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형심

 

 

 나는 그와 한 몸이다. 문제는 이것이 은유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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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못이 있다. 그 아래 바다가 흐른다. 보이지 않아도 나는 그것을 안다. 빗방울이 나무의 기억을 털어내고 있다. 저마다 서로의 기억을 버린 것들이 땅을 적신다. 나는 기억을 털고 연못 속으로 뛰어내린다. 연못은 깊다. 나는 끝없이 가라앉는다. 눈을 떴다. 나는 양수 속에 있다. 여기는 우리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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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가슴 아래로 몸이 붙은 채 버려졌다. 그날을 전후로 나의 기억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선명해졌다. 기억만이 아니다. 나의 감각 또한 더 없이 예민해졌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늘면 늘수록 그가 잊어가는 것도 그만큼 늘었다. 그는 그날의 불길 속에 시력마저 잃었다. 등이 붙어있었으므로 우리는 한 몸이나 결코 마주볼 수 없었다. 나는 자주 그립다고 말했다. 그는 자주 그 단어의 뜻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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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나! 어쩌면 좋아! 신문지를 들춰본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어디 좀 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낡은 박스 안, 피 묻은 거즈와 약솜들 속에서 하나의 살덩어리인 우리가 세상과 마주쳤다. 그들은 일그러진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남녀가 한 몸이야, 여자가 남자를 보았다. 신고해, 남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자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십이월의 밤이었다. 119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우중충한 계단으로 올라왔다. 깜빡거리는 형광등 아래 우리의 모습을 본 대원은 흠칫 놀라 뒷걸음질쳤다. 웃어, 나는 그에게 그렇게 속삭였다. 나도 그도 웃어야 했다. 그러나 웃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울상이 되었다. 그래서 울었다. 웃으려고 했는데 울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단 한 가지 언어였기 때문이었다. 119대원은 우리를 번쩍 안아 올렸다. 우리를 앞뒤로 돌려보며 난처한 얼굴이 된 대원이 쓱 아랫도리를 살폈다. 이런! 119대원은 이렇게 말하고 코를 킁킁 들이마셨다. 이런! 이건 우리를 맞은 사람들의 인사법 같은 것이었다. 다시 이런! 이라고 외치고 그는 가지고 온 담요로 우리를 둘둘 말았다. 119대원의 품에 안겨 우리는 허름한 연립주택의 복도를 벗어났다. 우리가 담겨있던 더러운 박스가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작은 별처럼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웃어, 내가 다시 그에게 말했다. 그는 울었다. 내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싸구려 장식등이 내 눈물 속에서 점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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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활했으나 라면박스에 버려졌다. 병원 응급실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글쎄요, 생후 한 열흘? 아니 한 달? 아니 일 년? 어쩌면 천 년 쯤, 의사가 우리를 내려다보며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 그런 대답이 다 있어요? 119대원이 한심한 듯 의사를 올려다보았다. 그게 샴쌍둥이는 성별이 같아야 하는데 얘들은 남녀라니까요, 썀 쌍둥이는 일란성 쌍생아에게만 발생하는 거거든요, 의사가 말했다. ? 119대원이 인상을 썼다. 남녀가 샴쌍둥이가 될 확률은 당신 고양이가 어느 날 햄릿을 읊을 확률과 같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죠, 의사가 말했다. 그럼 고양이도 햄릿을 읊는 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건가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야옹, 119대원이 눈을 껌뻑거렸다. 내 말은, 의사가 말을 더듬으며 두툼한 책을 꺼내 읽어주었다. 썀쌍둥이는 서로 다르게 발달하던 두 개의 개체가 달라붙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하나였던 수정란이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렇다고요. , 그래요? 얘들 어떻게 해야 하죠? 갈라서 둘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119대원이 물었다. ? 샴쌍둥이 분리하는 게 생일케익 나누는 것처럼 간단한 게 아니에요, 의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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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의사가 법학자와 그의 제자를 데리고 우리를 찾아왔다. 이들은 등이 서로 붙은 형태의 샴쌍둥이인데 하나의 심장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우리를 본 법학자의 제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선생님, 샴쌍둥이의 권리능력은 어떻게 되는 거죠? 한 사람인가요, 두 사람인가요? 하나의 육체 안에 서로 다른 자아가 공존하는 다중인격장애와는 구별의 실익이 존재하나요? 샴쌍둥이 중 한 사람이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는 항상 공동불법행위가 되나요? 다른 한쪽은 항상 방조자가 될 수밖에 없잖아요? 안 그런가요, 선생님? 또 만약에 한 사람이 징역형을 선고 받는다면 다른 한 사람도 감옥에 가야하나요?

 법학자가 갑자기 손을 들어 제자의 말을 가로 막았다.

- 미친놈!    

 그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우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은 갑자기 텅 비었다. 그 다음날 의사와 법학자는 철학자를 데리고 왔다. 리를 본 철학자는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헤르마프로디토스의 현신이라니!

 의사가 우리의 몸을 더듬는 동안 철학자는 우리를 멀리서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날 한 시인과 함께 나타났다. 시인은 우리를 보더니 다시 다음날 연극배우를 한 명 데리고 왔다. 의사와 법학자와 철학자와 시인과 연극배우는 우리를 에워쌌다. 그리고 연극배우가 선포하듯 시를 낭송했다.

  -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인간의 사랑에 대한 기원을 말한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침을 삼켰다.

  - 옛날에는 자웅동성의 인간이 있었고 둥그런 등과 원형의 옆구리에 네 개의 팔과 다리가 있었네. 둥그런 목에 두 얼굴이 반대방향으로 보는 머리가 있었으며 성기도 둘이라네. 원 모양으로 굴러가기도 했던 이들은 대단한 힘과 능력으로 신들까지 공격했다네. 인간의 오만함을 참을 수 없어 제우스는 마가목 열매를 자르는 사람처럼 또는 달걀을 말총으로 나누는 사람처럼 인간을 둘로 나누고 두 다리로 걷도록 했네. 인간은 자신의 다른 반쪽을 갈망하면서 팔로 상대방을 껴안고 얼싸안으며 한 몸이 되기를 원하며 굶주림 또는 무기력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네. 반쪽이 죽으면 살아남은 반쪽은 남녀를 불문한 다른 반쪽과 결합하려는 욕망 때문에 인간이 멸종할 지경에 이르렀다네. 자웅동체일 때는 성기가 바깥으로 향했기 때문에 인간은 매미처럼 땅속에 생식을 하여 아이를 낳았으나 제우스는 인간의 성기를 앞으로 향하게 해서 남성과 여성의 성기가 결합하여 자식을 낳게 했다네. 인간의 서로에 대한 사랑은 태초부터 인간의 본성 속에 있었는데 둘을 하나로 하는 결합이 인간의 상처받은 본성을 치료했다네.                                        

 ‘에로스, 그 심연의 비밀’ 중에서, 김백겸,이라고 연극배우가 말하고 모두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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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우리는 병원을 나왔다. 모두가 슬퍼해야 했지만 아무도 슬프지 않았다. 병원을 나온 후 우리는 임시로 한 개척교회에 맡겨졌다. 타일 몇 개가 떨어져나간 외벽에서 삐뚜름한 붉은 십자가가 깜빡거리는 상가건물 666, 꼬질꼬질한 방석 위에 우리는 무릎을 꿇어야했다. 주여, 죄인을 용서하소서, 우리를 보며 울부짖는 한 떼의 사람들을 보고 그는 까무러치듯 울었다. 얇은 칸막이에는 집나간 목사 아내의 사진이 아무도 모르게 흔들렸다. 그 아래서 표정 없는 딸이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목사는 딸을 거칠게 밀어내고 샴쌍둥이를 검색했다. 샴쌍둥이는 지명에서 비롯됐다, 19세기 초 창 엥과 분커라는 중국계 형제가 태어난 곳이 태국의 옛 지명인 샴이다, 버넌이라는 사람은 이들을 '샴쌍둥이'라고 이름 짓고 광대를 시키며 돈을 벌게 했다, 이건 신의 뜻이야!, 인터넷을 뒤적이던 목사가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벌리고 할렐루야를 외쳤다. 우리를 내세운 신의 사업은 대박을 쳤다. 헌금함에 차곡차곡 돈이 쌓이고 목사는 곡마단의 주인처럼 돈을 벌었다. 마침 크리스마스 근처여서 더 그랬다. 이 정도 벌이면 6개월만 모아도 교회 하나는 새로 짓겠어, 그가 뿌듯하게 장부를 뒤적이며 말했다. 그래도 난 쟤들 싫어, 언제나 컴퓨터 게임에만 매달리던 목사의 딸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흥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에게 감명을 받은 누군가가 신문사에 전화를 했다. 기자들이 찾아왔다.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여전히 웃어야 했으나 내내 울었다. 다음날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났다. 구청복지과에서 사람이 나왔다. 난 쟤들 싫어, 언제나 컴퓨터 게임에만 매달리던 목사의 딸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목사가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처럼 울었다. 우리는 구립 복지원으로 옮겨졌다. 복지원에 맡겨진 다음날 그는 등 뒤에서 할렐루야를 외쳤다. 할아버지래, 보모가 말했다. 옹알이치곤 특이하군, 봉사 온 여학생이 우리를 보며 말했다. 그의 발음이 나날이 뚜렷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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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품 저 품을 옮겨 다닐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아무도 우리를 안아주지 않았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잘 자랐다. 복지원 원장은 우리에게 님과 남이라는 이름을 각각 붙여주었다. 그런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센스 있음에 스스로 탄복해서 자주 사람들에게 우리 이름을 자랑했다.

 - 님과 남은 한 몸이야? 어때?

 사람들은 웃지 않았다. 그 자신의 말을 빌자면, 그는 좌절했으나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사실 그는 배가 좀 거대했다. 그는 때때로 지역신문에 전화를 했고 기자들에게 우리 한 달 식비보다 더 비싼 저녁을 샀다. 가끔씩 그는 지역신문의 소식란을 장식했다. 그럴 때면 사진에 찍히기 위해 그는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안아야 했다. 기자들이 가고난 후 그는 살가죽이 쪼그라들도록 비누로 손을 박박 문질러 씻었다. 그런 날 우리는 구석에서 오랫동안 손가락을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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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몸이 자라는 속도는 너무 더뎠다. 우리는 옆으로 누워 자주 뒤척였다. 등을 대고 바닥에 누워본지 천년도 더 된 것 같았다. 그래 정말 어쩌면 천년도 더 되었을지도 모르지, 어느 날 그가 중얼거렸다. 기억하는거야? 내가 물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돌아눕는 바람에 나도 돌아누워야 했다. 나는 때때로 엄마였던 여자를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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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자주 엄마에게 가고 싶다고 울었다. 엄마에게 가면 엄마의 손님이던 아저씨가 많이 컸다고 나를 한 번 안아 보자고 했다. 그 남자는 내 몸을 만졌다. 엄마였던 여자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나를 낚아챘다. 자식은 다 부모 따라 가는 거야,라고 그 남자가 말하자 엄마는 우리에게 저녁으로 먹다 남긴 볶음밥을 주었다. 나는 날파리가 앉아있던 밥을 먹었다. 그는 날파리에 얼굴을 찌푸렸다. 잘 먹지 않았다. 내가 날파리를 쫒으며 입을 벌릴 때, 그의 하얀 얼굴이 굳었다. 그는 작고 여리고 예민했다. 저 자식은 주제를 모른다,고 엄마였던 여자는 자주 분노했다. 하얀 뺨에 빨간 손자국이 올라갔다. 그럴 때면 엄마였던 여자의 새하얀 피부가 보랏빛으로 빛났다. 나는 엄마였던 여자의 길고 가느다란 팔이 그리는 포물선을 입을 벌린 채 바라보았다. 여자의 보랏빛 팔은 느린 화면처럼 움직였다. 그는 울었다. 그는 언제나 울었다. 엄마에게 가고 싶다고 울고 엄마에게 맞아서 울었다. 아니, 어쩌면 웃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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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자주 편지를 받았다. 엄마는 아빠가 중국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이모들, 그러니까 엄마의 동료들이 우리에게 아빠는 교도소에 있다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교도소가 중국에 있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 건 상관없었다. 또 어느 날 엄마의 손님들은 엄마가 몸 파는 여자라고 했다. 엄마의 몸은 팔아도 줄어들지 않는 게 신기했다. 우리는 머리를 파는 것 보다는 그래도 몸을 파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머리는 딱딱했지만 엄마의 몸은 부드러웠다. 어느 날은 아빠가 우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여기 중국은 모든 것이 다르구나,로 시작되는 편지였다. 그 문장을 우리에게 읽어주며 엄마는 픽, 웃었다. 우리는 그냥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 편지는 중국에서 아빠가,로 끝났다. 그날 엄마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새벽에 비틀거리며 일어나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엄마, 오줌이 마려워, 예민한 그가 뒤척이다 말고 몸을 일으켰다. , 너는 지 애비 닮아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구나, 이제 날 그만 좀 들볶아, 여자가 그의 하얀 목덜미를 잡고 흔들었다. 그는 잠이 덜 깬 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흔들렸다.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나는 머리를 흔들며 잠에서 깨어났다. 이 지긋지긋한 비극에서 독백은 항상 너무 길었다. 엄마였던 여자는 귀를 막고 쓰러졌다.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그만 해, 여자가 우리를 향해서 울먹이며 같은 말을 되뇌었다. 우리는 요의가 싹 가신 채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 안은 항상 한 여름이었다. 때로 한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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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우리는 공사장에서 산처럼 쌓인 스티로폼 더미를 발견했다. 우리는 밤을 틈타 그것들을 집으로 날랐다. 연탄재가 버려진, 뱀처럼 요리조리 굽은 골목을 지나왔다. 텅 빈 살구색 연탄아궁이가 눈에 들어왔다. 베니어합판으로 조각보를 깁듯 붙여놓은 벽이 보였다. 이어 군데군데 함석판으로 때운 벽과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귀퉁이가 깨진 슬레이트 지붕에서 물 한 방울이 똑 떨어졌다. 집이다, 그의 말에 귀가 환해졌다. 한 층 한 층 높아져 가는 스티로폼 더미를 바라보며 우리는 감격했다. 침대가 생겼어,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 단어를 말했다. 침대. 기압이 낮아진 날처럼 검고 긴 그의 속눈썹이 젖었다. 눈꺼풀이 살풋 내려앉았다, 단 한 방울의 눈물을 떨구기 위해. 나는 손을 들어 그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그는 하얀 손가락들을 하나하나 정성들여 씹었다. 가늘고 순결하고 신경질적인 손가락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첫눈이 내렸다. 스티로폼처럼 하얀 밤이었다. 우리는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눈 오는 풍경이 되고 싶었다. 우리는 스티로폼 침대 위에 올라가 꼭 껴안았다. 저 아래 냉골보다 그의 체온이 좋았다. 우리가 껴안은 곳에서 코딱지만 한 유리창이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상관하지 않았다. 우리는 더 세게 껴안았다. 그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토끼털처럼 부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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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우리는 새하얀 침대에서 일어나 새하얀 세상으로 나갔다. 새벽은 하얗고 발목이 시린 경험이었다. 그날 엄마는 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했다. 우리는 눈 위를 굴렀다. 뛰었다. 다시 굴렀다. 그러다 눈을 뭉쳐 그를 향해 던졌다. 그는 작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잇몸사이에 끼어 웃음소리가 잘 나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가 웃음이라는 언어를 잊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나는 커다란 눈덩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굴렀다. 하얀 바닥을 하얗게 굴렀다. 빙글빙글 빨리 돌아가는 건물과 거리와 가로등이 있었다. 그러다 나는 무언가에 탁, 부딪쳐 멈추었다. 아직 채 둥글어지지도 않았다고 생각한 찰나였다.

 - 이게 누구야?

 술에 취한 남자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은 붉었다. 나는 그 남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반쯤 말린 몸을 풀었다. 저만치 그가 도르르 굴러가며 까르르 웃었다. 나는 행복한 그를 보다가 다시 술에 취한 남자를 보았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눈을 깜빡였다.

 - 엄마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엄마의 손님이었다. 얼마나 컸나 나를 만져보던 그 손님이었다. 

 - 그래? 집이 어디야?

 나는 저만치 멀어져온 집을 가리켰다. 다닥다닥 붙은 달동네집들이 온통 하얗게 보였다.

 - 여기서 이러고 놀면 위험해. 아저씨가 데려다 줄게.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 누런 이를 드러냈다. 내 손을 낚아챘다. 나는 손을 뺐다. 엄마의 손님은 인상을 쓰더니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엄마의 손님은 성큼성큼 언덕을 올라 우리 집 쪽으로 향했다. 나는 소리치려 했지만 입이 얼어붙어있었다.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나는 끝내 문장을 만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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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의 새하얀 세상은 끝장이 났다. 새빨간 피가 도르르 도르르 스티로폼 위를 굴러서 바닥으로 내려갔다. 바닥을 흘러 하얀, 방금까지 하얗던 세상으로 흘러갔다. 남자의 눈은 붉고 나의 피는 따뜻했다. 세상은 하얗고 나의 피는 따뜻했다. 나는 깜빡 눈을 감았다 떴다. 고개를 돌린 곳에 언제나처럼 그가 울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온통 하얀 세상에서 그의 하얀 얼굴이 납작해져 있었다. 유리창 밖, 그가 눈 온 풍경처럼 얼어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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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이 개새끼야! 엄마였던 여자의 검은 사막 같은 눈동자가 곧 모래알처럼 바스라질 것 같았다. 남자는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겼다. 어차피 얘도 언젠가는 하게 될 텐데 뭘, 남자가 바지에 다리를 끼우려고 허둥대며 말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엄마였던 여자의 손톱이 남자의 등에서 부러졌다. 아이 왜 그래 씨팔, 남자가 엄마였던 여자의 손목을 꺾으며 소리쳤다. 엄마였던 여자가 짐승처럼 소리쳤다. 나는 무서웠다. 나는 구석으로 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불 속은 한겨울이었다. 토끼털처럼 부드러운 그의 머리카락이 몹시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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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나? 나는 등 뒤의 그에게 매일 물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자랐다. 너무 빨리 자라서 관절 마디마디가 자주 쑤셨다. 나는 진통제를 한 알 삼켰다. 그는 약은 먹지 말라고 말렸다. 그러나 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자주 꿈을 꾸었다. 자주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 키가 부쩍 자라고 있었다. 나는 감당할 수 없이 자라는 몸 때문에 매일 아팠다. 이제 원장은 더 이상 카메라 앞에서 우리를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어느 날 원장은 카메라 앞에서 우리를 안다가 손목인대를 다쳤다. 원장이 응급실에 실려 갔다 온 후 우리는 골방에 갇혀 지냈다. 그러나 우리를 내쫒지는 않았다. 그들은 살아있는 상징이야, 인간의 죄악을 보여주러 신이 우리에게 보내신 거지, 원장은 목사가 우리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 했다.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러온 학생들이 열심히 그 말을 받아 적었다. 서로의 몸을 지탱하기에 우리는 너무 지쳤다. 우리는 주로 누워서 지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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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이후 엄마였던 여자는 열쇠를 채우고 일하러 나가는 버릇이 생겼다. 엄마였던 여자가 일하는 동안 우리는 꼼짝없이 방안에 갇혀 지내야 했다. 방안에 요강이 하나 더 생긴 것 빼고는 사실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우리는 배가 고팠으며 여전히 방바닥은 세상처럼 차가웠다. 한때 우리는 나가서 아이들과 어울리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럴 때면 그는 우리의 초라한 집이 밖에서 보는 것보다 안은 훨씬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입을 닫았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어, 그가 말했다. 둥근 이마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추웠다 정말 추웠다. 그 겨울 내내 추웠다. 그래서 우리는 침대 위에서 지냈다. 그 겨울, 냉골인 방바닥 위에는 버석거리는 우리들의 침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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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상처는 아물어가고 있었으나 내가 흘린 피는 굳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알았다. 엄마였던 여자는 돈을 요구했다. 나는 병원 응급실에 누워 하얀 벽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벽처럼 꾸덕꾸덕 굳어가고 있었다. 엄마의 손님이었던 남자는 서운하지 않게 값을 쳐주겠다고 했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져오고 있었다. 그는 하얀 손을 깨물며 누나 아파?, 아파?, 나도 아파,라고 중얼거렸다. 간호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그를 구석으로 밀었다. 나를 실은 스테인레스 침대가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곧 나는 아랫도리가 벗겨진 채 환한 불빛 아래 누웠다. 안경을 낀 의사가 하얀 고무장갑을 낀 열 손가락을 펼쳐보였다. 의사의 눈도 붉었다. 그것은 나의 피 때문이라고 생각하려는데 잠이 들었다.

*

 나는 실밥을 풀었고 엄마였던 여자는 두둑한 돈뭉치를 셌다. 침을 퉤퉤 뱉으며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돈을 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열세 열네, 그리고 다시 돌아갔다. 아이 씨, 중간에 숫자를 까먹었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열세 열네, 숫자는 항상 거기에서 멈췄다. 뭐야? 그 다음이 뭐였지? 엄마였던 여자는 사실 열다섯 너머의 숫자를 셀 줄 몰랐다. 그녀의 오빠가 그녀의 생일 케이크를 사러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던 날, 그녀는 열다섯이 되었다고 했다. 그 후 자주 자해를 했는데 주로 머리를 찧었다고 했다. 그래서 덕분에 열다섯이 넘어가는 숫자는 세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여자는 그 이후의 삶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이상한 계산법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바로 십오진법이었다. 세상에 없는 계산법으로 그녀는 세상을 쟀다. 그러니까 여자는 열넷에서 멈춘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열넷까지 셌다. 그런 식으로 계산을 했다. 나는 물었다. 열넷에서 멈추는데 왜 십오진법이냐고. 엄마였던 여자는 화를 버럭 냈다. 야 이년아, 이진법도 빵부터 세잖아, 십진법도 빵부터 세잖아, 빵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걸 빼냐? 빵 그래 빵, 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빵……. 여자의 십오진법은 항상 울음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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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그 겨울을 스티로폼 침대 위에서 보냈다. 단단히 잠긴 문 안은 더 없이 추웠다. 우리는 꼭 껴안았다. 그의 가늘고 포동포동한 팔이 내 목을 감았다. 목도리야? 내가 물었다. 그는 응, 대답했다. 분홍색 손바닥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의 목을 더듬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서로의 허리를 더듬었다. 우리는 서로의 팔을 감았다. 우리는 서로의 다리를 감았다. 우리는 배를 더듬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더 이상 가까이 갈 수 없을 만큼 가까이 다가갔다.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몸뿐이었다. 서로의 안으로 향하면서 우리는 따뜻해졌다. 그럴수록 겨울은 더 혹독했다.

*

 우리의 몸은 어느새 부쩍 자라있었다. 원장은 우리가 거인이 될까 두려웠다. 우리는 먹고 잤다. 자고 나면 뼈마디가 훌쩍 자랐다. 우리가 자랄수록 원장의 걱정도 커져갔다. 우리는 덩치가 이미 열서너 살짜리 아이만큼 자라 있었다. 십 개월 좀 넘었다더니 열 살도 넘은 것 같아, 어느 날 봉사활동 나온 중년여자가 소리쳤다. 그 중년여자는 한참 진주목걸이를 만지작거리다가 겨우 결심이 선 듯 우리를 벗겼다. 막 가슴이 생기려고 하던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즈음 우리의 몸에는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함께 화장실에 가고 함께 목욕을 할 때마다 스물 스물 등 뒤에서 무언가가 기어 나오려는 듯 꿈틀거렸다. 그가 밤마다 휴지를 잔뜩 말아 쥐고 무언가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인지 그가 돌아서 오줌을 눌 때마다 부끄러움에 귀를 닫아야 했다. 목욕을 위해 옷을 벗어야 할 때는 등이 붙은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비누거품을 말아 쥐고 슥슥 아래를 닦을 때마다 나는 그가 묻힌 비누거품이 내 비밀스런 영역으로 넘어올까 침을 삼켰다. 우리가 목욕봉사에 수치심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은 너무 어려 몸을 가눌 수 없어 목욕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했었다. 하지만 몸이 부쩍 커진 이후 목욕봉사는 고문이 되었다. 그러나 원장은 목욕봉사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포기할 줄 몰랐다. 그 중년여자는 남편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게 우리를 목욕시키기를 원했다. 물론 봉투를 받은 몇몇 사진기자들을 위해서 욕실문을 활짝 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를 향해서 터지는 플래시들 때문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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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서로의 체온에 기대 버티고 있었다. 우리가 더 이상 서로의 몸속으로 파고들 수 없을 만큼 파고들었는데도 겨울은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엄마였던 여자의 벌이는 그즈음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내 치료비로 받은 돈은 곧 바닥이 났다. 여자는 그 돈으로 코 수술을 했다. 수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먹다짐을 하던 손님한테 얼굴을 한 대 맞고는 그만 코가 주저앉고 말았다. 엄마였던 여자는 코의 보형물을 빼고는 며칠을 끙끙 앓았다. 그 바람에 일을 못하게 되자 안 그래도 밀린 방세는 더 밀렸다. 결국은 수도도 끊어지고 전기도 끊어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 여자는 진통제를 탈탈 털어 먹고 일을 하러 나갔다. 일을 나가기 전에 우리를 위해 초를 한 자루 사왔다. 아껴 써, 그게 우리가 지상에서 그 여자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여자는 여느 때처럼 밖에서 문을 잠갔다. 우리는 어두워오는 판잣집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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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여자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매니큐어의 반짝이는 펄이 불빛에 흩어졌다. 우리는 부끄러워 최대한 몸을 말았다. 무슨 현대미술작품 같군, 중년여자는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차가운 물을 한바가지 확 끼얹었다. 우리의 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중년여자는 마치 물건을 닦듯 우리를 닦았다. 카메라의 불빛이 우리를 낱낱이 보고 있었다. 우리가 몸을 말면 말수록 잘 관리된 중년여자의 손은 더 신경질적으로 구석구석 파고들었다. 중년여자는 수건으로 우리의 사타구니를 벅벅 밀었다. 아 씨, 그가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울기 시작했다. 그는 중년여자를 거세게 밀쳤다. 중년여자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중년여자는 카메라들을 향해 열려있던 문을 쾅 닫았다. 중년여자가 다시 손을 들더니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만, 그만 우리를 놔줘요, 나는 중년여자의 팔을 잡고 애원했다. 중년여자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내 손을 뿌리쳤다. 추악한 게 어딜! 전생에 뭔 짓을 했기에 이런 해괴한 꼴이야! 중년여자는 내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울컥할 수 없을 만큼 서러웠다. 당신들이 뭘 안다고, 당신들이 뭘 안다고, 당신들이 뭘 안다고, 당신들이 뭘 안다고, 당신들이 뭘 안다고, 당신들이 뭘 안다고, 당신들이 뭘 안다고 ……. 그는 울음을 그치는 대신 이렇게 중얼거렸다. 닥쳐! 이번에는 중년여자가 아니라 내가 소리쳤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숨죽여 흐느꼈다. 중년여자가 찬물을 확 끼얹더니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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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은 청회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희고 세상은 어두웠다. 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 우리는 밖을 보았다. 잔잔한 불빛들이 부동항을 찾은 겨울 배들처럼 다정했다. 그는 입으로 뿌우 소리를 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우리는 인천 연안부두에 갔던 때를 기억했다. 우리는 바다냄새와 연료가 타면서 나는 묘한 냄새가 어우러진 이별의 느낌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는 오지 않았다. 아빠는 중국에 있었다. 아빠는 오지 않았다. 아빠, 중국은 날씨 어때? 그가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중국이라고 말하려는데 왈칵 울음이 나왔다. 바다는 우리를 알지 못했다. 바다는 우리 아빠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바다를 알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밤이 오도록 바다를 떠나지 못했다. 그러자 바다가 우리를 떠났다. 누군가 우리를 부랑자로 신고했던 것이다. 세상은 참 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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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이 내리지 않아도 세상은 우리를 보려하지 않았다. 우리는 홑이불과 스티로폼 침대와 서로의 체온과 작은 창으로 난 세상의 풍경만을 소유했다. 밤의 무늬로 우리가 서로를 그릴 때 우리는 추위와 배고픔과 싸워야 했다.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전기밥솥에는 언제 했는지 알 수 없는 누렇고 딱딱한 밥알들이 서로 엉켜있었다. 우리는 살얼음이 낀 페트병에 든 물을 밥통에 붓고 말아먹었다. 희멀건 국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고 나서 우리는 침대로 돌아갔다. 얇은 이불 밑으로 파르르 떠는 파르스름한 그의 손이 보였다. 나는 그 손을 가랑이 사이에 넣었다. 따뜻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우윳빛 국물이 입가에 다 마르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몸을 밀착한 채 언제나처럼 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산 아래 동네에는 환하게 밤을 밝히는 전구들이 거리마다 깔려 있었다. 저 트리의 불빛들은 따뜻할까? 그는 작은 입술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돌아누워 작은 창밖으로 보이는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교회에서 집 앞에 세워준 크리스마스트리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열세 열넷, 나의 셈도 거기에서 끝났다. 이건 유전인지도 몰라, 나는 열넷에서 멈춘 나의 숫자를 생각했다. 열네 살이 되려면 두 배는 더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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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내일 열네 살이 될지도 몰라,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며 그가 말했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어쩌면……, 내가 말했다. 떠나자, 그가 말했다. 어디로?, 내가 물었다. 엄마에게 가자, 그가 전생에서처럼 말했다. 그건 이생의 단어가 아니야, 아마 내일이면 너는 그 단어를 잊을 거야, 내가 말했다. 이러다 정말 열네 살이 되면 그때는 어쩔 거야?, 그가 말했다. 그럼 열네 살이 되는 거지, 내가 말했다. 그가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나도 딸려 일어났다. 나는 가야겠어, 그가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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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열넷까지 숫자를 셌다. 이제 양초에 불을 붙이자,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더 열넷까지 숫자를 셀까하다가 멈칫했다. 그의 눈가에 고인 물기가 정말 곧 얼어붙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작은 불꽃이 생겨난 성냥개비를 조심스럽게 심지로 가져갔다. 그의 눈동자 속에 작은 불씨가 생겨났다. 이제 따뜻해질 거야, 나는 자랑스럽게 성냥개비의 불을 흔들어 끄며 말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촛불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뚝 떨어졌다. 생명체를 가둔 작은 호박처럼 그의 눈물 속에는 작은 불꽃이 갇혀있었다. 거봐, 얼어붙어있던 눈물이 벌써 녹았잖아, 내가 말했다. 그는 말없이 불꽃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추워, 그가 말했다. 아직도 추워? 응 추워. 그는 달팽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추워? 응 추워. 그는 몸을 말았다, 추워? 추워. 나는 무릎으로 기어가서 그를 꼭 껴안았다.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우리는 서로에게 깊이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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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목이 따뜻한 꿈을 꾸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눈 쌓인 대륙을 걷고 있었다. 하얀 언덕과 은빛 바다와 하얀 털로 뒤덮인 북극곰들로 우리의 눈동자에는 하얀 점들이 돋아났다. 따뜻해, 내 귀에 대고 그가 속삭였다. 그의 입김이 따뜻했다. 그러자 우리의 하얀 세계가 검은 연기를 뿜기 시작했다. 독한 냄새가 순식간에 반쯤 빈 위장까지 가득 찼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하얗게 지워지고 있었다. 아니, 불타고 있었다. 발밑을 타고오던 온기가 어느새 우리의 존재를 녹이고 있었다. 나의 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의 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나는 눈을 떠야 했다. 발이 불타고 있었다. 다리가, 팔이, 불타고 있었다. 나는 눈을 떠야 했다. 그의 발이 불타고 있었다. 그의 하얀 손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달팽이처럼 웅크린 자세 그대로 불타고 있었다. 나는 얼핏 그가 웃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우리는 불타고 있었다. 그의 따뜻한 꿈도 불타고 있었다. 살갗 위에서 끈적끈적한 옷가지가 불타고 있었다. 우리는 그 겨울 내내 껴입고 벗은 적이 없는 옷을 벗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아직 봄은 멀었다. 꽃은 피었다. 불꽃, 불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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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봄이 올 지도 몰라, 그가 밤을 틈타 문을 열었다. 그는 걸었다. 나는 걸었다. 그래서 우리는 걸었다. 그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때로 그가 앞에 서서 걸었다. 그럴 때면 나는 뒷걸음질을 치느라 허우적거렸다. 때로는 내가 앞서 걷느라 그가 스텝을 놓치기도 했다. 우리는 주로 밤에 걸었다. 대낮에 우리를 보는 것은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낮 동안 우리는 후미진 건물의 안쪽이나 기차역 구석에서 담요로 몸을 말고 지냈다. 낡은 담요에 싸인 우리들을 향해서 누군가는 가끔씩 동전을 던져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우리는 거북처럼 고개를 빼고 밖을 내다보았다. 눈곱이 낀 얼굴로 햇빛 속에 입김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는 자주 찌푸렸다. 흐트러진 긴 머리카락이 그의 하얀 얼굴에 드리워져있었다.  

 그는 담요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자주 바닥에 알 수 없는 문자로 무언가를 썼다. 그럴 때면 나는 등 뒤가 몹시 궁급했다. 뭐 하는 거야? 내가 물었다. 편지, 그가 대답했다. 어디로 보낼 거야?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울이 없는 나라, 아니 거울이 있다가 없는 나라,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

 우리의 여행은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우리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때로 물었다. 그는 자주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걷고 자주 소리 없이 울었다. 가끔 진눈깨비가 오는 날이면 그는 오소소 어깨를 떨었다. 나는 덩달아 떨리는 내 어깨를 어쩌지 못했다. 엄마, 엄마에게 가고 싶어, 그가 중얼거렸다. 질척거리는 거리에서였다. 엄마? 엄마라는 게 과연 존재하기는 했었나?, 나는 조용히 되물었다. 그건 그에게 묻는 것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묻는 것이었다. 그건 나도 몰라, 그가 중얼거렸다. 우리는 어느새 지방의 작은 중소도시를 향하고 있었다. 한때 우리는 거기에 살았었다. 그러니까 그날 이전에……, 그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그 도시를 2킬로미터 정도 남긴 곳에 서있었다. 그날?, 내가 메아리처럼 되물었다. 그래 그날, 우리가 불길에 휩싸인 날, 우리의 살가죽이 불타버리고 맨몸으로 뒤엉켜 그곳을 빠져나오던 날……, 그가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어쩌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골이 서늘했다. 그가 부르르 온몸을 떨었다.

*

 전등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긴 복도를 가진 여인숙 같은 건물이었다. 발밑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낡은 실내화를 질질 끌며 노파가 앞서가고 있었다. 복도를 따라 줄지어 있는 방문들은 모두 굳게 닫혀있었다. 침침한 실내에는 깊은 숲속 같은 냄새가 났다. 그 복도 끝에 우리의 과거가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 끝까지 우리가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발끝이 저렸다. 그는 자주 발걸음을 멈췄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손을 뒤로 뻗어 그의 팔을 잡았다. 허둥대던 내 손이 잡은 것은 단단하게 굳어있는 그의 근육이었다. 나는 낯선 그 감촉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눈빛이 흔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복지원을 떠나온 사이 그는 부쩍 자라 어른이 되어있었다. 나는 모든 것이 두려웠다. 그는 걸었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뚜벅 뚜벅 뚜벅 뚜벅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그의 걸음은 복도 끝에서 멈췄다.

*

 여자는 늙고 추한 모습이었다. 귀밑머리가 하얗게 센 여자는 두 눈을 뜨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엄마,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를 그렇게 불렀다. 여자는 말이 없었다. 그는 말없이 돌아섰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나는 당황했지만 어쩔 수 없이 여자와의 대면을 받아들였다. 아빠는 중국에서 왔어? 나는 기억나지 않는 존재를 더듬어 기억하려고 했다. 나는 입술이 바짝 말랐다. 손톱으로 입술을 잡아 뜯었다. 내가 입술을 뜯기 시작하자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여자는 갑자기 손가락을 쫙 폈다. 손가락마다 첫마디가 모조리 잘려나가 있었다. 아빠?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 그럼 중국은 다 뭐야? 아니지, 감옥은 다 뭐야? 나는 물었다. 오빠야, 여자의 눈이 허공을 보는지 나를 보는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멈췄다. 뿌리를 더듬는…… 흙 속의 잠…… 나무에는 싹이 트고…… 두 개의 가지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를 향해 여자가 띄엄띄엄 단어들을 쏟아냈다.

*

 우리를 안내한 노파가 다가와 내 팔을 잡았다. 엄마였던 여자는 자해를 했다고 했다. 온 얼굴에 피를 뒤집어쓰고 노파 집의 대문 앞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무나 붙잡고 아파, 너무 아파,를 외쳤다고 했다. 사람들은 달아났다고 했다. 여자는 날마다 손가락 마디를 하나씩 잘랐다고 했다. 그의 촉감을 낱낱이 기억하는 손가락들이 쑥쑥 자라는 꿈을 매일 매일 꾸었다고 했다. 손가락들이 어느 날 나를 꿰뚫고 말거야, 여자는 그렇게 중얼거렸다고 했다. 오른손잡이라서 왼손의 마디들이 먼저 차례로 잘려나가고 오른손 손가락들이 서툴게 잘려나갔다고 했다. 여자는 피 흘리는 손가락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고 했다. 겹겹이 나의 입술에 묻은 그 이름을, 그 입술을, 그의 체온을, 나를 위해 하얀 생일 케익을 훔치던 그 손을, 생일케익을 빼앗은 기름 낀 뱃가죽을 케익 대신 반으로 갈라버린 그의 피를, 그를 지우고 싶어, 여자는 입술마저 잡아 뜯었다고 했다. 여자가 서있는 주변이 노을처럼 붉게 번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여자는 점점 더 멀리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엄마였던 여자 곁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주로 입시를 앞둔 부모들이거나 결혼을 하거나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여자의 공허한 눈이 가리키는 방향은 틀린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노파는 엄마였던 여자를 집안으로 불러들였다고 했다.  

- 애들이 있었는데 불타서 죽었대. 그것 때문에 충격이 컸나 봐. 언젠가는 상상임신을 한 적도 있었지. 죽은 아이들이 뱃속에서 뒤엉켜있다나? 글쎄 상상만으로 배가 엄청나게 부풀었다니까. 그래서 배를 갈랐는데 거기에는…….

 노파는 잠시 말이 없었다.

- 아무 것도 없었어. 

*

 아물지 않는 겨울풍경 속으로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그는 손으로 눈썹의 윤곽을 더듬고 있었다. 추워, 그는 달팽이처럼 몸을 움츠렸다. 하나의 빛깔과 하나의 숨결과 하나의 요람 그리고 하나의 죽음, 그는 웅얼웅얼 라마승처럼 중얼거렸다. 오래된 숲으로 향하는 것들은 모두 외눈박이들이야, 그가 엄마였던 여자처럼 먼 곳을 바라보았다. 이 세계는 움직이는 미궁 아니, 자궁 같아, 나는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누군가, 아마도 그가, 불러주기를 기다렸다. 그는 침묵했다. 그리고 문득, 나는 그와 한 몸인 채 혼자라는 사실에 오싹해졌다. 서로의 몸을 파고들었던 자리에는 심연이 있는 게 분명했다. 우리는 그렇게 앉아 이따금 금속성 소리 같기도 하고 파도소리 같기도 한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내부에서 오는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의 탯줄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 그가 고개를 내게로 돌렸다. 나는 끊임없이 나의 내부를 순환하고 있는 그의 피와 그의 목소리와 그를 향하는 나의 생각들을 생각했다. 내부에서 오는 신호음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가 완강한 감정으로 나를 밀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아니, 이 세계가 우리를 밀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어둠이 다가와 나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누가 한 줌의 별을 뿌려 우리를 기억해줄까, 나는 눈을 비볐다.  

*

 끼이……………………………………………………이……………………………………이…………………………………이………………………끼……………이…………………………………이……………………………………이…………………………………………………………………………………………………………………이……………………………………이…………………………………이……………………………………이………………………………………………………………………………………………………………………………………………………………………………………………………………………………………………………………익…………………….

*

 기차가 섰다. 그의 몸이 나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예리한 칼날에 손을 베일 때처럼 처음에는 아무 감각이 없었다. 그러나 곧 믿을 수 없는 통증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불에 타던 그때처럼 온몸으로 데굴데굴 구르며 파르르 떨었다. 머릿속은 아득해지고 이내 통증으로 점점 머릿속이 비어갔다. 나는 떨리는 눈꺼풀로 저 멀리 굴러가는 그의 몸을 순간, 보았던 것 같았다. 반 바퀴쯤 구르고 고통에 일그러진 그의 시선이 아주 잠깐 나와 마주쳤다. 때마침 우중충하던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그는 한때 한 몸이었던 나를 막막한 시선으로 넘겨다보았다. 어딘가 엄마였던 여자를 닮아있었다. 순식간에 눈발이 거세지고 굉음을 내며 기차가 섰다. 더 이상 그는 보이지 않았다. 새파란 기차는 어둠 속에 멈춰 선 채 이편과 저편으로 나뉜 피 흘리는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은 날리고 분계(分界)를 가지게 된 두 세계가 고통 받고 있었다. 꼭 잡고 있던 나의 손아귀가 저절로 열렸다. 그의 긴 머리카락이 몇 가닥 바람에 날렸다. 눈발에 쓸려 검은 머리카락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가 살아있는 신화였다면 지금의 우리는 죽어가는 현실인가. 그가 있던 자리가 흥건하다. 나대신 눈물 흘리는 등짝이라니, 멀리 때 늦은 크리스마스의 캐럴이 들리는 것 같다. 우리는 그리움으로 분열하고 있는 중이다. 무심히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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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및 주소 

성명 : 최형심

약력 :  2008년 『현대시』등단. 2009년 아동문예문학상 수상. 2012년 『한국소설』신인상 수상. 2014년 『시인광장』시작품상 수상.  

전화번호 : 010-4314-5114

메일주소 : elqut@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