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의 겨울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거 아녜요? 전 주인요? 잘 몰라요.”

황씨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십여 년 동안 대여섯 번 발길이 전부였어도 집을 못 찾을 정도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하나밖에 남지 않은 막내딸과 이어진 길인데 어찌 잊겠는가. 주소까지 다시 확인한 황씨는 막내딸이 살지 않는다는 집 앞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를 못했다.

막막함이 그를 대문 앞에 주저앉혔다. 어제 여러 번 전화를 했을 때 없는 번호라는 안내에 갑갑궁금했는데 조바심마저 들었다.

머츰하던 눈발이 다시금 흐린 하늘을 채워갔다. 황씨는 진저리를 치며 양손을 주머니에 더 깊이 쑤셔 넣었다. 사위집에 온답시고 모처럼 차려입은 입성인데 영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일 년에 몇 번 경조사 때나 꺼내놓던 양복을 입고 온 것이 불찰이었다. 매섭게 자락마다 파고드는 찬바람에 온몸은 얼음장이 되어갔다. 걸친 외투가 무색하게 잔뜩 웅크리며 자라목을 만들 뿐이었다.

당장 시장바구니를 든 막내딸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고것마저 이민을 갔는감?”

이제 남은 것은 자신 혼자뿐이라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휑하니 떨어져 나가는 심정이었다.

“어떻게 키운 자식들인데 죄다···.”

황씨는 상을 만드는 기술자였다. 열일곱 살 무렵부터 나무를 만져왔으니 육십 년 가까이 한길을 걸어온 셈이었다. 죽상과 장국상이나 다과상처럼 소형에서부터 제사와 잔치 때 쓰이는 대형 교자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뤄본 그였다. 지금은 기계시설이 잘 갖춰진 목공소에서 대량 생산되고 있지만 그는 혼자서 수작업만을 고집해왔다.

상 제작기술에 있어 남다른 재능까지 보탠 황씨는 적지 않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특히 응접실 탁자용으로 쓰였던 교자상은 그의 전문분야로 차츰 상품가치가 높아졌다. 그 당시만 해도 웬만한 집이 아니면 구입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고가였다. 비상하듯 꿈틀대는 용과 사군자의 기품을 목상감으로 몸체에 입혔고 더러 온갖 성스러운 동물들을 새겼다. 그의 상이 입소문 날 무렵에는 상판 밑면에 ‘黃’이라는 자신의 성을 독특한 필체로 그려넣게 되었다. 그것으로 사람들이 진품을 구별한다는 말이 들려오자 더없이 뿌듯했다.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 공부 남부럽지 않게 시켰다. 네 명의 아들딸이 이민을 갔어 지금껏 어려움 없이 지내왔다. 다만 아직 가슴에 남아있는 것은 아들 가운데 하나쯤은 뒤를 이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었다.

팔 년 전 큰아들이 이민 가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애써 서운한 척하지 않았다. 그 훨씬 전 상 만드는 일을 가업으로 삼아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단박에 자를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죄지은 사람처럼 자식들에게 그 어떤 손짓조차 내보이지 못했다.

둘째와 셋째아들은 일찌감치 제 갈 길을 정해놓고 일방적인 통보만 알려왔다. 애당초 황씨의 바람은 어느 자식에게 스며들지 않는 고리타분한 것으로 전락돼버린 상태였다. 더는 ‘黃’이 새겨진 자긍심을 대물림 못 하게 되었지만 아무도 탓할 수가 없었다. 자신 역시 부친의 뜻을 물리친 채 이 길로 걸어온 몸이었다.

이제는 천직이라 여겼던 일을 더 이상 이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 대부분 수작업이라 대규모 목공소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효와 다양한 모양새를 따라가지 못했다. 오랜 기간 들인 공만큼 제 값을 받다보니 사치품처럼 돼버린 탓에 찾는 이마저 줄어들었다. 가격을 내려 보기도 했는데 식탁에 밀리고 쓰임새가 줄어들어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전과 같지 않은 건강이 더 큰 장애였다.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다 하루라도 일손을 놓지 않고 지내온 터라 몸 이곳저곳 탈이 나고 있었다. 사실 작업실을 겸하고 있는 집과 얼마 되지 않는 근처 밭을 처분해 막내사위 사업에 투자할 요량이었다. 언젠가 막내딸이 먼저 말머리만 꺼내놓고 만 일이 있었다.

“모든 걸 정리하고 저희와 함께 사시는 게 어떠세요?”

늘 마음에서 떠나지 않던 그 목소리에 확답을 주고자 온 길이었다.

눈발이 다시 가랑눈으로 바뀌면서 주춤하고 있지만 갈 곳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뜨악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던 황씨는 머릿살만 어지러워 눈을 질끈 감았다. 기차와 버스에 시달리고 빈속이라 더욱 고단했다. 배부르게 먹고 따뜻한 아랫목에 편히 눕고 싶었다. 그곳이 어딘지 생각나지 않았다.

골목 끝에서 왜자기는 소리가 쏟아져 돌아보니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눈 위에 뒹굴고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 가운데 키가 큰 한 녀석이 대장인 듯 보였다.

“지금부터 썰매 시합이다!”

아이들이 미리 준비해놓았는지 각자 물건 하나씩을 집어 들었다. 썰매인 모양인데 주인들 생김새처럼 제멋대로였다. 비닐 장판에서부터 나무상자, 널빤지 심지어 마땅한 것이 없었는지 납작하게 누른 종이상자를 들고 비탈길로 오르는 아이 눈에 띄었다.

경사가 제법 있는 비탈 중간쯤에 모이자 곧 한 명씩 미끄러져 내려왔다. 황씨는 아이들 놀이에 넋을 놓고 있었다. 뱃속에서 자꾸만 싱거운 소리가 나고 손발은 더 얼어가도 표정만큼은 나들이에 데리고 나온 손자를 지켜보는 그것이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쏜살같이 내려와서는 다시 잰걸음으로 뛰어올라갔다. 벌써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 있는데도 몸놀림은 튀는 공처럼 가볍게만 보였다.

몸집이 작고 어려보이는 한 아이가 널빤지 썰매를 질질 끌며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오늘 보고 싶었던 손자와 닮아서 처음부터 눈길이 가던 터라 황씨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보란 듯 양팔로 크게 V자를 만들어보이던 아이가 썰매에 앉자마자 미끄러져 내렸다. 올라오던 아이들이 옆으로 물러서자 아이의 썰매는 점점 빨라졌다.

“작은 눔이 당차구먼.”

황씨에게서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사이 아이의 썰매는 평지로 내려왔다. 그때 위에 있던 아이들이 뭐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썰매가 황씨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놀란 황씨가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이쿠!”

엉덩방아를 찧은 황씨 주변으로 어느새 아이들 그림자가 하나둘 모여들었다. 간신히 몸을 추스른 황씨가 울고 있는 아이를 불렀다.

“이리 온. 워디 다치지는 않았남?”

황씨가 아이의 옷에 묻은 눈을 털어주었다.

“울지 마. 니가 제일이여.”

황씨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아이와 함께 널브러졌던 널빤지 썰매, 저승꽃처럼 군데군데 옻칠이 벗겨진 그곳에는 분명 글자‘黃’이 남아있었다. 네 다리와 몸체는 사라지고 쪼개진 상판 일부였지만 그 글자만은 선명하게 품은 채였다.

“이거··· 워디서 났는감?”

황씨의 물음에 아이가 한 이층집을 가리켰다.

“우리 집 지하실.”

황씨는 언제 새겼는지 기억나지 않는‘黃’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참았던 눈물이 솟구쳤다.

아이들이 다른 놀이를 찾기 위해 골목 저쪽으로 몰려갔다. 멀뚱하게 바라보던 아이가 썰매를 내버려둔 채 휙 돌아서 아이들 꽁무니 따라 달려가기 시작했다. *



이원준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한 시인, 소설가

《흔들림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한 모습이다》 《행복한 씨앗》 《김오랑》 《권정생》

《이상》 《김구》 《노먼 베순》 《넬슨 만델라》 《정약용의 편지》 《조선왕들의 속마음》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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