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서요


방과후학교 문집이 나왔다. 지난 한 해 공부한 결과물이다. 표지를 살펴보고 책장을 차례로 넘긴다. 그동안 애쓴 보람이 느껴져서 뿌듯하다. ‘나의 생각 글쓰기’부 수업장면과 활동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 장 한 장 바라본다. 그중 유독 눈길을 끄는 사진이 있었다. 일학년 가영이의 독사진이다.

사진 속 가영이의 눈은 미소를 띠며 살짝 감겨 있다. 가지런한 치아는 발그레한 잇몸까지 드러낸 채 활짝 웃고 있다. 그 모습을 보자 사진을 찍는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던 가영이가 떠오른다. 그 아이가 이렇게 웃기까지 꼬박 일 년이 걸렸다.

가영이는 지난해 초 내가 지도하는 생각글쓰기부에 들어왔다. 육 학년인 언니를 따라 왔다가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가영이는 수업 분위기가 많이 낯설었을 텐데 자신의 생각을 비교적 솔직하게 드러내는 글을 썼다. 일 학년답게 삐뚤빼뚤한 글씨에다 맞춤법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공책 한 쪽을 빼곡히 채웠다. 놀라웠다. 나는 마음속으로 가영이가 계속 오기를 바랐다.

나의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가영이는 그 다음 주에도 언니와 함께 왔다. 와서는 말 한 마디 않고 글만 썼다. 가영이의 글은 그 또래가 겪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여서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도 재미가 났다. 자신의 생각을 그렇게 잘 풀어내는 것이 대견했다. 나는 가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의 칭찬에 힘을 얻어서일까. 가영이는 생각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며 즐겁게 글을 썼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났을까. 가영이가 변했다. 처음과는 달리 미적거리기만 하고 글을 쓰지 않았다. 교실로 들어설 때는 반가워하며 나의 품속을 파고들었지만 막상 동시를 읽을 때나 느낌을 쓰기 시작하면 딴청을 피웠다. 수업 중에도 수시로 나에게 왔고, 내 팔을 끌어당겨 자신의 얼굴에 비볐다.

가영이는 툭하면 나를 불렀다. 내가 다른 아이들 대하느라 지체되면 여지없이 나에게로 왔다. 글 쓴 것을 봐달라는 줄 알고 서둘러 가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그저 한손으로는 연필을 쥐고 다른 손은 나를 꼭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가영이가 나를 좋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여겼지만 아이들을 두루 아우르며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나로서는 난감했다.

나는 고민했다. 고민 끝에 가영이를 편안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려고 애를 썼다. 가영이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안아주며 관심을 주었지만 그 외에는 무심히 대했다. 수업과 관련된 내용이라도 그 아이가 원하지 않는 것 같으면 그대로 두었다. 가영이는 동시를 읽는 것도, 느낌을 적는 것도, 글감을 정해 한 편의 글을 쓰는 것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다그치지 않았다. 가영이가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 수 있도록 기다렸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겨울방학이 되었다. 가영이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표정도 전에 없이 밝았다. 그런 가영이가 기특했다. 나는 그간의 궁금증을 토로했다. 글을 열심히 쓰다가 한동안은 왜 그렇게 안 썼던 것이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가영이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부끄러워서요.”

나는 깜짝 놀랐다. 가영이의 행동은 은근했지만 거칠 것이 없었기에 부끄러워서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동안 읽지도, 쓰지도 않은 것은 오로지 부끄럽기 때문이었다니 아차 싶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부끄러움이 많았다. 가족이 아닌 사람 앞에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는 것이 몹시 부끄러웠다. 내 집에 누군가 찾아오면 목례만 하고 내 방으로 쏙 들어가기 예사였다. 길을 가다가도 저만치서 누가 오고 있으면 마주칠세라 얼른 옆길로 방향을 틀었다.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갖는 것도, 말을 건네는 것도 왠지 쑥스럽고 부끄러웠다.

초등학교 때 겪은 일이다. 미술 시간이 되어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펼쳐놓고도 선생님이 내 곁에 오시면 얼어붙듯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선생님이 아무 말씀 않고 지나가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경해야, 너는 왜 그림 안 그리고 가만히 있니?”

영락없이 건네는 선생님의 한 마디는 나를 더 움츠러들게 했다.

나의 부끄러움은 사춘기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책이 좋았던 나는 쉬는 시간이면 늘 책을 읽었다.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담임 선생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겉표지를 들춰서 어떤 책인가를 확인하고, 나의 양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꼭 한 마디를 덧붙였다.

“경해는 문학소녀야!”

나는 그런 말조차도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나의 어린 시절 모습과 가영이의 모습이 겹친다. 가영이는 부끄러워서 소리 내어 읽지 못했다. 글 쓸 것이 생각나도 공책에 쓰지 않았다. 그 심정이 지금은 이해가 된다. 한편으로는 가영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나 자신도 그랬으면서 글을 왜 안 쓰는지 궁금해 하고, 지나치게 관심을 가졌다. 그것이 오히려 가영이를 더 움츠러들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진다.

나의 부끄러움은 성인이 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만 지키던 모습은 옛날얘기다. 사람들 앞에 일부러 나서지는 않아도 기회가 주어지면 당당히 선다. 노래를 좋아해 가끔씩 가는 노래방에서도 가만히 앉아있지는 않는다. 같이 간 사람들이 춤을 추면 그들처럼 몸을 흔들지는 못해도 그 곁에 서서 신나게 박수를 친다. 목석처럼 서 있지만은 않는다.

지난 날 부끄러워서 머뭇거렸던 기억은 추억이 되었다. 지금 나의 모습이 보인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활달한 성격이라 여긴다. 나도 나 자신을 소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끄러워서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어느 자리에서건 움츠러들지는 않는다. 이런 행동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 끊임없이 글을 읽고 쓰며 다져진 덕분이리라.

나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 글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끊임없이 글을 읽고 썼다. 오른손 가운뎃손가락 첫마디에 두툼한 펜혹이 생길 정도로 늘 무엇인가를 썼다. 그것은 일기가 되고, 편지가 되고, 한편의 수필이 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마음은 시나브로 여물었을 것이다. 부끄러움도 그렇게 서서히 사그라졌을 것이다.

예쁜 가영이도 지난날 부끄러웠던 기억을 디딤돌로 삼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영이의 내면이 더욱 단단해지면 좋겠다. 그리하여 부끄러워서 망설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당당해 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문집 속 가영이는 여전히 두 눈을 살짝 감고 환하게 웃고 있다. 순진무구한 얼굴이다. 그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 지금은 그 학교를 떠나왔기에 직접 마주할 수는 없지만 가영이는 나의 마음 한 편에 곱게 자리하고 있다.


*경기 안성 출생

*월간 <순수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같은 빛깔로 물들어 간다는 것은』2008

『까치발 딛고』2011

『내 마음의 덧신』2016

*계간문예 『상상탐구』우수 작품상 수상 -수필 <빈 의자>-2015

*경상북도문예기금선정 수혜 - 2016

*이메일 주소 : jeang120@hanmail.net