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냉장고에

 

 꽃집을 지나다가

  꽃은 냉장고에 있습니다 란 표지가 붙은 유리창 안을

 기웃거리다가 여기가 육소간인가,

  고기는 냉장고에 와 뭐가 다르담

 

 꽃과 고기라, 상하기 쉬운 것들

 부패하기 시작하는 어느 시점의 연장에나 쓰일

 냉장고가 너무 많은 게지

 

 냉동칸에서 추억을 끄집어내는 사람은 쓸쓸해

 숙성된 고기 한 점을 욕망이라 규정한다면

 냉장실에서 냉동칸까지의 사잇길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의 시절

 

 귀 기울여 봐, 한밤중의 냉장고엔

 고양이들이 살 거든

 떨고 있는 고깃덩일 생각해 봐

 갸르릉거리는 꽃들을,

 

 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 이적행위야, 그건

 ― 패닉의 이적 말이야?

 ― 가수 말고, , 강박의……

 

 12월의 숲을 펼쳐 봐, 낙엽의 길이

 깔리지, 바스락 바스락

 발바닥에 훈기가 느껴지지

 미사여구 없는 간결과 거침없는 드러냄으로

 아름다운 나목들을

 이제 비디오를 거꾸로 돌려 볼래?  마구마구

 푸르러지고 어려져서 새로

 새로 돋아나는 잎들, , 싱싱한 꽃들!

 

 

 

항해



아이의 방은 그리 크진 않지만

바다도 있고 별도 있습니다

푸른 줄무늬 벽지 위에 배들이 늘어서 있고

천정엔 야광 별들 별만큼 박혀 있습니다

불을 끈 하늘엔 형광빛 별들 밤새 반짝이고

아이는 별꿈을 꿉니다


아이가 학교 간 사이

바다는 썰물로 얕아졌다가

아이가 돌아올 때쯤

찰랑찰랑 수위를 높입니다


아이는 바지를 걷고 물 속에 하루를 씻고는

의자에 가만히 몸을 기댑니다. 책상 위에 어지러이 놓인

책들,

대양 속으로

떠나는 배 한 척

긴 고동 울리며 서 있습니다


아이의 방은 지금 만조입니다

 


1960년 대구 출생

199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문』

miji340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