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

 

 

 죽전리 이장님 때마침 마누라가 건네 준 16만원을 들고 개한마리를 사서 뒷동산으로 올라갔다 올여름도 목이 타는 날들을 견뎌내려면 흔해 빠진 개새끼가 딱이라  서둘러 목에 줄을 묶어 나무에 매달려는 순간 고만 개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그 눈빛이라 주춤하는 사이 때는 이때다 싶었는지 찰나를 눈치 채고 꽁지 빠지게 도망을 갔다 화들짝 놀란 죽전리 이장님 부리나케 개를 쫓아 온산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땀은 등줄기 줄줄 흘러내리고 끓어오르는 부아에 더위는 다 잊고 산 속을 헤매고 다녔더니 어느새 해는 저물고 죽전리 이장님 배는 우르릉 우르릉 울었는데 이런 낭패가 어디있냐고 주인 없는 목줄만 가지고 산을 내려오는데 초복에 신이 난 개가 산등성이에서 실컷 울고 있었다

 




송현이 길을 가다

                                                    

 

 

나는 순장(殉葬)녀 송현이

봄 햇살이 자꾸만 가슴팍을 헤집고 들어서던 날이었지 아마

아버지가 맑은 물 한 사발을 건네던 날

비로소 새 세상이 열리던 그 날

내 나이 열여섯

 

대궐처럼 넓은 집은 아무리 쓸고 닦아도

그늘 진 담장 밑 제비꽃이 피고 민들레가 피었어

쭈그려 앉아 꽃잎을 쥐어 뜯으며

피지 말아라 피지 말아라 주문을 외우고 돌아서면

나는 열여섯 살 몸종

주인의 놋숟가락은 열여섯 내 살점을 파먹고도

반짝반짝 윤이 났어

안채 쿨룩이는 기침소리 들릴 때마다

삐걱거리는 무릎은 도망가자고 자꾸 졸랐어

하지만 사방으로 난 길은 모두 주인에게 가는 길

온종일 축축하고 고단한 하루,

쏟아지는 꿈은 매번 담장을 넘지 못했어

꽃피는 열일곱을 넘지 못했지

 

다시 태어난 열일곱, 담을 넘어 길을 나섰지

눈물 찍어가며 가던 그 길에

천년 전 마중 나온 바람이

햇살 속으로 손짓하더라

 

 

 

 

)송현이-1500년 전 16살 나이로 비사벌(현 경남 창녕)에 순장된 소녀. 200712월 송현동고분군에서 발굴되었다고 하여 이름이 ‘송현이’로 붙여졌다. 이들 죽음의 사인은 중독 또는 질식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