마른 꽃대들만 꼿꼿 못을 지키고 서 있었다.

못은 꽃 안 피워 올린 지 십 수 년 쯤 된다고 했다.

 

 

 

무지개는 입치리처럼

 

그 아침 어떤 병의 예감도 없이

사내의 입술 왼 언저리에 입치리가 왔다.

 

그 날 사내는 한하늘의 부음을 들었다.

 

오래 전 한하늘은 사내에게

사내의 무지개가 되겠다고 했던가.

한하늘의 우물은 아늑했지만

그 때 이미 사내는 바람이었다.

 

붙박인 한하늘이 안으로 웅크리는 동안

사내는 가끔 돌아와 팔을 활짝 벌렸지만

마르지 않는 우물곁에서도

바람은 늘 더워서 조갈燥渴스러워 했다.

 

한하늘을 떠난 사내는

결국 제 무지개를 품었을까.

 

그 새벽 밤새 혼자 뒤척이던 한하늘은

웅크림을 풀고 우물을 벗어나

피가 빠지고 살이 녹고 뼈가 마르는

제 우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제는 제가 바람이 되어 사내에게 들러

사내의 곁에 잠시 머물렀던 것일까.

 

혹 외려 사내가 한하늘의 무지개?

 

그 겨울 입치리는 자주 사내를 찾았다.

오거나 가거나 어떤 병의 예감은 없었다.

  

 

 

 

 

* 약력

남 태 식

2003년『리토피아』 등단,  시집『망상가들의 마을』외, 김구용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