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든다

                                       


고구마는 흙 속에 든다.

설계 없이 자유롭게 집을 지어 든다.

크고 작은 집은 모습이 다르지만 향기롭다.


싹둑 잘려서도 살아나다니

상처에서 흰 뿌리가 나오다니


연막탄을 터트려 장막을 치듯

고구마 자란 섶이 푸른 물살을 이룬다.


우리가 더운 물가에서

거짓의 허물벗기를 할 때

가벼워지려고 안간힘을 쓸 때

고구마는 살 오르는 탐구학습을 한다.


통 속이 행복하다는 어느 철학자처럼

흙 속이 아늑한 보금자리라는

생긴 대로 그냥 있고 싶다는


고구마는 목이 말라 땅이 갈라진다.

철 들 듯 맛이 든다.



호박 앉다


잘 익은 호박만을 그리는 화가가 있다.


탯줄 같은 여린 줄기

혈연의 끈에 매달린 존재를 생각한다.

꼭지 떨어지지 않고 선택된 하나뿐인 생명

잎 속에서 푸른 유년을 보내다가

봉새기처럼 속을 넓혀야 편안하게 앉는

자전거 타듯 중심을 잘 잡아야 뒹굴지 앉는

살아가는 슬기를 배운다.

비탈 밭이나 담벼락, 바람 많은 공중에도

가리지 않는 터 잡기

호박 앉은 자리는 우리 엄마가 눈여겨 본

엄마 손길 닿는 자리

구슬땀 말린 시원한 자리

드러나지 않은 안분의 수더분한 자세가 편하다.

뜨거운 여름, 해가 긴 날

구릿빛 얼굴의 이 땅 사람들을 닮아가며

붉은 꽃 피는 향기로운 방을 만들어

밝은 내일의 식탁을 마련한다.


잘 익은 호박을 닮은 화가가 호박 속에 있다.


약력

경북 상주 출생. 1976『현대시학』으로 등단. 최근 동학을 주제로 한 시집『우리도 사람입니다』를 『시인동네』에서 내고「상주」「낙동강」「동학」에 대한 연작시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